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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6 08:24:06

“마님!”

불안하게 방안을 거닐던 블랑은 다급하게 문을 걸어 잠그는 에다를 보며 멈칫했다. 에다의 눈빛은 비에 젖은 들개처럼 흉흉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알아냈어? 그 여자의 정체를?”

“예, 마님. 폐하께서 그 여자를 별궁에 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에다는 벅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블랑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그 여자는 폐하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의 보석함 가장 밑바닥에…… 서연합의 문양인 세 마리의 뱀 인장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서연합의 인장……?”

“예! 그 여자는 제 입으로 자신에게 전쟁을 일으킬 만큼 미친 집착을 보이는 남자가 있다고 떠벌렸습니다. 마님, 백합관의 그 여자는 분명…… 서연합의 왕자비입니다!”

순간, 블랑의 은회색 눈동자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크게 확장되었다.

타티아나. 아이린이 제게 치명적인 무기라도 되는 양 입에 올렸던 카시안의 첫사랑.

[폐하께서 부인을 왜 그토록 요란하게 찾아다녔는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그 소중한 진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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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24화

    그날 늦은 밤, 레녹 후작 저택의 지하 접견실.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서늘하고 삭막한 공간에, 거친 마찰음과 함께 한 사내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크윽……!”포박된 채 무릎이 꿇린 사내의 머리 위로, 그를 덮고 있던 검은 후드가 거칠게 벗겨졌다.긴 테이블 끝에 앉아 무심하게 서류를 넘기던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흥미롭다는 듯 서늘한 이채가 번뜩였다.“페온 공작가의 재무를 총괄하시는 율센 남작께서, 이런 야심한 시각에 쥐새끼처럼 담장을 넘다 덜미가 잡히실 줄은 몰랐군요.”레녹은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괴며 나른하게 웃었다.“공작저의 은밀한 지하 밀실을 드나들던 아이린 공녀의 심복이 남작이었을 줄이야. 저도 놀랐습니다.”율센의 얼굴이 단숨에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후, 후작님! 오해가 있으십니다! 저는 그저 공녀님의 심부름을……!”“심부름이라기엔 상단의 짐마차 밑바닥을 이중으로 개조한 솜씨가 제법 훌륭하던데요.”레녹의 건조한 목소리에 율센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최근 국경 수비대의 검문이 삼엄해지자, 그 이중 바닥에 최상급 철광석을 숨겨 서부 국경으로 빼돌리고 있더군요.”율센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아무도 모를 거라 확신했던, 가문의 가장 은밀한 치부였다.적국에게 무기를 주조할 철을 넘겨는 명백한 이적 행위이자 반역.레녹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나른하게 읊조렸다.“게다가 아이린 공녀가 당신에게 다음 달부터 철광석 수송량을 두 배로 늘리라 지시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그, 그것이 어떻게……!”“부인할 생각은 마십시오. 며칠 전부터 남작의 동선을 밟은 제 정보원들이 모든 것을 확인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완벽한 증거가 제 손에 들어왔거든요.”레녹이 테이블 위로 두툼한 서류 뭉치를 툭 던졌다.“지난 반년 간 페온 공작가가 귀부인들에게 팔아치웠다는 북부산 흑진주의 위장 판매 내역서. 짐마차로 빼돌린 철광석의 양과, 보석 대금으로 위장해 들어온 서연합의 군자금 규모가 완벽하게 맞아떨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23화

