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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어요, 아빠

너무 늦었어요, 아빠

By:  딱그만큼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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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딸이 차 안에 갇혀 열사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아빠는 눈이 뒤집힌 채 나를 밧줄로 꽁꽁 묶어 트렁크에 처박았다. 그는 경멸 어린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며 쏘아붙였다. “너 같은 독한 년은 내 딸이 될 자격 없어. 거기 처박혀서 제대로 반성이나 해.” 나는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제발 밖으로 꺼내 달라고 목이 터지라 빌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잔인한 명령뿐이었다. “얘 죽기 전까지 절대 문 열지 마!” 차는 주차장에 처박혔고 내 처절한 비명과 구조 요청은 텅 빈 주차장의 어둠 속으로 속절없이 흩어졌다. 7일이 흐르고 나서야 아빠는 비로소 나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제야 나를 꺼내주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때 난 이미 비좁은 트렁크 안에서 처참하게 숨을 거둔 뒤였다. 다시는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나는 그렇게 영영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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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그년은 좀 어때? 빌어먹을 년이 용서는 빌었어?”

고요하던 대저택에 아빠가 던진 말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꽂혔다.

한 집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

“회장님, 다빈 아가씨는 아직 나오지 못했습니다.”

시가를 든 아빠의 손끝이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평소에 너무 오냐오냐 키웠더니 버릇을 잘못 들였네. 감히 유리를 차에 가둬? 이참에 제대로 매운맛을 보여줘야 해.”

한 집사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지금 밖에 40도가 넘는 폭염이라 차 안은 찜통일 텐데 다빈 씨가 혹시라도...”

“그래, 폭염! 더운 걸 알아야지. 그래야 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뼈저리게 느낄 거 아냐. 차 안의 온도를 몸소 겪어봐야 두 번 다시 유리한테 그런 짓 못 벌여!”

아빠의 목소리는 더없이 냉랭했다. 내가 그 좁은 트렁크 안에서 7일이나 갇혀 있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한 집사가 뭐라 더 말하려 하자 아빠는 짜증스럽게 말을 잘랐다.

“됐어. 이 집구석에서 몰래 그년한테 밥 챙겨줄 사람이 없을까 봐? 그년 아주 멀쩡할 테니 죽네 사네 하는 소린 집어치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물론 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난 이미 죽었으니까.

그것도 나흘 전에 숨진 상태였다.

그날 이후, 내 영혼은 줄곧 아빠의 뒤를 따라다녔다.

“아빠, 화 푸시고 다빈이도 이만 꺼내주세요. 날씨도 이렇게 더운데 그 안에서 얼마나 힘들겠어요?”

2층, 원래 내 방이었던 곳에서 순백의 잠옷을 입은 서유리가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아빠의 눈빛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풀렸다. 내가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애틋하고도 다정한 눈길이었다.

서유리는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와 그의 곁에 앉았다. 마치 하얀 재스민 꽃 한 송이가 피어난 듯 더없이 순수하고 가녀린 모습이었다.

“신경 쓸 거 없어. 우리 유리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다빈이 그년은 너를 차에 가둬서 열사병으로 쓰러지게 만든 못된 년이야. 마땅히 이 정도 벌은 받아야지.”

나를 언급할 때, 아빠의 눈빛은 더없이 서늘해졌다. 마치 남보다 못한 원수라도 대하듯 혐오감만 감돌았다.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정녕 그의 딸이 아니었던가?

그때, 주방으로 향하던 한 집사가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제 자식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남의 자식만 끔찍하게 아끼네!”

“사랑해요, 아빠! 아빠가 내 친아빠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유리가 울먹이며 아빠의 어깨에 기댔다.

“바보 같은 소리. 유리 너만 원한다면 언제든 친아빠가 되어줄 수 있어.”

“유리야, 다 큰 애가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있어!”

별안간 등장한 한 여자, 그녀는 바로 아빠가 평생을 바쳐 사랑한 서진주였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우리 엄마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엄마가 떠난 후 모든 게 변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게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평생을 다 바쳐 사랑한 남자가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한지, 그 밑바닥을 보지 않고 갔으니까.

곧 있으면 나도 엄마를 만나러 가겠지. 다음 생이 있다면 길고양이나 강아지로 태어날지언정 절대 저 인간의 딸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오빠, 적당히 해. 다빈이도 오빠 딸이잖아.”

