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소식은 루엔보다 먼저 아스테른에 닿았다.
교장이 그날 오후 케른바흐에서 아스테른으로 돌아갔다. 텔레포트로. 이번엔 식 끝의 칸 세 개에 거꾸로 된 값을 넣었다. 아스테른 도착 마당에 선 채로 닿았다. 기다리던 오렐이 그걸 보았다. 황색탑 일꾼들도.
그날 저녁 아스테른 장터에 말이 돌았다.
루엔은 엿새 뒤에 수레로 돌아왔다. 성문을 들어서자 문지기가 창을 세운 채 루엔을 불렀다. 왼뺨에 낫 모양 흉터가 있는 문지기였다.
“이봐. 땅이 돈다며.”
“예.”
문지기는 발밑 돌바닥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한 발을 들었다가 내렸다. 조심스럽게.
“하나도 안 돌잖아.”
“다 같이 돌아서 그렇습니다.”
“다 같이.” 문지기가 제 뺨의 흉터를 문질렀다. “그럼 술집에서 어지러운 것도.”
“그건 술 때문입니다.”
문지기가 웃었다. 앞니 빠진 자리가 보였다.
*
장터는 그 얘기뿐이었다.
빵장수 구스타프는 반죽을 치대다 말고 루엔을 붙잡았다. 땅이 돌면 왜 빵이 굴러떨어지지 않느냐고. 대장간 앞에선 견습들이 누가 오래 한 발로 서는지 내기를 했다. 땅이 돌면 넘어진다고. 아무도 넘어지지 않았다. 내기는 흐지부지되었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다 주저앉았다. 「땅 놀이」라고 했다. 어머니들이 혼냈다.
보움 상단 전령마들이 북쪽과 동쪽과 남쪽 길로 달렸다. 북쪽 길 끝, 하르트 성에서는 세 해 전 루엔이 세운 거울 길이 소식을 방앗간 망루와 새 마을 종탑까지 이어 받았다. 청색탑 배가 포르미아로 떠났다. 이졸드의 편지를 싣고.
사흘 만에 왕국 밖까지 갔다.
살렌 항구 뱃사람들이 선술집에서 떠들었다. 그라우벤 모피 상단이 장부 여백에 적었다. 마르케스 국경 성채의 병사들이 망루에서 해 뜨는 쪽을 쳐다보았다. 땅이 돈다더라. 베스트리아 학교의 열여섯 먹은 학생이. 모래 자루로.
루엔은 그 소문 가운데 틀린 곳을 셋 셌다. 열여섯이 아니라 열여섯 끝이었다. 모래 자루가 아니라 모래 자루 둘이었다. 그리고 텔레포트를 쓴 건 교장이었다.
고치러 다닐 수는 없었다. 루엔은 그 셋을 수첩에 적어 두기만 했다.
*
오틸리에는 계약서를 들고 왔다.
기숙사 면회실. 탁자 하나, 의자 둘. 오틸리에가 누런 밀랍 봉인을 뗀 두루마리를 펼쳤다.
「황색탑은 루엔 하르트에게 해마다 금화 마흔 닢을 준다. 루엔 하르트는 황색탑의 먼 텔레포트에 보정표를 대고, 새 길이 열릴 때마다 셈을 더한다.」
그 아래로 몇 줄. 기록을 나눠 볼 것. 황색탑 마법사가 보정표를 쓸 때 셈한 사람의 이름을 적을 것. 사고가 나면 까닭을 함께 찾을 것.
“가을에 약속했지.” 오틸리에가 말했다. “까닭을 찾으면 계약.”
“찾았습니다.”
“찾았지.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오틸리에가 크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못 찾는다는 걸 적어 오면 그것도 사려고 했네.”
루엔은 계약서를 첫 줄부터 읽었다. 한 줄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오틸리에는 기다렸다. 서두르지 않았다.
읽는 데 모래시계 반 번이 걸렸다. 틀린 곳은 없었다. 적어도 적힌 글자에는.
루엔은 서명했다.
오틸리에가 작은 가죽 주머니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무거운 소리가 났다.
“첫해 몫. 마흔 닢. 케른바흐 조폐소에서 바로 가져왔네.”
*
그날 밤 루엔은 금화를 세었다.
마흔 닢. 맞았다.
