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101 - Chapter 110

250 Chapters

제101화

허서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트러진 감정을 겨우 다잡고 몸을 돌려 진성호를 바라보며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한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성호, 우리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해 보자.”진성호는 코웃음을 치며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갔다. 입가에는 싸늘하고 음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내가 너랑 좋게 이야기하려고 할 땐, 넌 거들떠보지도 않고 차갑기만 했지. 난 이제 얘기할 생각 없는데, 지금 나랑 친한 척하려고?”허서령은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뒤로 물러났다.거실은 그리 넓지 않았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진 그녀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진성호, 여긴 법치국가야. 함부로 굴지 마.”진성호는 음산한 눈빛으로 이를 악문 채 그녀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네 엄마처럼 체면을 그렇게 중시하는 늙은 여자가 자기 딸이 나한테 당한 데다 영상까지 찍혔다는 걸 알게 되면 분명 널 나랑 결혼시키려고 할 거야.”허서령의 심장은 세차게 요동쳤다. 그녀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채 계속 그를 달래려 했다.“진성호, 강간죄는 3년 이상 유기징역형이야. 넌 한창 젊은 나이잖아. 순간의 충동 때문에 인생을 망치지 마. 네 엄마도 생각해 봐. 아들이 감옥에 가면 얼마나 불쌍하겠어?”진성호는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허서령, 난 오늘 밤 반드시 널 가질 거야. 네가 감히 신고라도 하면 네 가족 전부 죽여 버리고, 너랑 한 영상도 인터넷에 뿌려 버릴 거야. 내가 감옥에 간다 해도 너도 절대 편하게 살게 두진 않아.”이쯤 되자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허서령은 힘을 모아 있는 힘껏 진성호를 밀쳐내고 재빨리 몸을 돌려 주방으로 달려갔다.진성호는 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팔을 뻗어 허서령의 옷을 붙잡았다.마침 그녀의 목덜미 쪽 옷깃이 잡혔다.허서령은 단추를 잠그지 않은 검은색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가 힘주어 잡아당기자 겉옷이 순식간에 벗겨지고 얇은 흰색 긴 팔 셔츠만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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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매서운 채찍이 그녀의 팔과 손목을 연달아 후려쳤다.하얀 셔츠 위로 선홍빛 핏자국이 길게 번져 나갔다.그녀는 온몸이 떨릴 만큼 아팠지만 여전히 칼을 놓지 않았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찬 채 구조를 요청하는 외침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하지만 주방 창문은 닫혀 있었고, 깊은 밤이라 대부분의 사람은 잠들어 있었다. 게다가 고층 아파트였기에 목소리가 밖으로 퍼져 나가기도 어려웠다.설령 희미하게 들린다 한들, 자신만을 지키기에 바쁜 이 냉담한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밤중에 의롭게 나서서 남의 일에 개입하겠는가?점점 더 초조해진 진성호는 결국 채찍을 내던지고 옆에 있던 커다란 금속 냄비 뚜껑을 집어 든 채 허서령에게 달려들었다.허서령은 칼을 휘둘러 진성호를 찌르려 했지만 냄비 뚜껑에 가로막혔다.아프기도 하고 힘이 다 빠진 그녀는 그대로 진성호에게 제압당해 주방 바닥에 눌렸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에 처하면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그녀는 모든 것을 내던진 채 악을 쓰며 진성호와 칼을 두고 사투를 벌였다.오늘 이곳에서는 진성호가 죽든지, 아니면 자신이 죽든지 둘 중 하나였다.이 주방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가장 절망적인 순간, 문밖에서 갑작스러운 굉음이 들려왔다.쾅!진성호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며 허서령에게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뒷걸음쳐 주방 문가까지 물러섰다.허서령은 여전히 칼자루를 꽉 움켜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약한 몸은 고통에 덜덜 떨리고 있었고, 눈물로 흐릿해진 시선은 주방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고작 3초쯤 지났을 뿐인데, 그 굉음이 또다시 들려왔다.쾅!조금 전보다 더 크고, 더 무겁고, 더 난폭했다.당황한 진성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분명 어머니는 아니야. 이렇게 늦은 밤에 누가 우리 집 현관문을 부순단 말이지?’이렇게 빨리 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지강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밖으로 뛰어나가 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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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깊은 밤, 그들은 병원에 갔고, 경찰에도 신고했다.