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순간, 타티아나의 숨이 턱 막혔다.'군사 기밀? 비밀 보급로?'속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어두운 방구석에 처박혀 매질만 당하던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엘런은 자신의 소유물인 그녀에게 전술 지도의 자락조차 보여준 적이 없었다.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모른다고 대답하는 순간, 눈앞의 유일한 동아줄이 끊어질 것이 뻔했다.카시안의 붉은 눈동자는 그녀의 쓸모를 저울질하듯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생각해. 생각해내야 해!'타티아나는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뒤집었다. 엘런이 술에 취해 지껄였던 끔찍한 말들, 채찍을 휘두르며 퍼붓던 욕설의 파편들. 살아남기 위해 바닥을 박박 긁듯 기억을 파헤치던 그녀의 뇌리에 불현듯 몇 가지 조각들이 스쳤다."아, 알아! 나, 나 알아, 얀!"타티아나가 카시안의 소매를 부여잡으며 허겁지겁 말을 쏟아냈다."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어. 엘런이 술잔을 집어 던지며 욕을 했거든. '빌어먹을 검은 뱀 계곡'이라고! 비가 오면 진흙탕이 돼서 군량미 수레가 도무지 빠져나오질 못한다고 성질을 냈어!""검은 뱀 계곡……."마수들이 득실거려 아무도 쓰지 않는 버려진 사지(死地).서연합의 은밀한 주력 보급로가 그곳이었단 말인가. 카시안의 눈빛이 흥미롭게 번뜩였다. 그 반응에 용기를 얻은 타티아나가 덜덜 떨리는 입술로 다음 퍼즐을 다급히 끼워 맞췄다."그, 그리고 제라드! 남부의 제라드 백작! 엘런이 그 사람 서신을 찢으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했어! 뒤로 무기를 빼돌리고 있다면서…… 군대를 일으키기 전에 그 늙은이 목부터 쳐야 한다고 했어!"그것은 타티아나에게는 그저 공포스러웠던 폭력의 기억일 뿐이었으나, 제국을 굴리는 황제 카시안에게는 서연합의 숨통을 한 번에 끊어버릴 가장 치명적이고 완벽한 열쇠였다.조용히 그녀의 자백을 머릿속에 조립해 낸 카시안의 입매가 진득한 호선을 그렸다.'완벽해. 적의 끊어진 보급로와, 내부에서 곪아 터질 반역자의 목줄이라니.'그는 다정한 구원자의 얼굴을 한 채, 타티아나의 눈물
같은 시각, 동쪽 별궁.타티아나는 화려한 침대 위에서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카시안이 자신을 황궁 안에 들이기는 했으나, 정작 밤을 함께 보내지는 않고 있었다.이대로 가만히 앉아 황제의 변덕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얇고 야릇한 레이스 속옷 위에, 속살이 고스란히 비치는 실크 가운을 걸쳤다. 그리고 탁자 위의 물그릇에 손을 담가, 제 창백한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주위로 물기를 뚝뚝 떨어뜨렸다. 흡사 끔찍한 악몽을 꾸다 깨어나 식은땀을 흘리는 가련한 여인의 그럴싸한 몰골이었다."꺄아아악!"타티아나가 허공을 향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밖에서 대기하던 시녀장이 사색이 되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마, 마님! 무슨 일이십니까!""얀…… 얀을 불러줘! 너무 무서워! 엘런이, 그 악마가 날 쫓아와!"타티아나는 숨이 넘어갈 듯 바들바들 떨며, 시녀장의 옷자락을 틀어쥐고 소리를 질렀다.시녀장이 황급히 전갈을 보내러 달려 나간 뒤, 타티아나는 텅 빈 응접실을 초조하게 서성였다.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린 듯 화려한 융단 위에 처연하게 웅크려 앉았다.‘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여기야.’그녀는 얇은 실크 가운의 한쪽 어깨를 일부러 느슨하게 끌어내렸다. 그러자 새하얀 속살 위로 엘런의 채찍이 남긴 붉고 흉측한 흉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그리고 이렇게 하면…….”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가느다란 양팔을 교차해 어깨를 감싸 안으며,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파들파들 떠는 시늉을 했다.“완벽하지.”'얀은 절대 이 상처를 외면하지 못해. 그의 동정심이야말로, 이곳에서 살아남을 내 가장 확실한 무기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 있던 무거운 문이 열렸다.카시안의 눈동자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화려한 융단 위였다. 그곳에는 타티아나가 애처롭게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얇은 실크 가운이 어색하게 흘러내려, 그녀의 하얀 어깨를 가로지르는 흉측한 붉은 흉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그 작위
