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수도 외곽 지하, 잊혀진 신전]
“……가져오지 못했다?”
거대한 여신상 아래 핏빛 휘장 너머에서 흘러나온 고요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지독한 공포였다.
바닥에 이마를 처박고 있던 소년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변명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상점가에서 누군가와 강하게 부딪혔는데, 아무래도 그때 흘린 모양입니다. 당장 돌아가서 찾아오겠습니다!”
스윽—.
붉은 휘장이 걷히며, 짙은 어둠 속에서 감히 봐서는 안 될 ‘그분’이 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핏기 없이 창백한 피부와 메마른 잿빛 머리카락 그리고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번뜩이는 뱀처럼 세로로 찢어진 기형적인 은빛 동공을 가진…
“…….”
그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신전 전체가 기괴한 소름을 토해내는 듯했다.
인간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묘한 이단적인 외모를 가진 그는 바로 지하 신전의 진정한 주인인 ‘자하크’였다.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간 자하크는 엎드린 소년의 머리 위에 그의 크고 차가운 손을 얹었다.
“아… 앗! 끄아아악!”
신전의 정적을 찢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하크의 은빛 눈동자가 번뜩이는 순간, 소년의 기억은 산산조각 나며 자하크의 뇌리로 생생하게 흘러 들어갔다.
마법사들조차 금기로 여기는 끔찍한 금술, 바로 ‘기억 추출’이었다.
자하크의 머릿속에 소년이 겪은 찰나의 순간들이 휘르륵 스쳐 지나갔다.
활기찬 상점가의 소음과 중심을 잃은 자신을 붙잡아주던 부드러운 손길, 그리고 후드 틈새로 얼핏 보였던 상대의 얼굴까지.
찬란하게 빛나는 백금발을 가진 그녀는 시린 청색 눈동자로 해사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기억 속 그녀는 이 음습한 지하 신전과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눈부신 존재였다.
자하크의 입가에 잔인하고도 흥미로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손길이 닿아 기억이 뒤엉키다 이내 산산조각 부서져버린 소년은 짧은 시간 내에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 완전히 망가진 채 숨을 거두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빈 껍데기가 바닥을 뒹굴었으나, 자하크는 단 한 톨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소년의 시신이 아닌 조금 전 머릿속을 스쳐 간 백금발 여인의 잔상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저 여자에게서 루세티아 여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여신의 아이들은 분명 영원히 사라졌을 터인데.”
자하크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신전 중앙을 수호하듯 서 있는 거대한 여신상을 향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세월의 풍파에 깎여나간 제단 위 투박한 질그릇 속에는 죽은 자들의 비명처럼 느껴지는 잿빛과 저 아래 지하 심연을 닮은 검은빛과 그 사이에서 이질적으로 찬란한 은빛을 내뿜는 보석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그는 소름 끼치게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가장 영롱한 은빛 보석 하나를 집어 올렸다.
방금 소년에게서 강제로 뜯어낸 기억의 파편을 주입하자, 보석은 순식간에 생기를 잃고 탁한 잿빛으로 변색되었다.
그는 변색된 보석을 그릇 안으로 툭 던져 넣고는 무심한 눈으로 여신상을 올려다보며 낮게 읊조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루세티아. 이번만큼은 나의 승리로 끝나겠군.”
그의 목소리에 서늘하고도 끈적한 집착이 서렸다.
“나에게서 한 번은 도망칠 수 있어도 두 번은 어림없지. 기대해. 널 다시 내 발치에 주저앉히는 그날을.
널 기쁘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모든 비명을 지를 때까지, 네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갈기갈기 찢어발겨 난도질해 줄까?
아니면, 네가 그토록 애처롭게 수호하던 이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그 고결한 눈동자에 영원히 박제해 줄까?
그것도 아니라면…… 네 영혼을 산산조각 내어 이 차가운 보석 속에 가두고 영원히 나만을 바라보게 만들어 줄까. 네가 그토록 증오하는 나의 안광이 네 세상의 전부가 되도록 말이야.”
자하크는 만족스러운 듯 흉측하게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거대한 신전의 천장을 타고 흘러내려 어둠 속에 깊게 가라앉았다.
