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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접근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0 21:15:19

그날 오후, 미용실 안은 비교적 한가했다.

예약 손님 두 명이 빠져나간 뒤 잠깐 시간이 비어 있었고,

창밖으로는 늦은 햇빛이 골목 바닥을 길게 비추고 있었다.

드라이기의 열기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공간은 조용했고,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수는 가위를 닦으며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평소보다 조금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이어진 일들 때문인지, 감각이 예민해져 있었다.

카운터 쪽에서 하빈이 노트북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기사 확산 상황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댓글이 늘었어.”

그가 말했다.

이수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 정도.”

“아직 크게 퍼진 건 아니야.”

하빈은 화면을 보여주었다.

“근데 방향이 비슷해.”

댓글 대부분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보호자 판단이 맞았냐.’

‘왜 신분을 숨겼냐.’

‘그 병원 어디냐.’

이수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분노가 올라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예상했던 흐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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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211. 확신을 얻으러 온 사람

    기자가 떠난 뒤에도 미용실 안의 공기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문 위의 종이 소리가 완전히 멎은 뒤에도, 방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의 온도가 조금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이수는 명함을 손에 들고 있었다.작은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방향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기자의 이름, 매체 이름, 그리고 휴대폰 번호. 단순한 연락처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무게가 느껴졌다.“예상보다 빨리 왔네.”그녀가 낮게 말했다.하빈은 카운터 뒤에서 노트북을 닫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기사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움직여.”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리고 누군가는 그 움직임을 이용하지.”이수는 명함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민준이겠지.”“거의 확실해.”하빈은 명함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인터넷 매체라고 해도 완전히 가벼운 곳은 아니었다. 작은 기사 하나로 끝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사건의 방향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종류였다.“근데.”이수가 말했다.“저 기자… 이미 알고 온 것 같지 않았어?”하빈은 잠시 생각했다.“응.”“확인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이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확신을 얻으러 온 사람.”그 말이 더 정확했다.기자는 질문을 던질 때 이미 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맞습니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맞는 것 같습니다’에 가까운 뉘앙스였다.하빈은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그럼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겠네.”“뭘.”“저 기자.”이수는 고개를 들었다.“기자?”“응.”하빈은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했다.몇 초 뒤 기사 목록이 화면에 나타났다.대부분 사회면 기사였다. 병원 관련 사건, 의료 분쟁, 보호자 판단 논란 같은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다.“패턴이 있네.”하빈이 말했다.“어떤.”“의료 사건만 계속 파는 기자야.”이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그러면.”“민준이 딱 던져주기 좋은 사람이야.”그 말은 의미가 분명했다.민준이 직접 이야기를 퍼뜨리지 않아도 된다

  • 불륜해드립니다.   210. 접근

    그날 오후, 미용실 안은 비교적 한가했다. 예약 손님 두 명이 빠져나간 뒤 잠깐 시간이 비어 있었고, 창밖으로는 늦은 햇빛이 골목 바닥을 길게 비추고 있었다. 드라이기의 열기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공간은 조용했고,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이수는 가위를 닦으며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평소보다 조금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이어진 일들 때문인지, 감각이 예민해져 있었다.카운터 쪽에서 하빈이 노트북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기사 확산 상황을 확인하는 중이었다.“댓글이 늘었어.”그가 말했다.이수는 고개를 들었다.“어느 정도.”“아직 크게 퍼진 건 아니야.”하빈은 화면을 보여주었다.“근데 방향이 비슷해.”댓글 대부분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보호자 판단이 맞았냐.’‘왜 신분을 숨겼냐.’‘그 병원 어디냐.’이수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분노가 올라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예상했던 흐름이었다. 민준이 원하는 건 바로 이런 분위기였다. 누군가가 진실을 묻기 전에, 의심을 먼저 심어 놓는 것.“조금씩 퍼지겠네.”그녀가 말했다.“응.”하빈은 짧게 답했다.“그리고 그 전에 누군가 움직일 거야.”그 말이 끝나자마자 미용실 문 위의 종이 울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서른 후반 정도로 보였고, 손에는 얇은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잠시 내부를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혹시… 서이수 씨 맞습니까?”이수의 손이 잠깐 멈췄다.그러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무슨 일이세요.”남자는 명함 하나를 꺼냈다.“인터넷뉴스 ‘현장리포트’ 기자입니다.”하빈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예상보다 빨리 왔다.기자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이수는 명함을 받았다. 기자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명함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

  • 불륜해드립니다.   209. 이번엔 네가 혼자가 아니다

    사진을 받은 다음 날 아침,이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미용실에 나왔다.골목에는 아직 사람의 발걸음이 많지 않았고,간판에 불을 켜기 전의 유리문은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반사하고 있었다.그녀는 잠시 그 앞에 서 있었다.자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몇 년 전이라면 이 장면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감각이 더 강하게 느껴졌을 것이고,문을 열기 전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은 달랐다.여전히 불안은 남아 있었지만,그 불안이 방향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다.이수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 불륜해드립니다.   208. 압박

    미용실 문을 닫은 뒤에도 이수는 한동안 골목을 바라보고 있었다.해가 완전히 내려간 뒤라 거리의 불빛이 조금 더 또렷해 보였고,낮 동안 오가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낮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풍경이 밤이 되자 조금 다른 의미로 느껴졌다.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오늘은 끝났어.”하빈이 뒤에서 말했다.그는 카운터 위에 놓여 있던 마지막 영수증을 정리하며 노트북을 닫았다.“그래도 한동안은 조심해야 해.”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 들어왔던 그 손님이 떠올랐다.머리를 자르면서도 계속 휴대폰을 확인하던 모습,거울을 통해 주변을 살피던 시선.

