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8 굶주린 수컷의 절망
최고급 양주 두어병이 어느새 비워지고, 커다란 룸의 공기가 짙은 알코올과 담배 연기로 채워지기 시작할 때, 방음마저 완벽한 그 곳의 두꺼운 문이 열리며 태현과 하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내내 서늘한 눈빛으로 소파에 기대어 말없이 술잔만 비워대던 건우의 시선이 단박에 입구로 향했다. 입구로 들어서는 하윤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무표정했던 표정이 풀리고 그의 입가에는 그답지 않은 짙은 미소가 자연스럽게 장착되었다.
첫 눈에 반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0년을 함께 했고, 그가 스무 살이 되던 시간부터 6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물고 빤 여자가 이하윤이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저 여자를 볼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지며, 아랫도리는 미친 듯이 뻐근해지고, 서늘하게 얼어있던 자신의 모든 것이 쉽게 무장해제 되는지, 차건우는 이 모든 것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길거리의 다른 여자는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평생 자신을 발정 나게 만들고, 제 씨를 가득 뿌리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드는 여자. 볼 때마다 품에 안고 씹어 삼키고 싶은 암컷은 오로지 이하윤 단 한 명뿐이라는 맹목적인 각인.
평상시에 다른 놈들에겐 피 한 방울도 안 나올 것처럼 굴면서, 오직 이하윤 하나에게만 발정 난 개새끼마냥 꼬리를 흔들며 짐승 같이 나른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는 차건우.
그 꼴을, 만날 때마다 매번 직관해야 하는 이태현의 기분은, 그저 씨발, 좆같았다.
건우가 하윤을 향해 나른하게 두 팔을 벌렸다.
‘어서 내 품에 와서 안겨라, 내 여자야.’ 라는 노골적인 소유욕의 과시.
태현은 그런 건우를 벌레 보듯 차갑게 노려보며 상석에 앉은 경훈의 옆자리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하윤이 자연스럽게 건우에게 다가가 건우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앉아 목에 팔을 두르며 그의 너른 품에 안기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얇은 허리와 골반을 부서져라 옭아맸다.
하윤의 목덜미에 제 머리를 박고 그녀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신 건우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만족스러운 호선을 그리며 입을 열었다.
"씨발, 이태현 저 새끼, 눈깔 존나 살벌하게 뜨네.“
태현이 하윤을 보는 그 질척한 시선을, 예민한 차건우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늘 보란 듯이 제 여자를 제 품에 빈틈없이 끌어안으며 여유롭게 도발하는 일은 그의 루틴 중 하나였다. 이태현 그가 평생토록 갈구하고 있는 이 여자는 전부 자신의 것이다, 라는 완벽한 철벽이자 자랑.
"개새끼야, 입 닥쳐.“
태현이 수트 자켓을 벗으며 흉흉한 시선으로 차건우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오늘도 오는 길에 차에서 확 눕혀버리려다 겨우 참고 넘어온 거니까."
태현 역시 지지 않고 서늘하게 맞받아쳤다. 그깟 도발에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남자가 아니었다.
"뒤질라고, 씨발놈이."
태현의 말에, 건우는 살기를 가득 띤 목소리로 욕설을 씹어 뱉으면서도 시선은 오롯이 하윤에게 고정한 채였다. 제 무릎에 앉은 하윤의 목덜미를 입술로 질척하게 빨아들인 후,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문 그는, 이내 이하윤의 붉은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쪽, 쪼옥, 츕, 츄읍...
가볍게 시작한 버드키스는 어느새 그녀의 입술 틈새로 자신의 뜨거운 혀를 집어넣고 하윤의 혀와 입술을 농밀하고 강하게 빨아 당기는 키스로 변모했다.
그렇게 룸 안을 가득 채우는 야릇한 마찰음이 한참이나 계속 되었다.
태현을 향한 도발의 쐐기.
“하, 씨이발...”
태현의 심기가 잔뜩 불쾌해지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숨 막히게 기싸움을 해대는 두 포식자의 난동. 매번 벌어지는 이 징글징글한 레퍼토리에 경훈과 주환은 그저 양주나 들이키며,
'하, 또 지랄들이네.' 하고 넘길 뿐이었다.
