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선배님, 그 밤 기억나시죠: บทที่ 31 - บทที่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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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 아는 사람 맞잖아요

오후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태준은 회의실과 자리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프레임을 잡았고, 지안은 그 프레임이 실제 클라이언트 언어로 먹히게 문장을 바꿨고, 재하는 그 문장이 어떤 장면으로 보여야 하는지 계속 시안을 던졌다. 중간중간 의견 충돌도 있었다."이건 너무 예뻐요.""예뻐야 눈에 들어오죠.""근데 이 브랜드 톤은 그렇게 세련된 쪽이 아니잖아요.""세련됨이 아니라 선명함으로 봐 주세요."지안은 두 사람 말이 다 맞아서 더 짜증났다. 결국 둘 사이에 서서 방향을 조율 하는 건 자기 일이었다."둘 다 멈춰요."재하와 태준이 동시에 말을 끊었다."예쁜 건 맞는데 과하고, 안전한 건 맞는데 밋밋해요. 둘 다 반만 가져가면 되잖아요."서연이 멀리서 중얼거렸다."와, 애 둘 키우네."지안은 그 말에 웃을 틈도 없이 다시 화면을 봤다. 일은 계속 밀려왔다. 다섯 시엔 클라이언트 추가 요청이 들어왔고, 팀장은 아홉 시 전에만 큰 줄기 잡자고 했지만, 그런 말은 늘 소망에 가까웠다.아홉 시가 넘어가자 사람 수가 하나둘 줄었다. 제작팀 둘은 현장 체크 자료를 정리해 올리고 먼저 빠졌고, 막내 하나는 마지막 버전 인쇄를 걸어 둔 채 퇴근했다. 서연도 열 시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집 가서 이어볼게. 너도 너무 무리 하지마.""응.""응은 무슨. 얼굴이 이미 내일 모레인데."서연은 재하 쪽을 한번 힐끗 보더니 더 말하지 않고 나갔다. 그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 지안은 그걸 해석할 체력도 없었다.열 시 반쯤엔 팀장도 택시 잡히는 대로 나가겠다며 회의실을 비웠고, 태준은 전략 문서 초안 잡겠다며 다른 층 회의실로 내려갔다. 남은 건 지안과 재하였다. 같은 회의실, 서로 다른 노트북 화면, 그리고 에어컨 바람이 약해진 밤 공기.지안은 카피 초안을 세 번째 갈아엎고 있었다. 커서는 깜빡이는데 문장이 안 붙었다. 아까까진 맞는 것 같던 문장이 지금 보니 너무 설명 같았고, 방금 지운 문장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다. 눈이 시큰했다. 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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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 먼저

지금 자기 지친 틈을, 오늘 하루 동안 누구보다 먼저 읽은 건 재하였다.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더 짜증이 났다. 알아차려도 모른 척하면 되는데, 저 인간은 꼭 필요한 만큼만 다가왔다. 지안은 모니터를 다시 봤다. 방금 받은 러프 위에 카피를 얹어야 했다. 일단 일부터 붙잡으면 나머지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었다."이쪽 여백 조금만 더 줄여도 되겠네요."재하가 건너편에서 말했다."그러면 카피 숨 막혀요.""대신 첫 줄이 더 세게 들어오죠.""지금 이 문장은 세게 들어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말이 많아요."재하는 거기서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 노트북 화면을 몇 번 넘기더니 다른 버전을 띄워 보였다."그럼 문장을 줄이는 쪽으로 가죠."딱 그 한마디였다. 이상하게, 태준이랑 부딪힐 때보다 재하랑 이렇게 붙을 때가 더 빨랐다. 말 몇 개 안 해도 어디가 막혔는지 서로 먼저 짚는 식이라서. 그게 편해야 맞는데, 지안은 그 편함이 늘 마음에 안 들었다.밤 열한 시를 넘기자 태준에게서 메신저가 왔다.`전략 프레임 정리해서 공유했습니다. 키워드는 '한 번의 체감으로 바뀌는 일상'.`지안은 문장을 읽다가 바로 답을 쳤다.`좋아요. 근데 카피로 옮기면 아직 설명 같아요.