마치 혈관 속에 끓는 쇳물을 들이부은 듯한,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기이한 작열감과 마비 증세가 어깨에서부터 천천히 뻗어나가고 있었다.독(毒)이었다.하지만 카일에게는 그 낯선 감각을 곱씹으며 쓰러질 여유 따위가 없었다."카, 카일……!"블랑의 당혹스러운 부름을 뒤로한 채, 카일은 바닥을 박차고 다시 튀어 올랐다. 독 기운이 전신의 근육을 마비시키기 전에 이 상황을 끝내야만 했다."죽어!"남은 두 명의 암살자가 일제히 단검을 치켜들고 쇄도했다. 그러나 카일의 그들의 숨통이나 목을 노리지 않았다. 배후를 캐내려면 놈들의 혀가 온전히 움직여야 했으니까.퍼억-!단숨에 거리를 좁힌 카일의 묵직한 검면이 첫 번째 암살자의 다리를 무자비하게 짓부수었다."끄아아악!"비명과 함께 놈이 고꾸라지기가 무섭게, 카일은 지체 없이 몸을 회전시켰다. 허리를 비틀어 올린 반동을 고스란히 실어 후려친 다리가 두 번째 놈의 흉부를 벼락같이 걷어찼다.갈비뼈가 함몰되는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놈은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대리석 바닥에 처박혔다.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몸놀림.블랑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불현듯, 등골을 타고 서늘한 깨달음이 스쳤다.'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투기장에 내던져졌다고?'그렇다면 검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 허우적대던 그 나약한 사내가 살아남았을 리 만무했다.지긋지긋하고 원망스러웠으나, 한때는 연을 맺었던 남편이다. 블랑은 차가운 흙바닥에서 눈을 감았을 그의 고독한 마지막을 그리며, 속으로 아주 짧고 고요한 애도를 보냈다.'잘 가, 레온. 그곳에선 부디 평안하기를.'그 사이에 바닥에 굴렀던 첫 번째 암살자가 기겁하며 다시 독 묻은 단검을 쥐고 발악했으나, 카일은 놈의 손목의 힘줄을 가차 없이 끊어버리고는 턱을 걷어차 그대로 기절시켰다.불과 수 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 명의 암살자가 사지가 꺾이고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하아, 하아……."카일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카일이라….”블랑은 그 이름을 입안에서 느릿하게 굴려보았다."용병치고는 꽤 단정한 이름이네."그녀의 무심한 시선이 사내의 덩치와 투박한 가죽 가면을 다시 한번 훑어내렸다."고향은 어디지? 그리고 그 얼굴은... 어쩌다 그렇게 흉측하게 망가진 거야?""어릴 때부터 떠돌아 고향 같은 건 모릅니다. 얼굴은……."카일은 잠시 뜸을 들이다, 긁히는 쇳소리로 대답했다."서연합의 노예 검투장에서, 마수들과 뒹굴다 입은 흉터입니다. 그중에 불을 쓰는 짐승이 있었거든요."서연합의 노예 검투장.그 단어가 복도의 공기를 가르는 순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리려던 블랑의 어깨가 미세하게 멈칫했다.블랑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엘런의 손에 의해 목에 굵은 쇠사슬이 묶인 채, 질질 끌려가며 절규하던 레온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살아남았을까.'검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던 그 나약한 남자가, 마수들이 득실거리는 그 지옥 같은 사지에서 아직 숨이라도 붙어 있을까.하지만 흔들림은 찰나였다. 블랑은 이내 꽉 쥐었던 치맛자락을 놓으며 차갑게 눈을 떴다.'아니, 이제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그는 자신의 무능함으로 자초한 길을 간 것뿐이다. 그가 살아남든 짐승의 먹이가 되든, 이미 자신과는 완벽하게 끊어진 인연이었다."그래. 험한 곳에서 굴러먹은 만큼, 눈치는 빠르겠네. 