한참동안 건우의 품에 안겨 그에게 입술을 물리던 하윤이 살짝 숨을 헐떡이며 슬그머니 그의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 뜨거운 호흡과 함께 그녀가 속삭였다.
"차 키 좀 줘."
"왜? 뭐 가지러 가게?"
건우가 하윤의 귓바퀴를 질근 깨물며 나른하고 야살스럽게 물었다. 이미 그의 손은 하윤의 매끄러운 허벅지 안쪽을 은근하게 쓸어 올리고 있었다. 옷 입고 떡친다 했던 현민과 시은 커플보다 더, 방안의 모든 이들을 눈꼴시럽게 만들어 줄 자신이 있었다.
사실 하윤은, 모임 장소로 출발하기 직전, 회사 화장실에 들렸다가 팬티에 미세하게 피가 비치는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핸드폰을 열어 어플의 날짜를 확인해 보니 하루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마법이 시작될 시기였다.
어쩐지 오늘따라 유독 몸이 무겁고 피곤하더라니.
어제 너무 무리해서 피곤한가, 그래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가... 했더니, 몸의 정확한 생리적 현상의 표현이었다.
하윤은 의아해하는 건우의 귀에 다시 붉은 입술을 바짝 대고 작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생리 터졌어. 차에서 생리대 좀 챙겨오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하윤을 향한 맹목적인 차건우의 사랑 덕에, 그의 차 글러브박스와 트렁크엔 늘 하윤을 위한 여러 비상용품들이 종류별로 꽉꽉 구비되어 있었다.
하윤의 속삭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 씨발!!!"
건우의 눈매가 맹수처럼 매섭게 번뜩이며 흉흉하게 치켜 올라가더니, 이내 룸이 떠나가라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 씨발 깜짝이야!"
"아이씨, 저 미친 돌아이 새끼가?“
“아, 심장이야. 아니, 갑자기 왜 지랄이야?"
"야, 이 개새끼야! 고막 찢어지겠네!“
“저 미친 새끼는 진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함께 가벼운 스몰토크로 채워져 있는 룸 안에서, 가만히 앉아 술을 주고받던 다른 멤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쌍욕을 터트렸다.
정말로 심장이 뚝- 하고 떨어졌을지도 모를 만큼 놀랐기에 나올 수 있었던, 과격한 급발진이었다.
동시에 터진 여러 쌍욕의 향연에도 건우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소리를 내 지르던 그 흉흉한 표정 그대로, 그는 단단히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굵은 핏줄이 서 있는 목덜미와, 허공에 굳어버린 손가락이 그의 좌절감을 대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밤 이 모임이 끝나면, 어제부터 여러 방향으로 자신을 빡치게 하고, 꼴리게 했던 제 여자친구를, 자신의 푹신한 침대에 묶어두고 허리가 아작 날 때까지 수십 번 박을 생각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스태미나 부스트 샷은 물론, 마시는 술의 양까지 조절해가며, 하윤을 기다리는 동안 뻐근한 아랫도리를 느끼며 혼자 야릇하고 굴욕적인 상상에 빠져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생리라니? 아니, 씨발, 이 좆같은 타이밍은 도대체 뭐냐고?!
그 거대하고 야릇한 계획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으니, 이 발정 난 수컷의 입에서 단전부터 끓어오르는 쌍욕은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한편, 옆에서 건우의 고함 소리를 들은 이태현은 차건우의 반응을 보며 기민하게 순간의 상황을 파악했다. 재벌가의 그 치열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눈치. 그는 자신의 눈썹을 슥 올렸다. 굳어버린 건우의 얼굴과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보아하니 무슨 상황인지 단번에 감이 왔다. 태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서늘하고 비릿한 실소를 흘렸다.
'꼬시다, 개새끼. 오늘 밤은 아주 손가락만 빨다 자겠네.‘
태현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뜻밖의 쾌감에 들고 있던 양주잔을 느긋하게 기울였다.
