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70

195 فصول

#160. 빌런이 내민 손을 잡을까?

강소희와의 예기치 못한 마주함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을 가르는 서늘한 벼락과도 같았다.“강소희 씨, 참 뜬금없으시네요.”완벽하게 공들인 풀 메이크업에, 당장이라도 화보를 찍어도 될 만큼 화려한 초록빛 시폰 원피스를 입고 어깨에는 숄까지 멋스럽게 걸친 모습이었다.그녀는 주말 내내 포털 사이트를 도배한 내 몰락을 지켜보며 남몰래 은밀한 희열을 느꼈을 터였다.분명 차준호 대표를 보러 사옥에 들렀다가, 무너져 가는 나를 비웃고 놀리려 찾아왔을 것이라 단정 지었다.“비서님하고 단둘이 나눌 볼일이 좀 있어서요.”“저는 지금 아주 바쁩니다.”나는 이제 대표실 비서가 아니었기에, 강소희의 투정을 친절하게 받아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온 회사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매장당하기 직전인 마당에, 위선적인 가면 따위를 쓸 여유조차 없었으니 이판사판이었다.“바쁜 것으로 치면 내가 비서님보다 훨씬 더 바쁠 텐데요?”그렇게 바쁜 여자가 도대체 왜 남의 일터에 와서 기웃거리느냐는 반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 이제 비서 아니라는 냉정한 말이 입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시간 절약을 위해 결론만 간단히 말하세요.”“준호 보러 온 게 아니라, 비서님한테 무기를 주려고 왔답니다.”설마 김희주랑 싸울 때 필요한 그 무엇이란 말인 걸까.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미소는 조각처럼 완벽했지만, 그 눈빛 속에는 스포트라이트 뒤편의 지독한 피로함이 짙게 스며 있었다.강소희에게 받을 무기 따위는 사실 별 관심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 힐끔대는 직원들 시선은 신경 쓰였다. “사실 그 무기도 별 관심 없지만, 일단 카페테리아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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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최상의 포식자가 되어서라도

이런, 망할. 김희주는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나를 완전히 매장하기 위해 강소희에게 보낸 이 문자는 내게 강력한 반격의 무기이자, 그녀의 추악한 범죄를 입증할 대단한 증거가 되어 주었다.나는 강소희의 휴대전화 액정에 뜬 문자를 내 휴대전화 카메라로 신속하게 찍어 두었다.“강소희 씨야말로 뭐 약점이라도 잡혔어요?”그녀로서도 이 문자가 세상에 공개되면 리스크가 상당할 터였다. 내 질문에 강소희는 눈을 얄밉게 흘기며 다시 병 두유를 홀짝였다.“김희주는 내가 세종동 서쪽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언론에 까발린다고 그동안 협박을 일삼았거든. 자기 아들이랑은 절대 놀지 말라고 윽박지르면서.”역시 김희주라면 그러고도 남을 여자였다.누군가의 불우하고 가난했던 과거를 약점 삼아 무려 20년 동안이나 부려 먹다니.나는 이를 악물고 찍어둔 문자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강소희 씨,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세종동 출신이 뭐 어때서요? 연기 잘하고, 예쁘잖아요. 연예인이 그거면 됐지.”그러자 강소희는 내 뜻밖의 칭찬에 머쓱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큼큼 헛기침을 뱉어냈다.시선을 피하며 눈동자를 천장으로 향하더니, 아랫입술을 떨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성형한 것도 그렇고, 금수저에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전부 거짓된 거니까······. 밝혀지면 이미지 추락은 한순간이라······. 토끼 비서님도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거야. 그 여자 괜히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상처만 입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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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비밀, 이용 당하는 사이잖아

차준호라는 남자의 진심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그는 벼랑에 매달린 나를 끌어 올려줄 가장 튼튼하고 견고한 밧줄임이 분명했다.김희주가 이렇게 도를 넘어 저열하게 나오는 이상, 나 역시 차준호라는 가장 확실한 카드를 쥐고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지금 당장은 그를 밀어내기보다는 적당히 달래야 할 때였다.[대표님, 대신 며칠 뒤에는 신세 좀 질게요.]조만간 그의 호텔로 들어가겠다는 뜻이었다.차진철 회장에게 서늘한 경고를 받긴 했으나, 내가 결혼시켜 달라고 떼를 쓴 것도 아니니 당분간은 이기적으로 굴기로 했다.[설마 그 껄끄러운 사람들하고 계속 이렇게 지낼 건가?]그래도 내가 직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에 마음을 써주는 걸까.[저야 어차피 이미지 바닥을 찍었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일만 하면 되니까 의외로 견딜 만해요.][내가 품었던 여자가 고생하는 건 싫은데. 오늘은 여기까지. 간이 침대 보내 줄 테니까 참고해.]그의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투에서 예전과 다른 다정함이 묻어난 동시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나는 대체 어떤 부분에서 이토록 놀란 걸까.거침없는 표현? 아니면 다정한 배려?어느 것 하나 예상치 못한 의외의 연속이었기에, 나는 복잡한 마음을 눌러 담으며 다시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그리고 한 시간이 더 흘렀다.차준호의 사내 메신저 상태 창이 꺼져 있는 것을 보니, 그도 이제는 퇴근한 모양이었다.나도 참 어쩔 수 없는 여자였다. 차준호에게 늘 투덜대면서도, 나를 챙겨주는 그의 다정함이 내심 싫지 않아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그렇게 묵묵히 업무를 이어가던 그때.갑자기 개발실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정신 바짝 차리자며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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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깊은 밤, 애달픈 아이러니

