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규의 곁에는 조용해 보이지만 명품으로 치장하여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었다. 방규의 팔짱을 낀 그녀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선유 씨, 상상했던 것만큼 아름다우시네요.” 선유는 방규에게 물었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가로챈 셈이었다. 순간,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하자, 방규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팔을 빼며 말했다.“아닙니다.” 그 여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선유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쩐지... 제가 못 뵈는 동안 안목이 나빠지신 줄 알았어요.”젊고 아름다운 선유는 조명 아래에서 더욱이 빛나고 있었다. 방규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벌써 이렇게 자란 데다가 말도 조리 있게 잘하다니... 남자친구는 있어요?” 선유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 하민철에게 저지당했다.“선유는 아직 어려서 그런 일은 전혀 급하지 않아요.” “결혼할 나이는 된 것 같은데요, 뭘.” 선유는 소위 ‘이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라는 사람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다시 만나자마자 이토록 무례하게 말하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연은 곧장 나아가는 운석을 붙잡지 못했다.“이 대표님도 마흔을 넘겼는데, 아직 미혼이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20대 초반의 아가씨에게 결혼을 재촉하다니... 조금 무례하시네요.” 술잔을 든 운석은 다소 반항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갔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방규와 건배했다. 운석을 그윽이 바라보던 방규가 하민철을 바라보았다.“이분은...” 운석이 잔을 꽉 쥐었다. 그는 투자은행 업계의 고수일 뿐만 아니라, B시는 물론이며 M국의 투자 분야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그런 나를 모르는 척하면서 창피를 주려 해?’ 그가 하민철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투자은행의 부사장이자, 나씨 가문의 장남인 나운석입니다. 편한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방규의 눈동자에 흥미가 스쳤다. 그가 선유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아, 나씨 가문의 장남이 벌써 이렇게 자랐군요. 기억하실
손을 뻗은 방규가 서영을 품에 안았다.“모른다는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서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완전히 변해버린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는 아무리 화가 나도 이곳에서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HL산업은행의 연회는 소란을 피울만한 곳이 아니었으며, 곳곳에 고위 간부들과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에 HL산업은행을 난처하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이방규의 세력은 HT그룹보다 더 강력했기 때문에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연은 서준이 간신히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석으로 돌아가자, 운석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선유의 손을 잡은 하연은 그녀에게 귓속말했고, 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하연은 더 이상 오래 머물지 않고 곧장 HL산업은행의 연회를 떠났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태훈이 말했다.“이방규 대표님께서 투자한 영화사는 요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회사입니다. 우리 DS그룹의 영화사와는 경쟁상대인 셈이죠.” “그 사람이 최근에 계약한 연예인들을 좀 알아봐 줘.”하연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원래 조사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꼭 조사할 수밖에 없겠어.’ [한서영?]수화기 너머에서 의심을 품은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정말 많이 변했더라고요.”“참, 이방규가 F국 출신이라던데, F국은 오빠가 잘 알잖아요. 혹시... 뒷조사를 좀 해줄 수 있을까요?”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잡음이 들렸다. 상혁은 문을 열고서야 입을 열었다.[알겠어.]하연은 그의 기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이내 상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접질린 데는 좀 어때?] 하연이 고개를 숙이고 발목을 바라보았다.‘이제 별로 아프지 않아.’그녀가 이현이 감아준 붕대를 풀며 말했다.“괜찮아요.” “저기... 이방규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를
