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91화

Author: 무안안
“오늘 너무 늦었어요. 집에 어린 아이도 있고 먼저 가봐야 해요. 내일 전화 주세요. 그때 자세히 검사해드릴게요.”

심미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그녀는 누군가가 장혜윤에게 독을 타서 주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 목적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혜윤은 심미연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알겠어요. 내일 전화할게요.”

“여보, 내일 출근 안 하면 나랑 같이 가자.”

오태진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일 휴가 낼게.”

그는 항상 딸을 원했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병원 검사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는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보니 누군가가 장혜윤이 임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되면 꼭 연락 주세요. 먼저 가볼게요.”

심미연은 급하게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이미 박유진에게 강상미가 집에 올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박유진이 집에 있는지, 강지한이 떠났는지 걱정이 되었다.

두 남자가 마주치면 일이 커질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심미연 씨, 안녕히 가세요.”

장혜윤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심미연도 손을 흔들며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장혜윤은 심미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심미연 씨의 의술이 정말 경지에 달한 건가?”

그저 맥을 짚어본 것뿐인데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정확히 알았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했는데 그게 너무 이상했다.

“왜 이렇게 멍하니 있어? 집에 가자.”

오태진은 장혜윤의 허리를 감싸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심미연이었기에 그는 심미연의 의술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내 친구가 아까 전화로 헤어졌다고 해서 위로하러 가야 해. 잠깐 가서 얘기 좀 하고 올게. 여보, 먼저 집에 가도 괜찮아?”

장혜윤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얼굴은 이미 평소의 차분한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92화

    장혜윤의 가슴 속 불안은 마치 밀려오는 파도처럼 요동쳤다. 그녀는 텅 빈 거실을 급히 훑어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의도적으로 시선을 내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윤미는 어디 있어요?” 남자는 소파에 앉아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 리듬이 고요한 공기 속에서 유난히 거슬리게 들렸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리며 깊고 복잡한 눈빛으로 장혜윤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순간 장혜윤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며 알 수 없는 공포가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라 전신을 타고 퍼져 나갔다. “위층에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하나하나의 단어가 의도적으로 무게를 두고 내뱉어지며 저항할 수 없는 권위가 담겨 있었다. “위로 가서 잘 위로해 주세요.” 장혜윤은 등줄기가 차갑게 느껴지며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얼굴의 긴장은 감추기 어려웠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가방 안으로 넣었다. 손끝이 차가운 핸드폰을 만지자 그것이 지금 그녀의 유일한 의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핸드폰을 꽉 쥐고 손톱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주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첫 번째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할 것이다. “빨리 올라가세요.”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장혜윤은 간신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장혜윤은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올라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솜털 위를 걷는 듯 부드럽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자신에게 침착하라고 다짐했지만 내면의 두려움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그녀의 목을 꽉 조여왔다. 마침내 2층에 도착한 장혜윤은 떨리는 손끝으로 문을 밀어 열었다. 문이 열리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이 조용한 공간에서는 유난히 거슬리게 들렸다. 문이 열리자 눈앞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93화

    나윤미는 마침내 붉게 부은 눈을 들어올렸다. 그 시선은 공허하고 혼란스러워 마치 끝없는 악몽에서 이제 막 깨어난 사람 같았다. 그녀는 떨리는 입술로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힘겹게 단어를 짜내듯 말했다. “그... 그 사람은 악마야. 나를 두렵게 만들고 살아 있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했어...” 말을 마치자마자 나윤미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고 몸은 두려움과 슬픔에 심하게 떨렸다. 장혜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차가운 한기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밀려왔다. 그녀는 나윤미의 손을 꼭 잡으며 자신의 온기를 전하려 애썼지만 나윤미의 눈에 서린 공포는 끝없는 심연과 같았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깊은 절망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장혜윤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윤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하면 안 돼.”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마치 무언가를 입 밖에 내는 순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장혜윤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내가 정말 유능한 변호사를 알고 있어. 그 사람한테 도움을 요청해보자.” 그러나 ‘변호사’라는 단어를 듣자 나윤미의 몸은 더욱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변호사는 그녀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이었다. “안 돼! 절대 변호사한테는 안 돼!” 나윤미는 절규하듯 외치며 더욱 깊은 공포에 빠졌다. “윤미야, 도대체 왜 그래? 네가 아무 말도 안 하면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잖아.” 장혜윤은 초조함에 목소리가 떨렸다. 나윤미는 이제 조금 진정된 상태였다. 감정도 가라앉았고 머리도 어느 정도 맑아진 듯했다. “혜윤아, 그냥 가.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마.” 나윤미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인생은 이미 끝났어. 너한테 진 빚은 다음 생에 갚을게. 앞으로 내가 전화하더라도 무슨 말을 하든 절대 날 찾지 마. 알겠지?” 그 말은 마치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94화

