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지옥에서 길러진 여자: Capítulo 1 - Capítulo 10

18 Capítulos

1화

한이서는 아버지가 자신을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그가 낯선 남자에게 딸의 몸값을 흥정하는 순간 알았다.“그럼 오백만 원만 더 주시오. 애가 어려서 그렇지 몸은 멀쩡합니다.”“검사 결과에 따라 최종 금액이 달라집니다.”“어디 아픈 데도 없고, 잔병치레 한 번 안 했어요. 어릴 때부터 일도 잘했고.”거실에 들어선 이서의 손에서 비닐봉지가 떨어졌다.방금 시장에서 사 온 계란이 깨지면서 누런 액체가 장판 위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식탁에 앉아 있던 두 남자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아버지는 오히려 낯선 남자 쪽으로 몸을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내가 급해서 그렇지, 얘가 어디 가서 빠질 애는 아니에요. 얼굴도 반반하고, 시키는 일은 죽어라 합니다.”“아버지.”이서가 부르자 그제야 아버지가 돌아보았다.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보다 짜증이 먼저 떠올랐다.“언제 왔어? 들어오면 인기척을 내야지.”이서는 대답하지 못했다.식탁 위에는 두툼한 현금 봉투와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서류 첫 장에 적힌 이름은 분명 자신의 것이었다.한이서.열아홉 살.그 아래에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블랙제로.“저게 뭐예요?”아버지는 대답 대신 현금 봉투를 끌어당겼다.“네가 잘된 일이야. 숙식도 제공하고 교육까지 시켜 준다니까 가서 열심히 해.”이서는 식탁으로 다가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국제 보안 인력 양성 프로그램.보호자 채무 정산.장기 교육 위탁.마지막 장에는 아버지의 서명이 있었다.그런데 자신의 서명란에도 누군가 이름을 적어 놓았다.한이서.필체가 달랐다.“이거 제가 쓴 거 아니에요.”서류를 들어 보이자 낯선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확인됐으니 돌려주시죠.”“제 서명을 누가 했냐고요.”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짧게 통화했다.“대상자 도착했습니다. 예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이서는 등골이 서늘해졌다.대상자.그 말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저 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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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이서는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놓으라고요! 사람 살려!”현관 밖으로 끌려 나가면서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손톱이 긁히고 손바닥이 찢어졌지만 놓지 않았다.“살려 주세요! 누구 없어요?”아래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이서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이웃집 아주머니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이서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았다.“아주머니, 경찰 좀 불러 주세요! 저 사람들이 절 데려가려고 해요!”그러나 아주머니는 사내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문을 닫았다.철컥.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계단에 울렸다.이서는 그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사이 사내들이 그녀의 손가락을 난간에서 하나씩 떼어 냈다.밖에는 검은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차문이 열리자 다시 몸부림쳤다.“안 돼요! 제발!”사내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무릎이 바닥에 부딪혔고, 뒤이어 머리가 좌석 모서리에 스쳤다.이서는 창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삼층 거실 창가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그는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서는 마지막으로 입술을 움직였다.'아버지.'아버지는 커튼을 쳤다.차문이 닫혔다.그 순간 이서는 더 이상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다.***차 안에는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검은 승합차의 뒷유리에는 짙은 필름이 붙어 있었고,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는 철망으로 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좌석은 오래된 인조가죽으로 덮여 있었는데, 누군가 흘린 음료가 말라붙은 듯 끈적거렸다.바닥에는 흙과 모래가 뒤섞여 있었다. 구석에는 낡은 운동화 한 짝이 굴러다녔다.이서는 그 운동화를 보자 숨이 막혔다.자신보다 먼저 이 차에 탔던 누군가가 두고 간 물건일 것이다.그 사람도 자신처럼 울고 소리쳤을까.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차 안에는 이서 말고도 여자 둘이 있었다.