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 재원의 루틴이 오늘은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12:30 / 15:40 / 18:00] 같이 칼같이 들어오던 보고였다.희수는 처음엔 “바빴겠지” 하고 넘겼다.하지만 점심시간도, 퇴근 시간도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자, 슬슬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왜 보고 안 해…?’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희수에게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선물했다.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희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는, 진심을 담아 길게 메시지를 보냈다.[자기 늦어도 괜찮은데, 상황 정도는 말해줬으면 좋겠어.] 19:15[오늘은 왜 이렇게 연락이 끊겼는지… 나 혼자 계속 자기 루틴 시간 맞춰서 기다렸어.] 19:16[사람이니까 물론 변수 생길 수 있지. 그런데 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면 마음이 흔들려. 불안하고.] 19:17[갑자기 연락이 안 오니까 내가 어제 보낸 메시지 때문인가? 하는 생각까지 드네.] 19:18답이 올 때까지 휴대폰만 멍하니 바라봤다. 초조함은 희수에게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잠시 후, 재원의 답은 희수의 마음을 정확하게 관통했다.[일하다 바빴는데 왜 그렇게 예민해?] 19:25[일이 먼저지 너한테 메시지 보내는게 먼저겠니?] 19:26“...예민?”희수는 이마를 짚었다. ‘예민한 게 아니라, 명확한 정보가 없어서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봐 확인하려는 건데? 이걸 왜 감정적이라고 치부하는 거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예민하다고 잘라버리는 재원에게 또 한 번 기분이 상했다.그녀는 참지 않고 다시 메시지를 눌렀다. 억눌렀던 감정적인 논리가 폭발했다.[나는 감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자기랑 나 사이의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기다렸던 거야.] 19:30[자기는 항상 정확하게 말하잖아. 근데 오늘은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상황 파악을 해야지.] 19:31[내가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지, 자기는 단 한 번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더 속
아침 햇살이 희수의 침대 위를 미끄러지듯 비췄다.희수는 눈을 뜨자마자,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었다.재원의 루틴.[기상] 06:12[출근 준비할게] 06:13똑같고 정확한 시간.이 남자는 늘 그대로여서, 그래서 더 읽기 어려웠다.조금만 더 표현해주면 좋겠는데, 아직 이 남자에겐 기대하기 어렵다.희수는 가볍게 보고를 올렸다.[나 일어났어] 07:00읽음 1.그냥 평소의 아침이었다.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좀 이상했다.펜션에서 옆에 누워 자던 그 밤부터,그 남자의 눈빛이 자꾸 머리에 남았다.‘…아무것도 안 하던데요.’그 말이, 뭔가…심장을 괜히두근거리게 만들었다.“하… 뭐야 진짜… 왜 자꾸 생각나게 해…”그러다 결국—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희수는 숨을 들이쉬고자기조차 당황할 만큼 솔직한 메시지를 한 번에 쏟아냈다.[자기, 나 사실 어제부터 이상해.펜션에서 같이 잤던 거… 생각보다 계속 생각나.자기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난 괜히 심장 뛰고, 그 말도 계속 재생되고…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던 그 표정도 자꾸 떠오르고.이상해. 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보내는 순간—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아씨 진짜 미쳤나 봐…”희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바로 삭제 버튼을 눌렀다.삭제.삭제.삭제.“삭제된 메시지입니다.”흔적만 남았다.내용은 사라지고, 남아있는 건 희수의 울렁거리는 가슴뿐.그리고 중요한 건—읽음 표시.그녀는 바로 자신이 조금 전 보냈던 루틴 메시지의 읽음 상태를 확인했다.읽음 1.그래.정상이다.재원은 이런 시간에 절대 보고하지 않는다.루틴 외 시간에는 휴대폰을 거의 안 본다.적어도 희수는 재원이 그런다고 생각했었다.그건, 두 사람이 연애한 내내 변하지 않은 패턴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루틴에 희수도 적응 한지 오래였다.루틴으로 연애하는 사이.남들은 이해 하지 못하는 둘의 안정된 신호.다른 이들은 말한다."군대야?""보고는 무슨 보고.""나는 그런 남자