그리고 버릇대로 달았다. 영지에서 가져온 작은 저울. 한 닢씩, 열 닢씩.
루엔은 저울을 오래 보았다.
열 닢을 달면 아스테른 왕도 금화 열 닢보다 가벼웠다. 보리알 여섯 알쯤. 마흔 닢이면 스물넷. 한 해에 왕도 금화 반 닢 가까이가 저울 위에서 사라지는 셈이었다.
오틸리에가 속인 게 아니었다. 계약서엔 금화 마흔 닢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어느 조폐소의 금화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루엔은 그 줄을 읽었다. 한 줄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러고도 그 빈칸을 보지 못했다.
서명하기 전에 달아 보지 않았다.
루엔은 수첩에 적었다. 「황색탑 후원 계약. 금화가 어느 금화인지 안 적힘. 케른바흐 금화, 열 닢에 보리알 여섯 알 가벼움. 서명 전에 안 달아 봄. 내 잘못. 다음에 계약서를 다시 쓸 때 고칠 것.」
그리고 생활비 장부를 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장. 들어온 것 칸이 두 줄이 되었다.
하나. 루엔 공방 몫. 안경 삼백마흔 벌 남짓, 벌마다 동화 여섯. 목수·석공 조합 미는 자 검정 삯. 합쳐 금화 열 닢 하고 은화 네 닢.
둘. 황색탑 후원. 금화 마흔 닢. 괄호 안에 작게. 「케른바흐 금화.」
열한 살 가을, 아버지가 준 금화 두 닢으로 시작한 장부였다. 그 장부의 들어온 것 칸이 아버지가 준 돈의 스물다섯 배를 넘었다.
루엔은 합계를 두 번 셈했다. 이튿날 클라리사가 세 번째로 셈했다. 맞았다.
*
편지가 여러 통 왔다.
왕궁에서 온 편지는 봉인이 컸다. 왕실 문장. 서기의 글씨였지만 맨 아래 서명은 굵고 빨랐다.
「왕립 마법학교 학생 루엔 하르트. 먼 텔레포트를 다치지 않게 하는 셈을 가져오라. 졸업한 뒤 왕궁으로. — 레지날드.」
교장이 그 편지를 읽고 짧게 말했다.
“왕실 짐은 해마다 먼 데로 간다. 열에 하나가 다치고. 폐하께서 셈이 빠르시다.”
청색탑 이졸드의 편지는 짧았다.
「포르미아 망루지기가 제 이름을 해도에 적어 달라더군. 처음 금을 그은 칸이라서. 로그표 사본은 탑에 한 벌, 올봄부터 큰 배마다 한 벌씩 더 베낀다. 축하한다. — 이졸드.」
그리고 맨 아래 한 줄. 다른 잉크로, 나중에 덧붙인 듯이.
「네 스승에게, 아직 검사관이라고.」
적색탑에서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디트마르가 식당에서 루엔 맞은편에 앉았다. 한참 빵만 뜯다가 말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셨대.”
“예.”
“편지를 두 번 읽으셨대. 소문 적은 거.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디트마르가 빵을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말이 없을 때가 제일 오래 셈하실 때다.”
*
백색탑은 말을 했다.
안식일. 대성당. 카시미르 알바가 단에 올랐다. 이번엔 루엔이 가지 않았다. 오렐이 사제석에 앉아 들었다. 그리고 저녁에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옮겨 적어 왔다.
「경전은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적었다. 하늘은 돌고 땅은 멈춰 있다고 적었다. 땅이 돈다는 자는 경전의 모든 아침을 거짓으로 만드는 자다. 모래 자루가 굴렀다고 경전이 구르지는 않는다. 하늘이 돈다고 적힌 경전을 뒤집는 자를, 교단은 기억할 것이다.」
오렐이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이름은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도.”
“예.”
“그리고 제 이름이 걸친 봉투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백색탑 참관인이 성하께 보고했답니다. 교구 사제 하나가 이름을 걸었다고.”
루엔은 오렐을 보았다. 오렐의 손이 빨갰다. 오늘도.
“드리셨습니까.”
“드리지 않았습니다. 제 방 궤짝에 넣었습니다. 벽에 걸린 성수 우물 손잡이 바로 아래.” 오렐이 웃었다. 조금 창백하게. “정결 기간이 끝나면 같이 꺼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결 기간이 언제 끝나는지는 아직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았다.
