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예비 심사가 끝난 뒤, 황궁은 오히려 더 조용해졌다.
겉으로는 축하와 인사가 오갔다. 통과한 요리사들은 서로에게 예의를 차렸고, 탈락한 요리사들은 분한 얼굴로 조리도구를 챙겼다. 하지만 엘리제는 그 조용함 아래 깔린 흐름을 느꼈다. 황실이 준비한 재료에 문제가 있었다. 그걸 독초 영애가 지적했다. 그리고 블레이크 공작이 직접 그 접시를 먹었다. 이 세 문장은 황궁 복도를 따라 아주 빠르게 퍼질 것이다. 마리는 대기실 한쪽에서 기록을 정리했다. "투명 액체. 끝향 차가움. 허브와 섞이면 구분 어려움. 심사관 반응 불쾌. 공작 전하 직접 시식." 엘리제는 의자에 앉아 손목을 돌렸다. 긴장이 풀리자 손끝이 조금 저렸다. 예비 심사 내내 괜찮은 척했지만, 황실 주방의 시선은 무거웠다. 전생의 라이벌과 닮은 르시앙까지 있었으니, 몸보다 머리가 더 피곤했다. 마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셰프님, 손 괜찮으십니까?" "응. 별거 아니야." "그 대답은 공작 전하께서 싫어하십니다." 엘리제는 눈을 깜빡였다. "너 이제 누구 편이야?" 마리는 아주 진지하게 답했다. "셰프님 생존 편입니다." 엘리제는 할 말을 잃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칼릭스가 들어왔다. 대기실 안에 있던 하인들이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마리는 본능적으로 기록판을 품에 안았다. 칼릭스는 그녀를 보지 않고 곧장 엘리제에게 다가왔다. "손." 엘리제는 반사적으로 손을 뒤로 숨겼다. "괜찮습니다." "그 말은 검수 대상이다." "요즘 말이 너무 늘었습니다, 공작님." "네가 가르쳤다." 그는 엘리제 앞에 섰다. 도망칠 공간은 없었다. 엘리제는 결국 손을 내밀었다. 칼릭스는 손목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가운 손이 닿자 손끝의 저림이 조금 선명해졌다. 그는 손바닥과 손가락을 살폈다. "베인 곳은 없군." "없다고 했잖아요." "믿지 않았다." "당당하시네요." "네가 거짓말을 자주 해서다." 엘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칼릭스의 손끝이 그녀의 검지 마디를 스쳤다. 아주 짧은 접촉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엘리제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칼릭스가 고개를 들었다. "왜 숨을 멈추지." "공작님이 남의 손을 너무 진지하게 보셔서요." "남의 손이 아니다." 엘리제는 한 박자 늦게 숨을 삼켰다. "그럼요?" 칼릭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내 미각을 되돌리는 손이다." 역시. 이기적인 말이다. 그런데 이제 엘리제는 그 말이 전부 이기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칼릭스는 걱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걱정도 필요의 언어로 말한다. 그게 더 위험했다. 엘리제는 손을 빼려 했다. "확인 끝났으면 놓아주세요." 칼릭스는 놓지 않았다. "오늘 저녁 미각 재활을 한다." "지금요?" "예비 심사에서 이상한 액체가 나왔다. 내 반응을 기록해야 한다." "공작님도 그 냄새 느꼈어요?" "불쾌했다." "좋아요. 그럼 재활 겸 검수죠." 칼릭스는 그제야 그녀의 손을 놓았다. 손목에 그의 체온이 남았다. 엘리제는 괜히 소매를 정리했다. *** 황궁 대기실 옆 작은 다실이 임시 재활실이 되었다. 엘리제는 하인에게 기본 재료를 요구했다. 꿀, 소금, 산미 열매, 쓴 허브, 따뜻한 물. 화려한 것은 필요 없었다. 칼릭스의 혀가 오늘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려면 맛이 선명해야 했다. 마리는 기록 담당으로 옆에 앉았다. 칼릭스는 의자에 앉아 엘리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자세는 평소처럼 단정했지만, 눈은 접시가 아니라 그녀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엘리제는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왜 자꾸 보는데.' 하지만 손끝이 의식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첫 번째 잔을 내밀었다. "단맛부터 갑니다. 꿀물이에요. 아주 약하게." 칼릭스는 잔을 들었다. 천천히 마셨다. "어때요?" "불쾌하지 않다." 마리가 기록했다.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맛 반응은 안정적. 더 설명해보세요." 칼릭스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따뜻하다." "온도가 따뜻해서요." "아니다. 맛이." 엘리제는 잠시 멈췄다. 칼릭스는 진지했다. "단맛이 혀에 닿으면 몸이 긴장을 조금 늦춘다. 검을 쥐지 않아도 되는 순간과 비슷하다." 마리의 펜이 멈췄다. 엘리제는 칼릭스를 보았다. 이 남자는 감정을 모르지만, 맛을 통해 감정에 닿고 있었다. "그건 안도에 가까워요." "안도." 칼릭스는 그 단어를 천천히 따라 했다. "네가 주방에 있을 때 가끔 그런 맛이 난다." 엘리제의 손이 멈췄다. "그건 꿀물이 아니라 착각입니다." "착각도 맛이 있나?" 마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분명 웃음을 참고 있었다. 엘리제는 잔을 치웠다. "다음. 짠맛입니다." "피하는군." "치료 진행 중입니다." "그렇다면 기록하라." 칼릭스는 마리를 보았다. "착각에도 맛이 있을 가능성." 마리는 펜을 들고 굳었다. "기록합니까?" 엘리제가 말했다. "하지 마." 칼릭스가 말했다. "해라." 마리는 둘 사이를 보다가 아주 작게 적었다. 착각에도 맛이 있을 가능성. 엘리제는 이마를 짚었다. "마리, 너 정말 기록 담당 다 됐다." "죄송합니다. 공작 전하의 지시라서……" 칼릭스는 아주 희미하게 만족한 얼굴이었다. *** 짠맛은 소금물이었다. 아주 적은 양의 소금만 넣었지만, 칼릭스는 바로 눈썹을 움직였다. "날카롭다." "너무 강해요?" "아니. 선명하다." "짠맛은 몸을 깨워요. 피나 땀과도 연결돼 있고. 전장 경험이 많은 사람은 짠맛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어요." 