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589화

작가: 꽃길
나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의자에 누워 읽기 시작했고 아주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지원 씨는 그림보다 훨씬 예쁘네요.”

막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던 참에 아주머니의 말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림이요? 무슨 그림?”

내가 물어보자 아주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강진혁 씨가 그린 그림이요. 전부 지원 씨에요. 위층 화실에 있더라고요.”

아까 테라스로 올라갈 때 2층을 지나가긴 했지만 방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화실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가장 놀라운 건 강진혁이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우리는 한 집에서 지냈다. 그가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는 건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 4년 동안 배운 걸까?

그리고 아주머니의 말처럼 그가 그린 그림이 전부 나라고?

나는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면서 뭔가 착각하신 게 아닐까 싶었다.

외국인이라서 동양인을 모두 비슷하게 보신 게 분명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결국 밥을 몇 입 대충 먹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화실이 어느 방인지 몰랐기에 방을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강진혁의 침실, 서재, 운동실, 드레스룸을 지나 마지막으로 닫혀 있는 문 앞에 섰다.

그 문은 다른 방들과 달리 잠겨 있었고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 문이 바로 화실임이 분명했다.

아주머니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나와 관련된 그림이 화실에 있다면 그 안이 어떨지 꼭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밀번호를 알 리가 없어 잠시 고민하다가 강진혁의 생일을 입력해 봤지만 틀렸다.

그의 생일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강진혁이 어떤 비밀번호를 설정했을지 생각해 보려 했지만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예전에 함께 지낼 때도 그는 말이 적었고 나는 온통 강유형에게만 신경을 쓰느라 강진혁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가 외국으로 떠난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90화

    그림 속에는 턱시도를 입은 한 남자가 나와 함께 서 있었고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행복과 달콤한 미소가 가득했다.이건 내 웨딩드레스 초상화였다. 그런데 남자의 얼굴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 신랑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혹시 강유형일까?예전에 그와 약혼을 준비하던 때, 강진혁이 이 그림을 그려서 우리에게 축하 선물로 주려고 했던 걸까?아니면... 이 남자가 강진혁 본인일까?솔직히 나는 후자 쪽이 더 가능성 있어 보였다. 방 안에 있는 모든 그림이 나를 그린 것이라면 그의 마음도 충분히 드러나 보였다.만약 내가 아직도 강진혁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어리석거나 둔감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방 안에서 느낀 것은 강진혁의 마음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오래되었다는 사실이었다.한숨을 내쉬며 방 안을 둘러보니, 이곳의 분위기가 갑작스레 숨 막힐 듯 느껴졌다.사랑받는다는 것, 특히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깊은 사랑을 받는다는 건 때로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결국 나는 빠르게 방을 나섰고 이곳에 머물기로 한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무엇보다 이 비밀을 알아버린 것이 후회됐다.다행히 강진혁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았고 내가 그것을 풀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스스로에게 그렇게 변명하며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시간제 아주머니가 집을 정리하고 있었고 그녀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지원 씨,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나는 멍하니 대답하며 소파로 걸어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머릿속도 어지럽고 마음도 가라앉지 않았다.“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아주머니가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러자 그녀는 1층의 한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저 방은 지원 씨를 위해 준비한 방이에요. 들어가서 조금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네, 조금만 앉아 있다가 들어갈게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91화

