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비는 새벽부터 왔다. 보라가 4시 50분에 뒷문을 열었을 때 골목 바닥이 벌써 젖어 있었다. 솥에 인사를 하고 불을 올리는데 빗소리가 솥 소리를 덮었다. 비 오는 날은 국물 냄새가 밖으로 못 나갔다. 가게 안에 고였다. 유리문 안쪽에 김이 서려서 골목이 안 보였다.
5시 40분에 계단 소리가 안 났다. 지운은 비번인데 새벽에 나갔다. 어젯밤에 벽 너머로 "내일 아침에 교육이 있어서 못 내려옵니다" 했다. 벽 너머로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보라는 "알았어요" 하지 않았다. 벽에 대고 대답하는 게 이상해서였다. 그런데 지운은 보라가 들은 걸 아는 것처럼 더 말을 안 했다.
소정이 5시 반에 왔다. 머리가 젖어 있었다. 보라는 수건을 던져 줬다. 소정은 머리를 닦고 앞치마를 묶었다. 두 번. 이제는 보라가 안 봐도 됐다.
"사장님, 손님 오겠어요?"
"와. 비 와도 밥은 먹어."
왔다. 셋 왔다. 6시에 배달 기사 하나가 비옷을 입은 채로 들어와서 창가에서 먹었다. 늘 오는 둘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비 오면 안 나와" 했다. 7시에 복순 할머니가 비닐을 머리에 쓰고 와서 솥 앞 둘째 자리에 앉았다. 비닐을 벗어서 식탁에 놓고 빗물을 손으로 털었다.
"비 오는 날은 만수가 뼈를 더 넣었어."
"뼈 받는 날이 아니에요, 할머니. 오늘 수요일이에요."
"그래서 더 넣었다고. 비 오면 사람이 안 오니까 남은 뼈를 다 넣었어. 그날 국물이 제일 진했지."
보라는 국자를 들고 그 말을 생각했다. 그런 얘기는 공책에 없었다. 할머니는 국밥을 반만 먹고 반은 남겼다. 비 오는 날은 입맛이 없다고 했다. 나가면서 비닐을 다시 쓰고 "총각은?" 했다. 보라가 "교육이요" 했다. 할머니는 "소방관이 뭔 교육을 또 받아" 하고 갔다. 8시에 모르는 남자가 들어와서 "여기 큰길 나가는 데가 어디예요" 하고 물었다. 길을 잘못 든 택시 기사였다. 보라는 길을 가르쳐 주고, 남자는 가르쳐 준 값으로 국밥을 먹고 갔다.
그게 끝이었다. 9시가 되자 가게에 보라와 소정만 남았다. 솥 앞자리는 비어 있었다. 보라는 깍두기 접시를 거기 놓지 않았다. 교육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접시를 들었다가 놓았다. 놓은 자리가 솥 앞자리였다. 소정이 봤고 보라는 모르는 척했다.
◎
"사장님은 레시피 없어요?"
소정이 그릇을 닦다가 물었다. 닦을 그릇이 셋밖에 없어서 벌써 다 닦고 또 닦는 중이었다.
"있어."
"어디요?"
"여기."
보라는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적어 두세요. 사장님 아프면 어떡해요."
"안 아파."
"5년 동안 한 번도요?"
보라는 대답을 안 했다. 한 번 있었다. 3년 전 겨울에. 그때는 아파서 쉰 게 아니었다. 그 얘기는 소정한테 할 얘기가 아니었다. 보라는 아버지 서랍을 열었다. 계약서, 알바 종이, 그 밑에 공책이 있었다. 갈색 표지. 모서리가 다 닳았다. 보라는 그걸 꺼내서 식탁에 놓았다.
"이게 레시피야. 아빠 거."
소정이 손을 닦고 공책을 열었다. 첫 장에 «보라국밥»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지 글씨였다. 굵고 눌러 쓴 글씨. 그다음 장부터는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적은 것들이었다. 순서가 없었다.
«뼈 받는 날 월, 목. 화요일 뼈는 받지 말 것.»
«불 낮추는 때. 김이 뚜껑 틈으로 두 줄 나올 때.»
«깍두기 무, 겨울 무는 하루 더 절인다.»
«파는 썰어서 하루 넘기지 말 것.»
«복례 입은 국밥으로 막는다.»
