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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1화

유소영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서렸다. 그녀는 손에 쥔 평안패를 꽉 쥐며 오직 세자만을 생각하고 있었다.그 탓에 복양 군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저기요! 세자 부인? 왜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어요?”복양 군주가 소리치는 소리에 유소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그 평안패를 품에 잘 챙겨 넣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 방금 육황자 생각이 나서 조금 걱정이 되었을 뿐입니다.”복양 군주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전 그 사람 이야기는 꺼내기도 싫어요.”“애첩 생일 따위에 그렇게 요란을 떨면서 남들까지 억지로 참석하게 만들잖아요.”“그나저나 오라버니는 왜 육황자가 세자 부인을 괴롭힐까 봐 걱정하는 걸까요? 그리고 고 세자 일 말이에요, 그것도 육황자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그녀는 수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하지만 유소영도 군주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특히 자신이 육황자에게 모욕을 당했던 일은 더욱 그랬다.“저도 밖에서 이제 막 돌아온 참이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릅니다.”복양 군주는 목욕통 가장자리에 엎드려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었다.“하아! 어째서 세자 부인도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목욕을 마친 후, 두 사람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유소영은 그 평안패를 아민에게 넘기며, 석심에게 전해주라고 분부했다.“이걸 세자께 돌려드리라고 해.”“네, 아씨.”……후작부.고준형에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충용 후작은 밤을 새워 달려왔다.“준형이가 어떻게 강회산을 모함할 수 있단 말이냐?! 형부는 사건 처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그는 강직한 아들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나으리,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오늘 형부에 갔지만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준형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니겠지요?”충용 후작의 표정이 엄숙해졌다.“참으로 누구 하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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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고장훈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설령 형님이 강회산을 모함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충용 후작부 전체가 연루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신, 감히 청하옵건대 황자 전하께서 명확히 밝혀 주시옵소서.”그는 육황자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육황자는 품에 안은 미희를 밀쳐내더니, 옷깃을 느슨하게 풀어헤친 채 상반신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는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를 한 들개처럼 고장훈을 노려보았다.“내가 방금 소식을 하나 들었는데, 그대의 형 고준형이 삼황자와 결탁하여 폐하를 암살할 자객을 보내고 독까지 썼다더군…….”“아닙니다! 전하, 그럴 리가 없습니다!”고장훈이 경악하며 말을 잘랐다.아무리 자신이 형님과 잘 맞지 않는다 해도, 형님이 그런 대역무도한 짓을 저지를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육황자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네놈이 감히 내 말을 의심하는 것이냐?”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장훈을 향해 걸어왔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고장훈의 턱을 치켜올리며 사악하게 웃었다. “아니면, 내가 모함이라도 한다는 뜻이냐?”고장훈은 이를 악물었다.“신은 감히 그런 생각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저 의아했을 뿐입니다……. 형님은, 형님은 언제나 충심을 다하셨습니다. 부디 황자 전하께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육황자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이윽고 그가 명령을 내렸다.몇 명의 호위가 고장훈을 짓눌러 억지로 무릎을 꿇렸다.고장훈은 감히 반항조차 하지 못했고, 육황자가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그저 이 자리에 관원들이 이토록 많으니 육황자가 그리 도를 넘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여겼다.그러나 그는 육황자의 방탕함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육황자는 한 미희를 부르더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허리띠를 거칠게 잡아당겨 풀었다.