맨 뒷좌석의 여자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다른 여자는 창백한 얼굴로 앞좌석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부은 여자의 입술 한쪽에는 마른 피가 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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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사내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이송 중 한 명 상태 불량. 도착 후 의료 확인 요청.”이서는 그 말을 듣고 사내를 노려보았다.“도착 후가 아니라 지금 병원에 가야 한다고요!”사내가 몸을 돌려 그녀의 턱을 거칠게 잡았다.“네가 여기서 뭘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이서는 숨을 삼켰다.남자는 그녀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손을 놓았다.“네 몸이나 걱정해.”차는 계속 달렸다.이서는 쓰러진 여자의 어깨를 받쳐 주었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한참 뒤 차량이 속도를 줄였다.창밖으로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블랙제로 산악훈련소는 산 하나를 통째로 잘라 낸 것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차가 마지막 굽잇길을 돌아 나오자 안개 사이로 회색 콘크리트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의 산들은 높고 가팔랐으며, 시설 뒤편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다.정면에는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철문이 세워져 있었다.철문 양쪽에는 콘크리트 경비 초소가 있었고, 그 위로 감시탑 두 개가 솟아 있었다. 탑에서는 강한 탐조등이 산비탈과 진입로를 번갈아 훑었다.담장 위에는 철조망이 여러 겹으로 얽혀 있었다.철망 사이사이에는 붉은 경고등이 깜빡였고, 담장 아래로는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순찰로가 이어졌다.차량이 철문 앞에 멈추자 경비원 셋이 다가왔다.한 명은 운전자의 신분증을 확인했고, 다른 한 명은 차체 아래를 살폈다. 마지막 경비원은 손전등으로 뒷좌석을 비추며 사람 수를 확인했다.“신규 세 명?”“서류 확인 끝났습니다.”경비원이 이서의 얼굴을 비췄다.눈이 부셔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손전등으로 창문을 두드렸다.“정면 봐.”이서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잠시 후 철문이 열렸다.두꺼운 쇠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길게 울렸다.차량이 안으로 들어서자 첫 번째 철문이 닫혔다. 그런데 앞쪽에는 또 하나의 철문이 있었다.차는 두 철문 사이의 좁은 공간에 갇힌 채 한동안 움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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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녀는 팔에 힘을 주어 몸을 끌어당기려 했지만, 몇 번이나 제자리로 미끄러졌다.교관이 가까이 다가가자 여자는 이를 악물고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다.이서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움켜쥐었다.저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오래 저렇게 움직였을까.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데 왜 아무도 멈추라고 하지 않을까.차량은 다시 방향을 틀었다.이번에는 콘크리트 건물 앞에서 훈련생들이 두 사람씩 마주 보고 서 있었다.대련 훈련이었다.한 남자가 상대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그는 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상대가 다시 다가오자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교관이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아 내렸다.“상대를 똑바로 봐!”훈련생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상대가 다시 공격 자세를 취했다.이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둔탁한 소리가 들렸다.눈을 떴을 때 남자는 다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그 옆으로 다른 훈련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대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이서는 입술을 깨물었다.이곳은 사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다.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곳 같았다.차량이 마지막 건물 앞에 멈췄다.문이 열리자 찬바람과 함께 땀 냄새, 젖은 흙 냄새가 밀려들었다.경비원들이 먼저 쓰러진 여자를 끌어냈다.이서는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으려 했다.“저 사람 어디로 데려가요?”“손 떼.”“병원에 가는 거죠?”경비원이 그녀를 밀어냈다.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건물 안으로 옮겨졌다.이서는 닫히는 문을 바라보았다.그 문 위에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었다.***입소실은 지하에 있었다.계단을 내려갈수록 바깥의 소음이 멀어지고, 차갑고 눅눅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형광등은 일정한 간격으로 켜져 있었지만 복도 끝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벽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신규 입소자 등록.