소정이 마지막 줄을 읽고 웃었다. 보라는 안 웃었다. 많이 읽은 줄이었다.
"사장님, 이거 다 외우세요?"
"외운 게 아니라 그냥 해. 하다 보니까 적힌 대로 하고 있더라."
소정은 장을 넘겼다. 넘기다가 멈췄다. 마지막 장이었다. 거기에 두 글자가 있었다.
«맛은»
그다음이 없었다. 종이가 찢겨 있었다. 반듯하게 찢긴 게 아니라 손으로 뜯은 자국이었다. «맛은» 다음에 뭐가 있었는지 뜯긴 종이 가장자리에 글자 끝이 조금 남아 있었다. 획 하나.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맛은 뭐요?"
"몰라."
"찢으신 거예요?"
"아니. 아빠 돌아가시고 꺼냈을 때부터 이랬어."
"누가 찢었는데요?"
"몰라.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했어. 아빠가 찢었을 수도 있고."
"왜요?"
"모른다니까."
소정이 그 장을 손으로 눌러 봤다. 찢긴 자리를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보라는 그걸 보다가 공책을 덮었다. 소정 손이 공책에서 빠졌다.
"적어 둔다는 게 이거야. 적어 둬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그래도 적어 두세요."
"됐어."
보라는 공책을 서랍에 넣지 않고 식탁에 뒀다. 넣으려다가 뒀다. 비 오는 날은 그런 날이었다.
◎
10시에 유리문이 열렸다. 빗소리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지운이었다. 비옷도 안 입고 모자도 없이 머리부터 운동화까지 다 젖어 있었다. 바닥에 물이 떨어졌다.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교육 끝났습니다."
"뛰어왔어요?"
"버스에서 내려서요."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10분이에요."
"뛰면 4분입니다."
「4분.」 보라는 수건을 던졌다. 소정한테 준 수건 말고 다른 수건이었다. 지운이 받아서 머리를 닦았다. 닦고 나서 수건을 목에 걸고 바닥을 봤다. 자기가 흘린 물을 봤다. 그러고 걸레를 집었다.
"그거 놔요. 젖은 사람이 바닥 닦으면 더 젖어요."
"제가 흘린 거라서요."
지운은 바닥을 닦았다. 닦고 나서 설거지통으로 갔다. 그릇이 셋 있었다. 소정이 세 번 닦은 그릇이 아니라 보라가 점심에 쓰려고 꺼낸 그릇이었다. 지운은 그걸 씻기 시작했다. 보라가 "그건 씻은 거예요" 했는데 지운은 "한 번 더 씻으면 더 깨끗합니다" 했다.
소정이 보라 옆에 와서 작게 말했다.
"저분은 왜 자꾸 저래요."
"비번이래."
"비번이 뭔데요."
"나도 몰라."
지운이 소매를 걷었다. 운동복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젖은 소매라 잘 안 올라가서 두 번 걷었다. 보라는 솥 뒤에서 그 팔을 봤다. 왼손 손등 자국은 알고 있었다. 그 위에 하나가 더 있었다. 팔뚝 안쪽, 손목에서 팔꿈치 쪽으로 손바닥만 한 자국. 손등 것과 색이 비슷했다. 더 넓었다.
소정도 봤다. 소정이 보라를 봤다. 보라는 소정을 안 보고 지운을 봤다.
"지운 씨."
"네."
"소방관은 다 그래요?"
지운이 설거지를 멈췄다. 물은 계속 틀어져 있었다. 지운은 자기 팔을 내려다봤다. 보라가 뭘 묻는지 아는 얼굴이었다.
"저만 이래요."
"왜요."
"제가 좀 그렇습니다."
"뭐가요."
"뜨거운 데를 잘 잡습니다."
그게 대답이었다. 「뜨거운 데를 잘 잡는다.」 보라는 더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는데, 그게 아닌 걸 어떻게 묻는지 몰랐다. 지운은 다시 그릇을 씻었다. 소정이 보라 옆구리를 살짝 쳤다. 아무 말도 안 했다. 보라도 안 했다.
◎
11시가 됐는데 손님이 없었다. 소정은 가야 하는데 안 갔다. 비가 더 세졌다. 유리문 밖이 하얬다.
"사장님, 저 밥 먹고 가면 안 돼요?"
"먹고 가."
"저분도요?"