`태준 답은 금방 왔다.`그럼 더 생활 쪽으로 당겨 보죠. 감각 먼저.`재하도 그 메신저 창을 흘끗 본 모양이었다."생활 쪽으로 당기면 비주얼도 더 가까워져야겠네요.""가까워지는 건 좋은데." 지안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촌스러워지면 끝이에요.""촌스럽지 않게 붙여 볼게요."그 말투가 너무 당연해서, 지안은 잠깐 손을 멈췄다. 할 수 있다는 사람의 태도였다. 허세가 아니라, 이미 머릿속에 어느 정도 그림이 있는 사람처럼."윤재하 씨.""네.""가끔 되게 재수 없거든요."재하가 작게 웃었다."칭찬으로 들을게요.""누가 칭찬이래."대꾸는 그렇게 했지만, 지안 입꼬리도 아주 잠깐 풀렸다. 회의실 유리벽엔 늦은 시간 특유의 어두운 반사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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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 같은 편

정작 걸린 건 그 사실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는 자기 쪽이었다.새벽 두 시를 넘겨 회의실을 나올 때까지도 지안은 그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다. 결국 집에 가서 샤워만 대충 하고 침대에 눕긴 했는데, 몸은 누웠지만 머리는 계속 회의실에 남아 있었다. `한 번 닿으면, 일상이 먼저 바뀐다.` 그 문장도, 그 문장을 둘이 같이 고친 밤도, 너무 가까웠던 화면 거리도.그래서 토요일 오전 회사에 다시 들어섰을 때는 이미 피곤이 한 겹 더 쌓여 있었다. 주말 출근 특유의 조용한 사무실인데도 다들 말수가 없었다. 서연은 캔커피를 따며 욕부터 했고, 막내 둘은 눈 밑이 푹 꺼져 있었다. 태준은 가장 멀쩡해 보였지만, 그건 피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티를 안 내는 쪽 같았다."일단 어제 잡은 1차 방향으로 갑니다."팀장이 스크린을 넘기며 말했다."오늘 오전에 콘셉트 잠그고, 오후엔 리허설 골격까지 뽑아요."지안은 안경을 올려 쓰고 자료를 넘겼다. 재하는 반대편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띄워 두고 있었다. 밤새 같이 붙어 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소 얼굴이었다. 그게 다행이면서도 마음에 안 들었다.흐름이 꺾인 건 오전 열한 시 조금 전이었다.팀장 휴대폰이 울렸고, 팀장은 회의실 밖으로 나가 통화를 받았다. 삼 분쯤 지나 다시 들어온 얼굴이 좋지 않았다."방향 바뀌었어요."회의실 공기가 바로 멈췄다."클라이언트가 방금 경쟁사 내부안 일부를 봤답니다. 우리 쪽도 너무 '체감' 위주로 가면 비슷해 보일 수 있다고." 팀장이 이를 한번 눌렀다. "혜택이 더 직접적으로 보여야 한대요. 근데 촌스럽게는 싫고."서연이 헛웃음을 냈다."아니, 그럼 어쩌라고.""그러니까 그걸 지금 만들자고요."태준이 바로 태블릿을 당겼다."이건 전략 축이 흔들린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바뀐 겁니다. 감각을 버리는 게 아니라 혜택을 더 빨리 이해시키라는 거예요.""근데 그걸 빨리 이해시키면 싼티 나요."지안이 바로 받았다."이 브랜드가 싫어하는 게 딱 그거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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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 리허설

"그럼 시작할게요."지안이 리모컨을 누르자 스크린이 첫 장을 띄웠다. 브랜드 로고, 한 줄 카피, 생활 장면을 밀착해서 잡은 키 비주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낯설던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자 자기 자리를 찾았다. 첫 문장을 끝내기도 전에 재하가 다음 장으로 넘길 타이밍을 맞췄고, 태준은 옆에서 발표 흐름표를 보며 필요한 메모만 적었다."잠깐."팀장이 바로 끊었다."오프닝은 좋은데 다음 장 넘어가는 텀이 길어요.""제가 한 박자 늦었어요."재하가 먼저 말했다."다시 갈게요."두 번째는 지안이 말을 조금 줄였고, 재하는 그 끝 음절에 맞춰 화면을 넘겼다. 이번엔 붙었다. 