    내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아줌마, 저는 소희의 친구예요. 소희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걱정돼서 전화 드렸어요. 지금 상태가 어떤가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우리도 잘 몰라...애가 아무 말도 안 해.”소희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다가 결국 목이 메어와 말을 잇지 못했다.“아줌마...혹시 소희 남자 친구도 병원에 와 있나요?”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남자 친구?”소희 어머니는 순간 당황한 듯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반응을 보니, 소희의 부모님은 그녀가 연애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이 정도로 큰일이 벌어졌는데도 그녀의 남자 친구는 곁에 없다는 사실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사고가 그 남자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네가 말한 남자 친구가 누구야?”소희 어머니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다급하게 물었다.“아줌마, 이건 소희가 직접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지금 혹시 소희랑 통화할 수 있을까요? 윤지원이 통화하고 싶다고 전해주세요.”“그래, 그래. 네가 좀 설득해 봐.”소희 어머니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후, 아줌마는 소희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소희야, 네 친구 윤지원이야. 네가 얘기 좀 해보면 좋겠는데...”그 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마도 소희 어머니가 핸드폰을 소희 옆에 둔 듯했다.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소희야, 나야. 지금 휴링턴에 있어. 핸드폰이 고장 나서 네 메시지를 오늘에서야 확인했어.그러나 소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나는 목이 타는 듯한 답답함을 억누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혹시 무슨 힘든 일이 있었어? 아니면...누가 널 힘들게 했어? 그 사람이...네 남자 친구야?”여전히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자 이번에는 소희 어머니가 다급하게 나섰다.“소희야, 대답 좀 해라! 정말 그 남자 때문이야? 울지 말고 말 좀 해봐!”그제야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확신할 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92화

    “하하하...”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기괴하고 음산한 웃음소리였다. 그 순간, 그 웃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챘다.브라운!하지만 어떻게 강유형과 브라운이 같이 있는 거지? 설마, 헤르나가 말했던 배후 조종자가 정말 강유형이었던 걸까?이전에 한 번 의심했던 적이 있었던 만큼 그 가능성을 떠올리며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유형은 어디 있어? 당장 전화 바꿔.”“쯧쯧, 여전히 성격이 불같네. 네가 스누커할 때처럼 말이야.”브라운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비아냥댔고 나는 그의 장난에 일일이 대응할 생각이 없었다.“브라운, 대체 무슨 속셈이야?”“말했잖아. 그냥 너랑 스누커 한판 하고 싶을 뿐이라고.”그는 여전히 시시덕거리며 말했다.“참, 오늘 경기 꽤 잘했더라. 역시!”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칭찬은 처음으로 역겨움이 느껴졌다.“나랑 한판 하고 싶으면 먼저 강유형부터 바꿔.”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든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설령 날 납치하더라도 다시 그와 함께할 일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전화 바꾸는 것보다, 직접 와서 보는 게 어때? 네가 오면 강유형도 아주 반가워할 것 같은데?”브라운이 비꼬듯 말하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그렇지, 강유형?”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원아, 오지 마. 신경 쓰지 말고 진정우에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나는 순간 얼어붙었다.‘뭐지? 브라운과 한패가 아니었나? 왜 강유형의 목소리는 마치 납치당한 사람처럼 들리는 거지?’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브라운은 장난기 하나 없이 단도직입적이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강유형을 직접 보고 싶으면 내가 보낸 주소로 와. 그런데 만약 오지 않으면 나는 그를 하늘나라로 보내서 예수님께 죄를 참회하도록 도와줄 생각이야. 마침, 네가 그를 배신한 죄도 함께 참회하면 좋겠고.”“지원아, 제발 저 말 듣지 마! 절대 오지 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93화

