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득실을 따져보니 진미선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시골에 있을 때 성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했다.생각해 보면, 성연은 얼굴이 예쁜 편이다. 아마도 얄팍한 강씨 집안 도련님은 성연의 얼굴만 보고 좋아 하는 것은 아닐까?예전에 성연을 내팽개치고 나 몰라라 할 때는 언젠가 성연에게 기대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당신 그런 불편한 얼굴 하지 마. 저렇게 대단한 사위가 생겼는데 앞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을 해야지?” 왕대관은 진미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말이야 쉽죠. 그렇게 하는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진미선의 말투가 좀 삐딱하다.“천천히 해. 어차피 당신의 딸이잖아. 조급해 하지 말고. 강씨 집안의 그 많은 돈을 우리도 좀 챙기자고.”진미선의 손을 어루만지는 왕대관의 마음에 욕망이 자라기 시작했다.진미선은 아주 젊었을 때 아이를 낳고 지금은 잘 회복되어 아이를 낳은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손을 더듬던 왕대관은 갑자기 몸이 동하며 흥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 진미선이 왕대관의 목을 껴안았다.두 사람이 막 키스하려고 할 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세게 열렸다.그리고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 밥도 안 차리고 뭐하는 게야. 나를 굶겨 죽이려는 거냐? 시커먼 마음으로 우리 집안에 들어온 걸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는 구나?”들어온 사람은 바로 왕대관의 어머니였다.진미선과 왕대관 둘다 표정이 구겨졌다.막 아내와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니 들끓던 흥분이 싹 사라져버렸다.“어머니, 뭐 하십니까?” 자연 왕대관에게서 차가운 음성이 나왔다.자기 아들의 말투가 좋지 않자 왕대관 어머니는 또 다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아이고, 여자가 바로 화근이야. 봐봐, 아들마저 엄마를 몰라보게 만드는구나!”어릴 때부터 학교에 다닐 때까지 혼자 힘들게 키워
저녁에 성연은 고택에 가서 안금여와 함께 식사를 했다.무진이 오후에 성연을 데리러 온 것도 안금여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식탁에 앉아 식탁에서 준비된 것의 절반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인 것을 보면서 성연은 마음속으로 약간 감동했다.“할머니, 왜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으셨어요?”안금여가 웃으며 말했다.“내 걱정 하지 말거라. 오랜만에 편하게 맘껏 먹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이 말은 정말 성연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코가 찡하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그러나 억지로 참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할머니, 감사합니다.”안금여는 성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담았다.“우리 성연이, 빨리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음식이 다 식을 거야.”성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먹으면서 안금여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할머니, 이거 안에 단백질이 많아요. 몸에 좋아요. 그리고 이것도요. 몸을 건강하게 해줘요. 평소에도 많이 드셔야 해요.”안금여는 눈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그래, 날 챙기지 말고 너나 어서 먹어. 내가 알아서 먹으마.”어린 손녀며느리가 이렇게 시중을 드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 예전 운경과 무진이 어렸을 때는 이처럼 친밀하지는 않았었다. 늘 각자 다른 일을 했지. 효성스러운 아이들이었지만 크고 나서는 또 각자 할 일도 많아지며 성연처럼 계속 자신의 곁에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성연이 강씨 집안에 들어온 후, 이 집안에 활력을 불어넣어 강씨 집안이 더 이상 이렇게 의기소침하지 않게 했다.“할머니도 드세요.” 성연도 미소지으며 안금여에게 국 한 그릇을 떠 주었다.안금여는 성연이 너무 말랐다고 생각하며 성연에게 많이 먹으라고 재촉했다. 마지막까지 식탁의 음식은 모두 성연에 의해 절반이 없어졌다.성연은 정말 너무 배불렀다.안금여는 성연을 데리고 산책을 갔다.성연은 안금여와 팔짱을 끼고 화원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강씨 집안의 꽃밭에는 희귀한 꽃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이때 오솔길을 걸으면 꽃밭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꽃향기를 은은하게
