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엄마가 사진관 유리창 안에서 손을 크게 흔든다.
나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엄마를 본다.
“들어왔어. 그만 흔들어.”
“이리 오라는 거야.”
“손으로 부를 거리도 아니잖아.”
엄마는 보정 마우스를 두 번 누른다. 화면 속 손님의 턱이 조금 좁아진다.
내 주말도 같이 좁아지는 중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공원에서 내려오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오늘은 집에서 내려오자마자 잡는다.
4월 18일 토요일 저녁.
나는 골목냉면에 가는 중이다. 정확히는 아직 사진관 문도 못 나섰다.
“두 번째 만남은 사진이야.”
엄마가 말한다.
“밥인데.”
“밥도 먹고 사진도 찍고.”
“냉면 먹는다니까?”
“그럼 냉면 앞에서 찍어.”
엄마가 내 단발 끝을 본다. 손이 올라온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선다.
“머리 건들지 마.”
“한쪽만 뻗쳤잖아.”
“양쪽으로 뻗치면 돼?”
“말을 그렇게 받지 말고.”
엄마의 손이 내 머리 대신 어깨를 툭 친다.
나는 방수 가방 끈을 고쳐 멘다.
“엄마는 사진이 그렇게 좋아?”
“내가 이걸로 널 키웠어.”
뒤쪽 손님 의자에 앉은 아주머니가 웃는다.
반박할 말이 없다. 나는 입을 다문다.
엄마는 그 틈에 휴대폰을 들어 내 쪽으로 흔든다.
“둘이 같이 나온 거. 얼굴 다 보이게. 밥그릇만 보내면 안 돼.”
“알았어.”
“범준이 혼자 찍어서 보내도 안 되고.”
나는 문을 연다.
찬바람보다 엄마 말이 먼저 따라 나온다.
“눈 감으면 다시 찍어!”
길 건너 명숙부동산 문도 열린다.
범준이 검은 백팩을 메고 나온다. 뒤에서 명숙 아줌마가 느리게 말한다.
“범준아. 두 번째 만남은 사진.”
나는 문손잡이를 놓지 못한다.
범준도 부동산 문 앞에서 멈춘다.
우리가 서로를 본다.
“너도?”
“응.”
명숙 아줌마가 안경을 올린다.
“냉면 나오면 찍어. 나오기 전에 찍으면 뭐 먹었는지 모르잖아. 그렇지?”
엄마가 사진관 문을 더 밀고 나온다.
“얼굴도 보여야 된다니까?”
“얼굴하고 냉면 같이.”
명숙 아줌마의 말은 짧다.
엄마는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우리 밥 먹으러 가는 거 맞지?”
“그럼 밥 안 먹고 사진만 찍게?”
엄마가 묻는다.
나는 범준 쪽으로 걷는다.
“됐고. 가자.”
범준이 내 가방을 본다.
“어디까지 메고 왔어.”
“위층에서.”
“냉면 먹는데 물병도 챙겼어?”
나는 가방 옆에 꽂힌 1리터 물병을 내려다본다.
“늘 챙기는 거야.”
“알아. 여기 조금 젖었다.”
범준이 가방 끈 끝을 가리킨다.
나는 젖은 곳이 옷에 닿지 않게 끈을 돌린다. 뒤에서 엄마 목소리가 또 들린다.
“사진!”
명숙 아줌마의 목소리도 따라온다.
“냉면 나오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손만 든다.
‘주말에 한 번. 사진 한 장.’
말로 할 때는 간단했다.
찍기도 전에 요구가 붙는다.
· · ·
골목냉면 벽에는 메뉴판이 크게 붙어 있다.
물냉면 11,000원.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가리킨다.
“저거.”
범준이 물병을 내 쪽으로 밀어 준다.
“나도.”
주문을 받은 아주머니가 주방 쪽으로 돌아간다.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휴대폰을 꺼낸다.
범준이 물을 따른다.
내 컵부터.
늘 그러니까 아무 말 없이 받는다.
