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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조금 전 자신을 흔쾌히 변태에게 넘겨준 강세헌을 발견한 송연아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강세헌?”

송연아는 강세헌을 손가락질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술 덕분에 담이라도 커졌는지 지금만큼은 그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야! 이 개새끼야!”

강세헌의 표정은 완전히 굳었다. 임지훈과 오은화는 곁에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송연아는 휘청휘청 안으로 들어와 강세헌의 멱살을 잡았다.

“나라고 너랑 결혼하고 싶은 줄 알아? 너 따위랑 결혼하고 싶은 줄 아냐고?!”

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 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에는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는 송연아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송연아 씨, 당신 미쳤어요?”

이는 송연아가 자신의 멱살을 잡은 것이 아닌 아무 남자나 따라간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송연아의 타협이었지 고집이 아니었다.

솔직히 송연아가 고훈을 따라 나갈 때, 그는 약간 후회되기도 했다. 어찌 됐든 송연아는 그의 서류상 아내였으니 말이다.

“미친 건 당신이지.”

송연아는 술김에 강세헌의 가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로써 자신을 골탕 먹인 못된 남자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강세헌은 싸늘한 표정으로 송연아의 손목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송연아는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거 놔. 이거 놔라고...!”

쾅당!

침실 문을 거칠게 걷어찬 강세헌은 송연아를 뿌리쳤다. 그러자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맨바닥에 무릎을 찍었다.

“아!”

송연아는 무릎을 감싸 안고 신음을 냈다. 순간 강세헌의 머릿속에는 그날 밤 들었던 신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는 최지현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목소리였다.

“강세헌 씨!”

송연아는 머리를 들어 강세헌을 노려봤다. 그가 폭력을 쓸 정도의 막무가내일 줄은 몰랐다. 무릎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덤덤한 표정을 일관했다.

강세헌은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가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송연아 씨, 취한 거 아니었어요?”

송연아는 확실히 취했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가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힘 풀린 다리는 또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까와 같은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 손을 뻗어 아무 물건이나 잡고 중심을 잡았다.

따듯한 방 안에 갑자기 한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천천히 머리를 든 송연아의 시야에는 감정 없이 차가운 눈빛이 들어왔다.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강세헌의 바지를 잡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만약 벨트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벗겨졌을 것이다. 깔끔하게 다려진 정장을 입은 강세헌은 유독 심란해 보였다.

송연아는 재빨리 손을 뗐다. 하지만 강세헌의 몸에는 이미 반응이 일어난 후였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강세헌은 피식 비웃으며 물었다.

“그래요?”

“네.”

‘잠깐...’

송연아는 잠깐 멈칫하다가 강세헌에게 물었다.

“그 말 무슨 뜻이에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다 들킨 마당에 연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송연아는 몸이 파르르 떨렸지만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다. 아무래도 강세헌은 그날 밤의 약을 보고 단단히 오해한 것 같다. 아니, 과연 오해가 맞을까?

할 말이 없었던 송연아는 이 순간만큼은 너무 도망치고 싶었다.

“이제는 변명도 안 한다, 이건가요? 남자만 보면 덮치고 싶은 그 성정을 어떻게 참고 살았어요?”

강세헌은 싸늘한 눈빛으로 송연아의 목을 졸랐다.

“말해 봐요. 나랑 이혼도 하지 않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이유가 도대체 뭐예요? 혹시 바람 비우는 느낌을 즐기나?”

강세헌은 힘이 배어 있는 말투로 말했다. 그는 자기 아내가 누군가의 노리개라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이는 그가 한평생 겪어본 수모 중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송연아는 숨을 쉬기 위해 낑낑대면서 몸을 버둥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산소를 원하는 듯 크게 헐떡였다. 그리고 겨우 한 글자를 뱉어냈다.

“놔...”

송연아의 버둥거림과 함께 셔츠 단추 두 개가 튕겨 나갔다. 강세헌의 시선은 벌려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쇄골과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머물렀다. 강하게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모습은 시선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끙...”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거친 숨소리는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자신이 잠깐 넋이 나갔다는 것을 알아차린 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목이 저절로 조여 드는 것 같았다. 그는 애써 자신의 충동을 억눌렀다. 이토록 방탕한 여자에게 충동이 생기다니 역겨울 따름이었다.

강세헌은 홧김에 송연아를 침대로 메쳤다. 그녀에 대한 분노가 아닌 자신에 대한 분노로 인해서 말이다.

‘이런 여자를 상대로 흥분하다니... 내가 미쳤나?’

강세헌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임지훈이 바로 마중했다.

“대표님.”

강세헌은 말없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임지훈은 좁은 보폭으로 달려서 쫓아갔다. 그렇게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건 후, 임지훈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돌려 강세헌의 표정을 살폈다.

‘왜 갑자기 화가 나신 거지?’

별장 안.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된 송연아는 크게 공기를 들이켰다. 이번에는 진짜 강세헌의 손에 죽는 줄 알았다.

“웁...!”

한숨 돌리고 나자, 안 그대로 위에서 파도치던 알코올이 밀려 나오려고 했다. 그녀는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미친 듯이 토하기 시작했다. 토하고 나니 다행히 속은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샤워까지 하고 침대에 누운 그녀는 저도 모르는 새에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이튿날.

천주그룹.

강세헌이 회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비서가 다가와서 말했다.

“대표님, 고 대표님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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