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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동이가 입을 다물자 임도경의 손가락 끝에 작은 앞니가 닿았다.
“조금만 더 보자. 다 끝났어.”
도경은 손바닥을 세 번 비빈 뒤 복동이의 턱을 받쳤다. 입술을 살짝 들어 올리고, 진료등 아래에서 잇몸을 살폈다. 아홉 살 치와와는 코로 짧게 숨을 내쉬었다.
“붓지는 않았어요. 딱딱한 간식은 당분간 주지 마세요.”
“우리 복동이가 그걸 제일 좋아하는데.”
표말순 할머니가 세탁물 봉지를 발치에 놓고 복동이의 등을 쓸었다. 복동이는 도경의 손에서는 몸을 빼더니 할머니 품으로는 곧장 파고들었다.
도경은 진료대 가장자리에 붙은 털을 닦았다. 벽시계는 저녁 6시 50분을 가리켰다. 문 닫을 때까지 10분이 남아 있었다.
밖에서는 비가 내렸다. 병원 앞 느티나무 가지 끝에서 떨어진 물이 유리문을 두드렸다. 건너편 분식집 불빛이 젖은 보도에 길게 번져 있었다.
채보라가 계산대에서 진료비를 받았다.
“복동아, 다음엔 입 좀 크게 벌리자.”
복동이는 할머니 팔 안에서 고개를 돌렸다. 보라가 내민 손가락에는 코도 대지 않았다.
“오늘은 삐쳤네.”
할머니가 웃으며 세탁물 봉지를 들었다. 도경은 문을 열어 주고 우산이 제대로 펴질 때까지 기다렸다.
문 바깥쪽에 붙인 안내문의 아래 모서리가 들려 있었다.
『몬스터는 받지 않습니다』
빗물이 종이와 유리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도경은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눌렀다. 젖은 종이가 잠깐 붙었다가 다시 떠올랐다.
“테이프 새로 붙여야겠네요.”
보라가 어깨에 퇴근 가방을 걸며 말했다.
“내일 하죠.”
도경은 문을 닫으려 했다.
그때 보도 끝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회색 후드를 쓴 남자였다. 품에 안은 담요가 무거운지 몇 걸음마다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할머니가 우산을 옆으로 비켰다. 남자는 고개를 숙일 여유도 없이 문 앞으로 뛰어들었다.
“선생님.”
젖은 운동화가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도경이 문을 붙잡았다.
“우리 애 좀 봐 주세요.”
담요 밑으로 짧고 굵은 다리가 나와 있었다. 발끝에는 검은 발톱이 붙어 있었다. 남자의 팔을 따라 떨어지는 물에 붉은색이 섞여 바닥에 고였다.
도경의 시선이 담요 한가운데 멎었다.
“여기는 몬스터 진료를…….”
남자가 담요를 조금 걷었다.
회색 돌빛 등딱지에 금이 가 있었다. 틈 사이로 피가 계속 배어 나왔다. 바위거북의 머리는 축 늘어져 있었고, 앞발 하나가 남자의 젖은 소매에 걸려 있었다.
“센터로 가셔야 합니다.”
“전화했어요. 오라고는 했는데, 차로 50분이래요.”
남자가 거북을 고쳐 안았다. 담요 속에서 작은 숨소리가 났다. 한 번 들이쉰 뒤 다음 숨이 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택시 기다리다가 여기 불 켜진 걸 봤어요. 피만 좀 멈춰 주시면 안 돼요?”
도경은 바위거북의 눈을 보았다.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었다. 입 안쪽을 살짝 살피자 색이 옅었다.
이 상태로 50분을 더 버티게 할 수는 없었다.
문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처치실로 들어오세요. 담요째 주세요.”
남자의 팔이 쉽게 펴지지 않았다. 도경은 거북의 아래쪽을 받치고 다시 말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보라의 가방이 계산대 옆에 내려앉았다. 보라는 아무 말 없이 서랍을 열고 장갑 두 켤레를 꺼냈다.
