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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이제 버틸 시간이 왔다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8 20:57:28

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새벽을 앞에 두고도, 어둠은 자신이 물러설 이유가 없다는 듯 궁의 지붕 위에 눌러앉아 있었다.

이수는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자리에 눕는다는 행위가 곧 안온함을 의미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듯했다.

그녀는 낮게 타오르는 촛불 옆에 앉아 손끝으로 찻잔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훑었다.

식은 온기가 오히려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확인해야 할 것은 끝나지 않았다.

현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낮은 파문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의심은 칼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으나,

궁에서는 의심이야말로 가장 늦게 닦이는 칼이었다.

상궁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발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마.”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세자 저하께서 오늘 밤 더는 움직이지 않으실 듯합니다.”

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식이 안도인지, 유예인지 가늠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수가 낮게 말했다.

“오늘 밤의 기척은 여기서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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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 도심으로 다시 들어섰을 때, 창밖의 불빛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늦은 시간의 거리에는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그 모습은 이수에게 잠시 현실감 없는 장면처럼 느껴졌다.“저 사람들은,”이수가 낮게 말했다.“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을 끝내겠죠.”“대부분은 그렇습니다.”도진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그 조용함 속에는 오래된 체념이 섞여 있었다.“모르는 채로 잠드는 게 축복일 때도 있죠.”“도진 씨는 그 축복을 가진 적 없죠.”그의 손이 핸들 위에서 잠시 멈췄다.그러나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아주 오래전부터요.”차는 이수의 집 근처에 멈춰 섰다.엔진 소리가 꺼지자 갑작스럽게 고요가 내려앉았다.그 고요 속에서 이수는 문을 열지 않은 채 잠시 머뭇거렸다.“오늘은… 여기까지죠.”“네.”도진은 곧장 내리려 하지 않았다.이수는 그가 아직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는 걸 느꼈다.“이수 씨.”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앞으로 한동안, 일상이 조금 더 불편해질 겁니다.”“위험해진다는 뜻이죠.”“그렇습니다.”“그래도”이수는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뒤 다시 말했다.“그래도 당신이 곁에 있다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그 말은 의존이 아니었다.동행을 선택하는 사람의 태도였다.도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그 말 하나면 충분합니다.”이수는 차에서 내렸다.문을 닫기 전, 그녀가 다시 몸을 숙였다.“오늘 고마웠어요.”“오늘뿐만이 아닙니다.”그의 대답에 그녀는 작게 웃었다.집으로 들어간 뒤, 이수는 신발을 벗고도 한동안 서 있었다.집 안은 너무 조용했다.공원의 밤보다도, 차 안보다도 더 고요했다.불을 켜지 않은 채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어딘가 낯설었다.“괜찮아.”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그러나 가슴 안쪽에서 아주 미세한 떨림이 가라앉지 않았다.그 시각, 도진은 차를 몰아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라디오도, 음악도 켜지 않았다.침묵 속에서 그는 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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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의 기억   242. 도망치지 않을게요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아침을 건너왔다.신호등은 제 시간을 지켰고, 카페의 문은 늘 하던 대로 열렸으며,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을 아무 설명 없이 안고 걸었다.그러나 이수의 하루는 이미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집을 나서기 전, 그녀는 거울 앞에 잠시 섰다.화장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머리카락도, 옷차림도. 달라진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눈뿐이었다.도진은 현관 옆에 서 있었다.신발을 신은 채, 문을 먼저 열지 않고 기다리는 자세로.“같이 나갈 겁니까.”그가 물었다.“네.”이수는 주저 없이 답했다.“오늘은 숨기고 싶지 않아요.”도진은 그 말의 무게를 이미 알고 있었다.그녀의 선택이 사소한 동행이 아니라는 것도. 문을 나서자 바람이 먼저 스쳤다.이수의 머리칼이 가볍게 흔들렸다.그 순간,도진은 아주 짧게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익숙하지 않은 공기의 밀도.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공간에 남아 있는 듯한 기척.“잠깐.”그가 걸음을 멈췄다.“왜요?”“그냥 확인하고 가죠.”도진은 골목 끝을 한 번,건너편 유리창에 비친 반사를 한 번, 그리고 이수의 등 뒤를 한 번 더 살폈다.아무것도 없었다.적어도 보이는 것들 중에는.“괜찮습니다.”그는 말했지만, 목소리는 조금 더 낮아져 있었다.차에 오르자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문화면의 짧은 코너였다.“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행보에 대해 업계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이수는 손을 뻗어 라디오를 껐다.“오늘은 그 이야기 안 듣고 싶어요.”“안 들어도 됩니다.”도진은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요.”차창 밖으로 사람들이 흘러갔다.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통화를 하며, 누군가는 아무 표정 없이 길을 건넜다.이수는 그 풍경을 보다가 문득 말했다.“도진 씨.”“네.”“만약에요.”그녀는 문장을 한 번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이 모든 게 더 커진다면, 당신까지 잃게 된다면”“그 가정은 하지

