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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مؤلف: 눈빛 속의 약속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조씨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그만들 하거라. 유영이 네가 언니 아니더냐. 연화에게 조금 양보하렴."

"일전에 아버지께서 저와 연화 아씨 중 누가 언니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 수 없다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가 꼭 언니라는 법은 없지요. 게다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까지 무조건 용인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 생각은 어떠신지요?"

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차석에 앉은 진국공을 바라보았다.

"연화야, 먹고 싶은 게 있거든 시종을 시켜 집어 달라고 하면 될 일 아니냐."

진국공은 조연화가 굳이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소 강유영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구박할 생각도 없었다. 그에게 강유영은 그저 대충 키워서 시집이나 보내면 그만인, 아무래도 상관없는 양녀에 불과했다.

"강유영, 이쪽으로 와서 내 식사 수발을 들어."

조연화는 도리어 식탁에 젓가락을 탁 내리치며 고집을 부렸다. 그녀의 시선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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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05화

    조원철의 손바닥 위에는 자그마한 금자물쇠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둥그스름한 해당화 모양의 자물쇠는 얇으면서도 단단했다. 매끄럽게 세공된 테두리 안쪽으로는 동백꽃이 옅게 양각되어 꽃잎 결이 도드라져 있었다.강유영은 떨리는 손으로 그 금자물쇠를 집어 들었다.뒷면에는 과연 영원 평안이라는 네 글자가 수려하게 새겨져 있었다.그 아래로는 붉은 마노 구슬이 매달려 가볍게 흔들렸다."네 것이 맞느냐?"조원철이 물었다."예."눈시울이 붉어진 강유영은 금자물쇠를 가슴팍에 꼭 품었다.이 금자물쇠는 오씨 어멈이 강유영을 위해 몰래 간직해 오던 물건이었다.오씨 어멈의 말에 따르면, 강유영이 갓난아기였을 때 강보 속에 함께 들어 있었다고 했다.한씨는 강유영에게 도통 관심이 없었기에 강보를 들춰본 적조차 없었고, 자연히 이 물건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이 금자물쇠는 강유영의 친부모가 남겨준 유품일 가능성이 컸다.그 시절 오씨 어멈이 이 금자물쇠를 숨겨둔 것도, 한씨가 강유영을 자식처럼 여기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아이가 가여워, 훗날 다 크고 나면 건네줄 요량이었다.그렇게 강유영이 다섯 살이 되던 해까지 시간이 흘렀다.당시 오씨 어멈을 빼고는 아무도 강유영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한씨는 남들 앞에서만 살뜰히 챙기는 척했을 뿐, 뒤돌아서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탓에 늘 병치레를 달고 살았다.하루는 한씨가 강유영을 데리고 외출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어딜 다녀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강유영은 너무 어려 자초지종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오씨 어멈이 아는 것이라곤 아이가 무언가에 단단히 놀랐다는 것뿐이었다. 민간요법을 총동원해 놀란 아이를 달래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이를 안고 백방으로 의원과 약방을 수소문한 끝에, 마음씨 좋은 점쟁이를 만나 부적을 태우고서야 겨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점쟁이는 어린아이는 혼백이 불안정하니, 금붙이를 몸에 지니고 있어야 기운을 누를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이에 오씨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04화

    시종일관 강유영은 조연화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조연화가 매를 맞든 말든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태도였다.이는 조원철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당장 저만치 앉은 조원철 역시 아무 말 없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었다.조연화는 기어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음을 터뜨리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문이 거칠게 닫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식사들 하지. 괘념치 말거라. 시집갈 때가 다 되었는데도 저리 속을 썩이는구나."한씨가 젓가락을 들며 사람들에게 권했다."출가하기 전에 좀 기를 꺾어놓을 필요는 있지."조씨 노부인은 그제야 입을 열더니 강유영을 바라보았다."허나, 유영이 너도 그리 면박을 주어선 안 된다. 연화는 어찌 되었든 왕비가 될 몸 아니더냐. 오늘이야 수발을 들지 않아도, 훗날 저 아이가 왕비 자리에 오르면 넌 꼼짝없이 수발을 들어야 할 게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 비위를 맞춰두는 편이 나아. 그래야 나중에 널 들볶지 않을 게 아니냐."노부인은 짐짓 점잔을 빼며 강유영을 훈계했다."저는 요기를 마쳤습니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천천히들 드시지요."강유영은 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예를 표했다. 그러고는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몸을 돌려 대청을 나섰다."쯧, 하나같이 다들 왜 저 모양인지."조씨 노부인 역시 심기가 상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더 먹어서 무엇하겠느냐? 다들 물러가거라."누군가 만류하며 달래주기를 바라고 내뱉은 홧김의 소리였다.하지만 한씨는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즉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그럼 어머니 모셔다 드리는 일은 아랫것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연화에게 가보아야겠습니다."서둘러 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다. 눈치 없는 딸이 얄밉기는 해도, 어찌 되었든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모른 척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한씨마저 자리를 털고 일어서니 더는 식사를 이어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믐날 밤의 연회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요월원으로 돌아온 강유영은 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03화

