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돌멩이가 담요를 긁다가 앞발을 문 쪽으로 뻗었다.
도경은 입원 칸 앞에 쪼그려 앉아 물그릇을 옆으로 옮겼다. 거북의 발끝이 그릇을 지나 바닥을 짚었다. 등딱지를 받친 고정대는 기울지 않았고, 거즈에도 새로 번진 피가 없었다.
“이제 나가고 싶어?”
돌멩이는 목을 길게 뺐다. 도경이 등딱지 가장자리에 손을 대자 앞발을 멈췄다.
손끝에 흐린 그림이 떠올랐다. 처음처럼 뜨겁고 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 느낌만으로 집에 보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도경은 손을 떼고 청진기를 댔다. 숨을 들은 뒤 고정대 아래를 살폈다. 아침에 확인한 사진도 다시 펼쳤다.
처치실 밖에서는 보라가 바닥을 닦고 있었다. 유리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아직 덜 마른 자리에 걸렸다.
“돌돌이 보호자 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해 주세요.”
도경은 마른 거즈로 갈아 붙이고 입원 칸을 열었다. 돌멩이는 기다렸다는 듯 앞발을 내놓았다. 몸을 받쳐 주자 뒷발도 천천히 따라왔다.
탁인호가 문 앞에서 멈췄다.
“아, 진짜요? 걸어도 돼요?”
“짧게는요. 고정대 건드리지 않게 봐 주세요.”
인호가 무릎을 꿇었다. 회색 후드의 소매 끝은 말라 있었고, 손에는 돌멩이가 먹던 사료 봉지가 들려 있었다.
돌멩이가 코를 봉지 쪽으로 가져갔다.
“밥도 찾네. 우리 돌멩이.”
인호가 봉지를 내려놓고 거북의 턱 밑을 쓸었다. 도경은 퇴원 안내를 적으며 벽에 걸린 날짜판을 보았다. 3월 18일, 수요일이었다.
“금요일에 다시 볼게요. 그 전에 피가 배어나오거나 숨이 달라지면 바로 연락하시고요.”
“네, 선생님.”
인호는 대답하고도 돌아서지 않았다. 대기실 쪽을 한 번 보고, 손등으로 바지 무릎을 문질렀다.
“그런데 저랑 같이 온 사람이 있어요.”
도경의 펜이 멈췄다.
대기실에서 작은 불빛이 흔들렸다.
■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가 의자 끝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고양이 크기의 여우가 웅크리고 있었다.
붉은 갈색 털 사이로 귀 끝이 드러났다. 꼬리는 배를 감쌌고, 그 끝에서 작은 불씨가 깜박였다. 여자가 손을 옮길 때마다 꼬리를 피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도경은 유리문에 붙은 안내문부터 보았다.
『몬스터는 받지 않습니다』
아래 모서리에 새로 붙인 테이프가 햇빛을 받았다.
“저는 돌멩이만 급하게 본 겁니다.”
인호가 고개를 숙였다.
“알아요. 그런데 얘도 밥을 못 먹는다길래…….”
여자가 일어서려다가 여우를 고쳐 안았다.
“민가영이에요. 탱자가 사흘째 아무것도 안 먹어요. 물은 조금 마시는데, 꼬리도 계속 이래요.”
작은 불씨가 꼬리 털 가까이 낮아졌다. 도경은 가영의 팔 안에 늘어진 앞발을 보았다.
“센터에 연락해 보셨어요?”
“전화는 했어요. 예약을 기다리래요. 급하면 데려오라고 했는데, 제가 오늘은…….”
가영은 말끝을 접고 품 안을 내려다봤다. 여우의 머리가 팔꿈치 아래로 미끄러졌다. 가영이 급히 손을 받쳤다.
“우리는 몬스터 안 봅니다. 제가 불여우 몸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요.”
“입이라도 한번 봐 주시면 안 될까요? 먹이 냄새는 맡아요. 먹으려고도 하는데 자꾸 놓쳐요.”
도경은 가영이 내민 먹이 봉지를 받았다. 봉지 입구가 여러 번 접혀 있었다. 안에는 잘게 부순 먹이가 들어 있었다.
“원래 이렇게 먹였어요?”
“아니요. 큰 건 못 씹는 것 같아서 잘라 줬어요. 그래도 안 먹어요.”
도경은 잠깐 봉지를 내려다보다 진료실 문을 열었다.