휴대폰 화면에 내 얼굴을 띄운 다음에야 컵을 내려놓는다.
‘지금 찍어도 되지 않나.’
엄마는 얼굴을 보자고 했고, 명숙 아줌마는 냉면을 보자고 했다.
얼굴을 먼저 보내고 냉면을 따로 보내면 두 사람 다 만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진은 한 장이다.
내가 정했다. 늘릴 이유가 없다.
나는 앞쪽 카메라를 켠다.
“연습.”
범준이 고개를 든다.
“뭘.”
“사진. 음식 나오면 바로 찍게.”
“그냥 찍으면 되잖아.”
“너랑 나랑 같이 찍은 게 언제인데.”
범준이 잠깐 생각한다.
“사진관에서.”
“엄마가 찍어 준 거 말고.”
“그럼 없나.”
나는 휴대폰을 내린다.
20년이나 알았는데 우리끼리 찍은 사진은 바로 생각이 안 난다.
엄마가 시키면 어깨를 붙이고, 웃으라면 웃고, 끝나면 각자 움직였다.
지금은 엄마가 없다.
휴대폰 너머로 지시하는 글만 있다.
“일단 들어와 봐.”
내가 팔을 뻗는다.
범준이 상체를 앞으로 숙인다. 화면 오른쪽에 얼굴이 반쯤 들어온다.
나는 팔을 더 뻗는다.
“너 다 안 나와.”
“옆으로 돌려.”
“가로?”
“응.”
화면을 돌린다.
내 얼굴도 범준 얼굴도 다 보인다. 문제는 그 사이에 있는 물병이다.
물병이 우리보다 또렷하다.
나는 첫 사진을 찍고 확인한다.
“이건 안 돼.”
범준이 화면을 본다.
“물병 치우면 되겠네.”
“너 표정도.”
“왜.”
“증명사진 같아.”
“웃어?”
“조금.”
범준 눈이 가늘어진다.
나는 물병을 옆으로 밀고 다시 팔을 든다.
두 번째 사진을 찍는다.
이번에는 범준 얼굴이 멀쩡하다.
내가 눈을 감는다.
“너 눈 감았어.”
“봤어. 말로 확인 안 해도 돼.”
나는 사진을 지운다.
범준이 물컵을 내려놓는다.
“내가 들까?”
“내 손이 더 익숙해.”
“그럼 네가 봐.”
나는 화면을 본다.
범준은 렌즈를 본다.
내 시선은 아래로, 범준 시선은 위로 간다.
찍기 전부터 따로 논다.
“어딜 봐야 돼?”
“여기.”
범준이 휴대폰 위쪽을 가리킨다.
“손 치워. 네 손 찍힌다.”
범준이 손을 내린다.
나는 렌즈를 보고 입술을 올린다.
사진 찍는 데도 예행연습이 필요하다니.
“자. 셋 하면.”
“응.”
“하나, 둘.”
범준이 갑자기 말한다.
“하늬 씨.”
손가락이 화면을 누른다.
찰칵 소리가 난다.
나는 휴대폰을 내린다.
“누구?”
범준이 자기 팔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린다.
나도 목 뒤를 만진다.
“다시는 하지 마.”
“나도 이상해.”
“왜 했는데?”
“맞선 사진이라며.”
“사진에는 목소리 안 나와.”
범준이 입을 다문다.
나는 방금 찍은 사진을 본다.
범준은 웃기 직전이고, 나는 입이 벌어져 있다.
딱 봐도 누가 이상한 소리를 한 얼굴이다.
“이것도 못 보내.”
범준이 내 화면을 보고 웃는다.
그 표정은 괜찮다.
그런데 휴대폰을 들면 또 안 나올 거다. 나는 팔을 내려 테이블에 놓는다.
“세 번 찍었는데 하나도 못 써.”
“그냥 밥 먹다가 찍자.”
“엄마는 눈 감으면 다시 찍으래.”
“뜨고 먹어.”
“냉면 먹을 때 눈 감는 사람 봤어?”
범준이 대답하려다가 내 어깨 쪽을 본다.
