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บทที่ 311 - บทที่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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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마치 주변의 어둠과 하나가 된 듯, 그림자처럼 묵직했다.온몸에 서린 냉기가 날카로웠고 곧고도 예리한 시선은 사람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듯해 그 앞에 서면 어떤 감정도 숨을 곳이 없을 것 같았다.강정한은 코끝을 문지르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참… 우연이군, 전시 보러 온 건가?”육강민의 시선이 그를 놓지 않았다.“우연 아닙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강정한은 얼굴엔 웃음을 걸고 있었지만 역시 그를 놔둘 리 없다는 생각에 억눌린 분노가 일었다. 강정한이 다가갔다.“요즘은 좀 어떤가?”“안 좋습니다.”너무도 직설적인 대답에 강정한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때 육강민이 먼저 식사 하자고 했고, 강정한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 했지만, 육강민이 다시 말을 가로챘다. “그냥 밥 한 끼입니다. 이 정도는 거절하지 않으시겠죠?”강정한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장소는 팅주 호텔 최고층.통유리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강정한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형식적인 말로 입을 열었다.“호텔이 꽤 괜찮네. 야경도 좋고.”육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은주도 예전에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강정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두 사람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말 그대로 최악이라, 강정한은 어색함에 몸 둘 바를 몰라 발끝까지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육강민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정작 당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묻지도, 재촉하지도 않으니, 그게 더 사람을 미치게 했다.느긋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접시 위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육강민은 너무나 우아했고 또 안정적이었다. 그는 강정한이 멍하니 있는 걸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음식이 입에 안 맞습니까?”“아니, 괜찮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이미 타들어 가고 있었다.‘할 말 있으면 그냥 좀 하지? 이렇게 사람 애태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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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강정한은 더 이상 육강민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마치 신처럼 완벽해 보이던 남자가 이토록 노골적인 고통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라도 측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그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두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회성에 도착한 뒤, 곧바로 밤새 차를 몰아 강 씨네 마을로 향했다.도시의 소음과 불빛에 비하면 이곳은 소박했다.화려한 유흥도, 즐길 거리도 없었지만 고요하고 한적해서 마치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 들었다. 차는 오래된 저택 앞에 멈췄다.담장에 기대선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 마을은 고요했고 간간이 닭 우는 소리와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여기야.”강정한이 시동을 끄며 육강민을 한번 돌아봤다.“들어갈 땐 소리 내지 마.”“내가 들어가면 놀라지 않을까요?”육강민은 오는 내내 긴장으로 몸이 잔뜩 굳어 있었다.가슴에 이유 모를 초조함을 품은 채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평생 이렇게까지 긴장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그녀와 다시 마주할 순간들이 끝없이 그려지고 있었다. “말만 안 하면 괜찮아.”강정한이 그를 훑어보며 웃었다.“천하의 육강민도 긴장은 하네?”“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형님도 이럴 겁니다.”“난 평생 혼자 살 생각인데.”“그래요?”서은주를 만나기 전까진 육강민 역시 그렇게 믿었다.끼익-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마당으로 들어섰다.육강민은 무의식적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밤새 달려온 탓에 몸엔 먼지가 잔뜩 묻어 있을 테고, 턱엔 새로 난 수염이 까슬까슬하게 돋아 있었다.그녀가 보면 또 뭐라 할 텐데.그때, 방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누구세요?”익숙한 목소리였다.