    나는 순간 당황했다. 단순히 강유형을 구하라는 게 아니라, 브라운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경고하려던 거였는데 말이다.“주소 보내.”진정우는 짧게 말하더니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멍하니 휴대폰을 들고 몇 초간 서 있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카톡을 열어 주소를 전송했다.그런데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문득 마지막 대화 내용을 보게 되었다.그걸 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답답해져 나는 얼른 채팅창을 닫아버렸다.그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신지태였다. 순간적으로 콧등이 시큰해졌고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슴 한구석이 복잡해졌다.“여보세요.”“강유형이 브라운한테 잡혔다고? 확실한 거야?”신지태는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후, 덧붙였다.“강유형이 분명 맞고 있었어. 그리고... 헤르나가 말하기를, 이번 일의 배후 조종자가 따로 있을 수도 있다고 했어.”“배후 조종자?”신지태의 목소리에 놀람이 섞였다.“응. 그런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처음에는 혹시 강유형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그가 브라운한테 납치당한 걸 보면 절대 아닐 거야.”나는 한때 강유형을 의심했기에 말하면서도 마음이 찜찜했다.그가 나를 배신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나를 해칠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단 한 번도 해를 가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여러 번 도와주기까지 했는데 그런 사람을 함부로 의심했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내가 너무 소인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알겠어. 이건 내가 진정우한테 바로 얘기할게.”신지태의 말에서 확실히 이번 작전의 중심은 진정우라는 걸 알 수 있었다.“제발, 최대한 빨리 강유형을 구해줘.”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브라운 같은 인간이라면 언제 어떻게 강유형을 다치게 할지 몰랐다.강유형은 희귀한 혈액형 때문에 절대 과다 출혈을 겪어서는 안 된다.“알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절대 섣불리 움직이지 마. 브라운이 널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94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용설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놔!”그 말과 동시에, 그녀가 순식간에 달려와 두 남자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나는 처음으로 용설아가 이렇게 싸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의 동작은 빠르고 정확했으며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묵직한 힘이 실려 있어 그 기세에 두 남자는 나를 놔두고 그녀와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나는 그 광경에 압도당해 멍하니 서 있었고 순간적으로 두려움조차 잊을 정도였다.하지만 몇 초 후, 정신을 차리고 곧장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 안에 있던 야구 배트를 집어 들기 위해서였다.나는 무술을 할 줄 모르지만 힘은 있었다. 게다가 용설아 혼자 두 명을 상대하게 둘 수 없었다.속에 쌓여 있던 분노 때문인지,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힘이 실렸고 그렇게 몇 번이나 내려치자, 결국 두 남자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그 남자는 내 손에서 야구 배트를 빼앗으려 했지만 그 순간, 용설아의 강한 발차기가 놈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가격했다.그러자 그는 비틀거렸고 덕분에 나는 무기를 뺏기지 않은 채로 용설아와 힘을 합쳐 두 남자를 상대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두 남자는 우리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에 나가떨어졌다.“누가 보낸 놈들이야?”용설아가 바닥에 쓰러진 남자들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물었고 나는 여전히 야구 배트를 꽉 쥔 채 손과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살면서 이렇게까지 사람을 세게 때려본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동안 마음속 깊이 쌓여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두 남자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들이 브라운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명백했다. 그들이 나를 찾아낸 것도, 내가 강유형과 통화한 걸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입 다물고 있겠다고? 그럼 그냥 여기 못 나가겠네.”용설아가 차분히 말하며 나를 돌아보았다.“뭐든 묶을 거 좀 찾아주세요.”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강진혁의 침실로 향했다. 집 안에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95화

    나는 바닥에 쓰러진 두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여기도 안전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용설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긴 하죠. 하지만 가야 할지 말지는 진정우가 결정하는 게 좋겠어요. 제가 함부로 결정을 내릴 수 없어서.”나는 순간‘설아 씨는 정우의 약혼녀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굳이 그런 감정 섞인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고 괜히 말하면 내가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그때 용설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일단 안에서 기다립시다. 계속 서 있으면 피곤하잖아요?”그녀는 마치 이곳이 자신의 집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나는 바닥에 묶여 있는 두 남자를 한 번 더 바라보자 용설아가 태연하게 덧붙였다.“걱정하지 마세요. 도망 못 가니까.”용설아가 직접 때려잡고 묶기까지 했으니 나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나는 용설아를 따라 거실로 들어왔고 그녀는 소파에 앉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여기 분위기 좋네요. 딱 봐도 여자가 꾸민 집 같은데요?”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같은 생각을 했었다.“그건 잘 모르겠어요.”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사실 아까 강진혁의 방까지 둘러봤지만 여성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굳이 꼽자면 오직 화실 속의 그림들 그리고 그 그림 속의 여자는... 전부 나였다.용설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편하게 소파에 기대앉았고 나는 그녀를 따라 앉으며 말했다.“밖에 있던 놈들, 브라운이 보낸 거겠죠?”“당연하죠.”용설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조금만 기다리면 정우가 와서 지원 씨 사람을 구해줄 거예요.”그녀의 태연한 말투에 나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말 속에서 마치 강유형이 내 남자라는 의미가 담긴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하지만 브라운과 엮인 일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더 이상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어차피 그녀에게 내 입장을 설명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고 괜히 설명했다가 아직도 진정우한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96화

