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선배님, 그 밤 기억나시죠: บทที่ 21 - บทที่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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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 그쪽만 있는 게 아니야

막내들이 먼저 시작했다. 제작팀 대리는 팀장을 골랐다. 무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웃기다고. 팀장은 막내를 골랐다. 조용한 줄 알았는데 제일 시끄럽다고. 다들 별생각 없이 웃었다.탈은 서연 차례였다."나는..." 서연이 턱을 괴고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윤재하 씨."재하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저요?""응. 처음엔 예쁘장하고 싹싹한 신입인 줄 알았는데.""지금도 틀린 말은 아닌데요.""근데 생각보다 훨씬 집요해."테이블이 웃음으로 한번 들썩였다. 지안만 웃지 않았다. 서연은 그걸 보고도 모른 척 말을 이었다."한 번 본 건 잘 안 놓치잖아.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재하가 잔을 들었다. 웃긴 웃었는데, 평소처럼 가볍게 넘기는 얼굴은 아니었다."칭찬으로 들을게요.""알아서 들어."다음 차례가 지안 쪽으로 넘어왔다."오대리는요?"태준이 묻는 목소리는 가벼웠다. 강요하는 톤이 아니라, 안 해도 괜찮은데 하면 듣겠다는 쪽.지안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나는 태준 팀장님."이번엔 태준이 웃었다."의외네요.""전략팀은 말 많은 사람들일 줄 알았거든요.""그건 맞는데요.""근데 생각보다 조용하세요.""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상황 봐서요."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다들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선. 정작은 그다음이었다."그럼 난 오대리."재하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서, 지안은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왜요?""처음엔 무서울 줄 알았거든요."테이블에서 아, 하는 반응이 나왔다. 그건 모두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첫인상이니까."근데 안 무서워요?""무섭죠." 재하가 웃었다. "근데 그쪽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말이 떨어지자 테이블이 잠깐 조용해졌다. 팀장은 그냥 웃었고, 막내들은 어쩔 줄 모르고 잔만 만졌고, 서연은 대놓고 눈을 빛냈다. 지안은 거기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어느 쪽이 더 있는데요."질문은 농담처럼 나가야 했다. 그런데 자기 귀에도 조금 짧았다.재하는 잠깐 지안을 봤다. 술이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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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 택시

고개를 돌린 순간, 재하와 눈이 마주쳤다.딱 거기서 한 박자 멈췄다. 식당 안 소음은 아직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고, 길가에는 택시 불빛이 드문드문 지나가고 있었고, 지안은 가방끈만 괜히 더 세게 쥐었다."왜 나왔어요?"첫마디가 그것부터 나갔다. 돌아가라는 뜻인지, 설명하라는 뜻인지, 본인도 모를 정도로 짧았다.재하는 식당 문을 뒤로 한 번 돌아봤다."2차까진 못 갈 것 같아서요.""아까는 아무 말 없더니.""선배님도 그랬잖아요."그건 맞는 말이었다. 맞으니까 더 할 말이 없었다. 지안은 길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택시 하나가 지나갔고, 빈 차 등이 멀어졌다."들어가요." 지안이 말했다. "나는 그냥 갈 거예요.""알아요.""알면 왜 나왔어요."재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술 마신 사람답지 않게, 오히려 너무 멀쩡하게 보였다. 눈만 조금 느려진 정도. 말 대신 손을 들어 지나가던 택시 하나를 잡았다. 차가 바로 속도를 줄였다."타세요.""윤재하 씨.""