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판 / 천년의 기억 / 64. 흔들리는 궁과 세 사람의 균열

공유

64. 흔들리는 궁과 세 사람의 균열

작가: 데이지
last update 게시일: 2026-07-06 08:40:41

급보가 전각을 가르며 지나간 뒤,

동궁전의 문이 닫히자 하나의 숨결이 꺼진 듯한 적막이 찾아왔다.

이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세자의 마지막 말이 마치 실처럼 가슴에 걸려

조금만 잡아당겨도 울음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이 혼란 속에 섞인 것만 같았다.

'저하의 마음을… 언젠가 듣게 하시겠다고….'

그것은 고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충성의 말도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딘가, 빈이 감당해서는 안 되는 감정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이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고 나서야 전각 안에 서 있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굳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회랑 바깥에 서 있던 궁인이 놀란 듯 들고 있던 등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 빈마마! 저하께서 급히 나가시고…빈마마께선 이제 어찌하실지…”

이수는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라. 동궁전을 정돈하고 너희 볼 일을 보거라.”

궁인은 안도의 숨을 돌리며 물러났다.

그러나 그 눈길 속에 말하지 못한
이 작품을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최신 챕터

  • 천년의 기억   143. 의심을 칼로 바꾸지 않는 법

    문이 열리는 데에는 소리가 필요하지 않았다.누군가 손을 대지 않았어도, 이 밤은 이미 스스로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복도에 고인 공기가 한 번 미세하게 흔들렸다.그 흔들림은 바람도, 발소리도 아니었지만 세 사람은 동시에 느꼈다.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감각을.현은 한 발짝 더 다가섰다.그의 얼굴에는 분노도, 조급함도 없었다.오히려 지나치게 차분했다.그 차분함이 이 밤을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빈.”그는 다시 불렀다.이번에는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달랐다.호칭이 아니라, 확인이었다.“내가 묻겠다.”현의 시선은 이수에게 고정된 채,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지금 이 자리에 그대와 도진 경, 둘만의 연이 있었는가.”그 질문은 이미 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의 질문이었다.답이 무엇이든 그는 이미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이수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눈동자는 맑았고, 도망치려는 흔적은 없었다.“저하께서 묻고 계신 것이 사실이라면,”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저하께서 지금 의심하시는 것은 저와 도진 경의 마음이옵니까?”현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좁아졌다.“마음이라.”그는 낮게 되뇌었다.“궁에서 마음이란 말은 가장 쉽게 죄가 되는 말이지요.”도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서려 했다.그러나 이수는 그보다 더 빠르게 한 발을 내디뎠다.“저하.”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이 일은 도진 경의 몫이 아니옵니다.”현의 시선이 도진을 스쳤다가 다시 이수에게 돌아왔다.“그대가 막겠다는 말로 들립니다.”“제가 감당하겠다는 뜻이옵니다.”그 대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그 침묵은 짧았으나 궁의 밤을 충분히 가르고도 남았다.“감당이라…”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대는 무엇을 감당하겠다는 것입니까.”이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그리고 분명히 말했다.“저하의 의심을.”“궁의 시선을.”“그리고… 이 밤이 끝