“우선 상태만 볼게요. 제가 못 하는 처치면 센터로 가셔야 합니다.”
가영이 곧장 따라왔다. 인호는 돌멩이 옆에 남았다.
진료대에 내려놓자 탱자가 앞발로 서려 했다. 발은 버텼지만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도경이 손을 뻗어 가슴 아래를 받쳤다.
털 안쪽의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괜찮아요, 천천히.”
도경은 손바닥을 세 번 비비고 탱자의 옆구리에 댔다.
흐린 것이 머릿속에 겹쳤다.
손이 닿은 곳 가까이, 배 쪽이 짙었다. 돌멩이를 만졌을 때와 닮았지만 윤곽이 분명하지 않았다. 등인지 배인지도 손을 옮겨 가며 짚어야 했다.
도경은 꼬리의 불씨를 피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배인가.’
■
보라가 진료대 위에 마른 수건을 깔았다. 탱자는 수건 가장자리에 앞발을 얹고 고개를 낮췄다.
“몇 살이에요?”
“두 살이요. 암컷이고요. 등록 고리는 뒷다리에 있어요.”
가영이 털을 살짝 걷었다. 번호가 새겨진 쇠 고리가 나왔다. 보라가 번호를 받아 적었다.
“위험 단계는 주의예요. 저는 F급이고요. 아직 굴에는 많이 못 들어갔어요.”
“탱자는 얼마나 같이 지냈습니까?”
“얼마 안 됐어요. 그래서 제가 뭘 잘못 먹였나 싶어서요.”
도경은 먹이 봉지를 진료대 옆에 놓았다.
“토하거나 설사한 적은요?”
“없어요.”
“변은 봤고요?”
“어제 조금 봤어요. 평소랑 비슷했어요.”
도경은 배를 얕게 만져 보았다. 손을 멈추고 탱자의 얼굴을 살폈다. 귀가 뒤로 눕지도 않았고, 몸을 빼려 하지도 않았다.
조금 다른 자리를 눌러도 같았다.
그림이 짙은데 아파하는 반응은 없었다.
도경은 청진기를 손으로 덥힌 뒤 배에 댔다. 소리를 듣고, 다시 가슴 쪽으로 옮겼다. 탱자는 진료대 위의 먹이 봉지만 보고 있었다.
“배가 아픈 건 아닐 수도 있겠어요.”
가영의 손이 수건 끝을 꼭 잡았다.
“많이 안 좋은 거예요?”
“아직은 몰라요. 처음부터 다시 볼게요.”
도경은 손을 떼었다. 짙은 그림도 사라졌다.
먹이를 못 먹어서 배가 비었을 수 있었다. 눈앞의 여우는 먹이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 봉지가 움직일 때마다 코가 따라갔다.
도경은 작은 먹이 조각을 손바닥에 놓고 탱자 앞에 내밀었다.
탱자가 냄새를 맡았다. 입술을 조금 벌렸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먹이 조각은 도경의 손에 그대로 남았다.
“보라 씨, 진료등 조금 내려 주세요.”
도경이 입술을 들어 올리려 하자 탱자가 처음으로 몸을 뒤로 뺐다. 오른쪽 얼굴에 손이 가까워질 때 더 크게 움직였다.
‘아니다. 다시.’
“가영 씨, 머리 앞쪽에서 불러 주세요.”
“탱자야 괜찮아 괜찮아.”
가영이 진료대 가까이 얼굴을 낮췄다. 도경은 여우가 가영 쪽을 보는 동안 입술 가장자리만 살짝 들어 올렸다.
뒤쪽 잇몸이 붉게 부어 있었다. 어금니 하나는 다른 이빨보다 색이 어두웠다.
도경은 손을 멈췄다.
“여기 아픈 것 같습니다.”
가영이 몸을 숙였다. 도경은 진료등을 조금 비켜 안쪽이 보이게 했다.
“이빨이요?”
“네. 뿌리까지 확인해야 해요.”
“그래서 밥을 못 먹은 거예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배 쪽부터 봤는데, 먹으려다 멈추는 게 먼저였네요.”
도경은 먹이 조각을 받침에 내려놓았다. 배가 비어 있다는 것과 배에 병이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림은 그 차이를 말해 주지 않았다.
■
보라가 장갑을 끼고 진료대 반대편에 섰다.