경찰은 병원에서 그녀의 진술을 받은 뒤 곧바로 진성호에 대한 체포 지시를 내렸다.그녀의 몸에는 상처가 네 군데 있었다.워낙 연약한 등 피부의 두 줄의 상처가 비교적 깊었다.팔과 손목의 상처는 짧고 얕아 상대적으로 심하지는 않았다.외상이었기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었다.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른 뒤 소염 주사를 맞고, 의사가 처방한 약을 받아 병원을 나섰다.이번이 진성호에게 두 번째로 해를 입은 것이었다.이번만큼은 진성호가 죽지 않더라도 반드시 감옥에 들어가 죗값을 치러야 했다.다만 경찰이 순조롭게 그를 붙잡을 수 있을지, 또 어떤 죄명으로 기소해야 그를 감옥 깊숙이 처넣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허서령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운전 중인 지강산을 바라보았다.병원에서도, 지금도 그는 줄곧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턱선은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 있었고, 온몸에는 무거운 죄책감이 응어리진 듯했다.밤이 깊어지자 기온은 더 떨어졌다.날씨는 몹시 춥고 매서웠다.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난방이 켜져 있었고 조명이 부드럽게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허서령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기울인 채 베란다 밖을 바라보았다.지강산은 밖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냉엄하고 엄숙했다. 누구와 통화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전화를 끊은 뒤 그는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넓고 듬직한 그의 뒷모습에서는 자책으로 인한 무력감이 느껴졌다.마치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허서령의 마음속 공포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며, 오늘 밤 겪은 일에 대한 감정도 서서히 정리되어 갔다.시간은 조금씩 흘렀지만 지강산은 들어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이렇게 추운 날씨에 밖에 서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 허서령은 그를 안으로 들이고 싶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리문 쪽으로 걸어갔다.손을 뻗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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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고마워요.”허서령은 더는 사양하지 않고 진심으로 감사했다.지강산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이미 새벽이었다.“늦었어. 가서 자.”“네.”허서령이 조용히 대답했다.지강산은 부드럽게 당부했다.“기억해. 처음 사흘 동안은 상처에 물 닿으면 안 돼. 항생제 연고는 하루 두 번, 젤은 하루 세 번 발라야 하고,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야 해.”“알겠어요.”“하는 일은 잠시 미뤄 두고 이틀 정도 쉬어. 집에서는 헐렁한 면 소재 옷 입고. 등에 있는 상처는 네가 약 바르기 힘들 테니까 내가 시간 내서 발라 줄게. 며칠 지나 딱지가 생기면 절대 뜯지 말고 긁지도 마. 너무 가려우면 가려움 완화 연고를 발라.”간호사가 했던 말을 그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사람들 앞에서는 늘 독립적이고 단정한 모습이던 허서령도, 지강산의 앞에만 서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어른스러운 이미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그의 눈에 그녀는 언제나 보호받아야 할 어린 소녀 같았다.그리고 그는 5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모든 사소한 일까지 마음속에 넣어 두고 하나하나 챙겨 주었다. 너무 세심하게 돌봐 주다 보니, 그녀는 그의 곁에서는 생활을 스스로 꾸려나가는 기본적인 능력조차 잃어버릴 정도였다.허서령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었다.극진한 보살핌으로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아버지는 성격이 무뚝뚝했고, 늘 바깥일로 집을 비우곤 했다. 말없이 감추는 게 아버지 사랑이라 믿었던 시대의 사람이라 관심과 보살핌조차 다소 멀게 느껴졌다.지강산은 그녀가 평생 경험해 본 유일한 따뜻한 빛이었다.코끝이 시큰해졌다.가슴 한구석에서는 씁쓸한 감정이 피어올랐고, 목구멍이 메어 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더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리는 순간 시야가 갑자기 흐려졌다.방으로 향할수록 눈물은 더욱 말을 듣지 않고 눈가를 맴돌며 자꾸만 차올랐다.몸에 난 상처는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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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지강산은 잠시 멈칫하다가 시선이 허서령의 등으로 향했다. 