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두 번째 심사장의 문은 닫혀 있었다.
그 앞에 선 순간, 엘리제는 숨부터 줄였다. 문틈 아래로 아주 희미한 향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달고, 부드럽고, 끝이 차가운 향. 전날 황궁 입구에서 느꼈던 것보다 조금 더 정교했다. 마리는 기록판을 꺼내기도 전에 얼굴을 찡그렸다. "셰프님. 벌써 목이 답답합니다." "깊게 들이마시지 마. 짧게." "네." 엘리제는 마리에게 작은 천을 건넸다. 전날 준비해둔 맑은 숨 천이었다. 깨어나는 잎과 산미 열매 껍질을 아주 약하게 우린 물에 적셔 말린 천. 강한 해독제는 아니지만, 숨을 가다듬는 데는 도움이 된다. "입가에 대고 있어. 기록은 천천히 해도 돼." 마리는 천을 받아 들었다. "셰프님은요?" "나는 괜찮아." "그 대사 금지입니다." 엘리제는 입을 닫았다. 마리가 너무 많은 걸 배웠다. 그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지적이다." 칼릭스였다. 그는 오늘도 검은 예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어제와 달리 손목에 엘리제가 준 맑은 숨 천을 묶고 있었다. 검은 소매 위의 연한 천 조각은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 엘리제는 눈을 깜빡였다. "그거 하고 오셨어요?" "네가 준비했다." "그래도 공작님 의상에는 좀……" "도움이 된다."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마리는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엘리제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불쾌해요?" 칼릭스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 향이 혀가 아니라 눈 뒤쪽을 누른다." 엘리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좋아요. 오늘은 향이 주제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반응 검수예요." "황실이 나를 시험하는 건가." "공작님만이 아니라 모두를요." 문이 열렸다. 향이 쏟아졌다. *** 두 번째 심사장은 화려한 온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는 유리창이 있었고, 벽마다 꽃과 허브가 걸려 있었다. 조리대 위에는 각기 다른 향신료와 허브, 꽃잎, 과일 껍질, 향초가 놓였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엘리제에게는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좋은 향이 너무 많으면 나쁜 향이 숨는다. 이 심사장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만든 공간이었다. 르시앙은 이미 안쪽에 서 있었다. 그는 엘리제를 보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향입니다. 독초 영애에게 어울리는 주제로군요." "그러게요. 황실이 제 장점을 너무 잘 알아서 걱정입니다." "자신감이군요." "생존 전략입니다." 르시앙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그 순간 칼릭스가 한 걸음 다가왔다. "르시앙." 목소리는 낮았다. 르시앙은 칼릭스를 보았다. "공작 전하." "대화가 길다." 공기가 멈췄다. 엘리제는 눈을 크게 떴다. 마리는 기록판을 품에 안고 고개를 숙였다. 르시앙은 잠시 침묵하다가 아주 천천히 웃었다. "경계하시는 겁니까?" 칼릭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다." 엘리제는 작게 속삭였다. "공작님." "말해라." "지금은 심사장입니다. 손 말고 재료를 보세요." 칼릭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심사장인 건 안다." "그럼 심사장답게 굴어주세요." "그가 네 손을 보고 있었다." 르시앙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엘리제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요리사니까 손을 볼 수 있죠." "알고 있다. 그래서 불쾌하다." 르시앙은 웃음을 참지 않았다. "공작 전하께서 감정 표현이 늘었군요." 칼릭스의 눈이 차가워졌다. 엘리제는 재빨리 끼어들었다. "심사 시작합니다. 모두 손 말고 재료 봅시다." 마리가 기록판 한구석에 뭔가 적는 것이 보였다. 엘리제는 보지 않기로 했다. 아마 또 이상한 걸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심사관이 앞으로 나왔다. "두 번째 심사의 주제는 '가장 조용한 향'입니다. 향은 식탁의 품격입니다. 강하지 않으나 오래 남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향을 접시에 담으십시오. 제한 시간은 한 시간 반입니다." 가장 조용한 향. 엘리제는 속으로 비웃었다. 편안하게 하는 향이라. 조용하게 만드는 향이겠지. 그녀는 조리대 위 재료를 살폈다. 말린 꽃잎, 루메르 향초 조각, 꿀에 절인 과일껍질, 북부 솔잎, 쓴 허브, 무향에 가까운 뿌리, 그리고 작은 은색 병. 은색 병은 봉인이 되어 있었다. 