그 순간 육강민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의 시선은 방 안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에게 못 박힌 듯 떨어지지 않았다.깊고 집요했으며 탐욕에 가까울 만큼 간절한 눈빛이었다.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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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밤 비행기에, 밤샘 운전까지 오빠가 할 수는 없잖아? 기사 하나 부르는 게 그렇게 이상해?”강정한이 툴툴거리듯 말했다.“그런 뜻은 아니었어요.”서은주가 웃으며 대꾸했다.“이번에 경성은 어땠어요?”예전의 서은주는 긴 웨이브 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녔지만, 지금은 귀밑까지 오는 똑 단발이었다.군더더기 없이 단정했고, 오히려 더 부드러운 인상이었다.떠날 때보다 안색은 훨씬 좋아졌지만, 몸은 여전히 가늘어 바람만 불어도 흔들릴 것같이 연약해 보였다.그리고 불룩하던 배는 사라져 허리는 한 손으로도 훅 잡힐 만큼 가늘었다.의사도 이미 큰 충격을 받은 아기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으며 무사히 태어날 확률은 극히 낮다고 했으니, 아기는 끝내 세상을 보지 못한 걸까?육강민은 뒤에서 말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전시회는 늘 그렇지 뭐. 솔직히 좀 지루했어.”“그래요?”“혹시 육강민을 봤냐고 묻고 싶은 거지?”서은주는 잠깐 멈칫하다가 조용히 말했다.“아닌데요.”“전시장을 나오자마자, 그 인간한테 딱 걸렸어. 완전 껌딱지처럼 들러붙더라고.”강정한이 투덜거렸다.“나 너무 놀랐잖아. 경성에서 이름값 하는 양반이 완전 건달처럼 구는 거 있지.”육강민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졌다.‘강정한 아주 신났군.’서은주는 웃음을 터뜨렸다.“오빠도 한 성격하잖아요. 그렇게 귀찮았으면 한 방에 걷어차 버리면 되잖아요.”“그래,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로 가만있지 않을 거야.”육강민은 서은주와 불과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서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육강민이 없는 그 시간 동안 그녀가 무엇을 겪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꼭 안아 주고 싶었다.그때 서은주가 텅 빈 시선으로 말했다.“기사님도 들어오셨죠? 물 한 잔 드세요. 고생 많으셨어요.”강정한은 그저 어이없었다.‘고생은 무슨!’밤새워 운전한 사람은 강정한이었고, 상대는 옆에서 폼만 잡고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강정한이 피곤하지는 않은지, 목은 마르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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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서은주는 아이 울음소리에 몹시 초조해졌다.급해진 나머지 바닥을 더듬어가며 지팡이를 찾았고, 거의 기어가듯 주워들었다.강정한이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괜찮아, 이모가 애 보는 데 아주 능숙해.”“어젯밤에도 새벽까지 한참을 보챘거든요.”강정한은 말하다 말고, 멍하니 서 있는 육강민을 흘끗 보더니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그의 종아리를 툭 걷어찼다.따라오지 않고 뭐 하냐는 눈짓이었다.육강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강정한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아까 서은주가 몸을 써도 된다고 했으니,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세 사람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제야 육강민의 눈에 방 안 풍경이 들어왔다.오래된 침대 하나, 그 옆에 단단한 원목으로 만든 아기 침대가 놓여 있었고 방 안에는 은은한 분유 냄새가 배어 있었다.방은 아늑하고 깔끔했고, 모서리가 날카로운 가구들은 모두 스펀지로 감싸져 있었다.서은주를 배려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역력했다. “수린아, 왜 그래?”서은주가 손을 뻗었다.“기저귀가 젖어서 새로 갈아줬어요. 지금 기분이 아주 좋아요. 그렇지? 우리 아가.”황금자가 웃으며 침대에 누운 아기를 다정하게 달랬다.핑크색 옷을 입은 아기는 눈이 크고 또렷해서 그 모습이 꼭 서은주를 빼닮아 있었다. 육강민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다.서은주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보이지 않는데도 손길은 놀랄 만큼 익숙했다.그녀는 아이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살짝 비볐다.아이는 활짝 웃으며 침을 한 가득 묻혔지만, 서은주의 미소는 오히려 더 부드러웠다.그녀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아이였기에 보물처럼 품고 있었다.육강민의 목이 바짝 말랐고,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이 아이가 그들의 아기란 말인가?어여쁜 딸이었다.마치 누군가 그의 마음속에 돌 하나 던지듯 작은 울림이 거센 파도를 몰고 왔다. 그가 없는 사이, 서은주는 홀로 아이를 낳고 이렇게 잘 키워냈지만, 그녀는 정작 앞을 보지 못했다. ‘은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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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그런데 육강민의 품에 안기자마자,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쳤다.