    “마님!”불안하게 방안을 거닐던 블랑은 다급하게 문을 걸어 잠그는 에다를 보며 멈칫했다. 에다의 눈빛은 비에 젖은 들개처럼 흉흉하게 번뜩이고 있었다.“알아냈어? 그 여자의 정체를?”“예, 마님. 폐하께서 그 여자를 별궁에 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에다는 벅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블랑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그 여자는 폐하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의 보석함 가장 밑바닥에…… 서연합의 문양인 세 마리의 뱀 인장이 숨겨져 있었습니다.”“서연합의 인장……?”“예! 그 여자는 제 입으로 자신에게 전쟁을 일으킬 만큼 미친 집착을 보이는 남자가 있다고 떠벌렸습니다. 마님, 백합관의 그 여자는 분명…… 서연합의 왕자비입니다!”순간, 블랑의 은회색 눈동자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크게 확장되었다.타티아나. 아이린이 제게 치명적인 무기라도 되는 양 입에 올렸던 카시안의 첫사랑.[폐하께서 부인을 왜 그토록 요란하게 찾아다녔는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그 소중한 진짜 사랑을 가리기 위한, 만만하고 천박한 방패막이로 쓰기 위해서랍니다.]아이린의 조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블랑의 붉은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하, 하하……!”블랑은 이마를 짚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냥 터진 헛웃음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기가 막히고, 이 판이 소름 끼치도록 짜릿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나오는 환희였다.‘어리석은 아이린. 나를 찌르겠다고 쥐고 흔든 칼이…… 사실은 네 가문의 목통을 찌를 사형 선고인 줄도 모르고.’블랑의 머릿속에서 완벽한 계산이 끝났다.카시안은 지금 서연합을 치기 위해 타티아나를 볼모로 잡고 있다.그런데 페온 공작가는 그 서연합에게 무기를 대주며 내통하고 있고.카시안이 아이린과 페온 가문을 어떻게 생각할까?‘카시안이 지금 당장 페온 가문의 목을 치고 싶어도 참는 건, 의회의 반발과 명분 때문이겠지.’블랑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방패막이?아니, 나는 방패가 아니라 기꺼이 그 오만한 황제의 사냥개가 되어주마.“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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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다가 서늘한 의구심을 삼키며 타티아나의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리고 눈을 감은 멍청한 사냥감을 향해, 달콤한 속삭임을 흘려 넣었다.“어쩜 이리 피부가 백옥 같으신지. 마님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우신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당연한 소리를 뭘 그리 새삼스럽게 해.”“그저 진심인걸요. 폐하께서 마님을 이리 꽁꽁 숨겨두고 아끼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에다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한 채 슬쩍 미끼를 던졌다.“하지만 이리 아름다우신데, 어찌 폐하의 곁에만 계셨습니까? 분명 폐하를 만나기 전에도 마님을 흠모하는 사내들이 줄을 섰을 텐데요. 예를 들면…… 엄청난 권력을 쥔 이웃 나라의 대공님이나 황자님이라거나요.”그 말에 타티아나의 입꼬리가 기분 좋은 듯 슬며시 비틀려 올라갔다.최근 들어 백합관에 발길이 뜸해진 카시안 때문에 몹시 자존심이 상해 있던 참이었다.제 가치를 알아주는 하녀의 찬양은 가뭄의 단비처럼 타티아나의 허영심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다.“대공? 고결한 핏줄? 흥, 그딴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내들은 시시해.”타티아나가 눈을 감은 채 턱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미간에 짙은 불쾌감이 스치며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기나 하는 드라켄의 사내들보다 훨씬 끔찍한 부류도 있지. 피 냄새에 미친 거대한 아귀 같은 부류 말이야.”“……아귀요?”“그래. 침실에서조차 사람을 물어뜯고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미친개였지. 그 역겨운 짓거리에 진저리가 나서 내 발로 도망쳐 나왔지만…….”타티아나는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린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입가에는 기묘한 우월감을 매달고 있었다. 이 무식한 하녀 따위는 상상도 못 할, 서연합의 제 2황자가 오직 자신에게만 목을 매고 있다는 뒤틀린 허영심이었다.“그 미친개는 나를 향한 그 징그러운 집착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을 거야. 아마 나를 다시 제 발밑에 끌어다 놓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대륙의 반을 불태우고 제국의 국경쯤은 우습게 짓밟으실 위인이지.”에다의 손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21화