“탱탱이, 얼굴 좀 보자.”
탱자가 보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영도 따라서 보라를 봤다.
“탱자인데요.”
“네. 탱자.”
보라는 곧바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 탱자의 가슴 아래에 접은 수건을 더 받치고, 턱이 진료대에 부딪히지 않게 손을 댔다.
도경은 작은 거울과 기구를 꺼냈다. 쇠 받침 위에서 기구 끝이 가볍게 부딪혔다.
“갑자기 입을 다물 수 있어요. 손가락 안쪽으로 넣지 마세요.”
“네. 제가 턱 받칠게요.”
보라는 탱자의 머리가 돌아가지 않게 받쳤다. 도경이 입을 조금 열자 탱자의 앞발이 수건을 움켜쥐었다.
“잠깐만. 확인하고 바로 놓을게.”
어금니 바깥쪽에 패인 곳이 있었다. 잇몸은 그 주변부터 부어 있었다. 도경은 오래 붙잡지 않고 입을 놓아 주었다.
탱자가 혀를 움직이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도경은 사진을 찍을 준비를 했다. 몸을 억지로 눕히지 않고 수건으로 받쳐 각도를 잡았다. 보라가 곁에서 고정대를 맞췄다.
가영은 촬영하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문을 닫기 전, 탱자에게 손을 흔들려다가 두 손을 모았다.
사진이 화면에 뜨자 도경은 밝기를 바꾸며 어금니 주변을 살폈다. 겉에서 본 어두운 부분보다 손상된 자리가 깊었다. 뿌리 주변도 다른 이빨과 달랐다.
도경은 가영을 불러 사진을 가리켰다.
“이 이빨은 남겨 두기 어렵겠습니다. 주변 잇몸도 많이 부었고요.”
“뽑아야 해요?”
“네. 다만 불여우는 처음이라 마취부터 확인하고 진행할 겁니다. 오늘 바로 먹을 수 있는지도 처치 뒤에 봐야 해요.”
가영은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탱자의 턱을 만지려던 손을 거두고 등을 쓸었다.
“탱자야 괜찮아 괜찮아.”
탱자의 귀가 한 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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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은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불여우라는 종과 크기, 지금까지 확인한 상태를 말하고 마취할 때 주의할 점을 물었다. 돌아온 설명을 기록한 뒤, 진료실에 비치된 몬스터 진료 자료와 함께 확인했다.
통화를 마치자 보라가 준비한 도구를 하나씩 짚었다. 마취 마스크, 집게, 거즈, 흡입관. 탱자의 체온을 지킬 담요도 진료대 한쪽에 놓여 있었다.
도경은 가영에게 처치 순서와 위험을 설명했다. 가영은 끝까지 듣고 동의서에 이름을 적었다.
“먹이를 잘게 잘라 준 건 잘하셨어요.”
도경이 말했다.
가영의 볼펜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안 먹는다고 더 딱딱한 걸 주지는 않으셨잖아요. 아픈 쪽을 안 쓰려고 했을 수 있어요.”
가영은 서명을 마치고 볼펜 뚜껑을 닫았다.
“배고플 텐데 계속 고개를 돌려서요.”
도경은 먹이 봉지를 가영에게 돌려주었다.
“처치 끝나고 조금씩 먹여 볼게요.”
보라가 가영을 대기실로 안내했다. 돌아와서는 꼬리가 놓일 자리를 비웠다. 불씨 가까이에 거즈나 포장지가 남아 있지 않은지도 살폈다.
마취 마스크 안에서 탱자의 숨이 고르게 들렸다. 도경은 반응과 호흡을 확인하며 기다렸다.
처치를 시작할 때도 보라는 턱을 받쳤다. 입을 벌린 채 무리하게 당기지 않도록 도경의 손이 움직일 자리를 함께 맞췄다.
도경은 부은 잇몸 주변을 살피고 어금니를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집게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서두르지 않고 방향을 바꿨다.
이빨이 빠져나오자 쇠 받침에 작게 소리가 났다.
도경은 뽑은 이빨과 사진을 대조했다. 남은 조각이 없는지 확인한 뒤 상처를 씻고 거즈를 댔다. 보라는 입 안에 고인 것을 걷어 냈다.
마지막으로 잇몸을 정리하고 나서야 도경이 허리를 폈다.
“끝났어요. 깰 때까지 같이 봅시다.”
