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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작가: 라하
last update 게시일: 2026-09-06 17:33:38

#8 굶주린 수컷의 절망

최고급 양주 두어병이 어느새 비워지고, 커다란 룸의 공기가 짙은 알코올과 담배 연기로 채워지기 시작할 때, 방음마저 완벽한 그 곳의 두꺼운 문이 열리며 태현과 하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내내 서늘한 눈빛으로 소파에 기대어 말없이 술잔만 비워대던 건우의 시선이 단박에 입구로 향했다. 입구로 들어서는 하윤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무표정했던 표정이 풀리고 그의 입가에는 그답지 않은 짙은 미소가 자연스럽게 장착되었다.

첫 눈에 반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0년을 함께 했고, 그가 스무 살이 되던 시간부터 6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물고 빤 여자가 이하윤이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저 여자를 볼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지며, 아랫도리는 미친 듯이 뻐근해지고, 서늘하게 얼어있던 자신의 모든 것이 쉽게 무장해제 되는지, 차건우는 이 모든 것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길거리의 다른 여자는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평생 자신을 발정 나게 만들고, 제 씨를 가득 뿌리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드는 여자. 볼 때마다 품에 안고 씹어 삼키고 싶은 암컷은 오로지 이하윤 단 한 명뿐이라는 맹목적인 각인.

평상시에 다른 놈들에겐 피 한 방울도 안 나올 것처럼 굴면서, 오직 이하윤 하나에게만 발정 난 개새끼마냥 꼬리를 흔들며 짐승 같이 나른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는 차건우.

그 꼴을, 만날 때마다 매번 직관해야 하는 이태현의 기분은, 그저 씨발, 좆같았다.

건우가 하윤을 향해 나른하게 두 팔을 벌렸다.

‘어서 내 품에 와서 안겨라, 내 여자야.’ 라는 노골적인 소유욕의 과시.

태현은 그런 건우를 벌레 보듯 차갑게 노려보며 상석에 앉은 경훈의 옆자리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하윤이 자연스럽게 건우에게 다가가 건우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앉아 목에 팔을 두르며 그의 너른 품에 안기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얇은 허리와 골반을 부서져라 옭아맸다.

하윤의 목덜미에 제 머리를 박고 그녀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신 건우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만족스러운 호선을 그리며 입을 열었다.

"씨발, 이태현 저 새끼, 눈깔 존나 살벌하게 뜨네.“

태현이 하윤을 보는 그 질척한 시선을, 예민한 차건우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늘 보란 듯이 제 여자를 제 품에 빈틈없이 끌어안으며 여유롭게 도발하는 일은 그의 루틴 중 하나였다. 이태현 그가 평생토록 갈구하고 있는 이 여자는 전부 자신의 것이다, 라는 완벽한 철벽이자 자랑.

"개새끼야, 입 닥쳐.“

태현이 수트 자켓을 벗으며 흉흉한 시선으로 차건우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오늘도 오는 길에 차에서 확 눕혀버리려다 겨우 참고 넘어온 거니까."

태현 역시 지지 않고 서늘하게 맞받아쳤다. 그깟 도발에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남자가 아니었다.

"뒤질라고, 씨발놈이."

태현의 말에, 건우는 살기를 가득 띤 목소리로 욕설을 씹어 뱉으면서도 시선은 오롯이 하윤에게 고정한 채였다. 제 무릎에 앉은 하윤의 목덜미를 입술로 질척하게 빨아들인 후,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문 그는, 이내 이하윤의 붉은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쪽, 쪼옥, 츕, 츄읍...

가볍게 시작한 버드키스는 어느새 그녀의 입술 틈새로 자신의 뜨거운 혀를 집어넣고 하윤의 혀와 입술을 농밀하고 강하게 빨아 당기는 키스로 변모했다.

그렇게 룸 안을 가득 채우는 야릇한 마찰음이 한참이나 계속 되었다.

태현을 향한 도발의 쐐기.

“하, 씨이발...”

태현의 심기가 잔뜩 불쾌해지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숨 막히게 기싸움을 해대는 두 포식자의 난동. 매번 벌어지는 이 징글징글한 레퍼토리에 경훈과 주환은 그저 양주나 들이키며,

'하, 또 지랄들이네.' 하고 넘길 뿐이었다.