    거친 모래바람과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드라켄 황성 외곽의 용병 투기장.“크아악-!”곰을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던 거구의 용병이 치켜든 철퇴가 허공을 가르기도 전이었다.잿빛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의 검이 벼락처럼 쏘아져 나갔다. 화려한 검기도, 대단한 초식도 없는 그저 단순한 내려치기.하지만 그 한 번의 궤적을 따라 대기가 비명처럼 찢어지더니,콰앙-!!고막을 터뜨릴 듯한 폭음과 함께 거구의 용병이 모래 바닥으로 처박혔다.방패 역할을 하던 두꺼운 강철 갑옷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져 있었고, 사내가 내리친 검 끝을 중심으로 모래 바닥이 거대한 크레이터처럼 푹 파여 사방으로 쩍쩍 갈라져 있었다.투기장을 메우고 있던 수백 명의 용병들 사이로 찬 물을 끼얹은 듯한 서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미, 미친…… 방금 저게 뭐야? 검기 같은 건 뿜어내지도 않았잖아!”“그냥 순수하게 완력으로 짓눌러 버렸다고? 저딴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심사를 보던 황궁 수비대장조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수십 년 검을 쥐어온 그의 눈에도 방금 전의 일격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단순한 검술 훈련 따위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치의 힘이 아니었다.흡사 거대한 비늘을 가진 마수나, 전설 속 용이 발톱을 휘두른 것만 같은 흉흉하고 이질적인 파괴력.“하, 합격!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기인인지는 몰라도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군. 네놈의 이름이 무엇이냐!”수비대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사내는 무심한 손길로 검에 묻은 핏자국을 털어내며 투박한 가죽 가면 너머로 낮게 읊조렸다.“……카일.”수비대장이 합격패를 던져주며 호탕하게 웃었으나, 남자의 금빛 눈동자는 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다.합격패를 꽉 틀어쥔 카일, 아니 레온은 가면 너머로 드라켄의 거대한 황성을 쏘아보았다.카시안의 서쪽 별궁에 들어앉았다는 천박한 정부, 블랑 백작.국경의 술집에서 떠도는 소문은 퍽 기가 막혔다.출신도 모르는 창부 주제에 황제를 홀려 백작 작위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20화

    드라켄 제국의 무력을 지탱하는 거대한 심장, 페온 공작저의 은밀한 지하 밀실.매캐한 쇳물 냄새와 눅눅한 습기가 뒤엉킨 공기 속에서, 아이린은 탁자 위에 놓인 조잡한 양피지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고작 이것뿐인가?”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심복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서부 국경으로 빼돌린 철광석의 양이 지난달보다 턱없이 부족하잖아. 내가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라고 널 살려두고 있는 줄 알아?”“공녀님. 송구하오나 최근 국경 수비대의 검문이 짐작보다 훨씬 삼엄해졌습니다. 상단의 짐마차 밑바닥을 이중으로 개조해 넘기고는 있으나,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양에 한계가…….”“핑계 대지 마!”아이린이 신경질적으로 양피지를 구겨 바닥에 내던졌다.“서연합의 미친개에게 뼈다귀를 넉넉히 던져주어야, 그놈들이 무기를 벼리고 날뛰며 카시안의 발목을 물어뜯을 것 아니야. 무기를 주조할 철이 부족하다며 벨모어 그 자가 또 불만을 표하면 네놈이 목을 내놓을 텐가?”그녀의 흉흉한 기세에 심복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당장 다음 달부터 수송량을 두 배로 늘려.”“두 배 말씀이십니까? 발각이라도 되는 날엔 공작가의 목이……!”“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아이린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밀실 안을 초조하게 거닐었다. 화려한 드레스 자락 아래로 감춰진 그녀의 속내는, 겉모습만큼이나 검고 탐욕스러웠다.처음엔 당연히 황후의 자리가 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국 제일의 권력과 부를 가진 페온 가문의 안주인 자리는 카시안의 옆자리여야 격이 맞으니까.하지만 카시안은 제 곁의 내밀한 자리를 내어주기는커녕, 출처도 모를 천박한 계집을 데려와 끼고 돌았다.그런 블랑을 밀어내기 위해서 타티아나를 동쪽 별궁에 슬쩍 밀어 넣어 판을 깔아준 것도 아이린 자신이었다.그런데 그 진흙탕 싸움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불쾌한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천박한 계집들을 곁에 두고 이리저리 굴러먹은 사내를 굳이 내 반려로 취해야 할까?’아이린의 차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119화

