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우리 아직 안 끝났네.”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나는 문을 닫아야 했다.
당장.
그런데 손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체인락이 걸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너무 가까웠다.
태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입술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끝났다고 말해야 했다.
끝났다고,
분명히,
다시 한 번.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문밖에는 태준이 있었고,
문 안에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아직 끊어내지 못한 말 하나가 남아 있었다.
우리 아직 안 끝났네.
나는 결국 문을 닫았다.
철컥.
문이 닫히고 나서야 숨을 제대로 내쉬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문을 닫았는데도,
그 말은 안쪽으로 따라 들어와 있었다.
나는 닫힌 문을 노려봤다.
“미친 소리.”
목소리가 작게 새었다.
진짜 미친 소리였다.
끝났다.
분명 끝났다.
내가 끝냈고,
그도 붙잡지 않았고,
우리는 3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 아직 안 끝났네?
나는 문 옆에 놓인 쇼핑백을 떠올렸다.
아직 복도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두고 가겠다고 했다.
버리라고도 했다.
그 말을 들었으면 그냥 놔두면 됐다.
아침도 먹지 않으면 됐다.
출근 준비나 하면 됐다.
그런데 나는 현관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문밖이 조용했다.
태준이 갔는지,
아직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인터폰을 확인하면 알 수 있었다.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게 싫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돌렸다.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다시 현관을 봤다.
아.
진짜.
나는 결국 체인락을 풀었다.
다시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태준이 없었다.
대신 쇼핑백만 문 옆에 놓여 있었다.
토스트.
샌드위치.
그리고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커피.
나는 그걸 내려다보다가, 괜히 더 화가 났다.
이런 걸 왜 아직도 기억하는데.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보내놓고,
이런 건 왜 아직까지 남겨두는데.
나는 쇼핑백을 들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으려던 순간이었다.
“안 먹을 거면 버리라니까.”
낮은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렸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고개를 돌리자,
태준이 복도 벽 쪽에 기대 서 있었다.
갔던 게 아니었다.
그는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너.”
나는 쇼핑백을 든 채 그를 노려봤다.
“아직 안 갔어?”
“응.”
“왜.”
“네가 문 여는지 보려고.”
“진짜 미쳤어?”
“조금.”
너무 태연해서 어이가 없었다.
나는 쇼핑백을 다시 문밖에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태준이 한 걸음 다가왔다.
“안 먹을 거면 진짜 버려.”
“내가 알아서 해.”
“응.”
“응 하지 마.”
태준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바로 멈추는 게 더 싫었다.
예전 같으면 한 번쯤 더 밀고 들어왔을 텐데.
요즘 그는 내가 싫다고 하면 멈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멈춤이 더 오래 남는다.
나는 쇼핑백을 든 손에 힘을 줬다.
“너 지금 뭐 하자는 건데.”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 가져오고, 그런 말 하고, 안 간 척 숨어 있고.”
“숨은 건 아니야.”
“그럼 뭐야.”
“기다린 거지.”
기다린 거지.
그 말이 복도에 조용히 놓였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기다린다는 말은 이상하다.
너무 가볍게 말하면 웃기고,
진심으로 말하면 부담스럽다.
태준은 늘 그 사이 어디쯤에서 말한다.
그래서 더 문제다.
“뭘 기다렸는데.”
내가 물었다.
“네가 화낼지.”
“…….”
“문을 다시 열지.”
“…….”
“먹을지 말지.”
나는 웃었다.
웃음이 예쁘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 건 네가 기다릴 일이 아니야.”
“알아.”
“아는 사람이 왜 기다려.”
태준은 나를 똑바로 봤다.
“알아도 되는 게 있고.”
잠깐 숨을 골랐다.
“알아도 못 하는 게 있어.”
나는 쇼핑백을 더 세게 쥐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침 복도에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런 말은.
나는 문을 더 닫으려 했다.
그 순간 태준의 손이 문 끝을 잡았다.
세게 잡은 건 아니었다.
그냥 닫히지 않을 만큼.
나는 그의 손을 봤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
어제 새벽,
내 팔을 붙잡았던 손.
나는 그걸 알아본 내가 싫었다.
“손 치워.”
“잠깐만.”
“강태준.”
“한서윤.”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낮았다.
화난 것도 아니고,
애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
“나 진짜로 묻고 싶어서 그래.”
