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아이의 이름은 은호였다.
은매가 처음 그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는 거의 소리라기보다 숨에 가까웠다. 은호야. 그 두 글자가 입술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매는 다시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울지는 않았다. 동생이 깰까 봐 참는 울음이었다.
은호는 작았다.
일곱 살이라 들었지만, 마른 몸은 그보다 더 어려 보였다. 손목에는 회색 실이 묶여 있던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기침을 참을 때마다 혀끝으로 이를 쳤다. 딱, 딱. 작은 소리는 방 안 사람들의 숨을 매번 붙잡았다.
왕부 의원은 은호의 맥을 짚고 오래 말이 없었다.
청아는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해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은매는 의원의 얼굴만 보았다. 월령은 은매를 보았다. 위지헌은 문가에 서서 아무도 보지 않는 듯했으나, 사실은 모두를 보고 있었다.
"당장 목숨을 잃을 맥은 아닙니다."
의원이 마침내 말했다.
은매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다만 오래 굶었고, 연기를 마셨습니다. 며칠은 열이 오를 수 있습니다."
"연기요?"
월령이 물었다.
"수레 안에 젖은 쑥을 태운 흔적이 있습니다. 기침 소리를 숨기려 한 듯합니다."
은매가 동생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기침 소리를 숨기려 아이 곁에 연기를 피웠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그저 방법이었을 것이다. 들키지 않기 위한 조치, 장부에 남지 않는 운반의 요령. 그러나 은매에게는 동생의 작은 폐 속에 들어간 검은 연기였다.
월령은 눈을 내리깔았다.
세상은 늘 그렇게 잔인했다.
종이 위에서는 수레 하나, 잡역 아이 하나, 병든 여인 하나.
사람의 방 안에서는 기침과 손목과 울음을 참는 목울대.
두 세계 사이를 잇는 것이 장부였다.
그리고 장부는 거짓말을 배운 지 오래였다.
아침이 되기도 전에 호부에서 사람이 왔다.
이번에는 공문을 든 서리가 아니었다. 짙은 남색 관복을 입은 사내가 정청에 들었다. 키는 크지 않았으나, 허리를 곧게 세운 자세 때문에 작아 보이지 않았다. 눈매는 가늘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웃지 않는 얼굴이었으나, 무례하지는 않았다.
호부 낭중 허도겸.
월령은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변경 군량을 줄였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남쪽 수해지에 곡식을 돌려 백성 수만 명을 굶기지 않았다는 사람. 군문에서는 그를 종이 위의 칼잡이라 불렀고, 민간에서는 비 오는 해에 굶어 죽는 사람을 줄인 관리라 했다.
그는 악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악의로 움직이는 사람은 막으면 된다. 그러나 자기 나름의 옳음을 쥐고 오는 사람은, 그 옳음이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는 줄도 모를 때가 있었다.
허도겸은 심도윤이 없는 정청에서 둘째 숙부와 예를 나누고, 심 부인의 병세를 물었다. 월령에게도 예를 갖추었다. 그 시선은 젊은 여식을 얕보는 눈이 아니었다. 그러나 믿는 눈도 아니었다.
"심가의 봉인 장부를 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다만 목록본과 등초본을 맞춰 보아야 합니다. 북문군 군량은 나라의 혈맥이니, 심가의 명예만큼 호부의 책임도 가볍지 않습니다."
둘째 숙부가 불편한 웃음을 지었다.
"대장군께서 돌아오시면 직접..."
"대장군께서 변경에 계시니 더더욱 장부가 말해야 합니다."
허도겸의 말은 차분했다.
"나라의 창고는 사람의 인품을 믿고 열 수 없습니다."
정청 안 공기가 굳었다.
월령은 그 말을 미워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맞는 말이 누구의 손에 들렸는가였다.
허도겸은 이어 말했다.
"최근 남운로에서 회암역으로 빠지는 군량 보조 수레가 세 차례 늦었습니다. 수레 문서에는 심가 별고의 인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둘째 숙부가 말했다.
허도겸은 곧장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얇은 목갑을 열어 작은 나무 패 세 개를 꺼냈다.
월령의 눈이 그 패에 닿았다.
어제 위지헌이 보낸 회암역 짐패와 모양이 같았다.