가게 한켠에서 머리를 질끈 묶고 정리하던 희수는재원이 아침부터 보내는 ‘초건조 모드’를 보며슬슬 불쾌함이 쌓여갔다.[회의들어간다] 09:30[끝났다] 10:10[밥먹고 쉰다] 12:31[일하는 중] 13:05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오늘은 유난히 ‘정보만 던지고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심지어 온도도 없음.희수는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나름의 감정을 조금씩 섞었다.[나 지금 밥먹었어!] 13:30[오늘 손님 많아 ㅠㅠ 지쳐어~] 14:25그런데 돌아오는 답은—[네에] 15:40[집이다 쉰다] 15:42“…와 진짜 오늘 왜 이래.”희수는 마음속에서 아주 조용히‘흥’ 하고 삐지는 소리가 났다.대구에서 보여줬던 그 남자의 미세한 다정함이오늘은 싸그리 사라진 느낌이었다.‘뭐야… 어제까진 귀여웠으면서.’어쩌면 그래서 더 서운했다.조금만 달달한 걸 맛보면그게 기준이 되어버린다.가게 마감하고 집에 가는 길.희수는 기분을 바꾸려 일부러 귀엽게 썼다.[자기 나 퇴근 하는 중이야~] 19:40[잘 쉬구 있지?] 19:40[보구싶다아~] 19:41그러니 돌아오는 답은—희수 기준에서 오늘 최악의 단어가 와야 했다.그리고 진짜로 왔다.[예~] 19:55“……와.”감정이 ‘닫힙니다’ 소리처럼착— 하고 내려앉았다.‘아니 왜. 왜 오늘만 이래.기껏 보고 싶다고까지 했는데.’희수는 10초 만에 감정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결국 참지 못했다.폭주 기차처럼 메시지를 쏟아냈다.[자기는 나를 걱정해준 적이라도 있어?] 19:56[난 자기 말 한마디에 하루가 뒤집히는데 자기한테 나는 뭐야?] 19:56[여자친구로 생각은 해? 아니면 그냥 일상보고 받아주는 사람이야?] 19:56적고 나서심장이 쿵, 쿵—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희수는 방금 보낸 메시지들을 눌러 다시 읽었다.“아오… 미쳤네 나… 이걸 보냈다고…?”순간적으로 너무 솔직했고, 너무 감정적이었다.재원이 가장 싫어하는 ‘끝난 감정 되짚기 + 감정 폭탄
아침 6시.알람과 함께 눈을 뜬 희수는 밤새 쌓인 재원의 메시지를 확인했다.[네에] 23:05[주무세요~] 23:05[난 2차 중] 23:05[숙소 도착] 00:43[취해따~] 00:43[씻고 쉬다가 잘게] 00:45“하… 진짜 정확해 죽겠다… 귀여워.”희수도 루틴대로 답장을 보냈다.[나 일어났어] 06:03[취했다구? 해장 잘해~] 06:03[난 세미나 갈 준비할게!] 06:04부랴부랴 준비해 차에 탔을 때 재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설레이는 마음을 감추면서. 못만나게 되더라도 그와 함께 같은 도시에서 같은 날씨를 느끼게 되는 것은 상상만해도 기분 좋은 일이니까.[자기 나 출발~] 06:40대구 도착후.세미나 까지 3시간.끝나고 나오자, 역시 재원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으아 일어났다] 11:20[이따 오후에 미팅 있어 준비할게] 11:25희수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지금 시각, 오후 14:19분,그의 말투를 따라해보고 싶어진 것이다.[준비를 3시간이나 하나보네] 14:20‘후후, 뭐라고 할까?’예상대로 얼마 뒤, 무미건조한 답이 왔다.[아, 늦어가지고] 15:05[지금 미팅 중입니다] 15:05“…이게 끝?”희수는 볼을 부풀렸다.너는 되고, 나는 안되고? 어디보자! [예예] 15:06보낸 직후 혼자 킥킥 웃었다.예상대로 곧 재원의 반응.[말투 뭐냐] 15:10“…너도 했잖아아…”[장난입니다~] 15:13희수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세미나 건물 밖으로 나오자, 대구 햇살이 기분 좋게 내렸다.잠깐은 혼자 외지의 기분을 누리고 싶어서, 이리저리 걸어다녔다.그리고 문제는 그때 시작되었다.희수는 길을 오래 걷기 시작하면 ‘절대’ 기억하지 못한다.예쁜 가게 보이면 들어가고,카페 보이면 커피 마시고,사거리 보이면 ‘저쪽이 더 예쁘네?’ 하고 걷고…그리고 어느 순간—주차했던 위치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어?”몸이 굳고, 식은땀이 올라왔다.‘설마 또…?’