    장혜윤은 진심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너 먼저 집에 가.” 나윤미는 장혜윤을 살짝 밀어내며 재촉했다. 장혜윤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먼저 갈게.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윤미가 날 돌려보내려는 건 분명 아래층에 있는 남자 때문이야. 아니면 무슨 사정이 있거나.’ 장혜윤은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장혜윤이 문 쪽으로 향하자 나윤미는 아래층 남자가 떠올라 서둘러 그녀를 불러 세웠다. “혜윤아, 나 좀 부축해줘. 같이 내려가자.” 장혜윤은 멈춰서 나윤미에게 다가가 그녀를 침대에서 일으켰다. 두 사람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보였다. 나윤미는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장혜윤은 그녀의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벌써 가려고?” 남자는 무심한 목소리로 고개를 들어 나윤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윤미는 통제할 수 없이 몸을 떨며 답했다. “응. 혜윤이 남편이 집에 빨리 오라고 전화왔어.” 장혜윤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그런 게 아닌데... 왜 윤미는 거짓말을 하는 거지?’“내가 사람을 시켜 바래다줄까?” 남자가 다시 물었다. “아니야. 밖에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어.” 나윤미는 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그래. 너가 배웅해. 난 위층에 올라간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나윤미는 마치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주저앉을 뻔했다. “윤미야, 너 괜찮아?” 장혜윤은 그녀의 상태를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까 두 사람의 대화는 너무 이상했다. 나윤미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현관에 도착하자 나윤미는 장혜윤을 문 밖으로 밀어내듯 말했다. “혜윤아, 빨리 가. 다시는 오지 마.” 장혜윤이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나윤미는 문을 꽝 닫아버렸다. 그녀는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95화

    [구체적인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그리고 친구분이 납치되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심미연은 차분히 한 번에 많은 말을 쏟아냈다. 장혜윤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을 마친 후 심미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씀하신 상황은 가정폭력일 가능성도 있고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분의 감정이 흔들리며 상황이 복잡해진 거죠. 결국 그분들이 집 안에 있었으니 이를 납치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장혜윤은 또 다시 흐느껴 울었다. [하지만 그때 친구가 너무 불쌍해 보였어요. 정말 마음이 찢어지더라고요.] 심미연은 문득 신하린이 떠올랐다. 만약 신하린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자신도 그녀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혜윤 씨는 먼저 집에 가세요. 지금 혼자 계시고 밤늦게 여성분이 이렇게 외출하는 건 위험할 수 있어요.]심미연은 조용히 그녀에게 충고했다. [우리 윤미 불쌍해서 어떡해...] 장혜원이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심미연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친구분 이름이 윤미라고 하셨죠? 제가 아는 사람이랑 이름이 같네요.] 심미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혜윤 씨가 말한 윤미가 예전에 스승님을 죽인 그 사람일까?’ 나윤미는 중요한 인물이었고 이번에 경성으로 돌아오기 전에 몇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나윤미를 빨리 찾아내면 스승님이 뛰어내린 진짜 이유를 세상에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스승님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나면 아이와 박유진과 함께 이곳을 떠날 계획이었다.[그럼 기회가 되면 윤미와 한번 만나보죠. 친구분과 같은 사람인지 확인해 보세요.] 장혜윤은 갑자기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심미연은 전문 변호사인 만큼 나윤미가 납치되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일 거라고 믿었다. 심미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심미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96화