두 모녀의 가식적인 위선은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연극 같았다. 그들이 진정으로 선한 사람들이었다면 내가 7일 밤낮을 트렁크에 갇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방관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더 기가 막힌 건 그 차가 아빠가 내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는 사실이다.

내 생일 선물이 지금은 내 무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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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그년은 좀 어때? 빌어먹을 년이 용서는 빌었어?”고요하던 대저택에 아빠가 던진 말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꽂혔다.한 집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회장님, 다빈 아가씨는 아직 나오지 못했습니다.”시가를 든 아빠의 손끝이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평소에 너무 오냐오냐 키웠더니 버릇을 잘못 들였네. 감히 유리를 차에 가둬? 이참에 제대로 매운맛을 보여줘야 해.”한 집사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그렇지만 지금 밖에 40도가 넘는 폭염이라 차 안은 찜통일 텐데 다빈 씨가 혹시라도...”“그래, 폭염! 더운 걸 알아야지. 그래야 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뼈저리게 느낄 거 아냐. 차 안의 온도를 몸소 겪어봐야 두 번 다시 유리한테 그런 짓 못 벌여!”아빠의 목소리는 더없이 냉랭했다. 내가 그 좁은 트렁크 안에서 7일이나 갇혀 있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한 집사가 뭐라 더 말하려 하자 아빠는 짜증스럽게 말을 잘랐다.“됐어. 이 집구석에서 몰래 그년한테 밥 챙겨줄 사람이 없을까 봐? 그년 아주 멀쩡할 테니 죽네 사네 하는 소린 집어치워.”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물론 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왜냐하면... 난 이미 죽었으니까.그것도 나흘 전에 숨진 상태였다.그날 이후, 내 영혼은 줄곧 아빠의 뒤를 따라다녔다.“아빠, 화 푸시고 다빈이도 이만 꺼내주세요. 날씨도 이렇게 더운데 그 안에서 얼마나 힘들겠어요?”2층, 원래 내 방이었던 곳에서 순백의 잠옷을 입은 서유리가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아빠의 눈빛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풀렸다. 내가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애틋하고도 다정한 눈길이었다.서유리는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와 그의 곁에 앉았다. 마치 하얀 재스민 꽃 한 송이가 피어난 듯 더없이 순수하고 가녀린 모습이었다.“신경 쓸 거 없어. 우리 유리는 너무 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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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20년 전, 서진주는 우리 아빠와 헤어지고 부유한 집안의 정략결혼을 택했다.하지만 세상일은 알 수 없는 법. 그 부잣집이 기울어가는 동안 가난했던 아빠는 오히려 우리 엄마를 만나 대성공을 거두었다.참으로 드라마 같은 인생이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서진주가 이혼했다는 소식은 아빠에게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었을 것이다.그렇게 두 사람은 20년 만에 재회했다. 서진주와 그녀의 딸 서유리는 보란 듯이 우리 집에 눌러앉았고 야금야금 내 모든 것을 앗아갔다.내 옷, 내 방, 그리고 마지막엔 아빠까지 모조리 뺏어갔다.사건의 발단은 일주일 전이었다. 서유리가 들뜬 기색으로 돌아와 운전면허를 땄다며 자랑했다.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는 그녀에게 아빠는 차를 한 대 뽑아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바로 그때, 서유리가 주저하는 척하더니 짐짓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차고에 있는 그 분홍색 차가 참 예쁘던데...”나는 뼈가 섞인 목소리로 즉각 받아쳤다.“그건 아빠가 나한테 선물한 차야. 갖고 싶으면 네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 넌 아빠 없어?”그 차는 내가 운전면허를 따던 날, 아빠가 선물해준 차였다. 사실 너무 아까워서 주차장에 세워둔 시간이 더 길었다. 아빠라면 당연히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믿었는데 정작 이어진 그의 말은 내 마지막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고작 차 한 대 가지고 유세를 떨기는! 유리가 갖고 싶다는데 그냥 줘. 다빈이 넌 차 많잖아. 뭣 하러 이런 거로 다투고 그래. 유리 주면 되지.”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빠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다정했던 분이 아니었다.나는 차를 빼앗기기 싫어 열쇠를 던져버렸지만, 아빠가 사람을 시켜 잠금장치를 바꾼 뒤 강제로 서유리에게 넘겼다.그런데 그 차가 문제였다. 