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네가 언제쯤 기억을 되찾든, 언제쯤 떠나든, 그건 모두 네가 결정할 일이야. 난 강요할 생각 없어.”여화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근마마가 끼어들었다.“하지만 네가 주인님을 스승으로 인정한 이상, 그동안은 우리한테 폐를 끼치지 마!”“근마마…”여화행은 다소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근마마는 윤세현이 언제든 떠나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분명 그를 붙잡아 두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윤세현이 어떻게 주인이 나아지기 전에 스스로 떠나려 할 수 있겠는가.그는 지금도 자신 때문에 주인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물론 그것 역시 근마마가 줄곧 은근히 심어 온 생각이었다.그만큼 윤세현은 죄책감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근마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화행을 무시한 채, 날카로운 시선으로 윤세현을 똑바로 응시했다.“이경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니, 너도 그 아이와 잘 지내도록 해. 그 아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고! 우린 지금 그 아이의 도움이 필요해!”그 말에 윤세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극심한 거부감이 남아 있었다.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던 이경의 추한 얼굴을 떠올리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대체… 그 아이한테 무슨 일을 시킨 겁니까?”설마 오직 그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인 건가?“이 일은 확실히 이경만이 할 수 있어.”윤세현은 여전히 거부감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적어도 더 이상 반발하지는 않았다. 그제야 근마마의 표정도 조금 누그러졌다.“걱정 마. 주인님이 깨어나고 몸이 회복되면, 그 뒤에는 네가 무엇을 하든 우린 간섭하지 않을 거야.”“혹시 그 아이가 하게 될 일이… 스승님을 낫게 할 수 있는 겁니까?”윤세현은 여전히 혼수상태인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순간 희망이 스쳤다.그 순간 여화행이 무언가 말하려 하자, 근마마는 그녀를 흘겨보며 제지했다.이내 윤세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러자 윤세현은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윤세현은 급히 여화행을 찾으러 나섰지만, 여화행은 지화각에 없었다.하지만 윤세현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이내 그는 남원에 도착했다.“전 정말로 여태 당신 곁에 있었던 겁니까?”그는 기억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성까지 잃은 건 아니었다.“행마마, 전 왜 보름 전의 일조차 떠오르지 않는 거죠?”“윤세현, 내가 언제 네가 계속 내 곁에 있었다고 말했니?”여화행은 자신보다 몇 살 연상인 또 다른 부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 부인은 침상 위에 누운 백의 차림의 여인의 손바닥을 주무르고 있었다.그 여인은 이들의 대화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윤세현은 여화행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돌이켜 보면 행마마는 정말로 단언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그럼 난 대체 어떤 사람인 거지? 출신은 어디인 거지?“보름 전, 주인님께서 너를 구해 오셨고, 그동안 넌 줄곧 우리를 따라다녔어.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가 네 과거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었던 것 같구나. 네가 직접 묻지 않았기에 나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어.”“그럼 그 여자는…”“한때 네 아내였단다.”“말도 안 됩니다!”자신의 아내조차 잊어버리게 됐다니. 이게… 이게 말이 되냐고?여화행은 난감한 표정으로 뒤돌아 침상 위에 누운 여인을 바라보았다.“정말이야. 내가 왜 너를 속이려 하겠어?”“그런데 왜 전 그 여자한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거죠?”정말로 자신의 아내라면, 모든 감정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지금은 오히려 혐오감까지 들었다.게다가 뻔뻔하고 방탕하기만 한 그 여자를, 대체 어떻게 아내로 맞이한 건지.“한때 넌 분명히 그 여자와 혼인했어.”“한때요?”그는 말속의 핵심을 알아챘다.“응, 한때.”여화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러다 나중에 너희 두 사람은 이혼했고,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보름 전 이야기를 해보자면…”“보름 전, 주인님께서 너를 구해 오
그는 그녀의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고 싶었다.문득 떠오른 터무니없는 생각에 윤세현은 순간 멈칫했다.방금 전까지 자신을 희롱하던 색녀를 연민하다니….정신이 번쩍 든 그는 눈빛을 가라앉히며 다시 분노를 끌어올리려 했다.하지만 이경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연민으로 가득한 그 눈빛 때문에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윤세현은 발밑의 석판을 세게 내리쳤다.곧 긴 몸을 일으켜 세운 그는 허공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그러자 긴 옷 한 벌이 그의 손에 날아들었고, 다시 한번 손을 휘두르자 옷이 몸을 단단히 감쌌다.그 모습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차갑기 그지없었다.이경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손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손등에는 따뜻한 피가 묻어났다.세자의 장풍은 실로 강력했다.이경 역시 공력이 크게 성장했고 호체강기까지 갖추었지만, 윤세현의 장풍이 남긴 여파만으로도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그녀는 가볍게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켜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꺼져."윤세현이 싸늘하게 내뱉었다.하지만 이경은 화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당신은 이미 내 사람인데, 내가 당신 몸 좀 본다고 뭐가 문제야?""한 번만 더 함부로 지껄여 봐. 그땐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그의 분노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그동안 그 여자조차 감히 자신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지는 못했다."난 여 장주와 약속했어. 그녀를 위해 목숨 걸고 한 가지 일을 해주기로."이경은 말을 마치고 또다시 기침을 터뜨렸다.가슴속 혈기가 들끓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윤세현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여 장주도 나한테 약속했어. 당신을 내게 주겠다고."그 말과 함께, 윤세현이 품고 있던 마지막 연민마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그때 뒤쪽에서 이경의 맑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당신은 왜 기억을 잃게 됐는지 생각해 본 적 없어?""헛소리하지 마."윤세현은 걸음을 멈추고 뒤