스크린 위 문장과 화면이 따로 노는 느낌이 사라졌다. 지안은 그 차이를 몸으로 먼저 알았다. 말을 덜 해야 할 자리, 더 눌러야 할 자리, 화면이 먼저 먹고 들어가게 비켜 줘야 할 자리가 분명해졌다."다시."팀장은 그 뒤로도 세 번을 더 끊었다. 메인 베네핏 장에서 문장이 길었고, 예상 질문 답변은 방어적으로 들렸고, 중간 전환은 너무 영리해서 오히려 안 남았다."선배님, 여기선 두 번째 문장 빼죠.""그럼 화면이 비어요.""제가 자막 짧게 올릴게요.""몇 초?""1.5초요""너무 짧아.""그럼 2.3초요"말이 더 붙을 필요가 없었다. 태준이 그걸 듣고 바로 개입했다."그럼 오프닝 전체 리듬을 반 박자 앞당기죠. 초반에 설명 안 남기고.""좋아요." 지안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설득하려 들지 말고 끌고 가요."리허설이 세 번을 돌고 나자 막내 둘은 거의 기계처럼 출력물을 바꿔 끼웠고, 서연은 피곤해서 웃음도 안 나는 얼굴로 질문 리스트만 수정했다. 태준은 그런 와중에도 발표 동선을 계속 정리했다. 어디서 멈춰 설지, 어느 장에서 클라이언트 쪽을 볼지, 질문이 들어오면 누가 먼저 받을지. 다들 지쳤는데, 지친 와중의 일 잘하는 얼굴들이 있었다."두 분은 호흡이 너무 붙어서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겠네요."태준이 자료를 보다가 툭 말했다.지안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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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화 - 성공

아슬아슬할 만큼 조용한 그 몇 초가, 발표보다 먼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는 걸 둘 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그리고 다음 날, 지안은 그 정적이 의외로 오래 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클라이언트 앞에 서는 순간부터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PT룸 조명은 차갑고, 스크린은 지나치게 크고, 클라이언트 표정은 늘 읽히는 듯 안 읽히는 듯했지만, 첫 장이 뜨자마자 지안 머릿속은 이상할 만큼 맑아졌다. 어제까지 갈아엎은 문장들이 자기 자리를 찾았고, 재하는 완벽하게 화면을 넘겼고, 태준은 질문이 들어오기 전에 필요한 자료를 이미 옆으로 밀어 놓았다."저희가 이번 제안에서 먼저 잡은 건 기능이 아니라, 기능이 바꾸는 하루의 순서였습니다."말이 떨어지자 화면이 넘어갔다. 생활 장면, 베네핏, 다시 생활 장면. PT룸 안 공기가 서서히 자기들 쪽으로 기우는 게 느껴졌다. 클라이언트 실무자가 메모를 시작했고, 임원 하나는 두 번째 장부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지안은 그 작은 반응들을 놓치지 않았다. 평소처럼 읽었고, 평소보다 더 빨리 맞췄다.중간 질문도 들어왔다."혜택이 직접적이긴 한데, 너무 감성적으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에요?"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지안이 입을 열기 전에 태준이 근거 슬라이드를 띄웠고, 재하는 숫자와 장면이 같이 보이게 구성을 바꿔 놨다. 지안은 그 위에 필요한 말만 얹었다."그래서 저희가 기능 설명을 뒤로 뺀 게 아니라, 체감이 먼저 오게 순서를 바꿨습니다. 숫자는 믿게 만들고, 장면은 기억하게 만들거든요."클라이언트 쪽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끄덕여졌다.그 순간 지안은 알았다. 오늘은 된다.마지막 장까지 가는 동안 크게 흔들리는 지점은 없었다.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말이 더 가벼워졌다. 억지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아니라, 이미 같은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한테 필요한 확인만 해 주는 쪽에 가까웠다. PT가 끝나고 고개 숙여 인사할 때쯤엔, 피곤보다 먼저 아드레날린이 올라와 있었다.회의실 문이 닫히자마자 팀장이 낮게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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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화 - 키스

