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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그림자를 벗고, 시작을 입다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3 12:05:04
-신 비서만 챙기지 말고, 몸 잘 추스르면서 회사 경영이나 똑바로 해! 끊는다!

빠르게 대표실로 향하고 싶은 차준호의 마음이 닿았는지, 엘리베이터도 멈췄고 차진철도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놈의 일, 일, 일.

차진철은 평생을 워커홀릭으로 살았기에 세상의 전부가 오직 대기업 회사 일뿐인 인간이었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그 거대한 중압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경제가 그의 손가락 하나의 결정에 좌우될 정도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었고, 아래 거느린 직원만 10만 명이 넘으니 그의 어깨에 실린 무게는 상상 이상일 터였다.

그러나 차준호는 제 어머니가 사망한 직후, 고미주와 그렇고 그런 추잡한 관계를 이어가던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한 뒤로 그에 대한 모든 인간적인 신뢰를 통째로 무너뜨렸었다.

그래서 3년 전, 고미주가 차진아를 차진철의 친딸이라며 데리고 저택 안방을 차지했을 때 차준호는 극도의 환멸을 느끼며 한남동을 영영 떠났었다.

발작 따위 인생에서 몇 번 더 겪는대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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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315. [나와는 다른, 그에게 하찮은 여자]

    봉사를 천천히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깐 숨을 돌리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 되어 버렸다.그런데 차준호가 회사에 급한 일이 터졌다며 연락을 해오는 바람에,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CH-컴퍼니로 달려온 참이었다.하루 종일 어르신들 봉사활동을 하느라 몸에 육개장과 김치 냄새가 뱄을까 봐, 이아준이 선물로 준 정갈한 셔츠에 슬랙스를 급하게 입고 나왔다.평소 차준호가 선물해 주던 화려한 원피스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격식 없는 차림은 아니었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도착해 보니 대표실 테이블 위에는 최고급 초밥과 신선한 과일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마치 나와 느긋하게 식사나 같이하자는 듯 말이다.“대표님? 급한 일이 뭔가요?”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묻자, 차준호는 일단 테이블에 앉으라며 턱짓을 하더니 대표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모니터 화면을 띄웠다.오늘 회사에 대형 사고라도 일어난 걸까. 혹시 도국이가 봉사하러 와서 나랑 스캔들라도 터진 건가 싶어 긴장한 채 화면을 주시했다. 하지만 모니터 안에는 뜻밖에도 세나의 연습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신하늘,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하루 종일 어르신들께 음식을 대접하느라 어제부터 육개장과 김치 냄새에 치여 사실 입맛은 싹 달아난 상태였다. 하지만 은은한 단초물의 향과 함께 윤기가 흐르는 초밥을 보니, 평소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그제야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아, 네.”차준호는 세나와 하루빨리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며 현재 상황을 함께 점검하자는 명목으로 식사를 권했다.대체 이게 무슨 주말 긴급 업무인가 싶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기도 귀찮았던 터라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신하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314. [압도적으로 직진만 가는 대표님]

    차준호는 신하늘에게 모든 신경이 쏠려 있어 옆에서 터져 나오는 허기찬의 푸념 따위는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빠르게 사업 확장이나 해야 하는데 한가하게 여자 꽁무늬나 따라다닐 때인가.어쩌자고 이런 이례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건지, 스스로에게도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대표님? 자꾸 저 혼잣말하게 하시면 그냥 집에 가서 쉴겁니다!”“여름부터 집에서 영원히 쉬게 해줘?”“아이고, 협박도 참 일관성 있게 하시네요.”허기찬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준호는 팔짱을 낀 채, 저 멀리 천막 아래에서 웃고 있는 신하늘을 빤히 바라보며 나직하게 물었다.“신 비서 옆에 있는 저 둘은 알아봤어?”허기찬은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준비해 온 보고서를 읊었다.“JW엔터 소속의 도국, 그리고 L-DS 사장 이아준입니다. 셋 다 여기 라온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더군요.”차준호의 짙은 시선은 여전히 천막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신하늘에게 고스란히 가닿아 있었다.“참, L그룹과 JW엔터 측에서는 철저하게 어린 시절 정보는 막아 놓은 상태고요.”“그래도 점심 배식 봉사는 종종 하나 보지?”허기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신 비서의 부모님이 처음 시작하신 일인데, 한 달에 한 번씩, 벌써 7년째 끊이지 않고 이어서 하고 있다고 합니다.”그 말에 차준호는 고개를 살짝 빼고 천막 아래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끓기 시작한 커다란 들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기특하네, 다들.”그도 신하늘을 격려하고 기부라도 좀 해주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313. [자꾸 웃는 그녀, 지켜보는 남자들]