그는 뜨거운 숨을 가볍게 내쉬며 잠옷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어젯밤에는 간호사가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 주었다.그가 그녀의 등에 난 상처를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는 숨이 턱 막혔고, 가슴 한가운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상처가 아주 깊거나 흉측한 것은 아니었지만, 피부는 붉게 부어오르고 벗겨져 있었으며, 희미하게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두 줄의 붉은 덩굴이 그녀의 희고 매끈한 등에 기어오른 것처럼 보여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새하얀 눈밭을 짓밟고 지나간 선명한 붉은 바퀴 자국 두 줄을 같아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원래도 풍만한 몸매였는데 매트리스에 눌리면서 허리 옆으로 생긴 틈 사이로 아찔한 살결이 드러났다.그는 달아오른 시선을 황급히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천천히 이불을 끌어와 그녀의 허리 옆부분에 끼워 넣으며 유혹적으로 드러난 풍경을 조금 가려 주었다.허서령은 등이 서늘하게 식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도 부끄럽고 긴장되어 있던 마음은 그의 그런 행동 이후 더욱 민망해졌다.그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연인 사이였었다.때로는 눈빛 하나, 행동 하나만으로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지강산이 아무리 신사적이라 해도 결국 남자였다.허서령은 등 뒤 피부에 서늘한 감촉이 닿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손끝에는 연고가 묻어 있었고, 상처 위를 조심스럽게 문지를 때마다 피부에 잔잔한 전율이 번졌다.상처는 조금 따가웠고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그녀는 숨을 죽인 채 뻣뻣해진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부끄러운 욕심 하나를 품게 되었다.지강산의 이 짧고 따뜻한 보살핌을 더 오래 누리고 싶었다.마치 소중하게 사랑받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착각에 그녀는 한없이 약해졌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고요한 공기에는 묘한 열기가 감돌았다. 점점 거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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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화면을 켜자 문밖에 서 있는 오정화의 모습이 나타났다.허서령은 그대로 굳어 버린 채 평온했던 마음이 다시 답답하고 불안해졌다. 그녀는 한참 동안 문을 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지강산도 그녀의 어머니 문제만큼은 해결해 줄 수 없었다.돈을 받지 못하면 어머니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동생의 결혼식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으니 또 돈을 달라고 온 것일 터였다.“서령아.”문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이어졌다.“집에 있니?”잠깐 피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피할 수는 없었다. 만나 주지 않으면 언제까지 소란을 피울지 알 수 없었다.허서령은 결국 문을 열었다.“서령아...”오정화는 눈이 접히도록 미소를 지으며 평소보다 한결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다.허서령은 차가운 표정으로 담담하게 물었다.“엄마, 어떻게 들어왔어요?”“아래에서 한참 기다렸는데 네가 안 내려오더라. 그래서 다른 사람 뒤따라 들어왔지.”“무슨 일인데요?”“오늘 동지잖니. 팥죽을 끓였는데 네 것도 좀 가져왔어.”오정화는 보온 도시락을 내밀었다. 눈빛에는 드물게 자애로운 기색이 담겨 있었다.순간 멍해진 허서령은 받지 않고 말했다.“저 짠맛 나는 팥죽 안 좋아해요.”그녀의 남동생은 짭짤한 팥죽을 좋아했다.동생이 팥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매년 동지가 되면 각종 고기를 넣은 짠 팥죽을 끓였다.맛도 어딘가 이상했다.“달콤한 거야.”오정화는 억지로 도시락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땅콩도 좀 넣었어. 네가 좋아하잖아.”허서령의 손이 미세하게 굳었다.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이 땅콩이 들어간 팥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다만 매년 동지가 되어도 자신만을 위해 따로 달콤한 팥죽을 끓여 줄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지금 이 순간 어머니가 맞추는 비위는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다시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깊은 기억 속 상처를 헤집어 놓은 듯 오래된 상처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았다.그녀는 답답한 숨을 길게 내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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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오정화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그게... 