그 손이 닿은 자리를내려다봤다.그리고 이번엔 바로 빼지 않았다.커피 주문대 쪽에선 아직 팀장 목소리가 들렸고, 막내 둘은 무슨 메뉴가 빨리 나오는지로 실랑이를 하는 등 다들 가까운데, 이상하게 그 손 하나만 더 또렷했다."윤재하 씨."지안이 낮게 불렀다."네.""지금 놓아야 맞는 거 알죠."재하는 바로 손을 빼지 않았다. 대신 시선만 지안 얼굴에 잠깐 걸쳤다."알아요.""알면.""근데 선배님도 안 피하시잖아요."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지안은 바로 대꾸를 못 했다. 멀리서 서연이 다시 불렀다."오지안, 빨리 와. 네 카드 뺏긴다."지안은 그쪽으로 대답해야 했다. '가!' 한마디면 되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재하가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잠깐만요."말과 동시에 손이 당겨졌다. 끌려간다고 하기엔 약하고, 그렇다고 실수로 넘어갈 수는 없는 힘. 지안은 결국 한 걸음 움직였다. 커피 주문대 옆 복도, 창고 문을 지나, 비상계단 문 앞까지. 문 하나만 열면 바깥 소음이 반쯤 잘리는 위치였다."여기서 왜..."지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하가 문을 열었다. 비상계단 안은 형광등이 밝았고, 사람 없는 건물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돌았다. 문이 닫히자 바깥 소음이 한 겹 멀어졌다. 완전히 안 들리는 건 아니라서, 오히려 더 현실 같았다.지안은 손목부터 빼냈다."미쳤어요?""네."".....""선배님도 여기 있잖아요."지안은 헛웃음을 냈다."나까지 같이 묶지 마요.""지금 안 묶이게 생겼어요?"말이 끝나자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비상계단 불빛은 환했고, 둘 사이 거리는 아까 커피 주문대보다 훨씬 가까웠다. 도망칠 수는 있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되니까. 사람들 있는 쪽으로 돌아가면, 이건 그냥 순간적인 실수로 정리될 수도 있었다.그런데 지안은 가만히 있었다.문 너머로 웃음소리가 한번 크게 번졌다가 멀어졌다. 온갖 소음들이 다 들리는데도 이 안만 너무 조용했다. 방금 전까지 같은 팀으로 웃고 있던 사람들이 바로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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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 비상계단 이후

"..나 지금 멀쩡한 척 못 하겠거든요."그 말을 해 놓고도 더 무서워진 쪽은 자기였다.비상계단 문을 닫고 복도 쪽으로 나오는 몇 걸음이 이상하게 길었다. 입술이 아직 뜨거웠고, 손끝엔 셔츠 주름 잡히던 감각이 남아 있었고, 숨은 생각보다 빨리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들 있는 쪽으로 돌아가면 원래대로 돌아와야 했다. 웃고, 커피를 받고, 본선 갔다고 떠들고, 아까까지의 일을 잠깐 미끄러진 실수처럼 접어 두면 된다.그런데 문 하나 열고 나왔다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서연이 제일 먼저 지안을 봤다."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전화."대답은 너무 빨랐고, 그만큼 수상했을 거다. 서연 눈이 잠깐 얼굴을 훑는게 느껴졌다. 립이 조금 번졌는지까지 봤는지는 모르겠는데, 지안은 얼른 컵부터 받았다. 차가운 플라스틱이 손에 닿자 그제야 현실감이 아주 조금 돌아왔다."아이스 맞지?" 서연이 물었다."응.""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더워서.""지금?"서연은 더 캐지 않았다. 대신 입꼬리만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 저 표정은 나중에 보자는 뜻이었다.태준은 그때 막 결제를 끝내고 돌아서는 중이었다."오대리, 괜찮으세요?""네?""피곤해 보이셔서요. 잠깐 어지러운 줄 알았습니다."