밤.성연은 안금여에게 침을 놓아준 후 마사지를 시작하려고 했다.안금여의 병세는 강무진만큼 심각하지 않아서 머무르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여 분이면 충분했다.침을 뽑은 후 성연은 안금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성연의 방법은 안금여에게 근육과 뼈를 풀어주는 동시에 운동 효과도 있었다.안금여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었다. 아주 느긋한 모습이다.성연이 안금여 몸 이곳 저곳을 바꾸어 가며 주물렀다.바로 옆에서 보고 있던 운경은 성연이 하는 동작 또한 자신들이 안금여의 몸을 풀어줄 때 하던 동작과 동일하다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렇게 한 후, 그 효과는 성연이 한 것만큼 좋지 않았다.왜 그럴까?운경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성연아, 너의 침술과 마사지는 전문적으로 배운 거니?”운경은 성연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신비로워서 이런 실력은 시골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진작부터 묻고 싶었다.“예전에 우리 외할머니 다리가 좋지 않으실 때 마침 이쪽의 지식을 알고 계셔서 할머니께 좀 배웠습니다.”성연은 그냥 생각대로 말했다.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다.성연의 친아버지와 계모가 모두 권세나 재물에 빌붙는 인간이라 성연에게 무엇을 잘 가르칠 수 있겠는가.“우리 성연이는 똑똑해서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구나.” 안금여가 옆에서 칭찬했다.‘조금만 배워도 이렇게 잘하는 걸 보니 이 아이 매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게 틀림없어.’‘성연이 외할머니가 알던 걸 다시 가르쳐 준거라면 이상할 게 없지.’“할머니 과찬이세요. 저는 외할머니에게서 겨우 몇 가지만 배운 걸요.”성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외할머니를 언급하자 얼굴색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그러나 이 의술은 외할머니께 배운 것이 아니다.그래도 외할머니 덕분에 그런 계기가 생겼다.외할머니는 여전히 성연의 마음속에 자리한 유일한 보물이다.안금여와 운경은 지금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성연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일 터.안금여가 화제를
다음날 아침, 성연이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미선이 강씨 집안 고택으로 찾아왔다.‘송성연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안금여도 거절하지 않고 사람을 들여보내라고 했다.진미선의 손에는 적지 않은 선물이 들려 있었는데 모두 수입한 보양식이었다.이번에 안금여를 만나기 위해 적지 않은 밑천을 들였다.진미선이 도착했을 때 안금여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현재 회사는 무진이 다 맡아 관리하고 있고 안금여는 명목상의 회장이었다. 회사에 거의 가지 않고 집에 남아 몸의 기력을 회복하는 중이었다.물론 안금여는 회사에 나가려 했지만 운경과 무진이 막았다.여의치 않은 몸으로 다니는 것은 위험했고 건강이 우선이였다.아직 병세가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 강상철과 강상규가 다시 안금여에게 손을 댈까 봐 걱정된 것이다.고택에 머무르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발자국 소리를 듣고 안금여는 차를 한 모금 가볍게 마신 후 눈을 들어 진미선을 한 번 보았다.진미선이 즉시 인사했다.“회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성연이 엄마, 진미선입니다. 제가 이번에 찾아뵌 것은 성연이에 대한 회장님의 그동안 보살핌에 대해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 댁에 많은 폐를 끼쳤습니다.”말하면서 그녀는 선물을 안금여 앞에 놓았다.진미선의 태도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그러나 아이의 어머니로서 뜻밖에도 남의 집안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들이 자신의 아이를 돌보아준데 대해 감사를 드리니 우습지 않은가?“그냥 오시면 되는데. 뭐 하러 선물을 가지고 오십니까? 돈도 많이 들텐데.”안금여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녀의 말투는 매우 평범했다. 따뜻하지도 않고 별다른 표정도 없이 진미선을 완전히 일반 손님 대하듯이 대했다.그러나 안금여가 자신의 방문을 허락한 것으로 진미선은 이미 만족했다.만약 성연이 없었다면 평생 이런 거물 인사와는 말 한 마디 나눌 수 없었을 것이다.“저는 회장님께서 이런 것들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께