다만 패의 한 귀퉁이에 아주 작게 금빛이 남아 있었다.
자녕궁 금선.
월령은 숨을 고르게 했다.
허도겸은 그 빛을 모르는 듯했다. 혹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듯했다.
"심가에서 이 패를 알아보는 분이 계십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월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빨리 아는 척하면 손끝이 드러난다.
한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군량 일은 저희 여식들이 알 일이 아닙니다. 낭중께서도 너무 염려가 깊으신 듯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아래에는 서둘러 덮으려는 손길이 있었다.
허도겸의 시선이 한씨에게 갔다.
"부인께서는 심가 안살림을 오래 보셨다 들었습니다."
"집안의 찬장과 바느질함을 보았을 뿐이지요."
"찬장과 창고는 나라의 장부와 다르지 않습니다. 모자라면 사람이 굶고, 남으면 누군가 숨긴 것입니다."
한씨의 얼굴이 아주 잠깐 굳었다.
월령은 허도겸을 다시 보았다.
이 사람은 찌르는 법을 안다.
그러나 찌르는 곳이 늘 옳지는 않을 것이다.
서윤은 한씨 뒤에 앉아 있었다. 어제보다 더 조용했다. 눈빛은 은매 쪽 일 이후로 낮아져 있었고, 손은 무릎 위에서 가지런했다. 어른처럼 앉아 있으려 애쓰는 모습이 어쩐지 더 어려 보였다.
허도겸은 서윤에게 오래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 짧은 무관심이 오히려 서윤을 작게 흔들었다.
궁은 그 아이를 불러 주었고, 태후는 그 아이의 붓을 칭찬했다. 그런데 조정의 사내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쓸모를 얻은 아이는, 쓸모없게 지나쳐지는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월령은 서윤의 손끝이 치맛자락을 누르는 것을 보았다.
"목록본은 아직 말리는 중입니다."
월령이 조용히 말했다.
허도겸의 시선이 그녀에게 왔다.
"말린다?"
"비가 온 뒤라 흡지가 눅었습니다. 젖은 종이를 곧장 접으면 먹이 번져 훗날 말썽이 됩니다."
"심 아가씨께서 장부를 보십니까?"
"어머니 병환 탓에 서원당 일을 조금 거들 뿐입니다."
월령은 고개를 낮췄다.
"다만 종이는 아껴 써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허도겸은 그녀를 오래 보았다.
그 눈은 미색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말의 결을 재는 눈이었다.
"아껴 쓰는 사람은 종이를 함부로 태우지 않겠지요."
월령의 속눈썹이 아주 작게 내려앉았다.
회암역의 그을린 패.
남운로의 연기.
사라진 수레.
그는 이미 불을 알고 있었다.
"태워진 종이를 보셨습니까."
월령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허도겸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가씨께서는 젖은 종이를 말린다 하셨지요. 저는 탄 종이를 모읍니다."
그는 목갑을 닫았다.
"둘 다 남들이 버린 것을 보는 일입니다."
정청의 공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허도겸은 적일까.
아니면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돌일까.
월령은 답을 보류했다.
그날 오후, 허도겸은 심가 별고와 서고의 바깥 봉인만 확인하고 돌아갔다. 원본은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지나간 자리는 오래 남았다. 하인들은 호부 관리가 심가를 의심한다 수군거렸고, 둘째 숙부는 창고 열쇠를 다시 세었다. 한씨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손수건 모서리를 오래 만졌다.
서윤은 아무 말 없이 월령을 따라 대청으로 왔다.
"언니."
"응."
"저 사람은 저희 집을 미워하나요?"
월령은 잠시 생각했다.
"아니."
"그럼 왜 저렇게 말해요?"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어서."
서윤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월령은 조금 더 쉽게 말했다.
"심가가 북문을 지킨다고 믿듯이, 저 사람은 나라의 창고를 지킨다고 믿는 거야."
"그럼 저희와 같은 편 아닌가요?"
"같은 것을 지켜도, 서로 다른 문 앞에 서 있으면 마주 보고 칼을 들 때가 있어."
서윤은 한참 말이 없었다.
"언니는 그런 말을 어떻게 알아요?"
월령은 또 같은 물음을 들었다.
요즘 서윤은 자주 그렇게 물었다.
