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카페에서 돌아온 뒤, 하나는 곧바로 노트북을 켰다.변호사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작점은 필요했다.“변호사라면.”그녀가 조용히 말했다.“형이 만난 사람.”건우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로펌 소속일 수도 있고.”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니면 개인 변호사.”그녀는 형의 회사와 관련된 법률 자문 기록을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다.회사 계약 로펌 목록.외부 법률 자문 계약.최근 2년 동안 새로 연결된 법률사무소.화면 위에 이름들이 하나씩 올라왔다.그러나 이상하게도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건우.”하나가 말했다.“이거 봐.”건우가 고개를 들었다.“형.”그녀는 화면을 돌렸다.“최근에 개인 법률 상담 기록이 있어.”건우의 눈이 멈췄다.“개인?”“응.”하나는 키보드를 조금 더 두드렸다.“회사 기록 말고.”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개인 계좌로 결제된 상담.”건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형이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찾았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언제.”그가 물었다.하나는 화면을 가리켰다.“사고 나기 일주일 전.”공기가 아주 미묘하게 가라앉았다.잠시 후.하나는 화면을 더 확대했다.“이름은 가려져 있어.”그녀가 말했다.“근데.”잠시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로펌 아니야.”건우는 고개를 들었다.“그럼.”하나는 화면 아래쪽을 가리켰다.“개인 사무소.”그리고 그 아래에 남아 있는 단서 하나.이니셜 : J건우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J.”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름일 수도 있고.”“사무소 이름일 수도 있고.”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그 짧은 이니셜 하나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저녁이 깊어질수록 집 안 공기는 조용해졌다.하나는 부엌에서 컵을 정리하고 있었다.건우는 거실에 서 있었다.“하나.”그가 불렀다.그녀가 돌아봤다.“왜.”건우는 잠시 말을 찾다가 말했다.“오늘.”그는
카페 직원의 기억은 생각보다 더 구체적이었다.하나는 그날 다시 카페를 찾았고, 직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그 여자분… 결제는 안 했어요.”건우가 눈을 들었다.“카드 안 썼어요?”직원은 고개를 저었다.“남자분이 계산했어요.”그 말은 이상하지 않았다.그러나 직원이 이어서 한 말이 문제였다.“근데요.”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명함 같은 거 봤던 것 같아요.”하나의 시선이 멈췄다.“명함?”“네. 테이블 위에 잠깐 올려놨었어요.”건우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어떤 거였어요?”직원은 머리를 긁적였다.“회사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말했다.“로펌이었어요.”공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하나는 직원의 말을 천천히 반복했다.“변호사.”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런 느낌이었어요.”카페를 나와 차에 올라탄 뒤에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건우는 핸들을 잡고 있었지만 시동을 걸지 않았다.“형.”그가 낮게 말했다.“왜 변호사를 만났지.”하나는 잠시 생각했다.“회사 문제인가.”그녀가 말했다.“아니면 개인 문제.”건우는 고개를 저었다.“형 성격 알잖아.”그는 창밖을 바라봤다.“공식으로 처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하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그럼.”그녀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누군가 몰래 만나야 할 상황이었겠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잠시 침묵이 흘렀다.차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하나는 결국 물었다.“건우.”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혹시.”잠시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형이… 누굴 고발하려 했던 건 아닐까.”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충분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거실에 들어와도 분위기는 비슷했다.하나는 테이블 위 서류를 정리했고, 건우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러다 하나가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왜.”하나는
카페 직원의 기억은 생각보다 더 오래 남아 있었다.하나는 다음 날 다시 그곳을 찾았다.이번에는 손님이 거의 없는 이른 시간이었다. 카운터 뒤에 서 있던 직원은 전날보다 조금 여유가 있어 보였다.“어제 말씀드렸던 분 기억나세요.”하나는 다시 형의 사진을 보여주었다.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창가 자리 앉았던 분.”하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혹시 그날… 뭔가 남긴 건 없었나요.”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아.”그는 기억이 떠오른 듯 손가락을 튕겼다.“봉투.”건우의 시선이 멈췄다.“봉투요?”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 여자분이 먼저 일어나서 나갔는데… 그분이 계산하면서 봉투 하나 맡기고 갔어요.”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누구에게요.”건우가 물었다.“저요.”직원은 어깨를 으쓱했다.“근데 그 남자분이 바로 따라 나가서 못 드렸어요.”