한참동안 건우의 품에 안겨 그에게 입술을 물리던 하윤이 살짝 숨을 헐떡이며 슬그머니 그의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 뜨거운 호흡과 함께 그녀가 속삭였다.

"차 키 좀 줘."

"왜? 뭐 가지러 가게?"

건우가 하윤의 귓바퀴를 질근 깨물며 나른하고 야살스럽게 물었다. 이미 그의 손은 하윤의 매끄러운 허벅지 안쪽을 은근하게 쓸어 올리고 있었다. 옷 입고 떡친다 했던 현민과 시은 커플보다 더, 방안의 모든 이들을 눈꼴시럽게 만들어 줄 자신이 있었다.

사실 하윤은, 모임 장소로 출발하기 직전, 회사 화장실에 들렸다가 팬티에 미세하게 피가 비치는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핸드폰을 열어 어플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하루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마법이 시작될 시기였다.

어쩐지 오늘따라 유독 몸이 무겁고 피곤하더라니.

어제 너무 무리해서 피곤한가, 그래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가... 했더니, 몸의 정확한 생리적 현상의 표현이었다.

하윤은 의아해하는 건우의 귀에 다시 붉은 입술을 바짝 대고 작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생리 터졌어. 차에서 생리대 좀 챙겨오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하윤을 향한 맹목적인 차건우의 사랑 덕에, 그의 차 글러브박스와 트렁크엔 늘 하윤을 위한 여러 비상용품들이 종류별로 꽉꽉 구비되어 있었다.

하윤의 속삭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 씨발!!!"

건우의 눈매가 맹수처럼 매섭게 번뜩이며 흉흉하게 치켜 올라가더니, 이내 룸이 떠나가라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 씨발 깜짝이야!"

"아이씨, 저 미친 돌아이 새끼가?“

“아, 심장이야. 아니, 갑자기 왜 지랄이야?"

"야, 이 개새끼야! 고막 찢어지겠네!“

“저 미친 새끼는 진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함께 가벼운 스몰토크로 채워져 있는 룸 안에서, 가만히 앉아 술을 주고받던 다른 멤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쌍욕을 터트렸다.

정말로 심장이 뚝- 하고 떨어졌을지도 모를 만큼 놀랐기에 나올 수 있었던, 과격한 급발진이었다.

동시에 터진 여러 쌍욕의 향연에도 건우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소리를 내 지르던 그 흉흉한 표정 그대로, 그는 단단히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굵은 핏줄이 서 있는 목덜미와, 허공에 굳어버린 손가락이 그의 좌절감을 대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밤 이 모임이 끝나면, 어제부터 여러 방향으로 자신을 빡치게 하고, 꼴리게 했던 제 여자친구를, 자신의 푹신한 침대에 묶어두고 허리가 아작 날 때까지 수십 번 박을 생각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스태미나 부스트 샷은 물론, 마시는 술의 양까지 조절해가며, 하윤을 기다리는 동안 뻐근한 아랫도리를 느끼며 혼자 야릇하고 굴욕적인 상상에 빠져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생리라니? 아니, 씨발, 이 좆같은 타이밍은 도대체 뭐냐고?!

그 거대하고 야릇한 계획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으니, 이 발정 난 수컷의 입에서 단전부터 끓어오르는 쌍욕은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한편, 옆에서 건우의 고함 소리를 들은 이태현은 차건우의 반응을 보며 기민하게 순간의 상황을 파악했다. 재벌가의 그 치열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눈치. 그는 자신의 눈썹을 슥 올렸다. 굳어버린 건우의 얼굴과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보아하니 무슨 상황인지 단번에 감이 왔다. 태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서늘하고 비릿한 실소를 흘렸다.

'꼬시다, 개새끼. 오늘 밤은 아주 손가락만 빨다 자겠네.‘

태현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뜻밖의 쾌감에 들고 있던 양주잔을 느긋하게 기울였다.

하윤은 짐승처럼 씩씩거리고 있는 건우의 반응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요망하게 눈썹을 씰룩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을 멸망시킬 만큼 가득 찬 욕구 불만을 드러낸 상태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건우의 주머니를 익숙하게 더듬어 묵직한 차 키를 쏙 빼냈다.

"금방 갔다 올게."