이튿날, DS그룹으로 달려온 선유는 어젯밤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방규의 옆에 있던 사람이요... 공개적으로 사귄 지 3,4개월이나 된 여자 친구래요. 그런데 신분이 불분명해서 이씨 가문에서는 인정하지 않나 봐요. 아무래도 진지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하연은 한창 서류를 뒤져보고 있었다.“한씨 가문에 HT그룹까지 합쳐도 이씨 가문의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거야. 그리고 한서준이 아프리카로 보냈다던 한서영은 어떻게 돌아온 걸까?” “아무도 몰라요.”선유가 고개를 저었다.“이방규가 한서영의 과거를 모두 지웠다고 하더라고요.” “재밌네, 한서영한테 이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거든.” 하연이 손에 든 펜을 돌리기 시작했다.“어젯밤은 어땠어?” “운석 오빠가 몇 번이나 이방규한테 말을 걸어보려고 했는데, 절대 대답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운석 오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나운석이 그런 일을 당하는 날이 오는구나.’이렇게 생각한 하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서영은 카드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한서영의 배경에 두려움을 느낀 재벌가 아가씨들이 카드를 내밀기도 했어요. 아마 꽤 많은 돈을 벌었을 텐데도 건방진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서영의 얼굴을 떠올린 선유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예전에는 그 여자가 눈앞에 서 있어도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몰라보게 달라져서 돌아왔다고요!” 하연이 못 말린다는 듯 그녀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한서영은 이방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HL산업은행의 큰 아가씨인 네가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선유는 단번에 맥이 풀렸다.“하지만 저도 HL산업은행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사실 그 여자랑 별로 다를 것도 없어요.” 하연은 어리둥절했다. “언니, 우리 아빠는 아직도 제가 아빠의 곁에 있길 바라세요.” “왜? 나씨 가문은 세계적으로도 부족함이 없고, HL 산업은행에 딱 어울리는 상대잖아.”하연은 선유와 운석이 이미 서로에게 감정이 있다
한서영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머, 진짜 매니저님이 오셨네요.”하연은 여유롭게 서영의 손에 있던 가방을 빼앗아 핸드폰으로 스캔했다. “공식 사이트에서 인증한 진짜 가방이에요. 뭐 할 말 있어요?”장예나는 하연이 오자마자 팔을 잡았다. “지금 저 여자가 일부러 시비 걸려고 온 거야. 나도 방금 스캔했어.”서영은 두 팔을 교차하며 오만하게 말했다. “그건 당신들이 보관을 제대로 못 해서 흠집이 생긴 거겠죠. 난 이 가방을 받지 않을 거예요. 당신들이 전액 배상해야 하니까요.”“정말 비겁하시네요!” 예나는 화가 나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연을 넘어서려 했으나 하연에게 저지당했다.“한서영 씨, 당신이 이 가방을 받지 않겠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전액 배상도 가능하고요. 그런데 제가 공식적으로 한마디만 하죠. 앞으로 당신을 위해 맞춤 제작은 하지 않겠다고요, 어때요?”다시 말해서 서영은 이제부터 이 브랜드의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는 것이었다.서영의 얼굴이 순간 변했다. 이 브랜드의 가방은 신분의 상징인데, 더 이상 들 수 없다면 큰 망신이었다.“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죠. 그냥 오랜만에 최하연 씨를 봐서 농담 좀 한 거예요.”서영은 돌아서서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최하연 씨를 알지? DS그룹의 최 사장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 나랑 예전부터 알던 사이야.”그 친구들은 서영이 이방규의 여자 친구라는 걸 알고 매우 공손하게 말했다. “아, 친구셨군요.”“친구는 아니야. 사실 난 최하연 씨의 전 올케였어, 몰랐지? 예전에 우리 집 모든 집안일은 최하연 씨가 다 했어. 빨래하고, 청소하고, 요리까지... 그때 최하연 씨가 해준 음식이 좀 그립네. 올케, 아니, 전 올케, 나한테 다시 요리해 줄 수 있어요?”서영의 눈꼬리가 올라가며 도전적인 표정을 지었다.하연은 눈을 굴리며 속으로 후회했다.‘예전의 나는 얼마나 멍청했길래 한서준 집안에서 그렇게 많은 흑역사를 남긴 거지?! 그래서 한서영도 지금 날 이렇게까