신체검사.개인 소지품 보관.등급 분류.이서는 그 글자들을 하나씩 읽었다.어디에도 퇴소 절차에 관한 안내는 없었다.입소실에서는 이름과 나이,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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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이서는 식판을 받아 들고도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랐다.식판에는 묽은 국과 밥, 작은 빵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그녀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숟가락을 들었지만 손이 떨려 밥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차 안에서 쓰러졌던 여자가 자꾸 떠올랐다.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정말 치료를 받고 있을까.아니면…….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맞은편에서 의자가 움직였다.“처음 왔지?”이서는 고개를 들었다.스물두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검은 머리와 선명한 눈매, 단정하게 정리된 훈련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른 훈련생들과 달리 그의 어깨에는 상급생을 뜻하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남자는 그녀의 식판을 바라보았다.“왜 안 먹어?”이서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먹고 싶지 않아서요.”그는 더 묻지 않았다.대신 자신의 식판에 있던 빵을 반으로 나눴다.그리고 한 조각을 이서의 식판 위에 올려놓았다.“먹어.”이서는 빵을 바라보았다.“왜 저한테 주세요?”남자는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기서는 배고프다고 누가 더 주지 않거든.”그는 잠시 이서의 손목을 살폈다.붉은 자국이 아직 선명했다.“오늘 들어왔으면 내일이 더 힘들 거야.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둬.”이서는 그 말을 듣고도 쉽게 빵을 집지 못했다.오늘 자신에게 친절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아버지는 자신을 팔았고, 이웃은 문을 닫았고, 차 안의 사내들은 사람이 쓰러져도 차를 세우지 않았다.그런데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이름이 뭐예요?”그녀가 묻자 남자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백시온.”그가 대답했다.“넌?”“한이서예요.”시온은 그녀의 가슴에 붙은 번호표를 내려다보았다.“117번이네.”이서는 자신도 모르게 번호표를 손으로 가렸다.“제 이름은 한이서예요.”시온은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그러더니 아주 낮게 말했다.“그 이름, 잊지 마.”이서는 그 말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하지만 시온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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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강혁은 훈련생들 앞에 멈춰 섰다.그의 손에는 신규 입소자 명단이 들려 있었다.“오늘 들어온 사람들 중 일부는 아직 이곳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그는 서류를 한 장 넘겼다.“여기는 보호시설이 아니다. 학교도 아니고, 너희 사정을 들어주는 상담소도 아니다.”이서는 손끝을 움켜쥐었다.강혁의 시선이 훈련생들 사이를 훑었다.“이곳에서 필요한 것은 쓸모 있는 사람뿐이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쓸모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운동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강혁은 명단을 확인했다.“117번.”이서는 자신을 부르는 줄도 모르고 서 있었다.교관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밀었다.“앞으로 나와.”이서는 비틀거리며 줄에서 벗어났다.강혁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한이서. 열아홉.”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이서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네.”강혁은 서류철에 꽂힌 펜을 꺼냈다.그리고 그녀가 보는 앞에서 이름 위에 검은 선을 그었다.한이서.그 세 글자가 완전히 가려졌다.“오늘부터 네 이름은 117번이다.”이서는 입술을 벌렸다.“제 이름은…….”강혁이 고개를 들었다.“뭐라고?”이서는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주변에 선 훈련생들이 숨을 죽였다.그녀는 두 손을 움켜쥔 채 간신히 말을 이었다.“제 이름은 한이서예요.”강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서류를 덮었다.“여기서는 아니다.”그는 옆에 선 교관에게 태블릿을 건넸다.“117번. 생존 평가 명단에 올려.”교관이 화면을 조작했다.이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다만 조금 전 강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쓸모없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생존 평가가 뭐예요?”이서가 물었다.강혁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교관에게 지시를 마친 뒤 몸을 돌렸다.이서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따라갔다.