그의 차 키를 손가락에 걸고 마치 전리품처럼 달랑거리던 하윤은 산뜻하게 웃으며 미련 없이 건우의 무릎에서 일어섰다.

"하아, 씨발... 아, 진짜 좆같네!!!"

손으로 거칠게 제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는 건우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최고급 맞춤 수트의 바지 속에서 뻐근해진 아랫도리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였기에 당장 이 화약고 같은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하윤이 맞은편의 시은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15년 지기 찐친 시은은 곧바로 하윤의 신호를 접수했다. 그녀는 제 허벅지를 은근하게 주무르던 현민의 손을 떼어내고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하윤의 뒤에 찰싹 붙었다.

"나 하윤이랑 바람 좀 쐬고 올게.“

시은이 하윤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 붙었다.

어느새 팔짱을 끼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두 여자는, 방금 전 룸의 사태에 대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이하윤, 너 귓속말로 차건우한테 뭐라고 한 거야? 미친 새끼. 완전 나라 잃은 독립투사 수준이던데? 진짜 고막 터지는 줄 알았어!“

시은의 물음에 하윤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 생리 터졌거든. 큭.“

“하, 미친 새끼.”

하윤의 말에 시은이 어이없다는 듯 비릿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까 눈깔이 몽롱하게 돌아있더니, 그래서 그랬구나. 아이고, 오늘 밤에 혼자 뺀다고 개고생하겠네, 차건우 새끼.”

하윤이 룸에 도착하기 전 보았던 건우의 표정을 생각하며 시은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모임 중에 가장 어린 수컷 차건우는 이하윤에게 발정난 개새끼로 통했으니, 지금의 사태가 그에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로 웃어넘기던 그녀들은,

“아, 콘서트 MD 나온 거 봤어?”

“당연하지. 이번에 진짜 미쳤더라. 첫콘날 존나 빨리 가야겠어.”

“너, 트레이딩 카드 얼마나 살 건데?”

“그거 한 번에 10개밖에 못 살 걸? 10개 다 사야지. 중복 카드는 그냥 나눔하고.”

“재희랑 채아 것까지 합치면 이번에도 다 모을 수 있으려나?”

“첫, 중, 막에 다사면 쌉가능이지.”

“하아, 기대된다.”

“나도. 빨리 다음 달 됐으면 좋겠어.”

이내 자연스레 에테르에 대한 얘기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차장마저도 프라이빗하게 완벽한 그 공간에서, 그녀들이 곧 마주하게 될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언제나처럼 덕질 얘기로 수다를 떨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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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38

    #38 콘서트를 위한 빠순이의 빌드업[ 에테르 일본 투어 콘서트 ]에 눈이 멀어, 자신들에게 미쳐있는 남친들의 깊은 사랑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어줍잖은 계획으로 남친들의 고삐를 쥐려 했던 어리석은 빠순이들, 이하윤과 최시은은...주말 내내 남친들의 분노를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온 삭신이 쑤시는 쾌락을 주말 내내 즐겼던(?) 그녀들의 현생은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아, 미안해.”수요일의 늦은 저녁. 오랜만에 둘이서 저녁을 먹기로 한 하윤이와 시은이였지만, 하윤의 갑작스런 야근으로 저녁 식사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대신, 두 사람은 진한 수다나 떨기 위해, 시내의 24시간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만났다.“그래도 용케 빨리 빠져 나왔네?”먼저 도착한 시은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 하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지난 주 금요일, 이태현과 저녁을 먹기로 했을 때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며 예쁘고 섹시했던 친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가슴팍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대충 묶어 올리고, 급하게 뛰어 오느라 정리하지 못한 잔머리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원래도 진한 화장을 하지 않는 하윤이었지만 하루 종일 거울 한 번 못 들여다 본 듯 번들 거리는 유분기와 눈 밑의 다크 서클이, 오늘 하루 그녀의 현생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었다.“하... 엉망진창이네.”가쁜 숨을 고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그제서야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상태 체크를 하던 하윤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새로운 발견과 연구를 위한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대기업의 연구원 일이었지만 소망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연구실에 머무르기 보다는 온갖 수치를 문서화하고, 엑셀 창을 열어 서류 작성을 하는 일이 더 많은 주임 연구원의 삶. 오늘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온 터라 허리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저녁은? 누구랑 먹었어?”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건만, 오늘 안에 전송해줘야 할 급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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