*
마지막 편지는 영지에서 왔다.
보움 상단 전령마 편에 실려 온, 사람 손 편지. 글씨가 크고 삐뚤었다. 줄이 맞지 않았다. 형이었다.
「대충 들었다. 땅이 돈다며. 어쩐지 어지럽더라. — 코넬.」
그게 다였다.
루엔은 그 편지를 한참 보았다. 세 줄. 틀린 곳이 하나 있었다.
답장을 썼다.
「어지러우신 건 땅 때문이 아닙니다. 하루 한 바퀴는 느립니다. 형님이 칼을 한 번 휘두르는 동안 땅은 거의 돌지 않습니다. 어지러우시면 다른 까닭을 찾으십시오. 술이면 줄이십시오. — 루엔.」
보내고 나서 루엔은 끝 줄을 뺄 걸 그랬나 셈했다. 셈이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두었다.
형의 답은 스무날 뒤에 왔다. 한 줄이었다.
「대충 알았다.」
루엔은 그 한 줄을 오래 보았다. 대충. 형은 스무날 동안 뭘 셈했을까. 셈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편지를 영수증 묶음 맨 위에 끼웠다.
*
오드리크는 약속대로 먼저 보았다. 봉투가 열린 지 여드레째, 도서관 서고에서.
루엔이 케른바흐 모래에 파인 자리의 숫자와 거꾸로 셈한 세상 둘레를 탁자에 펼쳤다. 오드리크는 안경을 고쳐 얹고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서가에서 누렇게 바랜 책 한 권을 꺼냈다. 성 힐데 성당 기록.
마지막 쪽을 폈다. 이백 해 전 무너지기 직전의 줄. 「봄. 해가 제단에 닿음. 춘분날 사흘 전. 하늘이 흔들리는 징조.」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
오드리크가 펜을 들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그래도 작고 반듯하게 적었다.
「이백 해 뒤 겨울. 하늘이 흔들린 것이 아니었음. 달력이 조금 길었고, 땅이 돌았음. — 사서 오드리크, 안경 쓰고 적음.」
“남의 기록에 적어도 됩니까.” 루엔이 물었다.
“기록은 이어 적으라고 있는 걸세.” 오드리크가 책을 덮었다. “이 사람들은 날짜를 적었고, 자네는 셈을 했고, 나는 이어 적었네. 셋 다 맞게 했지.”
*
겨울의 끝, 루엔은 「원래 그렇다」 수첩을 폈다.
한 장씩 넘겼다. 열 해 넘게 모은 줄들. 고친 줄은 고친 사람 이름과 함께. 아직 못 고친 줄은 빈 칸과 함께.
열다섯 가을에 적은 줄에서 손이 멈췄다.
「하늘은 돌고 땅은 멈춰 있다. — 교단 가르침. 성 힐데 성당 기록 여백, 오드리크 사서님이 읽어 주심. 열다섯 가을.」
고침 칸이 비어 있었다.
루엔은 곧은 자를 댔다. 펜으로 그 줄에 선을 그었다. 한 번. 글자가 다 읽히게. 지우지는 않았다. 틀린 줄도 남아야 했다. 누가 틀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틀렸는지.
고침 칸에 적었다.
「땅이 하루에 한 바퀴 돈다. 하늘은 도는 것처럼 보일 뿐. — 케른바흐 모래 자루 둘, 열여섯 겨울. 검산: 파비오 슈틸의 열 해 공책, 걸어서 잰 세상.」
잠깐 생각하고, 이름을 하나 더 적었다.
「해 뜨는 쪽을 먼저 찾은 사람 — 테오 마일스.」
창밖에 눈이 녹고 있었다. 지붕에서 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한 방울. 고르게.
곧 열일곱 살 생일이었다. 곧 마지막 학년의 봄이었다.
땅은 그동안에도 돌고 있었다. 하루에 한 바퀴. 아무도 어지럽지 않게.