    심미연의 가슴속에 불안감이 스쳤다. “근데 엄마는 예전에 그런 얘기 한 적 없잖아. 넌 어떻게 알았어?” 이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아이는 강지한에 대한 미움만 키울 테고 그런 감정이 자라게 해선 안 됐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강 대표님이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글이 엄청 많아요.”심태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직접 강지한이 엄마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 글들만 봐도 강지한이 엄마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는지, 얼마나 고통을 주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는 다 사실은 아니야. 사람들 관심 끌려고 과장된 것도 많거든. 그런 글에 너무 휘둘리지 마.” 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아들을 품에 안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이가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게 안타까웠다. 심미연은 앞으로는 아이 앞에서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 저 이제 다 컸어요.”심태하는 의젓하게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엄마, 드레스는 상미한테 줬어요. 상미가 제 생일 파티에 오기로 했거든요. 다른 친구들도 몇 명 초대해도 되요?” 심미연은 아들의 얼굴에서 순수한 기쁨이 묻어나는 걸 보고 마음이 흐뭇해졌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친구들을 초대하고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예전처럼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길 꺼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럼. 네가 초대하고 싶은 친구들 다 불러도 돼.”심미연은 따뜻하게 말했다.“근데 몇몇 친구들은 별로 안 좋아요. 자꾸 울고 떼쓰는 애들도 있어서 귀찮아요.” 심태하는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심미연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좋아하는 친구들만 초대해.” 심태하는 심미연의 목에 팔을 두르고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엄마,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심미연은 품에 안긴 작은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태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97화

    박유진은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심태하의 얼굴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해?” ‘이 아이, 너무 똑똑한 거 아닌가?’ ‘회사에 문제가 생긴 걸 어떻게 알아챈 거지?’ “아빠, 예전엔 집에서 저랑 놀 때 핸드폰도 무음으로 해놓고 저랑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고 저랑 놀 때도 자꾸 전화받고... 게다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얼굴이 엄청 심각해 보여요.”아이의 논리 정연한 말에 박유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심미연도 옆에서 얼어붙었다. ‘이게 정말 세 살짜리 입에서 나올 말인가?’ ‘이 녀석, 천재 아냐?’ 박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우리 태하, 관찰력 하나는 끝내주네?” 심태하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누구 아들이에요?” 너무도 당당한 모습에 심미연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 태하, 정말 최고다.” ‘이제 말까지 이렇게 능청스럽다니.’ 그때 심태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엄마, 아빠 밥 해준다면서요? 얼른 가서 해 주세요. 저랑 아빠는 남자들끼리 할 얘기가 있으니까요.” 작은 손으로 심미연의 어깨를 토닥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꼬마 어른이었다. 심미연은 어이가 없어 웃으면서도 그를 흘겨보았다. “엄마한테 버릇없이 굴지 마.” ‘이 녀석 너무 버릇없어졌네.’ ‘근데 어쩜 이렇게 귀엽냐고.’“엄마, 미안해요. 다음엔 안 그럴게요.” 심태하는 급하게 사과했다. 아빠가 그랬다. 엄마가 화났을 땐 잘못이 있든 없든 무조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아빠 말이라면 믿어야지.’ 심미연은 아들의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살짝 풀렸다. 그녀는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뭐 먹고 싶어? 엄마가 만들어 줄게.” 심태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밤에 많이 먹으면 살쪄서 멋지지 않아요.” 심미연은 순간 벙찼다. ‘이 녀석, 대체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거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98화

