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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칠 할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9:32

여름에는 파리가 먼저 왔다.

푸줏간 뒷문, 생선 가게 좌판, 골목 도랑. 해가 길어지자 파리가 구름처럼 일었다. 그리고 파리열이 돌았다. 열은 잿빛열보다 낮았다. 대신 배가 쏟아졌다. 하루에 열 번, 스무 번. 어른은 사흘이면 일어났다. 어린아이는 몸의 물이 먼저 빠져나갔다.

루엔은 세 칸짜리 계량 숟가락을 이백 개 주문했다.

만든 건 봄에 쇠 원본 자를 벼린 조합 대장장이였다. 숟가락 자루마다 칸이 셋. 큰 칸은 설탕, 작은 칸은 소금, 가장 작은 칸은 쓸 일이 없으면 비워 두는 칸. 오렐이 교구 이름으로 골목마다 나눠 주었다. 모래 물통 그림처럼, 글자 대신 손가락 그림을 붙였다.

「끓여 식힌 물 한 되. 큰 칸 여섯. 작은 칸 반.」

나눠 준 지 이틀째에 루엔은 교구 부엌에 갔다. 부엌 아낙들이 병실에 낼 물을 타고 있었다.

아낙 하나가 되에 물을 받았다. 루엔은 그 되를 보았다. 한 번 더 보았다.

“그 되는 어디 되입니까.”

“어디 되라니. 되지.”

“장터 되입니까, 상인 조합 되입니까.”

아낙이 되를 뒤집어 바닥을 보았다.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장터에서 쓰는 되였다. 상인 조합 되보다 한 할쯤 작았다.

“숟가락 칸은 조합 되에 맞춰 두었습니다. 장터 되로 타면 한 할 짭니다.”

“한 할쯤이야.”

“아이 몸에 들어가면 한 할이 아닙니다. 목이 더 마릅니다.”

아낙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부엌 선반 맨 위에서 먼지 앉은 되를 내렸다. 바닥에 상인 조합 검인이 찍혀 있었다. 봄에 교구가 사 두고 한 번도 안 쓴 되였다.

루엔은 그날 숟가락 그림에 한 줄을 더했다. 되 그림 옆에 조합 검인 모양을 그렸다. 「이 표시가 있는 되로.」

*

오렐의 병실은 교구 성당 뒤 창고였다.

봄에 오렐이 비웠다. 침상이 열둘. 바닥은 날마다 물로 닦았다. 창은 낮에 열고 밤에 닫았다. 헌금 그릇은 두지 않았다. 병자 기도 헌금 은화 반 닢을 못 내는 사람도 여기선 누웠다.

손이 문제였다.

오렐은 침상 사이를 오갈 때마다 손을 씻었다. 스무 알. 그런데 침상이 열둘이면 스무 알이 열두 번이었다. 물이 모자랐고, 오렐의 손은 갈라졌다. 손등이 늘 빨갰다.

“씻는 것 말고 닦는 걸 쓰시면 됩니다.” 루엔이 말했다. “술로.”

오렐이 눈을 크게 떴다. “술로 손을 닦습니까.”

“독한 술입니다. 수도원에서 약으로 내리는 것. 작은 것들이 술에 닿으면 죽습니다. 물보다 빨리 마르고, 손도 덜 갈라집니다.”

수도원 증류주는 교구 창고에 있었다. 오렐이 병 하나를 가져왔다. 루엔은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지 않았다. 대신 저울을 달라고 했다.

루엔은 조합 되에 물을 한 되 받아 달았다. 되를 비우고 말리고, 같은 되에 증류주를 한 되 받아 달았다.

술 쪽이 가벼웠다.

“술은 물보다 가볍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물을 많이 탈수록 무거워집니다. 그러니 무게를 보면 이 병에 술이 몇 할인지 압니다.”

루엔은 수첩을 펴 셈했다. 전생에서 외워 둔 표가 있었다. 이 세계의 근과 되로 옮기는 데 모래시계 한 번이 걸렸다.

“이 병은 여덟 할 하고 반입니다. 물을 타서 일곱 할로 내리겠습니다.”