“팔 내려. 계속 들지 말고.”
나는 오른팔을 테이블 아래로 내린다.
휴대폰은 왼손으로 옮긴다.
범준은 내가 팔을 내린 걸 보고서야 자기 컵을 든다.
나는 화면을 꺼 놓는다.
“이번 한 번만 더 찍어.”
“냉면 나오면.”
명숙 아줌마랑 같은 말을 한다.
나는 웃다가 물을 마신다.
· · ·
냉면 두 그릇이 테이블에 놓인다.
금속 그릇 가장자리에 물방울이 맺힌다. 가운데 달걀 반쪽이 흔들리지 않게 얹혀 있다.
나는 바로 휴대폰을 들려다가 멈춘다.
범준이 가위를 집기 때문이다.
내 그릇을 조금 당긴다.
첫 번째.
길게 뭉친 면을 가운데서 자른다.
두 번째.
가위 방향을 돌려 다시 자른다.
세 번째, 네 번째.
나는 가위를 따라 눈만 움직인다.
“네 번.”
범준이 가위를 자기 그릇 쪽으로 옮긴다.
“응.”
“오늘은 내가 안 부탁했는데.”
“늘 네 번 자르잖아.”
“내가?”
“안 자르면 길다고 하고, 더 자르면 건질 게 없다고 하고.”
나는 젓가락을 든다.
할 말이 정확히 저 두 가지라 잠깐 조용해진다.
범준은 자기 면을 자른 다음 가위를 접시 위에 놓는다.
나는 겨자통을 집는다.
뚜껑을 잡고 돌린다.
안 열린다.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역시 안 열린다.
손에 물기가 있어서 그렇다. 나는 휴지로 손가락을 닦는다.
다시 잡는다.
뚜껑보다 통이 먼저 찌그러진다.
범준이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나는 통을 몸 쪽으로 당긴다.
“잠깐. 할 수 있어.”
범준은 기다린다.
나는 겨자통을 한 번 더 비튼다.
손바닥이 미끄러진다.
‘하나, 둘, 셋.’
셋까지 세고 다시 돌리는데도 안 열린다.
나는 통을 테이블 가운데에 놓는다.
“이거 누가 잠갔어.”
범준이 가져간다.
돌린다.
열린다.
나는 열린 뚜껑을 본다.
“아까 내가 풀어 놔서 그래.”
“응.”
“네가 힘이 좋은 게 아니라.”
“알았어.”
범준이 내 냉면에 겨자를 넣는다.
조금 짠 다음 멈춘다. 내 얼굴을 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큼이면 됐다.
범준은 뚜껑을 닫아 테이블 한쪽에 둔다.
나는 젓가락으로 면을 풀기 전에 휴대폰부터 찾는다.
범준이 물컵을 치운다.
“지금?”
“응. 냉면 없어지기 전에.”
이번에는 범준도 몸을 조금 옆으로 기울인다.
나는 왼팔을 뻗는다. 두 얼굴 아래로 냉면 그릇이 보인다.
그런데 또 범준이 너무 똑바로 앉는다.
“평소처럼 해.”
“평소에 사진 안 찍잖아.”
“그러니까. 그냥 나 봐.”
범준이 나를 본다.
나는 화면을 본다.
“아니. 나 말고 여기.”
범준이 렌즈 쪽으로 눈을 돌린다.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참으려고 하니까 입술이 자꾸 벌어진다.
“우리 냉면 다 불겠다.”
“찍어.”
“눈 감지 마.”
“너한테 해.”
나는 웃으면서 화면을 누른다.
네 번째 사진.
드디어 눈이 다 떠 있다.
범준도 웃고 있다.
내 앞 냉면에는 아직 섞지 않은 겨자가 조금 떠 있다. 가위는 범준 그릇 옆에 있다.
나는 화면을 확대했다가 줄인다.
“됐다.”
범준이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보내.”
“먹고. 답장 오면 또 시킬 것 같아.”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는다.
우선 한 젓가락부터다.
면을 들어 올리는데 적당한 길이로 따라온다.