    용설아는 정말 할 말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마주하며 나도 미소를 지었다.“싫어요.”“준호가 마음에 안 들어요?”용설아가 태연하게 묻자 나 역시 거침없이 대답했다.“네. 싫어요. 그리고... 용준호랑 결혼하면 제가 설아 씨랑 진정우를 뭐라고 불러야 해요? 제 서열이 내려가는 거잖아요.”“하하하!”용설아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렇네요. 그건 좀 곤란하겠다.”나는 장난스레 덧붙였다.“솔직히 용씨 집안 사람이랑 결혼해야 한다면 차라리 설아 씨 오빠를 선택하죠. 나이 좀 많긴 하지만 돈도 많고 저보다 먼저 죽을 확률이 높잖아요. 그럼 그의 재산은 전부 내 거고 결정적으로 설아 씨랑 진정우가 저를 공손하게 대해야 할 테니까.”용설아는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좋은 생각인데요? 근데 제 올케부터 어떻게 좀 해야 할 걸요? 그리고 함소은 씨라는 관문도 넘어야 하고.”그녀는 자신의 오빠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더 이상 장난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 본론을 꺼냈다.“설아 씨,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잖아요. 굳이 이렇게 중매를 서는 이유가 뭐죠? 제 인생은 제가 결정해요.”그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럼 지원 씨는 노력이라도 해봤어요? 예를 들면 아직 진정우를 좋아하면서도 그냥 포기하는 거라면? 왜 한 번이라도 더 잡아보지 않았어요?”그녀는 너무도 당연한 듯이 물었고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럴 가치가 없어요.”그 순간, 그녀의 웃음이 점차 사라지면서 표정이 차분해졌고 한동안 나를 말없이 바라봤다.“지원 씨, 난 당신이 진정우를 그렇게까지 사랑한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미묘한 감정을 느꼈지만 반박할 이유도 없었다.“만약 저라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날 떠났다 해도, 그딴 이유는 상관없이 끝까지 매달렸을 거예요. 절대 놓지 않죠.”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저는 용설아 씨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집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597화

    나는 의문을 품으며 다시 위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번에는 한 장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읽어 나갔다.그러다 한 페이지에서 눈길이 멈췄다. 날짜를 보니, 강진혁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이었고 그곳에는 짧은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1,400일이 넘는 날들을 보내고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1,400일, 정확히 4년이었다.나는 숨을 죽이며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앞의 글자가 선명하게 박혔다.[그녀는 마침내 남의 아내가 되었다.]나는 본능적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그 날짜는 바로 내가 강유형과 혼인 신고를 하려던 날이었다.그날, 우리의 신혼집에 조나연이 살고 있는 걸 확인하고 나는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강유형과 완전히 결별했다.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다시 페이지를 넘기려던 순간, 문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일기를 계속 볼 수 없었다. 나는 급히 일기장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거실 문 앞, 용설아가 먼저 나가 문을 열었더니 진정우가 이미 와 있었다.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 중 한 명의 턱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낮게 말했다.“입을 열든가, 아니면 영원히 다물고 살게 해줄게.”그 차가운 말투와 태도에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런 진정우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바닥에 묶여 있는 두 남자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자 진정우는 발에 힘을 주어 턱을 한 번 더 강하게 차올렸다.“크윽...!”“윽...!”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놈들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면서 피가 섞인 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브라운이 보낸 건 확실해.”용설아가 말하며 나를 돌아보았다.“지원 씨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어.”진정우도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차분하게 말했다.“나, 한국으로 돌아갈래.”그러자 진정우의 턱이 살짝 굳어졌고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입을 열었다.“좋아. 보내줄게.”그는