안금여의 예리한 눈빛이 마치 진미선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마음속의 모든 생각을 들여다 보려는 것처럼.진미선의 몸이 약간 경직되었지만, 곧 회복했다.예로부터 고육지책이 가장 유용할 터.진미선은 억지로 눈물 두 방울을 짜낸 뒤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전에는 계속 일하느라 바빠서 성연과 함께 할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성연이가 저에 대해 오해도 있고 또 그다지 친밀하지도 못했죠. 마음속으로 저를 원망했었습니다. 제가 시집 간 집은 제가 재혼이라 눈치를 많이 주었습니다. 제게 아이가 있다는 걸 아주 싫어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성연이 아버지가 성연일 잘 보살펴 주겠다고 맹세를 했답니다. 그래서 믿고 제가 재혼했는데 글쎄 그 못된 사람이 성연일 이렇게 일찍 시집보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행히 회장님 같은 집안의 좋은 사람을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틀림없이 평생 후회하며 살았을거에요.”진미선은 말하면서 안금여의 표정을 관찰했다.진미선이 이런 감동적인 말을 하면 안금여가 반드시 감동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안금여가 누구인가? 온갖 잡귀신들 다 봤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진미선에게 속을까?진미선은 정말 고충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도 그녀가 아이를 버리는 이유가 못되었다.만약 진미선이 정말 죄책감을 느꼈다면 더 일찍 왔어야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찾아오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성연에게 관심이 없었을 터.그런데 하필 강씨 집안에서 성연의 신분을 발표하자마자 찾아왔다. 진미선의 목적을 안금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성연이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까 봐 걱정을 했겠지? 진미선이 정말 딸을 아낀다면 시집갈 필요가 있었겠어?’‘이제 딸이 쓸모가 있어지자 찾아왔구나. 정말 뻔뻔함을 유감없이 발휘하는구나.’“그런 사정이 있었군요.”안금여가 느릿느릿 말했다.진미선이 쇼를 하려고 하는 이상 안금여가 어떻게 손뼉을 쳐주지 않겠는가?잠시 지체했을 뿐인데, 안금여는 오히려 진미선이 어느 지
안금여도 진미선의 의도를 굳이 들추어내지 않고 성질 좋게 말했다.“마음이 쓰이셨군요.”안금여의 태도가 좀 누그러진 것을 본 진미선이 이 기회를 빌어 본심을 드러냈다. “성연이가 언제 시간이 날지도 모르고. 사위 얼굴도 볼겸 우리 두 가족이 함께 식사라도 하는 건 어떨까요?” 진미선은 계획대로 말을 꺼냈다. 강무진을 만나게 되면 남편의 사업에 대해 넌지시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잘만 되면 앞으로 더 이상 시어머니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드디어 자신이 큰 소리 칠 날이 온 것이다. “그건 성연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지요. 내가 결정할 수는 없군요. 나이를 먹으니 몸이 더 이상 견디질 못하는군요. 좀 피곤해서 들어가 쉬어야겠습니다. 계속 접대하기 힘들겠군요.”원래 진미선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안금여였지만 지금 몇 마디 말을 나누는 동안 진미선에 대한 인상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한 번 본 것도 많이 봐 준 셈이다. 얼른 내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적당히 멈추어야 할 줄은 알았던 진미선이 대범한 척하며 말했다.“그럼 먼저 들어가 쉬세요. 저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안금여가 손을 들어 내저었다.문을 나서는 진미선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자신이 안금여의 마음에 꽤 괜찮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안금여의 태도도 괜찮았다. 자신을 사돈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이제 왕씨 집안에서 더 이상 구박 받을 필요도 없을 터!앞으로 시어머니가 자신을 어떻게 추켜세우려나 모르겠다.앞으로 펼쳐질 장미빛 미래를 생각하니 걷는 발걸음조차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안금여는 저녁에 성연과 무진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식사하라고 했다.성연이 온 이후, 집안에 활기찬 분위기로 넘쳤다.성연을 보는 게 즐거웠다. 보면 마음을 기쁘게 만드는 아이다.그래서 사흘 또는 닷새 간격으로 성연과 무진을 불러 식사하러 오게 했다.식탁에 그들 일가족만 있을 때면 식사 예절이니 하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밥 먹을
