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 23화

Author: 유애
건곤전 내.

태상황이 명원제와 예친왕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힘이 들었는지 모두 내보냈다. 옆에 있던 어의도 내보내고 나니 전 내에는 원경릉과 태상황만 남았다.

명원제가 나가기 전에 의미심장한 눈으로 아무말 없이 원경릉을 훑어 보았다. 건곤전은 고요했으며 감싸고 있는 장막이 두꺼운 것이 바람 한점 통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침대 옆에 서서 무엇을 해야할지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태상황이 감고 있던 눈을 번 쩍 뜨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원경릉을 훑어보았다. “앉거라!”그가 소리쳤다. 원경릉은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미 자금탕의 효력이 다 떨어진 후인지라 몸이 찢어질 듯 아팠다.

“네 죄를 알고 있느냐.” 태상황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원경릉은 태상황이 그녀는 자신을 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가 속세에 미련이 없지 않는 한 그녀는 그에게 생명을 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들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죄는 어디에서 오는가?”

“제 의술이 비록 서투르나 옥체를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원경릉은 수박 겉핥기 식의 대답을 했다.

“너의 의술이 서투르다니, 너는 태의원의 의원들을 모두 돌팔이로 만들 작정이냐!”태상황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상황이 자신의 의술을 믿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태상황은 원경릉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리 와서 앉거라. 과인에 병에 대해 말해보거라. 이게 죽을 병이냐?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느냐?”

원경릉은 천천히 일어나며 “아직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제게 태상황을 검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라고 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는게냐. 진맥을 해보거라.” 태상황은 어디선가 이상한 것을 꺼내 귀에 매달고 있는 원경릉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먼저 심장 소리를 들어 보겠습니다.” 잠시 후 태상황이 입을 파르르 떨며 “지금 과인에게 뭐하는 짓이냐! 날 얼어 죽일 셈이냐?” 라고 소리질렀다. 원경릉은 청진기를 태상황의 귀에 걸고는 태상황에게 말했다. “쉿, 잘 들어보시옵소서.”

태상황의 노여운 얼굴이 점점 풀리더니 조용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것은 과인의 심장 소리인가!”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하옵니다. 심장 소리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염라대왕 곁으로 가시기에는 아직 이른것 같습니다.”

“간도 크구나” 태상황이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원경릉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송구하옵니다.” 라고 말했다.

“됐다. 무릎을 왜 꿇는게야. 앉거라.” 태상황이 소리쳤다. 원경릉은 쓴 웃음을 지으며 “앉기 힘듭니다.”라고 말했다. 태상황은 그녀를 유심히 보았다. “상처는 다 어디서 나온 것이냐?”

원경릉은 놀랐다. 상처 입은 것을 그가 본 것인가?

“네가 간혹 숨을 들이킬때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너는 내가 귀까지 먹은 것 같으냐? 그리고 네가 과인에 이마에 손을 대었을 때도 손에서 펄펄 열이 나는 것 같더구나.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태상황이 원경릉을 바라보며 물었다.

“넘어졌을 때 난 상처에 염증이 생겨서 열이 나는 것 입니다.” 원경릉은 자신의 처소에서 당했던 암담한 사건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남은 돌볼 줄 알고, 자신은 돌볼 줄은 모르는게냐?” 태상황이 사나운 목소리로 나무라듯 원경릉에게 물었다.

“약 있습니다.”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치료해준 원경릉이 자기 몸 하나 잘 돌보지 못한다니, 태상황이 원경릉의 말을 듣고 눈쌀을 찌푸렸다. 어찌 정후의 딸은 제 마음대로 인건가?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 궁궐 안에 규칙대로 사는 사람이 있기나 한건가?

“약 먹고 쉬고 있어라. 과인은 힘이 부친다!”태상황이 청진기를 빼며 눈을 감았다. 청진기를 챙긴 원경릉은 숨어서 약상자를 뒤졌다. 약상자를 열자마자 원경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수액통이 더 있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럴 시간이 없었다. 해열제와 소염제를 집어 맨입으로 삼킨 후 수액통을 양 손으로 들었다. 태상황이 잠이 들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왜 또 온게냐! 내가 쉬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으냐?”라고 물었다. 원경릉은 조심스레 태상황에게 수액통을 보여주었다. “이게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원경릉은 태상황의 눈치를 살폈다.