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가끔은 피로 이어진 인연이라는 건 정말 묘하고도 잔인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어? 그쳤네요?”서은주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수린이랑 밖에서 산책 좀 하고 있을 테니, 너는 얼른 씻어.”강정한이 말했다.“아침 공기 차니까,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해요.”서은주의 당부가 뒤따랐다.두 남자가 갓난아기를 안고 시골길을 걷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묘하게 어색했다.울다 지친 육수린은 육강민의 어깨에 엎드린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아이는 언제 태어났습니까?”육강민의 목소리는 이미 바짝 잠겨 있었다.“1월 16일.”강정한은 막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말했다.“이틀 가까이 복통과 두통을 호소했지. 아기는 겨우 7개월 남짓한 미숙아였고, 몸도 약해서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넘게 지냈어.”“은주는요?”“아이를 낳고 나서 바로 머리 수술을 했어. 시술로 뇌 속에 고인 피를 제거해 목숨은 건졌는데 아기보다 더 오래 의식을 잃고 있어서, 그때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그 시절을 떠올린 강정한은 그제야 육강민에겐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육강민은 품에 안긴 아이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한 달이 조금 넘어서야 겨우 깨어났지만 너무 오래 시신경을 압박했던 어혈 때문에 너도 보다시피, 볼 수 없게 된 거야.”“영원히 못 보는 겁니까? 회복 가능성은 없습니까?”육강민이 인상을 찌푸렸다.“의사 말로는 방법이 없대. 그냥 기적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기적이라니.그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육강민도 알고 있었다.“그럼, 왜 저한테 알리지 않았습니까?”육강민이 다급하게 물었다.“퇴원 직후엔 걷다가도 계속 넘어져서 무릎엔 멍이 가실 날이 없었지. 그 모습을 너에게 보여 줄 수 없었을 거야. 몸도 아직 회복 안 됐고. 지금도 적응 중이잖아.”강정한은 낮게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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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강정한은 육강민이 이곳에 머무르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속을 알 수 없는 데다 잔머리까지 비상한 인간이라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육강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그 사람이 가장 힘들었을 때 전 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번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그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꼭 곁에 있고 싶습니다.”강정한은 얼굴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한없이 약했다.“…하아, 됐다. 하고 싶은 대로 해.”서은주도 완고했고 육강민 역시 만만치 않은 고집불통이다.저 둘이 서로 부딪히며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자신은 여자 친구 하나 없는 솔로 주제에 출산에, 육아에, 애 봐주기까지, 더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육강민이 옅게 웃었다.“감사합니다.”“대신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니, 절대 들키지 마.”강정한이 못을 박았다.“알고 있습니다.”육강민은 품에 안긴 육수린을 내려다보았다.너무 작고 소중한 존재였다.조금 전까지 울어대던 녀석은 이제 그의 어깨에 기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통통한 볼살에 우유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서은주가 아직도 육강민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강정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했다.여러 가지를 저울질한 끝에 그는 결국 육강민을 남기기로 한 것이었다.“은주가 여기 있는 거, 또 누가 알고 있습니까?”육강민이 물었다.“나 말고는 너뿐이야.”“강씨 가문 식구들은요?”“해외에서 치료 중이라고 지금은 면회도 어렵다고 했어.”“믿어요?”강정한이 씁쓸하게 웃었다.“안 믿겠지. 그래도 은주가 직접 전화해서 지금 상태로는 사람 만날 수 없다고 했거든. 할아버지랑 아버지는 은주 말은 따르고 있어.”“그럼, 그 이모는요?”“그냥 평범한 도우미야. 나이도 많아 스마트폰도 다루질 못해서 은주의 정확한 신분도 모르고 선도 잘 지키고.”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이미 샤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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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그럼, 이 기사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이복만이라니. 