사람 좋은 걱정이라서 더 찔렸다. 지안은 빨대를 꽂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니에요. 그냥 좀 졸려서.""그럼 회사 들어가서 오늘은 일찍 마무리하시죠."그 말이 끝날 즈음 재하도 뒤에서 나왔다. 얼굴이 멀쩡했는데, 너무 멀쩡해서 더 짜증이 났다. 방금 사람을 그렇게 흔들어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커피를 받아 드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다 왔으면 갑시다."팀장이 먼저 걸었고, 다들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지안은 일부러 제일 바깥쪽으로 걸었다. 재하랑 어깨라도 스칠 거리를 안 만들려고. 정작 스치지 않아도 아까 감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회사로 돌아온 뒤에도 분위기는 쉽게 안 가라앉았다. 본선 진출 공지가 단체방에 한 번 더 올라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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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화 - 없던 일로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다들 기운이 눈에 띄게 빠졌다. 팀장은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했고, 막내 둘도 오늘은 진짜 집에서 자고 싶다며 서둘렀다.태준이 노트북을 덮기 전에 지안 자리 쪽으로 한 번 왔다."오대리.""네.""오늘은 진짜 여기까지만 하세요.""그러려고요.""진짜요?""지금 사람을 뭘로 보시는 거예요."태준이 웃었다."본선 가고도 PPT 열 사람으로요.""그건 맞는데요.""그러니까 열지 마세요."짧은 농담은 편했다. 태준은 늘 그렇듯 선을 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지안은 그 편안함마저 조금 멀게 느껴졌다. 안전한 사람 옆에서조차 머릿속은 자꾸 위험한 쪽으로만 가 있었다."팀장님도요.""전 안 엽니다.""거짓말.""오늘은 진짜 안 열어요."태준은 그 정도 말을 남기고 먼저 나갔다. 서연도 짐을 챙기다 말고 지안한테 검지를 들이밀었다."너.""왜?""오늘 집 가서 괜히 메신저 열지 마."지안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메신저를 왜?""그냥." 서연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촉이 그래."그 말만 남기고 서연도 떠났다. 결국 사무실이 조금 비자, 공기까지 묘하게 넓어졌다.물이라도 한 잔 더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탕비실로 갔다. 냉수 버튼을 누르는 동안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는데,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선배님."지안은 종이컵을 채운 뒤에야 돌아봤다."또 왜요."재하가 탕비실 문 쪽에 기대 섰다. 오늘 내내 그랬듯 웃음은 거의 없었다."아까 하신 말."지안은 모르는 척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너무 티 났다."무슨 말.""멀쩡한 척 못 하시겠다는거."컵 가장자리가 손안에서 미세하게 눌렸다."그건..." 지안이 시선을 잠깐 내렸다가 들었다. "그 상황이 좀.""상황 탓으로 돌리실 거예요?"지안은 바로 대답 못 했다. 돌리려면 돌릴 수는 있었다. PT 끝난 날이라 들떴고, 다들 텐션이 높았고, 순간적으로 선이 흐려졌다고. 근데 그 말 중에 진짜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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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 수정본 메일