“뭘.”
태준은 문틈 사이로 나를 바라봤다.
“너 정말 끝난 거 맞아?”
나는 바로 대답해야 했다.
맞아.
끝났어.
그렇게 말하면 됐다.
그런데 입술이 먼저 굳었다.
태준은 그걸 또 봤다.
이 남자는 늘 그런 순간을 본다.
내가 말하기 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
그게 싫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맞아.”
태준은 조용히 나를 봤다.
“그럼 왜 문 다시 열었어.”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쇼핑백 때문에.”
“그건 복도에 둬도 됐어.”
“버리려고.”
“안 버렸잖아.”
나는 쇼핑백을 내려다봤다.
정말 들고 있었다.
버리려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났다.
태준에게도,
나에게도.
“너 진짜 나쁜 버릇 아직도 못 고쳤네.”
그가 낮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뭐.”
“거짓말하고 나서, 바로 티 나는 거.”
“웃기지 마.”
“웃기는 거 아니야.”
“너는 뭐가 그렇게 자신 있는데.”
태준의 눈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
나는 그 눈을 봤다.
참고 있는 사람의 눈.
3년 전에는 끝까지 보지 못했던 눈.
그가 말했다.
“자신 있는 거 아니야.”
“그럼.”
“무서운 거야.”
나는 말을 잃었다.
태준은 문을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뗐다.
문은 이제 내가 닫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닫지 않았다.
“뭐가 무서운데.”
내 목소리가 낮게 나왔다.
태준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조용히 말했다.
“또 네가 닫을까 봐.”
나는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네가 먼저 안 잡았잖아.”
그 말이 나간 순간,
복도 공기가 달라졌다.
태준의 얼굴에서 아주 작은 표정이 사라졌다.
나는 멈추지 못했다.
아니, 이번에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때도 그랬잖아.”
“…….”
“내가 나가겠다고 했을 때.”
“…….”
“한 번도 안 잡았잖아.”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이 말을 이렇게 아침 복도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오고 나니 멈추기 어려웠다.
“넌 항상 그런 식이었어.”
“…….”
“내가 힘들다고 말해도 아무 말 안 하고.”
“…….”
“붙잡지도 않고.”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3년 전 그 밤에 다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비 오는 현관 앞.
내가 끝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사실 끝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한 번만 붙잡아주길 바랐다.
한 번만 아니라고 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태준은 끝까지 조용했다.
그래서 나는 떠났다.
정말 끝내야 하는 사람처럼.
“너는 내가 없어도 괜찮은 줄 알았어.”
내 목소리가 내가 원한 것보다 작게 나왔다.
태준은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안 괜찮았어.”
나는 눈을 들었다.
태준은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니.
어쩌면 예전에도 봤을 것이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무너질 것 같은데,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얼굴.
“네가 없어진 집에서.”
그가 천천히 말했다.
“숨 쉬는 것도 짜증 났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남자가 저런 말을 하는 걸,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태준은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음 같지도 않았다.
“근데 넌 끝까지 내가 괜찮아 보였나 보네.”
그 말이 너무 늦게 왔다.
늦게 와서,
오히려 더 아팠다.
“이제 와서 그런 말 하면 뭐가 달라져.”
내가 말했다.
태준은 나를 바라봤다.
“안 달라질 수도 있어.”
“…….”
“그래도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왜.”
“또 안 하면.”
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진짜 끝날 것 같아서.”
나는 숨을 멈추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번에는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문은 내가 잡고 있었다.
내가 닫을 수 있었고,
내가 열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태준이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바로 뒤로 물러나지 못했다.
문 안쪽과 복도 사이.
체인락은 풀려 있었고,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문턱 앞에서 멈췄다.
“들어오지 마.”
내가 말했다.
태준은 멈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거기서 말해.”
“응.”
“응 하지 말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조금 웃길 상황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는 억지로 참았다.
태준은 나를 보고 있었다.
“서윤아.”
“…왜.”
“나 아직 너 좋아해.”
그 말은 너무 단순했다.
좋아해.
과거형도 아니고,
미안하다는 말도 아니고,
잊지 못했다는 말도 아니었다.
현재형.
나는 머릿속이 잠깐 비었다.
“미쳤어.”
겨우 그런 말밖에 못 했다.
태준은 부정하지 않았다.
“응.”
“진짜 미쳤어?”
