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옛 산실이 열리자, '연'은 궁 안에서 자취를 감췄다.그러나 이번에는, 자취를 감출 자리가 없었다.월령은 옛 산실을 열기 전에, 이미 궁의 문마다 사람을 세워 두었다. 강무진이 성문 밖을, 설련이 내명부의 안쪽을 살폈다. '연'이 옛 산실에서 몰려 나오면, 그 발이 어디로 가는지 보려는 것이었다.*설련이, 그 늙은 후궁의 자취를 곤원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옛 별당에서 찾았다.버려진 별당이었다. '연'은 옛 산실을 떠나, 또 다른 잊힌 자리로 옮겨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자리의 문마다 월령의 사람이 서 있었다.숨을 자리가 없어진 '연'은, 도망치지 않았다.도리어, 그 별당의 문을 스스로 열었다.*월령이 그 별당으로 향할 때, 위지헌은 내명부의 경계 앞에 섰다.거기까지가, 그의 걸음이 닿는 자리였다. 사내의 걸음은 그 안으로 들지 못했다. 두 생에 걸쳐 '연'이 숨어 온 자리가, 바로 그 사내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였다."…혼자, 괜찮겠느냐."위지헌이 낮게 물었다. 아내를 그 안으로 홀로 들여보내는 것이, 그의 얼굴에 오래된 아픔으로 스쳤다.전생에, 그는 그 경계 밖에서 늦었다. 이번 생에도, 그는 그 경계 앞에 서 있었다."괜찮아요."월령이 낮게 답했다."이번에는, 제가 걸어 들어가는 거예요. 끌려가는 게 아니라."*별당 안에, 늙은 후궁이 앉아 있었다.주름진 얼굴이었다. 종묘에서 위지헌과 눈을 마주친 그 얼굴. 붉은 꽃을 들고 형장을 지켜보던, 그 얼굴.월령이 그 앞에 섰다.두 생 만에, 처음으로 마주 보는 얼굴이었다. 전생에 월령은, 이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죽었다. 이번 생에, 그 얼굴을 살아서 마주 보고 있었다."…앉으시지요."늙은 후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 별당에 든 손님을 맞듯, 고요한 목소리였다.*월령은 앉지 않았다."당신이, '연'이군요.""'연'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하지 않았소."늙은 후궁이 옅게 웃었다."다만 지금은, 내가 그 이름을 쓰고 있소."월령의 손끝이 식었다.
월령이 곤원전에 든 것은, 이튿날 낮이었다.회임한 몸으로 궁에 드는 걸음이라, 황실의 호위가 앞뒤로 섰다. 그러나 그 걸음의 진짜 무게는, 호위가 아니라 월령이 품은 셈에 있었다.황후 하문정이, 그 걸음을 맞았다.곤원전에는 약 달인 냄새가 옅게 배어 있었다. 오래전 이 처소에서, 한 아이가 앓다 갔다. 그 냄새가 아직 벽에 남아 있는 듯했다.*"산실을, 곤원전 곁에 두고 싶다고?"황후가 물었다."예, 마마."월령이 낮게 아뢰었다."법도가 정비의 산실을 궁 안에 두라 하니, 저는 그 법도를 따르겠습니다. 다만, 그 산실을 마마의 눈이 닿는 자리에 두기를 청합니다."황후는 그 청을 오래 들었다.이 영리한 며느리가, 왜 제 산실을 굳이 곤원전 곁에 두려 하는지. 황후는 그 뜻을 어렴풋이 읽었다. 이 아이를 지우려는 손이, 궁 안에 있다는 것을.황후는 그것을 소리 내어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며느리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궁에는 벽에도 귀가 있었다.*"…네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나는 다 묻지 않으마."황후가 낮게 말했다."다만, 이 자리에서 아이를 낳겠다면, 이 자리가 그 아이를 지키마."월령은 그 말에, 고개를 깊이 숙였다.황후에게는, 오래전 지키지 못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를 잃은 자리에서, 다른 아이를 지키겠다는 말이었다. 부질없는 마음인 줄 안다던 그 마음을, 황후는 이제 부질없지 않게 쓰고 있었다.며느리의 산실을 곤원전 곁에 두는 것은, 황후에게도 하나의 회수였다. 지키지 못한 아이의 자리 곁에서, 이번에는 한 아이를 지켜 내는 것.*며칠 뒤, 어전에서 명이 내렸다.정비의 산실을 정하는 데, 오래 비운 자리의 부정을 먼저 씻으라는 명이었다. 궁 안의 옛 산실들이 하나씩 열려, 정갈히 닦였다.그 가운데, 오래 잊힌 옛 산실 하나가 있었다.늙은 후궁이 숨어든, 바로 그 자리였다.월령이 그 자리를 산실 후보에 넣은 것은, 아이를 거기서 낳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를 열어, 숨은 얼굴을 끌어내려는
