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
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
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
“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
“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
“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
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
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
“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
“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
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
■
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
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
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
“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
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
“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
“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찮다고 해서 왔는데.”
엄기철은 진료실 안을 한 번 둘러본 뒤 계산대의 요금 안내를 보았다.
“싸게 해 줘요, 싸게. 셋이나 데려왔잖아요.”
도경은 등록 서류를 진료대 옆에 놓았다.
“먼저 상태부터 보겠습니다. 언제부터 안 먹었어요?”
“어제도 남겼어요. 그전에는 먹었나.”
엄기철이 철창 앞에 손가락을 넣어 바닥을 두드렸다. 돌두꺼비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경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지금은 건드리지 마세요. 물은 언제 갈아 줬습니까?”
“아침에요. 그릇 엎을까 봐 오면서 뺐어요.”
철창 안에는 물그릇이 들어갈 자리도 넉넉하지 않았다. 셋이 몸을 붙이고도 한 마리의 뒷발이 다른 한 마리 아래에 깔려 있었다.
보라가 얕고 넓은 쟁반을 가져왔다. 도경은 철창 문을 열어 바닥 높이에 맞췄다.
“밖으로 옮겨 볼게요.”
손을 넣기 전에 철창 모서리를 살폈다. 마른 배설물이 바닥에 붙어 있었다. 그 위로 희끗한 조각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
도경은 접은 거즈로 돌두꺼비의 배를 받쳤다.
등은 자갈을 촘촘히 붙인 듯 거칠었지만 배 아래는 얇고 부드러웠다. 옮기는 동안 뒷발이 손가락에 걸렸다가 힘없이 풀렸다.
보라가 깔개 위에 첫 번째 돌두꺼비를 받았다. 나머지 둘도 한 쟁반에 놓자 조금씩 몸을 움직여 다시 붙었다.
“떼어 놓으니까 또 모이네요.”
보라는 쟁반 가장자리에 말아 놓은 수건을 댔다. 도경은 셋의 눈과 입 주위부터 비교했다.
눈가의 피부는 모두 마른 상태였다. 등 표면에는 작은 들뜸이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가루가 떨어졌다.
“원래 등이 이렇게 하얬습니까?”
“돌처럼 생긴 애들이잖아요. 먼지 묻은 거 아닌가.”
도경은 젖은 거즈를 등 가장자리에 잠깐 댔다. 먼지는 닦여 나왔지만 희끗한 부분은 그대로였다. 들뜬 조각 아래에는 얇은 피부가 드러났다.
“먼지만은 아닙니다.”
장갑 낀 손끝을 등 옆에 대자 그림이 떴다.
작은 몸의 윤곽 안에서 등 쪽이 넓게 짙었다. 도경은 손을 옮겨 짙은 자리의 끝을 찾아보았다. 배 쪽에도 그 어둠이 번져 있었다.
다른 두 마리에게도 차례로 손을 댔다. 등과 배가 모두 짙었지만,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도경은 손을 떼었다.
‘피부만인가.’
등이 마르면서 갈라진 것이라면 물에 적시고 상처를 보호하는 일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배 쪽까지 짙게 보인 것은 그 짐작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등에 바르는 약 주면 되는 거죠?”
엄기철이 물었다.
“그렇게 끝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피부가 마른 건 맞는데 몸 안쪽 상태도 봐야 해요.”
도경은 보라에게 작은 저울과 깨끗한 받침을 부탁했다.
저울 위에 얇은 깔개를 올리고 표시를 맞췄다. 돌두꺼비를 한 마리씩 올릴 때마다 보라가 등록 고리 번호와 무게를 적었다.
엄기철이 기록지를 들여다보았다.
“지난번 무게는 모르는데요.”
“오늘 무게부터 남기면 됩니다. 다시 봤을 때 비교할 수 있으니까요.”
도경은 셋을 차례로 살폈다. 입 안은 촉촉하지 않았고, 배 아래 피부도 탄력이 떨어져 있었다. 등을 보는 동안보다 입을 살필 때 더 자주 쉬어야 했다.
한 마리는 앞발로 거즈를 밀다가 그대로 멈췄다.
도경은 손가락을 빼고 입을 닫게 했다.
“몸 전체에 물이 부족한 상태로 보입니다. 등만 마른 게 아니에요.”
“아까 물 줬다니까요.”
“오늘 물그릇을 놓았어도 이미 이렇게 된 상태라면 충분히 마시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도경은 청진기의 쇠 부분을 손바닥으로 덥혔다. 배 가까이 대고 들은 뒤, 쟁반에 남은 배설물과 철창 바닥을 다시 확인했다.
