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는 태생적으로 겁이 많은데 하필 중증 기면증까지 있다. 공포를 마주하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잠들어 버리는 그런 기이한 병이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잠들고 나면 제2의 인격이 발현되면서 전투력이 만렙이 된다는 것이다. 8살이 되던 해, 나는 사나운 개에게 놀라서 기절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그 개가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17살 되던 해, 나는 강도에게 놀라서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강도가 경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감옥에 보내 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감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애썼고 다시는 사고를 치지 않았다. 대학에 와서 캠퍼스 남신으로 불리는 애와 같은 기숙사 방을 쓰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신입생 환영회 날, 그 남자는 나를 체육 기구실에 몰아넣고 손에 가위를 든 채 악의에 찬 얼굴로 웃었다. “이렇게 촌스럽게 생겨서는 감히 내 여자친구를 꼬셔?” “오늘 그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을 아주 망가뜨려 주겠어. 그런 뒤엔 뭘로 꼬시나 보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나는 시비 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해서 기절하게 만들면 상황이 좀 보기 안 좋을 거야...” 그러나 남자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뺨을 후려쳤다. “뭘 그렇게 재는 거지? 꼬우면 너도 한 대 치던가.” 나는 강력한 한 방에 두 눈이 뒤집히며 그대로 기절했다. 남자가 막 득의양양하게 웃음을 터뜨린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내가 갑자기 기괴한 자세로 튕기면서 일어났다. 나는 눈을 감은 채 한 손으로 남자의 목을 움켜쥐고 공중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10분 뒤, 경비원이 체육 기구실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캠퍼스 남신이라는 그 남자는 얼굴이 시퍼렇게 붓고 코피가 터진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벽 모퉁이에 기댄 채 새근새근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View More표창식이 끝난 뒤 경찰과 학교는 동시에 조사에 착수했다.영상과 녹음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기에 학교의 조치는 빨랐다.사흘 뒤 처리 결과가 나왔다.신서민은 학칙을 심각하게 위반했고 직권을 남용한 데다가, 도덕적인 문제로 학교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학생회장직에서 해임되었고 곧바로 제적 처리되었다.차태우는 시험 부정행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싸움 유발, 동급생 공갈 협박으로 제적되었고, 조사 협조를 위해 경찰에 연행되었다.진하람은 구류 15일 처분과 함께 중징계를 받고 퇴학 처분에 처했다.신서민이 짐을 챙겨 떠나던 날 오후, 하늘은 잔뜩 흐렸다.신서민은 캐리어를 끌고 내 기숙사 건물 아래에 서서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기어이 나를 한 번 보고 가겠다고 했다.내가 내려갔을 때, 신서민의 눈시울은 새빨갛게 부어 있었고 얼굴에는 아직 멍이 남아 있었다.나를 보자마자 신서민은 곧바로 달려들며 정말 가련한 척을 했다.“민혁아, 내가 잘못했어. 정말 한순간 판단이 흐려졌던 것뿐이야! 우리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잖아. 너는 나를 알잖아, 그렇지?”“사실 내 마음속에는 늘 네가 있었어. 그러니까 나 대신 재단 이사회에 가서 좀 부탁해 주면 안 될까?”“나는 제적당하면 안 돼.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면 안 된다고!”신서민은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울었다. 마치 어린 시절 내 앞을 막아서며 자기가 지켜 주겠다고 하던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차갑게 신서민을 바라보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서민아, 너는 한순간 판단이 흐려진 게 아니야. 그냥 나쁜 짓을 고급스럽게 할 만큼도 못 되고, 멍청하기로도 철저하지 못했던 것뿐이지.”나는 한 걸음 물러서며 뻗어 오는 신서민의 손을 피했다.“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고? 네 마음속에는 그 알량한 허영심이랑 권력욕밖에 없어. 꺼져. 내 눈 더럽히지 말고.”신서민은 그 자리에 굳어지면서 완전히 절망했다.곧 신서민은 마침내 예전에 자기 뒤를 따라다니면서, 자격지심 때
학생회 표창식은 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신서민은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한쪽 얼굴이 아직 어렴풋이 부어 있었지만 여전히 촉망받는 인재였다.신서민은 연단에 서서 정직과 신의, 학내 규율, 학생 간부의 책임과 사명을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대학생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신의를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학생회장으로서 저는 더더욱 솔선수범하여 캠퍼스 기풍을 해치는 어떤 행위도 단호히 배...”무대 아래에서는 앞줄에 앉은 차태우가 고개를 든 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무대 위 신서민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뒷줄 구석에 앉은 진하람은 가슴에 아직 붕대를 감은 채로 잔뜩 억울한 표정을 하고서 듣고 있었다.나는 대강당 2층 조정실 문밖에 서서 무전기로 낮게 물었다.