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이 말을 이어갔다.“소연이도 원래는 좋은 아이었어요, 모든건 소희가 이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어요. 둘은 친자매가 아니기에 각종 원인으로 인해 둘 사이는 여전히 대치상태에 있어, 소희가 있으면 소연이는 없을거고 소연이가 있으면 소희는 존재하면 안돼요.”소정인은 진원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진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그래서 당신은 소연이를 선택한거야? 소희를 버리고?”진원이는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이런 상황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난 소연이를 선택할거야, 소희가 억울하다는건 알고있지만 소연이한테 들인 정력과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난 소희한테 선물해줄 자원이 없어요.”“소희의 양부모가 일찍 돌아가신걸 탓해야지 어떡하겠어, 그 후로 소희를 입양한 사람들은 소희를 너무 평범하게 키웠어. 우리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야.”“우리 집 사정이 점점 안 좋아 지는걸 당신도 알고 있잖아, 어머니 아버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재산 분배할텐데 소연이가 자리를 잘 잡아야 우리한테도 득이 되지 않겠어요?”소정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늘 진원의 선택이 큰 실수일지도 모른다, 소희한테는 그들이 모르고 있는 비밀이 많기 때문이다.임구택과 소희의 사이도 예외는 아니다.소희가 임씨 가문에 시집간다면 오늘 선택은 큰 실수가 될것이다.소정인은 이 사실을 진원에게 알리기로 했다.진원은 머리를 저었다.“소희는 그저 임씨 가문에서 가정교사를 맡고 있는것 뿐이에요 재벌집에서 가정교사를 며느리로 받아들이는걸 본적 있어요? 소희가 임씨 가문에 시집가는 허망한 생각보다 소연이한테 기대를 갖는것이 어때요?”필경 대외에서는 소연이야말로 능력있고 돈 많은 재벌집 아가씨였다.소연은 문밖에서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소연은 방안을 흘낏 쳐다보고는 밖을 빠져나왔다.…….식사를 마친 소희 일행은 호텔에서 나왔다.소희는 돈봉투를 꺼내 임유민에게 건넸다.“유민이 용돈 해, 새해 복 많이 받아!”소희는 임유민이 결코 돈 아쉬워하는 애가 아니라는걸 알고
12시가 되어서야 임구택은 소희의 머리를 씻겨주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고는 로션까지 발라주었다.소희는 침대에 누워 끔뻑거렸다.임구택은 소희의 등을 주물러주었다. 소희는 워낙 피부가 애기처럼 부드럽고 하얬기에 임구택이 자국을 남길때면 아주 선명했다.임구택이 안마를 해주었다.소희는 갸우뚱하며 물었다.“임구택, 내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 어떡해?”임구택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내가 원하는게 바로 그거야, 날 떠나면 하루도 살수 없는거.”소희는 이불에 머리를 박고 웃었다.임구택의 손이 소희의 머릿결을 스치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머리가 많이 길었네.”임구택이 소희를 처음 봤을땐 머리가 어깨까지만 왔었는데 이젠 퍽이나 길었다.소희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자를때가 된거 같아.”“자르지 마.”임구택이 머리를 숙여 소희의 머리에 입을 대였다.“마음에 들어.”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구택이 말을 이어갔다.“내 동의 없이는 자르지 마. 내가 정성들여 기른거니까 내 지분이 있기도 해.”소희는 임구택의 목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그래.”“착해라.”임구택이 소희의 입술에 키스했다.소희는 임구택이 더 나아갈가봐 물러섰다.“나 너무 졸려, 자자.”임구택은 침대에 눕더니 소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소희야, 보고싶을거야.”소희는 너무 졸린 탓에 머리만 끄덕였다.“나도 보고싶을거야.”임구택이 갑자기 말했다.“너의 집에 같이 갈까?”소희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장난이지?”“안돼!”소희가 머리를 저었다.“나랑 같이 집에 가면 아버님이 날 찾으러 오실거야.”임씨 가문은 워낙 대가족인지라 많은 술자리에 직접 참석해야 했다. 강성을 떠날수 없다는 소리다.임구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지금 당장 우리 연인사이라고 말하고 싶어.”소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내가 졸업할때까지 기다려 준다고 약속했잖아!”임구택은 아무 말도 없이 소희를 꼭 끌어안았다.소희도 임구택을 토닥이며 말했다.“중학교 3학년
