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색한 침묵 속에서 불판 위 고기만 요란하게 익어갔다. 숨 막히는 공기를 견디지 못한 설화는 괜히 텅 빈 소주잔 표면만 만지작거렸다. 열기에 데워진 유리병을 타고 맺힌 물방울이 낡은 테이블 위로 느릿하게 흘러내렸다.“대표님, 고기는 어떠세요?”어떻게든 이 불편한 공기를 환기해 보려 억지로 쥐어짜 낸 말이었다.“나쁘진 않네.”말투는 무심했지만, 강현의 눈은 가게 안을 천천히 훑었다. 일 년 전, 이곳에서 일하던, 설화를 호기심에 지켜보던 날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그때도 저렇게 작고 말랐던가. 손님들 눈치를 살피며 바쁘게 움직이던 얼굴은 지금보다 더 지쳐 보였던 것 같았다.술잔에 머물던 눈길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설화의 얼굴에 멎었다. 세상은 설화에게 평범한 삶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강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목에 채워진 족쇄는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더욱 잔인하게 살을 파고들었다.묻고 싶은 말이 혀끝에 맴돌았다.너도 그랬겠지. 나 때문에. 그리고 이 빌어먹을 세상 때문에.끝내 삼킨 그 말은 사과가 되기엔 한참 늦었고, 위로라 하기엔 너무나 기만적이었다.강현은 입속에 남은 소주를 혀끝으로 굴리다 삼켰다. 인공감미료 특유의 달착지근하면서도 저릿한 쓴맛이 뒤늦게 목구멍으로 번졌다. 잔이 몇 번 더 오간 뒤, 강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앞으로 외부 파트 일은 그만두고…… 내 사무실로 출근해.”너무도 담담한 어조였다. 부탁이나 권유가 아닌 결코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 동의를 가장한 통보. 그의 방식은 늘 그랬다. 출구가 열려 있는 것 같아도 결국은 갇히고 마는 정교한 미로 같았다.“대표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을 사이에 두고 강현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차피 넌 돈이 필요한 거잖아. 외부 파트는 너한테 리스크가 커.” “하지만 제가 어떻게 대표실에……. 정식으로 면접을 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갑자기 이러시면…….” “그냥 내 말대로 해. 요즘 따라 하나같이 토를 다는지 모르겠네.”느슨했던 말끝
강현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목적지를 훤히 아는 사람처럼 골목 안쪽으로 먼저 걸었고, 설화는 유난히 넓어 보이는 그의 등을 따라갔다.기대면 안 돼.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힘든 순간마다 이상하게 곁에 남은 사람이 서강현이었다는 사실이 설화를 더 아프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고깃집 간판이 보였다. 설화는 걸음을 멈추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한때는 하루를 버티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렸던 삶의 터전이었다.“여기 맞지? 네가 말한 곳이.” “……네.”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묻는 강현의 무심한 태도에 설화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 정말 잔인하다.낡은 유리문을 열자, 찌든 돼지기름 냄새와 시끌벅적한 불판 소리가 훅 끼쳐왔다. 동시에 홀을 바쁘게 치우던 사장님과 주방 이모, 지원 언니의 시선이 입구로 일제히 쏠리더니 굳어버렸다.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의아함이 뒤섞인 어색한 적막이 짧게 흘렀다.설화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이며 강현을 구석진 테이블로 안내했다. 기름기가 가시지 않은 낡고 둥근 양철 테이블. 쉴 새 없이 행주로 닦고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던 그 자리에 자신이 손님으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이질적이었다.“오랜만이네, 설화야. 말도 없이 안 나오길래…….”물수건을 들고 다가온 지원이 강현의 얼굴을 슬쩍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정작 그는 창밖 어딘가로 시선을 던진 채, 주변의 모든 인간들을 완벽하게 외면하고 있었다. “언니, 잘 지냈어요? 사장님께 말씀 좀 해주세요. 오늘 고기 좋은 부위로만 달라고.”지원은 설화를 한 번 훑어보다 작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그래. 네가 누구보다 고기 볼 줄 잘 아니까.”지원이 주방 쪽으로 멀어지자, 설화가 맞은편에 삐딱하게 앉은 강현을 불렀다.“대표님.”그제야 강현이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설화를 담았다. 입꼬리는 미동조차 없었다. 흔히 보여주던 여유로운 미소도 없었다. 그저 감정의 깊이를 전혀 읽어낼 수 없는 무표정만이