“꺄아!”미희의 옷깃이 벌어지며 비명이 터져 나왔고, 이내 부끄러운 듯 육황자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황자 전하~~”육황자는 허리띠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더없이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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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늦은 밤, 후작부 난향원.임유정은 여태 잠들지 못한 채, 침상 머리맡에 앉아 고장훈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고장훈인 것을 확인한 그녀는 즉시 등잔을 들고 다가가 그를 맞이했다.“부군, 어찌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임유정은 넋이 나간 듯한 고장훈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넋이 빠진 듯하던 고장훈이 순간 정신이 돌아온 듯 눈을 떨구며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오! 아무 일도 없소!”“내 피곤하니 먼저 자겠소!”말을 마친 그는 임유정을 밀치고 곧장 침상으로 향했다.임유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고장훈의 이상한 낌새를 분명히 느꼈지만 계속 캐물을 수는 없었다.……광화사.악몽에 덜컥 잠에서 깬 유소영의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아민이 들어와 불을 밝히며 그녀를 달랬다.“아씨, 가위에 눌리셨나봐요.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유소영은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피가 엄청 많았어…… 그리고 세자께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계셨어.”아민은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아씨, 세자께서는 하늘이 돕는 분이시잖아요. 틀림없이 무사히 위기를 넘기실 거예요.”유소영 역시 그러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켰다.그러나 그 후로 그녀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그녀는 석심에게 그 평안패가 무사히 세자의 손에 들어갔는지 물었다.석심은 우물쭈물거리며 입을 열었다.“부인, 세자께서 이미 드린 것을 거두는 법은 없다 하시며, 다시 가져다 드리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인께서 받지 않으시면 오히려 세자께서 편치 않으시다 하셨습니다.”유소영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세자가 도로 받으려 하지 않으니, 석심을 난처하게 만들 수 없어 일단 받아둘 수밖에 없었다.“네가 세자를 뵙고 온 것이지? 그분은 좀 어떠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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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누구라고?!”충용 후작이 분노하며 물었다.고 부인은 제자리에 굳은 채, 눈조차 깜박이지 못하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민씨도 멍해졌다.형제간의 싸움이라니,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군.자신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이 형제들이 서로 죽고 죽이게 내버려 두면, 제 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테니까.“나으리, 틀림없습니다. 증언을 하신 분은 바로 장군이십니다!”호위가 대답했다.“빌어먹을!”충용 후작은 화가 나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고 부인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연신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아니, 그럴 리 없어…… 장훈이가 어찌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한단 말인가.”“준형이는 제 친형이거늘!”충용 후작은 가슴이 죄어오는 듯한 분노를 느끼며 명령을 내렸다.“당장…… 그 불효막심한 놈을 끌고 오너라!!!”광화사.아민은 석심이 호위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곧장 석심을 뒤쫓아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어디 가는 길인가요?”석심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부인을 잘 모시고 있어. 난 나가서 순찰 좀 돌고 올 테니.”아민은 눈치가 빨라 석심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는 끈질기게 캐물었다.“안 돼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똑바로 말해 봐요! 그래야 저도 마음의 준비라도 할 것 아니에요!”석심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아민에게 털어놓았다.“세자께 일이 생겼어. 이번엔 강회산 사건보다 훨씬 더 커.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는 혐의에 연루되셨거든.”아민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예요! 어쩌자고 맨날 세자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 건가요! 