주차하던 서유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차 문을 잠가버렸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마침 4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차 안은 순식간에 숨 막히는 찜통으로 변했다.서유리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 아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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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밤이 깊어 저택의 모두가 잠든 시각, 한 집사가 조심스레 차고로 향했다.차에 채 다가서기도 전, 도저히 참기 힘든 악취가 코를 찔렀다.점점 가까워질수록 냄새가 더 짙어지고 차 밑바닥에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흥건했으며 그 위로 하얀 구더기가 들끓었다.집사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제발 그냥 돌아가요. 보지 마세요, 집사님. 너무 끔찍해서 평생 밥 한술 제대로 못 넘길 거라고요.’한 집사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생전의 나를 위해 아빠에게 사정해주던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힘없는 가정부일 뿐이었고, 생계가 달린 이 일을 쉽게 놓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어쩌면 내 간절한 마음이 닿은 걸까? 한 집사가 정말 몇 걸음 물러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고를 떠났다.다음날 이른 아침, 아빠는 기분 좋은 얼굴로 식사를 마친 뒤 품 안에서 화려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꺼냈다.서유리가 보지 않는 틈을 타 그녀 앞에 상자를 툭 내려놓았다.“유리야, 생일 축하해. 선물 한번 열어보렴.”서유리는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우와, 고마워요, 아빠!”허겁지겁 상자를 열자 안에는 반짝이는 차 키가 들어 있었다.내가 가졌던 것보다 훨씬 더 비싸고 좋은 차였다.“다빈이 그 차는 너무 낡았어. 우리 유리한테 어떻게 남이 타던 중고차를 태우겠니? 널 위해 특별히 고른 거야. 마음에 들어?”서유리는 차 키를 손에 쥐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완전요!”그때, 한 집사가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이제 다빈 아가씨를 꺼내줄 때가 된 것 같습니다.”아빠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미간을 확 구겼다.“한 집사, 오늘따라 말이 많군.”“벌써 8일째입니다. 차 안은 찜통이나 다름없어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온도가 아니에요.”어제 차고에서 맡았던 그 지독한 악취 때문에 한 집사는 이미 진실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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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찜통 같은 열기 탓에 시신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건 차마 눈을 감지 못한 채 허공을 응시하는 텅 빈 두 눈동자뿐이었다.시신 곳곳은 이미 고도 부패가 진행되어 하얀 뼈가 흉하게 드러났고 그 사이사이를 구더기 떼가 꿈틀거리며 점령했다. 트렁크 문이 열리는 찰나, 시체 위를 덮고 있던 파리 떼가 윙 하는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징그러운 날갯짓 소리가 차고 안을 가득 메웠다.“으읍...”가정부들은 트렁크 근처도 가지 못한 채 구역질을 쏟아내며 감히 더 쳐다볼 엄두가 안 났다.아빠는 성큼성큼 다가가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의 동공이 잘게 떨리더니 이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이다빈! 다빈이 어디 있어? 이건 다빈이가 아니야! 이 계집애 어디 숨었어? 당장 튀어나와!”그는 썩어 문드러진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왜인지 유독 이마 쪽은 살점이 다 뜯겨나가 뼈가 흉측하게 드러났다.나조차 저 끔찍한 형체가 과연 내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그때, 참다못한 한 집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절규했다.“회장님, 이분이 바로 다빈 씨예요. 이미 돌아가셨단 말입니다!”아빠는 그런 한 집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이 늙은이가 노망이 났나! 이게 어디를 봐서 다빈이야? 계집애가 나를 속이려고 이런 짓을 꾸민 게 분명해!”“다빈 씨가 갇힌 지 벌써 8일째입니다. 아무리 강철 같은 사람이라도 이 폭염 속에서 버티는 건 불가능해요.”“닥쳐! 몰래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다빈이는 죽었을 리가 없어!”그랬다. 사실 처음 갇혔던 날,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내 편이었던 정숙 아줌마가 몰래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그 사실은 너무나 쉽게 발각되고 말았다.아빠가 직접 아줌마를 내쫓았으면서 그새 다 잊은 걸까?