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선생님, 왜 책장 뒤에 책이 있어요?”
루디가 책장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바닥에 댄 볼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을 틈으로 밀어 넣었다.
아델은 젖은 천을 바구니에 내려놓았다.
“왜냐하면—떨어졌을 수도 있고, 누가 넣어 두었을 수도 있어. 꺼내 봐야 알겠네. 먼저 손은 빼자.”
“거의 닿아요.”
“손이 들어간다고 팔도 들어가는 건 아니야.”
루디가 팔꿈치를 한 번 더 밀었다. 책장 모서리에 소매가 걸렸다.
“팔은 안 들어가요.”
“직접 확인했구나. 이제 나와.”
아델이 소매를 빼 주자 루디는 바닥에 앉은 채 손을 폈다. 손끝에 회색 먼지가 붙어 있었다.
“책도 잡았어요. 조금.”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루디가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였다. 아델은 손바닥까지 살핀 뒤 천으로 닦아 줬다.
깊은눈달 3일의 공부방에는 의자가 모두 가운데로 모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짧은 분필과 종이, 천 조각이 따로 놓였다. 겨울 동안 수업할 방을 정리하자고 했더니 루디가 의자 밑에 먼저 들어갔다.
로테는 그 옆에서 종이 모서리를 맞추고 있었다. 아델이 준 작은 수건도 반듯하게 접어 놓았다.
“로테, 그 천은 닦으라고 준 건데.”
로테가 접힌 천을 내려다봤다.
“깨끗해요.”
“맞아. 그런데 먼지를 닦으면 더러워질 거야.”
“다시 빨아요?”
“응. 빨아서 말리면 또 쓸 수 있어.”
로테는 잠깐 생각하더니 가장 가까운 의자 다리를 닦았다. 천을 펼쳐 묻어난 먼지를 보고, 다시 의자 다리를 봤다.
루디가 책장 틈을 가리켰다.
“저건 안 깨끗해요. 책이 누워 있어요.”
아델이 무릎을 굽혔다. 책장 아래쪽과 벽 사이로 짙은 갈색 모서리가 보였다. 손으로 당겨 꺼내기에는 틈이 좁았다.
루디는 옆에서 자기 팔을 다시 재 봤다.
“나는 작아서 되는데.”
“작아도 끼면 곤란해. 이건 어른이 책장을 조금 옮겨야겠어.”
“선생님은 커서 못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책장을 움직이는 거야.”
루디가 일어서서 책장 양옆을 붙잡았다.
“내가 먼저!”
아델은 루디의 손 위에 손을 얹었다.
“이건 혼자 하면 안 돼. 책이 쏟아질 수도 있거든. 도와주고 싶으면 아래 칸을 비워 줘.”
루디가 곧장 가장 두꺼운 책을 잡았다. 당기는 대신 두 손으로 받쳐 든 다음, 얼굴 앞까지 올렸다.
“이거 무거워요.”
“책상 말고 바닥 천 위에 놓자. 가까운 데부터.”
로테가 펼쳐 놓은 천의 모서리를 잡아당겼다. 루디는 그 가운데 책을 내려놓고 손을 탁탁 털었다.
아델은 책장 뒤를 한 번 더 살폈다. 갈색 물건 옆에 작은 먼지 뭉치가 붙어 있었다.
“책도 꺼내고, 뒤도 닦자. 알빈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해야겠어.”
“알빈은 커요.”
루디가 자기 머리 위로 손을 들었다.
“응. 그래서 들어가는 건 여전히 안 돼.”
◇◆◇
알빈은 쟁반을 들고 왔다.
루디가 맨 아래 칸에서 꺼낸 책을 바닥에 놓다가 쟁반부터 올려다봤다.
“책 주나요?”
“천을 가져왔습니다.”
쟁반 위에는 마른 천과 작은 솔이 놓여 있었다. 알빈은 그것을 책상에 내려놓고 책장 밑을 살폈다.
“옮기시려면 위쪽도 비우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아래를 맡았어요. 높은 칸은 제가 꺼낼게요.”
아델이 손을 뻗자 알빈은 쟁반을 옆으로 치웠다. 책장 맨 위에서 내린 책을 한 권씩 받아 가운데 의자에 놓았다.
루디는 아래 칸에서 책을 꺼낼 때마다 셌다.
“일곱. 여덟. 아홉.”