■
진료대에 내려놓고 나서야 거북의 크기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서면 무릎 높이는 될 몸이었다. 단단한 등딱지가 젖은 담요를 눌러 진료대 한쪽이 낮아졌다.
“이름이요?”
“돌멩이요. 바위거북이고, 수컷이에요. 세 살.”
도경이 앞다리를 살피는 동안 보라가 적었다. 발목에는 번호가 새겨진 쇠 고리가 있었다. 남자는 그쪽을 가리켰다.
“등록도 했어요. 온순이고요. 사람 안 물어요.”
“지금은 아파서 놀랄 수 있어요. 머리 쪽에서 이름을 불러 주세요.”
도경은 담요를 잘라 상처 주위를 드러냈다. 등딱지 오른쪽에 긴 금이 있었고, 그 끝에 짧은 금이 하나 더 갈라져 있었다.
“어떻게 다쳤습니까?”
“샛골 굴에서 나오다가 돌이 떨어졌어요. 제가 앞쪽만 봐서…….”
남자의 손등에는 오래된 긁힌 흉이 여러 개 있었다. 손가락은 젖은 담요 끝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성함은요?”
“탁인호요. D급 헌터예요.”
“인호 씨, 돌멩이가 숨 쉬는 데 방해되지 않게 담요를 조금만 풀게요.”
보라가 거즈를 건넸다. 도경은 벌어진 등딱지 주변의 피부터 눌러 닦았다.
겉에서 흐르는 피만으로는 축 늘어진 몸이 설명되지 않았다. 등딱지 아래에 다친 곳이 더 있을 수 있었다. 도경은 청진기를 대려다가 잠깐 멈췄다.
어디에서 들어야 가장 잘 들릴까.
개와 고양이는 손을 뻗기 전에 자리를 알았다. 이 거북은 달랐다. 두꺼운 등딱지 안쪽을 보지 못한 채 익숙한 자리를 고를 수는 없었다.
도경은 목 아래와 앞다리 뒤쪽을 차례로 살폈다. 겨우 잡힌 심장 소리는 빠르고 약했다.
“수액 준비해 주세요. 몸 기울지 않게 수건 받치고요.”
도경이 새 거즈를 집었다. 젖은 장갑을 바꾸려 손을 뺀 순간, 등딱지의 거친 끝이 장갑 끝을 걸었다. 찢어진 틈으로 피가 손끝에 묻었다.
도경의 시야가 흔들렸다.
눈앞의 진료대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머릿속에 다른 것이 겹쳤다.
흐린 회색 선이었다.
거북의 몸처럼 보이는 윤곽은 가장자리부터 끊겨 있었다. 그 안쪽, 손을 대고 있는 곳 바로 아래만 짙었다. 그 자리에 뜨거운 것이 뭉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도경은 손을 뗐다.
그림이 사라졌다.
“원장님?”
보라가 수액 줄을 들고 도경을 보았다.
도경은 찢어진 장갑을 벗었다. 손끝의 피를 닦고 새 장갑을 끼웠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다시 손을 댔다.
다시 보였다.
상처 바로 아래였다. 짙은 부분이 등딱지 안쪽에 붙어 있었다. 다른 곳은 흐려서 구별할 수 없었다.
‘안쪽에 고였나.’
도경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손에 닿는 열 때문일 수도 있었다. 급한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 느낌만 믿고 바늘을 넣을 수는 없었다.
“보라 씨, 초음파 켜 주세요.”
■
도경은 상처를 피해 기기를 댈 자리를 찾았다. 등딱지 위에서는 화면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앞다리 뒤의 부드러운 부분으로 옮기고, 몸의 각도를 조금씩 바꿨다.
보라가 말아 둔 수건을 밀어 넣었다.
“이쪽 높이면 돼요?”
“조금만요. 네, 거기.”
화면에 어두운 공간이 잡혔다. 도경은 손을 멈추고 주변을 다시 살폈다. 한 방향에서 본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기기를 옮겨 그 자리를 몇 번 더 확인했다.