"거절하면 흠이 되고, 순종하면 덫이라면."월령이 낮게 말했다."그 산실을, 저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으로 만들면 돼요."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어떻게.""법도는, 정비가 궁 안에서 몸을 푼다는 데까지만 정해요. 그런데 어느 처소를 산실로 쓸지, 누가 어의와 산파를 대고 누가 지킬지는—법도가 정하지 않았어요. 저들은 제가 그걸 모른 채, 저들이 정한 자리로 들 거라고 여기고 있어요.""…네가 그 자리를 고른다는 말이냐.""네."*월령은 그 밤, 두 가지를 그렸다.하나는, 제가 들 산실을 '연'이 숨은 옛 산실이 아니라 황후의 곤원전 곁으로 삼는 것. 아이를 낳는 자리를 황후의 눈이 밤낮으로 닿는 자리에 두면, '연'의 손이 함부로 들지 못했다.하나는, 오래 쓰지 않은 옛 산실을 여는 것이었다."정비의 산실을 정할 때는, 오래 비운 자리의 부정부터 씻는 게 법도예요. 옛 산실은 오래 비어 있었으니, 산실 후보로 올리면 반드시 열어 씻어야 해요. 그 자리를 열면—""…그 안에 숨은 자가, 드러난다."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막지 말고 세라던 말이, 여기까지 자랐다. 지난겨울 위지헌이 '연'의 눈을 뽑지 않고 돌려 쓴 것처럼, 이번에는 월령이 저들의 법도를 뽑지 않고 돌려 쓰려 했다. 저들이 그녀를 가두려 세운 법도가, 저들의 숨은 얼굴을 끌어내는 손이 되는 것이었다.*월령은 그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았다.전생에 '연'은, 궁의 법도를 써서 월령을 고립시켰다. 이번 생에 월령은, 같은 법도를 써서 '연'을 몰아내려 했다.같은 도구였다. 다만, 쥔 손이 달랐다."전생에 저는, 저를 가둔 그 법도가 뭔지도 몰랐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이번 생에는, 그 법도를 제가 쥐어요. 저를 가두려던 자리에서, 저 사람을 끌어내는 거예요."위지헌은 그녀를 오래 보았다.회임한 몸으로, 두 생을 건너온 여인이 다시 셈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셈이 그녀를 가두는 셈이 아니라 그녀가 쥔 셈이었다.위지헌은 그 셈이
"…그 후궁이 숨은 곳은, 궁의 가장 깊은 곳입니다."강무진이 낮게 말했다."오래 쓰지 않아 잊힌, 옛 산실 자리입니다."월령의 손끝이 더 차게 식었다.산실. 아이를 낳는 자리였다. 그 여인이, 궁의 옛 산실에 숨어 있었다.*같은 날, 왕부에 조정의 기별 하나가 닿았다.내명부의 오랜 법도라 했다. 황실의 경사를 밴 정비는, 산실을 궁 안에 차려 몸을 푸는 것이 예라는 것이었다. 배중곤 같은 원로들이, 그 법도를 앞세워 상소를 올렸다.말은 그럴듯했다. 귀한 몸을 궁의 어의와 산파가 곁에서 돌본다는 것이었다. 거절하면, 황실의 법도를 어긴다는 흠이 되었다.*월령은 그 두 소식을, 나란히 놓았다.'연'이 옛 산실에 숨었다는 것. 그리고 조정이, 정비의 산실을 궁 안에 차리라 청한다는 것.두 소식이 겹치는 자리에서, 서늘한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만약 월령이 그 법도를 따라 궁 안 산실로 든다면, 그것은 '연'이 숨은 그 깊은 곳으로 제 발로 걸어드는 것이었다. 순검도, 왕부의 눈도, 위지헌의 손도 닿지 않는 자리로. 아이를 낳느라 가장 무력해지는 그 순간에.*전생의 그림과, 똑같았다.전생에도, 월령은 궁 안 깊은 곳에 고립되어 있었다. 곁에 아무도 없었고, 위지헌은 늦었다. '연'은 그 고립을 만들어, 어머니를 죽이고 월령을 죽였다.그때 월령은, 제가 어떤 그림 안에 갇혔는지도 모른 채 갇혔다. 이번 생에는, 그 그림이 다 그려지기 전에 보았다.이번 생에 '연'은, 같은 고립을 다시 짓고 있었다. 산실이라는 이름으로.이름만 바뀌었을 뿐, 짜임은 같았다. 고립을 만들고, 곁을 비우고, 가장 무력한 순간을 노리는 것. '연'은 두 생에 걸쳐, 같은 명부에 같은 방식을 적어 온 손이었다.'또, 늦으셨습니다.'종묘에서 그 여인이 지은 입 모양이, 이제야 온전히 읽혔다. 그 여인은, 이번 생에도 위지헌을 늦게 만들 셈이었다. 월령을 그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로 빼내어.*밤에, 월령은 위지헌에게 그 그림을 옮겼다."저를 궁 산실로 부