최신 챕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8화

    조시언은 아예 강진혁과 정면으로 맞붙을 작정으로 보였다.강진혁은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 일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면 그도 마냥 가만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조시언이 강진혁의 영역에서 이토록 기세등등한 걸 보면 분명 무언가 대비책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조시언이 귀국한 지는 겨우 몇 달 남짓한데 어떤 수를 숨기고 있는지, 무슨 힘이 있는지 궁금했다.잠시 혼란스러웠다. 강진혁은 조시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언제나 조용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고 귀국한 후에도 특별히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강진혁은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그런데 그가 이렇게 자기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강진혁이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 별의별 인간들을 다 상대해 봤고 그런 그에게 이름도 낯선 조시언 따위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파도를 일으키기는커녕 물결 하나 일렁이기도 어려운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시언 씨께서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추시겠다고 하시니 그럼 이 자리에서 내일 장례식까지 천천히 기다리시죠.”말을 마친 그는 손을 살짝 내저었다.그 즉시 출입구 쪽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조시언 쪽 사람들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나도 갑작스럽게 누군가에게 끌려 나와 강유형의 뒤에 숨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자기 자신조차 지키기 어려운 처지였다.나는 그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키 차이가 이렇게나 많이 났다는 것을 말이다. 널찍한 등 너머의 세상을 볼 수조차 없을 만큼 듬직했다.생각해 보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늘 이정도 키 차이를 유지했었던 것 같다. 그는 늘 이렇게 내 위를 지키고 있었다.학창 시절에 나는 어떤 불량 학생의 고백을 거절해 골목길에서 애들한테 둘러싸여 봉변을 당할 뻔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도 강유형이 나타나 나를 자기 뒤로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녀석들과 맞붙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7화

    “안리영 씨가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생기진 않았을 겁니다. 조시언 씨가 직접 오셨으니 이제 그쪽 사람 데리고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강진혁의 말투엔 조시언이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조시언의 맑고 단정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강 대표님은 우리 조씨 가문을 우습게 보시는 모양이네요. 사람을 붙잡았다 풀었다, 본인 마음대로 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강진혁도 알고 있었다. 조시언이 이곳에 온 이유가 안리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서로 적당히 선을 넘지 않으며 겉치레투성이인 말만 주고받는 것도 결국엔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계산에서였다.하지만 지금 보니 조시언은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리고 지금 강진혁의 입지는 예전만 못했다. 용준호와의 협력도 끊겼고 강유형과도 더 이상 같은 편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혼자 싸우는 상황이었다.그러니 적이 하나라도 줄면 그만큼 신경 쓸 일도 줄어들 터였다.“그럼 원하는 게 뭡니까? 내가 사과라도 하길 바라는 겁니까?”강진혁은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그러자 조시언은 고개를 돌려 안리영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그건 저한테 물을 일이 아니죠. 얘한테 물어보셔야죠.”강진혁의 턱 근육이 일렁였다. 명백히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강진혁더러 안리영에게 사과하라고 한 건 사과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의도였다.그는 남에게 무시당하는 걸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조시언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 오랫동안 눌러왔던 분노가 마침내 터지려 하고 있었다.“보아하니, 조시언 씨가 원하는 건 사과가 아니라 우리 강씨 가문의 일에 끼어들려는 거군요?”강진혁은 노골적으로 말을 꺼냈다.조시언은 태연하게 말했다.“그럴 생각은 없습니다.”“없으면 그만 가시죠.”강진혁은 대놓고 내쫓는 듯한 말을 뱉었다.조시언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곤 안리영을 바라보았다.“리영아, 가자.”하지만 안리영은 곁에 있는 친구를 두고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6화

