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렇소."
겸 또한 그녀를 향해 정면으로 시선을 내리꽂았다. “여기 보다 높으신 분?” 턱으로 관리를 가리키며 묻는 연화를 향해 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네요. 여기! 여기 좀 보십시오." 연화는 꼬깃해진 벽보를 겸 앞에 들이밀었다. "여기 누. 구. 나. 무술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소만?" "헌데 왜 저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합니까?" 겸은 잠시 물끄러미 그녀를 관찰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뭐라 하셨소? 그대가 대회에 참가한다 하였소?" "예. 그렇습니다." 자신의 귀와 눈은 멀쩡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퍽 곤란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찬찬히 그녀를 다시 살펴봤다. 허리에 찬 검과, 그 검을 쥔 손에는 물집이 여러 번 터진 후 자리 잡은 굳은살이 선명하게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여인인지 사내인지 구분이 잘 되진 않았지만 가까이 보니 까랑한 목소리며, 주근깨에 살짝 그을리긴 했지만 맑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얼굴의 곡선을 보니 여인임이 확실해 보였다. 물끄러미 자신을 관찰하는 그의 시선이 불쾌한 듯 연화가 따져 물었다. "어찌 사람을 그리 보십니까?" "아니, 그대는... 여인이 아니오?" "그런데요?" "그런데? 여인의 몸으로 무술대회에 참가한다는 게요?" "네." "허!" 탄식과도 같은 헛웃음에 영도와 눈이 마주쳤다. 영도도 자신과 별반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이가 나가 말문이 막힌 겸을 대신해 영도가 말을 이어갔다. "이보시오 낭자. 여느 집 규수 같으신데.." "그런데요? 뭐요!" ‘성질 머리하고는… 쯧.’ 한대 쥐어 막고 깊은 깊은 빡침을 누르며 짐짓 선비답게 그녀를 대하고자 노력했지만, 입에서는 툭- 비꼬는 말이 튀어나왔다. "여인이 가만히 집에서 바느질이나 할 것이지, 무슨 무술대회에 참가한다는 겁니까? 방해하지 마시고 이만 물러가십시오." 바락바락 날카롭게 쏘이 붙이던 말 대신, 불같은 눈빛이 그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씩-씩- 거친 숨을 쉬며 위협적으로 영도의 눈앞까지 성큼 다가왔다."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바느질이나? 바느질이 얼마나 힘든데!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더 힘든데!!”
“어!! 어!! 이보시오!” 영도는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그녀로부터 뒷걸음질 쳤다. “뭐요! 바느질도 잘하니까 그건 그쪽이 걱정하실 일이 아니고요! 지금 하신 발언들, 여인을 무시한 발언이라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기세 좋게 달려드는 그녀의 발칙한 행동에 영도는 한발 더 뒷걸음질 쳤다. "그렇다면 어쩔 것이요?" 금방이라도 터질 듯 영도를 매섭게 노려 보는 연화를 겸은 그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다음 행동이 궁금했다. 그리고 영도는 또 어떻게 맞받아 칠까? 영 져줄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연화가 영도를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턱으로 허리춤에 찬 칼을 가리켰다.