월령은 대답 대신 대청에 말려 둔 흡지를 보았다.
"종이가 알려 줬어."
서윤은 눈살을 아주 조금 찌푸렸다.
"언니는 가끔 이상한 말을 해요."
"미안해."
"싫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서윤은 곧장 덧붙였다.
말끝이 급했다.
월령은 웃었다.
"알아."
그 작은 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서윤은 떠나지 않았다. 대청 한쪽에 앉아 마른 흡지를 접는 청아를 도왔다. 청아는 처음에는 굳었지만, 곧 종이 접는 방향을 알려 주었다. 두 아이가 같은 종이를 사이에 두고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는 모습은 위태롭지만 따뜻했다.
월령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숨을 놓았다.
그때 윤백이 왔다.
늘 그렇듯 지나가는 사람처럼 담장 그림자에서 나타났다.
청아는 이제 놀라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도 조금 놀랐다.
"윤백 나리께서는 문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까?"
"문은 주로 손님에게 열립니다."
"그럼 나리께서는 손님이 아니십니까?"
"아마 아닐 겁니다."
청아는 그 답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가늘게 떴다.
월령은 윤백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의 가벼운 기색이 조금 덜했다.
"왕야께서 전하신 말입니까."
"예."
윤백은 작은 목패 하나를 내밀었다.
"은호 도련님은 당분간 왕부 의원의 손에 맡기는 편이 좋겠습니다. 심가 안에 있으면 다시 손이 뻗을 수 있습니다."
은매의 얼굴이 굳었다.
월령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동생을 되찾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았다. 다시 떼어 놓는다는 말은 은매에게 잔인했다. 그러나 심가 안쪽 길이 뚫렸다는 사실 또한 잊을 수 없었다.
윤백은 은매를 보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왕부 의원은 아이 기침을 잘 봅니다. 무진이 문 앞에 설 겁니다."
은매는 동생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월령은 그 곁에 앉았다.
"은매야."
"아가씨."
"네가 원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을게."
윤백의 눈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매는 동생을 보았다.
은호는 열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작은 손은 이불 끝을 꼭 쥐고 있었고, 기침은 조금 잦아들었다.
"왕부가 더 안전합니까."
은매가 물었다.
윤백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이번에는 월령이 답했다.
"지금은."
은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럼 보내겠습니다."
그 말은 칼처럼 나왔다.
"제가 또 붙잡고 있다가 잃으면..."
"은매."
월령이 낮게 불렀다.
"보내는 것도 지키는 일일 때가 있어."
은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제가 따라가도 됩니까."
윤백은 잠시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왕부에는..."
"안 된다면 안 된다고 하십시오."
은매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이제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윤백은 드물게 말문이 막혔다.
월령은 은매의 등을 보았다.
이 아이는 어제와 달라졌다.
죄책감이 사람을 깎아 내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주 날카로운 뼈를 남긴다.
그때 담장 밖에서 강무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따라와도 된다."
청아가 화들짝 돌아보았다.
"강 호위님도 계셨어요?"
"있었다."
"왜 다들 담장에 계세요?"
강무진은 답을 찾지 못했다.
윤백이 아주 작게 말했다.
"왕부 담장은 교육이 좋습니다."
"윤백."
강무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청아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은매에게 작은 보따리를 챙겨 주기 시작했다. 삶은 배, 마른 수건, 은호가 깰 때 먹일 꿀물, 그리고 회색 실 대신 부드러운 흰 실 한 타래.
"이건 혹시 몰라서."
청아가 말했다.
은매는 그 실을 받아 오래 보았다.
"고마워."
"돌아오면 갚아."
"무엇으로?"
"살아서."
청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은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가 왕부로 옮겨진 뒤, 서원당은 한결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낯설었다.
월령은 밤이 깊어질 무렵, 대청에 남은 흡지를 다시 살폈다. 볕을 오래 받은 종이는 말라 있었고, 먹이 지나간 자리는 더 선명해졌다. 그중 한 장에 아주 가는 금빛 가루가 묻어 있었다.
서윤이 돌려놓은 종이.
월령은 그것을 등불 아래 기울였다.
금선 가루가 종이 가장자리에서 아주 희미하게 빛났다.
자녕궁이 서윤에게 닿았고,
그 손은 다시 심가 장부에 닿았다.