엄마 차단 좀 풀어 주면 안 되겠니? 가끔 너한테 연락하려고 해도 연락이 안 돼서 그래.”허서령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거대한 손이 심장을 꽉 움켜쥔 것 같았다. 눈가도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이 세상에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식은 없다.다만 그 사랑은 실망 속에서 조금씩 닳아 없어질 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깊이 눌려 있었다.“서령아, 엄마가 약속할게. 앞으로는 절대 네가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 않을 거야. 네 동생 취직시켜 달라거나, 차 사 달라거나, 집 사 달라거나, 사업 자금 대 달라고도 안 할게. 네가 돕고 싶으면 돕고, 안 돕고 싶으면 안 도와도 괜찮아.”허서령은 도시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고 코끝이 시큰해졌다.“엄마, 강산 씨가 얼마 줬어요?”“없어.”오정화는 고개를 저었다.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걔는 나한테 한 푼도 안 줬어.”“그럼 협박했어요?”“그것도 아니야.”오정화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감탄이 담긴 미소였다.“사람이 참 괜찮더라. 예의도 바르고, 잘생기기도 했고. 정말 좋은 남자야.”허서령은 순간 어리둥절했다.그때 오정화가 갑자기 뭔가 떠올린 듯 눈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낮췄다.“아, 맞다. 아까 아래에서 들었는데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그러더라. 진성호가 경찰에 잡혀갔다던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역시 네 눈이 정확했어. 넌 진작부터 걔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봤잖니. 엄마는 사람을 잘못 봤어. 괜찮고 성실한 사람인 줄 알았지 뭐야.”어젯밤에 체포됐는데 오늘 아침 벌써 소문이 퍼졌다.역시 아파트 정보망을 책임지는 아주머니들의 정보력은 대단했다.“알겠어요. 먼저 가 보세요.”허서령은 왠지 기분이 가라앉았다.오정화가 말했다.“엄마 차단 푸는 거 잊지 말고.”허서령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문밖에서 오정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서령아, 네 동생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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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그렇다면 굳이 공평한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고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어쩌면 어머니는 그저 배운 것이 적고, 생각의 폭이 좁으며,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성격상의 결함일 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지도 모른다.허서령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어머니를 차단 목록에서 해제했다.12시 40분, 지강산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보온 도시락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그의 시선은 소파로 향했다. 허서령은 소파에 옆으로 누운 채 다리를 살짝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지강산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머금고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도시락을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그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그저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잠든 그녀의 예쁜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그의 시선은 깊고 따뜻했다.‘머리카락이 참 길고 검네. 부드러워 보이고 향기도 좋을 것 같아. 얼굴은 왜 이렇게 예쁠까? 왜 피부는 이렇게 희고 고울까? 5년 전처럼 여전히 부드럽고 말랑하잖아.’잠도 참 깊게 자고 있었다.‘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 꿈속에 내가 있을까?’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그는 한 시간을 앉아 있었다. 한 시간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고, 한 시간 동안 마음이 어지러웠다.그는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방에서 연고를 가져온 그는 허서령 곁에 쪼그려 앉아 어깨를 살짝 흔들며 조용히 불렀다.“허서령, 일어나.”“으응?”허서령은 몽롱하게 눈을 떴다. 눈앞에 지강산의 잘생긴 얼굴이 보이자 달콤한 미소가 번졌다.“왔어요?”“응. 약 좀 발라 주고 바로 출근해야 해. 밥은 도시락에 있으니까 배고프면 먹어.”“네...”허서령은 나지막이 대답한 뒤 몸을 돌려 소파 위에 엎드렸다. 몸 위에 덮인 담요가 눌렸다.