범준이 맞은편에서 먹기 시작한다.
그때 옆자리 아저씨가 겨자통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거 잠깐 쓸게요.”
나는 통을 조금 밀어 드린다.
“네.”
아저씨가 뚜껑을 연다.
또 쉽게 열린다.
나는 못 본 척 면을 집는다.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웃는다.
“오래 사귀셨나 봐요.”
면이 젓가락에서 내려온다.
나는 고개를 든다.
“저희요?”
“자르는 것도 알아서 해 주고. 우리 집 사람은 꼭 더 잘라 달라고 하거든.”
아저씨 앞에는 혼자 먹는 냉면이 있다.
말끝에 웃음이 붙어 있어서 나도 일단 웃는다.
“오래 알기는 했어요.”
“그래요? 그래서 편해 보였구나.”
아저씨는 겨자통을 돌려주고 자기 그릇으로 고개를 숙인다.
내가 친구라고 덧붙일 틈은 없다.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오래 안 건 맞으니까.
나는 냉면을 섞는다.
범준은 내 젓가락 끝을 보다가 자기 냉면을 먹는다.
“사진보다 이게 쉽다.”
내가 말한다.
“뭐가.”
“같이 밥 먹는 거.”
“늘 먹었잖아.”
“그러니까. 처음 만난 사람이었으면 메뉴부터 설명해야 돼.”
“물냉면 설명을?”
“좋아하는 거. 못 먹는 거. 면 얼마나 자르는 거.”
범준이 가위를 본다.
“네 번.”
“그런 거.”
범준은 대답 없이 내 쪽에 놓인 휴지를 가까이 밀어 준다.
나는 입가를 닦는다.
사진 속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지 생각했는데, 먹을 때는 생각할 게 없다.
그래서 조금 이상하다.
잘되는 척하는 데 쓸 사진을 찍으러 왔는데, 사진만 제일 어렵다.
· · ·
나는 달걀을 반으로 나누려다 그대로 집어 먹는다.
범준이 내 그릇에 남은 면을 본다.
“더 먹어?”
“아직 먹고 있어.”
“내 거 줄까 해서.”
“네 건 네가 먹어. 이거 다 먹고.”
범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사진을 다시 본다.
두 얼굴이 가까이 있다.
아까는 찍느라 몰랐는데, 웃는 모양이 좀 비슷하다.
나는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는다.
“우리 둘은 짝으로 뭘 하면 안 된다.”
범준이 나를 본다.
“갑자기?”
“사진 한 장에 네 번이나 찍었잖아. 운동회 때도 그렇고.”
열두 살 운동회.
내 오른쪽 발목과 범준 왼쪽 발목이 묶였다.
출발하기 전에는 제법 잘 걸었다. 선생님 앞에서 하나, 둘, 하나, 둘. 그때는 박자도 맞았다.
출발하고 나서 범준이 넘어졌다.
나는 묶인 발목 때문에 같이 넘어졌다.
다른 아이들이 도착한 뒤에야 둘이 일어나서 끝까지 걸었다.
꼴찌였다.
그날 운동장 끝에 앉아서 내가 말했다.
우리 둘은 짝으로 뭘 하면 안 된다고.
범준은 무릎에 묻은 흙을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때 박자도 맞췄어.”
내가 젓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짚는다.
“하나, 둘. 하나, 둘. 네가 자꾸 반 박자씩 늦었지.”
“응.”
“너 달리기 느리지도 않았잖아. 왜 그날만.”
범준이 물을 마신다.
나는 사진 속 우리를 다시 본다.
“그러니까 이 작전도 위험하다는 거야.”
범준이 컵을 내려놓는다.
“그땐 내가 딴 데 봐서 넘어진 거야.”
나는 고개를 든다.
“어디?”
범준이 젓가락으로 면을 집는다.
“결승선?”
대답이 없다.
“응원석?”
범준은 면을 먹는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먹는 걸로 대답 미루지 마.”
범준이 천천히 삼킨다.
그러고는 냉면 그릇을 본다.
