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오늘 오전에 장 회장님을 뵈려고 호텔에 갔어. 그때 강서이 대표가 선물 상자 몇 개를 들고 장 회장님 객실 문을 두드리는 걸 봤어.”성이남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두 사람은 오후가 돼서야 함께 호텔에서 나왔고...”노아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강서이는 정말 어디까지 바닥을 보여 주려는 거야.’이번 행사에 들어오기 위해 호텔방까지 직접 찾아갔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성이남 역시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이틀 사이에 강서이가 서로 다른 남자와 호텔에서 나오는 모습을 연달아 봤다.상대들의 나이 차이도 상당했다.장재영은 강서이보다 24살이나 많았다. 그런데도 저럴 수 있다는 생각에 성이남은 이해할 수 없었다.‘정말 어이가 없네.’강서이를 향한 성이남의 반감은 더 커졌다.반대로 자신의 실력으로 차근차근 자리를 만들어 온 아리 선배가 더 귀하게 느껴졌다.성이남은 민도하가 돌아오기 전에 자연스럽게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헸다.아리 선배의 행복한 시간을 자신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민도하는 금방 돌아왔다. 노아리가 유심히 본 바로는 장재영에게 다녀오는 동안 강서이와는 따로 말을 섞지 않았다.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민도하는 강서이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철저히 무시했다.그 사실을 확인한 노아리의 기분은 한층 좋아졌다.민도하가 돌아오자 노아리는 다시 그의 팔을 끼며 물었다. “민 회장님은 언제 오신대?”“내가 물어볼게.”민도하는 노아리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직접 민두해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노아리가 말했다. “조금 있다가 민 회장님이 대표 발언자로 무대에 오르신다고 들었어. 급하게 찾지 말고 말씀이 끝나신 다음에 인사를 드리자.”그때는 행사장에 있는 모든 시선이 민두해에게 모일 터였다. 자신이 적당한 때에 나타나 인사를 하면, 민두해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바깥의 소문도 자연스럽게 잠재울 수 있었다.민도하도 그러자고 했다.그 뒤로는 노아리와
노아리는 저도 모르게 민도하의 팔을 더 꼭 끌어안았다. 가장 자신 있고 우아한 미소를 지은 채, 민도하와 함께 행사에 참석한 재계 인사들에게 인사를 돌았다.지금 B시 재계에서 민도하가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해서, 대부분은 상대 쪽에서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노아리도 민도하 곁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하나같이 B시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이었다.한창 대화가 무르익던 중 행사장 입구 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말했다. “장재영 회장님이시네요.”“어? 옆에 있는 분은 그로스캐피탈 강서이 대표 아닌가요? 두 분이 왜 같이 오셨지?”노아리의 얼굴에 걸려 있던 완벽한 미소가 그대로 굳어졌다.조금 전까지 노아리와 즐겁게 대화하던 사람들 상당수가 방향을 바꿔서 장재영과 강서이 쪽으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아리 주변에는 몇 사람만 남았다.노아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강서이를 바라봤다.강서이는 장재영의 팔을 부축하듯 끼고 밝게 웃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서태우도 슬쩍 다가와서 강서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둘이 왜 같이 왔지? 누가 정식 초청이고 누가 동반 참석이야?”노아리는 싸늘한 얼굴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너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그야 장 회장님이 정식 초청자겠지. 저 정도 영향력이면 당연하잖아.”그 정도 판단은 서태우도 할 수 있었다.장재영은 반도체 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자 기술업계의 대표적인 원로였다.‘그렇다면 강서이는 장재영의 동반자로 이 행사에 들어온 건가?’서태우는 오히려 그 점이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강서이는 어떻게 장 회장님이랑 저렇게 가까워진 거야?”노아리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너도 강서이 오래 알았잖아.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몰라?”서태우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예전에 자신들이 강서이를 그렇게 싫어했던 것도 결국 비슷한 이유 때문이
바깥에서 무슨 말이 돌든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민도하가 노아리를 얼마나 아끼는지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은 노아리를 함부로 볼 수가 없었다.동시에 불길하다는 소문도 자연스럽게 힘을 잃을 수 있었다.남유환과 서태우 역시 기업인협회 정기총회 초청 명단에 들어 있었다.민도하와 노아리가 도착하자, 서태우가 손을 흔들며 아는 척했다.옆에 있던 남유환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 뒤 다시 서태우와 이야기를 이어 갔다.최근 남명그룹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남유환도 자율주행차 출시 성과를 인정받아서 그룹 이사회에 정식으로 합류했다.일도 지위도 모두 순조롭게 풀리는 시기였다.노아리는 남유환에게도 인사를 건네면서, 관계를 조금 더 가깝게 만들 생각으로 민도하와 함께 다가갔다.그런데 가까이 가자마자 남유환이 서태우에게 묻는 말이 들렸다. “강서이 대표도 와?”남유환은 원래 외지 공장에서 생산 현황을 직접 챙기고 있었다. 기업인협회 정기총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일정을 조정해서 돌아온 참이었다.누가 봐도 강서이를 보러 온 것이었다.그저 얼굴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따로 대화를 나누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서태우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남유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강서이 대표가 네 상사 아니야? 넌 상사한테 관심이 그렇게 없냐?”서태우는 잠깐 말이 없다가 툭 내뱉었다. “나한테는 상사보다 학생부장 선생님에 가까워. 학생이 학생부장 선생님 보고 싶어 하는 거 봤냐?”남유환은 할 말을 잃었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틀린 비유도 아니었다.서태우는 차마 말하지 않았다. 사실 강서이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마주칠까 봐 피해 다니는 중이었다.강서이는 워낙 엄격했다. 조송메디컬 이사회에 들어온 뒤 회사 전반을 싹 정비했다.대충 일하면서 버티던 서태우에게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올려 보낸 업무자료나 보고서는 매번 강서이가
