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들어온 태후는 앉아서 미동이 없는 기양을 바라보다가 어색함을 금치 못하고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폐하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좀 더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무리 큰일이라도 폐하의 몸을 먼저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염려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기양은 차갑게 대답하고는 손을 들어 무심하게 오른쪽을 가리켰다. “정신이 좋지 않아,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습니다. 앉으시지요!” 태후는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혼자 서있던 현비는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기양에게 인사했다. “소첩,
기양의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챈 손량언은 한숨을 쉬며 기양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미 사람을 시켜 서청잔에게 서신을 보냈으니, 소식을 받는 즉시 말을 타고 밤낮으로 달려 돌아올 것입니다.”기양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즉시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 사람을 시켜 도성에서 서북으로 통하는 모든 주요 길목을 봉쇄하고, 서북 군영으로 가는 모든 서신을 가로채라. 이 일은 절대로 심장안의 귀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서북 전선이 위급한 상황이니, 절대 이 일로 인해 마음을 흩트려서는 안
호진충은 머리가 영리하였다. 그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황제의 뜻을 알아차렸다. ‘폐하께선 그 불이 강미인이 스스로 놓은 것이라고 믿지 않으시는구나. 심지어 강미인이 죽지 않고 궁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궁 밖으로 도망쳤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냉궁은 당시 폐하께서 직접 배치한 호위들이 지키고 있었기에 외부인은 전혀 들어갈 수 없었다. 만약 그녀 스스로 불을 놓은 것이 아니라면, 호위들이 놓은 것이란 말인가? 만에 하나, 강미인이 정말 가짜 죽음을 빌미로 도망치려 했다면, 이경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
그의 웃음소리는 비통함이 가득했지만, 핏기가 서린 눈은 음침하고 잔혹했다. “강만여, 내게 이래야 했느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것이냐? 네 죽음으로 짐에게 복수하려는 것이냐? 네가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죽으면 내가 너를 위해 통곡하면서 궁에 남기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라도 할 것 같았느냐? 꿈 깨라! 넌 그저 죄를 지은 노비일 뿐이다. 네 아비와 언니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쓴 것이다. 내가 너 없이는 안 될 줄 알았느냐?”“짐이 너에게 명분을 주고 후궁으로 받아들인 것은 이미 너에게 크나큰 은혜를 베푼 것이다. 감히 은혜도 모
호진충은 더 이상 말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급히 가마를 준비해 그를 함복궁으로 모셨다. 하늘 막 샐 무렵,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불탄 뒤의 탁한 냄새가 스멀스멀 풍겼다. 기양은 팔꿈치로 이마를 괴고 지친 듯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불길에서 강만여의 시신이 운구되는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가슴이 아려왔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좁고 긴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왜 그리 먼 곳에 뒀을까? 눈앞에 두고 지켜봐야 했다.’하지만 사람이 죽은 마당에 이제 와서 뭐라고 해봤자 이미 늦었다. ‘정말 죽은 것일까?
궁 안을 가득 메웠던 눈은 화재로 인해 녹았고, 진흙탕이 되어 있었다. 사흘 전에만 해도 그의 곁에서 숨을 쉬고 있던 이가 진흙 속에 놓여 있다. ‘정말 죽었을까? 이렇게 죽었다고?’순간 기양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건조한 눈빛으로 두 시신 사이를 오가며 살폈다. 어느 것이 강만여인지 분간하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이 완전히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무너진 들보에 맞았는지 얼굴은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기양은 그저 가슴속에서 피가 역류하는 듯했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끝없이 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