“집에 가서 열어봐.”임구택이 신신당부하며 소희의 얼굴에 뽀뽀했다.“매일 내 생각 해야 돼.”옆에 기사 아저씨와 가드들이 보고있었는지라 소희는 얼굴이 빨개졌다.“갈게.”“초 사흗날 내가 데리러 갈게.”“알겠어.”소희는 임구택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해피 뉴 예어!”임구택은 머리를 들어 소희를 바라보았다.비행기가 구름에 가리워 보이지 않아서야 임구택은 자리를 떠났다.임구택은 차창으로 번화한 도시를 바라보며 공허감을 느꼈다.소희가 운성에 도착하자 성연희가 비행기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연희는 소희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이쁜이, 이리 와, 안아보자.”소희는 자신의 가방을 성연희한테 던지고는 조수석으로 걸어갔다.성연희는 소희의 가방을 받아쥐고는 운전석에 탔다.소희가 차에 오르자 임구택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소희는 성연희의 차에 올라탔다고 말했다.둘은 한참동안이나 꽁냥거리더니 전화를 끊었다.성연희는 운전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사랑에 빠진 사람들이구만.”소희가 성연희를 흘기며 말했다.“노명성이 너랑 안 놀아줘?”“진짜야.”성연희가 웃으며 말했다.“소희야, 너 더 예뻐졌어, 여자인 내가 봐도 설레.”소희는 흩날리는 머리결을 넘기며 물었다.“집에는 언제 갈거야?”성연희는 운성에 일 처리 하러 건너왔다. 소희가 운성에 온다고 하자 하루 더 기다려 함께 강 어르신 뵈러 가기로 약속했다.“난 여기에 남아서 설 보내고 싶어.”“그건 절대 안돼.”소희가 단칼에 거절했다.성씨 가문이 내버려둔다 해도 노명성이 성연희를 운성에 남는걸 허락할리가 없었다.성연희가 웃으며 말했다.“소희야, 나랑 노명성 내년에 결혼해.”소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날자 잡힌거야?”“응, 설 연후에 우리 집이랑 그쪽 집에서 결혼 날자를 잡을거야, 아마 4월쯤에 결혼식을 올리게 될거야, 날씨가 따뜻해야 드레스를 입지 않겠어?”성연희는 무조건 제일 아름다운 신부가 되려 할것이다.“축하해!”소희가 진심을 다해 축복했다.“너랑
강 어르신과 성연희가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소희는 짐을 풀었다.갖고온 옷들을 옷장에 걸었다. 갑자기 임구택이 건네던 선물이 생각났다. 소희는 코트에서 자그마한 상자를 꺼냈다.상자안에는 열쇠가 들어있었다.카드도 들어있었는데 운수거리 22호 별장이라고 적혀있었다.임구택의 새해선물은 별장이었다.소희는 강산에서 두채의 집이 있었기에 운수거리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강성에 있는 고급주택이었는데 한 채가 몇백억을 넘었다.소희는 멈칫했다. 이어 핸드폰을 들어 임구택에게 문자를 보냈다.“새해 선물이 너무 귀중한거 아니야?”임구택이 답장을 해왔다.“집을 사고 싶어 했잖아, 이 집 꽤 괜찮아, 너가 원한다면 할아버지 모셔와도 돼.”소희는 갑자기 예전에 임구택이 자신을 접근한 목적이 뭐냐고 물었을때 자신이 집 한채를 가지고 싶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소희가 그때 가지고 싶었던건 청원 별장이었다.소희가 답장이 없다 임구택이 다급하게 말했다.[신경쓸 필요 없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 다 네꺼야.]소희는 피씩 웃었다.[둘째 삼촌, 선물 고마워.][내 생각 했어?]임구택이 물었다.소희는 입을 삐쭉거리며 물었다.[내가 당신이랑 문자하면서 다른 사람 생각 하겠어?][난 다른 사람이랑 문자 해도 네 생각만 해.]저녁이 되자 가족들이 모여 샤브샤브를 먹었다. 그 외에도 성연희가 좋아하는 백숙이랑 보쌈, 족발, 죽순 등을 준비했다.운성 산에는 특유의 향을 풍기고 있는 죽순이 있었는데 다른 곳에서는 먹을수 없는 특산물이었다. 성연희는 올때마다 죽순들을 챙겨갔다.운성 겨울에는 두달동안 기온이 낮은 편인데 강 어르신은 워낙 추위를 많이 타셔서 매개 방에 다 보일러를 설치해 두었다. 방안이 워낙 따뜻한데다가 샤브샤브의 열기까지 더해져 성연희는 땀을 뻘뻘 흘렸다. 성연희는 셔츠를 벗고 반팔로 옷을 바꿔 입었다.오 어르신이 삶은 킹크랩을 꺼내놓았다. 강 어르신이 킹크랩을 보고 말했다.“요놈 참 괜찮네.”오 어르신이 웃으며 말했다.“임씨 가문에서 보