로테는 놓인 책의 등이 바깥으로 향하도록 돌렸다.
“루디, 거꾸로.”
“책은 누웠는데?”
로테가 책 등에 적힌 글자를 짚었다.
“여기.”
루디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글자를 보고, 제 책도 돌려 놓았다.
“이제 똑같아요.”
“응. 이렇게 놓으면 다시 꽂을 때 제목을 보고 고를 수 있어.”
아델이 마지막 책을 내리는 동안 루디는 작은 솔을 가져갔다. 빈 아래 칸을 쓸다가 솔 끝으로 먼지를 살살 밀었다.
그러더니 바닥에 쪼그려 앉아 먼지를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거 봐요.”
아델이 돌아보자 루디가 회색 뭉치 두 개를 앞에 놓았다. 큰 것은 아래에, 작은 것은 위에 올렸다.
“눈사람.”
“그건 먼지인데.”
“눈은 안으로 가져오면 물 돼요. 이건 안 돼요.”
“대신 손에 묻고, 코에 들어가면 재채기가 나겠지.”
루디가 손등으로 코를 문지르려 했다. 아델이 깨끗한 천을 건넸다.
“코는 이걸로. 먼지 만진 손은 씻고.”
루디는 천으로 코를 누른 다음 먼지 뭉치를 돌아봤다. 작은 뭉치가 옆으로 떨어져 있었다.
“머리 없어졌어요.”
로테가 솔 끝으로 작은 뭉치를 가리켰다.
“저기.”
알빈이 빈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쪽으로 모으십시오. 흩어지기 전에 옮기겠습니다.”
루디는 솔로 두 뭉치를 차례대로 밀어 올렸다. 알빈은 쟁반이 기울지 않도록 한 손으로 아래를 받쳤다.
“눈사람 자리예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높이 들면 머리 떨어져요.”
“주의하겠습니다.”
알빈은 실제로 평소보다 천천히 일어났다. 루디가 그 옆에서 쟁반 높이에 맞춰 까치발을 들었다.
아델은 입술을 잠깐 눌렀다.
‘먼지가 이렇게 대접받을 일인가.’
로테는 웃지 않고 쟁반을 살폈다.
“버려요?”
“청소가 끝나면 버려야지. 방에 두면 다시 날릴 테니까.”
아델이 대답하자 루디가 급히 손을 들었다.
“그럼 마지막까지 둬요. 나 보고 있어요.”
“좋아. 대신 쟁반은 건드리지 않기. 손 씻고 와서 책장을 비켜 주기.”
루디는 씻으러 가기 전에 쟁반 앞에 작은 솔을 내려놓았다.
“넘어지면 세워 주세요.”
알빈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책장을 옮기기 전, 아델은 아이들을 가운데 의자 뒤로 보냈다.
“여기서 기다리자.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루디는 의자 등받이에 턱을 얹었다. 로테는 등받이를 잡은 채 책장 밑을 봤다.
알빈이 한쪽을 잡고 아델이 반대편을 받쳤다. 빈 책장은 바닥에 닿은 부분이 조금씩 밀렸다. 돌벽과 나무판 사이가 벌어지자 묵은 먼지가 보였다.
갈색 물건은 아래 칸 뒤편에 비스듬히 끼어 있었다.
아델은 마른 천을 펼쳐 바닥에 놓고 물건을 꺼냈다. 책보다 얇았다. 가죽으로 씌운 겉장은 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한쪽 끝에 먼지가 두껍게 붙어 있었다.
루디가 의자 뒤에서 발끝을 들었다.
“책이에요?”
“공책 같아.”
“안에 셈 있어요?”
“아직 안 봐서 몰라.”
아델은 공책을 열지 않고 겉만 닦았다. 천이 지나간 자리에 눌러 쓴 글자가 드러났다.
「겨울 수업 — 리디아」
로테의 손이 의자 등받이에서 떨어졌다.
아델은 아이를 보고 책장을 확인했다. 알빈이 움직이지 않게 붙잡고 있었다.
“이제 이쪽으로 와도 돼. 책장 뒤로는 들어가지 말고.”
루디는 곧장 달려오려다가 바닥에 놓인 책 앞에서 멈췄다. 책을 돌아오는 사이, 로테가 먼저 아델 앞에 섰다.
로테는 공책의 글자만 보고 있었다.
