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태혁의 손이 멈췄다.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달랐다. 기억과 기록도 달랐다.
아직 확인할 게 남아 있었다.
“모르지.”
태혁은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그래서 보는 거야.”
준호는 더 묻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로 돌아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태혁은 혼자 남은 책상에서 기록을 계속 읽었다.
첫 번째 피해자.
두 번째 피해자.
세 번째 피해자.
십 년이라는 시간은 종이도 늙게 만들었다. 이름도, 날짜도, 사진도 그대로인데 파일만 낡아 있었다.
태혁은 어느 페이지에서 손을 멈췄다. 아까 전산으로 확인했던 기록이었다. 원본도 같았다.
거실에 비치된 가족사진을 확인.
그 아래.
사진 속 가족의 동거 여부 및 귀가 시간을 질문함.
태혁은 두 문장을 오래 내려다봤다. 오늘 병원에서 들은 말과 같았다.
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많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연락처 하나를 열었다. 오늘 오전 저장한 번호였다.
윤이재.
―다음부터는 회사로 찾아오지 마세요.
―왜요?
―싫으니까요.
통화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몇 초쯤 그대로 있다가 화면을 껐다. 아직은 아니었다.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만으로 윤이재에게 다시 겁을 줄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오늘 그녀에게 한 말이 있었다.
―아직 판단할 단계는 아니에요.
그 판단부터 끝내야 했다. 태혁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기록을 펼쳤다. 십 년 전과 같은 질문. 그것만은 이제 확실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건 하나였다. 첫 번째 사건에서도 같은 질문을 했는가. 태혁이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준호야.”
멀리서 대답이 돌아왔다.
“네.”
“첫 번째 피해자.”
“네.”
“내일 오전으로 일정 잡아.”
잠시 뒤 준호가 물었다.
“직접 가시게요?”
태혁은 낡은 기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
이제 우연인지 아닌지 확인할 차례였다.
***
첫날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업무 중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발신자를 확인했다. 강태혁이 자신의 번호를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입국 날짜까지 알아낸 사람이었다. 연락할 필요가 생긴다면 휴대폰 번호쯤은 진작 알아뒀을 것 같았다.
오전에는 카드사였고, 점심 무렵에는 택배 기사였다. 오후 네 시쯤 걸려온 모르는 번호는 보험 광고였다.
“괜히 받았네.”
이재는 번호를 차단하고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날은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확인해야 할 자료가 책상에 세 개나 쌓여 있었다. 휴대폰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윤 대리님, 잠깐만 봐주실 수 있어요?”
김다은이 노트북을 들고 다가왔다. 입사 3년 차 사원. 이재보다 세 살 어린 후배였다.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는 이재가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인사 한번 하는 데 온몸을 다 쓰던 사람이기도 했다.
요 며칠은 조금 나아졌다. 조금.
“뭔데요?”
“부산 쪽에서 보내준 실적 자료요. 아무리 봐도 숫자가 안 맞아서.”
“봐봐요.”
다은이 옆으로 노트북을 밀었다. 호텔별 객실 가동률과 부대시설 매출을 합산한 자료였다. 이재는 화면을 내리다가 한곳에서 손을 멈췄다.
“여기 기준 월이 다르네요.”
“어디요?”
“객실은 7월인데 F&B가 6월이에요.”
다은이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잠시 뒤 작은 탄식이 나왔다.
“아…….”
“그래서 안 맞았나 봐요.”
“저 이거 십오 분 동안 봤는데.”
진심으로 허탈한 얼굴이었다.
이재가 웃었다.
“십오 분이면 그래도 양호하네요.”
“위로해주시는 거예요?”
“네. 나름.”
다은이 작게 웃었다. 이재는 자료를 다시 확인했다.
“객실이랑 F&B 둘 다 7월 기준으로 다시 요청해요. 카지노 매출도 같은 기준인지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노트북을 챙기던 다은이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윤 대리님.”
“다은 씨.”
“네?”
“나한테 말할 때마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요.”
“제가요?”
