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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조선이 아닙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8 08:02:42

붉은 눈이 하나씩 늘어났다.

하나.

둘.

셋.

어둠 속에서 나타난 짐승들은 늑대를 닮아 있었다.

그러나 서화가 아는 늑대와는 달랐다.

등은 성인 남자의 허리까지 닿을 만큼 높았고, 검은 털 사이로 붉은 핏줄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입을 벌릴 때마다 검은 김이 새어 나왔다.

크르르르―

서화의 얼굴이 굳었다.

‘저것은…….’

짐승인가.

아니면.

정말 요괴라도 되는 것인가.

그 순간.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움직였다.

카시안이 검을 들어 올렸다.

서화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 됩니다.”

회색 눈이 내려왔다.

“몸이 성하지 않으십니다.”

당연히 알아듣지 못한다.

서화는 답답한 마음에 그의 목덜미를 가리켰다.

검은 선.

조금 전 침으로 잠재웠던 그것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

손가락으로 검은 선을 가리키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안 됩니다.”

이번에는 카시안도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화의 손을 떼어냈다.

“…….”

낮게 무언가를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뜻은 알 것 같았다.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것.

서화의 눈썹이 올라갔다.

“지금 싸우시겠다고요?”

카시안은 이미 앞으로 나섰다.

“정말 말을 듣지 않으시는군요.”

크아아악―!

마수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카시안의 검이 움직였다.

서화는 그 순간 처음으로 보았다.

사람이 휘두르는 검에서.

검은 빛이 솟아나는 것을.

콰앙―!

마수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

서화의 눈이 커졌다.

검기가 아니었다.

그런 것은 서화도 이야기로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것은 달랐다.

검은 기운이 살아 있는 것처럼 검을 휘감았다.

카시안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마수의 몸이 갈라졌다.

그러나.

그 순간.

카시안의 몸이 휘청였다.

“……!”

서화가 바로 달려갔다.

그의 목덜미.

검은 선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제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카시안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서화가 화났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서화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검을 내리십시오.”

카시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리시라고요.”

서화가 검을 가리킨 뒤 바닥을 가리켰다.

카시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크르르르―

남은 마수들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

서화도 그것을 보았다.

“…이럴 때가 아니군요.”

카시안이 앞으로 나서려 했다.

서화가 다시 붙잡았다.

이번에는 놓지 않았다.

“잠시만.”

서화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마수.

불.

바위.

나무.

눈.

그리고.

불 속에서 타고 있는 긴 나뭇가지 하나.

서화의 눈이 멈췄다.

“불을 두려워할까요.”

모른다.

하지만 해볼 수는 있다.

서화가 불붙은 나뭇가지를 집었다.

카시안의 표정이 처음으로 미묘하게 변했다.

서화는 그것을 들고 마수들을 향했다.

“오지 마라.”

크르르.

“나도 무섭다.”

당연히 마수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니 서로 가까이 가지 말자꾸나.”

카시안이 뒤에서 무언가 말했다.

서화가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아마 위험하다는 말일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서화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때.

가장 가까이 있던 마수가 달려들었다.

“……!”

서화가 불붙은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화르륵!

마수가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다.

‘불을 피한다.’

서화의 눈빛이 달라졌다.

“불을 싫어하는구나.”

한 번 더 휘둘렀다.

마수들이 물러났다.

그러나 완전히 도망치지는 않았다.

서화는 빠르게 생각했다.

불이 하나라서 그렇다.

“더 필요해.”

그녀는 불가로 달려갔다.

나뭇가지 몇 개를 더 집어 불을 옮겼다.

하나.

둘.

셋.

바위 앞쪽에 불붙은 나뭇가지를 꽂았다.

작은 불의 벽이 만들어졌다.

마수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카시안이 서화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아주 잠깐 놀라움이 지나갔다.

서화가 말했다.

“힘으로 안 되면 머리를 써야지요.”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마수들은 물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숲 안쪽에서 더 많은 붉은 눈이 나타났다.

서화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너무 많은데.”

열 마리.

아니.

그 이상.

카시안이 다시 검을 들었다.

“안 됩니다.”

서화가 이번에는 단호하게 그의 앞을 막았다.

카시안의 미간이 좁아졌다.

“싸우시면 죽습니다.”

서화는 자신의 목을 손으로 긋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카시안을 가리켰다.

카시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죽는다는 뜻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서화가 다시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를 가리켰다.

“저도.”

다시 목을 긋는 시늉.