“그만해요.” 서영이 음침한 얼굴로 말을 끊었다. 그녀는 예전에 하연에게 당한 적이 있었고, 하연이 실제로 이런 인맥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감히 내기할 수 없었다.하연은 재미있다는 듯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서영은 그녀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무 자만하지 마. 곧 너도 고통을 맛보게 될 거야.”하연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멀리 보이는 실루엣을 응시했다. “기다리고 있을게.”서영은 분노에 찬 채로 몸을 돌려 사람들과 함께 매장을 나섰다.순식간에 매장 안은 조용해졌다.하연은 표정을 거두었고, 하선유는 급히 물었다. “언니, 이방규한테 정말 첫사랑인 여자가 있어요?”“아니, 다 내가 지어낸 거야.”예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한서영은 언니한테 속을 수밖에 없어요. 그건 한서영이 이방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뭐 그렇게 대단한 척을 하는 건지...” 그때 부남준이 동행한 여자와 함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가방 찾으러 왔어요.”선유도 급히 말했다. “저도요.”예나는 바로 자세를 고쳐 잡고 번호를 확인하며 물었다. “따라오세요.”두 사람은 예나를 따라 다른 쪽으로 갔다. 남준은 몸을 돌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다시 만나네요. 최 사장님은 여전히 말솜씨가 좋고 담대하네요.”하연은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 사장님도 여전하네요. B시에 와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여자가 끊이질 않으니 말이에요.”“최 사장님도 만만치 않죠. F국에서 한 명, B시에서 또 한 명을 낚았으니, 우리 형이 알면 뭐라고 할까요?”남준은 낮게 말하며 손에 든 맞춤형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라이터 끝에는 그의 영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하연은 남준을 응시하며 미간을 찌푸렸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루머를 퍼뜨리는 건 부끄러운 일잖아요, 부 사장님.”이 순간, 하연은 남준이 한서준에 대해 뭔가 알아내고
하연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모든 사진은 그날 밤 손이현과 함께 있던 장면들이었다. 이현이 하연의 발을 주무르고, 대화를 나누고, 그녀를 부축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사진 속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사진을 찍은 각도도 의도적이었고, 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보였다.하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시 한번 남준의 비열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이건 진실이 아니에요.”“진실이든 아니든, 우리 형이 보면 그게 진실이 되는 거죠.”남준은 마지막 사진으로 넘겼다. 사진 속 이현은 외롭게 마당에 서 있었다. “이 사진 좀 봐요. 마치 남녀 간의 즐거운 일이 다 끝난 후에 마음 편하게 담배를 태우는 것 같지 않아요?” 하연은 고개를 들고 남준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그의 얼굴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매장 안에 뺨을 때리는 소리가 아주 크게 울렸다.다행히 그때는 매장에 아무도 없었다.남준은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혀로 입가를 핥았는데, 그는 피 맛을 느꼈다.“방금 감히 날 때렸어?”“너는 참 비열하고 추악해. 네가 날 협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뭘 시키겠다고 말도 안 했는데, 벌써 그렇게 초조해할 필요는 없지 않나?”하연의 손바닥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남준이 자신의 약점을 쥐고 있으며, 틀림없이 자신에게 어떤 불가능한 요구를 할 것임을 느꼈다.“최하연, 너 지금 털을 세운 작은 고양이처럼 보여.” 남준은 미소를 지으며 하연에게 다가와 느긋하게 그녀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걱정하지 마. 당장은 부상혁에게 말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한다면, 그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한다면? 내가 어떤 일을 해야 부남준 이놈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야? 그건 아무도 모르지!!’ 하연은 주먹을 꽉 쥐고 다시 남준을 밀어냈다. “내가 직접 상혁 오빠한테 말하면 돼. 절대로 네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곧장 매장 안쪽의 휴게실로 들어갔다.