엘리제는 병을 가까이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아주 약했지만 분명했다. 월영초의 먼 친척 같은 냄새. 혀보다 머리를 먼저 둔하게 만드는 향. "마리." "네." "은색 병. 사용 금지. 냄새 기록." "끝향이…… 잠 오는 느낌입니다." "정확해." 엘리제는 은색 병을 조리대 끝으로 밀었다. 르시앙은 그것을 보았다. "쓰지 않을 겁니까?" "향을 만들라 했지, 사람을 재우라 하진 않았으니까요." "심사관들은 부드러운 향을 선호할 겁니다." "부드러운 향과 흐린 향은 다릅니다." "그 차이를 심사관들이 알까요?" 엘리제는 웃었다. "먹여서 알게 해야죠." 칼릭스가 낮게 말했다. "이번에도 먼저 먹을 생각인가." 엘리제의 손이 멈췄다. "아닙니다. 약속했잖아요." 칼릭스는 그녀를 오래 보았다. "좋다."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엘리제는 이상하게도 칭찬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 엘리제가 선택한 재료는 북부 솔잎과 뿌리채소, 아주 약한 산미 열매 껍질이었다. 조용한 향을 만들라는 주제였지만, 그녀는 향을 낮추지 않았다. 대신 방향을 맑게 만들었다. 솔잎을 불에 직접 올리지 않고 뜨거운 돌 위에서 천천히 열었다. 타면 향이 거칠어지고, 끓이면 풋내가 난다. 그래서 열만 줬다. 뿌리채소는 얇게 저며 물에 담갔다. 산미 열매 껍질은 마지막에 아주 조금만. 그녀가 만들려는 건 향이 아니라, 숨이었다. 르시앙의 접시는 반대로 부드러웠다. 그는 꿀에 절인 과일껍질과 꽃잎을 이용했다. 향은 우아했고, 심사장 전체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은색 병을 아주 한 방울 사용했다. 엘리제는 그걸 봤다. 르시앙도 그녀가 봤다는 것을 알았다. "한 방울은 독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한 방울씩 매일 먹이면요?" "그건 식탁을 설계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그런 말을 수석 요리사가 하면 무섭죠." 르시앙의 손끝이 멈췄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예전에는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요?" "조금은." 엘리제는 더 묻지 않았다. 르시앙은 아직 완전히 돌아선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균열은 생겼다. 그것은 나중에 쓸 수 있는 틈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접시를 완성했다. 작은 그릇에 담긴 맑은 육수. 그 위에 아주 얇게 구운 뿌리채소 조각과 솔잎 향을 입힌 증기. 접시를 가까이 가져가면 강한 향이 나지 않았다. 대신 숨을 들이마시면 코끝이 맑아졌다. 심사관 하나가 말했다. "라벤느 영애. 이건 향이 너무 약한 것 아닌가?" "조용한 향을 원하신 것 아닌가요?" "조용하다는 것은 존재감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네. 그래서 삼킨 뒤에 남게 했습니다." 심사관들은 서로를 보았다. 시식이 시작됐다. 르시앙의 접시를 먹은 심사관들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훌륭하군. 꽃향이 부드럽게 감싸네." "과일 향도 좋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져요." "정말 조용한 향입니다." 그들은 만족했다. 엘리제는 그들의 손을 봤다. 잔을 내려놓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눈꺼풀이 편안하게 내려앉았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너무 조용했다. 다음은 엘리제의 접시였다. 첫 번째 심사관이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처음엔 미간을 찌푸렸다. "첫향이 거의 없군." "조금 더 숨을 들이마셔보세요." 심사관은 불쾌한 듯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그 순간 표정이 달라졌다. "코끝이…… 맑아지는군." 두 번째 심사관도 맛봤다. "강하지 않은데, 입안에 남은 꽃향이 씻겨 나갑니다." 세 번째 심사관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아까부터 머리가 살짝 무거웠는데, 이걸 마시니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심사장이 술렁였다. 엘리제는 조용히 말했다. "조용한 향은 사람을 조용하게 만드는 향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 숨을 들을 수 있게 하는 향이어야 합니다." 그 말에 심사관들의 표정이 변했다. 황실 측 기록관은 불편한 듯 펜을 움직였다. 르시앙은 엘리제를 보며 낮게 말했다. "정면으로 부딪히는군요."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는 분들이 많아서요." 칼릭스는 벽가에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조용했다. 그러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엘리제는 그것을 보지 못한 척했다. *** 심사 결과는 예상보다 미묘했다. 르시앙의 접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엘리제의 접시는 논란이 있었다. 