    손끝에 와닿는 절인 배추의 서늘하고 축축한 감촉에 순간 내 손길이 굳은 듯 딱 멈춰 섰다.모든 선자리를 단칼에 거절했다는 차준호.그 소식이 왜 이토록 가슴 밑바닥을 무겁게 흔들어 놓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자신에게 닿는 세상의 모든 호의와 타협을 당연하게 거부해 버리는 남자의 오만한 기개는 역시 그와 어울린다고 여겨졌다.매일 저녁 9시 뉴스만 틀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차진철 회장이나 이왕춘 회장 같은 재벌가의 거두들인데.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차준호나 이아준 역시 그 엄숙하고 냉혹한 권력의 자리에 앉아 누군가의 인생을 손쉽게 휘두르고 있을 터였다.현재 느껴지는 이 신분의 격차는 앞으로 세월이 흘러도 메워질 수 없는 아득한 절벽이었다.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서늘한 상실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세종동을 떠나게 되면······ 당연히 아준이나 도국이와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겠지.’어쩌면 지금부터라도 내가 먼저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친구라는 다정한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결국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의 높이는 완전히 달랐으니까.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주방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어둠이 짙게 깔린 마당 구석, 오래전 불타버린 보육원 건물 터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이 낡고 작은 집이 내 초라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낮 동안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담벼락의 붉은 낙서들과, 대문 철판 위에 거칠게 칠해진 빨간 페인트 자국들이 환영처럼 뇌리를 스쳤다.“당장 이곳을 떠나야 하는 행정명령이 내려진 것도 아닌데, 회사 몇 년만 더 바짝 다니면 이 지긋지긋한 빚도 다 갚을지 모르고.”나는 짐짓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가슴속을 짓누르던 답답한 공기를 한꺼번에 내뱉었다.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312. [정신이 번쩍!]

    금요일 밤, 어두운 세단 차 안.시트 깊숙이 몸을 묻은 강소희가 살짝 거친 숨을 내쉬며 주원형을 살며시 밀어냈다.“대표님, 메이크업 무너져요. 너무 짓뭉개지 마세요.”주원형이 낮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강소희의 턱끝을 감싸 쥐었다.“고맙다고 먼저 키스한 건 너잖아. 사람 흥분시켜 놓고 무슨.”입을 삐죽인 강소희는 이내 두 팔을 넓게 벌려 주원형의 목을 꽉 껴안았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치마를 위로 말아 올리며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애교라는 것을 부리고 있었다.“대표님, 나 백 감독님 새로 들어가는 로코 영화 주인공 하고 싶어요. 그것 좀 꼭 따주세요, 네?”이제 내년이면 30살이라 로코는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찍어 두고 싶은 그녀였다. 10년째 주원형을 이렇게 길들여온 그녀였기에 오늘도 그리 칭얼거려 보았다.강소희의 애교 섞인 떼쓰기에 주원형이 쯧, 소리를 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너 진짜 사람 너무 굴리네. 아주 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들지.”강소희는 주원형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가며, 그의 목덜미에 야릇하게 입을 맞추었다.“대신 흥행도 제대로 내줄게요. 나 연기력 대단한 거 대표님이 제일 잘 알잖아요?”주원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예능 나가.”그 말에 강소희는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대신 딱 두 군데만 나갈 거예요. 나는 T 프로그램이 좋아요. D 방송국은 패스. 거기 PD들은 너무 공격적이라 기분이 별로거든요.” “알았어. 그럼 도국이랑 같이 예능 한 번 나가.”도국의 이름이 나오자 강소희의 얼굴에 금세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어머, 그건 너무 좋아요!”대세 아이돌 도국이니 저번에 키스신도 찍었고 화제성도 좋고 도국과 친해져서 나쁠 것 같지 않은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311. [내 심장이 고장 났을까]