“너 얼음 다 녹아.”
“녹으라고 들어 있는 거야.”
범준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옆 반 봤어?”
범준이 나를 본다.
딱 한 번.
그러고는 물컵을 든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가위를 제자리로 밀어 둔다.
“말 안 하면 또 짝 하면 안 되는 걸로 알아.”
“사진은 잘 나왔잖아.”
“네 번째에.”
“나왔으면 됐지.”
나는 사진을 한 번 더 연다.
범준도 화면을 본다.
내가 일부러 눈을 크게 뜬 건 티가 안 난다. 웃다가 찍어서 그런가.
범준 얼굴도 아까 연습할 때보다 편하다.
나는 엄마와의 대화창을 연다.
사진을 골라 보낸다.
옆에서 범준도 휴대폰을 꺼낸다.
“나한테도 보내.”
나는 같은 사진을 범준에게 보낸다.
범준은 받아서 명숙 아줌마에게 보낸다.
두 휴대폰이 테이블 위에 놓인다.
나는 남은 냉면을 먹는다. 범준은 자기 그릇을 비운다.
사진 한 장 보내면 설명이 줄 거라고 내가 말했다.
지금은 두 엄마가 각자 사진을 보고 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이 켜지기 전에 젓가락질을 서두른다.
범준이 내 그릇을 본다.
“천천히 먹어.”
“답장 오기 전에 먹으려고.”
“와도 먹으면 되지.”
맞는 말이다.
나는 면을 조금 내려놓고 다시 집는다.
그때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다.
『둘이 왜 이렇게 자연스럽냐?』
나는 화면을 범준 쪽으로 돌린다.
“봤지.”
범준이 읽고 나를 본다.
“뭘.”
“잘 찍었다는 거잖아.”
나는 답장을 쓰려다가 멈춘다.
같이 밥 먹은 게 몇 번인데 자연스럽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굳이 그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
‘잘되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화면을 끄고 마지막 면을 집는다.
『엄마 단톡: 명숙 — 사진 왔다. / 경애 — 우리 애 겨자 넣은 거 봐. 저거 범준이가 넣어 준 거야. 우리 애는 뚜껑 못 열어.』
(3화 끝)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누가 누굴 데려가.”아영이 내 옆을 본다.범준은 내 방수 가방이 넘어지지 않게 의자 다리 안쪽으로 밀고 있다.“지금도 챙기잖아.”“가방이 넘어지니까.”“홍 쌤. 나 가방은 안 넘어져?”아영 가방도 반쯤 기울어 있다.나는 일어나서 바로 세워 준다.“됐다.”“왜 홍 쌤이 해?”“내가 가까워.”범준이 나를 올려다본다.입가가 조금 올라간다.나는 앉으면서 범준의 팔꿈치를 식탁 안쪽으로 밀어 준다. 옆을 지나가는 손님이 부딪힐 뻔한다.아영이 그걸 본다.나도 내가 한 걸 본다.젓가락을 다시 든다.“물회 먹어. 국물 남기면 아까워.”아영은 대답 대신 국물을 뜬다.범준도 그릇 쪽으로 몸을 당긴다.나는 식탁 아래에서 내 가방을 발로 한 번 더 건드린다.안 넘어진다.잘 세워 놨다.괜히 확인했다.· · ·6월 13일 토요일 오후.엄마가 내 손에 안경집을 얹는다.“아빠 갖다줘.”“아빠 어딨어?”엄마가 마우스를 누른다.사진 속 손님의 턱이 조금 줄어든다.“길 건너.”“길 건너에서 안경 없이 바둑 둬?”“안 보인다고 갖다 달래.”나는 안경집을 연다.