마른 배설물은 거즈로 가볍게 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밑에 붙은 것과 위에 덧붙은 것의 색도 달랐다.
“바닥 청소는 언제 하셨습니까?”
엄기철이 철창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건 직원들이 해요. 내가 다 볼 수는 없잖아요.”
“먹인 것과 물을 준 시간은 확인해서 알려 주세요.”
도경은 철창이 움직이지 않도록 손잡이를 잡았다. 엄기철이 손을 놓자 보라가 빈 쟁반을 그 옆에 댔다.
“바닥에 묻은 것도 한번 볼게요.”
■
보라는 진료실의 따뜻한 물을 얕은 그릇에 받았다.
도경은 손끝으로 물을 확인하고 돌두꺼비의 턱 높이보다 낮게 맞췄다. 셋을 한꺼번에 넣지 않고 한 마리부터 배와 발이 잠기도록 내려놓았다.
돌두꺼비가 앞발을 폈다.
바닥을 짚는 힘은 약했지만 머리는 물 밖에 두었다. 도경은 배 아래에 손을 받친 채 조금 더 기다렸다.
“이렇게 물에 닿게 해 주면서 상태를 볼 겁니다. 기운이 많이 빠져서 수액도 필요해요.”
엄기철이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지금 바로 데려가시면 안 됩니다.”
“행사 내일인데 오늘 나가야 해요.”
도경은 돌두꺼비가 고개를 들고 있는지 확인한 뒤 엄기철을 보았다.
“이 상태로 행사에 나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요.”
“가서 물에 넣어 주면 되잖아요.”
“수액을 주는 동안 반응을 봐야 합니다. 물에 담갔다고 바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요.”
보라가 수액 줄과 작은 바늘을 쟁반에 놓았다. 포장지를 여는 소리가 났다.
도경은 첫 번째 돌두꺼비를 물에서 잠깐 꺼냈다. 젖은 배를 거즈로 받치고, 단단한 등을 피해 몸 옆의 피부를 살폈다. 보라가 진찰등을 가까이 옮겼다.
“몸이 돌아가지 않게만 받쳐 주세요.”
“여기요?”
“네. 발은 눌리지 않게요.”
보라가 수건의 접힌 자리를 풀었다. 도경은 피부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소독한 뒤 바늘을 넣었다.
돌두꺼비의 뒷발이 움츠러들었다. 도경은 움직임이 잦아들 때까지 줄을 당기지 않았다. 바늘 자리를 고정하고 수액이 들어가는 동안 주변 피부를 살폈다.
그림에는 여전히 등과 배가 짙었다.
수액을 얼마나 줄지, 어디에 바늘을 넣을지는 보이지 않았다. 도경은 그림에서 손을 떼고 돌두꺼비의 몸과 줄을 번갈아 확인했다.
엄기철이 쟁반 가까이 고개를 내밀었다.
“돌인데 바늘이 들어가네요.”
“등만 단단합니다. 아래는 다칠 수 있어요.”
보라가 수건을 조금 더 받쳤다. 도경은 몸이 눌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다음 돌두꺼비의 도구를 새로 준비했다.
■
처치가 이어지는 동안 엄기철은 대기실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보라가 빈 철창을 낮은 보조대에 올렸다. 도경은 금속 자를 가져와 가로 길이를 쟀다.
40센티미터였다.
길이와 높이도 기록한 뒤 문이 열리는 폭을 확인했다. 철창 안쪽 모서리는 좁았고, 바닥에는 발톱이 걸릴 만한 벌어진 부분이 있었다.
“물그릇은 어디에 놓으셨어요?”
도경이 물었다.
엄기철이 철창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작은 거 넣어요.”
셋이 놓여 있던 자리였다.
보라가 철창 전체가 나오도록 휴대전화를 들었다. 자가 바닥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고, 마른 배설물도 함께 보였다.
사진을 찍는 소리가 나자 엄기철이 다가왔다.
“뭘 찍어.”
보라는 휴대전화를 내리지 않았다.
“진료 기록용인데요.”
“철창까지 왜 찍어요?”
도경이 진료대에서 말했다.
“어떤 환경에 있었는지 남기는 겁니다. 피부에 닿은 것과 물을 마실 수 있었는지 확인해야 해서요.”
엄기철은 철창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다른 데 보내는 거 아니죠?”