택시가 강남역 한복판을 지나가자, 도로변 곳곳에 세나가 속한 걸그룹 ‘에스텔라’의 대형 광고판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걸그룹 센터가 남자 톱스타의 프라이빗 숙소를 찾는 일은 막대한 스캔들 리스크를 동반했지만, 지금의 세나는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할 만큼 절박했다.‘오늘 난 오빠의 여자가 될 예정이야.’드디어 도국이 자신과 밤을 함께 보내주겠다는 뜻 같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몽글몽글한 설렘이 차올랐다. 도국에게 전달할 선물과 함께, 백팩 안에는 속옷과 화장품, 그리고 다음 날 갈아입을 여분의 티셔츠까지 세심하게 챙겨둔 상태였다.건물 외벽과 버스 정류장 곳곳에서 다시금 도국의 근사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하필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형 스캔들이 터진 데다, 국민적 악녀로 낙인찍힌 신하늘과 엮여버렸으니.오늘 이 만남을 계기로, 어쩌면 자신과 도국 사이의 스캔들이 다시 불거지면서 신하늘의 사건이 자연스럽게 묻히고 상쇄될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섰다.어차피 신 비서는 차준호 대표와 연인 관계일 테고, 도국은 그저 신 비서를 혼자 짝사랑하는 것뿐일 텐데.참으로 애달프고도 씁쓸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천하의 차준호는 이미 신하늘에게 깊이 빠져있는 듯했다. 멤버들 사이에 감도는 소문에 따르면, 최근 차준호가 신 비서에게 더욱 적극적이고 거침없이 대시하고 있다고 했다.하긴, 차준호 정도의 거물이 단지 누군가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쫓아다닌다고 해서 선뜻 마음을 받아줄 위인이던가.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차갑고 철두철미한 이미지의 남자였으니 말이다.사실 세나는 차준호라는 사람이 몹시 무서웠다.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냉철한 데다, 범접할 수 없는 중압감을 풍기는 존재였으니까.그때 택시 라디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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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쉿! 그 입을 막아 버리고 싶게

세나의 손을 지그시 감싸 잡으며 도국이 낮게 입을 열었다.“이대로 가면 진짜 걷잡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릴 것 같아.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눈부시게 웃는 그의 미소 너머로 쓸쓸한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세나는 갑작스레 가슴이 차갑게 짓눌려 오며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그럼······ 우린 이제 끝인 건가요?”도국이 내민 상자 안을 내려다보며 세나는 직감했다. 오늘 밤 그와 함께 보내게 될 이 시간은 미래를 약속하는 밤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찾아가기 위한 마지막 인사라는 사실을.도국이 상자에서 꺼내 내민 것은 작은 열쇠 모양의 펜던트가 세공된 목걸이였다.목걸이를 직접 걸어주는 그의 손끝이 세나의 쇄골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과 도국의 체온이 동시에 피부에 닿자, 세나의 어깨가 가늘게 떨려 왔다.“네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마음껏 나아가도록, 내가 계속 응원할게.”고개를 숙여 목걸이를 바라보았지만, 반짝이는 황금빛 광채는 도리어 차갑고 서럽게만 느껴졌다.마치 이별의 각인을 새겨 넣듯, 열쇠 펜던트만이 세나의 목 언저리에서 서늘하게 맴돌 뿐이었다.세나의 가슴속은 폭풍 전야의 바다처럼 거세게 요동쳤다.물론 알고 있었다. 감히 넘볼 수도 없는 까마득한 남자를 자신이 탐내고 있다는 것을.어린 시절 동경했고, 처음 가요계에 발을 들였을 때, 그가 제 이름을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었다.미래를 응원해 주며 대학에 합격하면 키스를 해주겠다는, 빈말이라도 약속을 건네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그리고 실제로 걸그룹으로 데뷔해 자신을 찾아와 달콤한 키스를 건넸을 때, 세나는 황홀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그런데 왜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는 걸까.더 가까워졌고 그에게 받은 다정함이 늘어났음에도, 세나는 더욱 그를 갈구하고 목말라하며 스스로 비참함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었다.“오빠! 우리 계약 아직 50일이나 남았잖아요!”그러자 도국은 세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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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꽃 피고 새 울면 움직이게 될 남자