하윤은 짐승처럼 씩씩거리고 있는 건우의 반응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요망하게 눈썹을 씰룩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을 멸망시킬 만큼 가득 찬 욕구 불만을 드러낸 상태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건우의 주머니를 익숙하게 더듬어 묵직한 차 키를 쏙 빼냈다.
"금방 갔다 올게."
그의 차 키를 손가락에 걸고 마치 전리품처럼 달랑거리던 하윤은 산뜻하게 웃으며 미련 없이 건우의 무릎에서 일어섰다.
"하아, 씨발... 아, 진짜 좆같네!!!"
손으로 거칠게 제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는 건우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최고급 맞춤 수트의 바지 속에서 뻐근해진 아랫도리의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기세였기에 당장 이 화약고 같은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하윤이 맞은편의 시은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15년 지기 찐친 시은은 곧바로 하윤의 신호를 접수했다. 그녀는 제 허벅지를 은근하게 주무르던 현민의 손을 떼어내고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하윤의 뒤에 찰싹 붙었다.
"나 하윤이랑 바람 좀 쐬고 올게.“
시은이 하윤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 붙었다.
어느새 팔짱을 끼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두 여자는, 방금 전 룸의 사태에 대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이하윤, 너 귓속말로 차건우한테 뭐라고 한 거야? 미친 새끼. 완전 나라 잃은 독립투사 수준이던데? 진짜 고막 터지는 줄 알았어!“
시은의 물음에 하윤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 생리 터졌거든. 큭.“
“하, 미친 새끼.”
하윤의 말에 시은이 어이없다는 듯 비릿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까 눈깔이 몽롱하게 돌아있더니, 그래서 그랬구나. 아이고, 오늘 밤에 혼자 뺀다고 개고생하겠네, 차건우 새끼.”
하윤이 룸에 도착하기 전 보았던 건우의 표정을 생각하며 시은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모임 중에 가장 어린 수컷 차건우는 이하윤에게 발정난 개새끼로 통했으니, 지금의 사태가 그에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로 웃어넘기던 그녀들은,
“아, 콘서트 MD 나온 거 봤어?”
“당연하지. 이번에 진짜 미쳤더라. 첫콘날 존나 빨리 가야겠어.”
“너, 트레이딩 카드 얼마나 살 건데?”
“그거 한 번에 10개밖에 못 살 걸? 10개 다 사야지. 중복 카드는 그냥 나눔하고.”
“재희랑 채아 것까지 합치면 이번에도 다 모을 수 있으려나?”
“첫, 중, 막에 다사면 쌉가능이지.”
“하아, 기대된다.”
“나도. 빨리 다음 달 됐으면 좋겠어.”
이내 자연스레 에테르에 대한 얘기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차장마저도 프라이빗하게 완벽한 그 공간에서, 그녀들이 곧 마주하게 될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언제나처럼 덕질 얘기로 수다를 떨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윤은 지금.단단히 빡이 쳤다.한 달 전부터 하윤은.[ 차세대 핵심 신소재 공동 개발 프로젝트 ]를 위해,[ 일강그룹 ] 의 R&D 선행연구팀의 연구실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중간 간부급인 하윤과 몇몇 연구원들이 함께 참여하게 된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대기업과 대기업의 협업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모든 것이 잘 갖춰진, 연구비 걱정도 딱히 필요 없는 대기업들의 작업이었기 때문에.아주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하윤 역시.자신의 직장인 이현그룹 연구소보다는, 이 일강그룹의 연구소가 신혼집에서 훨씬 더 가까워, 꽤나 좋아했다.하지만.“아니, 이거. 수치 조작하신 건 아니고?”