지운은 두 그릇을 못 먹었다. 새벽에 못 내려와서. 보라는 뚝배기 셋을 꺼냈다. 뜨고 보니 셋이었다. 식탁에 놓으려는데 소정이 말했다.
"앉으면 손님 같잖아요. 솥 앞에서 먹어요."
보라는 뚝배기를 든 채로 소정을 봤다. 아버지가 하던 말이었다. 식구는 솥 앞에서 서서 먹는다. 앉으면 손님이다. 소정은 그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들은 적이 없는데 그렇게 말했다.
"그래."
셋이 솥 앞에 섰다. 보라가 가운데, 왼쪽에 소정, 오른쪽에 지운. 솥에서 김이 올라와서 셋 얼굴을 다 덮었다. 소정은 뚝배기를 행주로 감싸고 먹었다. 지운은 서서도 뚝배기를 돌렸다. 손잡이 오른쪽. 숟가락 세워서 한 번. 국물 세 번. 보라는 그걸 옆에서 봤다. 옆에서 보니까 더 아버지 같았다. 보라는 밥을 말았다. 뜨거워서.
"오늘 국물이 진합니다."
지운이 둘째 숟가락 뒤에 말했다. 보라는 "뼈 더 안 넣었어요" 했다. 지운은 "그래도요" 했다. 할머니가 아침에 한 말을 지운은 못 들었다. 못 들었는데 비슷한 말을 했다.
"세 식구네요."
소정이 말했다. 보라가 "식구 아니야" 했다. 지운은 아무 말 안 하고 둘째 그릇을 떴다. 자기가 떴다. 보라가 뭐라 하기 전에. 국자 쥐는 법이 서툴지 않았다.
"지운 씨, 국자 잡을 줄 알아요?"
"보고 배웠습니다."
"누구한테."
"사장님이요."
보라는 솥을 봤다. 지운이 국자를 제자리에 걸었다. 아버지가 걸던 자리였다. 보라가 거기 건다고 말한 적 없었다. 접시도 그랬다. 지운은 이 가게에서 뭐가 어디에 가는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았다. 2층 사는 사람은 그럴 수도 있었다. 3주면.
소정이 다 먹고 "잘 먹었습니다" 하고 갔다. 가면서 지운을 한 번 보고 보라를 한 번 봤다. 소정의 눈치는 말을 안 해도 다 들렸다. 지운은 세 그릇을 다 씻고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기 전에 "누나, 잘 먹었습니다" 했고 보라가 "금지" 했다. 둘째, 넷째. 보라는 그 소리를 세지 않으려고 솥을 저었다.
◎
3시에 문을 닫았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바닥을 밀 필요가 없었다. 손님이 셋이었다. 보라는 식탁에 앉았다. 공책이 거기 있었다.
보라는 마지막 장을 폈다.
«맛은»
그다음이 없었다. 보라는 그 두 글자를 봤다. 아버지가 눌러 쓴 글씨. 뒷장까지 자국이 남는 글씨. 보라는 그 자국을 손가락으로 만져 봤다. 글자가 손끝에 걸렸다. 맛, 은. 그다음은 종이가 끊겨서 손가락이 공중에 떴다.
찢긴 가장자리에 남은 획 하나를 손톱으로 짚어 봤다. 세로로 내려오는 획. ㄹ일 수도 있고 ㅅ일 수도 있고 그냥 아버지 손이 미끄러진 자국일 수도 있었다.
「아빠, 맛은 뭐야.」
보라는 손가락으로 찢긴 자리를 쓸었다.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종이가 손가락 밑에서 조금 일어났다. 빗소리가 유리문을 때렸다. 2층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났다. 보라는 한 번 더 쓸었다.