머릿속 그림이 짙었던 자리와 가까웠다.
하지만 그림에는 금이 간 등딱지가 얼마나 어긋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고인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안쪽에 액체가 고여 있어요. 피일 가능성이 큽니다. 뼈 쪽도 확인할게요.”
도경은 돌멩이의 몸을 지지한 채 엑스선을 찍었다. 기다리는 동안 수액 줄이 꺾이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앞발 끝의 움직임을 살폈다.
인호가 거북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였다.
“돌멩아. 나 여기 있어.”
거북의 발톱이 진료대 위를 아주 조금 긁었다.
도경은 엑스선 사진을 밝힌 화면에 띄웠다. 금이 간 등딱지 일부가 안으로 눌려 있었다. 도경은 사진과 거북을 번갈아 보았다.
처음에는 겉의 금만 붙잡으면 될 줄 알았다. 안쪽에 고인 피와 눌린 부분을 함께 봐야 했다.
벽시계 초침이 움직였다. 어느새 저녁 8시를 넘기고 있었다.
“인호 씨.”
도경이 사진을 가리켰다.
“여기 아래에 피가 고여 있습니다. 숨 쉬는 것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확인한 자리에서 조금 빼 보고 반응을 보겠습니다.”
“빼면 괜찮아져요?”
“그것만으로 다 해결되지는 않아요. 등딱지도 더 움직이지 않게 잡아야 하고요.”
인호의 입술이 다물렸다. 잠시 뒤 고개가 작게 움직였다.
“해주세요.”
도경은 도구 받침을 가까이 당겼다. 집게가 쇠 받침에 닿으며 짧은 소리를 냈다. 보라는 거북의 몸이 돌아가지 않게 받쳤다.
소독한 자리를 다시 확인했다. 손끝에 떠오른 그림이 아니라, 화면에서 확인한 위치를 짚었다.
도경은 가는 바늘과 주사기를 들었다.
낯선 몸이었다. 그래서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멈춰 확인했다. 바늘 끝을 살피고, 주사기 안으로 올라오는 색을 보았다. 짙은 피가 천천히 모였다.
“피 맞아요.”
보라가 거즈를 가까이 놓았다.
도경은 한꺼번에 빼지 않았다. 돌멩이의 숨을 듣고, 몸을 만져 보고, 다시 화면을 확인했다. 인호도 어느새 말을 멈춘 채 거북의 머리만 보고 있었다.
거북의 목이 조금 움직였다.
다음 숨은 앞선 숨보다 짧은 간격으로 들어왔다.
도경은 바늘을 빼고 거즈로 자리를 눌렀다. 장갑 낀 손을 그대로 둔 채 청진기 끝을 다시 댔다.
아직 빠르지만 아까처럼 멀게 들리지는 않았다.
“조금 나아졌어요.”
인호의 손이 거북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만져도 되는지 묻는 듯 도경을 보았다.
“머리 쪽은 괜찮아요. 살살요.”
인호가 젖은 손을 바지에 닦고 돌멩이의 이마를 쓸었다.
■
등딱지를 고정하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도경은 남은 피를 닦고 상처를 다시 살폈다. 금이 벌어진 곳에 붙은 작은 돌가루를 집게로 걷어 냈다. 갈라진 가장자리를 힘으로 눌러 맞추지는 않았다.
“보라 씨, 넓은 띠하고 고정대 가져와 주세요.”
도경은 거북의 몸을 둘러볼 수 있게 진료대 주위를 돌았다. 다리가 나오는 곳과 목을 빼는 곳을 가리지 않아야 했다. 몸을 감싸더라도 숨을 막아서는 안 됐다.
할아버지가 소의 다리를 잡을 때도 매듭부터 묶지는 않았다. 당겨지는 방향을 살피고, 닿는 자리에 천을 한 겹 더 넣었다.