이름이 꽤 정겨웠다.“기사님은 무슨. 그냥 복만 씨라고 불러. 그게 좋대.”강정한은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육강민, 이건 네가 먼저 판 함정이라, 나한테 뭐라 하지 마.’서은주는 볼 수 없으니, 강정한이 얼마나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고 있는지 알 리 없었다.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알겠어요. 그럼, 복만 씨라고 부를게요.”“그래.”강정한은 헛기침으로 웃음을 삼켰다.서은주가 고개를 갸웃했다.“그런데 왜 그분은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요즘 목이 좀 안 좋아서 그래.”“그렇구나. 목캔디 있는데, 드릴까요?’“괜찮아.”육강민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황금자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눈앞의 남자가 이름이 이복만이라는 사실에 잠시 말을 잃었다. 평범한 시골 아주머니답게 깊이 생각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귀티 나는데 이름은 참 소탈하게 지었다고 그냥 넘겨버렸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육강민은 아쉬움을 눌러두고 마을을 떠났다.이곳은 ‘강씨 마을’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강씨 집안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노인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젊은 나이대는 거의 외지로 갔고 남아 있는 자들은 소규모 농사를 짓고 있었다.강정한은 그를 공항까지 배웅했다.헤어지기 직전, 육강민이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강정한은 속으로 긴장했다.‘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지?’ 싶었는데 육강민은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고맙습니다.”서은주 모녀를 돌봐준 것에 대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와 준 것에 대한, 그리고 이곳에 남을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늘 팽팽하게 맞서던 두 사람 사이에 갑작스레 이런 장면이 연출되자, 강정한도 조금 어색해졌다.그는 육강민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은주랑 수린이 잘 부탁할게. 실망하게 하지 말고.”*육강민은 경성으로 돌아가 손에 쥔 일들을 최대한 빨리 정리한 뒤 나머지는 전부 아버지 육진국에게 넘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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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육강민이 마당으로 들어서니, 서은주는 마당 한가운데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초봄의 햇살은 따뜻하되 자극적이지 않았고, 부드러운 바람이 그녀의 어깨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고요한 풍경 속의 그녀는 단정해 보였고 아름다웠다.“복만 씨, 서쪽 방을 쓰시면 됩니다. 혹시 부족한 게 있으면 이모에게 말씀하세요.”“네.”육강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방 안으로 옮겼다.잠시 후, 아이와 함께 돌아온 황금자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장난감이랑 아기 옷을 왜 이렇게 많이 가져오셨어요?”보이지 않았기에, 그가 뭘 가져왔는지 알 수 없었던 서은주는 황금자의 말을 듣고서야 아이를 위해 꽤 많은 물건을 준비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일하러 온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돈을 쓰게 할 수는 없었다.서은주는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받을 수 없어요.”육강민은 강정한이 부탁한 거라고 둘러댔다. 강정한이 준비한 거라면 서은주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강정한은 재력이 넘치는 사람이라 육수린이 태어났을 때도 보석 몇 세트를 선물하겠다고 했고, 서은주는 아이가 쓰기엔 너무 과하다며 거절하자, 아무렇지 않게 장난감으로 쓰라던 말이 기억났다.보석을 장난감이라니. 역시 부자들은 돈이 넘쳐나는 모양이다. 하지만 서은주는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직접 아이를 위해 고르고 준비했던 물건들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육수린은 유난히 육강민을 잘 따랐다.울고 보채다가도 그가 손을 뻗어 안는 순간, 금세 울음을 그치고, 꺄르르 웃기까지 했다. 육강민도 그런 딸을 바라보며 얼굴 가득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원래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해 왔다.육민찬은 한창 사고를 치는 나이였고, 숙제를 봐줄 때면 화를 꾹꾹 눌러야 했다.하지만 작고 소중한 딸이 해맑게 웃어 보일 때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던 황금자가 웃으며 말했다.“아이고, 수린이랑 복만 씨는 정말 인연인가 봐요.”