    나는 소화기를 들어 올리는 그 순간부터 그와 함께 끝장을 볼 각오를 했다.강진혁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는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언제든지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함께 파멸로 끌고 갈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지원아.”강유형이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무모하게 나서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그가 두려워한 건 내가 강진혁을 해칠까 봐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다칠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하지만 내 위협은 강진혁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는 우리를 깔보듯 훑어보며 한심한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그럴 만도 했다. 강유형은 그에게 당해 지금 몸조차 가누지 못했고 가사도우미는 나이가 지긋했다. 게다가 나는 임신 중인 몸이었다. 그러니 그는 무서울 게 없었다.“윤지원, 사람은 눈치를 살필 줄 알아야 해. 지금 상황을 봐, 내 편에 서는 것만이 네가 살 길이야. 너도 네 아이가 엄마, 아빠 없이 살아가길 바라진 않을 거 아니야. 태어나기도 전에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사라지길 원하니?”“진정우가 준 물건만 내놓으면 너희 세 식구를 무사히 지켜줄게. 게다가 부귀영화까지 누릴 수 있게 해주지. 그때 가서 계속 여기에서 살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든 마음대로 해도 좋아.”이런 상황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유혹하려 들었다.“강진혁, 그렇게는 안 돼. 그런 식으로 살다간 나중에 내 아이 앞에서 고개도 들 수 없을 거야. 만약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더러운 거래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나를 원망하게 될 거야.”그 말을 내뱉는 순간 아랫배가 꿈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고작 한 달을 채운 아기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생각해 보면 이 아이의 존재는 하늘이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진정우가 배성재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왔던 그날,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생겨난 기적이었다.강진혁은 코웃음을 쳤다.“그래? 그렇다면 더 할 말은 없군.”그 말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5화

    이 차는 강씨 가문의 아름다웠던 기억인 동시에 강진혁이 부모님과 강유형을 원망하기 시작한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강유형을 이곳에 가둬뒀을 거라 확신했다.나는 곧장 그 차를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 문 가장자리의 먼지가 문질러져 벗겨진 흔적이 보였다.내 예상이 적중했다.“강유형.”나는 그를 부르며 차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당연히 열리지 않았다.나는 손으로 유리 위의 먼지를 닦아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손발이 묶인 채 뒷좌석에 누워 있는 강유형이 보였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강유형, 강유형...” 나는 다급히 그를 불렀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절한 듯했다.어떻게 강유형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강진혁은 정말 사람이기를 포기한 셈으로 보였다.이제 와서 열쇠를 찾으러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구석에 놓인 소화기를 발견했다. 곧장 달려가 그것을 들고 차 유리에 힘껏 내리쳤다.차 유리의 강도를 너무 얕본 탓일까, 두 번을 내리쳤는데도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있는 힘껏 내리칠 수도 없었다. 내 뱃속의 아기는 작은 충격에도 버티기 힘들 테니 말이다.“지원 씨.”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제가 할게요.”그녀는 내 손에서 소화기를 받아 들고 전보다 더 힘차게 차 유리를 내리쳤다. 두어 번의 충격 끝에 유리는 방사형으로 금이 가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내리쳐 마침내 유리에 구멍을 냈다. 그녀는 손을 넣어 안쪽의 잠금장치를 열었다.“강유형, 정신 차려, 정신 좀 차려봐.”나는 그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지원아...”나와 가사도우미는 그를 부축해 앉혔고 손발에 묶인 끈을 풀어 주었다. 정신을 되찾은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형이 한 짓이야.”“아마 삼촌 장례식을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4화