“같이 죽습니다.”

잠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봤다.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뜻이 통했다.

카시안의 검이 조금 내려갔다.

서화가 안도의 숨을 내쉬려던 순간.

아우우우―!

숲 깊은 곳에서 훨씬 낮은 울음이 들렸다.

마수들이 일제히 멈췄다.

그리고.

길을 열었다.

쿵.

무거운 발소리.

쿵.

나무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서화의 얼굴이 굳었다.

“…저것도 늑대라고 해야 합니까?”

앞의 것들보다 두 배는 컸다.

이마에는 검은 뿔까지 돋아 있었다.

카시안의 표정도 처음으로 심각하게 변했다.

거대한 마수가 몸을 낮췄다.

카시안이 검을 쥐었다.

서화도 침통을 움켜쥐었다.

도움이 될지는 몰랐다.

그래도 맨손보다는 나았다.

그 순간.

백옥 노리개가 뜨거워졌다.

“……!”

서화가 허리춤을 내려다봤다.

빛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카시안의 검을 감싸던 검은 기운이 흔들렸다.

그리고.

거대한 마수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크르…….

붉은 눈이.

서화에게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노리개를 향했다.

서화가 숨을 죽였다.

“왜…….”

마수가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주변의 마수들도 동시에 물러났다.

카시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역시 보았다.

마수들이.

서화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니.

그녀가 가진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다른 소리가 들렸다.

두두두두―!

말발굽.

카시안이 고개를 들었다.

숲 저편에서 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횃불.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개.

그리고.

누군가가 외쳤다.

“전하!”

서화는 알아듣지 못했다.

“카시안 전하!”

하지만.

한 단어.

카시안.

서화의 눈이 움직였다.

“……카시안?”

옆에 있던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서화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카시안?”

카시안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화가 입 안으로 이름을 굴렸다.

“카시안.”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이름이었다.

그 순간 기사들이 숲을 뚫고 나타났다.

“전하!”

가장 먼저 달려온 남자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레오넬이었다.

그는 카시안을 발견하자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시선이 서화에게 향했다.

“…누구지?”

서화는 알아듣지 못했다.

레오넬의 손이 검으로 향했다.

그녀의 옷.

검은 머리.

처음 보는 장신구.

그리고.

카시안 몸에 꽂혀 있는 침.

레오넬의 얼굴이 굳었다.

챙―!

검이 뽑혔다.

서화가 움찔했다.

레오넬이 검끝을 서화에게 겨눴다.

“전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

서화는 그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검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서화의 표정이 굳었다.

“저를 위협하시는 겁니까?”

레오넬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순간.

카시안이 움직였다.

탁.

그의 검이 레오넬의 검을 막았다.

“전하?”

레오넬의 얼굴이 굳었다.

카시안이 짧게 말했다.

“내려.”

“하지만—”

“검 내려.”

차가운 명령.

레오넬은 결국 검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서화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서화도 그를 빤히 바라봤다.

‘이 사람도 말이 다르다.’

한 명이 아니었다.

둘도 아니었다.

뒤에 있는 기사들도.

모두 같은 낯선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서화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설마.

정말로.

그때 기사 하나가 카시안에게 다가와 두꺼운 외투를 건넸다.

다른 기사들은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마수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레오넬이 카시안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목덜미를 보았다.

그리고 굳었다.

“전하.”

검은 문양이.

멈춰 있었다.

“저주가…….”

그의 시선이 침으로 향했다.

다시 서화에게 향했다.

“설마.”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화를 가리켰다.

그리고 짧게 명령했다.

“데려간다.”

“전하, 정체도 모르는 여자입니다.”

“알아.”

“그런데 어떻게—”

“내 목숨을 살렸다.”

레오넬이 입을 다물었다.

서화는 그들의 대화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느껴졌다.

경계.

의심.

놀라움.

서화는 본능적으로 백옥을 움켜쥐었다.

그때 기사 하나가 말을 끌고 왔다.

서화가 말을 바라봤다.

카시안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

서화는 그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카시안을 바라봤다.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카시안은 말을 가리켰다.

멀리.

숲 밖을 가리켰다.

서화는 잠시 고민했다.

따라가도 되는가.

하지만.

여기에 혼자 남을 수도 없다.

그리고.

이 남자라면.

적어도 자신을 죽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서화는 결국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말의 안장을 붙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발을 디뎌 올라탔다.

“…….”

카시안이 멈췄다.