“그럴 수도 있고.”
“너 지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해.”
“너 다시 흔들 생각.”
너무 솔직했다.
너무 위험하게.
나는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런데 태준이 문을 잡지 않았는데도,
내 손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장난하지 마.”
“안 했어.”
“우린 끝났다니까.”
“그런데 넌.”
그의 시선이 내 얼굴에 멈췄다.
“끝난 사람처럼 안 보여.”
나는 이를 악물었다.
“네가 뭘 알아.”
“모르면 좋겠는데.”
태준이 낮게 말했다.
“너 볼 때마다 아직도 알겠어.”
그 말이 너무 가까웠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문을 밀어 닫으려 했다.
태준은 잡지 않았다.
그런데 닫히기 직전,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가지 마.”
나는 그대로 멈췄다.
그 말은 예전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너무 늦게 온 말.
그리고 지금 들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말.
문틈 사이로 태준의 눈이 보였다.
“그때 못 한 말.”
그가 말했다.
“지금 하는 거야.”
나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늦었어.”
“알아.”
“정말 늦었어.”
“알아.”
“그런데 왜 해.”
태준은 나를 보고 있었다.
“늦은 걸 아니까.”
“…….”
“이번엔 안 하기가 싫어서.”
나는 문에서 손을 떼었다.
문이 조금 더 열렸다.
내가 연 건지,
그냥 손이 힘을 잃은 건지 모르겠다.
태준은 여전히 문턱을 넘지 않았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예전의 태준이라면 들어왔을 것이다.
내가 물러나는 만큼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참는다.
아니.
참고 있다는 걸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흔들린다.
나는 결국 말했다.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응.”
“그런데 왜 아직 서 있어.”
“가라는 말은 안 했잖아.”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진짜 너답다.”
“좋은 뜻은 아니네.”
“좋은 뜻일 리가 없잖아.”
그런데 웃음이 섞였다.
아주 조금.
그게 문제였다.
태준도 그걸 봤다.
나는 바로 표정을 지우려 했지만 늦었다.
그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너 지금 웃었어.”
“안 웃었어.”
“웃었어.”
“네가 잘못 본 거야.”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가 나를 똑바로 보았다.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문을 더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를 밀어내려고.
하지만 태준이 한 걸음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물러서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는 현관 문턱 가까이에서 마주 섰다.
가까웠다.
문턱 하나.
그 정도의 거리.
그런데 그 정도가 너무 위험했다.
태준의 시선이 내 입술 쪽에 아주 짧게 머물렀다.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알아차린 내가 싫어서 입술을 깨물었다.
태준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너 진짜 그 버릇.”
“말하지 마.”
“긴장하면 입술 깨무는 거.”
“말하지 말라니까.”
“못 잊어서 그래.”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태준의 손이 내 턱 아래로 올라오려다 멈췄다.
정말 멈췄다.
닿기 직전에서.
나는 그 손을 봤다.
그가 내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예전 같으면 그냥 닿았을 손.
이제는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더 사람을 이상하게 했다.
“뭐 해.”
내가 물었다.
태준은 손을 내리지 않은 채 말했다.
“보고 싶어서.”
“뭘.”
“네가 진짜 피하는 건지.”
“…….”
“아니면 내가 닿는 게 무서운 건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둘 다였으니까.
나는 피하고 있었고,
그가 닿을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닿지 않자,
그것도 신경이 쓰였다.
이게 제일 싫었다.
태준은 아주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안 할게.”
그 말에 나는 오히려 그를 봤다.
“뭘.”
“네가 싫어하는 건.”
“…….”
“안 할게.”
그 말은 다정했다.
늦고,
불편하고,
믿기 어려울 만큼 조심스러웠지만.
그래도 다정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왜 이제 와서.
왜 지금.
나는 그 말을 삼키고, 대신 낮게 말했다.
“너는 항상 늦어.”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침묵을 보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그 침묵이 답답했다.
지금도 답답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안에 무언가 있는 게 보였다.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는 것.
그걸 내가 너무 늦게 본 건지도 몰랐다.
태준이 아주 낮게 말했다.
“알아.”
“그 알아 진짜 싫다.”
“응.”
“응도 싫어.”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결국 짧게 웃었다.
아.
웃지 말았어야 했다.
태준이 그걸 봤다.
그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조금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집 안쪽으로.
태준은 여전히 문턱 밖에 있었다.