“저기요! 그 평가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강혁의 걸음이 멈췄다.그는 천천히 돌아보았다.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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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한이서가 처음으로 얻어맞은 이유는 죽 한 그릇 때문이었다.그녀는 그날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을 지키려 했다.그 대가로 수백 명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중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새벽 다섯 시.숙소의 철문이 요란하게 열리면서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한꺼번에 켜졌다.“전원 기상! 삼 분 안에 운동장 집합!”교관이 철문을 군화로 걷어찼다.좁은 숙소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이층 침대마다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고, 누군가는 잠결에 사다리를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졌다. 젖은 훈련복 냄새와 오래된 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철제 침대가 요란하게 흔들렸다.이서는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켰다.낯선 천장과 회색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어제 자신을 끌고 온 검은 승합차와 철조망, 이름 대신 가슴에 붙여진 번호표가 떠올랐다.117번.그녀는 손끝으로 번호표를 만졌다.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옆 침대에서는 마른 체격의 여자가 신발 끈을 묶고 있었다. 어제 승합차에서 함께 내렸던 여자였다.여자는 이서의 헐렁한 바짓단을 보더니 몸을 숙여 두 번 접어 올렸다.“이렇게 안 하면 뛰다가 넘어져.”이서가 고개를 숙이자 여자는 급히 자기 신발을 신었다.“나 오민주야. 어제 들어왔어.”“한이서.”“나도 열아홉인데, 말 놓아도 되지?”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주가 희미하게 웃었다.그러나 그 웃음은 복도에서 다시 울린 호각 소리에 곧바로 사라졌다.두 사람은 다른 훈련생들 사이에 섞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밖은 아직 어두웠다.산등성이 위로 희미한 푸른빛이 번지고 있었지만 운동장에는 탐조등이 켜져 있었다. 철조망 위에는 새벽 안개가 걸려 있었고, 감시탑에서는 긴 총을 멘 경비원들이 천천히 움직였다.운동장에는 수백 명의 훈련생이 줄지어 서 있었다.앞줄에는 자세가 반듯한 상급생들이, 뒤쪽에는 어제 들어온 신입들이 모여 있었다.교관들은 대열 사이를 걸어 다니며 복장과 번호표를 확인했다.한 남자가 군화 끈을 제대로 묶지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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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그녀는 민주와 함께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민주는 감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바라보았다.“이거 먹고 오후까지 버티라는 거겠지?”이서는 대답 대신 죽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따뜻한 죽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속이 조금 진정됐다.그녀는 숟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를 높였다.바로 그때 식탁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신입.”굵은 목소리였다.고개를 들자 덩치가 큰 남자 훈련생이 서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 아래로 이마에 오래된 흉터가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색이 바랜 번호표가 붙어 있었다.남자는 이서의 식판을 내려다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었다.이서는 반사적으로 그릇을 붙잡았다.남자의 손이 멈췄다.“놔.”이서는 죽그릇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제 밥이에요.”남자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그는 대답 대신 옆에 놓인 감자를 집어 들었다.이서가 급히 손을 뻗었다.“그것도 제 거예요.”주변 식탁에서 숟가락 소리가 잦아들었다.민주가 이서의 무릎을 살짝 건드렸다.이서가 옆을 돌아보자 민주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그제야 이서는 식당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았다.상급생들이 신입의 식판에서 빵과 감자를 가져가고 있었다.어떤 남자는 자신의 죽을 반쯤 덜어 상급생의 그릇에 부었다. 또 다른 여자는 빼앗긴 감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배식대 옆에는 교관 둘이 서 있었다.그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오히려 한 교관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식당 안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이서는 남자의 손에 들린 감자를 바라보았다.“돌려주세요.”남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여기 규칙을 아직 모르나 본데, 신입 배급은 선배가 먼저 가져갈 수 있어.”그가 몸을 숙였다.