태상황은 원경릉이 들고 있는 물건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물어볼 힘도 없었기에 보는 둥 마는 둥 원경릉에게 빨리 하고 나가라고 했다. 원경릉은 수액을 놓아 본 경험이 적어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태상황의 혈관은 신기하게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수액을 놓고 고개를 들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태상황과 눈이 마주쳤다. “기운차리시면 제가 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원경릉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원경릉은 지금 당장 어찌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 나를 이해시킬 방법을 찾아보거라.”태상황은 말과 동시에 코 고는 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원경릉은 수액이 다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누가 볼까 무서워서 황급히 수액통을 없애버렸다.

긴장이 풀린 원경릉에게 온갖 고통이 찾아왔다. 앉아 있지도, 엎드리지도, 배고픈데 무엇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니 죽을 맛이었다. 그녀는 눈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전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태상황도 곧 깨어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책상에 몸을 기댄체 두 손을 베개 삼아 쥐가 엎드린 것 마냥 웅크렸다. 원래는 잠깐 웅크려 쉴 생각이었는데, 뜻밖에 잠이 들고 말았다.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상선이 초왕비 혼자 태상황을 보필하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 되어 한걸음에 달려왔다. 들어오자마자 원경릉이 이상한 자세로 엎드려 자는 것을 보고 상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초왕비는 믿을 구석이 있기나 한건가. 게다가 잠을 자는 자세도 보기 흉했다.

상선이 그녀를 깨우려고 하자 태상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다.”

상선은 살금살금 태상황의 침상으로 걸어가 태상황의 이불을 정리하는데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상선은 나가서 저 아이가 먹을 것을 마련해가지고 오너라.” 태상황이 조용히 말했다. 상선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초왕비가 저렇게 흉한 꼴로 잠을 자고 있는데도 태상황이 화는 커녕 먹을 것을 하사하겠다니? 하지만 명을 받들기 위해 상선은 군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원경릉은 저린 팔을 움켜지며 서서히 일어났다. 문득 자신이 잠이 들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 태상황의 침상을 보니 태상황은 아직 깊이 잠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약상자를 꺼내어 큰 바늘을 꺼내 입에 물고 있을 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급히 약상자를 닫아서 주머니 속에 감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상선이 음식을 들고 오고 있었다.

상선은 원경릉이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며 “왕비님……?” 이라고 말했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원경릉은 머쓱해하며 상선을 쳐다보았다. 마침 그때, “잘 잤다!” 태상황이 깨어나며 그녀는 한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음식 가지고 오는게 뭐 그리 오래걸리느냐! 저 아이가 배고파서 과인의 신발이라도 먹어버리면 어쩌려고!” 태상황의 말에 상선이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음식을 반상에 올려두었다. “초왕비님 배고프실텐데 드십시오.”

원경릉은 정말 배가 고팠다. 배와 등껍질이 붙을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상선이 국을 한그릇을 내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상선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입에 물었던 바늘을 내려놓고 꿀꺽꿀꺽 국 한그릇을 마셔버렸다. 뜨거운 국물이 뱃 속으로 들어가자 온 몸이 따듯해지고 눈에 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상선은 태상황 앞에서 체면없이 허겁지겁 먹는 원경릉을 보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진경도
너무 흥미롭고 재미나네요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명의 왕비   제3499화

