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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털이 빠지는 새끼 이끼곰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21:45:44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

“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

“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

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

■

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

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

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

“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

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

“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

“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

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

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

“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

“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

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

“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

“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

“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

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

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

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

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

도경은 안쪽에서 들린 숨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큰 개 크기의 새끼 이끼곰이 철창 바닥에 누워 있었다. 등에는 마른 이끼가 붙어 있었고, 그 사이로 털이 빠진 피부가 드러났다.

철창 앞에 쪼그려 앉자 이끼곰이 눈을 떴다. 머리를 들려다 턱을 다시 바닥에 놓았다.

“이 아이부터 보겠습니다.”

■

엄기철이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원래 낮에 많이 자요. 밤에는 잘 돌아다니고.”

도경은 철창 안으로 손을 넣지 않고 눈과 코부터 살폈다. 숨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불리는 소리에 귀가 움직이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먹은 건 언제입니까?”

“어제요.”

“무엇을 얼마나 먹었어요?”

엄기철이 창고 뒤쪽을 돌아봤다.

“그건 직원이 주니까.”

도경은 왕진 가방을 열었다. 장갑을 끼기 전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철창 문이 열리자 이끼곰의 앞발이 조금 움직였다.

“인호 씨, 가방에서 접은 담요 꺼내 주세요. 문 앞에 펴 주시면 됩니다.”

탁인호가 담요를 바닥에 놓았다.

도경은 이끼곰의 코 가까이에 손등을 잠깐 두었다. 숨이 닿는 것을 확인한 뒤 목 옆과 가슴을 살폈다. 마른 털이 장갑에 붙었다.

입술을 조금 들어 올리자 잇몸이 드러났다. 도경은 색과 마른 정도를 확인하고, 옆구리에 손끝을 가볍게 댔다.

머릿속에 몸의 그림이 떴다.

온몸이 고르게 짙었다. 다친 한 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나뉘는 곳이 없었다. 배 쪽은 다른 곳보다 윤곽이 흐리고 속이 비어 보였다.

‘물이 모자란 건가.’

그림만으로는 거기까지였다.

도경은 손을 떼고 청진기를 꺼냈다. 쇠 부분을 손바닥으로 덥힌 뒤 가슴에 댔다. 조금씩 위치를 바꾸며 숨소리를 들었다. 배를 살필 때는 깊게 누르지 않았다.

뼈가 손끝에 쉽게 잡혔다.

“언제부터 털이 빠졌습니까?”

“이끼가 좀 말라서 그래요. 물 뿌려 주면 다시 살아나요.”

도경은 등의 마른 부분을 진찰등으로 비췄다. 이끼만 마른 것이 아니었다. 아래 피부에는 쓸린 자국이 있었고, 빠진 털이 철창 모서리에 뭉쳐 있었다.

“겉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해결할 상태는 아닙니다.”

도경은 가방에서 체온계와 채혈 도구를 꺼냈다.

물이 부족한 것만 생각했지만, 배와 옆구리를 확인하니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도 살펴야 했다. 처음 보는 종이라 비교할 자료가 적었다. 도경은 단정하는 대신 확인한 것부터 기록했다.

관리원 직원이 이끼곰의 몸을 받쳐 주었다. 도경은 앞다리의 털을 조심스럽게 나누고 소독했다.

바늘이 들어갈 때 앞발이 움찔했다. 도경은 손을 멈추고 발을 놓을 공간부터 만들었다.

“괜찮아요, 천천히.”

작은 검사기에 피를 넣은 뒤 담요를 등에 덮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맥박과 호흡을 다시 확인했다.

갈비뼈가 드러난 몸, 마른 잇몸, 낮은 체온이 각각 기록지에 적혔다. 검사 결과도 탈수와 먹이 부족을 의심한 쪽에 맞았다.

도경은 처음 적은 탈수 옆에 영양 부족과 탈진을 덧붙였다.

“수액을 시작하겠습니다. 몸을 덥히면서 반응을 봐야 해요.”

“병원까지 데려갈 정도예요?”