(6화 끝)
기일에는 가게를 닫았다. 5년 동안 그랬다. 유리문에 종이를 붙였다. «오늘 쉽니다.» 그 종이는 한 해에 한 번만 붙었다.새벽 4시 50분에 보라는 그래도 솥 앞에 섰다. 불은 안 올렸다. 뚜껑만 열었다. 어제 끓인 국물이 식어서 위에 기름이 굳어 있었다. 보라는 그 솥을 보고 작게 말했다. 매일 하는 그 말을. 오늘은 그 말 뒤에 "다녀올게" 하나가 더 붙었다.보온통에 국밥을 담았다. 두 그릇. 밥 따로, 국물 따로. 청솔리까지 두 시간이면 식을 거였다. 식어도 국밥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지운이 계단을 내려왔다. 셋째 계단을 넘었다.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였다. 보라도 검은 옷이었다. 둘이 가게 안에 서 있으니까 가게가 상갓집 같았다. 보라는 그 생각을 하고 보온통 뚜껑을 세게 닫았다."비번 맞아요?""성준이랑 바꿨습니다.""그 떠버리가 바꿔 줬어요?""소정 씨한테 잘 보이고 싶다고요."보라는 보온통을 들었다. 지운이 받아 들었다. 보라는 안 줬는데 지운 손에 가 있었다. 그 손이었다. 손등 반이 다른 색인 손.휴대폰이 울렸다. 소정이었다. «사장님, 잘 다녀오세요. 가게는 제가 한 번 들여다볼게요.» 닫은 가게를 뭘 들여다본다는 건지 몰랐다. 보라는 «고마워» 하고 보냈다. 짧은 답이었다. 보라 문자는 늘 그랬다.◎첫차는 6시였다. 터미널까지 걸었다. 시장은 아직 셔터가 내려와 있었다. 황씨네 앞을 지나는데 셔터 밑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황복례가 안에서 "다녀와라" 했다. 셔터를 안 올리고 말했다. 보라는 "네" 했다. 지운이 고개를 숙였다. 셔터한테.터미널 매점 앞에서 지운이 가방을 열어 보였다. 소주 한 병이 들어 있었다."산소에 뭘 가져가는지 몰라서요. 사장님이 저녁에 한 잔씩 하셨
8월 첫 토요일 밤 9시에 «퇴근.»이 왔다.보라는 가게 안에 있었다. 닫은 지 여섯 시간이 지난 가게였다. 솥에는 국물이 두 그릇 남아 있었다. 남긴 거였다. 보라는 «국밥 남았음» 하고 보냈다. 점은 안 찍었다. 저쪽은 찍고 이쪽은 안 찍는 게 이제 보통이었다.야시장 밤 뒤로 일주일이 갔다. 보라는 그날 밤 둑길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돌아왔다. 지운이 뒤에서 따라왔다. 둘 다 말을 안 했다. 가게에 오니까 국자가 바닥에 그대로 있었고, 솥은 황복례가 뚜껑을 덮어 놨고, 소정이 돈통을 안고 앉아 있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시장 사람들은 보라를 볼 때마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황복례도 그랬다. 황복례가 입을 닫는 건 국밥 앞에서뿐이었는데, 이번 주는 보라 앞에서도 닫았다.지운은 똑같이 왔다. 당번 다음 날 5시 40분, 두 그릇. 비번 날 설거지. "누나, 잘 먹었습니다." 똑같이. 보라는 똑같이 "누나 아니에요" 했다. 그 말이 이번 주에는 잘 안 나왔다.보라는 일주일 동안 세 번 물으려고 했다. 뭘 갚는다는 건지. 한 번은 솥 앞에서, 한 번은 설거지통 앞에서, 한 번은 계단 밑에서. 세 번 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소정이 수요일에 "사장님, 왜 안 물어봐요" 했다. 보라는 "뭘" 했다. 소정은 "뭘, 이라뇨. 시장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는 그거요" 했다. 보라는 "물어서 나올 거면 벌써 나왔어" 했다. 소정은 "그래도 물어봐야 나오죠" 했다. 보라는 파를 썰었다.「물어서 나올 거면.」그렇게 믿고 넉 달을 안 물었다. 믿은 게 아니라 무서웠는지도 몰랐다. 나오면 뭐가 나올지.9시 20분에 유리문이 열렸다. 지운이 들어왔다. 훈련복 차림이었다. 땀 냄새가 났다. 두 그릇 자리에 앉았다. 보라는 한 그릇을 떴다. 뚝배기를 돌리고, 숟가락을 세우고, 세 번."늦었네요.""훈련이 길