봉화는 한 가지밖에 말하지 못했다.왔다.불이 오르면 적이 왔다는 뜻이었다. 몇이 왔는지, 어디로 왔는지, 기병인지 보병인지는 싣지 못했다. 그걸 알려면 봉화대 옆에서 말 탄 전령이 따로 달려야 했다. 본진에서 왕도까지 전령은 말을 갈아타며 이틀. 봄 싸움이 시작되면 이틀은 너무 길었다.루엔은 하르트령 망루 둘 사이에서 거울 신호를 처음 해 본 게 열두 살 여름이었다. 형이 보낸 첫 신호가 「대충 잘 지냄」이었다. 그때는 망루 둘, 거리 이십 리, 주고받는 사람도 둘이었다.이번엔 본진에서 왕도까지였다.*루엔은 점과 선 그림을 다시 폈다.이번엔 길이 아니라 산등성이를 점으로 찍었다. 황색탑 측량 기록에서 높은 곳만 골랐다. 한 점에서 다음 점이 보이는지. 보이면 선을 그었다. 산이 가리면 긋지 않았다.그다음은 셈이었다.탑을 촘촘히 세우면 탑 사이가 가까워 흐린 날에도 잘 보인다. 대신 탑이 많아진다. 신호 하나가 탑마다 한 번씩 받아 적히고 다시 쏘아진다. 탑이 많을수록 그 받아 쏘는 시간이 쌓인다.탑을 드문드문 세우면 빠르다. 대신 흐린 날 안 보인다. 안 보이면 멈춘다.루엔은 날씨 기록을 모았다. 하르트 서기들이 본진에 온 날부터 날마다 적은 반년 치, 그리고 하르트령 망루 둘이 몇 해 동안 적어 둔 것. 맑은 날, 흐린 날, 안개 낀 아침. 흐린 날에 거울 빛이 몇 리까지 보였는지 망루 둘로 재어 둔 값이 있었다. 이십오 리까지는 흐린 날에도 대개 보였다. 삼십 리가 넘으면 열흘에 사흘은 안 보였다.“이십 리 안팎으로 세웁니다.” 루엔이 레오폴트에게 말했다. “본진에서 왕도까지 탑 열여섯. 한 탑에서 받아 적고 다시 쏘는 데 작은 모래시계 네 번. 열여섯이면 예순네 번. 한 시간이 조금 넘습니다.”“한 시간.&rdqu
지도는 너무 많은 걸 그리고 있었다.막료 천막 벽에 걸린 베스트리아 동부 지도였다. 황색탑 측량사들이 그린 것. 산은 산 모양으로, 숲은 나무 모양으로, 강은 굽이굽이 그대로. 마을마다 교회 첨탑이 그려져 있었다. 아름다운 지도였다.그런데 루엔이 알고 싶은 건 하나였다. 어디가 끊기면 안 되는가.산 모양도, 나무 모양도, 강 굽이도 그걸 가리고 있었다.루엔은 새 종이를 폈다. 그리고 점을 찍었다.본진. 창고 마을. 왕도. 여섯 영지의 곡식 창고. 역참 열두 곳. 여울 셋. 모두 점 하나씩.그다음 점과 점 사이에 선을 그었다. 수레가 다니는 길이면 선 하나. 다리가 있으면 선 위에 짧은 가로줄. 거리도 산 높이도 그리지 않았다. 이어져 있는지 아닌지만.마흔한 개의 점과 예순 개 남짓의 선이 남았다.테오가 어깨 너머로 보았다.“이게 지도야? 거미줄 같은데.”“지도에서 필요 없는 걸 다 뺀 겁니다.”“뭐가 필요 없는데.”“어디로 이어졌는지 빼고 전부 다.”*루엔은 선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렸다.선 하나를 가리고, 본진에서 출발해 점을 따라가 보았다. 모든 점에 닿으면, 그 선은 끊겨도 괜찮은 선이었다. 돌아가는 길이 있었다. 닿지 못하는 점이 생기면, 그 선은 끊기면 안 되는 선이었다.예순 번을 가렸다.대부분은 괜찮았다.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하나를 끊으면 옆으로 돌아가면 되었다. 멀어지긴 했지만 닿았다.세 선만 달랐다.메를 강 중류의 돌다리. 창고 마을로 들어가는 지류 위 나무다리. 그리고 왕도 동쪽 문 밖, 늪 사이로 난 둑길 위 다리.셋 중 하나만 끊겨도 점들이 두 덩이로 갈라졌다