'또 뭘 들고 와서 저렇게 날뛰는 건지.'자연스럽게 이아준의 차가운 시선이 이아정의 손에 들린 신경질적인 종이 뭉치로 향했다.“너 말 다 했어?! 내가 너 누나야! 그리고 네 앞길에 똥물 뿌릴 수 있는 사람도 나야! 이번에 XX당 보좌관으로 들어갔거든? 제발 내가 가는 길 좀 막지 마!”이아정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라리며 서슬 퍼렇게 악을 썼다. 이아준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을 보듯, 무심하고 단호한 눈빛으로 말을 받았다.“반대 상황도 생각해야지. 김희주한테 줄이라도 섰나 봐? 그쪽 당 보좌관 자리 하나 꿰찼다고 지금 유세 떠는 거야?”“신하늘이나 어떻게 좀 해봐! 외국으로 보내든가, 조용히 찌그러져 있게 하든가! 어차피 흙수저 밑바닥 출신 아이는 평생 거기서 굴러야지, 어디 감히 근본도 없이 위를 쳐다봐? 차준호는 내 남자야!”그 오만한 발언에 이아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L그룹이 제 손에 들어올 거라 꿈을 꾸던 이아정이었다. 자신이 세상에 나타난 순간 아버지 사망 이후 할아버지 이왕춘의 모든 애정과 기대가 이아준에게로 쏠렸다. 그런 연유로 그녀가 매번 이렇게 찾아와 속을 긁어대는 것도 이제는 이력이 난 터였다.늘 세상 꼭대기에 서 있다는 오만한 재벌가의 특권 의식과 선민사상에 이아준은 진절머리가 났고, 속에서 신물이 울컥 올라왔다.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말조심해. 하늘이 이름 한 번만 더 그 더러운 입에 올리면, 이아정 너는 물론이고 나지란 여사까지 저 밑바닥에 제대로 굴러다니게 만들어 줄 테니까.”지독하게 낮고 냉정한 경고에 이아정이 순간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눈치는 비상하게 빠른 편인지, 그녀는 목구멍 너머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너&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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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다 이겨도 한 여자에게만 지는 남자

한 주가 흘러 드디어 금요일을 맞이했다.이제 점심을 먹고 나면 설 명절을 지내기 위해 하나둘 조퇴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직원들이 생길 터였다.길고 길었던 일주일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나는 회사에서 계속 먹고 자며 내가 맡은 바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몰두했다. 최기범도 게임 데모 버전이 안정화에 접어들자 일본 출장길에 오른 상태였다. 다른 직원들 역시 번갈아 가며 야근을 감수했고, 다들 미친 듯이 일에만 매여 지냈다.“신하늘 씨, 퀵 배달입니다!”그리고 차준호가 보낸 쇼핑백 역시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배달되었다. 옷과 음식, 각종 생필품 등 세심하게 챙긴 물품들을 가득 보내주었지만, 정작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직접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간결한 메모나 메시지 몇 줄만 전해올 뿐이었다.내가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자, 게임 개발실 직원들도 조금씩 예전의 편안한 태도로 나를 대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배제했던 TF팀 회의에도 어제부터 공식적으로 합류했다. 무엇보다 업무 외에도 내가 잠을 줄여가며 데모 버전 게임을 플레이해 '만렙'을 찍은 덕분에, 유저 입장에서 낸 다양한 의견들이 유의미하게 반영된 공도 컸다.물론 언론은 여전히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마녀사냥은 여전했지만, 난 아무 대응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사내 직원들만큼은 나를 더 이상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점심시간에도 나정아와 한은숙이 다시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나를 불러내어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혹시 신 과장님, 사람이 아니라 AI 아니세요? 혼자서 몇 사람 몫을 하시는 거예요? 와······ 오늘도 호화 고급 도시락이네요! 집에는 대체 언제 갔다 오신 거예요?&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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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반격이 좀 빠르게 시작된 순간