    하지만 황후를 찬양하는 자들이 몇몇 공자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들은 조정이 백성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조정의 책임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아직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정이 교만해질 수도 있으니, 굳이 찬양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물론 이 말을 한 자도 몇몇 이로부터 훈계받았다. 상대의 뜻은 단순했다.“밥도 한 숟가락씩 먹어야 하는데, 어찌 한 입에 코끼리를 다 삼킬 수 있겠는가? 의서를 여는 것에 돈이라도 바쳤는가? 조정에서 이렇게 백성들을 챙기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겠는가? 의서에만 돈을 쓴다고 해도, 교육은 어찌하고, 길을 만드는 것은 어찌하고, 군영은 어찌하겠는가?”문인들이라, 예리한 말들을 서슴치 않았다. 게다가 싸움의 분위기도 날카로웠다. 현장은 순간 불길 없는 전쟁터처럼 변했고, 얽히고 섥히며, 귀가 다 먹먹해질 지경이었다.드디어 이 화제가 끝나자, 또 다른 화제로 이어졌고, 다들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만두는 이 격렬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주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주 어르신은 담담히 차를 마시며, 이런 언쟁을 많이 보았다는 듯이 태연했다. 심지어 이 정도 언쟁은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까지 지었다.주 어르신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의 광경에 놀란 자가 있다면, 분명 내각에 들어간 적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내각의 싸움은 불길이 자욱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가장 격렬할 때는 서로 예의 바른 말로 상대의 조상까지도 건드리기까지 했다.논쟁 뒤에 많은 사람들의 이익이 걸려 있었기에, 싸움이 끝이 나기 전까지는 열심히 싸워야 하는 법이었다.싸움을 보며, 주 어르신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하나 아쉬운 것은, 다들 열심히 싸우기만 할 뿐, 신랄한 말 한마디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점이었다.잠시 후, 만두가 주도권을 쥐고 질문을 했다. 상업과 농업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물어봣다. 그는 사실 주무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그리고 역시나 문제를 내자마자, 주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 되물

  • 명의 왕비   제3498화

    적동을 찾지 못하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경단과 찰떡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형님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다.만두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고 적동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동생들을 꾸짖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며 마음을 누그러뜨렸다.우문호도 이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원경릉에게 말했다.“만두의 마음이 점점 넓어지니, 중임을 맡을 만하오.”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그걸 이제야 알았소?”“아니, 오래전부터 알았소. 다만 일을 하나둘씩 겪으니, 점점 좋아짐을 알게 된 것이오.”우문호는 맑은 차를 홀짝이며 은퇴 후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록 아직은 이르긴 하지만, 앞날을 계획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가?게다가 남은 인생도 기니, 수십 년 계획하고 수백 년을 노니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만두는 적동을 마음에 품고 이별의 괴로움을 삼키며 유생들과 견학을 나누었다.주제는 정해지지 않았다. 조정 일, 나랏일, 천하의 일, 심지어 풍월까지도 자유롭게 말하기로 했다. 그는 주무도 청했지만, 주무는 요청이 적힌 서신을 한쪽에 던지며 냉랭히 말했다.“때가 되어 바쁘면 가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나도 갈지는 모르겠구나.”서신을 전한 하인이 만두에게 그의 말을 전하자, 만두는 미소를 지었다. 주무는 반드시 올 것이었다. 비록 성격이 괴팍하긴 하지만, 모임처럼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나타났으니 말이다.그는 마음에 하고픈 말이 많은 듯, 늘 애를 쓰고 사람이 모인 곳을 찾아갔었다. 그러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견학 자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만두는 이번 견학에 특별히 은퇴한 주 어르신을 초대했다.주 어르신은 젊은이들과 교류하기를 좋아했기에,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보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는 북당에 깊은 정을 품고, 늘 인재를 발굴하려 했다. 물론 만두를 도우려는 마음이 제일 컸지만 말이다.만두가 직접 인재를 육성하여, 태자의 세력을 구축하고자 함이니, 주 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몇 사람을 골라 돕고자 했다.만두는 유생들