밤마다, 위지헌은 잠들기 전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아직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두 달 남짓한 몸이라, 배도 겨우 옅게 부풀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매일 밤 그 자리에 손을 얹었다."…아직 아무것도 없다면서요."월령이 옅게 웃었다."없어도, 얹어 두면 안다.""뭘요.""내가 여기 있다는 걸."월령은 그 말에,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그의 손은 따뜻했다. 전장의 굳은살이 박인 손인데도, 그 자리에서는 늘 따뜻했다. 그 온기가 아직 오지 않은 아이에게도 닿기를, 월령은 가만히 바랐다. 아직 오지 않은 아이에게, 아비가 매일 밤 제가 여기 있다고 이르고 있었다.전생에, 위지헌은 이 배 위에 손을 얹어 본 적이 없었다. 두 생을 통틀어, 이런 밤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밤, 그 처음을 반복했다. 잃을까 두려운 사람일수록, 있는 동안을 더 오래 만졌다.*"부군은,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모르겠다.""두 생을 사셨는데, 그것도 몰라요?"월령이 지난봄, 단 것을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와 같은 농을 했다. 위지헌의 입가가, 그때처럼 오래 움직였다."…무엇이든."그가 낮게 말했다."무사히 오기만 하면 된다."그 말끝에, 옅은 그늘이 스쳤다. 무사히 오기만 하면. 그 '무사히'가, 이 봄에는 당연한 말이 아니었다.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은 봄이었다. 여느 부부라면 아이가 무사히 오는 것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그 무사함을 두 생을 건너온 손에서 지켜 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여느 부부가 그냥 흘려보내는 밤들을 하나하나 눌러 담았다.*'연'은, 그 무사함을 노리고 있었다.전생에 어머니를 죽이고 월령을 죽인 그 여인이, 이번 생에는 이 아이의 무사함을 노렸다. 두 사람이 매일 밤 배에 손을 얹고 이르는 그 작은 안부를, 어둠 속에서 지우려 하고 있었다.위지헌은 그 어둠을 향해, 낮게 되뇌었다."두 번은, 늦지 않는다."월령은 그 말을, 어둠 속에
아이의 경사가 반포된 뒤로, 황후 하문정은 내명부의 눈을 조용히 조였다.섭정왕비의 산실이 될 자리, 드나들 손, 올라올 음식. 그 모든 것에 황후의 눈이 닿았다. 며느리가 청한 방패를, 황후는 말없이 함께 들고 있었다.황후가 그 방패를 함께 든 데에는, 며느리의 곧음을 본 것 말고도 다른 까닭이 있었다. 그 까닭은, 곤원전의 오래된 어둠 속에 있었다.*밤에, 경화제가 곤원전에 들었다.오랜만의 걸음이었다. 요즘 황제의 밤은 청화각의 젊은 후궁 쪽으로 자주 기울었고, 곤원전의 등은 자주 홀로 꺼졌다.젊은 후궁의 웃음은 가볍고 밝았고, 곤원전의 침묵은 오래되고 무거웠다. 황제는 가벼운 쪽으로 자주 기울었으나, 무거운 쪽을 아주 버리지는 못했다.황후는 그 걸음을 반기지도, 내치지도 않았다. 식은 차를 새로 우리려 하자, 경화제가 손을 저었다."식은 대로 두어라. 오래 앉을 것은 아니다."*"지헌의 아이를, 지켜 주어 고맙소."경화제가 낮게 말했다."고마울 것 없습니다. 지킬 만한 것을 지키는 것뿐이니."황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나 담담한 목소리 아래로, 오래된 것이 지나갔다.경화제도, 그것을 알았다.두 사람에게는, 지키지 못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오래전, 첫아이였던 대황자. 그 아이를 잃은 뒤로, 두 사람 사이에는 메우지 못한 자리가 하나 생겼다.