야시장은 한 해에 하루였다. 7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 상인회에서 골목에 전구 줄을 걸고, 가게마다 좌판을 밖으로 냈다. 아버지 때부터 보라국밥은 그날 솥을 골목으로 내놨다. 솥째로. 종이 그릇에 국밥을 담아 팔았다. 한 해에 하루만 보라국밥이 저녁 장사를 했다.새벽에 보라가 지운한테 말했다. 두 그릇째를 먹을 때였다."오늘 야시장이에요. 저녁에 솥 내놔야 돼요.""네.""솥 무거워요. 상인회에 사람 불러야 되는데.""제가 들겠습니다.""혼자 못 들어요.""성준이 옵니다.""벌써 불렀어요?""지난주에요."보라는 지난주에 야시장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지운이 어디서 들었는지는 안 물었다. 시장에서는 뭐든 다 들렸다.솥을 옮기는 게 일이었다. 아버지 살아 있을 때는 아버지와 황씨네 남자들이 들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상인회 젊은 사람들을 불렀다. 올해는 안 불렀다. 지운이 들었다. 성준이 반대쪽을 잡았다. 둘이 솥을 들고 유리문을 나가는데 성준이 "이거 몇 킬로야" 했고, 지운이 "말하지 마" 했다. 보라는 뒤에서 국자를 들고 따라 나갔다."거기요. 전구 밑에."솥이 내려앉았다. 골목 바닥이 울렸다. 황복례가 건너편에서 "저 힘 봐라" 했다. 미자 이모가 "둘이 드는 건데요" 했다. 황복례가 "그래도 저쪽이 더 드는 거 안 보이냐" 했다. 성준이 "저도 들었는데요" 했다. 아무도 대답을 안 했다.소정이 종이 그릇을 쌓았다. 소정은 오전 알바인데 오늘은 저녁까지 나왔다. 돈을 더 주겠다고 했더니 "안 받아요" 했다. 안 받는 이유를 보라는 알았다. 성준이 전구 줄을 고치고 있었다.6시에 전구가 켜졌다. 하나가 안 켜졌다. 보라국밥 솥 바로 위 전구였다. 성준이 사다리를 가져왔고 지운이 올라갔다. 전구를 돌렸다. 켜졌다. 황복례가 "저 키면 사
엄마는 토요일 9시에 왔다. 장마가 그 전날 끝났다.새벽에 지운이 두 그릇을 먹을 때 보라가 말했다. 솥을 저으면서, 지운을 안 보고."오늘 엄마 와요.""네."네, 가 평소보다 늦게 나왔다. 보라는 그걸 들었다. 지운은 숟가락을 든 채로 유리문을 한 번 봤다. 아직 캄캄한 유리문이었다. 거기 아무도 없었다. 지운은 다시 먹었다.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졌다. 보라는 그것도 들었다. 숟가락 소리로."비번이죠, 오늘.""네.""그럼 나가 있어도 돼요. 엄마 있으면 불편할 텐데.""안 불편합니다.""지운 씨가 아니라 엄마가요.""……그래도 있겠습니다."보라는 엄마가 오는 걸 유리문 너머로 먼저 봤다. 아니, 황복례가 먼저 봤다. 골목 저쪽에서 "옥순아!" 하는 소리가 났고, 그다음에 엄마가 보였다. 양손에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모자를 쓴 채였다. 밭에서 쓰는 모자였다. 그걸 쓰고 버스를 두 시간 타고 왔다.황복례가 엄마 보따리 하나를 뺏어 들었다. 미자 이모가 생선가게에서 나와서 다른 하나를 뺏었다. 엄마는 빈손으로 유리문을 열었다. 셋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가게가 좁아졌다."왔다.""왔네."보라는 솥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도 솥 쪽으로 오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인사했다. 5년 동안 그렇게 인사했다.엄마가 가게를 둘러봤다. 솥, 테이블 여섯 개, 메뉴판, 벽 달력. 7월 달력 생선은 민어였다. 엄마 눈이 달력에서 설거지통으로 갔다. 거기 지운이 있었다. 비번이었고, 소매를 걷고, 뚝배기를 닦다가 멈춘 채였다.엄마가 지운을 봤다.오래 봤다. 보라가 세어 보지 않았는데도 길었다. 황복례가 입을 열려다가 미자 이모한테 팔을 잡혔다. 소정이 뚝배기를