향의 아름다움은 르시앙이 앞섰지만, 심사 후 반응이 더 선명한 것은 엘리제의 접시였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본선 진출. 하지만 엘리제가 더 주목받았다. 심사관 중 하나가 시식 후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말은 황실이 좋아할 표현이 아니었다. 심사가 끝난 뒤, 칼릭스가 엘리제에게 다가왔다. "약속을 지켰군." "제가 먼저 안 먹은 거요?" "그래." "칭찬인가요?" "칭찬이다." 엘리제는 이상하게도 그 말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어린애 된 기분이네요." "칭찬받는 것이 싫나." "싫진 않은데 익숙하지 않아요." "그럼 익숙해져라." "공작님은 요즘 명령처럼 다정하시네요." 칼릭스는 잠시 생각했다. "다정하다는 말은 아직 어렵다." "그럼요?" "네가 무사하면 맛이 안정된다." 엘리제는 할 말을 잃었다. 그건 다정한 말인지, 미각 기록인지, 아니면 이상한 고백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녀의 호흡이 조금 흐트러졌다. 마리가 뒤에서 아주 작게 기침했다. 엘리제는 얼른 걸음을 옮겼다. "대기실로 갑시다. 기록 정리해야 해요." 칼릭스는 따라왔다. "피하는군." "피하는 게 아니라, 기록하러 가는 겁니다." "그 차이를 적어두지." "공작님까지 기록 담당이 되실 필요는 없어요." "네가 말한 차이는 기억해둘 만하다." 엘리제는 대답 대신 걸음을 빠르게 했다.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남자였다. *** 그날 밤, 황실 숙소로 돌아온 엘리제는 기록을 정리했다. 두 번째 심사. 가장 조용한 향. 은색 병 사용 시 심사관 눈꺼풀 반응 둔화. 르시앙은 극소량 사용. 엘리제 접시 시식 후 심사관 호흡 선명. 칼릭스 불쾌감 유지. 감각 안정. 그녀는 마지막 줄을 쓰다가 멈췄다. 칼릭스 발언. 네가 무사하면 맛이 안정된다. 이걸 기록해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적지 않았다. 그건 공식 기록에 넣기엔 너무 이상했다. 대신 작은 종이 한쪽에 따로 적었다. '공작님은 감정을 맛으로 착각 중.' 그리고 바로 아래에 덧붙였다. '문제는, 가끔 나도 그 맛이 궁금하다는 것.' 쓴 뒤에야 엘리제는 자신이 무슨 말을 적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종이를 접어버렸다. "미쳤네." 그때 문밖에서 마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셰프님!" 엘리제가 문을 열었다. 마리는 얼굴이 굳어 있었다. "방금 본선 첫 번째 주제가 내려왔습니다." "뭔데?" 마리는 종이를 내밀었다. 엘리제는 펼쳐 읽었다. [본선 1라운드] [황실의 기억을 담은 수프] 그녀의 시선이 멈췄다. 수프. 기억. 칼릭스의 쓴맛 반응이 떠올랐다. 그리고 리아나 황후의 마지막 수프. 엘리제는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 "드디어 건드리네." 마리가 물었다. "무엇을요?" 엘리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공작님의 과거."제국 북부의 거대한 설산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몰아치던 동토의 새벽바람이 마침내 잔인한 비명을 거두고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블레이크 공작성의 가장 높은 탑 위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자, 수십 년간 얼어붙어 있던 성벽의 성에들이 투명한 보석처럼 부서지며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으로 반사해 내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황궁의 더러운 암투도, 마차 안과 귀빈실을 거쳐 이곳 공작가의 대침실까지 이어지던 파괴적이고도 농밀한 탐닉의 밤도 마침내 잿빛 안개 속으로 완전히 녹아내린, 지독하리만치 평화로운 아침이었다.그러나 오직 두 사람만의 숨소리와 맥박으로 가득 찬 공작의 대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시간이 완전히 정지한 듯, 낮고 진득한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순백의 예복 실크 조각들과 뜯겨 나간 은색 단추들, 지난밤의 격렬했던 신체적 마찰을 증명하듯 기괴하게 뒤틀린 채 젖어 있는 침대 시트, 그리고 공간을 가득 메운 짙은 샌달우드 향과 달콤한 무화과 향의 잔향이 뇌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방 안의 밀도는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으음…….”엘리제는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리며 가녀린 신음을 입술 사이로 흘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뼈마디 하나하나를 타고 무겁게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단 한 순간의 유예도 없이 그녀의 살결을 탐닉해 들어왔던 칼릭스의 잔인한 소유욕이 남긴 흔적이었다. 