이제 호부가 그 빛을 보면, 서윤이 아니라 심가 전체를 볼 것이다.
월령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접으면 결이 남는다.
대신 넓게 펴 둔 채, 등불을 낮췄다.
그때 밖에서 위지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보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월령은 고개를 들었다.
위지헌은 문턱 밖에 서 있었다. 오늘은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감송향은 이미 방 안에 닿아 있었다.
"왕야께서는 늘 늦은 시간에 오십니다."
월령이 말했다.
말하고 나서야 조금 날카로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지헌의 눈빛이 아주 희미하게 움직였다.
"그럼 낮에 올까."
"그건..."
"정말?"
그가 낮게 물었다.
"낮에 오면 덜 놀라겠나?"
월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위지헌은 아주 조금 가까이 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턱을 넘지는 않았다.
"장부는 종이만 보아서는 늦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종이를 보게 만들었는지 봐야 한다."
월령은 금빛이 묻은 흡지를 내려다보았다.
"서윤이를 보게 만들려는 겁니까."
"아니."
위지헌의 대답은 빨랐다.
"심가를 보게 만들려는 것이다. 서윤은 문고리로 쓰였을 뿐."
그는 잠시 멈췄다가, 월령이 알아들을 수 있게 덧붙였다.
"문고리는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문을 만든 사람과 열려는 사람을 같이 봐야 한다는 뜻이지."
월령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어렵지 않게 말씀하시려 애쓰시는군요."
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네가 어렵게 알아듣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 말은 칭찬 같지 않았다.
월령은 오히려 서늘하게 들었다. 자신이 쓸모 있는 판단을 할 수 있으니 설명한다는 뜻처럼.
그런데 위지헌의 눈빛은 아주 조금 달랐다.
경외에 가까운 무언가가 그 안에 있었다.
월령은 그 이름을 몰랐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위지헌은 손을 뻗어 흡지에 닿지 않는 거리에서 멈췄다.
"이 종이는 내일 호부가 볼 것이다."
"그럼 숨겨야..."
"숨기면 서윤의 손만 남는다."
"보이면요?"
"심가가 물린다."
월령의 속눈썹이 내려앉았다.
"어느 쪽도 좋지 않군요."
"그래서 세 번째 길을 만든다."
"어떻게요?"
위지헌은 그녀를 보았다.
"허도겸에게 먼저 보여라."
월령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호부 낭중에게요?"
"그자는 종이를 태운 사람을 싫어한다. 종이에 묻은 것을 숨긴 사람도 싫어할 것이다."
"그가 우리 편이 될까요?"
"아니다."
위지헌은 바로 말했다.
"하지만 자기 편일 것이다."
그 말은 이상하게 쉽게 이해됐다.
월령은 등불 아래 놓인 흡지를 다시 보았다.
적과 아군만으로는 나라가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명분, 자기 자리, 자기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더 많다. 허도겸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럼 그의 명분을 건드려야겠군요."
위지헌의 눈빛이 조용히 깊어졌다.
"그래."
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
"역시 너는 길을 빨리 본다."
월령은 그 말에 오히려 몸을 움츠렸다.
칭찬이라기보다 감시처럼 느껴졌다.
위지헌은 그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무섭게 하려 한 말은 아니다."
그가 덧붙였다.
"내가 감탄했다는 뜻이다."
월령은 숨을 놓쳤다.
그렇게까지 쉽게 말해 주면, 오히려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바깥에서 밤바람이 조용히 불었다.
등불이 흔들리고, 금빛 가루가 흡지 위에서 아주 작게 살아났다.
월령은 그 빛을 보며 알았다.
내일은 장부가 아니라,
사람의 손이 심문받는 날이 될 것이다.