"거! 옆구리에 찬 게 칼이 맞습니까?" "그렇소만" "뽑으십시오. 칼!" "뭐? 뭐라 하셨소? 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 아닌가. 자신이 감히 누구인지 알고. 알고 나면 민망할 텐데? 이리 까불지는 못할 것인데? 확! 정체를 밝혀버려? “참내.” 영도는 후- 심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말마다나 왕세자의 호위무사가 이깟 여인의 도발에 흥분해서 칼을 뽑는다니. 사내대장부로서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품위 있고 점잖게 그녀를 돌려보내야지. "그만하고 돌아가십시오. 낭자." 이내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겸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만 가시지요." "어... 그래... 이만 가봐야겠지?" 이 상황이 재미있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영도의 말대로 여기서 먼저 돌아서는 것이 최선인 듯싶었다. 할 일이 태산이니. 그들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연화는 칼을 뽑아 영도의 앞을 막아섰다. 연화는 모욕감으로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영도는 본능적으로 겸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뽑아 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무슨 짓이요! “ 화가 난 영도는 그녀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코를 납작하게 해 드리지요." 두 사람이 칼을 맞대자 서슬 퍼런 긴장감에 주변이 얼어붙었다. 여기서 그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홍문뿐이었다. "연화야! 제발 그만하거라! 어쩌려고 그러느냐?" "오라버니도 들으셨잖아요? 이런 굴욕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본때를 보여드려야지요." 발길을 돌리려던 겸은 스-윽 한발 떨어져 다시 그들을 관람했다. ‘역시, 그냥 돌아가기에 너무 아쉽지.’ 속으로 킥킥 웃는 겸과는 달리 영도는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세자를 보호해야 하는 소임을 가진 영도로서는 이 상황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낭자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아시오?" "예! 압니다. 그 잘나신 사내의 기를 꺾어 놓으려고 하는 겁니다!" 우습기 짝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단박에 칼을 날려버리는 것이 일도 아니련만, 여인을 상대로 면이 서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절대 먼저 물러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해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계집을 이겨 뭐 얼마나 대단한 칭송을 받으려고. 영도는 눈에 힘을 풀며 스릉- 천천히 칼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칼을 거두며 아이를 달래듯, 다정한 어른인 척 목소리를 한껏 내리 깔았다. "하.. 알았소. 미안하오. 내가 실언을 했으니 이만 검을 내려놓으시오. 계속 이러면 정말 큰일 납니다!" "사과를 하시는 겁니까? 마시는 겁니까? 왜요? 겁이 나시나 봅니다?" "하!" 정말이지 겁대가리를 상실한, 그야말로 미친 여자 같았다. 자신의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망나니처럼 날뛰는 모습을 보자니 화를 넘어서 기가 찼다. 미친 여인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던가.쿵쿵쿵- “또 밥을 다- 남기셨네! 이러다 정말 죽는다니까요!” 문 앞의 밥상 앞에 앉아 막둥어멈이 큰 소리를 쳤다. 누군가가 꼭 들으라는 듯이. “안 먹을 테니 헛수고 말고 가져가!” 방 안쪽에서도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그들의 바람이 통하기라고 한 듯, 홍양이 연화의 방 앞으로 걸어왔다. 그 모습에 막둥어멈이 자리를 비켜서자, 홍양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자물쇠를 풀었다. 덜컹-문을 잡아당겼지만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고 있었다. “이게 왜 이러는 것이냐?” 당황한 홍양이 덜컹-덜컹- 문을 여러 번 잡아당겼지만 열리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연화야!” “저를 못 나가게 하셨으니 아버님도 못 들어오십니다!” “이 녀석이! 당장 문 열지 못하겠느냐?” “싫습니다. 나오지 말라 하실 때는 언제고요!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다 제 맘입니다.” 홍양은 문을 열기를 포기하고 머리를 감싸 안았다. “기어이 이 늙은 아비를 이겨먹으려는 것이냐?” “이기긴요? 결국 아버님 뜻대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나보고 보고만 있으라는 것이냐? 빨리 이 문 열지 못해!” “싫습니다! 칼을 쥐어 주신 것도, 무예를 가르쳐 주신 것도 아버님이 아닙니까? 근데 이제와 아무것도 하지 말라 하시니, 억울합니다.” “이 녀석아! 당장 문 열지 못해? 그러다 정말 굶어 죽을 셈이야? 이 아비 죽는 꼴을 볼 테냐?” “저보다 오래 사실 거예요. 이 원통함에 소녀가 죽을 지경이랍니다.” “이… 이…” 한마디도 지지 않는 딸의 행동에 기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금지옥엽 오냐오냐 키운 제 탓이지… 이제는 달랠 차례인가? “연화야, 그러지 말고 일단 문 좀 열거라. 아비랑 얘기를 좀 하자꾸나.”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녀석아!” 홍문이 연화의 방 앞에서 낑낑대고 있을 때, 셋째 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버님! 형님께서 무술대회에서 장원이 되셨습니