    놀라긴 놀랐다.지금 이건 명백히 위험한 기류였다. 차준호는 그저 친절하고 매혹적인 상사일 뿐인데, 그 손끝이 닿았던 팔뚝의 감촉과 피부로 느껴지던 열기가 잔상처럼 남아 뇌리를 어지럽혔다.“신하늘이 지금 왜 당황하고 있을까.”“어쩌다 그렇게 되었네요. 어쨌든 저 여학생이 오늘 축제의 주인공 같아요. 대표님, 제가 만나보고 올까요?”나는 태연한 척 새침하게 말을 내뱉으며 얼른 차준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하지만 차준호는 무심하게도 무대 위 여학생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턱을 괸 채 고개를 슬쩍 돌려, 오직 내 얼굴만을 짙은 시선으로 빤히 담아낼 뿐이었다.“좋네.”좋기는 뭐가 좋다는 건지. 도대체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속을 알 수 없게 굴까.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듯 세차게 뛰어 도저히 그와 눈을 맞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차준호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뚫어져라 무대 위 여학생에게만 눈길을 고정했다. 마침 전광판에 그녀의 이름이 '세나'라고 떠오르는 것을 확인하곤, 얼른 휴대폰을 꺼내 메모해 두었다.무대에서 내려오면 바로 스카우트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차준호에게 말을 건네려 했지만, 여전히 그 깊고 고요한 눈동자는 오직 나만을 향해 있었다.“대표님, 사람 헷갈리게 자꾸 그러지 마세요.”나도 모르게 참지 못하고 불쑥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그러자 차준호의 매끄러운 입꼬리가 호를 그리며, 선이 고운 얼굴 위로 환하고 매혹적인 미소가 번졌다.“아, 이제 알았다.”대체 뭘 알았다는 건지.나는 화끈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볼을 숨기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한계였다. 더 이 남자의 유려한 시선 안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310. [괜히 만졌나 봐]

    5월 초, 녹음이 싱그러운 계절.목요일 오후 5시. 지성과 청춘의 열기가 가득한 우리나라 굴지의 명문대, S대학교 축제 현장.캠퍼스는 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경쾌한 음악 소리로 가득 차 있었고, 나 역시 처음으로 차준호가 직접 운전하는 세단 조수석에 올라 이곳에 도착했다.오늘 축제를 위해 그가 준비해 준 옷은 깔끔한 카라가 달린 흰색 반팔 티셔츠와 핏이 딱 잘 맞는 청바지, 그리고 넓은 캠퍼스를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단정한 슬립온이었다.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오늘도 회사와 차준호의 이미지에 맞게 입어야 하는 날인 걸까. 가볍게 생각하면 근사한 캐주얼 한 벌이 생겨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그가 안겨준 이 모든 것들은 또 가격표가 가공할 만한 액수일 텐데 은근한 부담으로 다가왔다.옆을 보니 차준호 역시 나와 커플룩처럼 카라가 있는 흰색 폴로 긴팔 셔츠에 청바지를 맞춰 입고 있었다. 탄탄하게 다져진 어깨 라인과 훤칠한 이목구비가 받쳐주니 청량하고 감각적인 대학생의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하긴, 그도 20대 후반의 청춘이었다. 짙고 차가웠던 눈빛에 부드러운 봄 햇살이 머물자 주변 풍경마저 숨이 죽을 만큼 눈부셨다.푸른 관악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캠퍼스 한복판, 청춘들의 환호와 즐거운 웃음소리에 둘러싸이자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떠 연신 입꼬리가 올라갔다.“신하늘, 예쁘네. 그런데 기분이 그렇게 좋아?”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이제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직진형 칭찬에 제법 면역이 생겼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축제잖아요. 신날 수밖에 없죠.”“그동안 많이 즐겨봤을 거 아니야.”“매년 축제 기간만 되면 과외하고 알바 뛰느라 단 한 번도 참여하거나 친구들과 놀아본 적이 없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4. 폭풍의 눈이 열리다

    이아준은 통화 도중,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하늘과 도국과의 옛 기억 속에 깊게 잠겼다.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강남의 이면, 세종동 서쪽 끝자락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빈민가가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하늘 보육원’은 세 사람의 유년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가족이었다.이아준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보육원 앞마당에 버려진 신세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고도 변덕스러웠다. 뒤늦게 그가 국내 최고 재벌가인 L그룹의 잃어버린 혈통임이 드러났고, 하루아침에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3. 지옥의 대리인

    [1월 1일, 재벌가 차준호와 톱여배우 강소희! 둘만의 밀월여행이었나· 강원도에서 추락 사고!][CC그룹 후계자 차준호·한류스타 강소희! 과연 현재 상태는?][사고 직후 불거진 비밀 연애 의혹· 관계자들은 어떤 입장을···][과연 차준호와 강소희 사고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새해의 태양이 채 떠오르기도 전, 대한민국은 단 하나의 소식으로 들끓었다. 차준호는 강소희를 자신의 세단에 태운 채 1월 1일 새벽 강원도 산길을 달리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십여 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단순한 교통사고인지, 범죄와 연관된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 비밀의 밤, 잔인한 선물

    ‘이 나쁜 자식!’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 사람 미치게 하는 거짓말 같은 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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