아델은 무릎 위에 공책을 올려 아이가 잘 볼 수 있게 했다. 로테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엄마 글씨.”
루디가 로테 옆에서 몸을 숙였다.
“엄마 거예요?”
로테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손이 앞으로 나왔다가 공책에 닿기 전에 멈췄다.
아델이 공책을 조금 낮췄다.
“만져도 돼. 겉은 닦았어.”
로테의 손가락이 가죽 겉장에 닿았다. 글자가 있는 곳을 천천히 한 번 쓸고, 손을 무릎 앞으로 내렸다.
루디는 공책을 펼치려고 모서리를 잡았다.
아델이 루디의 손을 막는 대신 공책 아래를 받쳤다.
“잠깐만.”
“엄마 수업이에요?”
“겉에는 그렇게 쓰여 있네.”
“그럼 읽어요.”
아델은 공책을 닫힌 채 두 손에 올렸다.
“이건 너희 거야. 공작님께 물어보고 읽자.”
루디의 손이 모서리에서 떨어졌다.
“공작님 책 말고요?”
“응. 너희 어머니가 남긴 거니까, 너희가 어떻게 할지도 함께 정해야지.”
로테가 아델을 올려다봤다.
“왜 물어요?”
“왜냐하면—어머니가 이 공책을 어떻게 쓰셨는지 공작님은 아실 수도 있거든. 나는 모르고.”
로테는 공책을 다시 봤다.
“선생님도 몰라요.”
“응. 그래서 먼저 여쭤보자는 거야.”
알빈이 책장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각하께서는 서재에 계십니다.”
루디는 책을 빙 돌아 문 쪽으로 갔다. 손잡이를 잡으려다 뒤를 봤다.
“책장은요?”
아델이 공책을 깨끗한 천으로 감쌌다.
“알빈에게 잠깐 부탁드리자. 다녀와서 같이 마저 정리하고.”
“눈사람도.”
“돌아올 때까지는 그대로 두겠습니다.”
알빈이 쟁반을 의자 가운데로 옮겼다. 루디는 그제야 문을 열었다.
로테는 아델의 빈손을 잡았다. 평소처럼 소매 끝을 집는 대신 손바닥을 붙였다.
아델은 아이가 잡은 만큼만 손을 쥐었다.
◇◆◇
서재 문 앞에서 루디가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아델은 공책을 다른 팔로 받치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루디는 문이 열리자 안을 먼저 살폈다. 세드릭은 창가에 서 있었다. 검은 외투 깃에 있는 흰까마귀 수가 창에서 들어온 빛을 받았다.
“루디. 로테.”
세드릭이 아이들 이름을 부르자 루디가 두 손을 등 뒤로 보냈다. 뒤따라 들어온 로테는 아델 옆에 붙어 섰다.
“공부방을 정리하다가 책장 뒤에서 공책을 찾았습니다.”
아델이 천을 풀었다.
“아이들 어머니가 쓰신 것 같아서요.”
세드릭이 창가에서 걸어왔다.
공책이 보이자 발이 멈췄다. 아델은 한 걸음 다가가 겉장의 글씨를 보여 줬다.
세드릭의 오른손이 앞으로 나왔다. 손등의 흰 흉 아래로 손가락이 펴졌다.
공책을 받는 순간 손끝이 작게 떨렸다.
아델은 바로 놓지 않았다. 세드릭이 다른 손으로 아래를 받친 다음에야 손을 뺐다.
“겉만 닦았습니다. 안은 열지 않았어요.”
세드릭은 글씨 위에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루디가 책상 옆으로 다가갔다.
“엄마 수업이래요. 읽어 주세요.”
세드릭의 엄지가 공책 옆면을 눌렀다. 낡은 겉장이 조금 들렸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로테가 짧게 물었다.
“오늘?”
세드릭은 아이를 봤다. 대답하기 전에 공책을 두 손으로 다시 잡았다.
“……내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때가 되면.”
루디가 빠르게 물었다.
“언제예요? 저녁 먹고요?”
“오늘은 어렵다.”
“그럼 자고 나면요?”
세드릭의 입술이 닫혔다가 열렸다.
“언제가 될지 아직 말할 수 없다.”
로테가 아델의 손을 당겼다. 아델은 아이 쪽으로 몸을 낮췄다.
“오늘은 못 읽는다고 하셔.”