늦었잖아요.""나 혼자도 갈 수 있거든요.""그건 아는데." 재하가 택시 문을 열며 말했다. "알아서 더 태우는 거예요."그 말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뻔뻔한데, 밀어내기 어려운 방식으로."같이 왜 타요.""방향 비슷하잖아요."지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내 집이 어딘 줄 알아요?"재하가 잠깐 멈췄다. 아주 잠깐. 그 틈이 없었으면 더 수상했을 거다."지난번에 동네 얘기할 때 들었거든요."그 말은 맞을 수도 있었다. 점심시간에 서연이랑 자취 얘기를 한 적이 있긴 했다. 재하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없었다고도 못 한다. 걸린 건 그럴듯하다는 사실 자체였다.택시 기사까지 백미러로 한 번 쳐다보는 순간, 지안은 더 따지지 못했다. 길 위에서 실랑이하는 그림이 더 싫었다. 결국 먼저 탄 건 지안이었다.그리고 그게 문제였다.재하가 반대쪽으로 타고 문이 닫히자 바깥 소음이 한 겹 멀어졌다. 식당 앞 웅성거림, 차 지나가는 소리, 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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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 습관

그런 눈으로 내리세요 해 놓고, 다음 날 회사에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인사해 버리면 반칙이다.목요일 아침, 지안은 평소보다 십 분 일찍 출근했다. 밤새 뒤척인 티를 가리려고 립을 평소보다 진하게 발랐고,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반묶음까지 다시 잡았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탈은 카드키를 찍고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생겼다."좋은 아침입니다, 선배님."재하가 먼저 인사했다.자기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다가 고개만 든 얼굴이었다. 어제 택시 안에서 사람 숨을 막아 놓고, 오늘은 회의 자료부터 챙기는 직원처럼 멀쩡했다. 웃음도 평소처럼 얇았고, 목소리도 평소처럼 공손했다. 지안은 가방을 의자에 걸면서 대답을 반 박자 늦췄다."네. 좋은 아침이에요."끝이었다.거슬리는 건 그쪽이었다. 어제 일을 없던 일처럼 넘겨야 하는 건 원래 자기 쪽 전문인데, 먼저 그렇게 나와 버리면 속이 뒤집혔다. 저 인간은 어디까지 계산한 걸까. 아니, 계산이라도 했으면 차라리 이해가 됐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으면 결국 나만 흔들린 사람 같잖아.지안은 노트북을 켜자마자 메일함부터 열었다. 밤사이 들어온 수정 요청은 많지 않았다. 대신 메신저 맨 위에 `윤재하` 이름이 또 보여서 짜증이 났다. 확인해 보니 새 메시지는 아니었다. 어젯밤 `걱정 마세요`가 아직 거기 남아 있었다. 지안은 창을 바로 닫고 일정표를 띄웠다."오지안."서연이 옆자리에서 몸을 기울였다."너 오늘 왜 이렇게 진하냐.""뭐가.""입술. 전투력 만렙이야.""아침부터 시비 걸지 마.""시비는 네가 걸린 얼굴인데."지안은 대답 대신 마우스만 움직였다. 서연은 그런 날 더 잘 건드리는 인간이었다."어제 먼저 나가더니 잘 들어갔어?""응.""그 뒤로 별일 없었고?""회식 끝나고 집 가는 데 무슨 별일이 있어."말은 그렇게 했는데, 바로 앞에서 누군가 프린트를 뽑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재하였다. 출력물을 정리하는 손이 평소랑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게 시야에 걸릴수록 지안 목소리만 더 딱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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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 펜이 멈췄다