앞으로 내 등 뒤를 확실히 지켜."블랑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다이닝 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그녀의 그 서늘하고 흔들림 없는 뒷모습을 보며, 흉곽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끔찍한 절망감을 삼켜야 했다.다이닝 룸의 긴 테이블 끝에 블랑이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공간에서 에다가 세팅한 정갈한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울렸다.문가의 어둠 속에 선 카일은 숨죽인 채 그녀를 주시했다. 가면 너머의 금안은 아직도 혼란과 고통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저 여자는 로제인가, 아니면 그저 지독하게 닮은 악마의 장난인가.그때였다.김이 피어오르는 수프 그릇 앞에
[딸깍.]굳게 닫혀 있던 문이 마침내 열린 것은 해가 붉게 기우는 늦은 오후였다.카시안이 걸어 나오자, 투박한 가죽 가면을 쓴 카일의 고개가 기계처럼 뻣뻣하게 숙여졌다.시야 아래로 황제의 검은 군화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허벅지 옆에 늘어뜨린 카일의 커다란 손이 가죽 장갑이 찢어질 듯 꽉 쥐어졌다.“블랑을 지키는 데 빈틈이 없어야 해.”낮고 묵직한 명령을 남긴 카시안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규칙적이고 묵직한 군화 굽 소리가 서궁의 긴 복도를 타고 점차 멀어지며, 거대한 그림자 역시 짙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무섭게, 에다가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을 들고 침실 안으로 종종걸음을 쳤다.문을 열고 닫는 그 짧은 찰나였다. 훅 끼쳐오는 짙고 비릿한 정사의 냄새와 섞인 그녀 특유의 달큰한 체향이 사내의 폐부를 잔인하게 찌르고 들어왔다.방금 전까지 저 수건으로 무엇을 닦아냈을지, 노골적인 상상이 시야를 하얗게 태웠다. 그는 가면 속에서 턱관절이 어긋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입안 여린 살을 짓씹어 비릿한 핏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간 뒤에야 간신히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억누를 수 있었다...시간은 끔찍하게 느렸다. 핏빛 석양이 완전히 저물고 서늘한 보랏빛 어둠이 복도에 무겁게 내려앉고 나서야, 젖은 은발을 늘어뜨린 블랑이 얇은 가운 차림으로 걸어 나왔다.나른한 쾌락의 여운이 덕지덕지 묻은 그녀는 문가에 선 그를 무심히 지나쳐 곧장 다이닝 룸으로 걸음을 옮겼다.“에다, 기운이 없어. 바로 식사할 수 있지?”말이 떨어지자마자, 에다가 황급히 다이닝 룸으로 종종걸음을 쳤고, 블랑 역시 그 뒤를 따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호위의 임무를 띤 사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달빛이 비쳐드는 긴 복도.사내의 시선이 앞서 걷는 여자의 가녀린 뒷모습에 집요하게 박혔다. 얇은 실크 가운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드러난 하얀 뒷목과 날개뼈 부근에는, 붉고 푸르게 멍든 노골적인 흔적들이 빼곡했다
달콤한 조롱과 도발이 섞인 목소리였으나, 사내를 맞이하듯 활짝 열린 블랑의 허벅지는 한 치의 거부도 없이 농밀한 유혹을 보내고 있었다.카시안은 낮게 신음하며 그녀의 다리 사이로 육중한 몸을 깊숙이 짓눌러 파고들었다. 거대한 체구가 가녀린 나신을 빈틈없이 덮쳐 누르는 순간, 화끈하게 달아오른 단단한 귀두가 흠뻑 젖은 입구를 묵직하게 문질렀다.[질척-.]카시안의 억센 손이 제 팽창한 성기를 쥐고, 끈적한 체액으로 흥건한 틈새 위를 몇 번이고 짓이기듯 비벼댔다. 붉게 발기한 살덩이가 여린 살결을 가르고 미끄러질 때마다 외설스러운 마찰음이 침실을 농밀하게 메웠다.이윽고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끝부분이 좁고 뜨거운 입구에 단단히 맞물렸다.카시안이 묵직하게 허리를 밀어 넣었다.“……하아, 읏!”블랑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억눌린 날숨이 터져 나왔다.빠듯한 내벽을 가차 없이 가르고 파고드는 거대한 압박감에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섰다.