    심태하의 영특함에 박유진조차 자주 감탄했다. 마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꽃은 아빠가 직접 꽃집에 가서 사야 해. 아빠의 성의를 보여줘야지.” 박유진은 부드럽게 말했다. 심태하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아빠 말대로 할게요. 아빠, 피곤하면 잠깐 쉬세요. 저는 내려가서 레고 할래요.” 하지만 박유진은 아들을 안아 들고 문을 열었다. “아빠도 같이 할 거야.” 심태하는 레고를 정말 좋아했다. 한 번 시작하면 완전히 집중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박유진은 회사 동료들이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자주 말하는 걸 들었지만 심태하를 돌볼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고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이마다 이렇게 차이가 클 수 있나?’ 두 사람은 거실로 내려가 놀이 매트 위에서 레고를 시작했다.방 안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하인들이 몰래 문을 열고 살짝 들여다봤다. 그들은 곧바로 카톡에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백선영이 말했다. [사장님은 얼굴도 잘생기셨고 성격도 좋고 아내와 아들에게도 엄청 잘해주시네요. 이렇게 좋은 남자는 살면서 처음 봐요.] 진은숙도 한마디 했다. [맞아요. 우리 남자들은 능력도 없고 성격도 고약한데 담배, 술, 도박 하나 안 하는 게 없어요. 같은 여자라도 어찌 이리 운명이 다를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백선영이 말을 이어갔다. [사모님이 예쁘고 능력도 있잖아요. 이런 여자는 사장님 같은 남자와 정말 잘 어울려요.] 진은숙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사모님 성격이 진짜 좋더라고요. 말할 때도 부드럽고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쉽게 다가갈 수 있어요.] [듣자 보니 사모님이 굉장한 변호사라고 하던데.] 백선영이 또 덧붙였다. 진은숙은 놀라운 이모티콘을 몇 개 보냈다. [정말요? 이렇게 온화해 보이는 사모님이 변호사라니 전혀 상상이 안 가네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99화

    심미연은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잠시 보고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혜윤 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심미연 씨, 제 친구가 지금 혼수상태에 빠져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어요. 제발 와주실 수 있나요?] 장혜윤의 목소리는 마치 숨을 헐떡이는 듯 급박했고 그녀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그대로 느껴졌다. [어디 병원인가요?] 심미연은 전에 그녀가 말한 친구가 납치당했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직감적으로 그 친구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어떻게 그렇게 폭력을 일삼는 인간들이 많은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하병원이에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심미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혜윤이 친구를 치료해달라고 부탁했으니 이 기회에 그 여자가 나윤미인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만약 그 여자가 정말로 나윤미라면?’ 그렇다면 이건 정말 쉽게 해결될 일이 될 것이다. 전화를 끊고 심미연은 허리를 굽혀 심태하 앞에 무릎을 꿇고 부드럽게 말했다. “태하야, 엄마는 병원에 가야 해. 태하는 잠깐 놀고 나서 방에서 씻어야 해. 알겠지?” 심태하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를 쳐다봤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아빠가 데려다주게 하세요. 엄마 혼자 가는 건 좀 불안해요.” 그 말에 심미연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알겠어. 그럼 내가 아빠한테 얘기하고 올게. 태하는 놀고 있어.” 심미연은 말하며 그의 작은 몸을 감싸 안고 그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심태하도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이건 사랑의 뽀뽀야. 엄마 화이팅!” 심미연의 눈가가 붉어지고 그의 몸을 더 꽉 안았다. “고마워, 아들.” ‘우리 아들은 어쩜 이렇게 멋지지?’ ‘그냥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 “엄마니까 저한테 고마워할 거 없어요.” 심태하는 그녀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빨리

Latest chapter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4화

    심미연은 흩날리던 생각을 차분히 거두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궁금한 듯 물었다.“우리 태하 진짜 똑똑하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야?”아직 겨우 세 살이지만 심태하의 마음은 놀랄 만큼 세심하고 예민했다. 또렷한 눈망울은 마치 세상의 감정 흐름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그렇게 꼼꼼히 살피는 모습에 심미연은 종종 놀라곤 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유진이 심태하를 정성스럽게 길러온 시간이 아이를 이토록 똑똑하고 배려 깊게 자라게 만든 것이다.“아까 아빠랑 통화할 때 엄마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어요. 뭔가 걱정하는 게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한테 말 걸었을 때도 평소처럼 웃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혹시 슬픈 건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심태하의 말은 또렷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단어 하나하나에 엄마를 향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담겨 있었다.심태하가 보기에 박유진이 집에 있을 땐 심미연은 늘 기분이 좋아 보였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엄마가 안 웃었어?”심미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녀석, 정말 못 말려.’겨우 세 살에 이 정도인데 나중에 더 크면 얼마나 영리해질지.“네, 안 웃었어요.”심태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심태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앳됐지만 말투는 왠지 어른스러웠다. 꼭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라도 한 듯했다.심미연의 마음은 그 말 한마디에 확 풀렸다. 그녀는 아들의 코끝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자, 얼른 아침 먹자.”그녀의 말투엔 아낌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아빠가 보고 싶으면 아빠한테 전화하면 되죠!”심태하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윙크했다.‘나도 아빠가 보고 싶은데 엄마가 안 보고 싶을 리가 없지. 맞아, 분명 그럴 거야!’심미연은 그 말에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박유진이 보고 싶지만 그에게 전화하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3화