그렇게 윤세현은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이경은 자신이 떠나려던 찰나에 그의 심기가 흐트러져 피까지 토하며 기절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그저 한 번 뒤를 돌아봤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 남자도 참 너무한 것 아닌가?고작 한 번 힐끗 봤다고 이렇게까지 놀라다니.윤세현은 눈을 감은 채, 큰 몸이 천천히 옥천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다급해진 이경은 재빨리 달려가 의식을 잃은 윤세현을 옥천에서 끌어올려 샘가의 따뜻한 석판 위에 눕혔다.곧바로 그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 본 그녀는 순간 눈썹을 깊게 찌푸렸다.그의 몸속에는 무려 두 종류의 맹독이 자리하고 있었다.두 독은 서로를 견제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언제든 함께 폭발할 것처럼 위태롭게 얽혀 있었다.게다가 그의 체내에는 본인의 진기 외에도 깊고 강한 또 다른 내력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힘이 두 독기를 억누르고 있었다.한 줄기의 내력과 두 줄기의 맹독.그것들로 가득 찬 그의 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이경은 단번에 알아보았다.두 가지 맹독 중 하나는 정고였다.하지만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설마 그 독 때문에 기억을 완전히 잃게 된 것일까?아니면 정고를 억누르기 위해 심어진 또 다른 독일까?하지만 무엇이든 두 독은 일반적인 독과는 달랐다.혈맥을 침식하지도 않았고, 보통의 중독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이경은 그의 큰 손을 붙잡은 채 계속 맥을 짚었다.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분명 몸 안에는 맹독이 존재했다.그런데도 발작하지 않은 채 서로를 끌어당기며 알 수 없는 내력에 눌려 있었다.마치 그의 몸속에 시한폭탄이 설치된 것 같았다.언젠가 두 독이 동시에 폭발하거나, 둘 중 하나라도 균형을 잃는 순간 그는 즉시 독발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그 생각에 이경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의 의술은 뛰어났지만, 지금만큼은 그녀 역시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두 독을 푸는 실마리조차
윤세현은 조용히 이경을 응시했다.화가 나 미쳐버릴 지경이었지만, 걱정이 가득한 이경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그에게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미친년…순간 그의 머릿속에 세 글자가 떠올랐다.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세 글자였다."난 그냥 네 맥을 짚어보고 싶었을 뿐이야. 동의한다면 눈 한 번 깜빡여 봐."이경은 다시 그의 곁에 앉아 샘물에 잠긴 그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네 손등에 깊은 이빨 자국이 두 줄 있네?"그 말에 윤세현의 눈빛이 흔들렸고, 이경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사실 이건 내가 문 거야. 하지만 지금의 넌 기억 못 하겠지."순간 윤세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는 불쾌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정말 이 여자가 문 거라면, 대체 왜 그렇게까지 세게 문 거란 말인가?사람을 죽이려 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하지만 오해하진 마."이경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녀는 다시 다리를 꼬고 앉아 윤세현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그렇게 심하게 문 건 아니야. 난 식인종이 아니거든."윤세현은 말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했다.흐트러진 옷차림 사이로 몸이 반쯤 샘물 밖으로 드러나 있었기에,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하물며 여자라면 더욱 그랬다.하지만 이경은 조금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이빨 자국은 내가 남긴 게 맞아. 하지만 이렇게 흉하게 변한 건 네가 직접 독을 상처에 발랐기 때문이야.""황당하군."윤세현은 입을 열자마자 다시 진기가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그는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공력을 운용하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이경은 그의 준수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보면 볼수록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이었다.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그녀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윤세현이 만약 21세기에 태어나 슈퍼스타가 되었다면, 다른 남자
한편 윤세현은 정말로 옥천 안에 있었다.이곳은 여화행이 전에 한 번 들른 것을 제외하면 누구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었다.게다가 평소에는 청도와 홍매가 밖을 지키고 있어, 일반인이 들어오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하지만 어떤 이들은 일반인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윤세현은 미처 알지 못했다.바로 이경이었다.윤세현은 어느새 옥천가까지 걸어온 이경을 노려보았다.평소 무덤덤하던 그의 얼굴에는 지금 먹구름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게다가 이마에는 콩알만 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정말 목욕하고 있었네."이경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물 밖으로 드러난 상반신을 바라보았다.가슴에는 탄탄한 근육이 잡혀 있었고, 선명한 근육의 결만 봐도 강한 힘이 느껴졌다.그녀는 여태 수많은 세계적인 슈퍼모델들을 봐 왔다.다들 몸매는 좋았지만 어딘가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반대로 근육질 남자들은 강해 보이기는 해도, 지나치게 거친 인상을 주곤 했다.하지만 윤세현은 달랐다.옷을 입으면 늘씬해 보이고, 벗으면 탄탄한 근육이 드러났다.근육이 가득한데도 거칠거나 사나운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다.이 정도의 몸과 얼굴을 동시에 갖춘 남자는 직접 보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가까이 다가선 이경은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듯했다.괜히 코끝까지 간질거렸다.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살짝 들어 자신의 본능을 감추었다.이 상황에서 코피라도 흘리면 정말 창피한 일이니까.반면 윤세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경은 그의 곁에 앉아 옥천 아래 잠긴 채 희미하게 드러난 그의 몸을 바라보았다."바지는 입고 있었네. 아쉽게."색녀의 본성이 완전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윤세현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이렇게 본능적이고 염치없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꺼져."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본심을 내뱉었다."운공 중이야?"그러나 이경은 여전히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팔꿈치를 무릎에 올리고 턱을 괸 채, 온천물에 젖은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