희수랑 재원이 연애를 시작하고 일년 남짓 되었을 때.재원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그날 청소기를 끄고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희수의 휴대폰에,익숙할 정도로 정확한 시간에 재원의 루틴이 들어왔다.[나 숙소 도착했어] 19:20[임원들이랑 밥 먹고 올게] 19:30희수는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답장을 눌렀다.[웅 나 지금 가게 정리 중이야] 19:40[퇴근해서 집 가면 연락할게~] 19:41대답을 보내고 나니,문득 공기 속에 작은 허전함이 내려앉았다.일주일 넘게 못 본 얼굴이 괜히 떠올랐다.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얼굴 보는 사이 인데. 재원의 출장이 예상 밖으로 길어졌기 때문에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희수의 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한 줄을 더 보냈다.[근데… 나 자기 너무 보고싶다 ㅠㅠ] 19:45희수는 재원에게 보고 싶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재원은 이런 감정 적인 문장을 그냥 흘려듣는 타입이라 생각해서 일려나,희수는 티 내는 타입, 재원은 감추는 타입.그럼 사람들은 묻는다. 그게 연애냐고.하지만 내 기준. 연애 맞다. 남들이 이해 못하는 연애여도 연애다.바로 그때,전국 애견미용사 연합 단톡방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희수는 무심코 알림을 눌렀다.‘내일 대구 세미나 오실 분?’“...어?”대구.재원이 출장 가 있는 그 도시.심장이 콩 하고 뛰었다.머릿속이 순식간에 빠르게 회전했다.일정을 잘만 짠다면 세미나 핑계 삼아 대구에 내려가 재원의 얼굴까지도 볼 수있겠다.내일은 쉬는 날이고, 세미나는 몇 시간만 들으면 되고,재원이 퇴근하기 전 잠깐이라도 얼굴만 보고 올라오면—그 다음 날 오후 1시 예약에도 문제 없다.“오...이건… 하늘이 주는 기회네.”희수는 급히 기차표를 확인했다.“…매진?”입술이 툭 나온다.그럼 차.3시간 반.갈 수 있다. 지금의 간절함이면 충분하다고 희수는 생각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재원에게 루틴 보고를 보냈다.[나 집 도착!] 20:20그
여행의 소란이 빠져나간 집은, 지나치게 고요했다.세탁기가 돌아가는 둔탁한 진동 소리만이 빈 거실을 채웠다.희수는 짐을 풀다 말고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푹신한 매트리스가 그녀의 무게만큼 푹 꺼지며 희수도 같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머릿속엔 자꾸 재원의 그 목소리만 윙윙거렸다.“…옆에 있어도 아무것도 안 하던데요.”“…하, 진짜, 미쳤나 봐.”'내가 뭐... 자기가 옆에 있으면 뭐라도 할 줄 알았나? 뭘 바란건데 뭐!'희수는 이불을 걷어차며 몸을 일으켰다.부끄러움이 아니라, 도무지 '입력값' 과 '출력값'이 맞지 않는 이 상황이 괴로웠다.같이 자는 건 불편하다며 단칼에 거절해놓고왜 자기 옆에 와선 조용히 누워 있었던 건데?그리고 왜 아침에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그러나 이게 싫다는게 아니다. 재원만의 표현이라 생각하면 어느정도 이해도 되는 방식이었다.“논리적으로 절대 설명이 안 되잖아!”머리는 따지고 싶은데감정은 괜히 말랑해져서 더 화가 났다.희수랑 재원이 썸을 타는 사이도 아니었고, 연애를 막 시작하는 사이도 아니었다.항상 사랑을 확인해야 하는 건 희수였고, 재원은 희수의 사랑을 받기만 했었다.그래도 사랑하니까 안헤어지는 거겠지 하며 버텨온 시간들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설렐 일이야?이해가 안 되면 리스트를 만들어 정리 하는 것이 희수 방식이었다.희수는 바로 메모 앱을 켰다. [❤️ J (웬수)]1. 말과 행동이 완전 다른 타입말 : 불편함 / 단호 / 시멘트행동 : 다정함 / 최적화 / 옆에 붙기예) “사람 많잖아요.” → 결국 내 옆에서 잠.결론 : 말만 믿으면 안 됨. 행동이 진짜다.2. 스킨십은 내가 먼저 해야 하는 타입자기는 절대 먼저 안 함.근데 내가 하면 절대 거부 안 함.아침에 했던 그의 말은 거의 이런 뜻.“난 네가 뭔가 할 줄 알았음.”…어이없다 정말. ...자기가 옆에 누웠으면 먼저 하던가...3. 이상한 보호자 본능펜션 도착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