“그럼 지금 다시 물어보면?”범준이 의자를 고쳐 든다.“들어 줄게.”“대답을 해야지.”“의자부터 놓고.”나는 사진관 앞까지 걸어간다. 의자를 내려놓자 엄마가 화분을 가져온다.범준도 의자를 놓는다.엄마가 그 앞에 서서 물을 달라고 한다.질문 하나 하는 사이에 일이 또 생긴다.나는 범준을 보고 입을 연다.“너 다음에도 이렇게 말 돌리면—”“하늬야, 물.”엄마가 빈 물조리개를 내민다.범준이 대신 받는다.“제가 할게요.”나는 빈손으로 서 있다.대답을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받는다.이러면 따지기도 애매하다.· · ·6월 6일 토요일.수영장 바닥에 물이 튄다.나는 파란 줄을 목 뒤로 넘기고 새 호루라기를 입에 댄다.짧게 한 번.민들레반 아이들이 내 쪽을 본다.정확히는 절반쯤 본다.나머지는 관람석의 엄마를 찾고, 수영모를 당기고, 옆 아이 물안경을 구경한다.“민들레반. 발은?”“천천히!”대답은 빠르다.발은 더 빠르다.나는 출발대 쪽으로 뛰려는 아이 앞에 손을 편다.“입으로만 천천히 하지 말고.”아이가 걸음을 줄인다.옆에서 금아영이 물안경을 들고 웃는다.“홍 쌤, 얘들 목소리만 들으면 다 준비 끝났어.”“목소리로 헤엄치면 우리 반이 이겨.”“그건 수영이 아니야.”“알아. 그래서 지금 급해.”아영은 나와 같은 어린이반 수영 강사다. 긴 머리를 단단히 묶었는데, 아이들 수영모부터 바로잡느라 자기 머리 끝은 어깨에 붙어 있다.내 반 아이 하나가 아영 앞에 선다.“선생님, 자꾸 물 들어가요.”아영이 물안경 줄을 살핀다.“거꾸로 썼네.”“아빠가 해 줬는데.”“아빠도 긴장했나 보다.”아영은 아이를 탓하지 않고 물안경을 뒤집는다. 눈 주위에 잘 붙는지 손끝으로 살핀 뒤 줄을 맞춘다.나는 관람석을 올려다본다.보호자들이 유리 너머에서 손을 흔든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는 옆 사람 휴대폰을 내리게 한다.그 사이에 검은 백팩이 보인다.그 위에 도범준이 있다.정확히는 도범준이 백팩을 앞에 놓고 서
“다음에는 네가 창가에 앉아.”범준이 손가락을 폈다 굽힌다.“그러면 안 기대?”“내가 또 넘어가면 창문이 받아 주겠지.”“아플 텐데.”“그러니까 깨우라고.”버스가 멈춘다.범준은 먼저 일어나서 내 가방을 꺼내 준다. 나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고, 아직 덜 풀린 범준 손을 본다.“너 물리치료사잖아.”“응.”“자기 팔부터 잘 돌봐.”범준이 손을 내린다.“다음에는.”나는 대꾸하려다가 앞사람을 따라 내린다.다음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나도 방금 했다.· · ·5월 23일 토요일.사진관 앞에 플라스틱 의자가 쌓여 있다.나는 맨 위 의자를 든다.엄마가 바로 손잡이를 잡는다.“그거 말고 옆에.”“의자도 자리가 정해져 있어?”“그건 다리 흔들려. 내가 앉을 거야.”“엄마는 흔들려도 돼?”“나는 일어나면 되지. 어르신들은 허리 아프시다니까?”엄마는 의자를 바닥에 놓고 눌러 본다. 한쪽 다리가 조금 뜬다.나는 멀쩡한 의자 두 개를 포갠다.경로당 봄 잔치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은 했다.놀러 간다.의자를 나른다.아마 접시도 나른다.놀러 가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의 차이는 도착해서 알게 된다.“하늬야, 그거 내려놔.”길 건너에서 범준이 온다.검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걸었다. 내 손에 든 의자부터 받는다.“두 개야.”“알아.”“나도 들 수 있어.”“그럼 저거.”범준이 접힌 식탁을 턱으로 가리킨다.나는 의자를 다시 잡는다.“됐고. 이쪽이 가벼워.”범준이 웃으며 식탁으로 간다.명숙 아줌마가 부동산 문을 잠그고 천천히 건너온다. 팔 아래에는 두꺼운 스프링 노트가 있다.엄마가 묻는다.“명숙아. 몇 개 모자란대?”“의자 넷.”“넷? 아까는 셋이라며.”“네가 앉을 것도 있어야지. 그렇지?”엄마가 흔들리는 의자를 가리킨다.“내 거 여기 있어.”아줌마는 의자 다리를 보고, 엄마를 본다.“그건 화분 올려.”범준이 식탁을 펼치려다 잠깐 멈춘다.나는 고개를 돌린다.웃으면 엄마가 나도 일 시킨다.