보라는 탱자의 몸에 담요를 덮었다. 꼬리 끝은 밖으로 빼 두었다.
불씨가 진료대 가장자리를 작게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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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 대기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표말순 할머니가 세탁물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봉지 위로 접힌 남색 수건이 보였다.
“어제 맡긴 것 가져왔어. 우리 복동이가 봉지를 자꾸 밟고 앉아서 털을 다시 떼느라…….”
할머니가 말을 멈췄다. 진료실 문 안쪽의 꼬리를 본 모양이었다.
“여기 몬스터도 봐 줘?”
도경은 탱자의 수액 줄을 정리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대기실 바닥에는 돌멩이가 인호의 신발 옆에 앉아 있었다. 진료대에는 불여우가 누워 있었다. 문에는 여전히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도경은 입을 열었다가 세탁물 봉지를 받았다.
“수건,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유리문과 진료실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봉지 손잡이를 놓았다.
“깨끗한 걸로 위에 넣었어.”
보라가 수건 한 장을 꺼내 가영에게 건넸다.
“무릎에 깔아 주세요. 깨어났다고 바로 세우지는 말고요.”
가영은 의자에 앉아 수건을 펼쳤다. 도경이 탱자를 옮겨 주자 팔로 몸을 받쳤다. 여우의 앞발이 수건에 닿았다.
도경은 부드럽게 만든 먹이를 작은 접시에 담았다. 처음에는 냄새만 맡게 했다. 탱자가 코를 가져오고, 혀끝으로 접시를 한 번 핥았다.
가영의 손이 멎었다.
탱자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핥았다. 도경은 접시를 더 밀지 않고 그 자리에 두었다.
“조금만 먹이고 쉬게 해 주세요.”
“먹었어요.”
가영이 접시를 내려다봤다.
“원장님, 얘 먹었어요.”
“봤어요.”
도경은 빈 주사기 포장을 치우고 새 거즈를 꺼냈다. 가영의 무릎에서 미끄러지려는 수건 끝을 접어 주었다.
인호가 퇴원 안내서를 들고 진료실 문 앞에 섰다.
“선생님, 저 먼저 갈게요. 금요일에 다시 오겠습니다.”
“천천히 데리고 가세요.”
돌멩이가 문턱에 앞발을 올렸다. 인호가 들려고 몸을 숙이자 거북이 먼저 목을 뺐다.
“알았어. 여기까지는 걸어가자.”
보라가 문을 넓게 열었다. 할머니도 세탁물 봉지를 가슴 쪽으로 당겨 길을 비켜 주었다.
■
가영은 처방받은 약과 안내서를 가방에 넣었다. 도경은 다시 보기 날짜를 설명하고, 물이나 먹이를 거부하면 기다리지 말고 연락하라고 덧붙였다.
탱자는 가영의 품에서 진료실을 둘러봤다. 꼬리 끝이 아까보다 자주 움직였다.
가영이 계산대 옆에 놓인 병원 명함을 한 장 집었다.
“이름이 느티나무네요.”
“네.”
“앞에 있는 나무 때문에 지으셨어요?”
도경은 유리문 너머를 봤다. 가지 끝에 남은 물방울이 바람에 떨어졌다.
“할아버지 진료소 앞에 있던 나무예요.”
가영은 명함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더 묻지는 않고 휴대전화 뒤쪽에 명함을 넣었다.
도경은 진찰료 30,000원을 받았다. 검사와 처치가 적힌 내역도 함께 건넸다. 가영은 항목을 하나씩 확인하고 영수증을 안내서 사이에 끼웠다.
“다음엔 받을지 모르겠어요.”
도경이 말했다.
가영은 가방 지퍼를 닫다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는 원래 개하고 고양이를 보는 병원이라서요.”
가영이 유리문의 안내문을 보았다. 품 안의 탱자가 몸을 움직이자 팔을 조금 높여 받쳤다.
“그럼 오기 전에 전화할게요.”
도경은 대답 대신 탱자의 입가를 마지막으로 살폈다. 새로 피가 묻어나지는 않았다.
보라가 문을 열어 주었다.
가영은 문턱을 넘다가 돌아섰다.
“다음 주에 올게요!”
도경의 손에는 아직 가영에게 주려던 먹이 봉지가 들려 있었다. 봉지를 내밀자 가영이 급히 돌아와 받아 들었다.