이 분야에 대해서는 좆도 모르는 일강그룹의 R&D 선행연구팀의 서재익 본부장.그는.얼마 전부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했다.“아니, 본부장님. 이걸 저희가 어떻게 조작을 합니까?”하윤의 미간이 잔뜩 찌푸러졌다.이 본부장 새끼는.일강그룹 회장의 3남이었다.이 분야의 박사학위까지 딴 놈이긴 한데, 아무리 봐도 돈으로 처바른 것 같았다.진짜 좆도 아는 게 없더라고.심지어.긴 유학생활로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분위기 파악도 잘 못했다.여자를 끼고, 약이나 빨던, 철없는 재벌 3세.“이하윤 선임연구원이, 마음만 먹으면 수치 조작 같은 건 쉽게 가능하지 않아요?”비릿한 미소를 짓는.이 일강의 후계자 서재익은.하윤을 협박해서 어떻게든 벗겨 먹고 싶어 발정이 난 상태였다.선임연구원일 뿐이지만.이현그룹 R&D 선행연구팀의 책임자로 온 하윤이었기에.뭔가가 잘못될 경우, 모든 책임은 이하윤이 져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본부장님이 실무진 쪼아서 저희 쪽으로 중대 과실 만들려고 하시는 거 아니시구요?”이하윤이 눈을 부릅뜨며 서재익에게 대들었다.서재익은 짜릿했다.순순히 넘어오는 여자는 재미가 없으니까.저렇게 팔딱 팔딱 거려야 정복하는 재미가 있지.“좀 위험한 발언인데? 뭐, 증거 있어요? 지금, 이하윤 선임연구원이 뱉어낸 말. 이거 법정까지
맞춤 수트를 꿰어 입은 이태현을 본 하윤과 시은은.움찔-온 몸이 들썩일 정도로 놀랐다.“오... 오빠...”마치.불륜 현장에 있다 들킨 것처럼.두 여자는 숨을 헉 들이키며, 거의 사색이 되었다.“미쳤어?”이태현의 입에서.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이태현은.하윤과 시은을 번갈아 보다.이내 룸 안 전체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찰나의 순간.룸 안은 고요했다.그 고요함을 깬 건.“하아...”윤채민이었다.윤채민의 깊은 빡침의 한 숨.“아니, 상무님! 왜 하필 지금 들어와요?!”잼민이 윤채민은.지금 상당히 기분이 안 좋다.겨우.이하윤이 이태현 상무랑 입술만 빨았는지, 혀를 넣고 섞었는지를 알고.저도 똑같이 해볼 참이었다.든든하게 에테르테태의 최시은도 등에 업었겠다,이제 키스만 하면 됐는데?“개새끼야. 내가 뭐, 니 허락 받고 들어와야 돼?”채민의 말에 이태현은.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이태현의 워딩에.채민을 제외한 나머지 에테르 멤버들이 숨을 들이켰다.그는 그들에게 아주 점잖은 상무였다.욕이라는 건 저 바닥 기는 놈들만 쓰는 것이다,라며 부르주아의 삶을 살 것 같았던 이태현 상무가 아니었던가?그런데.값비싼 수트를 입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그의 입에서.욕이 나왔다는 건 둘째 치고.굉장히... 찰진데?“아, 지금 진짜 중요한 순간이었다고요!”채민이 계속 짜증을 냈다.그런 채민의 모습을 보고.또 다시 나머지 에테르 멤버들의 호흡이 멈췄다.저 새끼가 미쳤나?감히 이현그룹의 후계자, 재벌 3세한테 개겨?이태현과 윤채민의 서사를 모르는 나머지 멤버들은.이제 곧 윤채민이 세상에서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윤채민과 같은 편을 먹었던 비운의 남자1, 강태윤 역시.이태현과 윤채민의 서사를 전혀 알지 못했기에.7인조에서 6인조 보이그룹이 될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야... 너... 미쳤어...?”태윤이.태현의 눈치를 보면서 채민을 향 조용하게 말했다.목소리가 조
“차건우는?”“법원 갔다가, 로펌 들려서 마무리하고, 저녁에 접대. 백현민은?”“출장. 대전으로. 내일 온대.”“좋았어!”‘HERA’에 들어가기 전.두 여자는.제 남편들의 동선을 체크했다.반드시.남편들의 움직임을 확인해야 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차건우를 통해.이하윤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에테르 멤버들이.축하 파티의 자리를 만들었다.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준 차건우의 부인이자, 그들의 네임드팬인 하윤은.에테르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또한.이미 꽤 배가 부른 또 다른 네임드팬, 시은이까지 겸사겸사.징- 징- 징-막 ‘HERA’에 들어섰을 때.시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뱉어냈다.“응, 태윤아.”에테르의 리더인 태윤.여전히 최시은을 마음에 품고 있는 비운의 남자1.