칼릭스는 조용히 소금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분노와 비슷하다." 엘리제는 그 말을 기록하게 했다. 짠맛. 분노. 선명함. 산미 열매 물을 마셨을 때 칼릭스는 턱을 살짝 굳혔다. "긴장." "정확해요. 산미는 몸을 앞으로 당겨요. 무언가 시작되기 직전의 느낌이죠." "너와 말싸움을 시작할 때도 이렇다." "공작님." "기록할 가치가 있다." "없습니다." 마리는 이미 적고 있었다. 엘리제는 포기했다. 마지막은 쓴 허브 차였다. 칼릭스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아주 오래 침묵했다. 방 안의 공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엘리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칼릭스는 잔을 내려놓았다. "기억."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좋지 않은 기억과 닮았다." 엘리제는 더 묻지 않았다. 쓴맛은 억지로 캐내면 안 된다.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왜 묻지 않지?" "쓴맛은 기다려야 하니까요." "모든 맛을 기다리나." "중요한 맛은요." 그의 시선이 깊어졌다. "그럼 나도 기다려야 하는 맛인가." 엘리제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리의 펜도 멈췄다. 칼릭스는 아무렇지 않게 잔을 내려놓았다. "기록은 여기까지." 엘리제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네. 오늘 반응 정리하면 단맛은 안도, 짠맛은 분노, 산미는 긴장, 쓴맛은 기억. 예비 심사의 액체는 공작님의 향 반응을 흐리게 하지는 않았지만 불쾌감은 남겼고요." "그리고 착각에도 맛이 있을 가능성." "그건 삭제합니다." "왜." "의학 기록에 넣기엔 수상해서요." 칼릭스는 잠시 그녀를 보더니 말했다. "그럼 개인 기록에 남겨라." 엘리제는 이번엔 정말 말문이 막혔다. 이 남자, 감정 회복이 이상한 방향으로 빠른 것 같다. *** 재활이 끝난 뒤, 마리는 먼저 기록을 정리하러 나갔다. 다실에는 엘리제와 칼릭스만 남았다. 문밖에는 호위가 있었지만, 안쪽은 조용했다. 엘리제는 빈 잔들을 정리했다. 칼릭스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안 가세요?" "네가 끝날 때까지." "잔 정리까지 기다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기다리는 연습 중이다." 엘리제의 손이 멈췄다. "누가 그런 연습을 시켰습니까?" "네가." "저는 그런 적 없는데요." "위험한 곳에 가면 돌아오라 했다. 기다리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엘리제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 말은 너무 담담해서 더 깊게 들어왔다. 기다리는 연습.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릴 준비를 한다는 건, 이상한 감각이었다. 전생의 그녀는 늘 마지막까지 주방에 남는 사람이었다. 누가 기다리지 않아도, 누가 오지 않아도, 그녀는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그런데 이 남자는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아직 기다림이 무엇인지 배우는 중이라면서. 엘리제는 가볍게 웃으려 했다. "공작님은 참 이상한 걸 연습하시네요." "필요하니까." "누구한테요?" 칼릭스는 그녀를 보았다. "나에게." 그 대답은 짧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엘리제는 시선을 피했다. "그럼 저는 돌아오는 연습을 해야겠네요." 칼릭스의 눈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좋은 균형이군." "요리는 균형이 중요하니까요." "관계도 그런가." 엘리제는 잔을 정리하다 말고 멈췄다. 관계. 그 단어를 칼릭스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가 아직 사랑을 모른다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관계라는 말을 배우고 있었다. 그것도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엘리제는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요. 너무 한쪽만 뜨거우면 타고, 너무 차가우면 익지 않죠." "그럼 지금은." "지금은……" 그녀는 말을 고르다 웃었다. "예열 중입니다." 칼릭스는 한참 그 말을 곱씹었다. "예열." "본격 조리 전 단계요." "그렇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타지 않게 보겠다." 엘리제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공작님, 그런 말은……" "상황인가." "아주 많이요." "알겠다. 나중에." 그는 순순히 물러났다. 문이 닫힌 뒤에도 엘리제는 한참 빈 잔을 바라보았다. 단맛은 안도. 짠맛은 분노. 산미는 긴장. 쓴맛은 기억. 그리고 예열. 엘리제는 이 단어를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이미 적혀버린 뒤였다. *** 늦은 밤, 황궁 숙소로 돌아온 엘리제는 마리의 기록지를 다시 확인했다. 맛 재활 내용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 한구석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착각에도 맛이 있을 가능성. 엘리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 그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공작 전하께서 셰프님을 볼 때, 단맛 반응과 유사한 표정을 보임. 엘리제는 기록지를 덮었다. 기록 담당이 너무 유능해도 문제였다. 그 순간 문밖에서 노크가 들렸다. 마리가 들어왔다. "셰프님, 황실에서 내일 두 번째 심사 주제가 내려왔습니다." "벌써?" 마리는 종이를 내밀었다. 엘리제는 펼쳐 읽었다. [두 번째 심사 주제] [가장 조용한 향] 그녀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조용한 향. 황태후의 냄새가 났다. 