성연이 너무도 침착하게 받아들이자 오히려 무척 의아스러웠다.마치 오늘 온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별 상관없는 외부인인 것처럼.성연은 총명하니까 분명 진미선의 목적을 짐작했을 것이다. “성연아, 그래도 네 친어머니 아니니? 설마 조금도 마음 아프지 않아? 너도 알다시피, 북성에서 강씨 집안의 위치는 손에 꼽을 정도지. 강씨 집안에서 네 신분을 발표하자마자 찾아왔어. 너를 이용해서 강씨 집안에 기어오르려고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니?” 안금여는 일부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미선이 찾아왔음을 밝혔다.멍청하게 있다가 이용당하지 말라고 성연을 일깨워 주고 싶었던 마음이다.아무리 그래도 성연은 아직 어린 여자아이이다. 피가 물보다 진하니 틀림없이 모성애를 갈망할 수 있는 것이다.진미선이라는 사람은 송씨 집안의 임수정과 달리 어느 것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진미선은 연기를 할 줄 알았다. 만약 성연이 믿고 가까이 한다면 앞으로 더 마음 상하게 될 것이다.긴 고통은 짧은 고통보다 못하다. 진미선의 진면목을 일찍 알게 된다면 앞으로 저들로 인해 동요하지 않았을 테지.성연은 사실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혈연관계라는 것 말고는 정말 낯선 사람과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그리고 누구보다 진미선의 인성을 잘 알고 있었다.어릴 때부터 거듭되는 실망 속에서 철저하게 단념했던 것이다.그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지금도 아주 좋은데 누구에게 의지할 필요가 있겠는가.성연도 안금여가 자신을 위해서 말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저를 키워 주셨고 이제 시집도 왔잖아요? 모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어요. 지금까지 저는 무슨 말도 할 자격이 없었어요. 엄마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라 제 마음에 엄마라는 존재가 없어도 되지 않나요?”헤어지던 마지막 순간, 진미선이 했던 말 역시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는 거였다. 성연은 그렇게 했다. 할 도리를 다한 셈이다.듣고 있던 안금여는 문득 성연이 때문에 마음이 아파왔다. 이렇게 착한 아이인데……
성연은 식탁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계속 말했다.“그리고 고모님, 고모부님…….”강무진 또한 자신을 무척 아껴주지만 이런 상황에서 말을 꺼내기가 왠지 쑥스러웠다. ‘그도 이해해 줄 거야.’운경이 닭살 돋는다고 눈을 흘기며 말했다.“아부하지 마.”그러나 운경의 미간에는 웃음으로 인한 주름이 한 가득이었다. 운경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질책도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식.운경과 조승우는 자식이 없어 무진을 아들처럼 생각했다.그 당시 무진의 부모가 일찍 죽으며 어린 무진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압박감에도 어린 조카를 돌보며 회사 일에 매진했다. 그래서 아이를 가질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이제 와서 나이를 먹으니 더 이상 가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조승우도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그는 운경을 사랑하고 운경의 의견을 존중하며 모든 것을 그녀의 뜻에 따른다.아이가 없어도 그들은 잘 지내 왔으니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무진이도 좋은 아이니 앞으로 자신들에게 효도할 테고, 자신들의 노후도 잘 돌봐 줄 것이다.운경의 생각엔 별거 아니었다. 오빠의 아이도 당연히 자신의 아이인 것이다. 이미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그녀 자신이 자식이 있나 없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모두들 이야기를 나누며 훈훈한 분위기 가운데 저녁식사를 했다.그러면서 운경은 성연에게 반찬을 집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말투는 여전히 툭툭 쏘았다. 송성연을 힐끗 쳐다보던 운경이 말했다.“너 진짜 갈비처럼 말랐어. 많이 먹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모두 우리가 널 학대하는 줄 알겠다.”운경은 일관되게 이렇다. 입은 칼 같은데 마음은 두부처럼 연하다. 그릇에 있는 음식을 집어먹는 성연은 맛있게 먹기만 할 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 성연을 쳐다보던 운경은 가끔 음식을 집어주며 마음을 드러냈다.성연은 속으로 혼자 미소지었다. ‘강씨 집안 식구들은 하나같이 성품이 좋다. 뭐라고 할까, 그래, 츤데레처럼.’언제나 생각을 속에 숨기고만 있다.시간이 너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