레오넬도 멈췄다.

기사 몇 명이 동시에 서화를 바라봤다.

서화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카시안의 시선이 그녀가 잡고 있는 고삐로 향했다.

이상한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여인.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을 타는 법은 안다.

서화가 그들의 시선을 보고 중얼거렸다.

“말 정도는 탈 수 있습니다.”

문득.

오라버니가 떠올랐다.

처음 말을 배웠던 날.

‘발에 힘을 너무 주지 마.’

‘무섭습니다.’

‘내가 옆에 있잖아.’

‘떨어지면요?’

‘잡아주지.’

서화의 손이 멈췄다.

절벽.

자신을 붙잡았던 손.

‘놓지 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라버니.”

카시안이 그 말을 들었다.

뜻은 몰랐다.

그러나.

서화가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표정이 달라진다는 것은 기억했다.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해가 떠올랐다.

서화는 말을 멈췄다.

“…….”

눈앞에.

거대한 성이 있었다.

산을 등지고 세워진 검은 성벽.

하늘 높이 솟은 첨탑.

성벽 위로 펄럭이는 검은 깃발.

그 위에는 은빛 짐승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서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궁궐도 아니었다.

성곽도 아니었다.

사찰도.

관아도.

자신이 평생 보아온 그 어떤 건축물과도 달랐다.

성문이 열렸다.

쿵―

그 안으로.

금발.

갈색 머리.

심지어 붉은 머리의 사람까지 보였다.

서화의 눈이 흔들렸다.

옷도 달랐다.

얼굴도 달랐다.

말도 달랐다.

모든 것이.

달랐다.

그리고.

성벽 위.

한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서 푸른빛이 피어났다.

화아악―!

빛이 허공으로 올라가더니 거대한 새의 형태로 변했다.

서화의 입술이 벌어졌다.

“…….”

도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이상했다.

서화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지나온 설원.

다시 앞을 바라봤다.

거대한 성.

낯선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선 카시안.

서화의 손이 백옥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처음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생각이.

머릿속에 분명하게 떠올랐다.

‘여기는…….’

조선이 아니다.

아니.

청도.

왜도.

아버지의 지도에서 보았던 그 어떤 나라도 아닐 것이다.

서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카시안이 그녀를 바라봤다.

서화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화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떨렸다.

“조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서화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한 사람씩 불렀다.

아버지.

어머니.

오라버니.

‘기다려주십시오.’

손 안의 백옥이 따뜻해졌다.

서화는 눈을 떴다.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떨어지지는 않았다.

‘제가 돌아가겠습니다.’

어떻게든.

반드시.

집으로.

그 순간.

성 가장 높은 첨탑 아래.

수백 년 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던 오래된 마법진 하나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공성 지하.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봉인된 방 안에서.

먼지에 뒤덮인 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복을 입은 여인.

그 여인의 허리춤에는.

서화가 가진 것과 똑같은 백옥 노리개가 걸려 있었다.

벽화 아래에는 고대어로 단 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두 번째 문지기가 돌아오는 날, 닫힌 길이 다시 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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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첫 번째 여인의 이름