그러다 아주 천천히 말했다.
“들어가도 돼?”
그 말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안 된다고 해야 했다.
이 장면은 너무 위험했다.
아침.
닫힌 문.
문턱.
쇼핑백.
끝난 줄 알았던 말들.
그런데 나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문 앞까지만.”
태준의 눈이 조용히 흔들렸다.
나는 바로 덧붙였다.
“더 들어오라는 뜻 아니야.”
“알아.”
“그 알아는 맞아.”
그는 아주 천천히 문턱을 넘었다.
정말 문 앞까지만.
현관 안쪽.
신발을 벗지 않고,
딱 그 자리에서 멈췄다.
나는 그가 지킨다는 걸 봤다.
그게 이상하게 더 위험했다.
태준은 낮게 말했다.
“이 정도는 돼?”
나는 그를 봤다.
문 앞.
집 안이지만,
아직 완전히 들어온 건 아닌 거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태준의 눈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그럼.”
“…….”
“여기서 말할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 아직 너 좋아해.”
또.
두 번째였다.
같은 말인데,
아까보다 더 가까웠다.
나는 그가 한 걸음도 더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온몸이 긴장했다.
“그 말 두 번 하지 마.”
“왜.”
“진짜처럼 들리니까.”
태준은 바로 대답했다.
“진짜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태준의 손이 이번엔 내 손목을 붙잡았다.
세게는 아니었다.
떠나려는 걸 막는 정도.
그런데 그 정도도 충분히 뜨거웠다.
“놓아.”
“싫어.”
“강태준.”
“서윤아.”
그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그때 못 잡은 거.”
“…….”
“지금도 후회해.”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 말이 손목보다 더 세게 나를 붙잡았다.
“그러니까.”
그가 한 걸음도 더 오지 않은 채 말했다.
“이번엔 말할게.”
“…….”
“가지 마.”
나는 그를 봤다.
그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태준은 늘 감정을 숨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혹은 숨기지 않기로 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게 무서웠다.
내가 다시 흔들릴까 봐.
아니.
이미 흔들린 걸 들킬까 봐.
나는 손목을 빼려 했다.
태준은 놓지 않았다.
하지만 더 세게 잡지도 않았다.
딱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딱 붙잡히고 있다고 느낄 만큼.
그 애매한 힘이 더 위험했다.
나는 낮게 말했다.
“너 지금 나한테 뭐 하는 거야.”
태준은 나를 똑바로 봤다.
“늦게 붙잡는 중.”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늦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제 와서 뭘 붙잡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입 안에서 전부 엉켰다.
태준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닿을 듯 가까운 거리.
그의 숨이 내 숨 위로 내려앉았다.
눈앞에 그의 입술이 있었다.
나는 본능처럼 그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내가 먼저.
태준의 시선이 내 손으로 내려갔다.
그도 멈췄다.
우리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잡았다는 사실이,
우리 사이의 공기를 바꿨다.
“서윤아.”
그가 아주 낮게 불렀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그 순간.
띠릭.
도어락 소리가 울렸다.
우리 둘 다 동시에 멈췄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다음 순간.
“어? 태준 형?”
낯선 남자 목소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태준의 눈매가 천천히 좁아졌다.
현관 앞에 선 남자가 놀란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 봤다.
“…뭐야.”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닿았다.
강태준 셔츠를 붙잡고 있는 내 손에.
나는 그제야 내가 아직도 태준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놓아야 했다.
그런데 한 박자 늦었다.
딱 그만큼.
들키기 충분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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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 하나만큼의 거리도
어떤 마음 앞에서는 너무 가까워질 때가 있습니다.