“진료에 필요한 상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경은 고리 번호가 보이는 사진과 등 표면 사진도 남겼다. 젖기 전 모습은 보라가 처음 옮길 때 찍어 두었다. 그 아래에 무게와 눈가 상태, 입 안의 마름을 적었다.
엄기철이 한동안 기록지를 보다가 계산대로 갔다.
보라는 철창 문을 열린 채로 고정했다. 도경은 돌아보지 않고 마지막 돌두꺼비의 수액 줄을 살폈다.
■
셋을 물그릇으로 옮기고 나자 진료대 위에 쓰고 남은 거즈가 쌓였다.
보라가 새 장갑을 끼고 젖은 깔개를 치웠다. 등에서 떨어진 가루가 담요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천천히 말았다.
그동안 돌두꺼비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의 옆구리에 앞발을 얹었다.
도경은 그 발이 물 밖으로 들리지 않도록 그릇의 위치를 조금 바꿨다. 처음보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다고 스스로 걸어 나올 만큼 움직이지는 않았다.
“오늘은 여기 두고 가세요.”
도경이 말했다.
엄기철이 계산대에 올려놓았던 지갑을 집었다.
“그럼 저녁에 와요?”
“회복하는 상태를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내일 행사에 데려갈 수 있다고 약속은 못 합니다.”
엄기철은 입술을 눌렀다가 지갑을 펼쳤다.
보라가 셋의 진찰비를 항목별로 보여 주었다. 처치비와 입원 중에 드는 비용은 따로 안내했다.
“한 마리씩 봤다고 다 받네.”
“셋 모두 진찰하고 각각 기록을 남겼습니다.”
엄기철이 도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3만 원씩은 깎아 줘요. 어차피 셋 다 똑같잖아요.”
“한 마리 상태를 보고 나머지 둘을 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도경은 진료대에서 내려와 계산대 옆에 섰다.
“처치 비용도 그대로입니다. 추가로 필요한 처치가 있으면 먼저 연락드릴게요.”
엄기철은 지갑 안을 뒤적이다 현금을 꺼냈다. 보라가 돈을 세고 고개를 들었다.
“진찰비 두 마리 값만 주셨어요.”
“나머지는 데려갈 때 합시다.”
“남은 금액은 영수증에 적어 드릴게요.”
보라는 받은 금액과 남은 금액을 나눠 적었다. 엄기철이 영수증을 가져가려 하자 도경은 연락처를 다시 확인했다.
“먹인 것과 물 준 시간도 확인해서 연락 주세요.”
“직원한테 물어볼게요.”
엄기철은 영수증을 접어 지갑에 넣었다. 빈 철창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물그릇에 붙어 있는 돌두꺼비들을 보았다.
“철창도 두고 가요?”
“옮길 때 쓸 수 있는지 더 확인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두세요.”
엄기철이 손을 거뒀다. 유리문을 열자 금목걸이가 셔츠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
문이 닫힌 뒤 보라는 받은 돈을 다시 세지 않았다.
계산대 옆에 영수증 사본을 끼우고 철창 앞으로 돌아왔다. 간식 서랍을 열었다가 안쪽의 작은 빈 상자를 꺼냈다.
“이건 사람 먹는 거 담았던 거라 물그릇으로는 못 쓰겠네요.”
“등록 서류 넣어 주세요. 환자 가까이에 먹는 건 두지 말고요.”
보라는 서류를 상자에 담아 처치실 선반에 올렸다.
도경은 철창 바닥에 남은 조각 하나를 집게로 집었다. 마른 배설물 옆에 붙어 있던 자갈 같은 조각이었다.
젖은 거즈로 문질렀던 등 가장자리가 떠올랐다. 도경은 물그릇으로 가서 그 자리를 확인했다. 들떠 있던 부분 가운데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철창 바닥에서 나온 조각을 작은 봉지에 넣었다. 채취한 자리와 날짜를 적고, 집게를 내려놓기 전에 바닥 모서리를 한 번 더 살폈다.
보라가 물그릇 옆에 낮은 받침을 놓았다. 돌두꺼비가 원하면 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높이였다.
셋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경은 등을 억지로 문지르지 않고 물에 뜬 가루만 거즈로 걷어 냈다. 맑아진 물 아래에 발가락이 보였다. 셋 모두 발을 펴고 바닥을 짚고 있었다.
“나오고 싶으면 여기로 올라오면 돼.”
보라가 받침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눈을 떴다가 감았다.
도경은 서랍을 열었다.
신고서 사본 아래에 노상필의 명함이 있었다. 두 손으로 서류를 건네던 모습과 함께,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도경은 명함을 꺼내 휴대전화 옆에 놓았다.