“우리 거.”
“응. 너희 거 맞아.”
아델은 다시 세드릭을 봤다.
“보관해 주시는 건 좋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게 해 주세요.”
“알았다.”
“읽을 때도 아이들과 같이 정해 주시고요.”
세드릭이 아이들을 번갈아 봤다.
“읽기 전에 너희에게 말하겠다.”
로테는 공책과 세드릭의 손을 차례로 살폈다.
“안 버려요.”
세드릭의 손가락이 가죽 겉장 가장자리에 멈췄다.
“버리지 않는다.”
로테가 아델의 손에 힘을 풀었다.
루디는 책상 앞에서 발을 바꿔 디뎠다.
“공부방 깨끗해져요. 책도 다 꺼냈어요.”
“그렇구나.”
“다시 넣어야 해요. 나는 아래만 해요.”
세드릭이 아델을 봤다.
“높은 곳은 알빈에게 맡기십시오.”
“네. 아이들은 손이 닿는 곳만 하고 있어요.”
세드릭은 공책을 내려놓지 않았다. 아델은 천을 접어 책상 모서리에 두었다.
“덮어 두실 때 쓰세요. 먼지는 닦았지만 가죽이 많이 낡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루디는 문을 나서면서 서재 안을 돌아봤다.
“다 정리하면 보여 줄게요.”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테는 문턱에서 한 번 멈췄다. 아델이 기다리자 서재 안을 보고, 다시 손을 잡았다.
◇◆◇
공부방에서는 알빈이 책장 뒤를 닦고 있었다.
루디는 쟁반부터 확인했다. 먼지 뭉치는 그대로였다.
“안 넘어졌어요?”
“한 번도.”
루디는 솔을 들고 바닥에 남은 먼지까지 쓸어 모았다. 이번에는 쟁반에 올리지 않고 쓰레기를 모아 둔 천 위로 밀었다.
“얘는 눈 아니에요. 바닥이에요.”
아델은 책장 뒤에 손을 넣어 마른 것을 확인했다.
“이제 책을 넣자. 먼저 자리를 기억하는 책부터.”
루디는 아래 칸 앞에 앉았다. 로테는 책 등을 살펴 얇은 책끼리 모았다. 비어 있는 칸에 책이 하나씩 들어갔다.
공책이 있던 틈은 책장 옆으로 몸을 숙이면 여전히 보였다. 로테가 그곳을 한 번 들여다보고 돌아왔다.
아델은 작은 천을 건넸다.
“남은 건 책상 다리야. 같이 닦을까?”
로테는 천을 받았다. 이번에는 접지 않고 아델 옆에 쪼그려 앉았다.
루디가 아래 칸에 마지막 책을 넣고 손바닥으로 밀었다.
“다 했어요!”
알빈은 쟁반을 가져왔다.
“이제 이것도 정리하겠습니다.”
루디가 먼지 뭉치 앞에 고개를 가까이 대려다가 스스로 멈췄다. 아델을 보고 코를 가렸다.
“코에 들어가요.”
“잘 기억했네.”
루디는 작은 솔로 위의 뭉치를 아래로 밀었다. 두 뭉치가 섞여 납작해졌다.
“이제 눈사람 아니에요.”
알빈이 쟁반 위를 천으로 덮었다.
“청소를 마치겠습니다.”
의자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델은 아이들과 손을 씻고, 마른 천을 창가에 널었다. 로테가 먼저 자기 천을 펼쳤다. 루디는 천 끝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으려다 아델이 가져온 대야를 보고 손을 뺐다.
공부방 문 옆에는 알빈이 가져온 마른 천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델은 그것을 집어 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건 돌려드리고 올게. 나는 복도에 있을 거야.”
루디는 아래 칸의 책을 한 번 더 세기 시작했다. 로테는 창가의 천을 펴다가 아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복도에는 등불이 켜져 있었다.
아델은 알빈의 방 앞에 천을 놓고 돌아오다가 계단 위를 봤다. 서재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아까 루디가 문을 잡아 줬을 때처럼, 안쪽 바닥이 가늘게 보였다.
공부방 정리가 끝났다고 전할 생각으로 계단을 올랐다.
문 가까이에서 아델의 걸음이 멎었다.