재무대신 발터 크로이츠는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루엔은 그걸 첫눈에 알았다. 왕궁 재무실 벽에 장부가 천장까지 꽂혀 있었다. 등마다 해가 적혀 있었고, 해마다 빠진 권이 없었다. 탁자 위 셈판은 알이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크로이츠는 쉰 남짓, 머리가 희고 손가락이 가늘었다. 루엔이 들어서자 일어나지 않고 셈판 알을 마저 튕겼다. 한 줄을 다 셈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앉으시오. 폐하께서 곧 오시오.”왕 레지날드 2세는 정말 곧 왔다. 이번에도 작은 금테만 둘렀다.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봄 싸움 돈이 모자란다.”크로이츠가 장부 한 권을 펼쳤다. 숫자가 빼곡했다. 옛 셈, 금화와 은화와 동화가 스물과 열둘로 얽힌 셈이었다. 그러나 줄이 반듯했고, 끝자리가 맞았다. 루엔은 곁눈으로 합계 셋을 속으로 셈해 보았다. 다 맞았다.“가을 싸움과 겨울 대치에 든 돈이 옛 금화로 만 사천 닢.” 크로이츠가 말했다. “봄에 레오폴트 장군이 국경 성채를 되찾으려면 삯군과 공성 기구를 더 들여야 하오. 새 금화로 이천 닢이 더 있어야 하오. 세금은 가을에 걷히오. 그때까지 빌려야 하오.”왕이 루엔을 보았다.“하르트 상단이 빌려줄 수 있나.”*루엔은 대답하기 전에 수첩을 폈다.클라리사가 어젯밤 적어 준 숫자가 있었다. 하르트 상단이 제 것으로 가진 금과 은, 창고의 물건, 받을 삯. 새 금화로 치면 삼천이백 닢 남짓. 보움 상단과 왕도 상인 조합 둘이 나눠 댄 몫까지 넣은 것이었다.“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루엔이 말했다. “삼백이십 닢까지.”크로이츠의 손가락이 셈판 위에서 멈췄다.“이천이라 했소.”
첫 롱 텔레포트는 눈 녹는 날 아침에 했다.참호 뒤 빈터에 원진을 그렸다. 지름 열두 걸음. 테오가 말뚝과 끈으로 원을 잡고, 루엔이 안쪽 선을 그었다. 원진 가운데에 짐 상자 둘, 그 옆에 루엔과 테오.도착지는 왕도 아스테른, 루엔 공방 뒷마당이었다. 거기엔 클라리사가 같은 크기의 원을 그려 두었다. 사흘 전 편지로 보낸 그림대로.루엔은 보정표를 펼쳤다. 여기서 왕도까지의 거리, 두 곳의 위도, 오늘 해가 뜬 시각. 땅은 하루에 한 바퀴 돈다. 여기와 왕도는 도는 빠르기가 조금 다르다. 그 차이만큼 도착하는 몸을 미리 돌려 놓는다. 열여섯 살 겨울, 모래 자루 두 개로 보인 그 셈이었다.그때는 교장과 파비오가 루엔 식으로 걸었다. 루엔은 옆에서 보기만 했다. 여섯째 고리가 없었다.지금은 있었다.“무섭냐?” 테오가 물었다.“무섭지 않습니다. 셈을 세 번 했습니다.”“나는 무서운데.”“그럼 제 옷자락을 잡으십시오. 떨어지면 셈이 틀어집니다.”테오가 루엔 옷자락을 꽉 쥐었다.루엔은 걸었다.한 번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발밑의 흙이 진창에서 마른 돌바닥으로 바뀌었다. 코끝의 냄새가 참호 연기에서 빵 굽는 냄새로 바뀌었다. 구스타프 분점이 두 골목 건너였다.짐 상자 둘이 발치에 그대로 서 있었다. 기울지도, 밀리지도 않았다.테오가 비틀거렸다. 루엔 옷자락을 놓지 않은 채 주저앉았다.“어, 어…… 됐어?”“됐습니다. 원 가운데서 손가락 한 마디 어긋났습니다.”뒷마당 문간에서 클라리사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원 끝에 분필로 적어 둔 작은 표를 가리켰다.&l