"분석 아니고 기억 상기거든." 서연이 한숨을 섞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라고 다 안전한 건 아닌데, 위험해 보여도 다 나쁜 놈은 아니야. 네가 그걸 한꺼번에 묶어서 밀어내는 게 문제고.""좋은 사람, 위험한 사람 구분할 생각 없거든.""생각 없는데 왜 밤새 못 잤냐."지안은 결국 컵을 들었다. 한 모금 마셔도 쓰기만 했다."일하러 내려가자.""응. 대신 하나만." 서연이 문을 열기 전에 덧붙였다. "네가 모른 척하는 건 이해하는데, 남 눈까지 속일 생각은 하지 마. 적어도 나한텐."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 해도 서연은 자기 할 말 다 했다는 얼굴로 먼저 나갔다.***오전 회의는 짧았다. 팀장은 빠졌고, 실무자들끼리 기존 프로젝트 후속만 정리하는 수준이었다. 태준이 지안 자리 앞에 서서 태블릿을 넘겼고, 재하는 맞은편 빈 의자에 걸터앉아 시안을 띄웠다. 서연은 옆에서 회의록 창을 열어 두고 필요한 말만 잘랐다. 막내 둘은 복사실을 들락거리느라 회의 반, 심부름 반이었다."이 부분은 후속 캠페인으로 묶으면 될 것 같은데요."태준이 화면을 짚었다.지안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신 메시지가 너무 넓어지면 안 돼요. 첫 PT 때 먹힌 포인트만 남겨야 해요.""그래서 디자인도 좀 덜어냈습니다."재하가 노트북을 돌렸다. 군더더기 빠진 시안이었다. 필요한 것만 남겨 둔 사람 특유의 정리가 있었다."괜찮네요.""더 줄일 수도 있고요."말은 일 얘기뿐이었다. 톤도 일 톤이었다. 어제 택시 안에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준은 그 둘 사이에 깔린 다른 공기를 모르는 사람답게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었다."그럼 오대리, 이건 제가 전략 쪽 멘트 정리해서 다시 드릴게요.""좋습니다.""점심에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보시죠."지안이 고개를 들었다.태준은 여전히 편한 얼굴이었다. 압박하는 쪽이 아니라, 바쁘면 다음으로 미뤄도 된다는 사람처럼."어제 말씀드린 후속 얘기요. 식사하면서 정리하면 빠를 것 같아서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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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 아는 사람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지안은 숨을 한번 골랐다.유리문 너머로 사무실이 위로 밀려 올라갔다. 방금 전까지 자기 쪽을 보던 시선은 닫힌 문 바깥에 남았는데도, 자꾸 목 뒤가 뻣뻣했다. 태준은 그런 지안 옆에서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았다. 조용한 사람은 원래 편하다. 지금처럼 머릿속이 시끄러운 날엔 더 그랬다."갑자기 잡아서 불편하셨으면 다음에 따로 맞추셔도 됩니다."엘리베이터가 7층쯤 내려왔을 때 태준이 먼저 말했다."아니에요. 어차피 저도 후속 얘긴 해야 했어요.""다행이네요."끝이었다.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지도 않았고, 침묵을 못 견뎌 농담을 덧붙이지도 않았다. 지안은 그게 조금 의외였다. 태준은 늘 매너 좋고 차분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그게 자칫하면 지나치게 반듯해 보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바로 옆에 서 보니 그 반듯함이 부담보다 정리된 느낌에 가까웠다.1층에 내리자 태준이 자연스럽게 속도를 맞췄다."멀리는 안 갈게요. 오후 일정 전에 들어오셔야 하니까.""좋아요. 저 빨리 먹는 편이거든요.""알고 있습니다."지안이 고개를 돌렸다.태준이 웃었다."회의 들어가기 전에 늘 삼 분 안에 샌드위치 끝내시잖아요.""그건 관찰이 너무 정확한데요.""전략팀이 원래 남 관찰하면서 먹고사는 팀이라서요."말이 딱 그 정도였다.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게 흘리지도 않는 선. 지안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걸린 긴장이 조금 풀렸다.점심 장소는 회사 뒤편 골목의 한식집이었다. 새로 생긴 데라더니 안은 깔끔했고, 점심 손님이 몰리기 전이라 자리가 넉넉했다. 태준은 창가보다 안쪽 자리를 먼저 골랐다."여기 괜찮으세요? 바깥 보이면 정신없을 것 같아서.""좋아요."메뉴판을 넘긴 태준이 제일 먼저 한 말은 예상 밖이었다."매운거 괜찮으세요?""네?""저번에 회식 때 고추 손도 안 대시길래요.""그건 너무 매워 보여서요.""그럼 이 집 김치찌개는 빼죠. 좀 맵더라고요."말투는 여전히 담백했다. 네 취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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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 식사 괜찮으셨어요?