미래드림의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언제나처럼 숨 막히는 압박감이 서강현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인간들의 욕망을 받아내고, 기꺼이 그들의 더러운 손발이 되어주는 나날이었다. 강현은 오늘도 감정 하나 드러내지 않은 차가운 얼굴로 복도를 걸었다.“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요.”형식적인 인사를 흘려보내고 대표실로 들어서자, 책상 위 검은 결재 서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청일제지 매각 최종안]서류를 집어 든 강현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어졌다. 박 회장이 이 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건, 곧 누군가는 바닥으로 비참하게 추락하고 다른 누군가는 막대한 이득을 챙겨 배를 불린다는 뜻이었다.강현은 서류를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 곧장 내선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오 실장과 이 비서가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강현은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대표실 안에 전속 비서 자리 하나 만드세요.”오 실장의 눈이 당혹감으로 커졌다.“전속 비서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갑자기요?” “외부 파트 인원 하나 빼서 그 자리로 올립니다.”협상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서늘하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오 실장의 얼굴에 곤혹스러움과 미묘한 불만이 스쳐 지나갔다.“대표님, 기존 체계가 있는데 외부 인원을 곧바로 대표실로 올리면 다른 팀에서도 말이 나올 겁니다.”그때였다. 오 실장 뒤에 서 있던 이 비서가 눈을 내리깐 채 낮게 중얼거렸다.“굳이 그렇게까지 파격적으로 하실 필요가 있을까요.”대표실이 조용했던 만큼 작은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렸다. 강현의 시선이 느릿하게 이 비서에게 꽂혔다. 단순한 불만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 없이 튀어나온 말은 기억해 둘 가치가 있었다.강현이 만년필로 책상 위를 딱, 한 번 두드렸다.“필요하니까 하는 겁니다. 그 이상은 묻지 마세요.”목소리 높낮이 하나 없는 단호한 태도에 오 실장은 더 이상 말을 잇
다음 날 오전, 미래드림 회의실은 평소보다 훨씬 무겁고 숨 막히는 정적으로 가득했다.길게 놓인 대리석 테이블 위로 임원들의 노트북이 일제히 열려 있었다. 공기청정기 팬이 돌아가는 소리조차 유난히 크게 들렸다. 상석에 앉은 강현은 만년필을 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유리를 느릿하게 두드리고 있었다.딱, 딱.일정한 소리가 이어질수록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점점 굳어갔다.“보고 시작하세요.”재무팀 최 과장이 서둘러 스크린에 화면을 띄웠다.“정상 대출 라인과 별도 펀드 운용 건은 손실 없이 정리했습니다. 잔여 리스크는 현재 기준으로 없습니다.” “현재 기준?”강현의 시선이 스크린에서 최 과장의 굳은 얼굴로 옮겨갔다. 단 두 단어가 떨어졌을 뿐인데, 회의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최 과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예. 외부 변동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내부 처리 기준으로는 문제없습니다.” “리스크 대응은요.” “지난주 정치권 요청 건은 해외 차명계좌를 통한 송금 절차까지 처리됐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자문료와 행사 후원금으로 분산 처리되어 추적 가능성은 낮습니다.”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찻잔을 들어 올렸지만 입술을 대지는 않았다. 잔 너머로 최 과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차분했다.“낮은 거지, 없는 게 아닙니다. 다시 확인하세요.” “예.”마케팅팀장의 보고가 먼저 이어졌다.“신규 사업 홍보 일정은 다음 달 첫째 주로 잡았습니다. 사전 보도자료는 이번 주 안에 배포하고, 주요 매체 인터뷰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강현이 보고서에서 시선을 들었다.“그 일정은 앞당기세요.” “언론 노출 시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체 일정이요. 사전 홍보부터 투자자 대상 설명회까지 일주일 당기세요.” “준비 기간이 빠듯할 수 있습니다.” “빠듯한 건 일정이 아니라 준비가 부족한 겁니다. 진행하세요.”마케팅팀장이 황급히 메모했다. 이어 전략기획팀장이 화면을 넘겼다.“신규 사업 관련 투자자 대응 자료입니다.