기업인협회 정기총회를 사흘 앞두고, 민두해의 비서가 초청 명단을 그로스캐피탈로 가져와서 강서이에게 확인을 부탁했다.명단에서 익숙한 이름 하나를 발견했지만, 강서이는 오래 시선을 두지 않고 그대로 끝까지 훑었다.비서가 설명했다. “우선 공식 초청 명단입니다. 동반 참석자 명단은 조금 늦게 정리될 예정입니다.”같은 시각 민도하도 노아리에게 기업인협회 정기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이야기했다.노아리는 곧바로 관심을 보였다.명단을 보니 초청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이었다.그만큼 새로운 인맥과 기회가 넘쳐나는 자리라는 뜻이었다.노아리는 민도하에게 자신도 함께 가고 싶다고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때 민도하가 먼저 말했다.“오후에 오로라 브라이덜앤뷰티 가 봐. 마음에 드는 드레스 하나 골라.”노아리의 마음이 단번에 들떴다. 민도하를 바라보는 눈빛도 부드럽게 녹아내렸다.무슨 일이 생기든, 바깥에서 어떤 소문이 돌든.민도하는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의 편에 서 있었다.며칠 동안 쌓였던 압박감도 민도하의 확고한 태도 앞에서는 금세 사라졌다.이런 확실한 편애는 강서이가 7년 동안 애를 써도 한 번도 얻지 못했던 것이었다.그러니 강서이는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노아리가 굳이 신경을 쓸 상대도 아니었다.노아리가 들뜬 마음으로 오로라 브라이덜앤뷰티에 드레스를 고르러 간 무렵, 강서이에게 두 번째 명단이 도착했다.동반 참석자 명단에서 노아리의 이름을 발견했지만 강서이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명단을 모두 확인한 뒤, 한지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서 드레스를 고르는 걸 도와 달라고 했다.중요한 행사에 참석한다는 말을 들은 한지수는 자신 있게 가슴을 두드렸다. 사람들 시선을 싹 쓸어올 드레스를 골라 주겠다고 장담했다.“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어. 나는 민 회장님 대신 참석하는 거라 너무 튀면 안 돼.”[그럼 조용하게 고급스러운 쪽으로 가자.]한지수는 원래 감각이 좋았다. 그래서 강서이는 의상 선택만큼은 전혀 걱정하지
이예수의 말을 들은 노아리는 곧바로 핸드폰으로 국내 최대 포털을 열었다. 메인 화면에서 이예수가 말한 기자회견 영상을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영상을 누르자 가장 먼저 들린 건 장재영의 공식 해명이었다.[오늘 아침 보도된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영승반도체와 협력을 논의하거나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영승반도체는 충분한 기술력과 시장 경쟁력을 갖춘 훌륭한 기업이고, 업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그 한마디는 노아리의 체면을 정면에서 깎아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사업이나 언론 흐름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아침의 기사가 의도적으로 띄운 홍보성 기사였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노아리가 그런 식으로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던 건, 영승반도체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업계에 없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미리 기사를 내보낸 건 장재영에게 사실상 공개적으로 협력 의사를 내민 것과 같았다.노아리는 장재영이 거절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전에 기사가 나간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장재영이 직접 기자회견까지 열어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노아리 입장에서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셈이었다.인터넷에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노아리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성이남은 바로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선배, 무슨 일 있어?”노아리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차갑게 굳은 얼굴로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 식사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괜찮아. 급한 일이면 먼저 가도 돼.” 성이남이 배려하듯 말했다.“여기는 내가 계산할게.”노아리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성이남은 노아리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노아리와 이예수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노아리의 식사 자리는 예정과 달리 일찍 끝났다.이예수 쪽 모임도 분위기가 틀어져서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노장훈
강서이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그날 노아리의 기분은 아주 좋았다.아침에 나온 기사 하나로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기 때문이다.영승반도체 주가는 며칠째 이어지던 하락세를 멈추고 큰 폭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상승세가 쉽게 꺾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그동안 노아리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주주들도 더 이상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심지어 전날 노아리를 피했던 유진욱 대표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했다.말투도 꽤 공손했다. 지방 출장을 마치고 막 돌아왔는데, 노아리가 어제 회사를 다녀갔다는 말을 듣고 바로 연락했다는 설명이었다.미안하다는 말도 몇 번이나 반복했다.노아리도 속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굳이 따지지 않고 여유롭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유진욱은 흔쾌히 받아들였다.노아리는 잠깐 생각하다 성이남에게도 함께 식사하자고 연락했다. 전날 약속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유진욱이 전에는 자신을 가볍게 봤던 게 아닌가.그렇다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인맥과 자원이 있는지 직접 보여 주면 됐다.이예수에게도 전날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던 사모님 몇 명이 먼저 연락하면서 약속을 잡자고 했다.물론 변수린은 그 안에 없었다.이예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기분 좋게 옷을 고르고 외출 준비를 했다.막 집을 나서려던 때 노장훈이 돌아왔다.“내일 온다며?” 이예수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일이 일찍 끝나서 그냥 왔어.” 노장훈은 겨드랑이에 경제 잡지 두 권을 끼고 있었다. 이예수를 한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약속 있어?”“응. 사모님들이랑 차 마시기로 했어.” 이예수는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까지 한 번 정리했다.“그럼 다녀와.” 노장훈은 신발을 갈아 신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저녁은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부탁해 놨어.”“알았어.”노장훈은 서재로 들어가서 가져온 잡지 두 권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표지 인물은 모두 강서이였다.노장훈은 먼저 잡지를 한 번 훑었다.강서이와 관련된 인터뷰 부분만 골라 읽었다.다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