세드릭은 서재 창 앞에 서 있었다. 책상 모서리에는 아델이 두고 간 천이 접힌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델은 문을 두드리려던 손을 내렸다. 복도 아래에서 루디가 책을 세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세드릭은 공책을 펴지 않은 채 가슴에 대고 서 있었다.
(11화 끝)
“선생님, 왜 연회는 왕이 열어요?”루디가 펼친 책 위로 턱을 내밀었다. 아델은 아이의 턱이 책장에 닿기 전에 손바닥을 받쳤다.“왜냐하면—왕이 손님을 부르는 잔치니까. 하지만 왕만 잔치를 열 수 있는 건 아니야.”“그럼 나도요?”“네가 손님을 부르고 준비하면.”루디가 곧장 로테를 돌아봤다.“너 와.”“어디.”“내 잔치.”“먹을 거.”루디는 책을 내려다봤다. 먹을 것은 없었다. 아델이 손바닥을 떼자 턱도 함께 내려갔다.“부엌에 가면 있어요.”“부엌에 있는 건 네 것만이 아니지. 손님을 부르기 전에 어른들과 의논해야 해.”로테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안 가요.”아델은 웃으며 책을 아이들 쪽으로 돌렸다. 노래가 적힌 책을 찾던 세드릭에게 골라 주려고 가져왔다. 첫 장에는 가장 긴 밤에 집집마다 모여 빵을 나눠 먹는 이야기가 있었고, 다음 장에는 짧은 겨울 노래가 실려 있었다.루디는 아델이 읽어 준 왕실 연회 이야기에만 귀를 붙들려 있었다.“왕도 오늘 빵 먹어요?”“무엇을 먹는지는 모르겠어.”“왕인데요.”“왕이 먹는 걸 선생님이 전부 알지는 못해.”로테가 책 가장자리를 짚었다.“오늘.”“응. 깊은눈달 15일. 오늘이 가장 긴 밤이래.”루디는 공부방
“선생님, 공작님은 왜 전쟁 책만 읽어요?”로테가 서재 문 옆에 서서 물었다. 아델은 두드리려던 손을 내렸다. 문틈으로 세드릭의 검은 외투와 책상 위에 펼쳐진 두꺼운 책이 보였다.며칠 전 그 창 앞에서 봤던 공책은 보이지 않았다. 아델은 문 안쪽을 더 들여다보지 않고 로테에게 몸을 낮췄다.“왜냐하면—공작님께 필요한 책인가 봐. 다른 책도 읽으시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여쭤볼까?”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책은 안 읽어요.”“읽어 달라고 해 봤어?”“전에.”로테가 양손을 벌렸다. 꽤 두꺼운 책을 나타내는 듯했다.“큰 거 가져왔어요.”안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멎었다.“들어오십시오.”아델이 문을 열자 루디도 뒤에서 뛰어왔다. 계단을 올라오느라 볼이 빨갰다. 손에는 양철 나팔 대신 작은 석판이 들려 있었다.“나도 숙제 다 했어요!”“뛰지 않기로 했지.”루디가 문턱에서 걸음을 줄였다. 남은 두 걸음은 발뒤꿈치부터 천천히 내려놓았다.“이제 안 뛰어요.”“돌아갈 때도 그렇게 하자.”세드릭은 책을 덮고 아이들을 봤다. 로테가 곧장 책상 가까이 갔다. 책등의 글자를 짚던 손가락이 중간에서 멈췄다.“전투.”“그렇다.”“또요.”세드릭이 책을 내려다봤다. 루디는 옆에서 까치발을 들었다.“싸우는 거예요? 몇 명이요?”