하연의 목소리엔 약간의 곤란함이 배어 있었다.마침 그때, 강성훈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자료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이현이 통화를 끝내길 기다렸다. 이현은 손을 들어 성훈에게 먼저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자신은 창가로 걸어갔다.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데요?]하연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매우 중요해요.”[협박은 얼마나 심각해요?]하연은 이 문제가 이현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목숨이 걸린 건 아니지만, 그냥... 사업 경쟁 정도?”이현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했다. [제가 하연 씨라면, 잠시 참을 거예요. 시간을 두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정말 중요한 관계라면, 한 번 깨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든요.]이상하게도, 이현이 이 말을 할 때 하연은 그의 말 속에서 묘한 쓸쓸함을 느꼈다.“손 선생님, 혹시 제가 선생님의 마음속에 아픈 곳을 건드린 거예요?”[아니에요, 다 지나간 일이에요.]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현이 물었다.[혹시 제 도움이 필요해요?]하연은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한 듯, 급히 감사를 표했다. “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요.”성훈은 시계를 한 번 보고, 통화가 5분 동안 계속된 것을 확인했다. 이현은 전화를 끊은 후에도 5분 동안 창가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성훈은 보고할 일이 좀 급했지만, 이현을 방해할 수 없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사장님, 찾으라고 하신 자료 가져왔습니다.”이현은 그제야 돌아서서 자료를 받았다. “순조로웠어? 그쪽에서 널 괴롭히진 않았고?”“아니요, 손이현 사장님의 일이라고 하니 아주 협조적이었습니다. 예전의 ‘한 팀장님’ 덕분에 저쪽 사람들이 아직도 사장님을 존경하고 있더라고요.” 성훈은 웃으며 말하려다가 잠시 멈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오늘은 왜 마스크를 안 쓰셨어요...”성훈은 이현이 얼굴을 다친 후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얼굴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하연은 부남준과 거래하게 된 것을 알았지만, 찌푸리며 말했다. [난 그 사람을 몰라요.][곧 알게 될 거야.]선유를 집에 데려다주고, 하연은 곧장 DS그룹으로 향해 정태훈을 불러냈다. “한 사람을 조사해 줘. 이름은 서태진이야.”‘손 선생님이 말한 게 맞았어. 지금은 부남준을 자극해서는 안 돼. 부남준이 사진을 상혁 오빠에게 직접 보내면 분명 문제가 생길 거야. 난 스스로 시간을 벌어 부남준을 무너뜨릴 기회를 찾아야 해.’얼마 지나지 않아 태훈이 보고했다. “서태진은 WA그룹의 대표예요. 건축업에서 WA그룹은 전국 대부분 기업의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WA그룹은 건축업에서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건축업계에서 서태진의 영향력은 상당히 큽니다.” 하연은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며 의심스러웠다. ‘부남준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 역시 WA그룹과 관련이 있는데, 부남준이 왜 서태진의 약점을 잡으려 하는 거야? 또 어떻게 내가 서태진의 약점을 찾아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지?’“참, 이번 DS그룹 연말 송년회에 초청할 명단에 서태진의 이름이 있어요.”“왜 서태진을 초대하게 된 거지?”태훈이 웃으며 대답했다. “최 사장님께서 본인이 하신 말씀을 잊으셨어요? DS그룹과 동급에 있는 기업들의 대표를 모두 초대장을 보내라고 하셨잖아요.”하연은 거의 잊을 뻔했다. ‘그래서 부남준이 저렇게 자신만만했던 것이었구나. 이미 다 계획을 세워둔 것이 분명해!’태훈은 하연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그럼 초대장은 서태진에게 보낼까요?”“보내.”하연은 속으로 서태진이 참석을 거부하기를 바랐지만, 예상외로 WA그룹에서는 바로 참석을 수락했다.하연은 속이 시큰해졌다.태훈이 다시 물었다. “B시에 새로 온 이방규 대표도 있는데, 그분도 초대할까요?”“그 사람은 됐어.”하연은 이방규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최근 하선유는 아버지 하민철에게 압박받아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하
송혜선은 조봉규를 거칠게 밀쳐냈다. 조봉규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거칠게 쓰러졌다. “안 돼... 혜선아...” 쿵!무거운 소리와 함께 조봉규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채, 천천히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결국 그는 의식을 잃었다. 송혜선은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조봉규의 얼굴을 스쳤다. 잠시 머뭇거리던 손끝은 이내 떼어졌다. ‘이젠, 끝이야.’ 송혜선은 망설임 하나 없이 돌아서며, 서늘한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동안, 상혁은 대부분의 일정을 취소하고 하연의 곁에 머물렀다. 둘만의 달콤한 시간은 보는 이들까지 부러움에 빠지게 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양가 부모님들은 대만족이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양가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자연스레 상혁과 하연의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약혼은 했지만, 전통대로라면 결혼식도 치러야지.” 최동신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진숙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은 이미 조진숙에게 친딸과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을 대충 넘길 순 없었다. “걱정 마세요. 결혼식 준비는 제가 맡아서 잘 준비할게요. 두 아이는 그날 예쁘게 하고 참석만 하면 됩니다.” “하하, 고맙소, 고맙소.” 최동신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요즘 들어 최동신의 건강도 한층 좋아진 데다가 경사까지 겹치니 덩달아 기운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만 행복하면, 우리야 바랄 게 없지.” 옆에 있던 최하민이 자연스럽게 거들었다. “결혼식은 서둘러야겠지만, 아직 혼인신고를 안 했으니 그게 먼저 아닐까요?” 조진숙은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 “맞다, 그걸 깜빡했네.” 그녀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혼인신고는 아이들 의견을 먼저 들어봐야지. 중요한 일이니까.” 하연과 상혁은 나란히 계단을 내려오다, 자연스럽게 들려온 혼인신고 이야기. 둘 다 순간 멈칫했다. 본능처럼 서로를 바라봤다. ‘