    윤연화.서화는 날이 밝을 때까지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백옥 위에 나타났던 글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다시 아무리 들여다봐도.평범한 흰 옥일 뿐이었다.그런데도 서화는 눈을 떼지 못했다.“윤연화…….”어젯밤.분명히 보았다.윤.연.화.그리고.너의 피가 처음 문을 닫았다.“피.”서화가 천천히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핏줄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사백 년 전 조선에서 이 세계로 건너왔던 여인.자신과 같은 백옥 노리개를 가지고 있던 여자.그리고.자신의 피와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의 말.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겹쳤다.“우리 집안 사람이라는 뜻인가.”하지만 이상했다.서화는 자신의 집안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윤씨 집안은 오래된 양반가였다.족보도 있었다.선대에 관한 기록도 적지 않았다.어릴 때 아버지에게 가계에 관해 배운 적도 있었다.그런데.이세계에 다녀온 여인이라니.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잊을 리 없다.더구나 백옥 노리개는.“어머니께서 주셨는데.”서화의 손이 멈췄다.이상하다.백옥 노리개는 아버지의 윤씨 가문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다.어머니 한연화가.외가에서 물려받은 것이다.그런데 이름은.윤연화.“…….”서화의 눈빛이 달라졌다.같은 ‘연화’.그것까지 우연일까?“아니야.”무언가 있다.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서화는 침상에서 내려왔다.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확인해야 해.”누구에게?이 세계에서 사백 년 전의 기록을 읽을 수 있는 사람.한 명이 바로 떠올랐다.“에드윈.”쾅!연구실 문이 열렸다.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던 에드윈이 펄쩍 뛰었다.“뭐야!”서화가 들어왔다.“에드윈.”“서화?”그는 눈을 비볐다.창밖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도 않았다.“지금 몇 시인지 알아?”서화는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그러나.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종이를 꺼냈다.그리고 붓을 들었다.에드윈이 멍하니 바라봤다.서화가 한자를 적었다.尹蓮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는 길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희망이 생긴 날 밤. 서화는 오히려 잠들지 못했다. 사백 년 전. 조선에서 이곳으로 온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그 사실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돌아갔다…….” 서화는 침상 위에 앉아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막연했다.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정작 방법은 하나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길이 있었다. 누군가 이미 그 길을 지나갔다. 그렇다면. 자신도 찾을 수 있다. 서화는 품에서 백옥 노리개를 꺼냈다. 달빛 아래. 옥은 다시 평범한 흰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신이 그분을 돌려보낸 것입니까?” 물론 대답은 없었다. “그렇다면 저도…….” 말을 멈췄다. 어젯밤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서화야.』 도겸의 목소리. 꿈이었을까. 아니. 서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선명했다. 오라버니 특유의 말투까지.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목소리를 잘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오라버니도 찾고 계시는군요.” 입가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그러다 금세 사라졌다. ‘손.’ 꿈에서 본 도겸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서화가 눈을 감았다. 절벽.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던 오라버니. 마지막 순간. 자신을 놓친 사람. “……또 자기 탓을 하고 계시겠지.” 그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서화가 나무에서 떨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도. 자신이 조금만 빨리 왔으면 막았을 거라고 했다. 서화가 감기에 걸렸을 때조차 전날 함께 밖에 나간 자기 탓이라 우겼다. 그런 오라버니가. 자신의 손을 놓쳤다. “바보.” 서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라버니 탓이 아닌데.” 노리개를 꼭 쥐었다. “그러니까 제가 직접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살아 있다고. 괜찮다고. 오라버니가 놓은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전부 따질 겁니다.” 눈물이 맺혔지만. 서화는 웃었다. 그날

  • 조선에서 온 아씨는 돌아가고 싶다   오라버니는 저를 찾고 있을 겁니다

    문.門.한연화는 한참 동안 함 안쪽을 바라보았다.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희미한 붉은빛이.분명 글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여보.”연화의 목소리가 떨렸다.방 한쪽에서 젖은 도포를 갈아입던 윤정헌이 고개를 돌렸다.“왜 그러오?”“이것 좀…… 보세요.”정헌이 다가왔다.그 뒤로 도겸도 따라왔다.도겸의 손은 엉망이었다.절벽 아래의 돌과 흙을 맨손으로 헤집은 탓에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 곳곳에서 피가 배어 있었다.연화가 그 손을 발견했다.“도겸아.”그러나 도겸은 자신의 손을 감췄다.“괜찮습니다.”“그게 어찌 괜찮은 손이니.”“어머니.”도겸이 함을 가리켰다.“먼저 이것부터 보십시오.”연화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정헌이 함을 들어 올렸다.딸에게 백옥 노리개를 건넬 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평범한 나무함이었다.연화의 어머니에게서.그리고 그 어머니에게서.몇 대를 거쳐 내려왔던 것.“문.”정헌이 글자를 읽었다.“門이구려.”도겸의 얼굴이 굳었다.“문이라고요?”“그래.”“아버지.”도겸이 급하게 정헌을 바라봤다.“제가 봤던 것도…….”말이 끊겼다.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서화의 손.자신의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지던 손.그리고 절벽 아래.분명히 열렸던 검은 무언가.처음에는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서화는 떨어지지 않았다.사라졌다.도겸이 함을 움켜쥐었다.“문이었습니다.”정헌이 아들을 바라봤다.“무엇이?”“서화 아래에 생긴 것 말입니다.”도겸의 숨이 거칠어졌다.“검은 구멍처럼 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문이었습니다.”연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도겸아.”“서화는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아니.”도겸이 이를 악물었다.“끌려갔습니다.”정적이 내려앉았다.빗물이 처마 끝에서 떨어졌다.뚝.뚝.뚝.정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평생 학문을 익힌 사람이었다.괴력난신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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