그 문장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아는 사람은 보입니다. 부담스럽지 않은데 가볍지도 않았다. 지안은 웃어넘기려다 말고 된장국만 한 숟갈 떴다."회사 다니면 다 그렇죠, 뭐.""그렇긴 한데." 태준이 밥을 한 번 놓고 지안을 봤다. "오대리는 특히 자기 쪽은 자꾸 뒤로 미루는 것 같아서요.""팀장님이 전략팀 말고 상담센터도 운영하세요?""그럼 비용 청구해야겠네요."둘 다 웃었다. 그 웃음 뒤엔 조금 느슨한 침묵이 남았다. 불편한 침묵은 아니었다. 말을 더 꺼내도 되고, 안 꺼내도 되는 종류. 지안은 그런 침묵이 드문 편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앞에서 더 나아가려고 하거나, 쓸데없이 더 잘 보이려고 했다. 그런데 태준은 지금 이 자리의 목적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만 한 발씩 다가왔다."그래도." 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점심은 가끔 이렇게 드셔도 괜찮습니다.""프로젝트 핑계로요?""그게 제일 자연스러우니까요.""합리적이네요.""제 장점이 그겁니다."지안은 웃으면서도 속으로 조금 복잡해졌다. 좋은 사람인 건 안다. 같이 있으면 편하고, 말을 골라 듣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이유를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사람 앞에서도 머릿속 어딘가가 끝까지 느슨해지지 않았다. 서연 말대로라면 그게 자기 문제일 수도 있었다. 예전 김정우 일 이후로, 너무 반듯한 쪽엔 더 늦게 손이 갔다. 반듯한 얼굴 뒤에 뭐가 더 있는지부터 의심하는 버릇이 남았으니까.그런데 정작, 지금 지안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쪽은 눈앞의 태준이 아니라 방금 전 사무실에 두고 온 얼굴이었다. 좋고 나쁘고, 안전하고 위험하고, 그런 기준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 인간. 어젯밤엔 전부 기억난다고 해 놓고 오늘은 헤더 두 버전만 말하던 사람."오대리?"태준이 부르자 지안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죄송해요. 잠깐 딴생각했네요.""일 생각이었으면 무죄입니다.""그쪽도 만만치 않으시네요.""전략팀이잖아요."결국 식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계산은 태준이 먼저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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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 우발적 거리

"그냥 궁금해서요."그 말이 떨어지자 지안은 더 대꾸하지 않았다. 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평소 같으면 "업무 외 질문이 점점 많네요" 하고 잘랐을 텐데, 지금은 그 한 문장도 의미가 더 얹히는 것 같았다. 재하는 믹스커피 컵 하나를 서연 자리 쪽에 내려놓고, 자기 몫 아메리카노를 든 채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돌아섰다. 그 뒷모습이 더 얄미웠다."야."서연이 바로 의자를 밀고 다가왔다."뭐래.""몰라.""그 표정이 제일 수상해.""박서연, 진짜.""알았어, 안 물을게. 대신 나중에 꼭 물을 거야."안 묻는다는 사람이 제일 먼저 예고부터 했다. 지안은 모니터를 켰다. 일부터 붙잡는 게 제일 빨랐다. 오후에 넘겨야 할 카피 수정본, 태준이 메일로 보내 준 예상 질문, 오전에 쌓인 피드백. 화면 안으로 들어가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커피 머신 앞에서 들었던 낮은 목소리만 자꾸 귀에 걸렸다.그때 팀장이 회의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오대리, 윤재하 씨. 잠깐."둘 이름이 같이 불리는 순간, 지안은 이유도 없이 마우스를 한 번 더 놓쳤다."클라이언트가 방금 레퍼런스 더 달래요." 