본인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이재가 다은을 잠시 봤다.
“지금도 내가 꼭 면접관 같아요.”
“아…….”
다은이 민망한 듯 웃었다.
“죄송, 아니. 그게…… 처음에는 좀 그랬어요.”
“뭐가요?”
잠깐 망설이다가 다은이 솔직하게 말했다.
“회장님 따님이시니까요.”
“아.”
그건 이해했다. 이재도 입장이 반대였으면 신경은 쓰였을 것이다.
“그럴 수 있죠.”
“지금은 처음보다는 괜찮아요.”
“다행이네.”
“진짜예요.”
“알았어요.”
이재가 웃으며 손짓했다.
“자료부터 받아와요. 이러다 우리 둘 다 야근하겠어요.”
“아, 네.”
다은은 자리로 돌아갔고, 이재도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한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열흘 남짓이었다. 사내 시스템도 아직 낯설었고 사람들의 이름과 직급도 외우는 중이었다. 그에 비하면 업무는 훨씬 익숙했다.
미국에서 일했던 호텔과 규모도, 운영 방식도 달랐지만 결국 확인해야 할 것은 비슷했다. 객실이 얼마나 찼고, 얼마를 벌었으며, 예상과 실제 사이에 생긴 차이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이재는 숫자를 들여다보는 일이 좋았다. 숫자는 적어도 이유 없이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찾아내기만 하면 틀린 이유도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
사람이나 기억은 그렇지 않았다.
후자는 특히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재는 설명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법을 익혔다.
꽤 일찍.
이재는 잠시 태혁을 바라봤다. “네.”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태혁이 이재를 끌어안았다. 숨이 막힐 만큼 세게. 이재도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익숙한 체온과 향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반년이나 지났는데 몸은 너무 쉽게 기억해냈다. 이재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태혁 씨.” “네.” “좀 세요.” 팔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렸다. “미안합니다.” 이재가 태혁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놓으라는 건 아닌데.” 잠시 멈췄던 팔이 다시 등을 감쌌다. 이번에는 조금 덜 세게. 이재가 웃었다. “말 잘 듣네.”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이제 와서요?” “늦었습니까?” 이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가까웠다. 태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재가 먼저 발끝을 들어 입을 맞췄다.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태혁은 한동안 이재를 바라보기만 했다. “왜요.” “…….” “뭐 할 말 있어요?” 태혁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방금 닿았던 입술에 머물렀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이재가 웃었다. “아까부터 자꾸 아니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혁이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다시 맞닿았다. 이번에는 짧지 않았다. 반년 동안 참았던 시간을 한꺼번에 되찾으려는 것처럼 몇 번이고 입술이 겹쳤다. 이재의 손이 그의 어깨를 감싸자 허리를 끌어당기는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숨이 흐트러졌다. 입술이 떨어졌다가 다시 닿았다. 그 사이 이재는 몇 번이나 웃었다. 태혁도 그때마다 따라 웃었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을 때 이재가 그의 턱을 만졌다. 까슬했다. “따가워.” “아까 깎고 온다고 했잖아요.” “그러게요.” “지금이라도 깎고 올까요?” 이재가 피식 웃었다. “지금은 됐어요.” “마음대로네.” “원래 그랬잖아요.” 태혁도 작게 웃었다. 그 얼굴을 보자 이재는 괜히 한 번 더 입을 맞췄