가까이 다가온 입에서 오래된 담배 냄새가 났다.“알겠으면 손 놔.”이서는 식판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어제부터 자신이 가진 것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집도, 옷도, 어머니의 손수건도 빼앗겼다.그런데 이제는 밥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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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저 사람이 제 밥을 빼앗았어요.”교관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그는 부어오른 뺨과 붉게 달아오른 손등을 보았다.그러나 상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117번. 상급생 지시에 불복했나?”이서는 입술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제 밥을 지키려고 했어요.”교관은 기록판을 꺼냈다.펜 끝이 종이 위를 움직였다.“117번. 배식 질서 교란. 상급생 지시 불복종.”민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서는 고개를 저었다.민주는 움직임을 멈췄다.교관은 이서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나와.”이서는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민주가 바닥에 떨어진 감자를 주워 들고 있었다.그녀는 흙 묻은 감자를 자기 소매로 닦다가 이서와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식당 문이 닫혔다.***처벌은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시작됐다.교관이 이서를 끌고 나오자 훈련생들이 달리던 걸음을 멈췄다. 장애물 위에 올라가 있던 사람들까지 내려와 대열을 갖췄다.수백 명의 시선이 이서에게 향했다.“117번. 배식 질서 교란 및 상급생 지시 불복종.”교관이 이서의 어깨를 눌렀다.그녀는 균형을 잃고 무릎부터 땅에 부딪혔다. 아침에 쓸린 상처가 다시 터지면서 훈련복 바짓단 안쪽으로 뜨거운 피가 번졌다.“고개 들어.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여 줘야지.”이서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앞줄에 선 훈련생들은 무표정했다. 어떤 사람은 시선을 피했고, 어떤 사람은 군화 끝만 내려다보았다.민주도 그들 사이에 있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아침에 죽을 빼앗아 간 상급생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가 옆 사람에게 무언가 속삭이자 두 사람이 낮게 웃었다.이서는 고개를 돌렸다.교관이 모래주머니 하나를 그녀의 앞에 떨어뜨렸다.둔탁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올라왔다.“들어.”이서는 주머니를 붙잡았다.손바닥의 상처가 거친 천에 쓸리면서 통증이 올라왔다. 가까스로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리자 교관이 머리 위를 가리켰다.“팔 펴.”그녀는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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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촤악!차가운 물이 얼굴과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이서는 숨을 들이마시다가 사레가 들렸다.젖은 훈련복이 피부에 달라붙었고, 주머니는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교관이 빈 바가지를 통에 던졌다.“처음부터.”이서는 몸을 숙였다.그러나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두 번이나 주머니를 놓친 끝에 겨우 가슴에 끌어안았지만, 머리 위로 올리기도 전에 무릎이 꺾였다.그녀는 그대로 모래바닥에 쓰러졌다.입안으로 흙이 들어왔다.주변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이서는 팔을 움직였다.하지만 손바닥이 모래를 긁을 뿐 몸이 올라오지 않았다.다시 힘을 주자 팔꿈치가 꺾였다.눈앞이 어두워졌다.그때 교관이 그녀의 번호표를 붙잡았다.“일어나. 아직 안 끝났어.”이서는 목이 꺾일 만큼 거칠게 끌어 올려졌다.무릎이 바닥에 끌렸다.교관은 그녀를 다시 세우려 했지만 이서의 다리가 버티지 못했다.그녀는 교관의 손에서 미끄러져 주저앉았다.그 순간 훈련생들 사이에서 작은 움직임이 일었다.민주였다.그녀가 대열에서 반 발짝 앞으로 나왔다.“저 사람…….”말을 끝내기도 전에 옆에 있던 훈련생이 민주를 붙잡았다.“가만있어.”민주는 팔을 빼려 했지만 상대가 더 세게 잡았다.“너까지 저렇게 되고 싶어?”그 말에 민주가 멈췄다.이서는 흐릿한 시야 너머로 그 모습을 보았다.민주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눈물이 고인 얼굴이었다.이서는 입술을 움직였다.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나오지 말라고, 너까지 다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목구멍에서는 거친 숨소리만 새어 나왔다.그때 운동장 입구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지?”서강혁이었다.검은 제복의 남자가 대열 사이를 지나 운동장 중앙으로 걸어왔다.교관들이 일제히 자세를 바로잡았다.강혁은 바닥에 쓰러진 이서를 내려다보았다.그녀의 훈련복은 물과 흙으로 엉망이었고, 손바닥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그는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교관의 기록판을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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