--“누나, 어디야?”“우리 막 들어왔어.”--“그래? 데리러 갈게.”“응, 알았어.”누가 보면.“사귀냐?”하윤이 눈매를 좁히며 시은을 쳐다보았다.“아니. 왜?”몰라서 묻나.“그 짧은 대화에도 너무 쏘 스윗해서.”하윤의 말에.시은이 피식- 웃는다.“우리 윤이는, 너어무 젠틀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이렇게 막...”“지랄을 한다.”하윤의 미간이 좁아졌다.“너, 그거 태윤이한테 못할 짓이야. 그거 진짜 잔인한 거라고.”“내가 뭘 어쨌다고?”하윤의 핀잔에 시은이 투덜거렸다.아니, 그저.에테르 강태윤이 좋으니까 그런건데?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어우. 태윤이 불쌍해서 어째?”“아니, 누가 보면 내가 태윤이랑 사귀다가 백현민이랑 바람 펴서 애 가진 줄 알겠네.”“태윤이 입장에선 그럴걸?”“웃기지마.”“이게 웃기는 걸로 보여? 너, 진짜 태윤이한테 그러면 안되는 거야.”“아니,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런데?”입구에서.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임산부.“누나!”안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서로 으르렁거리던 두 여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태윤이와 채민이었다.마치.제 여자를 마중이라도 나온 듯.나란히 두
차건우는 오늘.오전 근무만 하고 개인적인 볼 일을 위해 꽤 멀리 이동했다.서울 외곽의 큰 복합 쇼핑몰.그곳의 상가 1층에 입점 되어 있는 꽤 고급스러운 헤어샵.건우는 그곳으로 당당히 들어갔다.“어, 왔냐?”딸랑- 거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맞춤수트의 멋진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차건우를 본 두 사람.그들은 그의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었다.같은 중학교는 아니었다.한때.축구에 미쳐 있었던 차건우는.중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을 했다.외부 경기에서 만난 라이벌 학교의 선수들.거칠게 몸싸움을 하며 축구 경기를 펼친 사내들이었지만.결국엔.경기 후,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친한 친구가 되었다.“너, 씨. 축구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내가 엄청 슬퍼했는데. 아니, 씨발, 변호사 돼서 우릴 이렇게 도와줄 줄 어떻게 알았냐고?”남자치고도, 아주 머리를 짧게 자른 성환이, 감격에 겨워했다.“아, 그러게. 거기다 길바닥에서 딱, 만날게 뭐냐고.”단발에 가까운, 남자치곤 꽤 긴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형진이, 건우의 어깨를 툭 치며 반가워했다.차건우는 오늘.오랜 친구들을 도와주러 이곳에 왔다.“내가 준비하라고 한 자료, 다 준비했지?”건우는.무심하게 입을 열고 있었지만.어린시절 친구들을 도와주기 위에 선뜻 나설만큼, 그 역시 두 친구들이 반가웠다.“그럼, 그럼.”형진이 과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감히. 누구 명인데!“근데... 왜 손님이 없어?”건우는 매장안을 쭈욱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꽤 고급스러운 헤어샵이다.거기다 손님도 많아 돈도 엄청 잘 번다던 녀석들이다.“아. 너 온다고 예약 안 받았어. 스탭들도 다 늦게 출근하라고 했고.”잘나가는 변호사, 차건우를 배려한 두 친구였다.그들은 그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 헤어샵의 원장으로 있는 두 친구들은.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축구를 그만뒀다.형진은 부상으로, 성환은 집안 사정으로.축구를 그만두고.평생을 운동만 하던 녀석들이 공부를 시작하려니, 뭐 되겠는가?그래서