세자께서 폐하를 해치실 리가 없잖아요, 도대체 얻을 게 뭐가 있다고!”“그들 말로는 세자께서 삼황자 전하와 내통하셨다는 거야. 이런 일을 꾸민 것은 결국 삼황자 전하를 밀어주기 위해서라고. 예전 가을 사냥 때의 자객 사건과, 그 뒤로 이어진 독살 사건이 여태 해결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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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그 순간, 그는 어머니의 분노와 슬픔이 서린 두 눈과 마주쳤다.고 부인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분노에 차 고장훈을 가리켰다.“이리 큰일이 터졌는데 넌 어째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게냐? 어찌하여 우리와 상의하지 않았어!”그녀는 지난밤 고장훈이 겪었을 일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준형의 생사가 걱정되었다.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으니,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었다.이때, 충용 후작은 기이하리만치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그는 진상을 알고 난 뒤에도 고 부인처럼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다.수십 년간 관리 사회에 몸담아 온 그는 그 속의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황제가 바뀌면 신하도 바뀌는 법이다.육황자는 이번 기회에 본보기로 무리를 숙청하여 위신을 세우려는 것이었다.그리고 고준형도 그 숙청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그러니 이는 자신이 나선다고 될 일도, 고장훈이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고장훈은 뺨을 맞고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하는 마음이 불쑥 솟구쳤다.그는 그들을 차갑게 쏘아보았다.“두 분과 상의를 하라고요?”“어머니께서는 온종일 자식 낳으라 재촉하시며 뒤채의 사소한 일에만 마음을 쓰시고, 아버지께서는 큰일에는 보탬이 되지 않으시면서 작은 일만 생기면 밖으로 나도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들에게 변고가 생겼는데도 첩실의 방에서 태평을 누리고 계시니, 제가 어찌 두 분께 상의할 수 있겠습니까!”“두 분 중 어느 한 분이라도 뾰족한 수가 있으셨다면, 제가 어찌 형님께 그런 오명을 뒤집어씌웠겠습니까?”충용 후작의 어조가 무거워졌다.“내가 지난밤 남원에 있었던 것은 심자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 네가 나를 찾아와 상의했더라면, 내가 널 문전박대했겠느냐?”고장훈은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상의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저 속 끓이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지요!”“오늘 아버지께서 형님 일로 이리 뛰고 저리 뛰셨지만, 뭐 달라진 게 있습니까?”“인정하십시오. 이 후작부 내에서는 큰일을 감당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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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고 부인이 다급히 말했다. “나으리, 어머님께 아직 쓰지 않으신 후의가 하나 남아 있지 않습니까?”애당초 임유정의 재혼 일로 하마터면 쓰일 뻔했던 것 말이다.충용 후작도 그제야 생각이 났다.그의 형님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을 때, 폐하께서 어머니를 보살피고자 특별히 내려 주신 후의였다.그러나 이는 폐하께서 약조하신 것으로, 지금 폐하께서 의식을 잃고 계시니 육황자가 인정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웠다.그러나 어찌 되었든 시도는 해 보아야 했다.충용 후작은 즉시 서원으로 가 노부인을 찾았다.노부인은 손자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준형이를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이 늙은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그 후의는 자신이 쥐고 있어 보아야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그러나.충용 후작의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노부인이 그것으로 손자를 구하려 하자, 육황자는 즉시 엄포를 놓았다. 무엇을 청하든 다 들어줄 수 있으나, 시해를 저지른 죄인을 위해 후의를 베풀 수는 없다고 말이다.노부인은 형부에서 크게 난동을 피웠으나, 결국 관원들에 의해 강제로 후작부로 돌려보내졌다.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 고준형을 고발한 이가 다름 아닌 또 다른 친손자, 고장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후작부로 돌아온 노부인은 숨이 넘어갈 듯 화를 내다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정작 고장훈은 발 빠르게 몸을 피하여, 그날로 진영으로 가버렸다.임유정은 심란한 마음으로 그의 옷가지를 챙겼다.“부군, 세자께서 삼황자와 모의를 하신 것이 참말입니까?”고장훈은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부인이 나설 바가 아니오.”임유정 역시 굳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다만 이 불똥이 조만간 자신에게 튈까 두려울 뿐이었다.