엄기철의 물음에 도경은 이끼곰의 턱 아래를 받쳤다. 담요 쪽으로 머리를 조금 옮겨 줘도 앞발에 힘을 주지 못했다.

“혼자 일어나지 못합니다.”

■

탁인호가 수액 병을 들었다.

도경은 새끼 이끼곰의 앞다리에 가는 관을 넣고 테이프로 고정했다. 수액 줄 안에 공기가 남지 않았는지 살핀 뒤 연결했다.

줄이 철창 모서리에 걸리지 않도록 담요 위로 빼냈다. 관리원 직원은 담요로 몸을 받쳐 문 쪽으로 조금씩 옮겼다.

도경은 관을 넣은 다리를 지켜보며 함께 움직였다.

바닥에 놓인 담요로 옮겨지자 이끼곰의 등이 철창 천장에서 떨어졌다. 안에 있을 때는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했다.

뒤에서 줄자가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노상필이 철창의 가로와 높이를 재고 있었다. 다른 직원은 빈 물그릇과 바닥을 찍었다. 사진마다 위치를 적은 작은 표지를 함께 놓았다.

엄기철이 다가왔다.

“행사 다닐 때 쓰는 거라 그래요. 계속 저기 두는 게 아니에요.”

“행사에 가지 않는 동안 어디서 생활합니까?”

노상필이 물었다.

엄기철은 창고를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여기서 쉬죠. 밖에 풀어 놓으면 물건을 다 엎어요.”

노상필은 대답을 기록하고 먹이 그릇도 확인했다.

도경은 수액이 떨어지는 속도를 보았다. 이끼곰의 앞발 끝이 차가워 마른 수건으로 감쌌다. 등의 피부 손상 부위는 담요에 쓸리지 않게 얇은 거즈로 덮었다.

가영이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저희가 토요일에 본 아이예요.”

도경이 고개를 들자 가영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사진 속 이끼곰은 철창 한쪽에 붙어 앉아 있었다. 창살 사이로 행사장 바닥이 보였다. 아이가 손을 넣으려는 사진에서는 이끼곰이 몸을 뒤로 당기고 있었다.

쇠부엉이 보호자가 말했던, 철창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다음 사진에도 같은 물그릇이 보였다. 가영이 화면을 확대했다. 그릇은 비어 있었고, 철창 한쪽에는 빠진 털이 붙어 있었다.

“오전에 봤을 때랑 돌아오기 전에 봤을 때가 똑같았어요. 먹이 주는 것도 못 봤고요. 계속 본 건 아니라서, 아예 안 줬는지는 모르겠어요.”

“보신 시간과 확인한 내용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노상필이 가까이 와 사진을 받았다.

가영은 서류 봉투에서 출력한 사진도 꺼냈다. 한 장을 넘기다 손끝이 미끄러졌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손이 떨려서 흔들렸어요.”

“증거로 충분합니다. 원본도 보내 주십시오.”

노상필이 사진 모서리를 맞춰 서류철에 넣었다.

엄기철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 손님이 얼마나 많았는데. 잠깐 찍은 걸로 뭘 알아요?”

탁인호가 수액 병을 든 채 몸을 돌렸다.

“우리 형님이 다 적어 놨어요!”

말을 끝낸 탁인호가 빈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도경은 수액 줄이 당겨진 것을 보고 병을 조금 낮춰 달라고 손짓했다. 탁인호가 얼른 몸을 돌려 도경 옆에 다시 섰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병은 이쪽에 들어 주세요.”

도경은 연결 부위를 확인했다. 관은 제자리에 있었고, 담요 위의 앞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

노상필은 도경이 가져온 기록을 철창 위에 펼쳤다.

돌두꺼비 셋의 체중과 피부 사진, 가로 40센티미터인 철창 사진이 차례로 놓였다. 물결뱀의 꼬리 상처와 몸통의 오래된 멍은 따로 표시돼 있었다.

“이 상태로 행사에 다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까?”

엄기철이 종이를 가리켰다.

“두꺼비는 치료하고 데려가려고 했죠. 그래서 병원에 간 거잖아요.”