그는 여신상으로부터 느릿하게 몸을 비틀며 짧고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었다.
그 순간, 죽은 듯 고요하던 그림자들이 일제히 일렁이며 그의 발치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보다 깊은 어둠을 두른 사냥개들이 주인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자하크의 은빛 동공이 루체른 공작저가 있는 북쪽 하늘을 향해 번뜩였다.
“가라. 루체른의 꽃을 꺾어 내 발치에 바쳐라. 루세티아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 아이의 비명이 이 신전을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기꺼울 것 같군.”
그 시각, 침대 위 엘리노아의 손에 쥔 은 원통이 주인의 운명을 예견하듯 기분 나쁜 진동을 내뿜었다.
화려하고 게으른 일상이 산산조각 부서져 내리며, 서늘한 파열음의 전주곡이 이 밤을 가늘게 찢어내고 있었다.
각기 다른 야욕과 오해가 뒤엉킨 채 루체른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누군가에게는 사냥의 시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꿈꿔온 안식의 종말이었다.
*“엄마.”둘만의 낭만은 정확히 삼 분 뒤 끝났다.나는 고개를 돌리자 테라스 문에는 작은 실루엣 하나가 생겼다.바로 루시아였다.한 손에는 카루 인형을 들고 다른 손에는 이불 끝을 들고 있었다.“왜 안 자?”“잠 안 와.”“유모는?”“잔다.”“네가 먼저 재웠어?”“응.”도대체 누가 누구를 재우는 건지. 루시아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엄마랑 잘래.”“그래.”내가 말하는 순간 카엘루스가 말했다.“안 돼.”루시아가 아빠를 봤다.“왜.”“네 침실이 있잖아.”“싫어.”“루시아.”“엄마랑 잘 거야.”“
황궁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엄마아!”루시아가 내게 달려왔다. 나는 아이를 번쩍 안으며 물었다.“잘 놀았어?”“응!”“뭐 했어?”“고양이 샀고! 사탕 먹었고! 공연 봤고!”루시아가 엄청 신나게 말했다.“그리고?”루시아가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아빠가 길에서 나 잃어버렸어!”나는 천천히 카엘루스를 바라보자 그가 눈을 감았다.“……그건.”“카엘루스.”“잠깐이었다.”“애를 잃어버렸어요?”“루시아가 먼저 손을 놓은 거다.”“아빠 나한테 소리도 질렀어.”그러자 빠르게 카엘루스가 말을 막았다.“사과했다.”루시아가
그 뒤로 부녀는 사탕도 먹고 거리 공연도 봤다. 길 가다 만난 작은 분수에서 동전도 던지고 기도해보았다. 그리고 루시아는 끊임없이 말했다.“아빠.”“왜.”“저 사람은 왜 저래?”“아빠.”“왜.”“하늘은 왜 파래?”“아빠.”“왜.”“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카엘루스가 멈췄다. 이 질문은 뭔가 대답해 줘야만 할 것 같았다.“왜 궁금하지.”“그냥.”“…….”“엄마가 아빠 미쳤다고 맨날 말하잖아.”“…….”집에 가서 이야기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그래도 좋아하니까 결혼한 거겠지.”루시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아빠 좋아.”카엘루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그래.”“엄마가 더
다음 날 아침.황실 교육 일정이 전부 뒤집혔다.“뭐라고요?”황실 교육원장이 놀란 얼굴로 카엘루스를 바라봤다.“황녀 전하의 일정을 절반으로 줄여라.”“하, 하지만 폐하.”“오전 두 시간.”“그 정도로는 정규 황족 교육 과정을 소화하기 어렵습니다.”“그럼 정규 과정을 바꿔.”“예?”“네 살짜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교육이라면.”카엘루스는 태연했다.“교육이 잘못된 거겠지.”교육원장의 입이 닫혔다. 나는 옆에서 차를 마시며 웃음을 참았다. 카엘루스의 시선이 날 향했다.“왜 웃지.”“아무것도.”“어제는 나보고 틀렸다더니.”“그래서 고쳤잖아요.”“…….”“잘했어요.”카엘루스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칭찬받는 기