카시안은 숨을 삼키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빈틈없는 무게감으로 한 치, 또 한 치씩 쉬지 않고 살벽을 강제로 넓히며 밀고 들어갔다.거대한 이물감에 짓눌려 펴지는 내벽의 생경한 포만감과 아찔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날카로운 전율이 되어 솟구쳤다.“하아, 아…….”끝을 모르고 밀려드는 숨 막히는 부피감에, 블랑의 하얀 손끝이 카시안의 단단한 등판을 긁어내리며 선명한 생채기를 남겼다.카시안은 턱관절이 뻐근해지도록 이를 악문 채, 뭉툭한 끝이 가장 깊은 곳에 맞닿을 때까지 집요하게 허리를 묻었다.“읏……!”블랑의 몸이 활처럼 튕기며 파르르 떨리자, 그녀의 두 다리가 본능적으로 카시안의 단단한 허리를 옭아매듯 감아왔다.카시안은 숨을 삼키며 질척하게 젖어 든 내벽을 빠져나왔다. 빠듯하게 조여드는 연한 살결이 아쉬운 듯 끈적하게 늘어지기 무섭게, 다시금 숨통을 끊어놓을 듯 묵직하고 깊은 쳐올림이 시작되었다. 한 번씩 꿰뚫릴 때마다 블랑의 가녀린 몸이 침대 위로 속절없이 밀려 올라갔고, 흩어진 은발이 시트 위를 어지럽게 수놓았다
“황후 폐하를 들라 하라.”레온은 목소리 아래 깔린 비릿한 긴장을 억눌렀다.대접견실의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자, 은빛 스며든 틈 사이로 한 겹의 드레스 자락이 부드러운 광채를 머금으며 모습을 드러냈다.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은빛과 금빛이 기묘하게 얽혀 흐르는 듯한 머리칼이었다. 햇빛 아래 흔들리는 그 물결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바람 한 점 스치지 않은 얼음 조각처럼 투명하고도 서늘했다.은회색과 청색이 겹겹이 섞인 로제의 눈동자가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얇은 실크 드레스가 허벅지 곡선을 따
아르센의 수도 칼텐부르크.나른한 봄볕 아래 평화롭던 도시의 공기는, 일순간 비릿한 피 냄새와 뜨거운 무쇠의 열기에 짓눌려 굳어버렸다.먼저 들린 것은 말발굽 소리가 아니었다.규칙적인 철제의 파동, 대지를 가르는 짐승의 박동이었다.“……왔다.”군중 속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성문 너머로 검붉은 그림자가 폭포수처럼 들이닥쳤다.북방의 포식자, 드라켄 제국의 황실 근위대.태양 빛을 집어삼킬 듯 번쩍이는 흑철색 갑옷들은 흙먼지 하나 없이 오만했다.300명의 기사들이 내뿜는 살기는 도시를 순식간에 질식시킬 듯 무거웠다.
별궁의 안뜰에 발을 들여놓자, 짙은 붉은 망토를 걸친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몸을 낮추었다.“드라켄의 위대한 포식자를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유들유들하고 관능적인 인상.엘런은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듯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끈적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서쪽 연합의 제2왕자, 엘런입니다. 어제 연회는 정말 대단했죠. 아르센의 황후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다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더군요. 폐하께서도 그 맛을 보셨어야 했는데.”카시안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서연합의 놈들은 왜 하
대접견실의 문이 닫히자, 레온은 그대로 굳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로제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저의 폐하를 너무나 연모하거든요.]그 말은 독처럼 달콤했고, 동시에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연모……?’레온은 떨리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로제는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던 수줍은 여인이었다.그리고 자신은 어떠했나.첫날밤조차 그녀가 겁을 먹을까 봐 제대로 안지도 못했다.그런데 오늘 본 로제는 달랐다.카시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밤일’을 운운하고,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