폐하를 시해한 죄는 구족까지 연좌되는 대죄이니 말이다.그러나 육황자는 비록 악독할지언정, 약조는 지키는 자였다.고준형 한 사람의 목숨만 거두겠다고 했으니, 식언하지는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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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이황자는 육황자를 보자마자 눈빛에 분노가 서렸다.“네가 여긴 웬일이냐!”육황자의 뒤에는 몇 명의 호위가 따르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는 듯한 오만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곧장 이황자를 지나쳐 고준형에게 다가가 말했다.“고준형, 그대가 폐하를 시해하려 한 죄증이 확실하니, 본 황자가 사흘 뒤에 참수형에 처하겠소!”이황자의 눈빛에는 충격이 가득했다.“이건 규율에 어긋난다! 어찌하여 죄증이 명백하다는 것이냐? 우리 형부에서는 아직 사건을 종결하지도 않았거늘…….”육황자가 냉소를 터뜨렸다.“형부를 입에 올리기가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형부상서로서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죄인을 옹호하시다니, 제가 보기에 형님께서도 공범인 듯싶습니다!!”이황자가 막 따져 물으려던 찰나, 감옥 안에 있던 고준형이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사흘 뒤입니까. 감사합니다, 황자 전하. 제게 아직 사흘이나 살날이 남았군요.”그는 생사를 초월한 듯 보이기도 했고, 그저 죽기만을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육황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하게 고준형을 노려보았다.“삼황자 말고도 다른 공모자가 더 있소?”그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이황자를 한 번 흘끗 보았다.“고준형, 본 황자가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그대에게 기회를 주겠소. 나머지 공모자를 남김없이 털어놓는다면, 내 반드시 살길을 열어 주겠소. 어떻소?”이황자는 육황자의 그 말이 자신을 겨냥한 것임을 알아챘다.그러나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그가 아는 고준형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여 남을 팔아넘기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할 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과연, 고준형은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황자 전하의 오해이십니다. 제게 다른 공모자는 없습니다.”그의 눈빛은 담담하고 서늘했다. 그 후로는 입을 다문 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육황자는 표정을 굳힌 채, 못마땅한 듯 침을 내뱉었다.“참으로 호의를 모르는군! 좋소, 정 그렇다면 어디 한번 죽어 보시오!”말을 마친 그는 소매를 떨치며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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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석심은 몹시 찔리는 기색이었다.세자의 일은 그가 줄곧 부인에게 숨기며 감히 알리지 못했던 참이었다.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라더니, 부인은 결국 모든 것을 알아버리고 말았다.“부, 부인.” 석심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유소영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했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태연한 척 유지했다.“세자께서는 대체 무슨 계획이시냐?”석심이 멍하니 반문했다. “계획이요?”저도 알지 못했다.제가 받은 명령이라고는 그저 부인을 잘 모시라는 것뿐이었다.유소영은 석심의 그런 반응에 더욱 불안해졌다.“세자께서 사흘 뒤면 참수형을 당하시는데, 너희가 어찌 아무런 계획도 없을 수 있단 말이야?!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줄 수 없다면, 적어도 이번 위기를 세자께서 무사히 넘기실 수 있을지 그 언질이라도 주어야 할 것 아니야!”석심이 이를 악물었다.“부인,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육황자 전하께서 혹 누군가 세자를 구출할까 염려하시어, 감옥을 지키는 병력을 대폭 늘리셨습니다. 저희 또한 세자의 소식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유소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뭐라고…… 너희마저……”“부인,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세자께선 분명 방도가 있으실 겁니다! 정 안 되면 저희가 형장을 기습하면 됩니다! 결코 세자께서 목숨을 잃으시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것입니다!” 석심은 이미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고 있었다.유소영의 마음에 남아 있던 일말의 요행조차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형장 기습이라니, 그건 그야말로 하책 중의 하책이었다.“너희 중 아무도 세자를 뵙지 못했단 말이야?” 그녀가 물었다.석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형부 감옥의 경계가 물샐틈없이 삼엄해 저희 쪽 사람들은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황자 전하조차 밖에서 저지당하셨고, 형부는 온통 육황자 전하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저희도 현재로선 세자께서 어떤 계획을 세우셨는지 도통 알 길이 없습니다.”