“왜 내립니까. 독할수록 잘 죽이지 않습니까.”

루엔은 그 물음이 나올 줄 알았다. 이 세계의 누구라도 그렇게 물을 것이었다.

“너무 독하면 작은 것들의 겉만 굳습니다. 속까지 못 들어갑니다. 물이 조금 있어야 스며듭니다. 일곱 할이 가장 잘 듭니다. 여섯 할이면 덜 죽고, 아홉 할이면 겉만 죽습니다.”

오렐은 한참 병을 보았다. 그러다 물었다.

“일곱 할은 누가 정했습니까.”

“전에 많이 세어 본 사람들이 정했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다만 어느 세상의 사람들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루엔은 쇠잔으로 물을 재어 부었다. 한 잔, 두 잔. 다시 달았다. 한 번 더 부었다. 다시 달았다. 일곱 할에서 멈췄다.

오렐이 첫 손을 닦았다. 손바닥, 손등, 손가락 사이, 손톱 밑. 술이 마르는 데 스무 알이 채 안 걸렸다.

“차갑습니다.” 오렐이 말했다. 그리고 조금 뒤에. “갈라진 데가 따갑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따가운 게 일하는 거겠지요.”

*

열도 숫자가 되었다.

세 가마 공방의 비브케가 가느다란 유리관을 불어 왔다. 한쪽 끝에 콩알만 한 방울. 방울 안에 붉게 물들인 술. 따뜻한 데 대면 붉은 줄이 관을 타고 올라갔다.

“이건 또 뭐에 쓰오.” 비브케가 물었다.

“뜨거운 정도를 읽습니다.”

“손으로 대 보면 알지.”

“손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같은 이마를 두 사람이 짚으면 둘이 다르게 말합니다.”

비브케가 걸걸하게 웃었다. “우리 가마 앞에선 다들 손으로 불을 읽소. 스무 해 한 놈은 맞고 세 해 한 놈은 틀리지.”

“그러니 스무 해를 기다리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눈금은 루엔이 새겼다. 얼음이 녹는 물에 방울을 담가 붉은 줄이 멈춘 자리에 한 금. 펄펄 끓는 물에 담가 멈춘 자리에 또 한 금. 그 사이를 백 칸으로 나눴다. 칸마다 가는 금을 긋는 데 사흘이 걸렸다.

병실에서 처음 쟀다. 앓지 않는 오렐의 겨드랑이. 서른일곱 칸.

셋째 침상의 아이. 서른아홉 칸 반.

이튿날 아침, 같은 아이. 서른여덟 칸.

오렐이 병실 명부에 숫자를 적었다. 이름 옆에, 날짜 옆에. 「열 — 서른아홉 반. 이튿날 서른여덟.」 오렐의 글씨가 조금 떨렸다. 좋아서였다.

“이제 좋아지는 게 보입니다.” 오렐이 말했다. “전에는 기도하고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기도하고 셉니다.”

*

한 달이 지나자 교구 병실에서 죽는 아이가 없었다.

대성당 치유 헌금은 줄었다.

그건 오렐이 먼저 알았다. 백색탑 하급 사제들은 저녁마다 대성당 헌금 장부를 옮겨 적었다. 오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여름 파리열 철이면 늘 불어나던 줄이, 올해는 절반이 안 되었다.

“다음 안식일 설교는 성하께서 직접 하십니다.” 오렐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해마다 여름엔 안 하셨습니다.”

루엔은 테오와 함께 대성당에 갔다.

맨 뒤, 기둥 옆에 섰다. 대성당은 넓었다. 천장이 높아 소리가 한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앞줄 사제석에 오렐의 흰 소매가 보였다. 끝이 젖었다 마른 얼룩 소매였다. 오늘은 걷어 올리지 않았다.

카시미르 알바가 단에 올랐다.

세 해 전 봄 축복 의식 때 멀리서 본 그대로였다. 키가 컸다. 은빛 흰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다. 흰 옷 가장자리에만 금실. 그가 두 손을 모았다가 펼쳤다. 빛이 났다. 신성광. 곱고 고른 빛이 대성당 기둥을 금빛으로 적셨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맨 뒤 기둥까지 또렷했다.