그녀는 한 손에는 통조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연희를 끌고 방으로 돌아갔다.성연희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통조림을 먹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역시 사람이 좋아.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통조림은 먹을 수 있잖아!”소희가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고 말했다.“그렇게 많이 마실 수 없으면 마시지 마!”“안 취했어!”티테이블에 올려놓은 그녀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소희가 가져와 보니 노명성이 영상통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소희는 휴대전화를 성연희에게 건넸다.전화를 받은 성연희는 기뻐하며 말했다.“명성, 방금 뭘 봤어?”영상으로 노명성은 성연희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뭘 봤냐고?”“날 수 있는 새 한 마리!”성연희는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 소희는 한숨을 내쉬며 둘이 대화를 나누게 하고는 혼자 방으로 돌아갔다.샤워하고 침대에 누운 그녀는 임구택이 문자를 보냈다는 걸 발견했다.【뭐해?】【방금 샤워를 마치고 자려던 중.】한참 후에야 임구택이 답장했다.【만나러 갈게.】소희가 곧 답장했다.【안 돼, 성연희가 우리 집에 있어서 한밤중에 나갈 수 없어.】임구택은 바로 영상 요청을 보냈고 소희는 거절했다.【연희가 집에 있다니깐.】영상 통화 요청을 중단한 그는 전화를 걸어왔다.“소희야!”“응.”소희는 전화기 너머로 조금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다.“내가 찾아갈 테니 넌 나올 필요 없어. 내가 집 밖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게.”임구택이 속삭였다.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다음엔? 날이 밝으면 다시 강성으로 돌아갈 거야? 장난 치지 마!”“장난 아니야, 오늘 밤은 분명 잠을 못 잘 거야.”“어딘데?”“케이슬,장시원이랑 카드놀이 중이야.”“그럼 가서 카드놀이 해.”“재미없어!”그는 잠시 주춤하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소희야, 사랑한다고 말해줘.”소희는 잠시 침묵했다. 남자의 낮고 느린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문을 두드
성연희는 새침하게 입을 삐죽거리고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그리고 한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임구택씨가 이 동영상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가? 아마 엄청 샘이 나겠지~"소희도 이에 깔깔 거리며 웃었다."그럼 이왕이면 이 것도 노명성씨한테 보내줄가?""에잇~ 명성씨 그런걸로 질투 안해."성연희가 답했다. 소희는 그런 성연희를 곁눈으로 한번 흘겨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침대에 편히 주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고 있었다.이때 성연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내 결혹식에 너 꼭 와야돼, 알겠지? 와서 신부 들러리 해줘야 한다고!""신부 들러리? 근데 나 이미 결혼 했는걸.""얘를 좀봐, 너가 말만 하지 않으면 누구도 몰라! 그냥 와서 모른척 하면 되는거라고!"성연희는 전혀 문제가 될게 없다는듯 소희를 졸랐다."그리고 너랑 구택씨가 결혼할때도 나를 꼭 불러야돼! 나도 너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 할거야!"그녀와 임구택의 결혼식이라...소희는 잠시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기였다. 이 순간 만큼은 임구택과의 결혼식이 멀게만 느껴졌다.성연희는 여전히 침대위에서 뒹굴거리며 상상의 세계속에 흠뻑 빠져있었다. "구택씨도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다면 완전 금상천화인데... 아쉽다, 그 신분으로는 불가능이야, 불가능!"성연희는 혼자말로 중얼거리였다. 옆에 있는 소희도 점점 피곤함이 몰려오는듯 했다.그러나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성연희가 말을 걸어와서 밤잠을 방해하는 거였다."근데 소희야, 그 서인 오빠는 어디있어? 같이 운성으로 돌아가서 새해를 맞이하려 했던거 아니였어?""음? 아... 오지 않겠대. 아마 이문씨랑 같이 있나봐.""뭐야 그럼? 이문씨도 그럼 집으로 않가고?""그러나봐.""그 것도 그리 나쁜건 아니네. 삼삼오오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이나 마시며 놀면 그만인 거지."소희는 눈을 게슴츠레 떠서 성연희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쏠려오는 잠을 가까스로 밀어내고 있었다.바로 이때 탁상위에