“숨기지 않고 말씀드리자면, 부인, 저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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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고준형은 강지영이 보내온 식사를 받지 않았고, 심지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강지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흐느끼며 말했다.“오라버니……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전에 제가 육황자를 도와 오라버니가 제 아버지를 모함했다고 지목한 건...... 첫째로 이 사건에 증거가 턱없이 부족해서 흐지부지될 터라 오라버니가 벌을 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고요. 둘째로는 이를 빌미로 충성을 맹세하는 척하며 육황자 곁으로 돌아가, 그와 과거 부정 사건의 관계를 조사하고 싶어서였어요……”“그런데, 그가…… 그가 이렇게……”강지영이 말하며 고개를 들어, 눈물 어린 눈으로 고준형을 바라보았다.“제가 어떻게 해야 오라버니를 도울 수 있을까요?”“제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그러나 그녀는 끝내 고준형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초왕부.호위가 곧장 앞채로 뛰어갔다.“나으리, 고 세자께서 참수형을 당한답니다!”초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아직 이틀이나 남지 않았느냐!”육황자의 손이 이렇게나 빠르다니!이틀도 기다리지 못한다는건, 시간이 지체되면 일이 틀어질까 두렵기 때문일 터였다.앞채 밖에서 누군가가 황급히 뛰어 뒤채로 향했다. 그곳은 조담이 갇혀 있는 작은 방이었다.“주인님!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문 안에서 조담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그 사내는 숨을 헐떡이며 문에 바짝 붙어 작은 목소리로 고했다.“고 세자께서 오늘 바로 참수되신답니다!”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 조담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빛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왜 이렇게 빨리!“어서 자물쇠를 열고 나를 내보내라!”“예, 주인님. 해보겠습니다……”갑자기 마당 입구에서 분노에 찬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명령한 적이 없거늘, 누가 함부로 움직이느냐!”이내 조담에게 소식을 전하러 왔던 호위가 끌려갔다.부자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 선 듯 마주했다.조담이 문짝을 향해 주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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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육황자는 순간 낯빛이 확 변하더니, 본능적으로 반박했다.“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특별히 명을 내려 궁 안에 고준형의 참수형 소식을 철저히 봉쇄했거늘, 부황께서 어찌 이를 아시고 이리 일찍 깨어나셨단 말인가?그의 시선이 곧장 고준형을 향했다.“그대 짓인가?”그럴리 없었다.고준형 역시 오늘에야 자신이 참수형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따로 손쓸 시간이 있었겠는가.이때, 고준형이 슬픔도 기쁨도 가늠하기 힘든 얼굴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그 역시 궁인을 바라보고 있었다.폐하께서 이때 깨어나신 것은 정황상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의 예상 밖의 일이었다.그 또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고 싶었다.궁인이 아뢰었다. “전하, 오늘 이른 아침 설 신의께서 입궁하셨습니다. 그분의 진료 덕분에 폐하께서는 이미 무사히 고비를 넘기셨사옵니다.”설 신의라고?!!육황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오래전 은거했다던 전임 태의원 제점, 설림을 말하는 것이냐?”궁인이 고개를 숙였다.“그렇습니다. 바로 설림, 설 신의이옵니다!”육황자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얼굴 근육이 일그러졌다.감히 설림 따위가!참으로 기가 막힌 때에 나타나지 않았는가!하필이면 이 결정적인 순간에 일을 망쳐 놓다니!고준형은 설 신의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짚이는 바가 있었다.설 신의가 이토록 제때 당도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유소영과 깊은 연관이 있을 터였다......의자에 앉아 있던 육황자가 눈동자를 굴렸다.“부황께서 깨어나신 것은 참으로 천하의 큰 경사로다. 그러나 본 황자는 먼저 이 역적 무리부터 처단해야겠구나!”그가 처형 패를 던지려 하자, 명을 받고 온 궁인이 황급히 가로막았다.“절대 아니 되옵니다! 전하, 폐하께서 이미 세자의 일을 전해 들으시고 그 안에 반드시 오해가 있을 것이라며 친히 심문하시겠다 하셨습니다! 또한 전하를 비롯한 여러 황자 전하들을 당장 입궁하라 급히 명하셨습니다!”그 말에 육황자의 기분은 바닥을 쳤다.눈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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