    조연화는 맞은편에서 줄곧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밥만 먹고 있는 강유영을 쏘아보았다. 볼수록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강왕 같은 구역질 나는 늙은이에게 시집가게 되어 억울해 죽을 지경인데, 어째서 한낱 양녀 따위에게 함부로 굴 수 없단 말인가."부모 가르침을 받지 못한 티를 내는구나. 어른들께 식사를 권할 생각도 없이 제 입에 쑤셔 넣기 바쁘니 말이다."조연화는 기어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코웃음을 치며 노골적으로 빈정거렸다.강유영은 고개를 들어 조연화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뭘 웃어?"웃는 모습을 보자 조연화는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아씨 말도 맞네요."강유영은 한씨를 바라보며 뼈 있는 말투로 말했다."저처럼 어려서 부모 가르침을 못 받고 자란 사람이 어찌 아씨와 비교하겠어요. 어머니께선 아씨에게 뭐든 가르쳐 주졌을 테죠. 특히 장부 셈하는 솜씨 하나는 아주 잘 배웠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한씨에게 조연화를 단속하지 않으면 집안 은자를 빼돌린 일을 폭로하겠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동시에 조연화를 향한 조롱이기도 했다. 조연화는 금지옥엽으로 자란 탓에 한씨가 쓴소리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살림이나 장부 보는 솜씨는 형편없었다. 지금 당장 견주어 보아도 조연화의 셈 실력은 강유영만 못할 것이다."강유영, 너!"조연화가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짝!다음 순간, 한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조연화의 뺨을 올려붙였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대청에 울려 퍼졌다.조연화의 입에서 튀어나오려던 말이 뚝 끊겼다.그녀는 뺨을 감싸 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한씨를 쳐다보았다.식탁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한씨에게 쏠렸다.진국공은 미간을 찌푸렸다.너무도 기이한 일이었다.강유영이든 한씨든 모두 평소와 너무 달랐다.강유영은 저리 대담하게 군 적이 없었고, 한씨 또한 강유영을 저리 감싸고돈 적이 없었다.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진국공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세 사람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02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조씨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그만들 하거라. 유영이 네가 언니 아니더냐. 연화에게 조금 양보하렴.""일전에 아버지께서 저와 연화 아씨 중 누가 언니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 수 없다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가 꼭 언니라는 법은 없지요. 게다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까지 무조건 용인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 생각은 어떠신지요?"강유영은 고개를 돌려 차석에 앉은 진국공을 바라보았다."연화야, 먹고 싶은 게 있거든 시종을 시켜 집어 달라고 하면 될 일 아니냐."진국공은 조연화가 굳이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평소 강유영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구박할 생각도 없었다. 그에게 강유영은 그저 대충 키워서 시집이나 보내면 그만인, 아무래도 상관없는 양녀에 불과했다."강유영, 이쪽으로 와서 내 식사 수발을 들어."조연화는 도리어 식탁에 젓가락을 탁 내리치며 고집을 부렸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강유영에게만 꽂혀 있었다.남들이 어찌 보든 상관없었다. 오늘 기필코 강유영에게 모욕을 주고야 말 작정이었다.해가 바뀌면 그녀는 강왕부에 시집가 강왕비가 될 몸이었다.이 집안에서는 아버지는 물론이고 할머니조차 이제 그녀를 예전처럼 대하지 못했다.강왕이 비록 변변치 못하다 한들, 어찌 되었든 그는 엄연한 황족이었다.게다가 황제께서도 강왕과의 형제 우애를 각별히 여긴다고 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어엿한 왕비가 될 고귀한 신분이었다.훗날 친정에 오면 할머니조차 그녀에게 예를 갖추어야 할 터, 한낱 강유영 따위를 안중에 둘 리가 없었다.조원철은 그저 말없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표정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은 마치 이 일이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무심했다.강유영은 그녀를 한 번 쓱 훑어볼 뿐, 아무 대꾸 없이 그저 픽 하고 실소를 흘렸다.그 짧은 비웃음은 조연화의 부아를 더욱 돋우었다."강유영, 똑바로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이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01화