“진료를 맡긴 것은 확인했습니다. 치료 전 사육 상태와 이후 관리 계획은 별도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노상필은 관리원 직원이 찍은 사진을 나란히 놓았다. 빈 물그릇과 좁은 철창, 바닥에 누운 이끼곰이 이어졌다.

도경은 청진기를 다시 가슴에 댔다. 숨소리를 듣고 기록지에 시간을 적었다. 이끼곰이 머리를 조금 들었다가 담요 위에 내려놓았다.

“현재는 이동 중에도 수액과 보온이 필요합니다.”

도경의 말에 노상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 지연 시 상태가 나빠질 우려도 기록해 주십시오.”

“네. 확인한 범위에서 적겠습니다.”

엄기철이 두 사람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내가 치료비 내면 되잖아요. 데리고 가서 고쳐 줘요. 다음 행사는 안 보내면 되고.”

노상필은 종이를 거둬 서류철에 끼웠다.

“반복된 사육 관리 위반과 개체 손상이 확인됐습니다. 원칙대로 영업정지 절차를 진행하고, 전 개체를 압수하겠습니다.”

“전부요?”

엄기철이 철창 쪽으로 돌아섰다.

“저게 다 얼마짜린데요!”

“개체별 상태와 등록 서류를 대조한 뒤 인계 목록을 드리겠습니다. 처분 사유와 이의 절차도 서면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노상필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엄기철이 다시 말하려다 진료 기록 위에 놓인 사진을 보았다. 손을 뻗었지만 노상필이 서류철을 닫자 거뒀다.

“그럼 병원에 있는 것도…….”

“돌두꺼비 셋과 물결뱀도 포함입니다.”

도경은 새 거즈로 이끼곰의 입가를 닦았다. 거즈 끝을 붙잡으려던 앞발이 담요 위로 미끄러졌다.

■

직원들이 등록 고리를 대조하는 동안, 노상필은 창고 구석의 책상 앞으로 갔다.

“입고 장부는 어디 있습니까?”

엄기철이 책상 아래 상자를 가리켰다.

노상필은 서류 묶음을 꺼내 첫 장을 펼쳤다. 등록 번호를 찾던 직원이 옆으로 다가와 별도의 명단과 맞춰 보았다.

“이쪽 개체들은 반입 신고 내역이 없습니다.”

노상필이 엄기철을 보았다.

“이 명단의 반입 서류도 제출해 주십시오.”

“그건 갖다준 사람한테 받아야죠.”

“현재 보관 중인 자료는 확보하겠습니다.”

노상필이 명단을 투명 봉투에 넣었다. 다음 장을 넘길 때 도경에게도 표지가 보였다.

『던전푸드 이끼 가루 사료 입고 장부』

맨 윗줄 납품처 칸에는 사료 회사가 아니라 낯선 채집 업체 이름이 찍혀 있었다. 노상필이 그 줄에 손가락을 댔다가 떼었다.

도경은 이끼곰의 몸을 덮은 담요를 바로 놓고 고개를 들었다.

“먹이 종류와 급여 기록도 진료에 필요합니다. 확인할 수 있을까요?”

“유통 자료와 사육 기록을 나눠서 확인하겠습니다. 필요한 내용은 전달하겠습니다.”

노상필은 서류를 섞지 않고 각각 봉투에 담았다. 봉투 겉에 발견 장소를 적고 직원에게 사진을 남기도록 했다.

도경은 그동안 이끼곰의 호흡과 앞다리의 고정 상태를 다시 살폈다.

■

이동장 앞문이 열렸다.

안에는 마른 담요가 깔려 있었다. 도경과 직원이 이끼곰을 받치고, 탁인호가 수액 병을 함께 옮겼다. 몸이 완전히 들어간 뒤에도 문에 수액 줄이 끼이지 않는지 확인했다.

노상필이 통화를 마치고 다가왔다.

“보호소에 빈 칸이 부족합니다. 치료가 필요한 개체부터 분리하면 자리를 더 마련해야 합니다.”

도경은 이동장 안을 보았다.

이끼곰이 턱을 담요에 댄 채 눈을 뜨고 있었다. 지금은 옮기는 것보다 상태를 지켜보는 일이 먼저였다.