    카시안이 예고도 없이 서쪽 별궁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을 때, 처소 안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얼어붙어 있었다.“폐하? 갑자기 어쩐 일로…….”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블랑이 놀란 듯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카시안의 시선은 블랑이 아닌, 그녀의 발치에 꿇어앉아 차를 내리던 에다에게 곧장 꽂혔다.탐색전의 시작.카시안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블랑. 네 시녀가 백합관의 안주인에게 아주 단단히 눈도장을 찍은 모양이군.”“……예?”“그녀가 이 아이의 손길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고집을 부려. 내 친히 이 아이를 동쪽 별궁으로 데려갈까 하는데.”순간, 블랑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카시안은 그 찰나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블랑의 속내를 파헤치려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일부러 에다를 보낸 것이 아니냐는, 소리 없는 압박이었다.그런데 그 순간, 카시안의 계산을 완벽하게 부숴버리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폐, 폐하! 부디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찻잔을 내려놓은 에다가 다급하게 카시안의 발치로 기어가 납작 엎드린 것이다.“에다, 너 지금 무슨……!”“마님,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저도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에다는 블랑의 당황한 부름을 잔인하게 끊어내며, 카시안을 향해 필사적으로 호소했다.“폐하께서 동쪽 별궁의 마님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시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작위뿐인 백작의 곁에서 매일같이 불안에 떠느니, 차라리 진정한 태양의 그늘 아래서 뼈를 묻고 싶습니다! 부디 제 충성을 백합관에 바치게……!”짝-!!에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허공을 가른 블랑의 손이 자비 없이 에다의 뺨을 후려쳤다.“이, 이 천박하고 배은망덕한 것!”고개가 꺾인 에다의 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블랑은 멈추지 않았다.독기가 바짝 오른 눈동자, 수치심과 배신감에 사시나무처럼 떠는 두 손.영락없이 믿었던 수족에게 뒤통수를 맞고 이성을 잃은 얼굴이었다.“그렇게 가고 싶었으면 내게 청을 할 것이지, 감히 누구에게……!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52화

    탑의 꼭대기 방.육중한 문이 닫히고,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감옥의 철창 소리보다 더 무겁게 울렸다. “하아….” 엘런은 로제를 침대 기둥으로 몰아붙이며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그는 급하지 않았다. 이미 제 손아귀에 들어온 완벽한 전리품이었으니까. 그는 로제의 얇은 쉬폰 드레스 자락을 손끝으로 느릿하게 훑어 올렸다. “떨고 있군요, 황후.” 그의 손이 로제의 허리를 지나, 맨살이 드러난 어깨를 타고 뱀처럼 미끄러졌다.“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그 무능한 황제 놈은 당신의 이 뜨거운 몸을 제대로 다루는 법조차 몰랐던 모양인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6화

    엘런이 사라진 뒤, 응접실에는 지독한 혐오의 침묵만이 남았다.“폐하…… 괜찮으십니까? 저자가 감히…….”참모가 사색이 되어 다가왔지만, 차마 끝까지 말을 다 하지는 못했다.카시안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머릿속엔 아까 자신을 도발하던 로제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랐다.“미친놈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역겹군.”“그렇긴 하지만…. 얼핏 보면 난봉꾼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세를 보는 눈이 날카롭습니다.”“알아. 그러니까 엮이지 말아야지.”카시안은 천천히 잔을 흔들었다. 붉은 와인이 마치 피처럼 일렁였다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5화

    별궁의 안뜰에 발을 들여놓자, 짙은 붉은 망토를 걸친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몸을 낮추었다.“드라켄의 위대한 포식자를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유들유들하고 관능적인 인상.엘런은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듯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끈적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서쪽 연합의 제2왕자, 엘런입니다. 어제 연회는 정말 대단했죠. 아르센의 황후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다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더군요. 폐하께서도 그 맛을 보셨어야 했는데.”카시안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서연합의 놈들은 왜 하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4화

    대접견실의 문이 닫히자, 레온은 그대로 굳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로제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저의 폐하를 너무나 연모하거든요.]그 말은 독처럼 달콤했고, 동시에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연모……?’레온은 떨리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로제는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던 수줍은 여인이었다.그리고 자신은 어떠했나.첫날밤조차 그녀가 겁을 먹을까 봐 제대로 안지도 못했다.그런데 오늘 본 로제는 달랐다.카시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밤일’을 운운하고,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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