    하지만 그 깊은 애정과 놓기 싫은 마음은 오히려 박유진을 현실이라는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게 만들었다.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심미연만 괴로운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걸.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의 망설임으로 인해 흐려지는 건, 그녀의 세상이 자신 때문에 흔들리는 건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었다.그렇다고 그녀를 놓아버리면 영원히 잃게 될 텐데... 그 아픔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박유진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아빠, 왜 말이 없으세요? 허락한 거죠?”심태하의 목소리는 천진난만하게 들떴다. 마치 머릿속에 따뜻한 한 가족의 그림이 그려지기라도 한 듯.‘아빠가 돌아오면 엄마랑 나랑 셋이 모여 저녁 먹고 같이 웃고 얘기하고...’심태하의 마음속에서 그려낸 가장 순수한 행복의 모습이었다.그러나 그 순수한 소망 앞에서 박유진의 마음은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그는 알고 있다. 이번 결정을 가볍게 내려서는 안 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하려면 정말 신중해야 했다.하지만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그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는 지금 사랑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심미연과 아이를 지킬 방법을 찾고 있다.하지만 그런 길이 과연 있을까? 이 선택은 너무나도 어려웠다.“아빠, 나 이렇게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해요?”심태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렸다.평소 같았으면 박유진은 재밌는 얘기도 해주고 자기 말에 웃어주었을 텐데, 오늘따라 너무 이상했다.‘혹시... 내가 말실수했나?’그때 박유진의 다급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심태하의 귀에 들려왔다.“태하야, 곧 비행기가 이륙해서 아빠가 휴대폰을 꺼야 돼. 오늘 밤에 다시 이야기하자. 꼭이야.”박유진은 심미연을 당장이라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고 말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네! 알겠어요, 아빠! 그럼 오늘 밤에 꼭 통화해요. 약속했으니까 안 하면 안 돼요!”심태하의 목소리에 눈치채기 힘든 외로움이 살짝 섞여 있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2화

    심미연은 멍해졌고 아까 자신이 박유진에게 연락을 시도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날아온 건 단 한 줄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메시지. 기대했던 목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아들 심태하가 전화를 걸자 박유진은 놀랍게도 전화를 받았다.“아빠, 지금 어디예요? 이틀 뒤면 제 생일이에요! 아빠가 놀이공원 같이 가자고 했던 거 잊으시면 안 돼요!”심태하의 말투엔 아이 특유의 해맑은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고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서 튀어나오는 듯했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박유진의 목소리는 한겨울 얼음도 녹일 만큼 다정했다.“아빠 지금 진성으로 가는 비행기 타러 가는 중이야. 곧 이륙이라 휴대폰 꺼야 해. 진성에 도착하면 바로 전화할게. 약속!”그 말에는 미안함과 애틋함이 가득 실려 있었다.사실 박유진은 심태하가 생일 이야기를 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어젯밤에 워낙 정신이 없어 그런 중요한 약속마저 깡그리 잊고 있었던 것이다.“아빠가 보내준 선물 잘 받았어요!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심태하는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이 많은 듯 아빠에게 털어놓고 싶은 게 가득한 눈치였다.박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햇살이 쏟아져 내려 유난히 눈부셨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고 그 강렬한 빛이 속눈썹 아래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그 순간 그의 마음속엔 오로지 한 사람, 심미연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그녀와 떨어져 있는 모든 시간이 하나같이 그리움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그리움이 너무 커서 박유진은 당장이라도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달려가고 싶을 만큼 벅찼다.“아빠... 지금 너무 힘들죠? 그럼 회사 팔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요.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아빠랑 엄마 다 먹여 살릴게요!”심태하의 순수한 눈빛에 진심 어린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에겐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을 지킬 거라는 꿈이 있었다.심미연은 그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통통한 볼살에 아직 아기 티가 남았지만 심태하의 마음속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1화