화요일 저녁 6시 10분에 휴대폰이 울렸다.보라는 솥을 닦고 있었다. 손에 물이 묻어서 앞치마에 닦고 휴대폰을 집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보라는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 사람인데, 이건 전화가 아니라 문자였다.«퇴근.»두 글자에 점 하나. 보라는 그걸 한참 봤다. 누군지 묻지 않아도 알았다. 퇴근이라는 말을 보라한테 할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었다. 보라는 번호를 저장했다. 이름 칸에 뭐라고 쓸지 몰라서 «2층»이라고 썼다.답을 쓰려고 자판을 열었다. 뭐라고 쓸지 또 몰랐다. 퇴근했으니 오라는 건지, 퇴근했다고 알리는 건지, 퇴근했으니 밥을 달라는 건지. 보라는 솥을 봤다. 점심 지나고 남은 국물이 반 솥 있었다.«국밥 남았음»쓰고 나서 보냈다. 보내고 나서 위에 뜬 «퇴근.»을 다시 봤다. 점이 있었다. 보라 것에는 없었다. 보라는 자판을 다시 열어서 점 하나를 쳤다. 점만 따로 보내는 건 더 이상해서 지웠다.「뭐 하는 거야.」휴대폰을 엎었다. 엎어 놓고 솥을 닦았다. 바깥에 비가 왔다. 장마가 그날 시작됐다. 유리문에 빗방울이 붙었고, 골목 셔터들이 일찍 내려갔다.20분 뒤에 유리문이 열렸다. 지운이 젖어서 들어왔다. 머리에서 물이 떨어졌다. 보라는 수건을 던졌다. 지운이 받았다. 받아서 머리를 닦고, 두 그릇 자리에 앉았다."남았다고 하셔서요.""남았어요."보라는 국밥을 떴다. 한 그릇이었다. 저녁이니까. 지운이 뚝배기를 돌리고 숟가락을 세우고 세 번. 보라는 그 앞에 서서 봤다. 저녁에 가게에 손님이 앉아 있는 게 두 달 만이었다. 그때는 성준도 있었다. 지금은 하나였다."지운 씨는 문자에 점을 꼭 찍네요."보라가 말했다. 솥 뚜껑을 닫으면서. 지운이 숟가락을 든 채로
7월 첫 토요일 새벽, 사이렌이 세 번 지나갔다.보라는 솥 앞에서 세 번을 다 들었다. 새뜰소방서 쪽에서 나와서 큰길로 빠지는 소리였다. 하나가 아니라 셋이 줄줄이. 보라는 국자를 든 채로 유리문을 봤다. 아직 캄캄했다. 4시 55분이었다. 손목시계로는 5시였다.사이렌은 새벽에도 났다. 늘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셋이 줄지어 가는 건 드물었다. 보라는 솥을 저었다. 저으면서 시계를 봤다. 5시 40분이 됐다. 두 그릇 자리는 비어 있었다. 지운은 어제 당번이었다. 당번 다음 날 아침이면 5시 40분에 유리문이 열려야 했다.6시가 됐다. 안 열렸다.새벽 배달 기사 둘이 와서 창가에 앉았다. 하나가 두 그릇 자리를 보고 "오늘은 안 왔네" 했다. 보라는 "네" 했다. 다른 하나가 "아까 소방차 나가던데" 했다. 보라는 두 그릇을 떠다 주고 깍두기를 놓았다.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5시 반부터 와 있던 소정이 그 말을 듣고 휴대폰을 꺼내 보더니 보라 앞에 내밀었다."사장님, 산불이래요. 옆 시 뒷산이요. 밤에 났대요. 바람이 세서 안 꺼진대요. 새뜰소방서도 지원 나갔다고 나와요."보라는 화면을 봤다. 산 하나가 벌겋게 찍힌 사진이 있었다. 밤 사진이었다. 벌건 선이 산등성이를 따라 길었다. 보라는 그 선을 보다가 휴대폰을 소정한테 돌려줬다."가게 하자.""사장님.""손님 와."손님이 왔다. 보라는 국밥을 떴다. 두 그릇 자리에는 손님을 앉히지 않았다. 소정이 그 자리로 손님을 안내하려고 하자 보라가 "거긴 안 돼" 했다. 소정이 "왜요" 했다. 보라가 "안 돼" 했다. 소정은 손님을 창가로 보냈다.◎황복례가 10시에 들어왔다. 멸치 상자 없이, 휴대폰을 들고."보라야, 48시간이란다.""뭐가요.""지원 나간 거. 이틀 꼬박 있다 온다고. 미자가 소방서 앞에 가서 물어봤어. 구조대 다 갔대. 그 떠버리 총각도 갔고, 니네 총각도 갔고.""우리 총각 아니에요.""그럼 누구 총각이냐."보라는 솥을 저었다. 복순 할머니가 유리문을 반만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