“이 아이는 병원에서 보겠습니다. 돌두꺼비 셋도 회복 중이니 그대로 두는 게 좋겠어요.”

“임시 보호로 처리하겠습니다. 치료비와 보호 비용은 별도 기록을 부탁드립니다.”

“기간과 인계 담당자도 적어 주세요.”

노상필은 서류를 꺼내 두 손으로 건넸다.

물결뱀은 상처 관찰이 가능한 보호소 처치 칸으로 인계하기로 했다. 도경은 드레싱 관리와 재진 내용을 적어 직원에게 주었다.

병원으로 돌아오기 전 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 입원 칸 하나 비워 주세요. 새끼 이끼곰을 데려갑니다.”

“이끼곰이요?”

“큰 개 크기예요. 담요 깔고 수액 걸이도 준비해 주세요.”

전화 너머에서 서랍을 여는 소리가 났다.

“그거 제가 할게요.”

■

병원 문을 열자 보라가 이동장을 보더니 계산대 앞 의자를 옆으로 밀었다.

이끼곰을 입원 칸으로 옮긴 뒤 도경은 수액 병을 걸이에 걸었다. 앞다리의 테이프를 살피고 호흡을 확인했다.

보라는 마른 이끼 조각이 떨어진 담요를 바꿨다. 젖은 수건을 들었다가 피부의 거즈를 보고 도경에게 물었다.

“등을 닦아 줘도 돼요?”

“오늘은 상처 주변만요. 이끼를 잡아당기지 말고, 털도 그대로 두세요.”

도경은 입원 칸 문에 상태 기록지를 끼웠다.

옆의 세 칸에는 돌두꺼비가 한 마리씩 들어가 있었다. 서로 볼 수 있도록 가림막을 치우고 물그릇을 문 가까이 놓았다. 가운데 돌두꺼비가 옆 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비어 있던 입원 칸이 처음으로 다 찼다.

탁인호는 왕진 가방을 내려놓고 병원 수건을 접었다. 가영은 압수 개체 인계서 사본을 계산대에 놓은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행사장으로 안 돌아가는 거죠?”

도경은 서류의 임시 보호란을 확인했다.

“네. 다음에 어디로 가는지도 관리원에서 확인할 겁니다.”

가영은 봉투에 남아 있던 사진을 다시 넣었다. 탁인호가 빈 이동장을 들고 문 쪽으로 갔다.

두 사람이 나간 뒤 도경은 이끼곰의 상태를 기록했다. 창고에서 적은 첫 짐작을 지우지 않고, 검사와 몸 상태를 확인한 내용을 아래에 붙였다.

보라는 수액 줄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꺾인 곳이 없는지 살폈다. 이끼곰은 눈을 감았다가 보라의 손이 가까워지자 다시 떴다.

“먹이는 조금 뒤에 상태 보고 줄까요?”

“네. 억지로 먹이지는 말고요.”

보라가 진료대 밑의 간식 서랍을 열었다.

봉지 몇 개를 꺼내 뒷면을 보던 손이 멈췄다. 보라는 이끼곰 쪽을 한 번 보고, 꺼낸 봉지를 다시 넣었다.

도경도 가방에서 가져온 등록 서류를 펼쳤다. 종 이름과 크기, 위험 단계는 적혀 있었지만 먹이 항목은 비어 있었다.

보라가 서랍을 닫았다.

“원장님, 이끼곰은 뭐 먹어요?”

도경은 빈 먹이 항목에 손가락을 얹은 채 서류를 다시 넘겼다.

『환자: 새끼 이끼곰(큰 개 크기 · 주의)』

『진단: 탈수와 영양 부족에 따른 탈진, 등 피부 손상과 털 빠짐』

『처치: 신체 확인과 피 검사, 수액과 보온, 피부 상처 보호, 입원 관찰』

(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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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도경은 안쪽에서 들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8화. 꼬리가 잘린 물결뱀