태혁은 잠시 이재를 바라보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네.” 이재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익숙한 현관에 둘만 남았다. 구두를 벗던 이재가 발밑을 봤다. 없었다. 예전에 자신의 슬리퍼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태혁의 것만 남아 있었다. 반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했다. 이재가 맨발로 올라서려는데 태혁이 신발장을 열었다. “잠깐.” 안쪽에서 슬리퍼 한 켤레를 꺼냈다. 분홍색. 이재의 슬리퍼였다. 태혁은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어요.” 이재가 슬리퍼를 내려다봤다. “안 버렸네요.” “네.” “왜요?” 태혁이 신발장 문을 닫았다. “버릴 이유가 없어서.” 이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슬리퍼에 발을 넣었다. 반년 만이었다. *** 집은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파도, 식탁도 그대로였다. “뭐 마실래요?” “물.” 태혁이 주방으로 향하다 돌아봤다. “얼마나 마셨어요?” “쪼금.” “……쪼금?” “네.” 태혁이 이재를 가만히 봤다. “그 쪼금 때문에 반년 만에 남의 집까지 온 겁니까?” 이재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의 집?” 태혁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재가 발끝을 내려다봤다. “슬리퍼까지 꺼내주고?” “…….” “남의 집이었구나.” 태혁은 더 대꾸하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물이나 마셔요.” 이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여전했다. 태혁이 물을 가져왔다. 이재는 잔을 받아 들고 소파에 앉았다. 태혁도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반년 만인데 막상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요?” “네.” “태혁 씨는요?” “저도요.” 이재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살 빠졌어요?” “조금.” “바빴나 보네.” “네.” 시선이 턱에 멈췄다. “수염도 기르고.” 태혁이 턱을 한번 쓸었다. “기른 거 아니에요. 오늘 안 깎은 겁니다.” “다행이다
첫눈이 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잠깐 내려앉았던 겨울은 거짓말처럼 물러갔다. 기온은 다시 올랐고, 길가에 남았던 눈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전부 녹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이었다. “대리님.” 다은이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표정부터 수상했다. “왜요.” “제가 저번에 추천한 영화 있잖아요.” “왜요. 환불해주게요?” “그거 평점 난리 났대요. 그래서 영화관에서도 거의 다 내렸잖아요.” “잘됐네요.” “그래서 약간 사죄의 의미로.” 다은이 두 손을 모았다. “오늘 저녁 제가 살게요.” 이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밥을요?” “네.” “영화표보다 비싼데?” “대신 술은 대리님이 사주셔야 돼요.” “그럼 사죄가 아니잖아요.” 다은이 웃었다. “싫으세요?” 이재는 잠시 생각했다. “좋아요.” “진짜요?” 다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바로 예약해요.” “업무 보고 보내는 거 잊지 말고.” “아.” 다은이 다시 얌전히 앉았다. “네.” 이재가 웃으며 다시 모니터를 보려는데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비서실이었다. [회장님께서 잠시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재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은 씨.” “네?” “먼저 내려가 있어요. 금방 갈게요.” “넵.” *** 회장실 문을 열자 윤정호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왔니.” “네.” 이재가 맞은편에 앉자 윤정호가 서류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다음 달 싱가포르 건이다.” 이재는 서류를 펼쳤다. 신규 호텔 운영사와의 협의 일정이었다. 자신이 몇 달 전부터 맡아온 프로젝트였다. “일정이 길어질 것 같더구나.” “네. 현지에서 최종 협의까지 하면 일주일 정도 예상하고 있어요.” 윤정호가 이재를 바라봤다. “네가 직접 갈 생각이니?” 이재의 손이 서류 위에서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결정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네가 갈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 그렇게 통보하고 끝났을 것이다. 요즘은 달랐다.