정숙 아줌마가 쫓겨난 이후로 아무도 감히 내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그 후로 이어진 7일간 나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결박된 몸으로 어둠 속에 버려졌다. 전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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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돌아보니 한 집사를 비롯한 가정부들은 청소는커녕 시신 근처에 얼씬도 못 한 채 공포에 질려 있었다.“집사님, 이거 어쩌죠? 저는 도저히 못 하겠어요.”가정부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한 집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낀 장갑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다들 각자 알아서 하세요. 난 오늘부로 그만둘 테니까.”한 집사의 결단은 도미노처럼 번졌다.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눈앞에 떡하니 놓인 시체 한 구, 그들은 단지 가사 도우미일 뿐 시신을 수습하는 법의학자가 아닌데 애초에 왜 업무 범위를 아득하게 벗어난 시신 수습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게다가 방금 내 시체를 직접 목격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 참혹한 광경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트라우마로 박혀버렸을 텐데 아무리 웃돈을 얹어준대도 여기서 버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저도 그만둘래요. 집에 시체를 두고 어떻게 일하라는 거예요, 무서워서 원.” “맞아요. 자기 친딸까지 죽인 집인데 여기서 어떻게 더 버텨요.”그곳에 있던 가정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손을 놓았다. 장갑을 벗어 던지고 앞치마까지 풀어버린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장을 빠져나갔다.이 집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한 집사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그때, 젊은 가정부 한 명이 불안한 듯 물었다.“집사님, 경찰에 신고 안 해도 될까요? 시체를 계속 저렇게 방치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끔찍하잖아요.”한 집사는 그 가정부를 힐끗 쳐다보며 무게를 잡고 말했다.“앞으로 이 바닥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괜한 일에 휘말려 제 무덤 파지 마세요.”젊은 가정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 다빈 아가씨 참 안됐네요. 어쩌다 저런 아빠를 만나서...”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북적이던 저택은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잠시 후, 돌아온 아빠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정적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때 정적을 깨고 나온 건 물 한 잔을 들고 있던 서유리였다.“아빠, 집에 있던 가정부들 다 나갔어요.”아빠는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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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날 밤, 서유리는 침대에 누워 베개 밑에서 휴대폰을 하나 꺼내 들었다.그제야 나는 내 휴대폰임을 알아챘다. 도대체 언제 몰래 챙겨간 걸까?그녀는 카톡 목록 최상단에 고정된 대화창을 열더니 메시지를 빠르게 입력했다.곧이어 아빠의 방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이 죽일 년이 감히 나를 협박해? 죽은 척 연기하더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어! 그래, 어디 평생 그렇게 숨어 살아라. 내 눈앞에 띄는 날엔 진짜 아작을 내버릴 거야.”나는 아빠의 방으로 달려가 도대체 서유리가 뭘 보냈길래 이렇게까지 펄쩍 뛰는 건지 확인해보았다.[영감탱이가 감히 카드 정지를 시켜? 나 죽는 꼴 보고 싶어?]나는 썩 만족스럽지 못한 듯 혀를 찼다.‘에이, 고작 이게 다야? 너무 약하잖아.’이제 와서 따져본들 이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인간에게 남은 건 증오뿐이었다. 그 외의 감정 따위는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서유리가 날 대신해서 이 인간에게 욕을 퍼부어주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어차피 난 이미 죽은 몸, 아빠도 더 이상 나를 협박할 방법이 없으니까.카톡에는 친구들이 보낸 걱정 어린 메시지가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다. 서유리는 그걸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내려갔지만, 답장은 단 한 통도 남기지 않았다.이윽고 제 휴대폰으로 검색창을 열어 검색어를 입력했다.[48세 임산부, 출산하다 죽을 수도 있나요?]서유리 얘도 두렵긴 하나 보다.서진주의 배 속에 든 아이가 자신의 자리를, 아니 그 막대한 재산을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걱정부터 앞선 거겠지.‘꼴좋다, 서유리. 이제 네 엄마도 너랑은 끝인가 봐. 넌 그냥 이 집안에서 찬밥 신세인 거야. 아무도 널 반겨주지 않아.’‘남동생까지 태어나면 네가 가진 모든 걸 빼앗기게 될 거야. 