엘리제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내일은 향으로 사람을 누르겠다는 뜻이네." 마리의 얼굴이 굳었다. 엘리제는 창밖의 황궁 불빛을 보았다. 달고 차가운 향이 바람에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두 번째 심사는, 단순한 요리 대결이 아닐 것이다.제국 북부의 거대한 설산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몰아치던 동토의 새벽바람이 마침내 잔인한 비명을 거두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블레이크 공작성의 가장 높은 탑 위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자, 수십 년간 얼어붙어 있던 성벽의 성에들이 투명한 보석처럼 부서지며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으로 반사해 내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황궁의 더러운 암투도, 마차 안과 귀빈실을 거쳐 이곳 공작가의 대침실까지 이어지던 파괴적이고도 농밀한 탐닉의 밤도 마침내 잿빛 안개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지독하리만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그러나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와 맥박으로 가득 찬 공작의 대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시간이 완전히 정지한 듯, 낮고 진득한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순백의 예복 실크 조각들과 뜯겨 나간 은색 단추들, 지난밤의 격렬했던 신체적 마찰을 증명하듯 기괴하게 뒤틀린 채 젖어 있는 침대 시트, 그리고 공간을 가득 메운 짙은 샌달우드 향과 달콤한 무화과 향의 잔향이 뇌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방 안의 밀도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으음…….”엘리제는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가녀린 신음을 입술 사이로 흘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뼈마디 하나하나를 타고 무겁게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단 한 순간의 유예도 없이 그녀의 살결을 탐닉해 들어왔던 칼릭스의 잔인한 소유욕이 남긴 흔적이었다. 전생의 강서진으로서 그 어떤 혹독한 주방의 노동과 폭군 같은 선배들의 압박도 버텨냈던 그녀였지만, 모든 감각을 회복한 북부의 괴물이 밤새도록 쏟아부은 원초적인 집착을 받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파멸적인 피로였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려 하자마자,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쥐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악력이 다시금 들어왔다.“깨웠나.”낮고 진득하게 잠긴, 낮의 태양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서늘하고도 뜨거운 목소리가 엘리제의 뒷덜미를 거칠게 긁어내렸다.칼릭
수도에서 북부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밤의 질주가 마침내 끝을 고했다.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블레이크 공작성의 거대한 대문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고,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마필들의 더운 숨결을 흩날리며 안뜰 정중앙에 멈춰 섰다. 북부의 한밤동을 지배하는 동토의 차가운 바람이 마차 외벽을 사정없이 때려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그 서늘한 냉기조차 마차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지독하고 끈적한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달각.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칼릭스는 무릎 위에 늘어져 있던 엘리제를 단 한 순간도 바닥에 디디게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두꺼운 모피 망토로 그녀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아침에 드레스룸에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채웠던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이미 마차 안에서 벌어진 난폭한 탐닉으로 인해 단추가 전부 뜯겨 나가고 옷깃이 처참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하녀들이나 성 안의 기사들에게 아내의 노출된 살결과 자신이 새겨놓은 붉은 낙인들을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겠다는 괴물의 철저한 구속이자 독점욕이었다.“공작 전하를 뵙습니…….”성 문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하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으나, 칼릭스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본관의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살기와 제압감은 전장으로 향하는 총사령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서슬 퍼런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의 단단한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아쥔 채, 모피 망토 안쪽의 은밀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골랐다. 셔츠 자락 틈새로 느껴지는 그의 우람한 가슴팍 근육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채 터질 것처럼 거칠게 맥박치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성의 가장 깊숙한 안동, 공작의 대침실 문이 열렸다. 칼릭스는 발끝으로 문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닫아걸었다.쿵! 철컥.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고 묵직한 금속 걸쇠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 엘리제는 비로소 자신들이