전생의 강서진으로서 그 어떤 혹독한 주방의 노동과 폭군 같은 선배들의 압박도 버텨냈던 그녀였지만, 모든 감각을 회복한 북부의 괴물이 밤새도록 쏟아부은 원초적인 집착을 받아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파멸적인 피로였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려 하자마자,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쥐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악력이 다시금 들어왔다.“깨웠나.”낮고 진득하게 잠긴, 낮의 태양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서늘하고도 뜨거운 목소리가 엘리제의 뒷덜미를 거칠게 긁어내렸다.칼릭
수도에서 북부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밤의 질주가 마침내 끝을 고했다.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블레이크 공작성의 거대한 대문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고, 두 사람을 태운 마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마필들의 더운 숨결을 흩날리며 안뜰 정중앙에 멈춰 섰다. 북부의 한밤동을 지배하는 동토의 차가운 바람이 마차 외벽을 사정없이 때려대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그 서늘한 냉기조차 마차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지독하고 끈적한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달각.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칼릭스는 무릎 위에 늘어져 있던 엘리제를 단 한 순간도 바닥에 디디게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두꺼운 모피 망토로 그녀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아침에 드레스룸에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채웠던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이미 마차 안에서 벌어진 난폭한 탐닉으로 인해 단추가 전부 뜯겨 나가고 옷깃이 처참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다른 하녀들이나 성 안의 기사들에게 아내의 노출된 살결과 자신이 새겨놓은 붉은 낙인들을 단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겠다는 괴물의 철저한 구속이자 독점욕이었다.“공작 전하를 뵙습니…….”성 문을 지키던 호위 기사들과 하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으나, 칼릭스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본관의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살기와 제압감은 전장으로 향하는 총사령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서슬 퍼런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엘리제는 그의 단단한 목덜미에 두 팔을 감아쥔 채, 모피 망토 안쪽의 은밀한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골랐다. 셔츠 자락 틈새로 느껴지는 그의 우람한 가슴팍 근육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채 터질 것처럼 거칠게 맥박치고 있었다.복도를 지나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해 허락된 성의 가장 깊숙한 안동, 공작의 대침실 문이 열렸다. 칼릭스는 발끝으로 문을 부서질 것처럼 거칠게 닫아걸었다.쿵! 철컥.육중한 참나무 문이 닫히고 묵직한 금속 걸쇠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 엘리제는 비로소 자신들이
황제와의 숨이 막힐 듯한 공식 오찬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황궁 안동의 깊숙하고 창백한 대리석 통로를 지나 마침내 블레이크 공작가의 대형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장내를 압박하던 화려하고 가식적인 금빛 세계는 완벽하게 차단되었고, 마차 내부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호흡할 수 있는 지독하리만치 은밀하고 거대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앉았다. 마차 바퀴가 수도의 거친 돌길을 짓이기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둔탁한 소음이 정적을 흔들었으나, 그 소음마저 마차 안을 가득 채운 칼릭스의 파괴적인 살기와 소유욕 앞에서는 한 자락의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철컥, 철컥.