상혁은 말없이 부동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지나간 모든 일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한 파래임 한 파래임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마음을 다잡은 상혁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네, 알겠습니다.” 부남준 사건은 예정대로 재판이 열렸다. 부씨 가문은 변호사를 통해 대응했지만, 형사 사건인 만큼 얽히고설킨 진실을 밝히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DL 그룹, 최상층 대표실.상혁은 혼자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거대한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결국 이 순간이 오는구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원신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재판 끝났습니다.” 상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판결 나왔어?” “예상대로입니다. 다시는 못 일어날 겁니다.” 원신민의 말은 고요했던 상혁의 마음에 작은 돌을 던진 것처럼 퍼져나갔다. 두 사람의 목숨과 확실한 증거. 이미 알고 있던 결말이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니 상혁도 묘한 허탈함이 밀려왔다. “부 회장님도 알고 계시나?” “예,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기절하셨지만, 다행히 지금은 안정을 되찾으셨고요.” 원신민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송 여사는 재판하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판결 듣자마자 바로 떠났어요.”부동건에게 쫓겨난 후, 송혜선은 과거의 화려함을 모두 잃었다. 부동건은 그녀에게 줬던 모든 부동산을 회수했고, 카드 계좌까지 정지시켰다. 이제 송혜선에게는 남은 보석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뿐. 상혁은 가늘게 눈을 좁혔다. ‘재판에 온 건 놀랍지 않지만... 반응이 이 정도로 끝났다는 게 아무래도 수상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바로 상혁은 차갑게 말했다. “송혜선 감시 붙여. 또 무슨 일 일으키기 전에.” 원신민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어둡고 습
비틀거리던 부동건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정신 차려... 이 순간만은 피하지 말자.’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상혁 쪽으로 다가갔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거리. 마침내 눈앞에 다다라 멈춰 섰을 때,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맞닿았다. 부동건은 말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막상 눈을 마주하니,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부동건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상혁아. 그동안, 너랑 너희 어머니한테 내가 너무 못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그날, 그 선택이 결국 우리 가족을 무너뜨린 거야.’ 사실, 부동건은 이혼하던 날부터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그 후로의 모든 시간은, 그저 체면과 자존심을 위한 연기였을 뿐이다. 지금 이 꼴이 된 건... 결국 하늘이 내린 벌이었다. ‘자업자득이야. 이 모든 건 내가 자초한 거니까.’ 상혁은 조용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엔 적당한 거리감과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게 이제 와서 중요하진 않아요. 저도, 어머니도... 이미 오래전에 마음 정리했어요.” 그 말에 부동건은 눈을 감았다. 눈가에 뜨거운 기운이 차오르는 걸 애써 참았다. “그래. 마음 내려놨다니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잠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부동건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한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곧장 상혁에게 건넸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고, 더는 회사를 끌고 나갈 힘이 없다. DL그룹은 내가 처음부터 세운 회사다.”“내 모든 시간과 인생이 들어간 곳이지. 하지만 이제는 놓아야 할 때가 왔다.” 상혁은 망설이듯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 상혁의 손에 부동건은 서류를 억지로 쥐여주며 아들의 손등을 두드렸다. “앞으로는... 네가 이끌어가야 한다.” 그 손길엔 조용한 무게와 책임, 그리고 사죄가 담겨 있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입꼬리를 살짝 움직이던 부동
상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검진을 마친 뒤, 하연은 선명한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사진 속 동그란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요. 이게 우리 아기래요.” 목소리엔 설렘과 떨림이 그대로 묻어났다. 상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눈엔 이미 감동이 차올라 있었다. 상혁은 조심스레 하연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난 정말 너무 행복해.”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하연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남자아기일까요, 여자아기일까요?”