팀장이 태블릿을 들고 말했다. "경쟁사 오프라인 디스플레이 사진이랑 동선 체크. 오늘 안에 봐야 한대.""지금요?" 서연이 먼저 반응했다. "저 세 시 콜 있는데.""알아요. 그래서 둘이 다녀와야 할 것 같아." 팀장이 지안과 재하를 번갈아 봤다. "매장이 회사에서 십 분 거리니까 금방 보고 오면 돼요. 태준 팀장님은 지금 외부 미팅 들어가셨고."거절할 타이밍은 그 정도였다. 충분히 짧고, 충분히 업무적이고, 누가 봐도 합리적인 배치. 합리적이라서 더 싫었다."네." 지안이 먼저 받았다."저도 괜찮습니다."재하 대답은 너무 매끄러웠다.***회사 밖으로 나오자 오후 햇빛이 생각보다 강했다. 지안은 재킷 소매를 한번 정리하고 발을 맞췄다. 나란히 걷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지나치게 가까워지진 않으려고 속도를 조금 빨리 잡았다."주소는 받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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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 끼어드는 타이밍

지안은 그날 오후 내내 일이 손에 붙지 않았다.재하가 마지막에 한 말이 신경쓰였다. 파일명을 정리하다가도 `후회 안 해요`가 불쑥 끼어들었고, 메신저 알림이 울릴 때마다 괜히 손끝부터 굳었다. 재하는 복귀 뒤로 더 건드리지 않았다. 사진 정리본만 조용히 공유했고, 필요한 코멘트만 남겼다. 그 얌전함이 오늘도 별로였다."야."서연이 모니터 너머로 속삭였다."너 지금 다섯 번째 한숨이야.""그걸 세?""그걸 안 세게 생겼냐."지안은 대꾸 대신 마우스를 한 번 더 움직였다. 서연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재하 자리 쪽을 한번 봤다."둘이 밖에서 뭐 있었어?""일 있었지.""그 일 말고.""박서연.""알았어." 서연이 손을 들었다. "근데 너 지금 되게 티 나."그 말이 더 싫었다. 티 안 나게 버티는 건 자기 장기였는데, 이번 주 들어 자꾸 구멍이 생겼다. 지안은 일부러 모니터를 더 가까이 당겼다. 그 순간에도 시야 구석에서 재하가 이어폰 한쪽만 낀 채 사진 폴더를 정리하는 게 보였다. 일을 할 때 손이 느리지 않은 사람. 아는 게 많고, 봐야 할 걸 빨리 보는 사람. 그래서 더 문제인 사람.퇴근 직전까지 별일은 없었다. 그게 다행인지 아쉬운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하루가 끝났다.***금요일 오전, 사무실 공기는 주말 직전답게 조금 느슨했다. 팀장은 아침부터 클라이언트 통화로 목소리를 높였고, 서연은 월요일 보고자료를 미리 빼 두겠다고 투덜거렸고, 막내 둘은 커피 쿠폰 얘기로 웃고 있었다. 지안은 어제보다 나은 얼굴을 만들기 위해 립부터 다시 발랐다. 회사에서 화장이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갑옷은 된다."오대리."태준이 자리 옆에 섰다."잠깐 괜찮으세요?""네. 말씀하세요.""어제 후속 자료 보셨죠. 카피 톤 얘기 조금만 더 맞추면 좋을 것 같아서요.""회의실 가요?""작게 볼 거면 여기서도 되고요."태준은 늘 선택지를 먼저 줬다. 지안은 자기 자리 옆 빈 의자를 가리켰다."여기서 봐도 돼요."태준이 앉고 태블릿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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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 영화보단 이 문장

"취미까지는 아닌데.""충분히 취미죠.""그리고..." 지안은 모니터 하단을 봤다. "영화도 봐요. 사람 없는 조조로.""의외네요.""왜요?""오대리는 좀 더 바쁜 취미를 가질 것 같아서요.""그게 무슨 취미예요.""예를 들면 주말에도 PT 자료 정리한다든지.""그건 취미 아니고 병이에요."이번엔 둘 다 조금 더 크게 웃었다. 웃고 나니 공기가 아주 살짝 달라졌다. 업무 얘기에서 반 발쯤 벗어난 자리. 태준은 그걸 일부러 키우지 않았다. 그냥 그만큼만 두는 쪽이었다."그럼 조조 영화 하나 기억해 둘게요.""그건 거의 다음 약속 잡는 톤인데요?"태준이 시선을 잠깐만 피했다가 다시 맞췄다."싫으시면 안 합니다."