세차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처마 끝을 때리던 요란한 빗소리가 조금씩 잦아들더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툭, 툭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골목의 정적을 채웠다. 젖은 도로 위로 가로등의 붉은 불빛이 길게 번졌고, 이따금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아스팔트 위 물웅덩이가 낮게 일렁였다.설화는 좁은 처마 아래에 서서 한동안 그 젖은 풍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비가 완전히 그쳤다고 하기엔 공기가 축축하고 무거웠고, 더 쏟아질 것 같다고 하기엔 밤하늘이 옅게 개어 있었다.강현은 아무 말 없이 비에 젖은 재킷 소매를 툭툭 털어냈다. 흐트러진 앞머리 끝에 맺힌 물방울 하나가 그의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다 셔츠 깃 안쪽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설화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괜히 시선을 돌렸다.“이제 그치려나 봐요.”설화가 처마 밖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창백한 손바닥 위로 미세한 빗방울이 스치듯 닿았다가 금세 허공으로 흩어졌다. 강현은 대답 대신 젖은 도로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택시 잡아줄 테니까 타고 가.”“……대표님은요?”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설화는 아차 싶어 입술을 다물었다. 물어봐야 할 말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판단할 수 없었다. 저 오만하고 빈틈없는 남자에게 제 알량한 걱정 따위를 건네는 일이 얼마나 우스운 짓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어이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말았다.강현의 입꼬리가 픽 비틀렸다.“누가 누굴 걱정해.”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렇다고 덜 아픈 건 아니었다. 사람을 흔들어 놓고도 자신은 늘 한 발 뒤에 서는 사람. 들어올 틈을 주는가 싶다가도 손을 뻗는 순간 벽부터 세우는 사람이었다.강현이 손을 들자, 빈 택시 한 대가 갓길에 붙었다. 그는 뒷문을 열고 설화를 바라봤다.“뭐 해. 기사님 기다리시잖아. 타.”설화는 더 말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젖은 치맛자락이 시트 가장자리에 닿았다. 문이 닫히기 직전 고개를 돌리자, 빗물 어린 차창 너머로 강현이 그대로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아주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진우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강현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밀어낸 뒤, 취객들 앞을 가로막았다.“야야, 강현아.”진우는 강현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어내며 몸을 틀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검사 공무원증을 꺼내 취객들 앞에 내밀었다.“조용히 가실래요, 아니면 제가 이름부터 받아둘까요?”공무원증을 확인한 세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조금 전까지 떠들어대던 기세가 눈에 띄게 꺾였다. 서로 눈치를 주고받던 그들은 결국 마지못해 통로 한쪽으로 몸을 비켰다.“지나가시죠.”강현은 취객들 곁을 지나치는 동안에도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남자들이 숨을 죽인 채 길을 비킨 뒤에야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테이블 위의 긴장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강현은 아무 말 없이 소주잔을 집어 들었다. 한 잔, 또 한 잔.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에도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다만 잔을 내려놓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설화는 몇 번이나 말을 걸려다 입술만 달싹였다. 섣불리 건드리면 오히려 더 날카로워질 것 같은 침묵이었다.“강현아, 너답지 않게 왜 이래.”진우가 한숨 섞인 농담을 던졌다. 강현은 대꾸 대신 차가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짧은 시선만으로도 욕설보다 충분히 많은 말이 전해졌다.그때 진우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그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하필 이럴 때…….” “왜. 문제 생겼어?” “배당받은 사건이 좀 꼬였나 봐. 차장님이 급하게 찾으시는 걸 보니 단순 사건은 아닌 것 같고, 보고할 것도 생긴 모양이야. 미안, 나 먼저 들어가 봐야겠다.”진우는 서둘러 재킷을 챙겨 입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설화를 향해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었다.“미안해요. 오늘 좀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다음에 또 봐요.” “네. 조심히 가세요.”진우가 문을 나설 때까지 강현의 시선은 그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표정은 무심했지만, 입매가 조금 굳어 있었다.
뭐가 이렇게 불편한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여자 하나가 방 안에 잠들어 있을 뿐인데, 그런데도 손끝에 닿았던 설화의 부드러운 살결과 입술의 촉감이 기어이 잔상처럼 달라붙었다.아주 오래전 닫아 둔 문 안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손잡이를 건드리는 것처럼.비가 내렸다. 회색 하늘 아래, 굵은 빗방울이 낡은 식당 문을 쉼 없이 때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고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그 작은 식당 앞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열 평 남짓한 식당은 젊은 여자와 어린 소년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엄
설화가 차가운 기운을 느꼈는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더 둥글게 웅크렸다. 강현의 커다란 재킷 아래로 가냘픈 어깨가 파묻히고,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강현은 그 위태로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강제로 시선을 뚝 끊어냈다. 그런데도 의지는 배신하듯 다시 고개가 돌아갔다.확인하듯, 아니면 상황을 부정하려는 사람처럼.……이건 아니야.그는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눈물처럼 붙어 있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닿는 순간마다 감각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고, 단단히 손끝에 들어가 있던 통제력은 허무하
축 늘어진 설화를 품에 안은 채, 강현은 빗속을 가로질렀다. 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의식 없는 몸 하나쯤 옮기는 일에 버거움을 느낄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품 안에 닿은 체온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런데도 그 작고 힘없는 무게가 불쾌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강현은 설화를 조수석에 눕힌 뒤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벨트가 가느다란 몸 위로 걸리는 순간,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마치 그 멈칫거림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그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뒷좌석의 재킷을 집어 들었다.축축하게 젖은 상체 위로 재킷을 덮어 주는
설화는 다리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빗방울이 머리카락을 타고 목덜미 아래로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손끝은 점점 차가워지고, 온몸이 젖어들수록 오한이 몸을 감싸 안았다. 가로등 불빛마저 거센 빗속에서 흐릿하게 번져 눈앞을 어지럽혔다.그 순간, 머리 위로 툭— 소리와 함께 암전처럼 검은 우산이 펼쳐졌다."그래서… 여기서 끝낼 생각이야?"낯설지만 낮고 묵직하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 설화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리며 천천히 남자를 응시했다.우산 아래 서 있는 남자는 빗물에 젖은 검은 셔츠 사이로 단단한 어깨를 드러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