소희도 사실 잠이 오지 않는건 매한가지 였다.그녀는 서서히 눈을 뜨더니 예전에 있던 일을 회억해 냈다."예전에 나 사실 특수한 임무 하나를 수행한 적이 있었어. 불곰이라는 사람 밑에서 잠복하는 임무였었지. 불곰은 아이스랜드 부근에 작은 섬 하나를 소유하고있었는데 글쎄 그곳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생물학 병기를 연구하는 거였어. 그렇게 3개월 잠복하고 있다 섬의 방어시스템을 장악하고 오빠랑같이 섬을 성공적으로 폭파했었어. 그렇게 모든 불곰이 진행했던 연구들은 물거품으로 되고 바다밑에 가라 앉는듯 싶었는데...""아쉽게도 당사자인 불곰은 도주한 상태였고 그뒤로 종적을 감춰버렸지 뭐야. 그래서 그냥 그러러니 했는데 어느날엔간 문뜩 나타나 오빠 밑의 사람들을 매수해서 복수를 계획했더라고.""그렇게 정작 나는 죽지 않았고 대신 백양 그들이 죽은거야."성연희는 귀담아 듣고 있었다."그래서 너랑 서인이 살아 남게 된거고?""그렇지."말하는 소희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그뒤 나도 그렇고 서인도 그렇고 모두 조직에서 탈퇴했어.""그럼 아까 전화에서 서인씨가 한 말은 뭐야? 그래서 불곰은 여직 살아있고 새로운 복수를 꾀한다는 거야?"소희는 머리를 저었다."아니, 그런 거는 아니야. 사실 내가 되려 그를 쫓고 있는거지."그녀의 오빠를 배신한 자들은 모조리 죽은 상황에 정작 모든 일의 근원인 불곰은 살아있는게 소희는 너무 싫었다. 그래서도 친히 손으로 죽여버리리라 마음 먹었던 거다.백양의 복수를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생명 의의를 이렇게 정의했다.강성의 케이슬.임구택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소희와의 대화기록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이때 구은서가 한접시의 과일을 들고 나타났다."시원 오빠는 무슨 뉴질랜드로 간다네 스위스로 간다네 되게 바쁘게 보내고 있더라고.""그래? 바쁘군... 나도 나만의 계획이 있는데..."임구택의 말에 구은서는 잽사게 말꼬리를 잡았다."계획? 무슨 계획? 소희씨와의 계획인거에요?""응."임구택은 눈길한번 주지 않고
“네.”간미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먼저 끊을게요.”전화를 끊고, 간미연은 밖을 내다보았다.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 형형색색의 등불이 비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적막해 보였다.그녀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간미연은 자신의 아버지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그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아 한동안 슬픔에 휩싸였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가족은 남 부러울 것 없이 화목했고 그녀도 자기 아버지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아버지가 바깥에서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을 때, 그 부드럽고 자상함은 그녀가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간미연은 차마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 오랫동안 혼자 속으로 괴로워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녀는 그 불륜녀를 쫓아내고 가족의 평화를 다시 찾으려고 시도했다. 간미연은 몰래 두 사람을 미행하면서 사진을 찍고, 증거를 남겼다.모든 증거를 수집해 그녀의 아버지와 당당히 맞섰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침착하게 그녀의 엄마는 이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 또한 밖에 숨겨둔 애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간미연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같이 차를 타고 그녀의 어머니를 미행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별장으로 들어갔다가 밤새 나오지 않는 것을 목격한 후, 간미연은 더 깊은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알고 보니 화목하고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는 건 모두 허상이고 거짓말이었다.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두 사람은 감정이 없는 정략결혼을 했고, 결혼하기 전에 모두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결혼은 하되, 각자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기로 서로 합의 봤다고 했다. 간미연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아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혼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간미연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