하나는 숨을 아주 천천히 들이마셨다.“지금도 있나요.”직원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날 밤에 어떤 남자가 와서 찾아갔어요.”건우의 눈이 좁아졌다.“어떤 남자요.”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얼굴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정장 입고 있었어요.”잠시 후 덧붙였다.“되게 급해 보였어요.”하나는 더 묻지 않았다.이미 충분했다.형이 사고 직전에 만난 여자는 무언가를 남기고 갔고, 그 봉투는 그날 밤 다른 누군가가 찾아갔다.그 시간은 형이 사고를 당한 직후였다.카페를 나와 차에 올라탄 뒤에도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건우는 운전석에 앉은 채 핸들을 잡고 있었다.“봉투.”그가 낮게 말했다.“형한테 전달하려던 거겠지.”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잠시 침묵이 흘렀다.건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근데 형이 못 받았어.”그 말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질문이었다.“그럼.”하나가 말했다.“누가 가져간 거지.”건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사고 난 걸 알고 움직인 사람.”그 말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가능성을 가리켰다.사
형이 사고 직전에 들렀던 카페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회사 근처도 아니었고, 집과도 가까운 위치가 아니었다. 굳이 들르지 않아도 될 동선이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건우는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은 평범했다. 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는 장소였다.“여기 맞아.”하나가 휴대폰 지도를 확인하며 말했다.건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이 여기 온 이유.”그가 조용히 말했다.“누군가 만나려고 한 거야.”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가능성이 가장 높지.”카페 문을 열자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이라 손님은 거의 없었다.카운터에 서 있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두 분이세요?”하나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요.”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형의 사진이었다.“이분 혹시 여기 오신 적 있나요?”직원은 잠시 사진을 바라봤다.“잠깐만요.”그는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좁혔다.“어… 이분.”직원이 말했다.“본 것 같아요.”건우의 시선이 멈췄다.“언제요.”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며칠 전은 아니고… 꽤 됐는데.”하나는 바로 물었다.“사고 나기 전날?”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날이었을 거예요.”잠시 후, 직원이 덧붙였다.“근데 혼자는 아니었어요.”공기가 조용히 굳었다.건우가 천천히 물었다.“누구랑.”직원은 머리를 긁적였다.“여자였어요.”그 말이 떨어지자 하나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여자요?”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두 분이 창가 자리 앉아서 얘기했어요.”건우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얼굴 기억나요.”직원은 고개를 저었다.“멀리 앉아서 잘 안 보였어요.”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근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어요.”“어떻게요.”직원은 말을 고르며 말했다.“싸우는 건 아닌데.”그는 잠시 멈췄다.“뭔가… 심각한 얘기 하는
삭제된 영상 파일은 끝내 복구되지 않았다.그러나 건우는 포기하지 않았다.파일이 사라졌다면 그 파일이 이동하거나 접근했던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그래서 그는 영상 자체가 아니라 서버 접속 기록을 보기 시작했다.수십 개의 로그가 화면 위에 올라왔다.접속 시간, 접속 IP, 접근 경로.대부분은 자동 백업 기록이었지만, 그 사이에 하나가 눈에 띄었다.사고 당일 밤.영상이 삭제된 바로 직전.외부 접속 기록이 하나 있었다.건우의 손이 멈췄다.“이거.”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봤다.“외부 접속?”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보안 업체 서버에서 직접 들어왔어.”“삭제 요청?”“아니.”건우는 로그를 더 확대했다.“확인 접속이야.”그 말의 의미는 분명했다.누군가 사고 직전에 그 구간 영상을 미리 확인했다는 뜻이었다.하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사고가 나기 전에.”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이미 보고 있었다는 거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잠시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같은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건우는 로그를 다시 넘겼다.그리고 또 하나의 기록을 발견했다.사고가 나기 약 두 시간 전. 형의 휴대폰 위치 기록이었다.“여기.”건우가 화면을 가리켰다.“이 위치.”하나는 지도 위를 바라봤다.“여기 카페야.”“응.”건우는 말을 이어갔다.“형이 사고 나기 전에 여기 들렀어.”하나는 눈을 좁혔다.“누굴 만나려고?”건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그게 문제야.”그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형 일정에 없는 약속이야.”그 말은 의미가 컸다.형은 누군가를 공식 기록 없이 만나려 했다.밤이 늦어지자 거실의 공기는 더 조용해졌다.하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건우는 노트북을 덮었다.“하나.”그가 불렀다.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왜.”건우는 잠시 말을 찾다가 말했다.“너.”그는