    강유형이 여태껏 안 보이던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강진혁이 그를 가둬둔 것이다.안리영의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는 정말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까지 수작을 부렸다.용준호는 이미 처리됐고 강유형마저 가둬두었으니 이제 남은 건 강진혁, 그 혼자뿐이었다. 모든 결정권이 그의 손에 넘어갔다.사람들은 말한다. 사내는 독해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언제나 점잖고 다정하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혈육도 모르는 체하는 악마가 되어 있었다.“지원아, 그이를 구할 사람, 너밖에 없어...”김희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더욱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내게 몰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자신도 강진혁한테 잡혀 갇힐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눈을 감고 못 본 척해야만 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자식에게 두려움을 느껴서라기보다는 그녀에게 아직 다하지 못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강두식은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먼저 떠났으니 그녀에게 삶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그저 가장 사랑했던 이의 곁을 지키고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싶을 뿐이었다.나는 그녀를 달래고는 조용히 안리영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내가 강진혁을 붙잡고 있을게. 넌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강유형을 구해.”안리영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내가?”지금껏 메스만 들어본 그녀였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곳엔 우리 둘뿐이었고 그녀 외엔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망설임도 잠시 안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김희연은 몸을 휘청이더니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은 척했다.강진혁은 얼른 그녀를 안아 침실로 옮겼고 안리영은 의사라는 이유로 당연히 함께 불려 들어갔다.나와 안리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역할을 바꿨다. 그녀가 강진혁을 붙잡아두는 사이, 나는 강유형을 구하러 나섰다.“혈압이 너무 높아요. 혹시 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3화

    “의료사고는 병원이나 의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고 도 선생님도 복직하셨어. 다만...”안리영은 말을 잠시 멈췄다.“다른 병원으로 전근 가셨어.”며칠 동안 병원에 머물면서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이번 사고 때문에 전근 가신 거야?”“응. 조사 결과 산모의 죽음은 도 선생님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그녀 손에 죽었다는 사실만 보고 이 모든 게 그녀의 책임이라고 여기는 거지.”안리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씁쓸히 말했다.“사람들의 입이 제일 무서워. 가볍게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다들 몰라.”그 말의 뜻은 도 선생님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했다. 그녀도 지난 세월 동안 유가족들에게 오해받고 괴로워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우리 리영이, 마음고생 많았겠네.”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맞는 말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장 고달프다고 느끼지만 정작 우리가 겪는 고통은 이 세상 온갖 아픔 중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출관하는 날, 하늘에선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하늘조차 이 아픔을 가엾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나는 안리영과 함께 강씨 가문에 도착했다. 저 멀리 길 양쪽으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강두식은 평생을 업계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를 애도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강씨댁 대문 앞엔 흰 보가 드리워져 있었고 양옆에는 추모의 글귀가 붙어 있었다. 문 앞에 서기만 해도 가슴 속으로 서늘한 기운이 파고들었다.“조금 있다가 아주머니 뵙게 될 텐데 감정 조절 잘 해야 해. 흥분하면 안 돼.”안리영이 걱정된다는 듯이 당부했다.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조절되는 거라면 이 세상엔 그렇게 많은 희로애락도 없었을 것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2화

    강유형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온몸에 힘이 빠진 듯했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입술을 살짝 떨며 말을 꺼냈다.“엄마가 그러는데, 아빠가... 돌아가셨대.”강진혁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는지 별다른 반응도, 놀라움도 없었다.둘은 말없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강진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가자.”그때 마침 강유형이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잠결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나는 어지럽고 복잡한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헤매고 있었다.그 전화는 마치 구명줄처럼 나를 그 혼란스러운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꿈에서 너무 많은 힘을 빼버려서 그런지 목소리가 흐물거렸다.“여보세요...”“지원아.”강유형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고 그 뒤로 말이 없었다.“무슨 일이야?”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흐물거리며 물었다.“아빠... 오늘 가셨대.”강유형의 목소리는 깊고도 낮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 소리가 너무 크고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시간조차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강두식은 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그는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었고 그로 인해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그 애매한 감정은 늘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그래서 김희연이 나더러 집에 한번 들르라고 부탁했을 때, 그러겠다고 했지만 결국엔 가지 못했다.이제 강두식은 세상을 떠났다. 더는 그를 볼 수도, 마주할 수도 없게 되었다.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그 틈 사이로 강유형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이제 난 아버지가 없어.”이런 영원한 상실이라는 감정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안다. 우리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지만 그날 느낀 망연자실한 공포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깊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1화