    심미연 역시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이지연이 잘못 알아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지연 씨,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해 봐요. 결과가 똑같은지 꼭 잘 봐요.”혹시라도 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그럼 제가 다시 확인해 볼게요! 뭐든 나오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보스, 그럼 끊을게요!”이지연은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를 뚝 끊었다.심미연은 휴대폰을 쥔 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까 이지연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이건명과 문소영이 예전에 그런 사이였다고?’그런데 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걸까? 아무도 깊게 파고들지 않았기에 묻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결혼 전에 누굴 만나든 그건 사생활인데 그걸 굳이 숨긴 이유가 뭘까?심미연이 이 모든 게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느끼고 있을 즈음, 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엄마! 나 배고파요! 우리 빨리 아침 먹으러 가요!”심미연은 생각을 접고 고개를 들어 활짝 웃는 아들을 바라봤다.“그래, 가자.”심태하가 달려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며칠 뒤면 제 생일이잖아요. 생일 파티에 상미도 초대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젯밤의 친자 확인 결과가 떠올랐다. 강상미는 그녀의 딸, 즉 심태하와 쌍둥이였다. 그래서 둘의 생일도 당연히 같았다.심태하의 생일 파티에 강상미가 온다면 그건 곧 둘이 같이 생일을 보내게 되는 셈이다.“엄마, 안 돼요?”심미연이 대답하지 않자 심태하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 웃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그럼, 당연히 초대해야지. 너희 둘이 같이 생일 파티하면 되겠네.”“정말요? 엄마 최고! 사랑해요!”심미연은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태하야, 너 엄마가 어제 말한 거 잊은 거 아니지? 상미가 바로 태영이야. 너랑 똑같이 엄마 배에서 나왔고 너희 둘은 쌍둥이야. 그래서 생일도 똑같아.”강상미에 관한 일은 이미 방원호에게 조사를 맡긴 상태였다. 꼭 알아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0화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담아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그래요?”이지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온지유 씨가 도망쳤어요.”“언제요?”심미연의 눈빛이 반짝이며 날카로워졌다. 누가 이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스쳤다.“어젯밤에요.”이지연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고 자책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방심했어요.”심미연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미안해하지 마요. 이건 지연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이지연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제가 당장 찾아올까요?”심미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휴대폰을 천천히 만지며 생각했다.“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요.”어젯밤 강지한이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혹시 온지유의 실종과 강지한이 관련 있는 걸까? 만약 강지한이 온지유를 구한 거라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거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의문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참, 보스. 어젯밤에 스승님 못 보셨어요?”이지연이 물었다.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사실은 봤었다. 그녀는 진운혁이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보고 따라붙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제가 분명히 확인했는데... 스승님께서 이진영 씨랑 같이 식사하고 계셨어요!”이지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심미연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문득 이전에 마주쳤던 진운혁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그 순간 한 가지 의심이 그녀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그때 내가 본 스승님은... 정말 스승님이 맞았을까? 만약 누군가가 스승님을 사칭하고 있었다면 그 목적은 대체 뭘까?’그때 이지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심미연의 생각을 끊어냈다.“보스!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어요!”“무슨 정보예요?”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이자 이지연의 들뜬 목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9화

    백선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진은숙의 팔을 살짝 끌어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제 가요.”진은숙은 손바닥 위에 놓인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이건... 어쩌죠?”백선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난처한 상황을 심미연에게 넘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심미연 앞에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마음은 충분히 받았지만... 이 돈은 받을 수가 없어요.”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봉투 위로 흘렸다.“오빠가 직접 드린 건데 마음 편히 받으세요. 저한테 돌려주실 필요는 없어요. 자,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 벌써 배가 고파졌는걸요.”그러나 말하다가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스르르 마음 한쪽에 올라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박유진은 예전에 밤하늘을 보며 수없이 약속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녀와 아이를 평생 지키겠다고. 그런데 지금 그 약속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금세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오빠, 나랑 약속한 거 잊은 거야?’“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모님과 사장님 두 분 다 참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분들이세요. 두 분,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시길 빌게요!”진은숙은 기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백선영의 팔을 붙잡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오늘 정말 행운이 따랐다 싶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다니.심미연도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나서 주방으로 들어가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어쩐지 목이 바싹 마른 게, 감정이 몰려서 그런 걸까.막 물을 다 마셨을 무렵 문밖에서 귀엽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어디 있어요?”그 소리는 마치 봄날에 막 피어난 꽃처럼 듣는 사람 마음을 몽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심미연은 표정이 풀렸고 얼른 얼굴을 내밀며 따뜻하게 웃었다.“우리 태하, 엄마 여기 있어!”심태하는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 품에 안겼다.“엄마, 아빠가 나 버렸어요!”심미연은 깜짝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8화