  • 천년의 기억   241. 선택은 말보다 먼저 온다

    새벽은 언제나 먼저 도착한 사람처럼 조용히 집 안을 채웠다.불을 켜지 않아도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는 기척이 느껴졌다.이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밤새 그대로였다.잠들지 못했다기보다는 잠들지 않기로 선택한 자세에 가까웠다.부엌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컵에 물이 채워지는 소리,그리고 아주 짧은 숨.도진이었다.“잠이 안옵니까?.”그는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책망도, 염려도 아닌 사실 확인에 가까운 말투였다.“도진 씨도요.”이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답했다.도진은 그녀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조금 비켜 선 채 창가에 기대 섰다.그 거리에는 의도적인 계산이 담겨 있었다.“오늘은 연락이 올 겁니다.”“누구에게서요.”“어제 그 사람들.”이수는 잠시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풀었다.“조건을 제시하겠죠.”“네.”“저를 빼고?”도진은 즉답하지 않았다.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가능성이 큽니다.”이수는 작게 웃었다.웃음이라기보다는 한 번 숨을 고른 표정에 가까웠다.“그럼 제가 해야 할 선택은 이미 정해진 거네요.”도진이 고개를 돌렸다.“아직은 아닙니다.”“도진 씨.”이수는 그의 이름을 천천히 불렀다.“사람들이 원하는 건 항상 비슷해요. 조용해지라는 것. 말하지 말라는 것. 혼자 있으라는 것.”그녀는 시선을 들었다. 눈동자가 맑았다.“하지만 그건 선택이 아니에요. 지워지는 과정이죠.”도진의 턱선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그래서 제가 옆에 있는 겁니다.”“옆에 있으면 당신이 위험해져요.”“이미 그 선은 넘었습니다.”그는 담담하게 말했다.그 담담함이 오히려 확고했다.잠시 후,이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예상보다 빠른 연락이었다.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그녀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왔어요.”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받으세요.”이수는 스피커를 켰다.“말씀하세요.”상대의 목소리는 정중했다.그러나 정중함 아래에는 명확한 방향이 있었다.“작가님께서 최근 공개적인 발언을 하신 이후, 여러 방향에서

  • 천년의 기억   9. 금지된 이름의 파문

    현은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단순한 명령자의 시선이 아니었다.오랜 우정과 굳건한 믿음이 깔려 있으나,그 밑바닥에는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균열이 보였다.“마마의 밤이니만큼… 혹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변을 더 살펴보아라.”명분 있는 명령이었다.그러나 그 말 속에는 ‘왜 네가 여기에 있었느냐’는 질문보다도 더 깊은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도진은 눈을 내렸다.“…예, 저하.”그는 마지막으로 이수를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그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동안 방 안의 공기는 다시 천

  • 천년의 기억   8. 어둠이 새긴 흔적

    이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침묵이 짧게 흘렀다.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많은 말들이 미묘하게 얽혀 있었다.도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하루… 마마께서 많이 지치셨을 듯하여 저하께서도 염려가 깊으셨사옵니다.”그 말은 조심스럽고 공손했다.그러나 그 속에는 세자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이수는 시선을 창호로 옮기며 말했다.“…궁은 생각보다 더 많은 숨을 감추고 있는 곳이더이다.”도진은 그 말에 정답처럼 대답하지 않았다.오히려 아주 짧게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

  • 천년의 기억   7. 밤이 삼킨 경계

    그 말은 단순한 배려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먼저 그녀를 품으려는 의지가,그리고 동시에 도진을 묘하게 견제하는 마음이 스며 있었다.전각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그들의 옷자락을 스쳐 지나갔다.세상의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새소리, 바람 소리, 궁인들의 바쁜 발걸음.이수는 걸음을 옮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거기 호위무사.”도진은 고개를 돌렸다.“예, 마마.”“저하와 내가… 잘 어울리오?”이 질문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도진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다.이수는 그 미묘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 천년의 기억   6. 시선의 감옥

    그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어딘가 가늘게 떨리는 결이 있었다.그 떨림은 이수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도진 역시 자신 안에서 무언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그러나 그 감정의 이름을 알기에는 이 날은 너무 이르고, 운명은 아직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다.둘의 발걸음이 나란히 복도를 따라 이어질 때비 온 뒤의 햇빛이 천천히 두 사람의 그림자를 하나의 긴 선처럼 이어 붙였다.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것 같았으나, 동시에 이미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전각 앞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낮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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