“선생님, 왜 책장 뒤에 책이 있어요?”루디가 책장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바닥에 댄 볼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을 틈으로 밀어 넣었다.아델은 젖은 천을 바구니에 내려놓았다.“왜냐하면—떨어졌을 수도 있고, 누가 넣어 두었을 수도 있어. 꺼내 봐야 알겠네. 먼저 손은 빼자.”“거의 닿아요.”“손이 들어간다고 팔도 들어가는 건 아니야.”루디가 팔꿈치를 한 번 더 밀었다. 책장 모서리에 소매가 걸렸다.“팔은 안 들어가요.”“직접 확인했구나. 이제 나와.”아델이 소매를 빼 주자 루디는 바닥에 앉은 채 손을 폈다. 손끝에 회색 먼지가 붙어 있었다.“책도 잡았어요. 조금.”“어디 다친 데는 없어?”루디가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였다. 아델은 손바닥까지 살핀 뒤 천으로 닦아 줬다.깊은눈달 3일의 공부방에는 의자가 모두 가운데로 모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짧은 분필과 종이, 천 조각이 따로 놓였다. 겨울 동안 수업할 방을 정리하자고 했더니 루디가 의자 밑에 먼저 들어갔다.로테는 그 옆에서 종이 모서리를 맞추고 있었다. 아델이 준 작은 수건도 반듯하게 접어 놓았다.“로테, 그 천은 닦으라고 준 건데.”로테가 접힌 천을 내려다봤다.“깨끗해요.”“맞아. 그런데 먼지를 닦으면 더러워질 거야.”“다시 빨아요?”“응. 빨아서 말리면 또 쓸 수 있어.”로테는 잠깐 생각하더니 가장 가까운 의자 다리를 닦았
“선생님, 왜 공작님이 선생님을 불러요?”로테가 책상 위에 펼쳐진 종이를 보고 있었다. 아델은 세수하고 온 아이의 옷깃을 바로 펴 주다가 손을 멈췄다.「내일 성벽에 오십시오. 해 지기 전에.」밤에 문 밑으로 들어왔던 종이는 어머니께 쓴 편지 옆에 놓여 있었다.“왜냐하면—내가 물어본 것에 답해 주시려는 것 같아.”“편지요?”“응. 직접 들어 봐야 알겠지만.”로테가 종이 끝을 눌렀다.“안 된다고 또 하면요?”“왜 안 되는지 다시 물을 거야.”루디는 의자를 당겨 놓고 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종이를 거꾸로 들여다보다가 고개도 함께 기울였다.“성벽에서요?”“그렇게 적혀 있네.”“높은 데서 말하면 더 잘 들려요?”“왜냐하면—높아서 잘 들리는 건 아니야. 가까이 서서 말해야 잘 들리지.”루디가 의자에서 내려와 아델 바로 앞에 섰다.“편지 보내 주세요.”“나는 아주 잘 들었어.”“공작님한테도 이렇게 해요.”로테가 아델의 소매를 잡았다.“선생님은 커.”루디는 아델의 머리까지 올려다봤다. 그러더니 한 걸음 물러났다.“그럼 안 올라가도 되잖아요.”아델은 웃음을 삼키며 종이를 접었다.“성벽에서 보여 주실 게 있는 모양이야. 너희도 아래까지 같이 가자. 나는 올라가고, 너희는 아그네스와 기다리는 거야.”로테가 곧장 물었다.“다녀와요?”“응. 아래로 돌아올게.”“해 지면.”“해가 진 뒤에도 돌아와.”로테는 그제야 소매를 놓았다.아델은 종이를 책상 서랍에 넣었다. 어머니께 쓴 편지는 보내지 못한 채였지만, 오늘은 적어도 그 옆에 답을 둘 수 있을 것 같았다.◇◆◇문닫는달 26일의 해는 안뜰 돌바닥을 길게 비췄다.아델은 아이들과 성벽 아래까지 걸었다. 루디는 눈을 치운 길 가장자리만 골라 밟았다. 발자국 하나가 어긋나자 뒤로 돌아가 다시 디뎠다.“이건 안 센 거예요.”“걸은 건 걸은 거지.”“그럼 두 번이에요?”“뒤로 갔다가 앞으로 왔으니 두 걸음 더 걸었네.”루디는 제 발을 내려다봤다.“돌아가면 많아져요.”“그