“우현아, 준비됐어?”[준비 완료. 언제든 방송이랑 영상 송출 시스템에 끼어들 수 있어.]곧 이어폰으로 주우현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시작해.”신서민이 한창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뒤쪽 LED 스크린이 갑자기 한 번 깜빡였다.뒤이어 발표 자료가 사라지더니 화질이 선명한 영상 하나가 스크린에 투영되었다.곧바로 신서민의 연설 소리가 뚝 끊어졌다.신서민은 겁에 질려 고개를 돌렸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멈춰 버리면서 손에 든 원고는 바닥에 흩어졌다.한동안 죽은 듯한 정적이 흐르고 나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와, 이건 너무 자극적인데!”“사무실에서 저러는 거야? 게다가 동급생을 모함까지 한 거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화면이 바뀌더니 검은 바탕이 되었고 뒤이어 녹음 하나가 흘러나왔다.[선배, 내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시험장에서 노민혁이 선배를 꼬셨다고 말해요.][안 그러면 지난번에 사람 머리통 깨뜨린 영상이 내일 경찰서 책상 위에 올라갈 거예요! 선배도 감옥은 가기 싫잖아요?]이 녹음이 나오자 대강당 전체가 완전히 뒤집어졌다.뒷줄에 앉아 있던 진하람은 순식간에 두 눈에 핏발이 섰다.진하람은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것도 모
일이 커질 때까지 커지자 사안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차태우는 부정행위를 현장에서 적발당한 데다가 소란을 피웠기에, 학칙에 따르면 최소 정학이고 심하게는 제적까지도 당할 수 있었다.차태우가 내 발밑으로 차 넣은 그 커닝 페이퍼도 필체를 대조한 결과 나를 모함하기 위해 일부러 버린 짓으로 밝혀졌다.그러나 차태우 같은 인간은 궁지에 내몰려도 단념하지 않는 법이었다.차태우는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인 자기 아버지를 학교로 불러들였다.차만호는 교무처에서 책상을 내리치며 한바탕 난동을 부렸다.그리고 이 사건의 초점을 내가 시험장에서 시험 감독 보조와 동급생을 폭행했다는 쪽으로 초점을 옮기려 들었다.둘은 심지어 경찰에 신고해서 나를 잡아가게 하겠다고 큰소리쳤다.게다가 내게 심각한 정신질환과 폭력 성향이 있다고 못 박으며 학교가 반드시 나를 강제 자퇴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요구했다.학교 측은 압력에 못 이겨서 일단 내게 수업 정지 처분을 내리고 처리 결과를 기다리게 했다.다음 날 저녁 무렵, 신서민이 제 발로 나를 찾아왔다.신서민은 내 기숙사 건물 아래 화단 옆에 서 있었는데, 한쪽 얼굴에는 아직 거즈가 붙어 있으면서도 여전히 나를 무시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었다.“노민혁, 우리 얘기 좀 해.”신서민은 나를 보며 위선적인 말투로 말했다.“네가 자진해서 자퇴 신청서를 내고 정신질환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만 하면, 어제 나를 때린 일은 문제 삼지 않을게.”“태우 쪽하고도 이야기해 놨어. 네가 학교에서 나가기만 하면 절대 신고해서 전과 기록을 남기지 않게 하겠대.”신서민은 마치 나를 위해 주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너 같은 병은 학교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시한폭탄이야. 어쩌면 자퇴가 너한테도, 그리고 모두한테도 좋아.”나는 눈앞의 낯선 신서민을 바라보다가 문득 욕하는 것조차 입만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민아, 너는 차태우의 부정행위를 감싼 데다가 걔를 도와서 증거를 위조하고 나를 모함했어.”
신서민의 손은 여전히 내 옷깃을 붙잡고 있었고 입으로는 계속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았다.“민혁아, 잘못했으면 인정해야지.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제적당하게 두지는 않을게...”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두 눈이 뒤집히며 그대로 뻣뻣하게 잠들어 버렸다.의식을 잃은 탓에 내 몸은 순식간에 축 늘어졌다.미처 대비하지 못한 신서민은 내 무게에 끌려 휘청거리며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그 바람에 나는 바닥에 엎어졌다.그러나 바닥에 닿기 직전 그 찰나, 내 몸이 갑자기 팽팽하게 긴장하더니 곧이어 튕기면서 일어섰다.내 두 눈은 여전히 꽉 감겨 있었다. 호흡은 평온한 데다가 심지어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까지 섞여 있었다.내 동작은 눈으로 따라잡을 수도 없을 만큼 빨랐다.신서민이 미처 중심을 잡기도 전에 나는 손등으로 따귀를 한 대 쳤다. 그 한 방에 신서민은 그 자리에서 반 바퀴를 돌았다.신서민은 순식간에 붉게 부어오른 한쪽 뺨을 감싸 쥔 채, 얻어맞은 머릿속이 윙윙 울리면서 얼굴 가득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서민아!”차태우가 비명을 질렀다.옆에 있던 진하람은 방금 자기가 속았다는 걸 알면서도 죽어라 체면을 차리느라 아까 당한 모욕을 어떻게든 씻기 위해 크게 소리쳤다.“노민혁, 지금 사람을 때린 거야?”진하람이 주먹을 휘두르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나는 몸을 살짝 틀어 가볍게 그 주먹을 피했다.뒤이어 나는 오른쪽 다리를 들어 진하람의 왼쪽 갈비뼈 부위를 걷어찼다.그 탓에 진하람이 병원에서 막 접합한 갈비뼈가 다시 부러진 것이었다.시험장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앞서 수영장에서 떨친 내 악명 때문에 아무도 감히 앞으로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사람들은 저마다 뒤로 물러나며 내게 널찍한 공간을 비워주었다.거치적거리는 둘을 쓰러뜨린 뒤, 나는 곧장 벽 모퉁이에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차태우에게로 걸어갔다.“오, 오지 마! 살려줘!”차태우가 겁에 질려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곧 나는 차태우의 앞으로 걸어가서 오늘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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