    백선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장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집에 안 계시는 동안 꼭 사모님과 도련님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진은숙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맞아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바로 캐리어 들고 곧장 나가셨거든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박유진의 말뜻을 곱씹어 보았지만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 선명하게 와닿지 않았다.“그런데요, 사모님...”진은숙이 심미연을 흘끗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눈빛에는 망설임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왜 그러세요?”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언제나 그래왔듯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태도가 마치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웠다.진은숙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어젯밤에 제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계단 모퉁이에서 사장님을 마주쳤었어요. 사장님도 물 마시러 나오신 것 같았어요.”곁에 서 있던 백선영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저도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길래 문 열고 나왔더니 사장님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계셨습니다.”심미연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어젯밤에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진은숙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어서 말했다.“불빛이 비쳐서 얼핏 봤는데 사장님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더라고요. 꼭 방금 울기라도 한 사람처럼요. 아마 제가 눈치챌까 봐 인사만 툭 하고는 곧장 자리를 피하셨어요. 전 그냥 물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보니까 사장님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계셨어요. 제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안 들어오시더라고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오늘 아침에 사장님께서 나가신 뒤에 서재를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휴지통에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 있었어요. 어젯밤 내내 잠도 못 주무시고 담배만 피우셨던 것 같아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7화

    휴대폰 화면이 켜지고 그 익숙하면서도 가슴을 죄는 번호가 뜨는 순간, 박유진의 심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움켜잡힌 듯 조여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렁이며 축축한 솜처럼 뭉쳐져 목덜미를 틀어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말은 더더욱 나올 리 없었다.그 번호는 마치 꿈결 속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고통과 갈등을 다시 불러냈다.박유진은 손을 떨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공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과 묘한 압박이 가득했다. 박유진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고 손끝으로 천천히 휴대폰 키보드를 두드려 문장을 써 내려갔다.[진성에 가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돌아가면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도 되지?]그 메시지엔 그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언젠가 다시 마주하길 바라는 희미한 기대도 모두 그 짧은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메시지 전송을 마친 박유진은 망설임 없이 전원을 꺼버렸고 휴대폰을 한쪽으로 툭 던졌다. 마치 그렇게 하면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까지 함께 던져버릴 수 있을 것처럼.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텅 빈 공간엔 그의 심장 뛰는 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규칙적이고도 묵직한 박동이 마치 그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려는 듯했다.박유진은 눈을 감았다. 피로한 몸은 본능적으로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갔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찾고자 했다.비록 밤새 한숨도 못 잤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유난히 또렷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지탱해 주듯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하지만 피하고 싶을수록 심미연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그녀의 미소는 때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따스했으며 때로는 눈빛 하나로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또 부끄러워하던 그 순간순간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6화

    박유진은 자신의 앞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심미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될 것이란 사실.만약 그녀가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는 가진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그녀를 돕고 그 아이를 보살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친딸인 양 지극정성으로.박유진은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심미연을 사랑하고 그녀의 아이와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함께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심미연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마치 물에 빠진 이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박유진의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수많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박유진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많고 무거웠다. 그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젠 좀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갈래.”박유진의 목소리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심미연을 더욱 꼭 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 뼛속 깊이까지 끌어안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어쩌면 이 다정함이 그들 사이 마지막 남은 따뜻함이 될지도 모른다...박유진의 마음속은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머릿속 이성은 매서운 바람처럼 그를 휘감으며 이제는 놓아줄 때라며 끊임없이 속삭였다.하지만 감정은 뿌리 깊은 덩굴처럼 박유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바랐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심미연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이 찰나의 시간이 남은 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박유진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박유진의 마음속 한기를 모두 녹이는 듯했다.심미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말했다.“이생에 오빠를 만나 알아가고 수많은 인파를 뚫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복이었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 손 놓지 말고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