도경은 고정대와 등딱지 사이에 접은 거즈를 받쳤다. 넓은 띠를 돌리고, 보라에게 반대쪽을 잡게 했다.
“당기지 말고 지금 길이만 유지해 주세요.”
“네.”
매듭을 묶은 뒤 손가락을 넣어 눌리는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돌멩이가 앞발을 조금 뻗었다. 띠가 발에 걸리지 않았다.
도경은 거즈를 한 번 더 받쳤다.
머릿속에 뜬 것은 고정대를 어디에 놓으라는 말도, 매듭을 어떻게 묶으라는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도경에게 전해진 것은 그 아래가 아프다는 느낌 하나였다.
나머지는 도경의 손과 보라가 잡아 준 띠, 진료대 위에 펼친 도구로 해야 했다.
처치가 끝났을 때 인호는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양팔은 거북을 안던 모양대로 굽혀져 있었다.
“인호 씨도 앉으세요.”
“저 괜찮아요.”
말과 달리 무릎이 한 번 꺾였다. 보라가 의자를 밀어 주었다.
도경은 수액 줄을 정리했다. 돌멩이의 목 아래에 마른 수건을 깔고, 등딱지의 고정대가 기울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오늘은 입원해서 봐야 합니다. 당장 센터로 옮기는 것보다는 여기서 숨이 안정되는지 확인하는 게 낫겠어요.”
“여기 있어도 돼요?”
인호가 도경을 보았다.
“네. 다만 제가 바위거북을 처음 봅니다. 상태가 나빠지면 센터에 연락해서 옮길 준비도 할 겁니다.”
인호는 잠깐 진료대 끝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보라가 대기실로 나갔다. 잠시 뒤 서랍 여닫는 소리와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경은 처치실 문을 반쯤 열어 둔 채 기록을 적었다.
인호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젖은 후드를 벗지 못한 채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있었다. 운동화 아래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생겼다.
보라가 수건과 초코바를 건넸다.
“먼저 닦으세요. 이것도 먹고요.”
“괜찮습니다.”
“손이 계속 떨려요.”
보라는 초코바를 인호의 손 위에 놓았다. 인호는 봉지를 뜯다가 끝을 놓쳤다. 다시 잡으려 하자 보라가 봉지 귀퉁이만 찢어 주고 물러났다.
도경은 기록지에 보호자 이름을 적었다.
“평소에 먹던 거나 지병이 있습니까?”
“지병은 없어요. 먹이는 내일 가져올게요.”
“오늘 다치기 전에는 잘 움직였고요?”
“네. 제 뒤에 잘 따라왔어요. 늘…….”
인호가 초코바를 쥔 채 말을 멈췄다. 후드 끝에서 물이 뺨으로 흘렀다.
“형이 맡긴 애예요.”
도경은 펜을 멈췄다.
인호의 시선은 처치실 안에 놓인 진료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잘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도경은 왜 맡겼는지 묻지 않았다. 기록지 빈칸에 다치기 전까지 식욕과 움직임이 괜찮았다고 적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데리고 왔잖아요.”
인호가 초코바를 내려다봤다. 한참 뒤 포장지를 조금 더 벗겨 한 입 베어 물었다.
보라가 바닥의 물을 닦는 동안 도경은 입원 칸을 비웠다. 작은 칸 둘 사이의 분리대를 빼고 두꺼운 담요를 깔았다.
돌멩이를 옮길 때는 셋이 함께 들었다. 인호가 머리 쪽을, 보라가 뒤쪽을 받쳤다. 도경은 몸 아래에 손을 넣고 수액 줄이 당겨지지 않게 했다.
마른 담요 위에 내려놓자 거북의 앞발이 천천히 접혔다.
“돌돌이, 오늘은 여기서 자자.”
보라가 담요 끝을 접었다.
도경은 등록 고리에 적힌 번호와 인호가 적어 준 번호를 대조했다. 그리고 입원 칸 앞에 이름표를 붙였다.