네가 내 것을 야금야금 뺏어갔던 것처럼 말이야. 세상 참 공평하지? 이게 바로 인과응보라는 거야.’나는 서유리의 곁에서 낄낄거리며 비아냥댔다. 남의 것을 탐하는 자는 결국 언젠가 제 손으로 다 토해내야 하는 법.어쩌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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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내 친구는 우리 집을 떠난 뒤로 쉼 없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유리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내 휴대폰이 쉼 없이 진동하며 울려댔다.혹여나 내 친구가 정말로 경찰서에 달려갈까 봐 겁이 났는지 서유리는 몰래 답장을 보냈다.[나 잘 지내. 걱정 마.]평소 나의 말투와 전혀 달랐던지라 내 친구는 더 미친 듯이 메시지를 쏟아냈다.서유리는 덜컥 겁이 나서 휴대폰 전원을 끄고 화장실 변기 물탱크 뚜껑을 열어 그 안에 깊숙이 숨겨 두었다. 이어서 아빠랑 해외로 휴가를 떠났다.나 역시 그들을 따라갔다.여행을 즐기는 와중에도 아빠는 서진주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사실 그녀의 임신은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이왕 아이가 생겼다면 아들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성별이 궁금했던 아빠는 검사를 받던 김에 의사에게 여쭸더니 정말 아들이라고 했다.그 순간 아빠는 너무 기뻐서 십 년은 더 젊어진 듯 활기가 돌았다.“하하, 아들이래 아들! 이름은 ‘계승’으로 할 거야. 장차 내 가업을 이어받을 아이니까.”두 사람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 얼굴에 화색이 만연한 채 호텔로 돌아왔다. 마침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던 서유리와 로비에서 마주쳤다.아빠는 그녀에게 카드 한 장 툭 건네며 마음껏 쓰라고 했다.득의양양한 두 사람의 표정을 본 서유리가 무슨 일 있었냐고 넌지시 물었다.“유리야, 너 남동생 생겼어. 나중에 시집가도 네 동생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거야.”두 사람은 기쁨에 취해 서유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남자애가 확실하대요?”그녀가 재차 물었다.“그럼. 의사 선생님이 무조건 남자애라고 했어. 이제야 비로소 내 대를 이을 후계자가 생긴 거지.”서유리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축하드려요, 엄마 아빠. 나도 그럼 누나가 되는 거네요.”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이 가족에게 각자의 속내는 시커멓게 썩어있다는 것을 말이다.귀국하던 날, 드물게 장대비가 쏟아졌다.기온이 뚝 떨어져서인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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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전 잘 모르겠어요. 다빈이 그 짐승만도 못한 년이 연락 안 된 지 꽤 됐거든요.”아빠가 차가운 얼굴로 내뱉었다.“알겠습니다, 이준호 씨. 저희도 계속 수사를 이어가겠지만 준호 씨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경찰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찾아낼 수는 없다.난 여전히 그 차 트렁크 안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해가고 있으니까. 머지않아 한 줌 뼈만 남게 될 텐데 어떻게 살아있는 나를 찾겠는가.경찰들은 백방으로 뛰며 나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모든 CCTV 속 ‘나’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철저히 가린 상태라 그 영상만으로는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시간이 속절없이 흘러 서진주가 퇴원할 때까지도 수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경찰들은 나에 관한 단서를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귀신이 곡할 노릇이군요.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져요?”경찰이 집을 찾아와 답답한 듯 내뱉었다.“그러게요! 멀쩡한 애가 무작정 사라질 리 없죠! 분명 그년이랑 어울리는 쓰레기 같은 친구들이 뒤를 봐주는 게 틀림없어요. 다빈이는 워낙 못돼먹어서 일부러 어디 숨었을 겁니다.”경찰은 그의 비아냥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대신 집안 곳곳을 훑어보던 수사관의 눈길이 거실 구석의 CCTV에 머물렀다.“이준호 씨, 여기 설치된 CCTV 영상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얼마든지요.”경찰은 거실 CCTV 데이터를 모두 확보해 갔다. 하지만 확인 결과, 영상은 한 달 전 기록에서 툭 끊겨 있었다. 그 이전의 영상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삭제한 듯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이 집안 사람들 진짜 수상하단 말이야.”영상을 확인하던 경찰이 혀를 찼다.한 달 치 영상은 꼼꼼히 훑기에 결코 짧은 분량이 아니었다. 수사 방향을 바꾼 경찰들은 ‘사람’ 대신 ‘차량’을 쫓기 시작했다.