마차가 코너를 돌 때마다 육중한 차체가 크게 흔들렸지만, 칼릭스는 엘리제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채 그녀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강하게 껴안고 있었다.그는 오찬이 진행되는 내내, 그리고 황제가 엘리제에게 호의 어린 손을 내밀며 “조련”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던 그 찰나의 순간부터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제복 상의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침착함을 완전히 잃은 채, 폭주하는 마법 엔진처럼 거칠고 폭력적으로 맥박치고 있었다. 그 무자비한 박동이 엘리제의 둔부를 통해 전신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칼릭스…… 하아, 손아귀 힘이 너무 강해요.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엘리제가 그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그녀가 입은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드레스는 목끝까지 촘촘하게 은색 단추가 채워져 있어 레이스가 턱밑까지 감싸 안고 있었지만, 남자의 거친 호흡이 깃을 타고 내려올 때마다 맨살 위로 소름 끼치는 열기가 전해졌다. 목을 죄어오는 굵은 은색 사슬과 핏빛 루비 초커가 그의 악력에 들려 올라가며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가락이 초커의 날카로운 테두리를 따라 피부를 파고들 듯 강하게 짓눌렀다.“황제의 눈빛이 네 쇄골 라인이 시작되는 그 깃 끝에 머물렀다.”칼릭스의
황궁의 정오를 알리는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제국의 심장부를 무겁게 울렸다.블레이크 공작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 열린 황실 안동의 귀빈 대기실은 대연회장과는 또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감돌고 있었다. 사방의 벽면을 가득 채운 순금 문양의 휘장들과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백색의 불빛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웠고, 바닥에 깔린 붉은 벨벳 카펫은 발소리 하나조차 완벽하게 집어삼키며 은밀한 정적을 자아내고 있었다.“공작부인 전하, 예복의 선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황실 최고위 하녀장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엘리제의 드레스 자락을 매만졌다.칼릭스가 직접 골라 입힌 미드나잇 블루 빛의 실크 예복은 레이스가 목끝까지 촘촘하게 짜여 있어 단 한 치의 살결도 밖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완벽한 폐쇄성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목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골반의 곡선을 노골적으로 부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목을 옥죄듯 감싸 안은 블레이크 가문의 핏빛 루비 초커는, 그녀가 제국의 구원자이기 전에 오직 한 사내의 지독한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슬과 같았다.엘리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다.단추를 목끝까지 채운 드레스는 주방의 화구 열기를 견디던 전생의 가운보다 훨씬 더 답답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 답답함의 진짜 원인은 옷이 아니었다. 드레스룸에서부터 마차, 그리고 이 황궁의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자신의 허리를 부서질 것처럼 움켜쥔 채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의 파괴적인 독점욕 때문이었다.스윽.그때, 대기실 안쪽의 대리석 기둥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완벽하게 재단된 검은색 황실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국의 검이자 북부의 지배자다운 오만한 아우라가 공간을 단숨에 압도하자, 황실 하녀들은 공작의 서슬 퍼런 기운에 질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칼릭스의 투명하면서도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엘리제에게로 향했