겨울은 링겐 고개 아래에서 멈췄다.마르케스군은 고개 발치의 국경 성채로 물러나 틀어박혔다. 가을 첫머리에 빼앗은 베스트리아 성채였다. 레오폴트는 그 앞 오 리 떨어진 곳에 참호를 파고 진을 쳤다.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어느 쪽도 성채 벽까지 가지 않았다. 가 봐야 얼어붙은 밭에서 죽을 뿐이었다.대신 새벽마다 안개가 왔다.한겨울 두 달은 조용했다. 양쪽 다 눈 속에서 장작과 곡식을 세며 버텼다. 하르트 서기들의 겨울 셈대로, 말먹이가 가장 먼저 바닥을 보였다. 레오폴트는 말 절반을 뒤쪽 고을로 돌려보냈다. 마르케스 쪽 성채에서도 말 울음이 줄었다. 저쪽도 같은 셈을 한 것이었다.첫 안개는 겨울이 끝나 갈 무렵, 아직 눈이 녹기 전 어느 새벽에 왔다. 성채 쪽에서 하얀 김이 낮게 깔려 밀려왔다. 겨울 안개치고는 이상하게 따뜻했다. 앞 참호에 닿자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김이 뜨거웠다. 살갗에 닿으면 붉게 부어올랐다. 눈이 따가워 뜰 수 없었다. 김이 지나간 참호 바닥은 눈이 녹아 진창이 되었고, 해가 뜨기도 전에 다시 얼었다. 병사들 발이 진창째 얼어붙었다.사흘 동안 앞 참호에서 발가락을 잃은 병사가 열넷이었다.“적색탑 복합 술식이다.” 레오폴트가 말했다. 눈썹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불로 물을 끓이고 바람으로 민다. 옛날에 한 번 봤다. 그땐 이만큼 오래 가지 않았는데.”“교대를 합니다.” 루엔이 말했다. “가을 싸움 뒤로 적이 바꿨습니다. 번쩍임을 세어 보면, 밤을 셋으로 나눠 돌아가며 쏩니다. 한 번에 쏘는 사람은 열넷, 쉬는 사람이 스물여덟.”적도 셈을 했다. 사흘째 오후에 바닥나는 걸 겪은 사람들이었다. 이번엔 바닥나지 않게 나눠 쏘았다.*끓는 안개를 막으려면 같은 걸로 맞서야 했다.불과 물과 바람을 한꺼
요스트는 명령서를 두 번 읽었다.창고 마을은 본진에서 서쪽으로 반나절 거리였다. 메를 강 지류 가에 곡식 창고 여든 채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여섯 영지에서 보낸 곡식, 말먹이, 화살 다발이 전부 여기 모였다. 요스트는 그 창고 열쇠를 쥔 창고지기였다. 하르트령에서 온 사람이었다. 쉰 살, 한쪽 다리를 조금 절었다.명령서는 새벽에 왔다. 본진에서 출발한 전령이 중간 역참에서 명령을 옮겨 적어 다음 전령에게 넘겼고, 그 전령이 요스트에게 가져왔다.「71번 창고를 열어 곡식 이백 자루를 본진 빵 굽는 곳으로 보낼 것. 레오폴트.」번호 옆에 작은 글자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71-9」.요스트는 입속으로 셈했다.앞자리 일곱에 둘을 곱하면 열넷. 뒷자리 하나를 더하면 열다섯. 열다섯을 열하나로 나누면 하나에 넷이 남는다.넷이어야 했다.명령서에는 아홉이 적혀 있었다.요스트는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 도로 걸었다. 창고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마구간 소년을 불렀다.“본진으로 가라. 가장 빠른 말로. 루엔 도련님께 이 종이를 드려라. 끝자리가 안 맞는다고.”소년이 떠나고 얼마 안 되어, 빵 수레를 몰고 온 보급 기사가 창고 앞에 섰다. 동쪽 영지 사람이었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았다.“왜 안 여나. 장군님 명령이다.”“끝자리가 안 맞습니다.”“끝자리?” 기사가 명령서를 낚아채 보았다. 번호 옆 작은 글자를 한참 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이 꼬랑지 말이냐. 이게 뭐라고.”“번호가 제대로 옮겨졌는지 보는 겁니다.”“번호는 71이라고 적혀 있다. 장군님 서명도 있다. 본진에선 병사들이 빵을 기다린다. 창고지기가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