“내가 열네 살 때 어디 가고 싶다고 했는데?”범준이 골목 모퉁이에서 멈춘다.내 소매 끝을 본다.돈가스 소스가 묻은 자리다.“집에 가서 먼저 씻어.”“내 질문이랑 소매가 무슨 상관인데.”“굳으면 안 지워져.”“어디냐고.”“수족관.”나는 접어 올린 소매를 놓는다.수족관.그 말을 입 안에서 한 번 굴려 본다.“내가 그랬어?”“응.”“언제.”“수영부 들어갔을 때.”“너 그걸 아직 기억해?”범준은 다시 걷는다.“가고 싶다며.”나는 잠깐 뒤처졌다가 따라간다.‘도범준은 15년 전 목적지를 갖고 있다. 나는 오늘 휴대폰도 놓고 나왔다.’“그걸 이제 가?”“다음 주에 시간 되잖아.”맞는 말이다.이번에는 맞는 말인데도 곧바로 대꾸가 안 나온다.나는 소매를 더 높이 접는다.“됐고. 거기 매점 있어?”범준이 나를 본다.“있겠지.”“없으면 곤란해.”“물고기 보러 가는 거잖아.”“물고기도 밥 먹어.”범준 입가가 올라간다.나는 앞을 보고 걷는다.· · ·5월 16일 토요일.사진관 문을 열자 엄마가 내 가방을 먼저 본다.“수족관 간다며.”“응.”“수영하러 가는 거 아니지?”나는 방수 가방을 내려다본다.“거기서 내가 들어가면 직원이 꺼내 주겠지.”“가방이 너무 크다니까?”“작은 걸 들면 물병이 안 들어가.”엄마는 내 가방 안에 든 물병을 확인하고서야 비켜선다.곧바로 다시 앞을 막는다.“사진은 물고기만 찍지 말고.”“아직 출발도 안 했어.”“큰 물고기 옆에서 찍어. 둘이.”길 건너 명숙부동산 문이 열린다.범준이 나오고, 명숙 아줌마가 느리게 뒤따른다.엄마는 내 옆을 지나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명숙아. 거기 멀다며?”“지하철로 50분.”“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찾아봤지. 그렇지?”아줌마가 범준을 본다.범준은 고개를 끄덕인다.엄마도 나를 본다.나는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넌 뭐 알아봤어?”“매점 있는지.”“있대?”나는 범준을 본다.범준이 대답한다.“있어.”엄마가 고
나는 거품 묻은 밥그릇을 돌려 본다.바닥까지 깨끗하다.“한 공기 먹는 애한테 왜 세 공기를 줘?”“달라니까 줬지.”“엄마가 먼저 물었잖아.”“물었는데 먹겠다잖아.”엄마가 물기를 닦은 접시를 찬장에 넣는다.나는 밥그릇을 헹군다. 밥풀 하나가 안 붙어 있다.‘도범준은 밥도 남기지 않고 내 반박할 거리도 남기지 않는다.’“다음에는 덜 줘.”“다음에도 부르게?”수돗물이 장갑 안으로 들어온다.나는 손을 든다.“그 말이 아니잖아.”“그럼 다음에는 안 불러?”“그것도 아니고.”엄마가 내 손에서 그릇을 받는다.오른손 장갑 끝을 조금 당겨 준다. 안에 든 물이 손목으로 흐른다.“그릇 그만 씻어. 수저만 마저 해.”“나 할 수 있어.”“할 수 있는 거 알아. 엄마도 할 수 있다니까?”나는 수저를 모은다.엄마는 범준이 쓰던 밥그릇을 물기까지 닦아서 올려 둔다.맨 위다.“걔 이번 주말에는 뭐 하니?”“몰라.”“만날 거 아니야?”“만날 때 물어보면 되지.”“그러면 어디 갈지도 모르니?”나는 수도꼭지를 잠근다.엄마가 나를 기다린다.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인데, 내가 어디 간다고 하면 거기까지 따라올 것 같다.