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사랑스러운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상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연은 고개를 살짝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엔 별빛이 머물러 있는 듯 반짝였다. “그래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걸로 충분해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았고, 서로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 순간, 상혁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곤 순간 눈빛이 깊어졌다. 화면엔 낯익은 이름이 선명히 떠 있었다. [부동건.]‘이 타이밍에...?’ ‘설마 무슨 일 생긴 건가?’ 지난 연회 이후, 부동건과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혜선과 조봉규. 그 두 사람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그리고 결국, 부동건은 송혜선을 아이와 함께 본가에서 내쫓았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하연이 조용히 말했다. “받아봐요. 무슨 일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은 하연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고, 그녀를 옆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부동건은 갑작스레 거칠게 기침을 터뜨렸다. “컥”‘피 맛...?’ 목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 손등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나고, 이성의 끈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동건의 시선이 천천히 송혜선과 조봉규를 향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너희들... 너희들...” 부동건의 입술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송혜선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끝나면 안 돼...’ 그녀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부동건의 팔을 붙잡았다. “회장님... 우리, 조 선생님이랑 그냥 산후 회복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진짜예요, 저희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부동건의 손이 송혜선의 뺨을 후려쳤다. 짝! 순간 정적. 강하게 내리친 손바닥 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송혜선의 얼굴 한쪽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눈가가 덜덜 떨리며, 눈물도 같이 맺혔다. “이 천하의... 배은망덕 같은 것. 내가 너를 어떻게 믿었는데... 감히 날 기만해?” 뒤에 서 있던 하객들 사이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였어?” “저게 진짜였네... 소문이 아니고...” “...”송혜선은 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다시 붙잡았다. “회장님, 제발... 오해예요. 저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는... 당신뿐이었어요.” 그러나 부동건은 그 손마저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는 힘껏 송혜선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퍽!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송혜선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조봉규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니야... 지금 나섰다간 나도 끝장이야.’ 한 걸음 다가가려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회... 회장님... 저희...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그 한마디가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부동건은 그대로 조
일 순간 충격의 정점이었다.부동건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저... 저런 미친...!” 그는 화면을 가리키며, 얼굴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송혜선... 네가 감히!’ 주변 하객들도 이미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게 진짜야?” “부 회장님 딸이... 아니라고?” “와... 이건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미친 패륜이야, 상상도 못 했어.” 오늘의 연회는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이제 와선 최악의 스캔들 파티가 되어버렸다. ‘이 연회가... 전부 거짓된 일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이야?’ ‘우리, 사기당한 거네. 다 같이.’ 그때 스크린이 멈췄고, 연회장 전체의 조명이 다시 환히 켜졌다. 하객들은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부동건을 찾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하지만 부동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어금니를 꽉 물고, 몸을 떨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하객들은 그 뒤를 따라붙었다. ‘뭔가 일어나겠군...’ ‘이번엔 진짜 끝장이다.’ ...같은 시각, 2층 방 안. 송혜선은 조봉규의 손등을 다독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아.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올게.” 조봉규는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움켜쥐었다. “응. 기다릴게, 자기.”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문이 거칠게 흔들렸고,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송혜선! 당장 안 나와?!” 송혜선의 온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조봉규의 팔을 꽉 잡았다. ‘망했다.’ “어떡해, 부동건이 올라왔어.” 두 사람은 당황하며 방 안을 둘러봤지만,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엔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 ‘안 돼... 이렇게 들키면, 끝장이야. 정말 끝이야.’ 송혜선은 급하게 숨을 고르며 애써 이성을 붙잡으려 했다. ‘진정해. 침착해야 돼.