사실 황금자는 이복만이라는 남자가 돈이 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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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이복만까지 왔으니, 서은주도 더 핑계를 댈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지팡이를 들고 집 밖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마주한 세상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어디를 가든 그녀는 어둡기만 했다.서은주는 지팡이를 쥔 채, 조심스럽게 더듬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육강민은 그녀의 바로 옆에서 걸으며 혹시라도 부딪히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 주고 있었다.그녀의 걸음은 몹시 느렸고,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배어 나왔다.그녀의 불안을 알아챈 육강민이 말했다.“아가씨, 괜찮으시면 제 팔을 잡고 걸으실래요?”서은주는 잠시 망설였다.하지만 긴장과 두려움이 더 컸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꼭 쥐고, 다른 손을 뻗었다.손끝이 조심스럽게 허공을 헤맸다.그때, 육강민이 낮게 웃었다.그리고 그녀의 손을 아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육강민과 달리 크고 따뜻하면서 굳은살이 그렇게 많지 않은 손이었다.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서 심장이 쿵 내려앉은 서은주가 본능적으로 손을 빼려는 순간, 그가 먼저 자신의 팔에 그녀의 손을 올려놓았다.“꼭 잡으세요.”그가 손을 거두자, 손등의 열기가 사라지고 서은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이나 친구를 제외하면 육강민 이후 처음으로 손을 잡아 준 낯선 남자였다.그 느낌이 묘하게 낯익었다.이복만이라는 남자는 언제나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익숙함을 주었다. 예전에 그에게서 육강민의 향을 느낀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 향기는 사라지고 없었다.“아가씨, 출발하시죠.”육강민은 사실 그녀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지만, 놀라게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서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차갑고 무감각한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보다 이복만의 팔을 붙잡고 걷는 편이 훨씬 안정감이 들었다.어둠 속을 걷고 있어도 체온이 느껴지는 그 존재 때문에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육강민은 어디에 내리막이 있는지, 어디에 작은 웅덩이가 있는지 알려주며 모든 장애물을 피해 가도록 이끌었고, 꽃들이 얼마나 예쁜지도 말해 주었다.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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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이후로 한동안, 육강민은 서은주와 함께 외출했다.보통 아침과 저녁 두 차례, 늘 같은 길을 걸었다. 그 길은 점점 그녀의 몸에 익어 갔고 이제는 혼자 지팡이를 짚고서도 무사히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가끔은 황금자가 육강민을 대신했고 그럴 때면 육강민은 집에 남아 아이를 돌봤다.딸과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봄이 무르익자 시골길 가장자리에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어 삶은 단조롭고 느렸지만 그만큼 고요했고 평온했다.게다가 육수린이라는 작은 존재 덕분에 일상은 언제나 웃음으로 가득했다.어느 날, 서은주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방 안에는 은은한 꽃향기가 가득했다.황금자에게 묻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복만 씨가 아침에 꽃을 꺾어 와서는 침대 머리맡 꽃병에 꽂아 두라고 하더라고요. 이 들꽃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도 잘 오게 한다나… 전 잘 모르겠는데, 향은 참 좋네요.”서은주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꽃을 만졌다.꽃잎 위에는 아직 이슬이 맺혀 있었고, 촉감은 매우 부드러웠다.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덩달아 마음도 말랑해졌다.“복만 씨를 처음 봤을 땐 되게 차가워 보여서 말도 잘 못 붙이겠던데 알고 보니 참 세심하네요.”“차가워요?”서은주의 눈동자에 잠깐 놀라움이 스쳤다.그녀가 느낀 이복만은 늘 온화하고 다정했고 ‘차갑다’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네. 키도 크고 말 안 하고 있으면 조금 무섭기도 해요.”“……”“그래도 진짜 잘생겼어요. 도련님 말고는 그렇게 잘생긴 젊은이는 처음 봐요. TV 나오는 연예인들보다도 훨씬 낫다니까요.”황금자는 꾸밈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그저 흘려 한 말이었지만, 서은주의 마음에는 남았다.그 묘사가 자꾸만 육강민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그날은 황금자가 서은주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어느 구간에 이르자, 서은주는 남자들의 낄낄대는 웃음소리를 들었다.토박이 사투리라 정확한 말뜻은 알 수 없었지만, 황금자가 갑자기 욕을 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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