전화를 걸기 전에 철창 사진과 무게 기록이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피부 상태를 적은 마지막 장을 펴고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보라가 물그릇 옆에서 고개를 들었다.
“원장님, 셋 다 아직 안 나와요.”
도경은 화면에 떠 있는 번호를 눌렀다. 연결음이 들리는 동안에도 돌두꺼비 셋은 물그릇에서 나오지 않았다.
『환자: 돌두꺼비(주먹 크기 · 온순 · 셋 가운데 가장 지친 한 마리)』
『진단: 탈수와 등 피부 손상, 기력 저하』
『처치: 체중과 피부 상태 확인, 수액 공급, 얕은 물에 담그기, 입원 관찰』
(7화 끝)
도경은 병원 유리문 쪽으로 돌아섰다. 안에서 물그릇을 내려놓던 보라가 전화기를 보고 문을 조금 열었다.“네. 몬스터도 진료합니다. 어떤 아이인가요?”“모래게입니다. 먹기만 하면 토해서요.”전화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경은 차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지금도 계속 토하나요?”“먹은 걸 뱉고 나면 가만히 있습니다. 걷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음 끼니에 또 그래요.”“숨 쉬는 모습은 평소와 같고요?”남자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멀어진 목소리로 바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전화가 가까워졌을 때는 말이 조금 빨라져 있었다.“같습니다. 지금 저한테 오네요.”도경은 보라가 열어 준 문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서 메모지를 가져와 모래게라고 적었다.“억지로 먹이지 마세요. 입을 벌려 보려고 손을 넣지도 마시고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려 주세요.”도경은 먹이 종류와 토한 뒤의 움직임을 물었다. 남자는 물을 마시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기 전에 도경은 바로 와야 할 때를 짚어 주었다.남자가 적는 동안 전화 너머로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4월 14일(화), 대기실에서 단단한 것이 바닥을 두드렸다.도경은 씻은 손의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낮은 운반 상자 앞에 축구공만 한 모래게가 서 있었다. 모래색 껍질 아래로 다리가 차례로 움직였다. 양쪽 집게는 몸 앞에 모아져 있었다.상자를 들고 온 남자의 왼팔에는 보조기가 채워져 있었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내려놓은 뒤 몸을 조금 숙였다.“전화드렸던 사람입니다.”&l
도경은 서류를 끝까지 넘긴 뒤 먹이 항목이 있는 쪽을 다시 펼쳤다. 빈칸은 그대로였다.“관리원에 먹이 자료도 부탁해 볼게요. 지금은 수액부터 마저 보고요.”보라는 간식 서랍 위에 올려 둔 봉지를 치웠다. 대신 작은 메모지를 붙이고 이끼곰 먹이라고 적었다.입원 칸에서 담요를 긁는 소리가 났다. 새끼 이끼곰이 앞발을 당겨 턱 밑에 놓고 있었다. 도경은 그 앞에 앉아 수액 줄이 눌리지 않았는지 살폈다.“조금 움직이네요.”“네. 먹을 수 있을 만큼 기운이 돌아오는지 봐야죠.”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다음 관찰 시간을 적었다.■4월 10일(금), 보라가 작은 접시를 들고 입원실에서 나왔다.접시 한쪽에는 얇게 자른 사과가 놓여 있었다. 다른 쪽은 비어 있었고, 그 자리에 물기 묻은 자국이 남았다.“사과 먹어요.”도경은 접시를 내려다봤다.“스스로요?”“처음엔 냄새만 맡더니 앞발로 가져갔어요. 조금만 줬어요.”관리원에서 보내 준 사육 자료에는 사과를 포함한 몇 가지 과일이 적혀 있었다. 앞서 내민 먹이는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달랐다.도경은 입원 칸 앞에 쪼그려 앉았다.이끼곰은 담요 위에 배를 대고 있었다. 턱 아래에 사과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도경이 거즈를 가까이 가져가자 코가 먼저 움직였다.“이건 먹는 거 아니야.”입가를 닦은 뒤 배를 가볍게 살폈다. 호흡은 고르게 이어졌고, 손이 닿자 앞발을 조금 옮겼다. 창고에서처럼 턱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보라가 남은 사과를 담은 그릇을 들어 보였다.“더 주면 먹을 것 같은데요.”“조금 기다려 보죠. 먹고 나서 불편해하지 않는지도 봐야 해요.”보라는 그릇을 이끼곰의 눈에 띄지 않는 선반으로 옮겼다.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도경은 손을 씻고 진료실로 나왔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작은 이동 상자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옆에는 책가방을 멘 여자아이가 붙어 서 있었다.상자는 투명한 덮개에 공기구멍이 나 있었다. 안쪽 천 위로 얇은 날개 하나가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도경은 안쪽에서 들