짧고 깔끔했다. 밀어붙이지도, 어물쩍 넘기지도 않았다. 지안은 그 대답 앞에서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식으로 선을 분명히 두는 사람은 드물다. 부담스럽지 않게 호감을 보이는데, 동시에 물러날 구멍도 준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정리된 문장처럼 올라왔다.그때였다."선배님."재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지안은 고개를 돌렸다. 재하가 파일철 하나를 든 채 서 있었다. 표정은 멀쩡했는데,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아니, 나빴다. 방금 대화가 어디까지 왔는지 다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끊기 가장 적당한 순간에 나타난 건 확실했다."팀장님이 이거 먼저 확인해 달라셨어요." 재하가 파일철을 지안 책상 위에 내려놨다. "클라이언트 수정안인데, 오늘 중으로 넘겨야 해서요.""지금요?""네. 급한 거라고."말은 팀장 핑계였지만, 재하 손은 이미 파일 첫 장을 펼쳐 놓고 있었다.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몸짓이었다. 태준이 그걸 보고도 별말 없이 의자에서 반쯤 몸을 뺐다."그럼 이건 먼저 보시죠.""아니요, 제가 나중에 봐도...""급한 거면 먼저 처리하셔야죠." 태준이 태연하게 웃었다. "저도 바로 회의 들어가야 하고요."지안은 괜히 입술 안쪽을 한번 깨물었다. 재하가 끼어든 방식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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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 대형 피치

방금 전까지 서로 다른 이유로 거슬리던 얼굴이, 이번엔 아주 선명하게 같은 쪽으로 돌아서고 있었다.그 느낌이 가시기도 전에 팀장이 회의실 문을 활짝 열었다."다들 일단 들어와요. 지금부터 설명할게."사무실 공기가 한 번에 바뀌었다. 주말 직전의 느슨함은 싹 걷히고, 의자 밀리는 소리와 노트북 챙기는 소리만 남았다. 서연은 커피컵부터 들고 일어났고, 막내 둘은 웃던 얼굴 그대로 얼어붙었고, 태준은 통로에서 돌아서며 이미 태블릿을 켰다. 지안도 파일철을 덮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재하는 그보다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회의실 스크린에 떠 있는 건 익숙한 로고가 아니었다. 업계에서 누구나 아는 대형 생활 브랜드였다. 예산도 컸고, 노출도 컸고, 잘되면 회사 안에서 몇 달은 이름이 돌아다닐 급이었다."다음 주 금요일 발표." 팀장이 빠르게 넘겼다. "실질 준비 기간은 일주일도 안 돼요. 경쟁사 네 군데 붙고, 우리도 이번엔 무조건 본선 따내야 합니다."서연이 제일 먼저 욕 비슷한 숨을 뱉었다."와, 사람 죽이네.""그러니까 죽지 말고 합시다." 팀장이 바로 받았다. "오대리, AE 메인으로 가고. 태준 팀장님 전략 총괄. 윤재하 씨 비주얼 리드. 서연 씨는 서브 AE로 붙어서 자료 정리하고, 제작팀 둘이 실행 리서치. 다들 이번 주말 반납 각오하세요."지안은 스크린을 보면서도 귀로는 이름 배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예상대로였다. 아니, 어쩌면 너무 예상대로여서 더 피곤했다. 태준은 전략, 재하는 비주얼, 자기는 가운데서 다 조율해야 하는 자리. 일이 커질수록 결국 붙게 되는 조합이었다."클라이언트 히스토리부터 볼게요." 태준이 바로 말을 받았다. "이 브랜드, 작년 하반기에 리브랜딩 한번 했는데 반응이 반반이었어요. 지금 필요한 건 새로움보다 설득 가능한 전환입니다.""근데 설득 가능하게만 가면 재미없어요."지안 말에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안전하게 가면 본선도 못 가."재하가 스크린 아래쪽 자료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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