“여름마다 병이 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이 도시에는 병을 물로 씻어 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술로 닦아 낼 수 있다고. 물과 술로 몸을 닦으면 병이 오지 않는다고.”

대성당이 조용해졌다. 테오가 루엔의 소매를 잡았다.

“묻겠습니다. 병을 씻어 낼 수 있다면, 병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더러움에서 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신의 벌은 어디 있습니까.” 카시미르가 잠깐 말을 쉬었다. 모두가 기다렸다. “병을 씻을 수 있다고 믿는 자는, 곧 죄도 씻을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물 한 동이로. 술 한 병으로. 참회 없이.”

그는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오렐도, 교구 병실도, 학생도.

“물과 술로 몸을 닦는 자는 신성광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 말이 천장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앞줄에서 누군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옆 사람도. 누구를 찾는지는 몰랐다. 다만 찾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들 알았다.

루엔은 카시미르의 빛을 보았다. 셈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눈이 먼저 셌다. 세 해 전 봄에 어림한 값으로 촛불 이천 자루 안팎. 오늘도 그만했다. 설교 내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루엔은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말은 있었다. 다만 저 자리는 셈이 올라가는 자리가 아니었다.

나오는 길에 테오가 말했다.

“말 잘하네.”

“예. 틀린 곳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어딘데.”

“병이 더러움에서 온다는 것과 신의 벌이 없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걸 한 줄로 이으셨습니다.”

테오가 한참 걷다가 말했다.

“그 한 줄을 다들 믿겠지.”

루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

사흘 뒤 병실 칠 할 술이 한 병 없어졌다.

범인은 금방 찾았다. 교구 뒷골목 담벼락 밑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주저앉아 있었다.

늘 대성당 계단에서 동냥하던 술꾼이었다. 병실 창으로 병을 봤다고 했다. 오렐이 「술」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고 했다.

“독할수록 좋다는 거 누가 몰라.” 술꾼이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말했다. 혀가 꼬여 있었다. “근데 칠 할이래. 칠 할이면 삼 할은 물 탔다는 거 아냐. 약하네, 생각했지. 그래서 한 모금에—”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옆으로 천천히 기울었다.

오렐이 술꾼을 부축해 병실로 데려갔다. 침상 하나를 내주었다. 루엔은 눈금 유리관으로 그의 열을 재 보았다. 서른일곱 칸. 열은 없었다. 술만 있었다.

“칠 할이면 이 사람이 늘 마시던 술보다 열 배는 셉니다.” 루엔이 말했다. “맥주는 한 할도 안 됩니다.”

“이름을 잘못 지었나 봅니다.” 오렐이 말했다. “약하게 들리는군요.”

루엔은 그 말을 셈해 보았다. 칠 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듣는 사람이 무엇에 견주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렸다. 셈은 맞아도 듣는 쪽이 틀리게 읽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오렐은 병실의 술병을 전부 꺼냈다. 작은 칼로 병마다 목에 글자를 새겼다. 글 모르는 사람을 위해 그림도 하나. 입에 가위표.

「바르는 것. 마시지 말 것.」

술꾼은 이튿날 아침에 깼다. 머리를 감싸 쥐고 병실을 나가다가 문간에서 멈췄다. 발 대야가 있었다. 오렐이 턱짓을 했다.

술꾼은 한참 발 대야를 노려보다가, 물통을 발로 기울였다. 손을 씻었다. 스무 알까지는 못 했다. 열 알쯤에서 나갔다.

루엔은 수첩에 적었다. 「칠 할 — 듣는 사람은 열 할에 견준다. 이름에도 검산이 필요함.」

그리고 한 장 앞으로 넘겨, 대성당에서 들은 말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적었다.

「물과 술로 몸을 닦는 자는 신성광을 믿지 않는 자. — 백색탑주 카시미르 알바. 열다섯 여름.」

그 줄 옆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원래 그렇다고 적을 수도, 고쳤다고 적을 수도 없는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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