위명서는 언제나 알맞은 때에 왔다. 너무 이른 듯하지만 무례라 말하기 어려운 시각. 너무 걱정스러운 듯하지만 속셈이라 몰기 어려운 얼굴. 황자의 신분으로 장군가의 문 앞에 서 있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낮아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걸음. 심가의 대문 앞에는 이미 하인들이 모여 있었다. 아침 물을 뿌리던 아이는 물동이를 놓은 채 얼어 있었고, 늙은 문지기는 허리를 숙였으나 눈은 조심스럽게 위명서의 뒤쪽을 보았다. 황자의 뒤에는 호위 둘과 내관 하나뿐이었다. 많은 사람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배려처럼 보였다.월령은 그 배려가 더 무서웠다. 소문은 손이 적을수록 더 날래게 움직일 때가 있다."이른 걸음이었습니다." 위명서가 심도윤 대신 마중 나온 둘째 숙부에게 말했다. "그러나 밤새 심가 안에 흉한 말이 돌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둘째 숙부의 얼굴이 굳었다. "전하께서 걱정해 주실 일이 아닙니다." "심가는 나라의 북문을 지킨 집입니다. 그 집 여식의 이름이 흔들리면, 백성들도 나라의 마음을 의심하겠지요."위명서는 북문이라는 말을 참 부드럽게 했다. 그 말은 늘 심가의 자랑을 어루만지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목에 걸리는 줄처럼 느껴졌다.월령은 조금 뒤에 서 있었다. 서윤은 나오지 않았다. 한씨도 방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서원당에서 상황을 듣고, 월령에게 사람을 너무 많이 들이지 말라는 말만 전했다. 어머니의 말은 짧았지만 정확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집은 집이 아니게 된다.위명서의 시선이 월령에게 닿았다. "심 아가씨."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예를 갖췄다. 황자가 장군가의 딸에게 보이는 지나친 예. 모르는 사람은 감동할 것이다. 아는 사람은 숨이 차가워진다.월령은 고개를 숙였다. "전하." "놀라셨겠지요." "아직 놀랄 일이 많아, 어느 것부터 놀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말은 부드러웠다. 가시도 없었다. 그러나 위명서의 눈빛이 아주 잠깐 멈췄다. "심 아가씨께서는 가끔 아주 어린 얼굴로 어려운 말을 하십니다." "어렵게 들렸
한씨는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서원당 옆 작은 방에는 따뜻한 물이 놓였고, 청아가 급히 데운 죽도 한 그릇 놓였다. 이번 죽은 타지 않았다. 청아는 그것을 세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상 위에 올렸다."이번에는 바닥까지 살아 있습니다."그녀가 낮게 말했다.은호가 이불 속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제가 봐도 됩니까.""너는 이제 감별관이니?""어제 제가 맞았습니다."청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은매가 아주 작게 웃었다.그 웃음은 눈물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웃음이었다.월령은 그 작은 소리를 마음에 담았다. 밤새 편문 앞에서 본 것들, 한씨의 무너진 얼굴, 서윤의 떨리던 손, 잘린 붓끝에 묻은 예부의 붉은 실이 아직 방 안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청아는 죽의 바닥을 확인했고, 은호는 그 확인을 다시 확인하려 했다.그 사소함 덕분에 아침은 겨우 아침다웠다.서윤은 한씨 곁에 앉아 있었다.어머니의 손을 잡지는 못했다. 대신 이불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붙잡고 있었다. 한씨는 그 손을 보았고, 보지 못한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서윤아."한씨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서윤의 어깨가 움찔했다."예, 어머니."그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어제와 달랐다. 어머니 마음에 들려고 꾸민 어른의 말이 아니라, 다칠까 봐 조심하는 딸의 말이었다.한씨는 오래 침묵했다."어미가 너를 아낀다."서윤의 눈가가 붉어졌다."예.""그 말로 네가 다친 것이 없어지지는 않겠지."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한씨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밤새 울지 않은 눈은 오히려 더 붉었다."나는 네가 뒤에 서는 것이 싫었다. 내가 평생 그렇게 서 있었으니, 너는 앞으로 가길 바랐다."그녀의 시선이 월령을 향했다가 곧 떨어졌다."그러다 네 등을 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서윤의 손이 이불을 더 세게 쥐었다.한씨는 그 손을 보았다."어젯밤 네가 월령이를 사람이라 했지."서윤은 고개를 숙였다."예.""어미는 너도 사람이라는 걸 자꾸 잊었다."방 안이 조용