《미열주의》는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집에 들어와가장 먼저 손을 씻었다.비누를 묻혀검지 옆을 몇 번 문지르자남아 있던 끈적임은 금방 없어졌다.물기를 닦고욕실을 나오다가 다시 손을 봤다.깨끗했다.테이프가 붙어 있었던 자리도이제는 잘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떠오른 건그 자국이 아니었다.“조금만 있다 들어갈래?”내가 했던 말이었다.분리수거는 이미 끝난 뒤였다.더 부탁할 일도,같이 해야 할 것도 없었다.그래도 나는 태준을 불렀다.몇 분만 더옆에 있었으면 했다.그 마음을 다시 떠올리는데이번에는 이상하게 피하고 싶지 않았다.그냥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다.그걸 인정하자가슴 안쪽이 조용해졌다.나는 식탁 앞에 앉아손바닥을 펴놓았다.아무것도 없었다.어젯밤의 젤리 봉지도,오늘 붙었던 테이프도.버릴 건 다 버렸다.그런데 오늘 내가 먼저 붙잡은 몇 분은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조금만 있다 들어갈래?나는 그 말을마음속으로 한 번 더 읽었다.오늘은 지우지 않았다.그 정도는남겨둬도 될 것 같았다.⸻【서윤의 기억 29】우리가 한창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고,서로의 집을 오가고,헤어질 시간이 되면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고괜히 시간을 끌던 때.그날도 그랬다.퇴근하고 태준의 집에 갔는데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네 개나 쌓여 있었다.“뭘 이렇게 많이 샀어?”내가 상자 하나를 발끝으로 살짝 밀어보며 묻자태준이 커터칼을 가져왔다.“생활용품.”“생활용품을 네 박스씩 사?”“한꺼번에 시켰어.”“혼자 사는 사람이?”“두고 쓰면 되니까.”상자를 열어보니 정말 별것 없었다.세제.샴푸.휴지.생수.그중 제일 큰 상자에는휴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네가 말한 생활용품?”“맞잖아.”“틀린 말은 아닌데.”태준도 웃었다.우리는 거실 바닥에 앉아상자에서 물건을 하나씩 꺼냈다.태준은 꺼낸 것들을 안쪽으로 옮기고,나는 빈 상자를 접었다.테이프가 생각보다 질겨서손톱으로 몇 번 긁어
우리는 다시 각자 가져온 것들을 정리했다.종이와 플라스틱이각각의 통 안으로 들어갔다.내가 마지막 상자를 밀어 넣을 때쯤태준도 접은 박스를 다 버렸다.태준이 손을 털고건물 쪽으로 몸을 돌렸다.나도 종이봉투를 접어마지막으로 버렸다.이제 돌아가면 됐다.태준이 먼저 몇 걸음 걸었다.나는 뒤따라 한 걸음 움직이다가 멈췄다.“태준아.”그가 돌아봤다.“응?”입을 열어놓고잠깐 망설였다.부탁할 건 없었다.더 버릴 것도 없고,같이 들고 갈 것도 없었다.그런데 바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사람이벌써 자기 층으로 돌아가는 게조금 아쉬웠다.“조금만 있다 들어갈래?”내가 말해놓고도잠깐 낯설었다.태준의 표정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놀란 건지,기쁜 건지금방 지나가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그래.”왜냐고 묻지 않았다.나는 먼저 건물 옆쪽으로 걸었다.태준이 따라왔다.⸻건물 옆에는 낮은 화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우리는 화단 끝에 서서잠깐 골목 쪽을 바라봤다.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거리에는사람이 많지 않았다.차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가고,멀리서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오늘 일은 어땠어?”내가 먼저 물었다.태준이 나를 봤다.“현장 갔다 왔어.”“어디?”“성수 쪽.”“멀진 않았네.”“응. 대신 오래 있었어.”“피곤하겠다.”“조금.”태준이 물었다.“너는?”“수정 하나가 계속 안 끝났어.”“끝났어?”“퇴근 직전에.”“다행이네.”“그러니까.”대화가 잠깐 멈췄다.나는 앞을 봤다.말이 끊겼는데도불편하지 않았다.굳이 다음 말을 찾아내지 않아도 됐다.그냥 같은 곳에 서 있었다.내가 그러자고 했으니까.그게 조금 신기했다.라떼를 건넬 것도 없고,우산을 같이 쓸 일도 없었다.젤리도 이미 다 먹었고,분리수거도 끝났다.그런데도 태준은 옆에 있었고,나는 먼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나는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아까 테이프가 붙었던 검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자현관 한쪽에 모아둔 재활용품이 눈에 들어왔다.