  • 명의 왕비   제3497화

    만두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조급해져, 설랑을 데리고 즉시 적동을 찾으러 나섰다.그런데 마음속으로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들이 아닌 동생들이 적동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어찌 찾지 못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도 곧바로 알게 되었다. 동생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그는 다음 날 아침까지 쉬지 않고 적동을 찾았으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그는 숙왕부에 도움을 청했고, 흑영 어르신에게 부탁했다. 흑영 어르신들도 적동을 좋아하시기에, 적동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몹시 걱정하며 곧장 출발했다.그 중 한 흑영 어르신이 투덜거리며 말했다.“일찍이 팔아 돈으로 바꾸라 했건만, 듣지 않고. 인제 와서야 없어졌으니, 돈까지 날렸구나.”만두는 이를 듣고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은 그리했으나, 사실 그는 적동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었다.이리 나리도 사람을 보내 열심히 찾았고, 늑대파 역시 일을 마다한 채, 함께 적동을 찾는 무리에 합류하였다.하지만 역시나 이상하게도 찾을 수 없었다. 이리 나리는 결국 직예에도 사람을 보냈고, 만두는 군영으로 돌아가 찾기 시작했다. 적동이 오랫동안 군영에서 함께했기에, 군영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음 날 역시 모두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만나고 말았다.만두는 지금껏 처음으로 일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는 매우 초조했고 걱정되었다. 적동에게 불상사가 닥칠까 두려워졌고, 누군가 납치해 팔아버릴까 무서웠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모든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난생 처음 막막함과 무력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는 그동안 적동과 함께 지내며 깊은 정이 들었고, 설랑과 위치를 겨룰 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만약 그런 적동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다면, 그는 매우 슬플 것이었다.아이들은 무력할 때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찾는다. 만두 역시 그랬다. 그는 설랑에게 계속 찾으라 시키고, 궁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찾았다.

  • 명의 왕비   제3496화

    만두 역시 주무의 실력을 높이 보았다.만두는 사실 모임에서 첫 토론을 할 때부터, 밉상으로 말하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그가 참된 견해를 내뱉을 줄 알기에 마음에 들었고, 가감 없이 날카롭게 쏘아대며 조롱도 서슴지 않기에 화가 나기도 했다.이런 자를 비록 모사로는 쓸 수는 있지만, 정말 조정 신하로 들인다면, 한 마디도 마치지 못하고 다른 신하들의 상소가 쏟아질 것이었다.오만하고 불경한 죄만으로도, 그는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날카로운 주무를 다듬어, 그의 성격을 잠재울 수 있다면, 큰 인물이 될 수도 있다.오늘 만두가 내민 그림은 그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사촌 동생 단이가 대충 그린 것이었다. 단이도 원래 성격이 거칠었으나, 여섯째의 수련을 거쳐, 문학에 취미를 가지게 되었고,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충 그린 그림 속에도 어느 정도의 실력이 담겨 있었다. 주무를 아는 자는 모두 그가 관직을 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리한 말로 시선을 끌려고 했고, 조정 신하들의 눈에 띄려고 애썼다. 그를 불러 꾸짖더라도, 진심으로 하고픈 말을 내뱉은 것으로도 주무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만두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주무는 그의 뜻을 숨김없이 내비쳤고, 심지어 관직에 오르면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었다. 그는 심지어 얌전한 유생들이 들으면, 터무니 없다고 할 말도 서슴없이 했다.만두는 늘 그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주무는 이전에 황제가 국정을 다스리며 변방 무역과 해운을 힘써 개발하고 있으나, 요즘 농업을 소홀히 한다고 말했었다. 북당은 본디 농업으로 일떠선 나라이기에, 농사까지 버린다면 언젠가 타인에게 지배당할 것이라고 하였다.다들 그런 주무의 말을 당치 않은 말이라 생각했다. 무역이 발달하여 재물이 넉넉하니 식량이야 사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만두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농업은 백성이 배부르게 먹기 위한 근본이고, 해마다 식량을 외부에서 사들인다면, 전쟁이 일어나거나 변방 무역이 막혔을 때