『바위거북 돌멩이』
■
자정이 지나자 비가 조금 가늘어졌다.
도경은 처치대 위 도구를 정리하고 손을 씻었다. 손끝에서 피 냄새가 사라진 뒤에도, 처음 등딱지에 닿았을 때의 뜨거운 느낌은 남아 있었다.
수건으로 손을 닦다가 멈췄다.
피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경은 입원 칸으로 돌아가 돌멩이의 등딱지에 조심히 손을 댔다. 흐린 그림이 다시 떠올랐다. 아까보다 짙은 곳이 작아진 듯했지만, 제대로 비교할 만큼 또렷하지 않았다.
손을 떼면 없어졌다.
한 번 더 대 보았다.
같은 자리가 보였다.
도경은 청진기를 들었다. 그림을 오래 붙잡는 대신 돌멩이의 숨을 듣고, 고정대 아래를 확인했다. 새로 배어 나온 피는 많지 않았다.
보라는 계산대 안쪽에서 턱을 괴고 있었다. 도경이 가까이 가자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제가 볼까요?”
“잠깐 눈 붙여요. 제가 보고 있어요.”
도경은 서랍에서 낡은 진료 수첩을 꺼냈다. 비에 젖은 담요를 받느라 젖어 버린 기록지 대신 마른 종이를 찾던 참이었다.
수첩 첫 장에는 할아버지 글씨가 남아 있었다.
『손이 먼저 안다. 그다음에 눈, 그다음에 도구.』
뒤쪽 장에는 소도 말도 아닌 짐승을 그린 그림이 한 장 있었다. 도경은 그것을 할아버지의 낙서로만 알고 넘겨 둔 지 오래였다.
도경은 빈 종이를 한 장 끼우고 수첩을 닫았다. 오늘 확인한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나눠 적었다. 등딱지 금, 그 아래 고인 피, 처치 뒤 조금 고른 숨.
그림에 대해서는 펜 끝을 댔다가 뗐다.
무엇이라고 적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입원실에서 담요 긁히는 소리가 났다.
도경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벽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켰다.
돌멩이가 눈을 뜨고 있었다.
머리를 많이 들지는 못했지만, 눈앞에 놓인 물그릇 쪽으로 코를 움직였다. 도경은 그릇을 조금 가까이 놓고 수액 줄을 확인했다.
대기실 의자에서 졸던 인호를 불렀다.
“인호 씨. 돌멩이가 깼어요.”
인호가 후드부터 벗으며 일어났다. 입원 칸 앞에 무릎을 꿇고 한동안 거북과 눈을 맞췄다.
“돌멩아.”
젖은 소매로 얼굴을 한 번 닦았다. 이번에는 손을 바로 내밀지 않고 거북이 고개를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도경은 한 걸음 물러났다.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긴 시간 장갑을 끼고 있었던 손끝이 희게 불어 있었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청진기의 검은 고무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할아버지가 쓰던 줄의 갈라진 부분이 손끝에 걸렸다.
‘그게 뭐였지.’
유리문 쪽에서 종이가 가볍게 떨렸다. 비에 젖은 안내문이 반쯤 떠 있었다.
『몬스터는 받지 않습니다』
도경이 문을 바라보는 사이, 등 뒤에서 돌멩이가 다시 담요를 긁었다.