황궁 귀빈실의 높은 창문 틈새로 아침 햇살이 가늘고 길게 조각되어 쏟아졌다.수도 위를 수놓은 창백한 새벽안개가 황금빛 태양에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지만, 두꺼운 암막 벨벳 커튼이 드리워진 침실 내부만큼은 여전히 어둡고 진득한 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정체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순백의 실크 드레스 자락,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공작의 제복 훈장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의 매캐한 잔향이 방 안의 밀도를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으음…….”엘리제는 얕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전신을 지독하게 난도질하는 듯한 뻐근한 통증이 척추 마디마디를 타고 밀려왔다. 단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녀를 몰아붙였던 지난밤의 흔적이었다. 온전한 감각을 되찾은 괴물이 십수 년의 굶주림을 보상받겠다는 듯 탐욕스럽게 탐닉해 온 결과물은 엘리제의 하얀 피부 위로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다.그녀가 몸을 미세하게 뒤틀자마자, 허리를 빈틈없이 옭아매고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팔뚝에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더 누워 있어라.”낮고 잠긴, 짐승의 르누아르 같은 목소리가 엘리제의 귓가를 긁어내렸다.칼릭스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려 야성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실크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의 넓고 탄탄한 어깨와 흉판에는 엘리제가 쾌감에 겨워 가늘게 긁어내린 손톱자락 자국이 붉게 선을 그리고 있었다.거울처럼 투명해진 그의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엘리제 한 사람만을 담은 채 기묘한 포만감과, 여전히 가시지 않은 지독한 독점욕으로 일렁였다.“칼릭스, 날이 벌써 다 밝았어요. 황실 시종들이나 하녀들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팔 좀 놓아주세요.”엘리제가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손을 올렸으나, 칼릭스는 오히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붙잡아 자신의 입술 앞으로 가져갔다.검은 장갑을 벗어 던진 그의 맨손 지문이 엘리제의 가느다란 손
황궁의 온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은 두 사람의 엉킨 그림자를 은밀하게 비추고 있었다.온실 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장미 향은 엘리제의 가쁜 숨결과 뒤섞여 기묘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차가운 대리석 돌벽에 등이 밀착된 엘리제는 전면에서 저돌적으로 밀려드는 칼릭스의 거대한 신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칼릭스는 그녀의 두 손목을 조리대 벽 위로 거칠게 잡아 내리누른 채, 마치 사냥감을 온전히 가두어둔 맹수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칼릭스…… 하아, 사람들이 언제 이곳으로 들어올지 몰라요. 제발 이 손 좀……”엘리제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려 했으나, 칼릭스의 투명한 눈동자에 서린 열망은 이미 이성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엘리제의 새하얀 목덜미와 핏빛 루비 초커가 닿아 있는 그 예민한 경계선을 사정없이 입술로 핥아 내렸다. 쪽, 소리와 함께 질척한 점막의 마찰음이 온실의 정적을 집요하게 깨부수었다.“흐읏……! 아, 칼릭스……!”엘리제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신음이 튀어 나왔다. 거칠게 살을 파고드는 남자의 맨손 악력과, 전신을 불덩이처럼 달구는 배덕감이 그녀의 척추 뼈마디를 타고 뇌수까지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모든 미각과 감각을 회복한 칼릭스에게 엘리제라는 존재는 이제 단순히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원색을 뛰어넘어, 자신의 피와 살을 통째로 지배하는 지독한 마약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칼릭스는 엄지손가락으로 엘리제의 붉게 퉁퉁 부어오른 입술 점막을 강하게 비벼대며, 가쁜 숨을 그녀의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말했을 텐데, 엘리제. 세상이 선명해질수록 내 식욕은 너 하나만을 향해 폭주한다고. 저 연회장에 서 있는 천박한 놈들이 네 어깨와 등을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나는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싶었다.”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처럼 뇌리를 긁어내렸다. 칼릭스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듯, 엘리제의 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