  • 천년의 기억   142. 문을 여는 쪽

    새벽은 아직 문턱에 서 있었다.빛은 오지 않았고, 대신 기척만이 궁을 맴돌았다.어디선가 종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을 재고 있었다.도진은 복도의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서 있다는 표현이 맞지 않았다.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움직이지 않는 것이 선택이 되는 밤,그는 가장 어려운 쪽을 택하고 있었다.발소리가 하나, 둘. 멀지 않았다.경계의 방식이 바뀌었음을 그는 느꼈다.보던 눈이 사라지고, 대신 기다리는 눈이 생긴 밤이었다.그 시각, 이수는 복도의 중앙에서 걸음을 멈췄다.앞으로 나아가면 대비전으로, 옆으로 돌면 자신의 처소로 돌아갈 수 있는 갈림.궁은 늘 이렇게 갈림을 만든다.사람에게 선택을 맡긴 척하면서, 이미 답을 정해 둔 채로.이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슴 속에서 한 문장이 또렷해졌다.‘지금, 누군가는 문을 열어야 한다.’문이란 반드시 나무와 쇠로 된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입을 여는 것, 발을 내딛는 것, 혹은 침묵을 깨는 것 역시 문을 여는 일이었다.그녀는 방향을 틀었다.돌아가는 쪽이 아니라, 마주하는 쪽으로.그 움직임은 조용했지만 궁은 그 소리를 들었다.궁은 늘 이런 것에는 빠르다.세자 현은 긴 복도를 지나오며 자신의 걸음 소리를 의식하지 않았다.의식할 필요가 없었다.이 복도는 이미 그의 발걸음에 익숙한 길이었다.그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같은 말을 되뇌었다.‘확인만 하겠다.’‘확인은 칼이 아니라고,’‘확인은 죄가 아니라고.’그렇게 생각하면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그러나 그는 알았다.확인은 언제나 그 다음의 행동을 불러온다는 것을.도진은 멀리서 현의 기척을 먼저 느꼈다.발걸음의 무게가 달랐다.망설임이 없는 걸음이었다.그는 그 방향을 바라보지 않았다.보는 순간, 이 밤은 이미 결론을 향해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다.도진은 손을 주먹 쥐었다가 풀었다.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검을 쥐지 않은 손이 이토록 무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낯설었다.그때, 이수

  • 천년의 기억   141. 피하지 않는 자는 쫓기지 않는다

    궁의 밤은 늘 누군가에게 선택을 강요한다.그리고 그 선택은 대개 가장 소중한 것을 대가로 요구한다.그녀는 눈을 감았다.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겠다.현은 창가에 서서 아직 오지 않은 새벽을 바라보았다.그의 가슴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의심은 이미 충분히 자랐고, 이제는 확인만이 남아 있었다.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내가 틀리지 않기를.’그러나 그 바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역시 알고 있었다.그 밤, 궁 안에는 아직 아무도 쓰러지지 않았다.그러나 이름 없는 명 하나가 이미 내려와 있었다.그리고 그 명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세 사람의 삶을 다음 장으로 밀어내고 있었다.이제 되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그러나 밤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있었다.궁 안의 공기는 낮게 가라앉은 채, 마치 누군가의 결심을 재촉하듯 조용히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도진은 군영의 안쪽에서 갑옷의 매무새를 다시 정리했다.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오늘 밤, 그는 전투에 나설 생각이 없었고 누군가를 상대할 계획도 없었다.그러나 몸은 알고 있었다.이 밤이 ‘아무 일도 없는 밤’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낙마 이후 남아 있던 통증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그 대신, 가슴 안쪽에 자리 잡은 긴장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궁은 늘 사람보다 빠르다.사람이 깨닫기 전에 이미 결정을 끝내버리는 곳.도진은 고개를 들어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그 움직임은 소리가 없었으나, 방향만큼은 분명했다.빈의 처소.그 시각, 이수는 상궁의 도움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잠자리에 들 옷이 아니었다.그러나 외출복도 아니었다.궁에서 가장 위험한 차림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옷’이었다.상궁은 말이 없었다.묻지 않았고, 권하지도 않았다.그저 손끝을 단정히 움직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김 상궁.”이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천년의 기억   140. 이름 없는 명이 내려오다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그러나 밤은 더 이상 밤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궁 안의 공기는 낮게 가라앉아, 사람들의 숨결마저 조심스럽게 만들고 있었다.도진은 군영의 끝에서 다시 한 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지금, 어디로도 향하지 않고 있었다.그러나 그 사실이 그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다.움직이지 않아도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감각.그 감각은 칼을 들고 서 있을 때보다 훨씬 잔인했다.그는 손을 내려다보았다.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손.그러나 그 손은 언제든 검을 쥘 준비가 되어 있었다.‘아직은 아니다.’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지금 검을 쥐는 순간, 모든 것은 너무 빨라진다.그리고 빠른 선택은 대개 잘못된 선택이 된다.그 시각, 이수는 등불 앞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바람도, 소리도 없는 방 안에서 그녀는 오직 자신의 심장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두근.두근.그 리듬은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해온 궁의 밤과는 달랐다.이번에는 어딘가 끝을 향하고 있었다.“이제…”그녀는 속으로 말했다.“…기다리는 밤은 끝났구나.”이수는 눈을 떴다.그리고 처음으로 이 밤이 지나면 무엇을 하게 될지 명확하게 떠올렸다.아직 말하지 않았을 뿐, 그 선택은 이미 그녀 안에서 굳어가고 있었다.현은 근위 하나를 따로 불러 세웠다.그의 얼굴에는 이전보다 훨씬 정제된 기색이 서려 있었다.분노도, 질투도, 불안도 모두 한 겹씩 접어 안쪽으로 밀어 넣은 얼굴.“이 말을 전해라.”현의 목소리는 너무도 차분했다.“내일 새벽, 군영의 인원을 재정비한다.”근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재정비라 하시면…”“공식적인 명은 아니다.”현은 말을 끊었다.“다만, 경계가 느슨해진 곳이 없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그 말은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다.“특히”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그리고 아주 낮게 덧붙였다.“빈의 처소 인근.”그 한마디가 근위의 등을 타고 서늘하게 흘러내렸다.“명심하겠습니다.”근위가 물러나자