그녀는 담요를 살짝 당기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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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윤성도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지강산이랑 백시욱 퇴근하면 같이 출발하자.”허서령은 잠시 망설였다.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 직접 찾아와 함께 불꽃놀이를 보자고 하는데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어차피 같은 불꽃놀이이니 세 사람이 더 있으면 오히려 더 즐거울 수도 있었다.“좋아.”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곧바로 승낙했다.“옷 갈아입고 올게.”허서령은 방으로 들어가 가볍게 화장을 하고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왔다.머리를 묶으며 거실로 걸어 나온 그녀는 심인혜와 윤성의 앞에 섰다.“그 사람들은 몇 시에 와?”심인혜는 휴대폰을 확인했다.“6시 반쯤 온대. 곧 도착할 거야.”그때 윤성의 시선이 허서령의 손목에 멈췄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매느라 들어 올린 손을 붙잡아 아래로 내리며 물었다.“손목이 왜 이래?”허서령은 급히 긴소매를 끌어내려 상처를 가리려 했다.두 친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니야.”“이 정도면 꽤 심해 보이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야?”윤성은 그녀의 손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보여 줘.”“진짜 아무것도 아니야.”심인혜도 궁금해져 소파에서 몸을 내밀었다.“뭔데?”윤성은 힘이 더 셌다.그는 그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러자 팔뚝에서 손목까지 비스듬히 내려간 채찍 자국이 드러났다.윤성은 화가 나기도 하고 또 마음 아파 물었다.“누가 이런 거야?”“실수로 부딪힌 거야. 괜찮아.”바로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지강산과 백시욱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거실에 있던 세 사람은 소리를 듣고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지강산은 현관 신발장 앞에서 그대로 굳어 버린 채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는 윤성과 허서령을 바라보았다.차갑고 서늘한 시선이 윤성이 허서령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모습에 멈춰 섰다.허서령은 황급히 손을 빼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진짜 아무 일 아니야.”윤성은 더는 허서령의 상처를 따질 겨를이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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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허서령은 윤성에게 어깨를 붙잡힌 채 집 밖으로 나왔지만 가슴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답답하고 무거웠다. 걸음조차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문이 닫히려는 순간, 그녀는 재빨리 열림 버튼을 누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세 사람은 모두 멍해졌다.윤성이 눈살을 찌푸렸다.“서령아, 뭐 하는 거야?”“너희끼리 가. 나 아직 할 일이 있어.”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히려 하자 윤성은 손으로 문을 막았다.잘생긴 얼굴이 어둡게 굳어 있었다.“무슨 일이 있는데? 허서령, 지금 네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다는 거 알아?”그 말의 의미는 백시욱과 심인혜도 이해했다.지강산과 허서령은 4년이나 연애했고, 지금은 다시 함께 살고 있다. 옛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허서령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못했다.지강산은 마치 중독성 강한 독 같았다. 그녀는 4년 동안 그 독에 깊이 빠져 있었다.억지로 끊어 내고 독의 근원에서 멀어졌을 때, 그 과정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거의 삶이 무너질 정도로 괴로워했고, 자신은 이제 완전히 끊어 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그 독은 다시 그녀의 눈앞에 나타나 매 순간 그녀의 마음을 유혹하고, 영혼을 흔들었다.이걸 어떻게 이성만으로 통제할 수 있겠는가?결국 죽게 된다는 걸 알아도 그녀는 다시 중독될 것이고, 다시 사랑하고 싶어질 것이다.이것은 벗어날 수 없는 늪이었고, 약물 중독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었다.허서령은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재밌게 놀다 와.”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집으로 뛰어갔다.“허서령...”윤성이 따라 나가려 하자, 심인혜가 재빨리 그의 팔을 붙잡았다.“그만 불러. 그냥 놔둬.”윤성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네가 못 봐서 그래. 예전에 허서령이 지강산이랑 헤어졌을 때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몇 달 내내 울었어. 밥 먹다가도 울고, 자다가도 울고, 길 걷다가도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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