『환자: 바위거북 돌멩이(수컷 · 3살 · 무릎 높이)』
『진단: 등딱지 금, 아래에 피 고임』
『처치: 피 빼기, 등딱지 고정, 사흘 뒤 다시 보기』
(1화 끝)
도경은 병원 유리문 쪽으로 돌아섰다. 안에서 물그릇을 내려놓던 보라가 전화기를 보고 문을 조금 열었다.“네. 몬스터도 진료합니다. 어떤 아이인가요?”“모래게입니다. 먹기만 하면 토해서요.”전화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경은 차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지금도 계속 토하나요?”“먹은 걸 뱉고 나면 가만히 있습니다. 걷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음 끼니에 또 그래요.”“숨 쉬는 모습은 평소와 같고요?”남자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멀어진 목소리로 바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전화가 가까워졌을 때는 말이 조금 빨라져 있었다.“같습니다. 지금 저한테 오네요.”도경은 보라가 열어 준 문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서 메모지를 가져와 모래게라고 적었다.“억지로 먹이지 마세요. 입을 벌려 보려고 손을 넣지도 마시고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려 주세요.”도경은 먹이 종류와 토한 뒤의 움직임을 물었다. 남자는 물을 마시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기 전에 도경은 바로 와야 할 때를 짚어 주었다.남자가 적는 동안 전화 너머로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4월 14일(화), 대기실에서 단단한 것이 바닥을 두드렸다.도경은 씻은 손의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낮은 운반 상자 앞에 축구공만 한 모래게가 서 있었다. 모래색 껍질 아래로 다리가 차례로 움직였다. 양쪽 집게는 몸 앞에 모아져 있었다.상자를 들고 온 남자의 왼팔에는 보조기가 채워져 있었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내려놓은 뒤 몸을 조금 숙였다.“전화드렸던 사람입니다.”&l
도경은 서류를 끝까지 넘긴 뒤 먹이 항목이 있는 쪽을 다시 펼쳤다. 빈칸은 그대로였다.“관리원에 먹이 자료도 부탁해 볼게요. 지금은 수액부터 마저 보고요.”보라는 간식 서랍 위에 올려 둔 봉지를 치웠다. 대신 작은 메모지를 붙이고 이끼곰 먹이라고 적었다.입원 칸에서 담요를 긁는 소리가 났다. 새끼 이끼곰이 앞발을 당겨 턱 밑에 놓고 있었다. 도경은 그 앞에 앉아 수액 줄이 눌리지 않았는지 살폈다.“조금 움직이네요.”“네. 먹을 수 있을 만큼 기운이 돌아오는지 봐야죠.”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다음 관찰 시간을 적었다.■4월 10일(금), 보라가 작은 접시를 들고 입원실에서 나왔다.접시 한쪽에는 얇게 자른 사과가 놓여 있었다. 다른 쪽은 비어 있었고, 그 자리에 물기 묻은 자국이 남았다.“사과 먹어요.”도경은 접시를 내려다봤다.“스스로요?”“처음엔 냄새만 맡더니 앞발로 가져갔어요. 조금만 줬어요.”관리원에서 보내 준 사육 자료에는 사과를 포함한 몇 가지 과일이 적혀 있었다. 앞서 내민 먹이는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달랐다.도경은 입원 칸 앞에 쪼그려 앉았다.이끼곰은 담요 위에 배를 대고 있었다. 턱 아래에 사과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도경이 거즈를 가까이 가져가자 코가 먼저 움직였다.“이건 먹는 거 아니야.”입가를 닦은 뒤 배를 가볍게 살폈다. 호흡은 고르게 이어졌고, 손이 닿자 앞발을 조금 옮겼다. 창고에서처럼 턱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보라가 남은 사과를 담은 그릇을 들어 보였다.“더 주면 먹을 것 같은데요.”“조금 기다려 보죠. 먹고 나서 불편해하지 않는지도 봐야 해요.”보라는 그릇을 이끼곰의 눈에 띄지 않는 선반으로 옮겼다.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도경은 손을 씻고 진료실로 나왔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작은 이동 상자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옆에는 책가방을 멘 여자아이가 붙어 서 있었다.상자는 투명한 덮개에 공기구멍이 나 있었다. 안쪽 천 위로 얇은 날개 하나가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도경은 안쪽에서 들