“공부하기 싫어.”정확히 사흘 뒤 루시아는 다시 사고를 쳤다.이번에는 보물고가 아니라 바로 황녀궁 교육실이었다.나는 교육실 문을 열자마자 당황했다.“……이게 뭐야.”책이 날아다녔다. 정말로 공중에 떠 다니고 있었다.제국사 책과 예법서. 고대어 교본에 종이 수십 장이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중이었다. 교육 담당 궁정 마법사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황후 전하…….”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가득했다.“저는 분명 아무런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알아요.”범인은 따로 있다.바로 루시아. 내 딸이었다.두 손을 허리에 얹고 서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바로 뀨. 녀석이 푸른 눈에서 마력이 반짝였다.“…&helli
황궁에는 절대로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장소가 몇 군데 있다.첫 번째. 제국의 국새와 역대 황실 보물이 보관된 황실 보물고.두 번째. 전쟁과 외교에 관련된 기밀문서가 쌓여 있는 황제의 비밀 집무실.세 번째. 황궁 지하 깊숙한 곳에 봉인된 침묵의 기록관.그리고 오늘 아침. 여기에 새로운 장소 하나가 추가되었다.바로. 제국의 하나뿐인 황녀, 루시아 아르카디온의 침실.이유는 간단했다.“황녀 전하가…….”시녀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사라지셨습니다.”“…….”나는 찻잔을 든 채 굳었다. 맞은편에서 아침 신문을 읽던 카엘루스의 손도 그대로 멈췄다.아주 짧은 고요였다.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시 한번 말해볼래?”“화, 황녀 전하께서 침실에 계시지 않습니다.”“언제부터?”&ldqu
카엘루스는 먹잇감을 몰아넣는 맹수처럼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이자벨라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오직 나만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마치 내 영혼 밑바닥까지 샅샅이 훑어내려는 듯한 시선이었다."루체른 영애. 응접실에서 무얼 하고 있었지? 낯익은 곳이라 반갑기라도 했던 건가?"쿵—.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한 발짝 더 다가와 내 귓가에 닿을 듯 말 듯 아주 낮게 속삭였다."아니면…… 이번에는 바닥 말고 벽을 닦으려고 왔
벽면의 기하학적인 거미줄 문양과 그 마디마다 박힌 흑색 점들이 내 시야 안에서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이건 단순히 누군가를 향한 저주 따위가 아니야. 황궁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거미집이지.'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한번 벽면에 손을 뻗었다. 내 안의 권능이 이 기묘한 어둠을 태워버리라고 속삭이는 듯했다.손끝에 서린 투명한 빛의 입자가 검은 마력과 부딪혀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기 직전이었다."어머, 루체른 영애께서는 황궁 벽지가 신기하셨나 보군요? 영지에서만 지내시느라 이런 화려한 장식은 처음
“폐하, 제국이 안정을 되찾았으니 이제 황실의 후계를 논하셔야 합니다. 부디 명망 높은 가문의 영애들을 황후와 황비로 들이심이…….”정무 회의실의 육중한 문이 거칠게 열리며 카엘루스가 걸어 나왔다. 뒤를 따르는 귀족들의 끈질긴 목소리가 복도의 정적을 어지럽혔다.불과 몇 년 전, 형제들을 모조리 베어 넘기고 피칠갑이 된 채 왕좌에 올랐던 그를 보며 숨조차 쉬지 못하던 자들이었다.제국에 평화가 깃들고 피 냄새가 옅어지자 이제는 하나둘씩 제 딸들을 밀어 넣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속셈이다.카엘루스가 우뚝 걸음을 멈추
황실 마차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대리석 바닥 위에 발을 내디뎠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숨 가쁘게 담을 넘고 달렸는데. 오늘은 정문으로, 그것도 황제가 보낸 마차를 타고 당당히 걸어 들어오다니.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공녀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마차 앞에서 나를 맞이한 건 제국 기사단장, 엘릭 경이었다.그는 우리 큰오빠 칼라일과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전쟁에서 생사를 함께한 절친한 친구이자, 제국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였다.“엘릭 경,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