"이제 그만하시오. 내가 실언을 했다 하지 않았소?""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연화는 순식간에 영도를 향해 달려들었다."연화야!"놀란 홍문이 그녀를 향해 소리쳤지만 이미 칼은 영도에게 겨눠지고 있었다. 영도는 재빠르게 다시 칼을 뽑아 그녀의 칼을 막아냈다.챙!"받아주는 건 여기까지요. 이제 그만하시오. 더는 나도 참지 않겠소!"영도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르고 있었다.당최 말이 통하지 않는 여인이다. 무슨 여자가 이리도 드센지…그렇다고 해도 여인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도, 모양이 빠지지 않는가?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그녀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 난처함이 묻어났다."화가 많이 나신 모양입니다?"연화는 더욱 영도를 도발했다."제발 그만하면 안돼겠소?"그런 영도를 비웃듯 연화가 그를 향해 다시 칼을 휘둘렸다.그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이제 이판사판이다. 끝을 보지 않는 이상 이 여인은 결코 물러날 것 같지 않았다.‘그래. 한수 가르쳐주고 빨리 끝내 버리자.’하지만 그건 영도의 착각이었다.영도가 칼을 휘두르는 대로 막아내자,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어디까지 공격을 하고 어디까지 방어를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끝나지 않는 지리한 대련이 계속되자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겸이 그들 사이에 나섰다."이제 그만! 그만하시오!"단호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에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칼을 멈칫했다."그대의 실력이 대단한 걸 인정하오. 그러니 이제 그만하는 것이 좋겠소."소리를 지르지도, 무력을 행사하지도 않았지만 그에게는 사람을 장악하는 힘이 있었다. 연화는 저도 모르게 검을 슬며시 내려놓고 말았다.어쩌면 적절할 때 그가 멈추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사실 연화는 영도와의 대결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영도는 그간 그녀가 겨루어 본 누구보다 강했다.최근의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었다.아니, 사실 이 사내가 강도를 조절하며 자신을 받아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그렇소."겸 또한 그녀를 향해 정면으로 시선을 내리꽂았다.“여기 보다 높으신 분?”턱으로 관리를 가리키며 묻는 연화를 향해 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네요. 여기! 여기 좀 보십시오."연화는 꼬깃해진 벽보를 겸 앞에 들이밀었다."여기 누. 구. 나. 무술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그렇소만?""헌데 왜 저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합니까?"겸은 잠시 물끄러미 그녀를 관찰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데…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뭐라 하셨소? 그대가 대회에 참가한다 하였소?""예. 그렇습니다."자신의 귀와 눈은 멀쩡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퍽 곤란했다.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찬찬히 그녀를 다시 살펴봤다. 허리에 찬 검과, 그 검을 쥔 손에는 물집이 여러 번 터진 후 자리 잡은 굳은살이 선명하게 보였다.멀리서 봤을 때는 여인인지 사내인지 구분이 잘 되진 않았지만 가까이 보니 까랑한 목소리며, 주근깨에 살짝 그을리긴 했지만 맑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얼굴의 곡선을 보니 여인임이 확실해 보였다.물끄러미 자신을 관찰하는 그의 시선이 불쾌한 듯 연화가 따져 물었다."어찌 사람을 그리 보십니까?""아니, 그대는... 여인이 아니오?""그런데요?""그런데? 여인의 몸으로 무술대회에 참가한다는 게요?""네.""허!"탄식과도 같은 헛웃음에 영도와 눈이 마주쳤다.영도도 자신과 별반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어이가 나가 말문이 막힌 겸을 대신해 영도가 말을 이어갔다."이보시오 낭자. 여느 집 규수 같으신데..""그런데요? 뭐요!"‘성질 머리하고는… 쯧.’한대 쥐어 막고 깊은 깊은 빡침을 누르며 짐짓 선비답게 그녀를 대하고자 노력했지만, 입에서는 툭- 비꼬는 말이 튀어나왔다."여인이 가만히 집에서 바느질이나 할 것이지, 무슨 무술대회에 참가한다는 겁니까? 방해하지 마시고 이만 물러가십