    김희연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 약속한 거야...”나는 인터넷에서 용준호가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진과 영상도 함께 올라왔고 댓글에는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줄을 지었다. 조직 연루설도 떠돌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강유형이 사람을 시켜 한 짓이었다.나만 아는 것도 아니었다.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강진혁은 그 일로 그를 찾아왔다.“네가 용준호를 건드렸지? 살 만큼 살았다는 거야? 죽고 싶은 거냐고.”그는 날 선 질책을 던졌다.“그런가 봐. 불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니 말이야.”강유형은 비웃는 듯한 말투로 빈정거렸다.강진혁은 그 말속의 숨은 뜻을 알아챈 듯했다. 하지만 따로 더 설명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은신처 마련해줄게. 용진표가 널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해.”“오라고 해.”강유형은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였다.“허.”강진혁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넌 아직도 우리 아버지가 예전 그 모습인 줄 아는 거야? 지금 어떤 상황인지 너도 잘 알잖아. 용진표는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봐주지 않을 거라고.”강유형은 소파에 늘어져 앉아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렸다. 두 다리를 교차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셔츠 단추도 몇 개 풀어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태평한 모습이었다.“내가 언제 아버지 힘을 빌린 적이 있었나?”그는 입술을 살짝 내밀며 말했다.“형, 형은 늘 부모님이 나를 더 사랑하고 유산도 나한테 물려준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형이 모르는 게 있어. 내가 넘겨받은 건 용씨 가문에 다 털리고 껍데기만 남은 KS 그룹이었어. 내가 하나하나 다시 살을 붙이고 키워서 지금처럼 만들어낸 거야. 결국엔 용씨 가문을 내 발밑에서 기어다니게 만들었지.”강진혁의 길고 가는 눈이 안경 너머로 조소를 띠며 번뜩였다.“지금 그 말은 모든 걸 네 실력으로 해냈다고 자랑하는 거야? 부모님이 KS를 너한테 물려준 게 네가 나보다 더 유능해서라고 주장하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800화

    “아무 일도 아니야”안리영은 휴대폰을 끄며 말했다.저 말의 뜻은 대개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기에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아마 구안석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연이 끊겼어도 실처럼 미련이 남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나도 강유형과 헤어진 지 꽤 되었고 이미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와 완전히 끝맺지 못한 채 이리저리 얽히고 있었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외의 다른 끈들이 남아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임신한 사실을 김희연이 알게 되었고 그녀는 보양식을 한가득 들고 나를 찾아왔다.“참 잘됐다. 지원이도 이제 엄마가 되는구나.”“지원아, 병원은 아무래도 환경이 좋지 않고 먹는 것도 부실하잖니. 집으로 돌아가렴. 아줌마가 돌봐줄게.”...그녀의 얼굴은 기쁨과 감격으로 흘러넘쳤다. 내 아이가 강씨 가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난 더 이상 그녀의 며느리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가 키운 딸이나 마찬가지인 것에서 비롯된 기쁨이었다.비록 우리 부모님의 죽음에 강씨 가문의 책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강씨 가문에서 보낸 10년 동안 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 준 것만은 진심이었다. 그게 죄책감에서 비롯된 감정일지라도 나는 그 사랑을 절실히 느꼈고 실감하며 받아들였다.“아줌마, 삼촌도 돌보셔야 하잖아요. 저까지 돌보시면 너무 힘드실 거예요. 그리고 아무래도 병원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기면 의사 선생님이 바로 달려올 수 있으니까요.”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두 아들과 나 사이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었다.강유형은 나를 향한 마음을 다 떨쳐내지 못했고 강진혁은 나를 노리는 듯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다시 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그야말로 스스로 불길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게다가 어떤 일들은 내려놓았다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면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