“이계생물관리원 노상필입니다.”도경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그릇을 보았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턱을 들었다가 옆에 붙어 있는 몸 위에 내려놓았다.“주임님, 느티나무 동물병원 임도경입니다. 오늘 돌두꺼비 셋을 진료했는데, 사육 상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보호자와 등록 번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도경은 선반의 서류를 가져왔다. 엄기철의 이름과 고리 번호를 읽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현재 병원에 있습니까?”“네. 셋 모두 탈수가 있고 등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철창과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찍어 뒀어요.”“사진과 진료 기록을 보내 주십시오. 확인한 사실과 보호자가 한 말은 나눠 적어 주시고요.”도경은 기록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관리 상태가 나빴다고 제가 단정해도 됩니까?”“진료에서 확인하신 상태를 적으시면 됩니다. 사육 환경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아래에 물그릇 없이 내원했다고 적었다. 아침에 물을 줬다는 엄기철의 말은 따로 옮겼다.보라가 물그릇 옆 받침을 바로 놓았다.“돌아가서 또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요.”도경은 마른 배설물이 붙어 있는 바닥 사진을 골랐다. 전송 화면에 사진이 한 장씩 올라가는 동안 보라는 돌두꺼비들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는지 살폈다.■4월 3일(금), 도경이 입원실 물그릇을 갈고 나왔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엄기철이었다.어제 두고 간 철창보다 길쭉한 철창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금목걸이 아래 셔츠 앞섶에 작은 물자국이 났다.“원장, 이것도 좀 봐 줘요.”철창 바닥에 팔 길이의 뱀이 몸을 접고 있었다. 옅은 물결무늬 사이로 젖은 거즈가 보였다. 꼬리 끝에 감아 놓은 거즈였다.도경은 진료대 위를 비웠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철창 문에 끼였어요. 직원이 닫다가.”엄기철이 철창을 내려놓자 뱀이 머리를 들었다.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
보라는 문 옆의 낮은 선반을 비웠다.도경이 큰 담요를 접어 올려놓자 보라가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유리문을 여닫아도 담요가 걸리지 않았다.“이 정도면 바로 꺼낼 수 있겠네요.”“바닥에 닿으면 갈아 주세요.”보라는 선반 위를 한 번 더 닦았다. 도경은 처치실로 돌아가 고정대에 남은 물기를 확인했다. 마른 거즈를 채우고 나니 진료대 아래 서랍이 조금 뻑뻑하게 닫혔다.■3월 31일(화), 문 옆의 담요는 작은 이동장을 받치는 데 쓰였다.점심이 지난 뒤였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이동장을 양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한쪽 소매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이동장 손잡이는 천으로 여러 번 감겨 있었다.“몬스터도 보시는 거 맞죠?”도경은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네. 어떤 아이예요?”“쇠부엉이요. 눈이 좀 이상해요.”이동장 안에서 쇳빛 깃이 움직였다. 팔뚝 길이의 부엉이가 낮은 횃대에 앉아 있었다.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틀어 도경을 보았다.눈 가장자리에 마른 분비물이 조금 붙어 있었다. 오른쪽 눈을 자주 감았다 떴다.“언제부터 그랬어요?”“사흘쯤 됐어요. 밤에 자꾸 벽에 부딪혀요. 전에는 불을 꺼도 잘 날았거든요.”도경은 이동장 아래에 담요를 깔았다. 청년이 손잡이를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떨어뜨릴까 봐 감아 놨어요. 들고 오는데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요.”“잘하셨어요. 지금은 문을 열지 말고 잠깐 볼게요.”도경은 이동장 옆으로 몸을 낮췄다. 부엉이는 횃대를 발톱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날개는 양쪽 모두 접혀 있었고, 숨을 쉴 때 꼬리가 크게 들썩이지는 않았다.“밥은 먹습니까?”“주면 먹어요. 그런데 바닥에 놓으면 못 찾을 때가 있어요.”청년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등록 내용에는 위험 단계 주의가 적혀 있었다. 발목의 등록 고리 번호도 맞았다.“직접 데리고 일하세요?”“저는 D급 헌터고요. 평일에는 체험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해요. 얘 먹이 주고 청소하는 건 제가 합니다.”도경은 접수 칸에 들은 내용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