황제와의 숨이 막힐 듯한 공식 오찬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황궁 안동의 깊숙하고 창백한 대리석 통로를 지나 마침내 블레이크 공작가의 대형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장내를 압박하던 화려하고 가식적인 금빛 세계는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마차 내부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호흡할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은밀하고 거대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았다. 마차 바퀴가 수도의 거친 돌길을 짓이기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둔탁한 소음이 정적을 흔들었으나, 그 소음마저 마차 안을 가득 채운 칼릭스의 파괴적인 살기와 소유욕 앞에서는 한 자락의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철컥, 철컥.마차가 코너를 돌 때마다 육중한 차체가 크게 흔들렸지만, 칼릭스는 엘리제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강하게 껴안고 있었다.그는 오찬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황제가 엘리제에게 호의 어린 손을 내밀며 “조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제복 상의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채, 폭주하는 마법 엔진처럼 거칠고 폭력적으로 맥박치고 있었다. 그 무자비한 박동이 엘리제의 둔부를 통해 전신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칼릭스…… 하아,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엘리제가 그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그녀가 입은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드레스는 목끝까지 촘촘하게 은색 단추가 채워져 있어 레이스가 턱밑까지 감싸 안고 있었지만, 남자의 거친 호흡이 깃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맨살 위로 소름 끼치는 열기가 전해졌다. 목을 죄어오는 굵은 은색 사슬과 핏빛 루비 초커가 그의 악력에 들려 올라가며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가락이 초커의 날카로운 테두리를 따라 피부를 파고들 듯 강하게 짓눌렀다.“황제의 눈빛이 네 쇄골 라인이 시작되는 그 깃 끝에 머물렀다.”칼릭스의
황궁의 정오를 알리는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울렸다.블레이크 공작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열린 황실 안동의 귀빈 대기실은 대연회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순금 문양의 휘장들과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불빛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바닥에 깔린 붉은 벨벳 카펫은 발소리 하나조차 완벽하게 집어삼키며 은밀한 정적을 자아내고 있었다.“공작부인 전하, 예복의 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황실 최고위 하녀장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엘리제의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칼릭스가 직접 골라 입힌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레이스가 목끝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어 단 한 치의 살결도 밖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완벽한 폐쇄성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을 옥죄듯 감싸 안은 블레이크 가문의 핏빛 루비 초커는, 그녀가 제국의 구원자이기 전에 오직 한 사내의 지독한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슬과 같았다.엘리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드레스는 주방의 화구 열기를 견디던 전생의 가운보다 훨씬 더 답답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옷이 아니었다. 드레스룸에서부터 마차, 그리고 이 황궁의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쥔 채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의 파괴적인 독점욕 때문이었다.스윽.그때, 대기실 안쪽의 대리석 기둥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황실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의 검이자 북부의 지배자다운 오만한 아우라가 공간을 단숨에 압도하자, 황실 하녀들은 공작의 서슬 퍼런 기운에 질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칼릭스의 투명하면서도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엘리제에게로 향했