사고 직전 7분. 그 시간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CCTV 서버 기록에는 삭제 로그가 남아 있었지만, 실제 영상 파일은 복구되지 않았다. 관리 프로그램을 여러 번 돌려도 같은 결과였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있었다.건우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커서를 몇 번 움직이다가 결국 마우스를 내려놓았다.“이렇게 지운 거면.”그가 낮게 말했다.“현장 서버만 건드린 게 아니야.”하나는 그의 옆에 서 있었다.“백업?”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면 원본도 같이 정리했을 가능성이 커.”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의자를 끌어 앉았다.“보통 CCTV 백업은 두 군데야.”그녀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건물 서버랑 외부 관리 서버.”건우가 고개를 들었다.“외부?”“보안 관리 업체.”그녀는 키보드를 천천히 두드리며 말했다.“건물에서 직접 관리 안 하는 경우가 많아.”잠시 후, 업체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건우의 시선이 멈췄다.그 회사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형의 회사와 같은 계열 자회사였다.“우연인가...”건우가 말했다.그 말은 사실상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었다.하나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이거.”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사건 범위가 커진다.”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알고 있었다.형의 사고는 단순히 한 사람을 제거하는 사건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밤이 늦어질수록 공기는 무거워졌다.하나는 커피를 내려 테이블에 올려두었다.“너 잠깐 쉬어.”그녀가 말했다.“두 시간째 같은 화면 보고 있어.”건우는 컵을 들었다.“생각 중이야.”“뭘.”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그리고 결국 말했다.“형.”하나는 고개를 들었다.“형이 죽기 전에.”그가 조용히 이어 말했다.“지분 정리 얘기 했었어.”하나의 눈빛이 달라졌다.“회사.”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형이 말했어.”그의 목소리는 낮았다.“회사 안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고.”잠시 침묵이 흘렀다.하나는 숨을 길
위협은 예고 없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천천히 다가온다.건우는 그걸 알고 있었다. 차를 건드린 흔적 이후, 뒤를 밟히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고, 기자와의 접촉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문제는 그 위험이 언제 실체를 드러내느냐였다.그날은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섰다. 하나는 출근한 뒤였고, 집 안에는 남은 공기만 어색하게 떠다니고 있었다. 건우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택했다. 괜한 불안이 아니라, 감각이 예민해진 결과였다.계단을 내려가던 중, 위에서 발소리가 겹쳤다. 일정한 간격으로
기자와 만난 뒤부터, 건우는 자신의 움직임이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단서 하나를 밖으로 꺼냈다는 사실이 이렇게 빨리 파장을 만들 줄은 몰랐지만, 놀랍지는 않았다.형이 죽기 직전 선택하려 했던 길이 바로 이것이었고, 그 길이 안전할 리 없다는 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문제는 그 위험이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왔다는 점이었다.며칠 뒤, 건우는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중 누군가가 자신의 차 근처에서 서성이는 걸 발견했다. 낯선 남자였다. 담배를 피우는 척하며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지만, 시선은
내부 감사 공지가 발송된 이후, 회사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회의실 안에서는 웃음이 줄었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시선에는 계산이 실려 있었다. 평소처럼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모든 대화가 반 박자씩 늦게 이어졌다. 누가 어느 편인지,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가늠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하나는 그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체감했다. 재무팀에서 자료 요청이 들어왔고, 보험 변경 건 관련 서류를 다시 제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형이 사고 재조사를 언급한 시점의 회의록도 함께 요청되었다.“이거, 누가 시작한 거
위협은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주차장 블랙박스 전원 차단, 검은 장갑을 낀 손, 손목에 스친 시계의 반짝임. 그것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우리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건우는 그 메시지를 흘려듣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상대가 기대하지 않을 방향으로 움직이기로 했다.그는 가장 먼저 CCTV 사각지대를 확인했다. 주차장 출입구, 엘리베이터 홀, 지하 통로의 동선까지 하나씩 점검하며 기록을 남겼다. 동시에 지인을 통해 해당 시간대의 주변 상가 CCTV 확보 가능성도 타진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