연회장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부동건은 손에 잔을 들고, 연신 들어오는 축하 인사에 밝은 표정으로 답하고 있었다. “회장님, 따님이 너무 예뻐요. 축하드립니다!” “아이고, 이런 경사는 자주 있어야죠!” ‘그래, 이 정도면 완벽하지. 오늘은 그 누구도 나를 흔들 수 없어.’ 그렇게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며 연회장의 분위기도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졌다. 탁! “어, 뭐야?” “불 꺼졌어! 왜 이래?” “아야, 누가 내 발 밟았어!” “...”순식간에 어둠이 덮친 연회장.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와 웅성거림이 퍼졌다. 잔을 들고 있던 부동건은 순간 정지된 듯 멈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가서 확인해봐!” “네, 회장님!” 직원들이 급히 움직였고, 부동건은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기 쪽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금방 복구됩니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둠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순간, 연회장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조용히 켜졌다. “위이잉...” 어둠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화면의 빛에 모두가 눈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 빛이 익숙해질 무렵, 누군가가 터트린 외마디 감탄에,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향했다. “어... 저거 뭐야? 헉, 저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스크린 안에 있는 건... 분명 두 남녀의 은밀한 장면이었다. 화면 속, 분명히 누군가를 알아본 듯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여자... 그분 아니야?” “옆에 있는 남자는...?” “헐, 이건 진짜 레전드다.” “아, 눈 버렸어. 이게 뭐야, 이게...”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순식간에 연회장은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송혜선이 복도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갑작스레 어디선가 튀어나온 그림자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꺄악!” 놀란 송혜선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야! 나야, 혜선아.” 익숙한 목소리에 송혜선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사람, 지금 제정신인 거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서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혜선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흘기듯 말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미쳤어, 사람들 눈에 띄면 어쩌려고!!” 그 말엔 명백한 불만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조봉규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는데...’ 그 순간의 긴장,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조봉규의 시선이 송혜선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송혜선은 산후라 그런가, 몸매는 훨씬 더 부드럽고 풍성해져 있었다. ‘이러니까, 잊으려고 해도... 더 생각이 나잖아.’ 그는 순간 충동적으로 송혜선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당황한 송혜선이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러나 조봉규는 말없이 송혜선을 옆방으로 이끌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탁’ 하고 울렸다. 좁은 공간, 차오르는 침묵. 송혜선은 남자를 노려보며 벽에 등을 댔다. “정신 차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조봉규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다들 홀에 있잖아. 아무도 몰라.” 남자의 말투엔 간절함과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었다. 그리움, 억눌림, 그리고 못다 한 말들. 그는 조심스럽게 송혜선의 턱선을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혜선아... 나, 정말 많이 참았어.” ‘이 사람 또 이러네...’ 송혜선의 심장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분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정문 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부동건이 고개를 돌리자, 최하연이 부상혁의 팔을 자연스럽게 끼고 등장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잘생긴 남자와 우아한 여자의 조합. 누가 봐도 완벽한 한 쌍이었다. ‘딱 봐도 좋은 그림이야. 저 둘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눈길을 끌어...’ “회장님, 부상혁 대표님은 정말 복도 많으십니다. 최씨 가문의 따님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부동건의 표정이 확 풀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묘하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부동건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부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좋아하는 걸, 우리 어른들은 그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줘야 하는 일일 뿐이지요.” “게다가 상대가 최씨 가문의 따님이라니, 정말 금상첨화가 아닙니까.” 부동건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역시 상혁이다. 내 아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상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당당히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한편, 송혜선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에 띄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져 갔고,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하연에게 향했다. 오늘의 하연은, 나무나 예쁘고... 아니, 그냥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에 윤기 흐르는 머릿결, 화사하게 피어난 얼굴빛까지. 하연의 행복함이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송혜선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정다영... 그년, 나를 속였어.’ 그동안 하연 쪽에서 뭔가 반응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려 왔다. 하지만 소식은커녕, 정다영조차 자취를 감췄다. ‘다영이 걔가 하연이에게 약 먹이는 계획이 분명 실패한 거야. 그렇지 않고 선 지금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는 없어.’ 이대로 배가 불러오면, 섣불리 손도 쓸 수 없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