“선생님, 편지는 겨울에 못 가요?”루디가 아델 앞에 놓인 종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종이 귀퉁이가 책상 밖으로 밀려 나와 있었다.아델은 잉크병을 안쪽으로 옮긴 뒤 종이를 바로 놓았다.“왜냐하면—사람이 가져가야 하는데, 성문이 닫혀 있으니까. 보내는 방법이 있는지는 물어봐야겠어.”“종이는 작잖아요.”루디가 엄지와 검지 사이를 좁혔다.“이만큼 접으면 문 밑으로 가요.”“문 밑으로 나가도 우리 어머니 집까지 혼자 걸어가지는 못하지.”“내가 던지면요?”“네가 던질 수 있는 곳보다 훨씬 멀어.”루디는 창으로 다가가 아래를 봤다. 눈이 치워진 안뜰 너머로 흰까마귀 문이 보였다.“아주 세게.”“그럼 편지를 주우러 안뜰에 내려가야 할걸.”루디가 제 팔을 한번 흔들어 보다가 돌아왔다.문닫는달 25일이었다. 창가에 놓아둔 물그릇이 차가워서 아델은 책상 가운데로 옮겼다. 로테는 맞은편에 앉아 깃펜 끝을 살피고 있었다.“이걸로 써요?”“응. 처음에는 내가 손을 잡아 줄게. 너무 힘주면 끝이 벌어지거든.”루디가 의자를 당겼다.“분필은요?”“분필은 종이에 쓰고 접으면 다른 쪽에 묻어. 편지 받은 사람이 읽기 어려워져.”“안 접으면 돼요.”“그럼 가져가는 사람이 다 읽을 수도 있지.”루디가 종이를 양손으로 가렸다.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은 종이였다.“읽으면 안 돼요.”“그럼 다 쓴 뒤에는 접자.”아델은 작은 종이 두 장을 아이들 앞에 놓았다. 제 앞의 종이는 조금 더 컸다. 남부에 있는 어머니께 쓸 편지였다.로테가 아델의 종이를 보고 물었다.“누구한테요?”“우리 어머니.”“선생님 엄마.”“맞아.”루디가 고개를 기울였다.“선생님도 엄마한테 수업해요?”“어릴 때는 어머니가 나한테 가르쳐 주셨지.”“편지도요?”“응. 글씨를 너무 작게 쓰면 읽기 힘들다고 하셨어.”루디가 제 종이를 당겼다.“나는 크게 써요.”“그러다 한 글자로 종이를 다 쓰면?”루디가 잠깐 생각하더니 손을 내밀었다.“큰 종이 주세요.”◇◆◇아델은 루
“선생님, 공작님은 왜 우유 안 마셔요?”로테가 쟁반 끝에 놓인 빈 잔을 가리켰다. 부엌 문 옆에 선 아델은 아이의 시선을 따라 잔을 봤다.“왜냐하면—그건 나도 아직 모르겠어. 공작님이 우유 안 드시는 걸 봤니?”“잔은 놓아요.”“마시지는 않고?”로테가 고개를 끄덕였다.부엌 창에는 하얗게 김이 서려 있었다. 문닫는달 20일, 해가 진 뒤부터 공부방 돌바닥까지 차가워졌다. 양말을 신은 루디가 발을 번갈아 들기에 아델은 따뜻한 것을 마시고 자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다.루디가 발뒤꿈치를 들고 쟁반을 들여다봤다.“내 잔이에요?”“아직 아무 잔도 정하지 않았어.”“그럼 큰 거.”“두 손으로 잡기 편한 걸 고르자.”루디는 가장 큰 잔에 손을 뻗었다가 손잡이가 없는 작은 잔을 잡았다. 양손으로 감싸니 손가락 끝이 맞닿았다.“이건 안 떨어져요.”“뜨거울 때는 잡지 말고. 내가 식힌 다음에 줄게.”아델은 아이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화덕 위에 냄비를 올렸다. 빵집 할머니가 불을 줄여 주고 긴 나무 주걱을 건넸다.“바닥에 붙지 않게 저어요.”“이렇게요?”“그렇지. 아이들 입 데지 않게만 하고.”루디가 냄비 쪽으로 코를 내밀었다.“벌써 먹으면 안 돼요?”아델은 주걱을 움직이며 고개를 저었다.“찬 우유를 따뜻하게 만드는 중이야.”“따뜻하면 바로요?”“너희가 마실 수 있을 만큼 식으면.”루디가 입술을 내밀었다.“따뜻하게 했다가 식혀요?”“펄펄 뜨거운 것과 따뜻한 건 다르거든.”로테는 냄비 위로 올라오는 김을 보고 있었다. 앞머리 아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공작님도.”아델이 주걱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같이 마시자고 부를까?”“네.”“안 드실 수도 있어.”로테가 아델을 올려다봤다.“왜요?”“왜냐하면—싫어하는 음식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거든. 불러 보고 여쭤보자.”루디가 제 잔을 내려놓았다.“내가 불러요!”“계단에서 뛰지 않기.”“걸어서 빨리!”“그건 뛰는 거랑 어떻게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