그때 탱자의 꼬리 끝에서 불씨가 조금 길게 솟았다.
『환자: 불여우 탱자(암컷 · 2살 · 고양이 크기)』
『진단: 어금니 손상과 잇몸 염증, 통증으로 먹지 못함』
『처치: 엑스선 확인, 상한 이빨 뽑기, 부드러운 먹이, 다음 주 다시 보기』
(2화 끝)
도경은 병원 유리문 쪽으로 돌아섰다. 안에서 물그릇을 내려놓던 보라가 전화기를 보고 문을 조금 열었다.“네. 몬스터도 진료합니다. 어떤 아이인가요?”“모래게입니다. 먹기만 하면 토해서요.”전화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경은 차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지금도 계속 토하나요?”“먹은 걸 뱉고 나면 가만히 있습니다. 걷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음 끼니에 또 그래요.”“숨 쉬는 모습은 평소와 같고요?”남자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멀어진 목소리로 바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전화가 가까워졌을 때는 말이 조금 빨라져 있었다.“같습니다. 지금 저한테 오네요.”도경은 보라가 열어 준 문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서 메모지를 가져와 모래게라고 적었다.“억지로 먹이지 마세요. 입을 벌려 보려고 손을 넣지도 마시고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려 주세요.”도경은 먹이 종류와 토한 뒤의 움직임을 물었다. 남자는 물을 마시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기 전에 도경은 바로 와야 할 때를 짚어 주었다.남자가 적는 동안 전화 너머로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4월 14일(화), 대기실에서 단단한 것이 바닥을 두드렸다.도경은 씻은 손의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낮은 운반 상자 앞에 축구공만 한 모래게가 서 있었다. 모래색 껍질 아래로 다리가 차례로 움직였다. 양쪽 집게는 몸 앞에 모아져 있었다.상자를 들고 온 남자의 왼팔에는 보조기가 채워져 있었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내려놓은 뒤 몸을 조금 숙였다.“전화드렸던 사람입니다.”&l
도경은 서류를 끝까지 넘긴 뒤 먹이 항목이 있는 쪽을 다시 펼쳤다. 빈칸은 그대로였다.“관리원에 먹이 자료도 부탁해 볼게요. 지금은 수액부터 마저 보고요.”보라는 간식 서랍 위에 올려 둔 봉지를 치웠다. 대신 작은 메모지를 붙이고 이끼곰 먹이라고 적었다.입원 칸에서 담요를 긁는 소리가 났다. 새끼 이끼곰이 앞발을 당겨 턱 밑에 놓고 있었다. 도경은 그 앞에 앉아 수액 줄이 눌리지 않았는지 살폈다.“조금 움직이네요.”“네. 먹을 수 있을 만큼 기운이 돌아오는지 봐야죠.”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다음 관찰 시간을 적었다.■4월 10일(금), 보라가 작은 접시를 들고 입원실에서 나왔다.접시 한쪽에는 얇게 자른 사과가 놓여 있었다. 다른 쪽은 비어 있었고, 그 자리에 물기 묻은 자국이 남았다.“사과 먹어요.”도경은 접시를 내려다봤다.“스스로요?”“처음엔 냄새만 맡더니 앞발로 가져갔어요. 조금만 줬어요.”관리원에서 보내 준 사육 자료에는 사과를 포함한 몇 가지 과일이 적혀 있었다. 앞서 내민 먹이는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달랐다.도경은 입원 칸 앞에 쪼그려 앉았다.이끼곰은 담요 위에 배를 대고 있었다. 턱 아래에 사과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도경이 거즈를 가까이 가져가자 코가 먼저 움직였다.“이건 먹는 거 아니야.”입가를 닦은 뒤 배를 가볍게 살폈다. 호흡은 고르게 이어졌고, 손이 닿자 앞발을 조금 옮겼다. 창고에서처럼 턱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보라가 남은 사과를 담은 그릇을 들어 보였다.“더 주면 먹을 것 같은데요.”“조금 기다려 보죠. 먹고 나서 불편해하지 않는지도 봐야 해요.”보라는 그릇을 이끼곰의 눈에 띄지 않는 선반으로 옮겼다.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도경은 손을 씻고 진료실로 나왔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작은 이동 상자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옆에는 책가방을 멘 여자아이가 붙어 서 있었다.상자는 투명한 덮개에 공기구멍이 나 있었다. 안쪽 천 위로 얇은 날개 하나가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도경은 안쪽에서 들