황궁 귀빈실의 높은 창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가늘고 길게 조각되어 쏟아졌다.수도 위를 수놓은 창백한 새벽안개가 황금빛 태양에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암막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어둡고 진득한 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순백의 실크 드레스 자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작의 제복 훈장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매캐한 잔향이 방 안의 밀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으음…….”엘리제는 얕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지난밤의 흔적이었다. 온전한 감각을 되찾은 괴물이 십수 년의 굶주림을 보상받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탐닉해 온 결과물은 엘리제의 하얀 피부 위로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뒤틀자마자, 허리를 빈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더 누워 있어라.”낮고 잠긴, 짐승의 르누아르 같은 목소리가 엘리제의 귓가를 긁어내렸다.칼릭스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려 야성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실크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와 흉판에는 엘리제가 쾌감에 겨워 가늘게 긁어내린 손톱자락 자국이 붉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거울처럼 투명해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엘리제 한 사람만을 담은 채 기묘한 포만감과,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독한 독점욕으로 일렁였다.“칼릭스, 날이 벌써 다 밝았어요. 황실 시종들이나 하녀들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팔 좀 놓아주세요.”엘리제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손을 올렸으나, 칼릭스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검은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 지문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
황궁의 온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은 두 사람의 엉킨 그림자를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다.온실 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장미 향은 엘리제의 가쁜 숨결과 뒤섞여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차가운 대리석 돌벽에 등이 밀착된 엘리제는 전면에서 저돌적으로 밀려드는 칼릭스의 거대한 신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칼릭스는 그녀의 두 손목을 조리대 벽 위로 거칠게 잡아 내리누른 채, 마치 사냥감을 온전히 가두어둔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칼릭스…… 하아, 사람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제발 이 손 좀……”엘리제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려 했으나, 칼릭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서린 열망은 이미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엘리제의 새하얀 목덜미와 핏빛 루비 초커가 닿아 있는 그 예민한 경계선을 사정없이 입술로 핥아 내렸다. 쪽,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막의 마찰음이 온실의 정적을 집요하게 깨부수었다.“흐읏……! 아, 칼릭스……!”엘리제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튀어 나왔다. 거칠게 살을 파고드는 남자의 맨손 악력과, 전신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배덕감이 그녀의 척추 뼈마디를 타고 뇌수까지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모든 미각과 감각을 회복한 칼릭스에게 엘리제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히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원색을 뛰어넘어, 자신의 피와 살을 통째로 지배하는 지독한 마약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칼릭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엘리제의 붉게 퉁퉁 부어오른 입술 점막을 강하게 비벼대며, 가쁜 숨을 그녀의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했을 텐데, 엘리제. 세상이 선명해질수록 내 식욕은 너 하나만을 향해 폭주한다고. 저 연회장에 서 있는 천박한 놈들이 네 어깨와 등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처럼 뇌리를 긁어내렸다. 칼릭스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엘리제의 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