택배 상자 몇 개와다 마신 생수병,배달 음식에 딸려온 작은 종이 포장들.주말에 한꺼번에 버리려고 했는데종이봉투 옆이 벌써 조금 벌어져 있었다.나는 가방을 내려놓고재활용품부터 정리했다.생수병은 한쪽으로,종이는 다른 쪽으로.상자를 눌러 접다가손바닥을 내려다봤다.어젯밤에는 이 손으로태준에게 작은 젤리 봉지를 건넸다.마지막 하나가 들어 있던 봉지.태준은 그 안의 젤리를 먹고빈 봉지를 버렸다.이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봉지였다.나는 접은 상자를 종이봉투에 넣고그걸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분리수거장에는종이 상자가 몇 개 쌓여 있었다.나는 가져온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고생수병부터 꺼냈다.라벨을 떼고,뚜껑을 따로 모으고,병을 플라스틱 통에 넣었다.남은 상자를 펼치려는데옆에서 종이 눌리는 소리가 났다.고개를 들었다.태준이었다.편한 티셔츠 차림으로택배 상자 두 개를 들고 있었다.“너도 버리러 왔어?”“응.”태준이 내가 펼쳐둔 상자들을 한번 보고자기 손에 든 것도 내려놓았다.“많네.”“미뤘어.”“며칠?”“그건 비밀.”태준이 작게 웃었다.“많이 미뤘네.”“그러니까 비밀이라고.”나도 조금 웃으며다시 상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태준도 옆에서 자기 상자를 접기 시작했다.나는 남은 생수병을 버리고종이 상자를 눌렀다.두꺼운 상자 하나가 잘 접히지 않아모서리에 손가락을 걸고 힘을 줬다.그때 태준이 말했다.“서윤아.”“응?”“손에 뭐 붙었어.”나는 손을 멈췄다.“어디?”태준이 시선으로 내 오른손을 가리켰다.“검지 옆.”손을 뒤집어보니투명한 테이프 조각 하나가 붙어 있었다.아까 상자를 접다가 묻은 모양이었다.“아.”손톱으로 끝을 잡아 떼었다.테이프가 손가락 끝에서 작게 말렸다.나는 그걸 쓰레기통에 버렸다.손에는 끈적한 자국만 조금 남았다.태준은 그동안자기 상자를 마저 접고 있었다.내 손을 봤지만손을
나는 식탁 위 빈자리를 한 번 더 봤다.젤리 하나가 사라진 자리.그 자리에 오늘은짧은 말 하나가 남아 있었다.알아.내가 마지막 하나를 먹지 않았다는 걸,하루 종일 가지고 다니다결국 자기에게 건넸다는 걸.굳이 다 설명하지 않았는데도조금은 닿은 것 같았다.나는 그 말을 오래 붙잡지는 않았다.그렇다고 바로 접어두지도 않았다.오늘은 그냥마음 한쪽에 잠깐 펼쳐두었다.망가지지 않을 만큼만.⸻【태준의 속마음 41】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휴대폰이 울렸다.[집이야?]서윤이었다.나는 화면을 보다가소파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일으켰다.[응. 방금 들어왔어.]답장을 보내고도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잠시 뒤,다시 화면이 켜졌다.[잠깐 로비로 내려올래?]문장을 두 번 읽었다.잠깐.로비로.내려올래?서윤이 먼저 나를 불렀다.그 사실이 좋아서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그래. 내려갈게.]답장을 보내고그대로 현관으로 갔다.신발을 신으면서도괜히 휴대폰 화면을 한 번 더 봤다.메시지는 그대로였다.잠깐 로비로 내려올래?예전에는 이런 말이 흔했다.나와.내려와.편의점 갈래?뭐 좀 같이 사자.그때는 서윤이 부르면 나갔고,내가 부르면 서윤이 왔다.그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받은 말은이상할 만큼 오래 눈에 남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숫자가 하나씩 줄었다.괜히 느렸다.나는 닫힌 문만 보고 있었다.로비에 도착하자서윤이 먼저 보였다.그리고 그다음에,서윤의 손에 들린 작은 봉지가 보였다.포도맛 젤리였다.어제 내가 준 것.아직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마지막 하나 남았어.”서윤이 말했다.봉지가 작게 흔들렸다.“안 먹었어?”“응.”“왜?”서윤은 이번에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네가 먹었으면 해서.”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서윤은 이미 내 쪽으로 봉지를 내밀고 있었다.“포도맛 좋아한다며.”나는 그 봉지를 봤다.어제