세종동에 무슨 일이 터지다니.“신 과장님!”고요하던 23층 게임 개발실 사옥 내에 사색이 된 김강무 과장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헐레벌떡 달려오던 김강무는 내 곁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는 차준호를 발견하고는 굳어버린 얼굴로 얼른 고개를 숙였다.“아, 대표님도 계셨군요. 안녕하세요. 너무 급한 일이라 제가 그만 정신이 없었습니다.”“김 과장, 큰일이라니.”차준호가 묵직하게 묻자, 김강무는 숨을 가쁘게 헐떡이면서도 내게 바짝 다가와 입을 열었다.“세종동에 무슨 일이요······?”두려움을 감춘 채 내가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김강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저! 신 과장님이 사시던 그 세종동 서쪽 동네에 큰불이 났어요!”“네······?”순간 뇌리가 하얗게 마비되는 기분에 나는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거기 판자촌 전체에 불이 나서 완전히 난리가 났나 봅니다. 위험하니까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차준호는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아주기는커녕, 더 힘을 주어 꼭 감싸 쥐었다. 그리고 서늘하지만 묵직한 어조로 김강무에게 응대했다.“알려줘서 고맙군, 김 과장.”그제야 김강무는 쭈뼛거리며 차준호의 단호한 시선과 그와 단단히 얽혀 있는 내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결연하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저, 응원합니다. 신 과장님,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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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마녀가 쏘아 올린 화살

대한민국은 설 연휴가 시작되어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일본은 그저 평범한 토요일 아침이었다.일본 아키하바라의 벨X르 전관을 대관하는 대규모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최기범은 요 며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실장님! 이번 주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호텔 조식 뷔페에서 만난 한규련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 채, 접시에 초밥부터 소복이 담아 올렸다.최기범은 초밥 대신 생선회 몇 점을 담고는 즉석 오믈렛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참, 대리 승진 축하해.”“하하, 명절 지나고 정식 발령장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이번 일본 출장길에 한 대리가 큰 도움이 됐어.”활기찬 한규련이 옆에 붙어 다녀주니 최기범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한규련 역시 오믈렛을 받으려 셰프 앞 줄에 서며 신나게 대화를 이어갔다.“저야 원래 게임 마니아라 행복한 출장이었습니다. 심지어 3월 1일에는 우리 게임이 아키하바라 한복판에 큰 획을 긋게 되잖아요. 생각만 해도 전율이 돋습니다, 하하!”한규련의 말에 최기범의 마음속에서도 기분 좋은 고양감이 피어올랐다.3월 1일이라는 역사적 상징성과 아키하바라 특유의 서브컬처 문화가 빚어낼 시너지가 이제는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차준호가 왜 하필 이날을 고집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너무 늦어지면 8월 15일에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던 차준호였다. 최근 신하늘과 얽힌 스캔들 탓에 사내 분위기가 어수선해 일정을 미룰까 고민도 했지만, 그래도 3월 1일을 향해 정면 돌파를 감행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이번 일을 겪으며 최기범은 차준호를 다시 보게 되었다.&l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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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선을 넘나드는 남자

[신하늘이 쏘아 올린 구원의 손길, 세종동 주민에게 명절 선물처럼 다가와][그 지역구 국회의원 김희주는 그 시각 모 기업 행사 참여, 끝내 세종동에 발길조차 닿지 않아][세종동 서쪽 판자촌 화재 발생은 인명 피해는 없이 진화되어, 과연 재개발을 부추기는 방화일까?][세종동 화재 사건으로 본 우리 사회의 민낯, 가장 먼저 피해자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일반인 신하늘][신하늘과 그녀의 연인 CH-컴퍼니 차준호, 밤새 라온초 체육관 대피소 지켜. 지역 관계자는 모두 끝내 미등장]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아침부터 언론은 온통 세종동 화재 사건으로 뜨거웠다.민족 대이동 귀향이 시작된 시각에 금요일이라 각종 행사도 많아 상대적으로 세종동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하지만 신하늘은 온갖 비난을 받는 와중에도 늘 그렇듯 서쪽 동네 주민들에게 제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신하늘에게 씌워져 있던 '꽃뱀'과 '악녀'라는 악의적인 프레임 역시 거센 반전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라온초에 정상적으로 허가를 받아 밤새도록 이재민을 위한 공간을 구축하고, 사재를 동원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봉사는 귀감이 되었다.***지난밤, 짙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신하늘은 기꺼이 세종동으로 향했고 차준호는 그런 그녀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각이었지만, 차준호의 스위트룸 안에서 신하늘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침대 곁에 걸터앉아 가만히 내려다본 신하늘의 얼굴은 아무리 좋은 음식을 챙겨 먹여도 이전보다 훨씬 핼쑥해져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넘겨주었다.어제 신하늘은 평소 세종동 사람들과 끈끈한 신뢰를 쌓아온 덕분인지, 주민들은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안도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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