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순 있어도 덩치 큰 차는 어디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경찰은 도로망 CCTV를 샅샅이 뒤졌다. 머지않아 차의 행방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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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형사도 말끝이 흐려졌다. 베테랑 형사인 만큼 그들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단 하나의 결론, 이다빈이라는 사람은 이미 사망했다.그들이 마침내 진실에 닿았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야 알겠어요? 제발 빨리 내 시신을 찾아줘요. 이대로 두면 뼈만 남아서 나중에 형사님들이 얼마나 놀랄지 짐작도 안 간다고요!’경찰은 며칠간 수집한 단서들을 들고 아빠를 찾아갔다.“이준호 씨, 우리 수사팀은 이다빈 양이 이미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부디 수사에 협조해 주세요.”아빠는 이 말을 전혀 안 믿었다.“말도 안 돼요. 사람을 들이받고 도망친 년이 무슨 변을 당합니까?”“하지만 그 뺑소니 사고 이전부터 이다빈 양은 마치 이 세상에서 증발한 것처럼 종적을 감췄습니다. 카드 사용 기록도, 통화 내역도, 그 어떤 생활 흔적조차 없었어요. 이준호 씨는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십니까?”경찰은 사뭇 진지하게 말했지만, 아빠는 여전히 콧방귀를 뀌었다.“이상할 것 없죠. 내가 카드 정지 시켰으니 기록이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걔 주변에 친구들도 많은데 아무나 몇 푼 쥐여줘도 실컷 쓸 수 있어요.”“친구들도 전부 조사했지만 다들 이다빈 양을 본 지가 한참 됐고 그사이 금전 거래 내역도 전무합니다. 다빈이는 마치 유령처럼 사라졌어요.”아빠는 그 말을 듣자마자 픽 하고 조소를 터뜨렸다.“아주 변명도 가지가지네요. 사람 하나 못 찾으니 이제 유령 타령까지 하는 거예요? 당신들이 그러고도 형사야?”“이준호 씨, 말조심하시죠!”옆에 있던 형사가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트렸다.장 형사가 그런 동료를 제지하며 이제 막 입을 열려던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뭐? 알았어. 지금 바로 영상 보내. 마침 이준호 씨 집에 있어.”통화를 마친 장 형사의 눈빛이 순식간에 매섭게 변했다. 마치 정글 속을 날아다니는 사나운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빛이었다.“이준호 씨, 방금 제보를 하나 받았는데 이다빈 양은 지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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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장 형사가 아빠에게 다가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아빠가 먼저 형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형사님, 아니에요. 이게 우리 다빈일 리가 없잖아요. 다빈이 아니죠? 그렇죠? 뭐라고 말 좀 해봐요!”그의 눈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스쳤다. 마치 딸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처럼 보였다.하지만 장 형사는 냉정하게 그를 걷어차고는 등 뒤로 수갑을 꺼내 바로 채웠다.“이준호 씨, 전에 이 댁에서 일한 한 집사가 경찰서까지 찾아와 이준호 씨를 살인 및 시체 유기 혐의로 제보했습니다. CCTV 영상까지 제출했고요.”장 형사가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안타깝지만 저건 당신 딸 이다빈 양이 맞습니다.”“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다빈이가 왜 죽어? 분명 밖에서 놀다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가짜 시체 같은 걸 갖다 놓았을 거야!”수갑이 채워진 아빠가 거칠게 발버둥 쳤다. 눈동자에는 짙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나는 옆에서 그의 광기 어린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아빠, 수갑이 채워진 지금 당신이 느끼는 공포는 대체 무엇 때문인가요?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가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운 건가요 아니면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인가요?’“이준호 씨, 제가 지금까지 본 시체만 해도 수백 구는 됩니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분할 눈은 충분히 있어요. 할 말 있으면 경찰서 가서 하시죠.”경찰들이 그를 연행하려 했지만, 아빠는 미친 사람처럼 두 명의 경찰을 뿌리치고 내 시신 곁으로 달려가 다시금 부둥켜안으려 했다.‘제발 좀 멈춰요. 내 몸은 이미 썩어 문드러졌는데 더 망가뜨리면 어떡해요? 그냥 이대로 곱게 보내주면 안 돼요?’나는 옆에서 아빠를 제지하려 했다.경찰들에게 끌려가는 내내 아빠는 오열하며 소리쳤다.“다빈아, 아빠가 잘못했어. 제발 돌아와. 아빠가 정말 미안해.”감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는 자신의 딸은 죽지 않았다고 중얼거렸다.이에 형사가 혀를 찼다.“사람 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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