  • 명의 왕비   제3495화

    만두는 현대에서 지낸 적이 있어 견식과 문제를 보는 시선도 남들과 달랐기에,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꼴 보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법.만두는 문인의 우아함과 고고함이 없고, 행동거지가 다소 거칠어 보였다. 군영에서 일을 재빠르고 단호하게 처리하는 습관과, 시원시원한 태도, 단도직입적인 성격까지 거칠어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다.사실 만두는 목적을 갖고 벗을 사귀기도 했다.백성이 조정 일을 논하지 않음은 대개 알지 못함 때문이지만, 문인과 학자들은 달랐기 때문이다. 과거 급제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는 자들이니, 조정의 정책을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서로 모여 각자의 견해를 논하기도 한다. 그렇게 견해가 모두의 인정을 받고 소문이 나면, 학대 대인에게 전해져 학대 대인의 마음에 들 수도 있었다.만두도 이젠 나이가 많아, 군영에 오래 머물 수 없고 머지않아 조정 일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유생들은 모두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한 자들이었기에, 각지에서 온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각지의 조정에 대한 생각도 알 수 있었다. 우문호도 만두가 유생들과 어울리자, 아들이 자기만의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기뻐하였다.젊은 유생의 생각은 남다를 것이고, 오래된 악습을 깨고 더 뛰어난 정책을 생각해 낼 수도 있었다.만두가 태자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즉위 때 이미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며 명분을 확정했기에, 이제는 장대한 예식을 올려 세상에 알릴 일만 남았다.예식을 올리고 태자에 책봉되면, 태자비도 정해야 하니, 아직 서두르면 안 된다.조정 일을 돕는 것만 아니라 견식도 중요하니, 여러 사람을 만나 백성의 고생을 알아 두는 것도 유익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유능한 아들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부족할까 염려되는 듯, 서일을 보내 만두와 오가는 유생을 살피라 했다. 서일은 황제 곁에서 오랫동안 지내며, 큰일도 많이 도맡았으니, 조사에 능했다.서일이 이틀 동안 조사를 마친 후 돌아와 전했다.“전하와 오가

  • 명의 왕비   제3494화

    란이의 혼사는 일찍이 정해졌다.비록 아직 집안끼리 혼담을 나누지는 않았으나, 양가 부모 간에 뜻이 이미 맞았고, 란이 또한 호 오라버니를 좋아했다.다섯째는 참지 못하고 원경릉에게 이 일을 말했느데, 말을 마치자마자 또 불평을 늘어놓았다."란이가 이제 겨우 몇 살이오? 벌써 혼수 준비를 분주히 한다니? 준비하려면 조용히 할 것이지, 굳이 말을 꺼내 괜히 조급하게 만들다니, 마음이 편치 않소."원경릉이 답했다."급히 서두를 바 아니오. 며칠 전 요 부인이 만두 얘기를 꺼내며, 장차 태자 될 인물이니 태자비를 먼저 정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소."“이 일은 조정에서도 예전에 논한 바 있으나, 내가 화제를 돌렸소.”태자를 책봉하는 예식을 지체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우문호는 알고 있었다. 원경릉은 다른 사람의 말은 신경 쓰지 않더라도, 요 부인의 말이라면 마음에 담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우문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원경릉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어찌 생각하오?""난 아무래도, 너무 어린 나이에 혼사를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오."하지만 원경릉은 태자비를 하루빨리 정하는 것이 조정의 안정을 돕는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만두는 인품, 외모, 재능 그 어느 하나 빠지지 않기에, 수많은 관리가 탐을 내며 몰래 손을 쓰려고 했다. 다들 딸의 이름을 황후에게 전하려 애썼고, 그로 인해 온갖 말썽이 빚어진 것이었다. 얼마 전 원경병이 궁에 들어왔을 때도 말한 바가 있었다. 그는 누군가 군영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 딸을 군영 주위에 보내, 만두와 우연히 마주치게 하려 했다는 구사의 말을 전했다.이는 도를 넘은 일이었다.중요한 군영에 어찌 외부인이 접근한다는 말인가? 여인은 물론, 조정 신하라 하여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이리 제멋대로 행하는 것은 군영을 우습게 여기는 처사라 할 수밖에.태자비의 자리를 엿보는 자들이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수작을 부리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