태준이 봉지를 봤다.“안 먹었어?”“응.”“왜?”이번에는 대답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네가 먹었으면 해서.”말하고 나니 조금 간지러웠다.나는 괜히 봉지를 살짝 흔들었다.안에서 젤리 하나가 움직였다.“포도맛 좋아한다며.”태준은 잠깐 나를 바라봤다.그 시선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러내가 먼저 말했다.“안 먹을 거야?”“먹을 거야.”태준이 봉지를 받아 들었다.그게 다였다.왜 하루 종일 가지고 있었냐고 묻지도 않았고,왜 마지막 하나를 남겼냐고 다시 확인하지도 않았다.나는 그게 좋았다.태준이 접힌 입구를 펼쳤다.구석에 붙어 있던 마지막 젤리를손끝으로 꺼냈다.작고 보라색인 하나.그걸 보고 있으니아침부터 계속 신경 쓰였던 일이갑자기 정말 작은 일처럼 보였다.태준이 젤리를 입에 넣었다.몇 번 씹는 걸 보고 있다가 내가 물었다.“어때?”“맛있네.”“그치?”“응.”나는 웃었다.“포도가 제일 낫다며.”“그래서 아쉬웠지.”뜻밖의 대답이었다.“아쉬웠어?”“하나밖에 없어서.”“그런데 왜 나 줬어?”묻고 나서어젯밤에도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게 생각났다.태준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네가 골랐잖아.”또 그 말이었다.나는 결국 웃었다.“그럼 이제 됐네.”“뭐가?”“너도 먹었으니까.”태준이 나를 잠깐 바라봤다.“그래.”짧은 대답이었다.그런데 그걸 듣고 나니아침부터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작은 하나가정말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내가 거의 다 먹었고,마지막 하나는 태준이 먹었다.그 정도면 됐다.태준은 비어버린 봉지를 한번 내려다본 뒤근처 쓰레기통으로 걸어갔다.그리고 그대로 버렸다.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봤다.아침에 식탁에서 집어 들었던 것.회사까지 가지고 갔다가,다시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던 것.하루 종일 가방 안에서몇 번이나 생각났던 작은 봉지.이제는 없었다.그런데 아쉽지는 않았다.태준이 돌아왔다.“갈까?”“응.”우리는 나란히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었다.버튼을 누르고
아침에 물을 마시러 식탁 앞을 지나다가작게 접힌 젤리 봉지를 봤다.어젯밤 그대로였다.나는 물컵을 내려놓고봉지 입구를 펼쳤다.안에는 포도맛 젤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가잠시 보고 다시 넣었다.먹으면 금방이었다.그런데 아침부터 단 게 당기지도 않았고,무엇보다 어젯밤 알게 된 말이 생각났다.포도맛은 하나뿐이었다는 것.태준은 그걸 한 번도 먹지 못했다.나는 봉지 입구를 다시 접었다.출근 준비를 마치고 가방을 들었을 때도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현관까지 갔다가 멈췄다.잠깐 뒤돌아봤다.보라색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어젯밤에는내일 먹을지,계속 남겨둘지 정하지 않았었다.지금도 딱히 정한 건 없었다.그런데 그냥 두고 나가기는 싫었다.나는 다시 식탁으로 가젤리 봉지를 집었다.그리고 가방 안쪽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바스락.마지막 하나가 안에서 작게 움직였다.아직 그걸 어떻게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다만 식탁 위에 두고 나오는 것보다가방 안에 넣어두는 편이 마음이 덜 쓰였다.나는 가방 지퍼를 닫고문을 열고 나왔다.⸻오후 늦게,가방에서 충전기를 찾다가 젤리 봉지가 같이 딸려 나왔다.책상 가장자리에 떨어진 작은 봉지를 보고나는 손을 멈췄다.아침에 넣어둔 뒤로한 번도 꺼내지 않았었다.봉지를 집어 들자안에서 젤리 하나가 아래로 미끄러졌다.정말 하나뿐이라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옆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누군가는 전화를 하고 있었고,누군가는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였다.나는 젤리 봉지를 손에 든 채잠깐 의자에 기대앉았다.배가 조금 고팠다.점심을 먹은 지도 꽤 됐다.지금 먹어도 됐다.포장을 열고,하나 꺼내 입에 넣으면 끝이었다.누가 뭐라고 할 일도 아니었다.나는 접어둔 입구를 조금 펼쳤다.보라색 젤리가 보였다.어젯밤 태준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포도맛은 하나뿐이었어.][네가 가져간 게 그거야.]그리고,[네가 골랐잖아.]하나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