  • 불륜해드립니다.   207. 이번엔 도망가지 않는다

    “그래도.”그가 말했다.“숨는 것보다 낫지.”이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말의 의미는 이해하고 있었다.지금의 싸움은 단순히 과거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었다.현재의 삶을 지키는 문제였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이번엔.”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숨지 않을게.”같은 시간, 사무실에서 민준은 기사 확산 속도를 확인하고 있었다.

  • 불륜해드립니다.   206. 기사가 아니라 미끼다

    [VVIP 병실 의혹… 보호자 판단 논란]이수의 손이 잠깐 멈췄다.기사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특정 병원의 이름도, 환자의 이름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구조는 분명히 익숙했다. 말기 환자의 산소호흡기 제거 결정, 보호자의 판단, 병원 내부 기록.그리고 마지막 문장.“해당 보호자는 이후 신분을 숨긴 채 다른 지역에서 생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수는 화면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생각보다 빠르네.”그녀가 낮게 말했다.하빈은 고개를 저었다.“이건 시작이야.”“알아.”기사는 아직 누구를 특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던져 놓으면, 누군가는 그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다. 민준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직접 공격하지 않고, 공기를 먼저 흔드는 방식.이수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댓글 봤어?”하빈은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몇 개 달렸어.”“뭐래.”“대부분 비슷해.”그는 천천히 읽었다.“‘보호자 판단이라지만 결국 살인 아니냐’.”잠시 정적이 흘렀다.이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예전 같았으면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역시.”그녀가 낮게 말했다.“이렇게 오는구나.”하빈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괜찮아?”“응.”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는 예상했어.”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근데.”“응.”“이건 기사 아니라 미끼야.”그 말은 정확했다.이 기사는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글이었다. 누가 움직이는지, 누가 불안해하는지, 어떤 이름이 떠오르는지 보기 위한.하빈은 노트북을 열었다.“우리가 먼저 기록 정리하자.”“응.”병원 CCTV, 의료 동의서, 상담 기록. 모든 자료를 시간 순서대로 다시 정리했다. 만약 상황이 더 커진다면,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저녁이 되자 미용실 불이 하나둘 꺼졌다.골목은 조용했지만, 인터넷에서는 작은 파장이 계속 번

  • 불륜해드립니다.   3. 틈

    카페의 아침은 생각보다 빨랐다.문을 열기도 전에 커피 향이 먼저 퍼졌고,기계가 예열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진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셔터를 올렸다.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였고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는 동작들이었다.이수는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문을 열자 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계는 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네.”이수는 짧게 답했다.목소리는 낮았고, 불필요한 온도는 없었다.앞치마를 두르는 동안 그녀는 카페 안

  • 불륜해드립니다.   1. 제의

    비는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급하지도, 망설이지도 않는 속도였다.우산을 쓴 사람보다 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어차피 젖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들 같았다.구급차가 교차로를 가르며 지나갔다.사이렌 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둔해졌고,사람들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어떤 소음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오후였다.이수는 미용실 안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정확히 말하면, 들었다기보다는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진동을 느꼈다.장미 미용실.간판의 ‘장미’는 오래전에 색이 바랬다.붉었던 글자는 연분홍

  • 불륜해드립니다.   10. 탐색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닿았다.커피가 아니라, 커피가 오래 머문 자리의 냄새였다.하루 이틀 사이에 바뀔 수 없는 공기였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끈을 묶는 손길이 잠시 느려졌다가 다시 속도를 찾았는데, 매듭을 완전히 당긴 뒤에도 손이 한 번 더 머물렀다.단단히 묶어두는 습관은, 이미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진상은 카운터 뒤에서 잔을 닦고 있었다.닦을 필요가 없는 잔이었다.투명했고, 얼룩도 없었다.그럼에도 그는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오늘은 조

  • 불륜해드립니다.   2. 흔들리는 선

    남자들은 너무 완벽한 것 앞에서 경계한다.완벽은 함정의 냄새가 난다.대신 ‘조금 과한 듯한 자연스러움’이 필요했다.그래야 자기 욕망을 자기 탓으로 돌릴 수 있다.이수는 파운데이션을 얇게 올렸다.눈매를 길게 뺐다.립은 선명하지만 젖지 않게. 향수는 거의 쓰지 않았다.향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나중에 문제가 된다.옷은 고민하지 않았다.고민이 길어지면 마음이 늦어진다.이수는 얇은 니트와 코트를 걸쳤다.너무 화려하지 않은 색.하지만 얼굴은 눈에 띄게.거울 앞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표정은 비워두었다.웃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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