이곳은 고립된 전장이며, 그의 곁에 선 유일한 여인이기에 그의 사랑을 확신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그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 다짐했으며, 신실한 약조를 했으니까.그를 위해 무엇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기에 망설이지 않았다.겸은 자신의 팔에 연화를 뉘었다. 그리고 팔을 감아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득 안았다.숨을 고르는 그들의 몸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겸은 담요를 끌어와 그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았지만 체온이 곧 떨어질 것이다.“춥지 않으냐?”연화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저으며 더욱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곧 사라질 것을 아는 것처럼. 전쟁이, 시한부 같은 사랑이 점차 끝나가고 있었다.깊게, 긴밀하게 밀착된 연인의 비밀스러운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고된 전투와 긴장감 흐르는 전장에서도 서로가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아니, 이 지옥 같은 전쟁도 즐길 수 있었으며, 단언컨대 행복했노라 말할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거친 숨이 잦아들고 쌔근쌔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연화는 담요를 끌어 그의 몸을 덮었다.스르르. 밀려오는 피로에 눈이 감겼다. ‘꿈에서, 다시 만나요. 저하.’눈을 감자 처음, 그를 만났던 그날의 일들이 꿈속에서 재생되었다.***“아바마마. 대회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시점에서 대회를 중단하라시면...”세자 이겸은 애가 타 있었다. 그러나 왕의 표정은 무심했고, 약간의 경멸이 섞여있었다.“네 꿍꿍이가 무엇이냐?”“꿍꿍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요?”“무술대회를 빌미 삼아 군사력을 틀어쥐겠다는 속셈 아니냐?”“그렇지 않습니다. 실력 있는 무사들이 양반가의 사병이 되는 것을 막고왕실 군사력의 질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그래야만 점점 세가 커지는 오랑캐와 왜에 맞설 수…”“시끄럽다! 그것은 장수들이 할 일이다. ”벼락같은 호통이 내려졌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겸은 그 소리에 순간, 몸
끝없이 펼쳐진 혹한의 대지위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사방은 온통 적과 아군들이 뒤섞여 생사의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피맺힌 절규와 고통에 찬 비명, 피로 점철된 전쟁의 한복판에 한 여인이 있다. 한때는 명문가의 서녀이며, 고명딸로 철없이 해맑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것은, 더 이상 그녀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날렵하고 강인한 무사. 홍연. 이것이 지금의 그녀이다.어느덧 적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이자, 제거 대상 1순위가 되어있었다. 늘 그렇듯 적들은 그녀와 그녀의 주군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고 있었다. “으아!” 적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기합소리와 함께 휘두른 칼날에 적들이 하나 둘, 베어져 나갔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땀인지 혈인지 모를 것이 이마를 지나 눈 속까지 흘러들었다. 무심히 그것을 닦아 내자 소매가 빨갛게 젖어들지만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사치이자 직무유기이기에, 연화는 연인이자 그녀 자신의 주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촉을 막아야 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촉이 연화의 칼에 튕기며, 그녀의 어깨를 살짝 베고 지나갔다. 고통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자신을 지나친 그 화살이 그에게 닿았을까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저하!" "나는 괜찮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엄호하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인해전술로 몰아붙이던 적들의 수는 눈에 뜨일 정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세자 이겸은, 그들이 일으킨 명분 없는 전쟁에 결코 물러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조선을 짓밟고 능욕하고 유린한 대가를 꼭 치르게 하리라 다짐했다. 전투를 거듭할수록, 세자 이겸은 점점 강인해져 갔다. 더는, 동궁전에 처박혀 왕과 중전, 대신들에게 주눅 들어 웅크리고 있던 나약한 세자가 아니다. 이 전장은 그에게 기회였으며 성장이고, 사랑이었다.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