“대리님.” 다은의 목소리에 이재가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다은은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우와!”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탄성이 터졌다. 이재도 창밖을 봤다. 통유리 너머로 하얀 눈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리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지던 것이 어느새 제법 눈에 보일 만큼 많아졌다. 다은은 벌써 휴대전화를 들고 창가로 달려갔다. “첫눈이에요.” “아.” “반응이 왜 그래요?” 이재는 창밖을 한 번 더 봤다. “오늘 운전 어떻게 하지.” “…….” “길 막히겠네.” 다은이 혀를 찼다. “진짜 낭만 없다.” “눈이잖아요.” “첫! 눈이잖아요.” 이재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메일 한 통을 마저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회의가 하나 있었고, 수정해야 할 보고서가 두 개 생겼다. 첫눈이라고 별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오후가 저물수록 눈발은 조금씩 굵어졌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맞은편 건물의 불빛 사이로 흰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재가 노트북을 덮고 코트를 입자 다은이 물었다. “대리님 오늘 바로 집 가세요?” “그래야죠.” “첫눈이 온 날인데요?” 이재가 가방을 들었다. “그러니까 더 빨리 가야죠.” “와.” 다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심하다.” 이재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봐요.” “네. 운전 조심하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특별한 연락은 없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탔다. 시동을 켜자 내비게이션에 집까지 40여 분이 찍혔다. 평소보다 10분 정도 더 걸리는 수준이었다. 이재는 잠시 화면을 보다가 기어를 넣었다. 집으로 향하던 차는 두 번째 교차로에서 방향을 바꿨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왠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 큰맘 먹고 본 영화치고 내용은 그저 그랬다. 단지 슬픈 영화라서는 아니었다. 러닝타임 내내 사람을 그렇게 고생시켜놓고 마지막까지 불행한 건 좀
이재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하기에는 미안했고, 기다리지 말라고 하기에는 마음에 남은 게 너무 많았다. 좋아하지 않아서 떠나는 게 아니었다. 그 반대라서 어려웠다. “기다리지 마요.” 태혁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이재는 그걸 보고도 말을 바꾸지 않았다. 한참 뒤 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날 밤은 이상하리만큼 평범하게 지나갔다. 태혁은 거실에서 잤고, 이재는 침대에 누웠다. 처음 이 집에서 잤던 밤처럼 문을 열어두지도 않았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이재가 캐리어를 끌고 나오자 태혁은 이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칫솔도, 화장품도, 옷도 전부 캐리어 안에 들어 있었다. 이재가 신발을 신는 동안 태혁이 손잡이를 가져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재는 말리지 못했다. 복도로 나오자 캐리어 바퀴가 낮게 굴렀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태혁이 버튼을 눌렀다. 둘 사이에 캐리어 하나가 놓였다. 이재는 내려오는 숫자를 바라보다 괜히 옷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태혁이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재가 뒤따라 들어서려는데 태혁은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정말 안 데려다줘도 돼요?” “네. 경호팀이 밑에서 기다린대요.” 태혁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손을 놓았다. “알았어요.” 이재가 안으로 들어섰다. 태혁은 문밖으로 물러났다.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문은 알아서 움직였다. “도착하면…….” 태혁이 말을 멈췄다. 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몇 초쯤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삼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연락해요.” 이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태혁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읽기 어려웠다.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좁아지는 틈 사이로 태혁이 보였
태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이상하게 길었다. “십 년 전부터 의심했습니다.” 이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십 년 전부터요?” “네.” “그때부터 아빠가 표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네.” 대답은 짧았다. 이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걸 확신하게 된 건 언제예요?” 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 “……며칠 전입니다.” 며칠 전. 이재는 가만히 태혁을 바라봤다. “그럼 내가 세림호텔 얘기 물어봤을 때는요?” 태혁의 시선이 멈췄다. “그때도 이미 확인한 뒤였어요?”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네.” 차 안에서 자신이 물었다. 왜 하필 우리 호텔일까요. 그때 태혁은 확인할 게 있다고 했다. 확인되면 말해주겠다고. 그보다 전에는 서진우의 아버지가 세림호텔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먼저 알아냈다. 그때도 물었다. 지금도 아무 연결이 없느냐고. 태혁은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그때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한 건…….” “김현석하고 현재 사건이 어디까지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는 뜻이었어요.” “아빠가 서진우의 표적이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요.” “……네.” 이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은 차분했다. “왜 말 안 했어요?” 태혁의 입술이 굳었다. “김현석 쪽도 더 확인해야 했고, 지금 사건과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확실하지 않았어요.” “그게 다예요?” 대답이 없었다. 이재가 그를 바라봤다. “내가 알면 힘들까 봐요?” 태혁은 끝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네.” 이재는 그 대답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말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도 그렇게 말했어요.” “…….” “내가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태혁의 표정이 굳었다. “아빠는 오늘 나한테 거짓말했어요.” 서진우가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직접 연락했다는 걸 숨긴 채, 몰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