  • 천년의 기억   139. 나는 숨지 않겠다

    밤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으나, 어둠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마치 궁 전체가 한 사람의 숨결에 맞추어 천천히, 그러나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는 듯했다.도진은 군영의 외곽을 벗어나 낮은 담장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이곳은 사람의 왕래가 드문 곳이었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이 드러나는 곳이었다.그는 허리를 곧게 세운 채 잠시 눈을 감았다.눈을 감으면, 지금의 밤과 겹쳐 보이는 수많은 밤들이 몸 안에서 천천히 깨어났다.궁의 밤. 의심이 먼저 말을 걸어오고, 말보다 빠르게 칼이 답하던 밤들.도진은 그 기억들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았다.그는 늘 그랬다.두려움을 지우려 하지 않고, 두려움 위에 서는 법을 배워왔다.그가 눈을 떴을 때,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그는 알았다.아무도 없다는 것이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그 시각, 이수는 등불을 다시 밝혔다.불을 켜는 행위는 이 밤에 있어 하나의 선언과도 같았다.나는 숨지 않겠다.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거울 속 얼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다만 눈동자 깊은 곳에서 조용한 각오가 번지고 있었다.“이 밤이 지나면…”이수는 거울 속 자신에게 말했다.“…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겠지.”그녀는 알았다.세자의 의심은 이미 질문의 단계를 지나확인의 단계로 넘어왔다는 것을 확인은 언제나 사람을 다치게 한다.이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몸을 낮추고 마음을 먼저 가라앉혔다.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었다.세자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그 결심은 분노로 만들어진 것도 질투로 빚어진 것도 아니었다.그것은 ‘확신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그는 근위를 다시 불렀다.“빈의 처소 주변에 붙인 자들은 그대로 두되”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그리고 아주 낮게 덧붙였다.“도진의 움직임을 더 세밀히 보아라.”“직접… 손을 대라는 말씀이옵니까.”근위의 질문은 조심스러웠다.현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아니다.”그 말에는 아직