    “이계생물관리원 노상필입니다.”도경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그릇을 보았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턱을 들었다가 옆에 붙어 있는 몸 위에 내려놓았다.“주임님, 느티나무 동물병원 임도경입니다. 오늘 돌두꺼비 셋을 진료했는데, 사육 상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보호자와 등록 번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도경은 선반의 서류를 가져왔다. 엄기철의 이름과 고리 번호를 읽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현재 병원에 있습니까?”“네. 셋 모두 탈수가 있고 등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철창과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찍어 뒀어요.”“사진과 진료 기록을 보내 주십시오. 확인한 사실과 보호자가 한 말은 나눠 적어 주시고요.”도경은 기록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관리 상태가 나빴다고 제가 단정해도 됩니까?”“진료에서 확인하신 상태를 적으시면 됩니다. 사육 환경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아래에 물그릇 없이 내원했다고 적었다. 아침에 물을 줬다는 엄기철의 말은 따로 옮겼다.보라가 물그릇 옆 받침을 바로 놓았다.“돌아가서 또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요.”도경은 마른 배설물이 붙어 있는 바닥 사진을 골랐다. 전송 화면에 사진이 한 장씩 올라가는 동안 보라는 돌두꺼비들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는지 살폈다.■4월 3일(금), 도경이 입원실 물그릇을 갈고 나왔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엄기철이었다.어제 두고 간 철창보다 길쭉한 철창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금목걸이 아래 셔츠 앞섶에 작은 물자국이 났다.“원장, 이것도 좀 봐 줘요.”철창 바닥에 팔 길이의 뱀이 몸을 접고 있었다. 옅은 물결무늬 사이로 젖은 거즈가 보였다. 꼬리 끝에 감아 놓은 거즈였다.도경은 진료대 위를 비웠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철창 문에 끼였어요. 직원이 닫다가.”엄기철이 철창을 내려놓자 뱀이 머리를 들었다.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7화. 철창에 갇혀 온 돌두꺼비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6화. 눈이 흐려진 쇠부엉이

    보라는 문 옆의 낮은 선반을 비웠다.도경이 큰 담요를 접어 올려놓자 보라가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유리문을 여닫아도 담요가 걸리지 않았다.“이 정도면 바로 꺼낼 수 있겠네요.”“바닥에 닿으면 갈아 주세요.”보라는 선반 위를 한 번 더 닦았다. 도경은 처치실로 돌아가 고정대에 남은 물기를 확인했다. 마른 거즈를 채우고 나니 진료대 아래 서랍이 조금 뻑뻑하게 닫혔다.■3월 31일(화), 문 옆의 담요는 작은 이동장을 받치는 데 쓰였다.점심이 지난 뒤였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이동장을 양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한쪽 소매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이동장 손잡이는 천으로 여러 번 감겨 있었다.“몬스터도 보시는 거 맞죠?”도경은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네. 어떤 아이예요?”“쇠부엉이요. 눈이 좀 이상해요.”이동장 안에서 쇳빛 깃이 움직였다. 팔뚝 길이의 부엉이가 낮은 횃대에 앉아 있었다.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틀어 도경을 보았다.눈 가장자리에 마른 분비물이 조금 붙어 있었다. 오른쪽 눈을 자주 감았다 떴다.“언제부터 그랬어요?”“사흘쯤 됐어요. 밤에 자꾸 벽에 부딪혀요. 전에는 불을 꺼도 잘 날았거든요.”도경은 이동장 아래에 담요를 깔았다. 청년이 손잡이를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떨어뜨릴까 봐 감아 놨어요. 들고 오는데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요.”“잘하셨어요. 지금은 문을 열지 말고 잠깐 볼게요.”도경은 이동장 옆으로 몸을 낮췄다. 부엉이는 횃대를 발톱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날개는 양쪽 모두 접혀 있었고, 숨을 쉴 때 꼬리가 크게 들썩이지는 않았다.“밥은 먹습니까?”“주면 먹어요. 그런데 바닥에 놓으면 못 찾을 때가 있어요.”청년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등록 내용에는 위험 단계 주의가 적혀 있었다. 발목의 등록 고리 번호도 맞았다.“직접 데리고 일하세요?”“저는 D급 헌터고요. 평일에는 체험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해요. 얘 먹이 주고 청소하는 건 제가 합니다.”도경은 접수 칸에 들은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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