    한씨 또한 그랬다. 그날 얼굴을 붉힌 이후로, 그녀가 이토록 상냥하게 말을 건넨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저 웃는 낯이 가식이라는 것쯤은 강유영도 잘 알았다. 하지만 차라리 이러는 게 한결 보기 좋았고, 속이 시원했다.조연화는 고개를 돌려 한씨를 살폈다.어머니가 왜 갑자기 강유영에게 저리 살갑게 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사람까지 보내 강유영을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까지 했다.어머니는 당당한 진국공 부인이고, 자신은 머지않아 강왕비가 될 몸이었다. 대체 왜 저깟 양녀 따위를 겁내며 쩔쩔매는지 알 수가 없었다."음식이 다 나왔습니다. 어머니, 이제 수저를 드시지요."진국공이 상석에 앉은 조씨 노부인을 향해 말했다."이제 먹자꾸나."조씨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었다.노부인이 먼저 첫 술을 뜨자, 그제야 모두가 따라서 수저를 쥐었다.강유영은 제 앞의 음식만 응시한 채 대충 몇 점 집어 천천히 입에 넣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따가 무슨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날지 생각 중이었다.조연화는 몇 입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줄곧 강유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천한 양녀가 느긋하게 밥을 삼키는 꼴이, 제법 여유까지 부리는 듯하여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다. 볼수록 부아가 치민 그녀는 아예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왜 안 먹느냐."한씨가 의아한 듯 물었다.그 말에 강유영도 고개를 들고 조연화를 쳐다보았다."저기 양고기가 너무 멀어서 말이야. 네가 한 점 집어주렴."조연화는 턱을 꼿꼿이 치켜들며 강유영에게 지시했다.강유영은 순간 멈칫했다.웃는 듯 마는 듯, 묘하게 조롱기가 섞인 조연화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다분히 고의적이었다.순간,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강유영은 입안의 음식을 삼키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곁에 놓인 공용 젓가락을 들어 구운 양고기 한 점을 조연화의 앞 접시에 놓아주었다.젓가락 한 번 까딱하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굳이 조연화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00화

    이번에는 서유가 대답했다."말린 과일은? 사탕은?"강유영은 내심 아쉬워하며 몇 가지를 더 물었다."그것도 다 있습니다."단비는 소리 내어 웃었다."오라버니는 어째서 죄다 사다 놓은 것이야? 내가 뭘 좀 사려 해도 살 수가 없잖아."강유영은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터뜨렸다."아씨, 연등을 몇 개 사시지요. 서화나 춘련(春聯: 새해를 맞이할 때 붙이는 장식) 같은 것도요."단비가 이어서 덧붙였다."세자께서 아씨 마음에 드는 것으로 직접 고르라 하셨습니다.""그건 좀 낫네."그제야 강유영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명절을 맞아, 그녀는 마음에 드는 연등과 춘련을 직접 골라 마당에 달아두고 싶었다. 보기에 기분도 좋을 터였다.주종 세 사람은 한바탕 물건을 사들였다. 단비와 서유의 손에는 물건이 한가득 들려 있었고, 세 사람은 양손 무겁게 돌아왔다.이튿날은 섣달그믐이었다.오전, 강유영은 단비 일행과 함께 마당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새 춘련과 도부를 붙였다."다 되었다. 단비야, 화로를 내오너라. 음식 몇 가지를 준비해야겠다."오씨 어멈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단비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벌써부터 저녁 준비를 하는 겁니까?"강유영은 무심코 오씨 어멈에게 물었다."화로는 아궁이와 달라 불이 더디게 오르니, 일찌감치 서둘러야 합니다."오씨 어멈은 웃으며 대답했다.강유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서유는 채소를 들고 왔다.주종 네 사람은 마당 처마 밑에서 분주히 움직였다.강유영은 이제 제법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져 일손을 보탤 수 있었다.하지만 오씨 어멈 일행은 그녀에게 좀처럼 일을 시키려 하지 않았다."유영 아씨."이때, 정원 문간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마당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서유는 몸을 일으켜 문가를 살피더니 강유영을 향해 말했다."노부인 곁에 있는 화씨 어멈의 목소리 같습니다.""들어오라 하렴."강유영 역시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손을 씻고 반듯하게 섰다."물건들을 치울까요?"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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