“이계생물관리원 노상필입니다.”도경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그릇을 보았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턱을 들었다가 옆에 붙어 있는 몸 위에 내려놓았다.“주임님, 느티나무 동물병원 임도경입니다. 오늘 돌두꺼비 셋을 진료했는데, 사육 상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보호자와 등록 번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도경은 선반의 서류를 가져왔다. 엄기철의 이름과 고리 번호를 읽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현재 병원에 있습니까?”“네. 셋 모두 탈수가 있고 등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철창과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찍어 뒀어요.”“사진과 진료 기록을 보내 주십시오. 확인한 사실과 보호자가 한 말은 나눠 적어 주시고요.”도경은 기록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관리 상태가 나빴다고 제가 단정해도 됩니까?”“진료에서 확인하신 상태를 적으시면 됩니다. 사육 환경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아래에 물그릇 없이 내원했다고 적었다. 아침에 물을 줬다는 엄기철의 말은 따로 옮겼다.보라가 물그릇 옆 받침을 바로 놓았다.“돌아가서 또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요.”도경은 마른 배설물이 붙어 있는 바닥 사진을 골랐다. 전송 화면에 사진이 한 장씩 올라가는 동안 보라는 돌두꺼비들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는지 살폈다.■4월 3일(금), 도경이 입원실 물그릇을 갈고 나왔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엄기철이었다.어제 두고 간 철창보다 길쭉한 철창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금목걸이 아래 셔츠 앞섶에 작은 물자국이 났다.“원장, 이것도 좀 봐 줘요.”철창 바닥에 팔 길이의 뱀이 몸을 접고 있었다. 옅은 물결무늬 사이로 젖은 거즈가 보였다. 꼬리 끝에 감아 놓은 거즈였다.도경은 진료대 위를 비웠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철창 문에 끼였어요. 직원이 닫다가.”엄기철이 철창을 내려놓자 뱀이 머리를 들었다.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
보라는 문 옆의 낮은 선반을 비웠다.도경이 큰 담요를 접어 올려놓자 보라가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유리문을 여닫아도 담요가 걸리지 않았다.“이 정도면 바로 꺼낼 수 있겠네요.”“바닥에 닿으면 갈아 주세요.”보라는 선반 위를 한 번 더 닦았다. 도경은 처치실로 돌아가 고정대에 남은 물기를 확인했다. 마른 거즈를 채우고 나니 진료대 아래 서랍이 조금 뻑뻑하게 닫혔다.■3월 31일(화), 문 옆의 담요는 작은 이동장을 받치는 데 쓰였다.점심이 지난 뒤였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이동장을 양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한쪽 소매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이동장 손잡이는 천으로 여러 번 감겨 있었다.“몬스터도 보시는 거 맞죠?”도경은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네. 어떤 아이예요?”“쇠부엉이요. 눈이 좀 이상해요.”이동장 안에서 쇳빛 깃이 움직였다. 팔뚝 길이의 부엉이가 낮은 횃대에 앉아 있었다.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틀어 도경을 보았다.눈 가장자리에 마른 분비물이 조금 붙어 있었다. 오른쪽 눈을 자주 감았다 떴다.“언제부터 그랬어요?”“사흘쯤 됐어요. 밤에 자꾸 벽에 부딪혀요. 전에는 불을 꺼도 잘 날았거든요.”도경은 이동장 아래에 담요를 깔았다. 청년이 손잡이를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떨어뜨릴까 봐 감아 놨어요. 들고 오는데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요.”“잘하셨어요. 지금은 문을 열지 말고 잠깐 볼게요.”도경은 이동장 옆으로 몸을 낮췄다. 부엉이는 횃대를 발톱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날개는 양쪽 모두 접혀 있었고, 숨을 쉴 때 꼬리가 크게 들썩이지는 않았다.“밥은 먹습니까?”“주면 먹어요. 그런데 바닥에 놓으면 못 찾을 때가 있어요.”청년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등록 내용에는 위험 단계 주의가 적혀 있었다. 발목의 등록 고리 번호도 맞았다.“직접 데리고 일하세요?”“저는 D급 헌터고요. 평일에는 체험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해요. 얘 먹이 주고 청소하는 건 제가 합니다.”도경은 접수 칸에 들은 내용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