“밥 먹겠지.”“뭐.”“밥.”“범준이는 밥을 잘 먹더라.”나는 젖은 장갑을 벗는다.‘이 얘기는 다시 세 공기로 돌아간다.’· · ·5월 9일 토요일.나는 신발을 신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엄마가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든다.“왜? 뭐 놓고 왔어?”“휴대폰.”“그걸 놓고 가면 어떡하니. 사진 찍어야지.”“연락부터 해야지.”“연락은 길 건너 가서 하면 되잖아.”맞는 말이다.그런데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먼저 나오는 건 이상하다.나는 방에서 휴대폰을 챙긴다. 물병은 방수 가방 안에 넣는다.아래층 사진관으로 내려오자 엄마가 보정하던 화면에서 눈을 뗀다.“오늘은 어디 가?”“옛날돈가스.”“돈가스?”“응.”“둘이 먹는 거지?”“다른 사람까지 부를까?”“둘이 먹으라니까?”엄마는 내가 먼
물병을 내려놓자 방문 밖에서 엄마가 부른다.“하늬야. 범준이 뭐 좋아하니?”나는 거울에서 눈을 뗀다.“왜.”“밥 먹일 거야.”“지금?”“토요일에.”나는 방문을 연다. 엄마가 빨래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서 있다.“엄마, 걔는 길 건너 살잖아.”“그래서 멀리서 오는 애만 밥 먹이니?”“집에서 먹으면 되잖아.”“우리 집에서 먹으면 안 되니?”대답하려다가 물병을 다시 본다.뚜껑은 아직 느슨하다.“너 어깨는?”엄마가 묻는다.“치료받았어.”“그러니까. 고맙다고 밥 먹여야지.”“그럼 나 치료해 준 사람 다 불러?”“범준이만 부를 건데.”엄마는 빨래 바구니에서 내 수건을 꺼낸다.내 손에는 안 주고 방 안 의자에 놓는다.“토요일 저녁. 너도 어디 가지 마.”“주말마다 한 번이면 되는데.”“뭐가?”나는 물병을 든다.“만나는 거.”엄마의 손이 수건 위에서 멈춘다.그러더니 수건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춘다.“그 한 번 우리 집에서 만나면 되겠네.”나는 입을 다문다.맞는 말이라서 더 할 말이 없다.· · ·5월 2일 토요일.저녁상을 차리기도 전에 엄마가 내 자리를 옮긴다.내 물컵은 원래 아빠 맞은편이다.지금은 옆이다.그 옆에 물컵 하나가 더 있다.나는 컵을 원래 자리로 밀어 놓는다.엄마가 다시 가져온다.“거긴 범준이.”“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자리가 있어?”“손님 자리는 있어야지.”“나는 살고 있는데 자리가 없어?”엄마가 접시를 내민다.“이거 놔.”접시에는 오이무침이 담겨 있다. 나는 왼손으로 받아 식탁에 놓는다.엄마가 내 오른팔을 본다.“무거운 건 내가 할게.”“이 정도는 들어.”“범준이가 조심하랬다며.”“내 말은 안 듣고 걔 말은 들어?”“네가 조심하라고 했으면 네 말도 듣지.”나는 오이무침을 가운데로 민다.‘지금 봉경애가 내 반박까지 미리 꺼내 놓는다. 접시 놓을 자리만 남는다.’아빠는 식탁 끝에 앉아 생선 접시를 보고 있다.“아빠. 오늘 손님 오는 거 알아?”“어.”“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