남쪽 편문은 낮에도 어두운 곳이었다.담장이 높고, 늙은 측백나무가 길게 그늘을 드리웠으며, 문 아래 돌계단에는 햇빛이 오래 머물지 못했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그곳의 흙은 늘 조금 눅었다. 집 안에서 버린 물이 몰래 흘러드는 자리라 했다.밤에는 그 어둠이 더 깊어졌다.등불 하나가 멀리 회랑 끝에서 흔들렸고, 편문 앞에는 사람 그림자 셋이 서 있었다.월령은 걸음을 늦췄다.위지헌의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뛰지 마라.혼자 앞서지 마라.그 말을 정치적 수로 이해하려 애썼지만, 몸은 그보다 먼저 기억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불안을 꾸짖는 소리가 아니라, 넘치는 물을 손바닥으로 눌러 주는 듯한 소리였다.월령은 숨을 고르게 했다.서윤은 편문 가까이에 서 있었다.잠옷 위에 급히 걸친 외투가 어깨에서 조금 흘러내려 있었다. 머리도 제대로 묶지 못했다. 어른스럽게 꾸민 얼굴이 아닌, 잠을 잃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그 옆에 한씨가 서 있었고, 문밖에는 검은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이 있었다.금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떨고 있었다.문밖의 여인은 고개를 숙였지만, 손은 숙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길고 마디가 굳어 있었다. 붓을 잡은 손이 아니라, 비단 끈과 열쇠를 오래 다룬 손이었다.궁녀의 손.문상궁의 사람."숙모."월령의 목소리는 낮았다.한씨의 어깨가 움찔했다.서윤은 돌아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언니."그 한마디에 죄책감이 먼저 묻어났다.월령은 서윤을 보았다."춥겠다."서윤은 예상하지 못한 말에 입술을 달싹였다."예?""밤공기가 차. 외투를 여미렴."서윤은 손을 들어 외투를 여몄다. 손이 떨렸다.한씨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오늘도 단정했다. 급히 나온 사람치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런 단정함이 오히려 더 절박해 보였다. 무너질 사람은 때로 가장 반듯하게 앉아 무너진다."큰아가씨."한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밤중에 여기까지 오다니, 몸이 상합니다.""숙모께서도 밤중
새벽이 오기 전의 집은 가장 솔직했다.낮에는 예법이 사람을 세우고, 밤에는 두려움이 사람을 눕힌다. 그러나 새벽 직전의 어둠에는 누구도 완전히 서 있지도 눕지도 못한다. 닫힌 문 안쪽에서는 잠든 척하는 숨이 얇아지고, 깨어 있는 등불은 심지를 낮춘 채 오래 버틴다.월령은 서원당 곁 작은 서실에 앉아 있었다.등불은 낮췄고, 탁자 위에는 서윤의 오래된 글과 허도겸이 보낸 등초, 문상궁의 먹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종이와 먹과 사람의 손. 전부 말이 없는데도, 방 안은 너무 많은 말로 가득 찬 듯했다.그녀는 위조된 글의 마지막 획을 다시 보았다.받겠다.그 끝이 유난히 무거웠다.서윤은 끝을 그렇게 누르지 않는다. 서윤의 글은 끝에 이르면 오히려 가벼워졌다.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의 손은 마지막에서 긴장이 풀린다. 그러나 이 글은 마지막에서 힘이 들어갔다.누군가 결말을 꼭 눌러 닫은 것이다.마치 도망갈 문을 막듯이."잠을 자지 않았군."문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월령은 숨을 멈추었다가, 곧 자신을 꾸짖듯 천천히 내쉬었다.위지헌이었다.그가 문턱을 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먹색 대창포 자락에는 새벽 안개가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었고, 젖은 돌을 밟고 온 듯 신 끝이 어두웠다. 감송향이 서실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월령은 일어나 예를 갖췄다."왕야.""앉아 있어라."말은 낮았지만 딱딱하지 않았다.그는 곧 자신이 너무 짧게 말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덧붙였다."네가 일어서면 종이가 날린다."월령은 잠시 멈췄다.그 말이 명령인지 배려인지 구별하지 못했다.위지헌은 문턱을 넘었다.그는 탁자 가까이 오지 않았다. 가까이 오면 그녀가 숨을 더 조심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감송향은 이미 가까웠다. 월령은 그 향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의식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먹을 보았느냐.""예.""무슨 생각을 했지."월령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자녕궁의 종이, 서윤의 글씨, 문상궁의 먹. 세 가지가