“이계생물관리원 노상필입니다.”도경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그릇을 보았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턱을 들었다가 옆에 붙어 있는 몸 위에 내려놓았다.“주임님, 느티나무 동물병원 임도경입니다. 오늘 돌두꺼비 셋을 진료했는데, 사육 상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보호자와 등록 번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도경은 선반의 서류를 가져왔다. 엄기철의 이름과 고리 번호를 읽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현재 병원에 있습니까?”“네. 셋 모두 탈수가 있고 등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철창과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찍어 뒀어요.”“사진과 진료 기록을 보내 주십시오. 확인한 사실과 보호자가 한 말은 나눠 적어 주시고요.”도경은 기록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관리 상태가 나빴다고 제가 단정해도 됩니까?”“진료에서 확인하신 상태를 적으시면 됩니다. 사육 환경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아래에 물그릇 없이 내원했다고 적었다. 아침에 물을 줬다는 엄기철의 말은 따로 옮겼다.보라가 물그릇 옆 받침을 바로 놓았다.“돌아가서 또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요.”도경은 마른 배설물이 붙어 있는 바닥 사진을 골랐다. 전송 화면에 사진이 한 장씩 올라가는 동안 보라는 돌두꺼비들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는지 살폈다.■4월 3일(금), 도경이 입원실 물그릇을 갈고 나왔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엄기철이었다.어제 두고 간 철창보다 길쭉한 철창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금목걸이 아래 셔츠 앞섶에 작은 물자국이 났다.“원장, 이것도 좀 봐 줘요.”철창 바닥에 팔 길이의 뱀이 몸을 접고 있었다. 옅은 물결무늬 사이로 젖은 거즈가 보였다. 꼬리 끝에 감아 놓은 거즈였다.도경은 진료대 위를 비웠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철창 문에 끼였어요. 직원이 닫다가.”엄기철이 철창을 내려놓자 뱀이 머리를 들었다.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
보라는 문 옆의 낮은 선반을 비웠다.도경이 큰 담요를 접어 올려놓자 보라가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유리문을 여닫아도 담요가 걸리지 않았다.“이 정도면 바로 꺼낼 수 있겠네요.”“바닥에 닿으면 갈아 주세요.”보라는 선반 위를 한 번 더 닦았다. 도경은 처치실로 돌아가 고정대에 남은 물기를 확인했다. 마른 거즈를 채우고 나니 진료대 아래 서랍이 조금 뻑뻑하게 닫혔다.■3월 31일(화), 문 옆의 담요는 작은 이동장을 받치는 데 쓰였다.점심이 지난 뒤였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이동장을 양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한쪽 소매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이동장 손잡이는 천으로 여러 번 감겨 있었다.“몬스터도 보시는 거 맞죠?”도경은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네. 어떤 아이예요?”“쇠부엉이요. 눈이 좀 이상해요.”이동장 안에서 쇳빛 깃이 움직였다. 팔뚝 길이의 부엉이가 낮은 횃대에 앉아 있었다.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틀어 도경을 보았다.눈 가장자리에 마른 분비물이 조금 붙어 있었다. 오른쪽 눈을 자주 감았다 떴다.“언제부터 그랬어요?”“사흘쯤 됐어요. 밤에 자꾸 벽에 부딪혀요. 전에는 불을 꺼도 잘 날았거든요.”도경은 이동장 아래에 담요를 깔았다. 청년이 손잡이를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떨어뜨릴까 봐 감아 놨어요. 들고 오는데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요.”“잘하셨어요. 지금은 문을 열지 말고 잠깐 볼게요.”도경은 이동장 옆으로 몸을 낮췄다. 부엉이는 횃대를 발톱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날개는 양쪽 모두 접혀 있었고, 숨을 쉴 때 꼬리가 크게 들썩이지는 않았다.“밥은 먹습니까?”“주면 먹어요. 그런데 바닥에 놓으면 못 찾을 때가 있어요.”청년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등록 내용에는 위험 단계 주의가 적혀 있었다. 발목의 등록 고리 번호도 맞았다.“직접 데리고 일하세요?”“저는 D급 헌터고요. 평일에는 체험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해요. 얘 먹이 주고 청소하는 건 제가 합니다.”도경은 접수 칸에 들은 내용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