  • 천년의 기억   138. 의심이 발소리를 갖는 순간

    밤의 결이 바뀌었다.같은 어둠이었으나, 공기는 더 조여 있었고 침묵은 이전보다 무거웠다.도진은 복도의 끝에 서서 자신의 호흡을 점검했다.숨은 고르게 들고 나갔고, 심장은 불필요하게 뛰지 않았다.몸은 아직 버틸 수 있었다.그러나 마음은 그보다 더 조심스러웠다.그는 지금 자신을 따라붙은 시선보다 그 시선을 허락한 의지를 더 경계하고 있었다.궁에서 누군가를 지켜보게 한다는 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다.그건 이미 ‘의심을 공식화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도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복도 너머, 등불 아래에서 근위 하나가 서 있었다.평소와 다르지 않은 자세. 그러나 오늘은 너무 정확했다.그 정확함은 우연이 아니었다.도진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눈길을 주지도, 속도를 바꾸지도 않았다.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그러나 그 짧은 순간,서로의 그림자가 바닥 위에서 겹쳤다.그 겹침은 아주 짧았지만, 그에게는 충분했다.‘이제는 숨길 수 없겠구나.’그 시각, 이수는 자리에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아무것도 쥐지 않았으나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그 반복이 그녀의 심장을 천천히 두드렸다.이수는 눈을 감았다 떴다.두려움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일 것이다.그러나 두려움에 끌려가지는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오늘 밤은…”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모든 것이 너무 빠르다.”상궁이 조심스레 다가왔다.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마마, 근위의 교대가 조금 잦아진 듯하옵니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 않았다.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세자저하의 뜻이겠지.”그 말에 상궁의 눈이 흔들렸다.“마마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의심은 늘 혼자 시작되지 않는다.”이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그리고 세자께서 지금 그 의심을 놓치실 분도 아니지.”상궁은 더 묻지 않았다.이 밤에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 천년의 기억   10. 이름을 가둔 가슴

    밤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달빛은 기와 위에서 희미하게 번졌고,바람은 소리 없이 건물의 모서리를 스쳤다.도진은 이수의 처소에서 멀어질수록오히려 마음 한가운데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자리 잡는 걸 느꼈다.그 감정은 단순한 경계심이 아니었다.호위무사로서 세자빈을 지키려는 의무감도 아니었다.그것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가슴을 묘하게 죄어오는 부끄러울 만큼 인간적인 감정.도진은 발걸음을 멈췄다.그는 무사였다.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욕망을 절제하며, 의무를 지키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오늘 하루 동안

  • 천년의 기억   9. 금지된 이름의 파문

    현은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그 시선은 단순한 명령자의 시선이 아니었다.오랜 우정과 굳건한 믿음이 깔려 있으나,그 밑바닥에는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균열이 보였다.“마마의 밤이니만큼… 혹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변을 더 살펴보아라.”명분 있는 명령이었다.그러나 그 말 속에는 ‘왜 네가 여기에 있었느냐’는 질문보다도 더 깊은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도진은 눈을 내렸다.“…예, 저하.”그는 마지막으로 이수를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문 밖으로 사라졌다.그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동안 방 안의 공기는 다시 천

  • 천년의 기억   8. 어둠이 새긴 흔적

    이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침묵이 짧게 흘렀다.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많은 말들이 미묘하게 얽혀 있었다.도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하루… 마마께서 많이 지치셨을 듯하여 저하께서도 염려가 깊으셨사옵니다.”그 말은 조심스럽고 공손했다.그러나 그 속에는 세자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이수는 시선을 창호로 옮기며 말했다.“…궁은 생각보다 더 많은 숨을 감추고 있는 곳이더이다.”도진은 그 말에 정답처럼 대답하지 않았다.오히려 아주 짧게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

  • 천년의 기억   7. 밤이 삼킨 경계

    그 말은 단순한 배려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먼저 그녀를 품으려는 의지가,그리고 동시에 도진을 묘하게 견제하는 마음이 스며 있었다.전각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그들의 옷자락을 스쳐 지나갔다.세상의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새소리, 바람 소리, 궁인들의 바쁜 발걸음.이수는 걸음을 옮기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거기 호위무사.”도진은 고개를 돌렸다.“예, 마마.”“저하와 내가… 잘 어울리오?”이 질문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도진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다.이수는 그 미묘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