밤은 쉽게 깊어지지 않았다.심가의 안채에는 등불이 오래 남았다. 서원당 처마 아래 작은 등이 하나 켜져 있었고, 약방 쪽에도 낮은 불빛이 흔들렸다. 하인들은 평소보다 발소리를 낮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 전체가 숨을 작게 쉬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월령은 목갑 속 먹을 다시 닫았다.문상궁이 두고 간 먹과 같은 냄새.그 말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궁의 물건은 여러 손을 지난다. 문상궁이 들고 왔다고 해서 문상궁이 썼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태후의 뜻이라 해도 태후가 직접 먹을 갈았을 리 없고, 위명서가 필요로 했다고 해서 그가 손끝에 먹을 묻혔을 리 없다.궁의 명은 대개 남의 손끝에 묻어 왔다.손끝은 씻기 쉽고, 명은 더 쉽게 사라졌다."언니."서윤이 아주 낮게 불렀다.월령은 고개를 돌렸다.서윤은 아직 붓함 곁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종이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아이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얇게 놓여 있었다. 서윤은 그것들을 다시 접지 못했다."제가 예전에 언니 글씨를 따라 쓴 걸,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요.""있었겠지."월령은 거짓말하지 않았다.서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래서 월령은 말을 낮췄다."하녀가 보았을 수도 있고, 숙모께서 보셨을 수도 있고, 글씨를 가르치던 사람이 기억했을 수도 있어.""그럼 제가...""아니야."월령은 서윤의 말을 부드럽게 막았다."네가 누군가에게 칼을 준 것이 아니야. 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그것을 칼로 갈았을 뿐이야."서윤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이해한 얼굴은 아니었다.하지만 조금 덜 무너진 얼굴이었다.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그때 청아가 조심스럽게 낮은 상 위에 찻잔을 올렸다."차는 아니고 보리물입니다.""왜 그렇게 작게 말하니.""궁에서 차가 나오면 늘 일이 생겨서요."청아는 아주 진지했다."소인은 당분간 차를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은호가 작은 이불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보리도 볶으면 검습니다."청아가 눈을 크게 떴다."그런 말
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말을 잃은 아이의 얼굴은 이상하게 어려 보였다. 조금 전까지 찹쌀떡 접시를 들고 어른스러운 말을 고르던 입술은 이제 색을 잃었고, 속눈썹 아래 눈동자는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흔들렸다.방 안에는 눌어붙은 죽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창을 열었는데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불에 닿은 곡식의 냄새는 사람의 옷자락보다 오래 방 안에 머문다. 궁에서 온 글 한 줄도 그랬다. 읽히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곳마다 얇게 달라붙었다.심월령은 기윤이 전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심월령은 황실의 은혜를 달게 받겠다.그 글씨가 서윤의 손과 닮았다고 했다.닮았다.같다고 못 박지 않으면서도, 다르다고도 놓아주지 않았다. 칼보다 얇은 말이었다.서윤의 손끝이 떨렸다."저는 쓰지 않았어요."목소리가 작았다."언니, 저는 정말...""알아."월령은 너무 빨리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급한 믿음은 때로 믿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는 서윤의 손을 보았다. 찹쌀가루가 아직 손톱 가장자리에 희게 끼어 있었다. 궁의 종이를 만진 손이라기보다, 부엌에서 반죽을 조금 망친 아이의 손이었다."네가 쓰지 않은 것 알아."서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그런데 왜 제 글씨와 닮았을까요."그 물음에는 두려움보다 더 깊은 부끄러움이 있었다.월령은 그 부끄러움을 알아보았다.서윤은 늘 남의 마음에 드는 법을 먼저 배웠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말투, 어른들이 기특하다 여기는 자세, 태후가 눈길을 줄 만한 글씨. 자기 이름을 쓰기 전에 남의 눈이 좋아하는 선을 익힌 아이였다."혹시."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제가 예전에 언니 글씨를 따라 쓴 적이 있어요."방 안이 조용해졌다.청아는 놀라 숨을 삼켰고, 은매는 은호의 어깨를 조금 더 감쌌다. 기윤은 문가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으나, 그 침묵도 들은 사람의 침묵이었다.월령은 서윤을 재촉하지 않았다."어릴 때요. 큰어머니께서 언니 글씨가 곱다 하셨고,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