배가 불러 조금씩 움직이기 힘들어진 시은이를 위해.하윤은, 시은이의 신혼집으로 자주 놀러 갔다.밖을 싸돌아다닐 수 없어 고통스러운 최시은이었지만.찐친이자 소울 메이트인 하윤이와 수다를 떠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너, 아직도 피임약 먹는다고?”함께 과일을 먹으며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다 꺼내본다.“응. 아마... 2년이 좀 넘었지?”몸에 좋지도 않은 피임약 따위 먹지 말고, 그저 순리를 따르라던 차건우는.두 사람의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말을 싹 바꿨다.“미안하다면서, 자기 걸 묶을 수 없지는 않냐. 당분간만 먹어줘라... 하. 언제는 애 가지자고 징징 거리더니, 지금은 입 싹 닦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지잰다.”하윤은 자신의 남편을 씹 듯, 샤인머스캣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었다.“하, 너무 힘들어... 결혼 전보다 더 해. 진짜 미친 놈 같아.”한숨을 푹 내쉬는 차건우의 아내, 이하윤.“젊어서 그런가?”시은이 미간을 좁히며 온 몸을 털었다.“그렇게 신나게 할 거면, 지가 콘돔이라도 끼던가. 아휴...”하윤의 말에.시은이 피식- 웃었다.“아는 거지, 차건우는.”“뭘?”“콘돔보다 피임약이 더 안전하다는 걸. 아주 그냥 이하윤이랑 떡치고 싶어서 미친놈일세, 차건우 개새끼.”시은은.차건우가 싫다.그냥.“욕하지 마. 애기 들어.”하윤이 인상을 찌푸렸다.“우리 애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님 니 남편 새끼 욕먹는 게 싫은 거야?”시은의 물음에.하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니가 차건우 욕하는 거 한 두 번이냐? 10년을 넘게 욕했는데, 이제 와서 싫을 게 뭐야?”“하긴.”하윤의 팩폭에 시은이 마저 웃어버렸다.“근데... 피임약 이렇게 오래 먹어도 괜찮나?”사실, 하윤은.이제 슬슬 피임약을 그만 먹고 싶다.자신의 몸 걱정 이라기 보다는.시댁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대놓고.내 손주를 낳아도, 라고 하시진 않지만.은근히 기다리고 계시는 게, 자꾸만 눈에 보였다.건
오후 업무를 한참 쳐내던 시간이었다.징- 징- 징-책상 위 한편에 둔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뱉어냈다.[ 백현민 ]“응?”이 시간에 이 형이 웬일이지?건우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뻗어 제 핸드폰을 잡았다.“어, 형.”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스와이프 해 바로 통화를 시작했다.--“야, 차건우. 너 지금 이하윤이랑 연락 되냐?”핸드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현민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하지만.다분히 빡친 기색이 역력했다.건우의 눈매가 확- 좁아졌다.“하...”건우는.현민이 묻는 질문에 대한 상황 파악이 단박에 끝났다.그의 잘생긴 미간이 사정 없이 찌푸러졌다.“아까 점심 때 잠깐 통화하고, 그 이후로는 연락 못해봤어. 최시은. 또 연락 안 돼?”--“나도 점심 이후로 연락이 안돼서. 하, 씨발. 이 기집애가 또 방해 금지 모드 해 놓고, 지금, 전화도 카톡도 다 씹고 앉았어.”현민은 결국 폭발했다.이성적으로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분노였다.--“아니, 이제 결혼까지 했으면, 가정에 좀 충실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딴따라 개새끼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 어쩌겠다는 거야! 홀몸도 아닌 게!”그랬다.백현민의 분노는 너무도 당연했다.결혼식을 얼마 앞두지 않고 최시은은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결혼은 이하윤이 빨랐지만, 임신은 최시은이 빨랐던 셈.다행히 배가 부르기 전이라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지만.그 이후가 문제였다.지독히도 정적인 것을 싫어하는 최시은은.도저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아니, 내가, 씨발. 그 개새끼들 쫓아다니라고 약국 그만두라고 했어? 지난번에도 유산기 있어서 그렇게 고생을 해 놓고, 또 처 돌아다니고 앉았어.”쉼 없이 분노를 뱉어내는 현민의 말을.건우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러게.왜 그렇게 임신을 빨리 해서.우리처럼 피임을 했으면 됐잖아.몸에 좋지도 않은 피임약 따위 먹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고 했던 차건우는.이하윤과의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말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