이번엔 아무 일 없던 척은 안 된다.금요일 밤 집에 들어간 뒤부터 월요일 출근 전까지, 지안은 휴대폰을 뒤집어 놨다가 다시 확인하는 짓만 몇 번을 했다. 서연이 "오늘 집 가서 괜히 메신저 열지 마"라고 한 말이 자꾸 생각나서 더 그랬다. 열지 말라면 더 열고 싶어지는 법인데, 정작 메신저는 의외로 조용했다.윤재하한테도, 자신한테도. 오히려 짜증 났다.침대에 누우면 비상계단 형광등부터 떠올랐고, 양치하다 말고 거울을 보면 아랫입술 안쪽이 다시 따가워지는 것 같았다. 없던 일로 덮을 생각은 못 했다. 그렇다고 먼저 말을 꺼낼 용기도 없었다. 결국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회사에서는 선을 지킨다.월요일 아침, 결심은 금방 흔들렸다."선배님, 주말 동안 정리한 수정본 메일로 보내 놨습니다."재하 목소리는 너무 멀쩡했다. 밝지도 않고, 의미심장하지도 않고, 평소보다 조금 더 단정한 업무 톤. 지안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봤어요. 오전 회의 전에 한 번만 더 맞춰요.""네."끝이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금요일 탕비실에서 사람 숨 막히게 만들어 놓고, 월요일 첫마디가 수정본 메일이라니. 지안은 받은편지함을 열어 재하 메일을 다시 눌렀다. 파일명은 깔끔했고, 수정 메모는 정확했고, 필요한 체크 항목엔 이미 표시가 다 돼 있었다. 손 틈 하나 안 남기는 사람처럼."오지안."옆자리에서 서연이 낮게 불렀다."왜.""너 오늘 아침부터 '네', '봤어요', '맞춰요'밖에 안 했어.""월요일이라서.""아니. 월요일치고 너무 또박또박이거든."지안은 대꾸 대신 마우스만 움직였다. 그러자 서연 시선이 자연스럽게 재하 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윤재하 씨도 이상해.""뭐가.""너무 얌전해."그 말이 또 정확했다. 재하는 오전 내내 진짜 필요한 말만 했다. 수정안 띄워 달라면 띄우고, 수치 넣어 달라면 넣고, 지안이 체크한 부분은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넘겨 놨다. 평소 같으면 그 사이사이에 한마디쯤 섞였을 텐데, 오늘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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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 속도만 느려져

"이 장은 사진 바꿔야 해요.""알겠습니다."걸린 건 그런 대화 사이사이에 자꾸 생기는 짧은 침묵이었다. 둘 다 화면을 보고 있는데도, 금요일 비상계단 공기가 아주 얇게 끼어드는 순간들. 마우스를 넘겨받을 때 손등이 스칠 듯 말 듯한 거리, 동시에 컵에 손 뻗었다가 둘 다 멈추는 타이밍, 지안이 문장을 지우기도 전에 재하가 왜 지우는지 이미 안다는 얼굴.못 본 척하려면 이런 것부터 가능해야 했다.그런데 지안은 오후 세 시쯤 이미 포기했다. 적어도 자기 몸은 포기한 상태였다. 재하가 고개를 숙여 화면을 볼 때마다 어깨선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낮게 "이건 어때요" 묻는 목소리마다 탕비실 냉장고 소리가 덮쳐 왔다. 이쯤이면 일에 집중 못 하는 쪽이 더 문제였다.커피를 새로 뽑아 돌아오는데, 태준이 탕비실 앞에서 마주쳤다. 손엔 종이컵 두 개가 들려 있었는데, 지안을 보자 하나를 그냥 자기 쪽으로만 옮겼다."오대리.""네.""오후에 잠깐 커피 드시면서 얘기할까 했는데, 안 그러는 게 낫겠네요."지안은 멈칫했다."왜요?"태준이 곧바로 웃었다. 무게 없는 웃음이었다."이번엔 제가 끼면 속도만 느려질 것 같아서요."그 말이 끝났다. 설명도, 떠보는 질문도 없었다. 지안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태준은 종이컵을 한 손으로 고쳐 잡았다."최종 발표 끝나고 나면 그때 한 번 사 주세요.""팀장님.""부담 주는 말 아니에요." 태준이 먼저 잘랐다. "잘 맞는 파트너가 생기면, 굳이 옆에 안 끼는 것도 일 잘하는 거니까."순간 목이 좀 막혔다. 태준은 끝까지 좋은 사람인 쪽을 택했다. 그래서 더 어정쩡했다. 안전한 사람은 늘 안전하게 물러나는데, 정작 자기 마음은 그쪽으로 한 발도 못 움직이고 있어서."감사합니다."결국 나온 말은 그것뿐이었다."발표나 잡죠."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갔다. 뒤돌아보지 않는 걸 보면서, 지안은 왠지 더 선명해진 걸 느꼈다. 착각이면 이렇게까지 주변 공기까지 달라질 리 없었다.퇴근 무렵엔 사무실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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