그 자리를,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견뎠다. 황제는 아름다운 것을 넓게 사랑하는 것으로, 황후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척하는 것으로. 사랑과 원망이, 한 자리에 오래 함께 살았다.*"…그 아이를 지키는 것이."황후가 낮게 말했다."제가 못 지킨 아이를, 뒤늦게 지키는 것 같아서요. 부질없는 마음인 줄 압니다."경화제는 그 말에, 오래 답하지 못했다.젊은 후궁의 웃음을 좋아하는 황제였다. 아름다운 것을 넓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곤원전에, 그가 오래 갚지 못한 빚 하나가 있다는 것도 그는 알았다.그가 식은 찻잔을 들었다. 차게 식은 차를, 그대로 한 모금 넘겼다
해시가 가까워질 무렵, 남쪽 연못에는 안개가 내려앉았다.봄밤의 안개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얇고 희어서, 손을 뻗으면 손바닥 위에서 곧장 풀어질 듯했다.그러나 그 안에 오래 서 있으면 숨이 조금씩 낮아졌다.물 위의 달도,버드나무 아래 그림자도,멀리 별채 처마에 걸린 등불도 한 겹씩 지워졌다.소리가 먼저 숨었다.벌레 우는 소리는 물가의 돌 틈으로 잦아들었고, 회랑 아래 고인 밤공기는 젖은 약재처럼 싸늘했다.월령은 회랑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흰 장삼 위에 짙은 남색 겉옷을 걸쳤다. 밤 안으로 스며
그 말은 아직 공중에 있었다.그대가 내 곁에 있다면.이 황궁도 외롭지 않을 것 같군요.위명서의 목소리는 살구꽃잎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너무 가벼워서, 처음 듣는 사람은 그것이 칼집에 숨은 소리라는 것을 모를 터였다.한때의 월령도 몰랐다.그녀는 그 말을 오래 품었다. 황궁의 붉은 담 안에 한 사람의 온기를 들이면, 그 외로움이 조금은 녹을 줄 알았다.높은 처마와 긴 회랑과 밤마다 닫히는 문들 사이에 자신이 봄을 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이제는 안다.황궁의 외로움은 사람 하나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사람 하나를 삼
"월령 언니, 여기 계셨어요?"문밖의 목소리는 봄비처럼 부드러웠다.심서윤은 늘 저렇게 말했다.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그때의 월령은 그 목소리를 좋아했다.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촌이라 믿었고, 어머니의 방 앞에 흰 천이 걸린 뒤에는 서윤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운 적도 있었다. 등을 토닥이던 작은 손의 감촉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그리고 황후전의 어느 밤, 비녀함 안쪽에서 밀서를 꺼내던 그 손도.그 손등에 비치던 차가운 등불도.그래도 월령은 그 손을 기억할
이번에는.내 손을 놓지 마라.위지헌의 말은 한참 동안 측백나무 잎 사이에 머물렀다.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얇은 비단 몇 겹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렸다.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놓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다시는 다른 손을 잡지 않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심가를 살리겠다고,당신을 이용하겠다고,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고.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는,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모두 참이었다.그래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말은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