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บทที่ 581 - บทที่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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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1화

금영은 얼른 뒤따라갔다.“아, 아닙니다. 같이 가시지요.”그녀는 황제를 따라잡은 뒤, 슬쩍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차갑고도 엄숙했지만, 조금 전처럼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이에 금영은 조금 대담해져 다시 한번 그의 손을 붙잡았다.황제는 뿌리치지 않고, 그저 그 작은 손이 제 손을 꼭 감싸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아까 금영이 경치가 더 좋다고 말한 곳까지 이르렀고, 황제가 걸음을 멈추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곳 경치가 더 좋다고?”금영은 할 말을 잃었다. 어디를 보아도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목적은 황제가 맹운산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그 자리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뿐이었다. 금영은 민망함을 무릅쓰고 대답했다.“이쪽 풀이... 조금 더 무성하옵니다.”황제가 눈앞에 있는 금영을 바라보며 곧장 물었다.“서둘러 짐을 끌고 나온 이유, 맹운산을 난처하게 만들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냐?”금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밖으로 내뱉은 줄 알았다. 황제가 그녀를 힐끗 보더니 헛웃음을 흘렸다.“맹운산이 그리도 좋으냐?”사실 황제는 두 사람의 사이를 이미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줄곧 그랬듯이, 오늘도 모른 척 눈감아 줄 생각이었다. 허나 금영이 이토록 긴장한 기색을 보이자 가슴 깊은 곳에서 불쾌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신첩은 맹운산을 좋아하지 않사옵니다! 누가 폐하께 그런 얘기를 했사옵니까? 신첩은...”황제가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짐이 맹운산을 난처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굳이 오늘까지 기다렸겠느냐?”마음먹었다면, 두 사람이 월로사에 함께 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이미 손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금영이 그 일을 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맹운산이 청혼하러 찾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황제가 화난 것은 두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고, 어쩌면 남녀 간의 정이 싹텄을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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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황제의 차갑고도 엄숙하던 기색이 조금은 누그러졌다.그는 금영이 일부러 자신을 달래려고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어느새 마음속에 남아 있던 화가 저절로 옅어졌다.그러나 여전히 그는 입을 열지 않았고, 금영은 눈시울을 붉혔다. 곧이어 눈물이 금영의 눈가를 타고 그대로 황제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그 순간,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에 흐른 눈물을 닦아 주었다.그가 못 말린다는 듯 말했다.“짐이 이 일로 너를 벌한 것도, 맹운산을 난처하게 만든 것도 아닌데, 어찌 이리 눈물을 보이는 것이냐?”금영은 억울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신첩이 폐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렸으니, 다시는 신첩을 상대해 주지 않으실까 두려웠사옵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제에게는 노기가 남아 있었다.하지만 이 순간, 그는 자신이 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났었는지조차 거의 잊어버렸다.그는 오히려 인내심을 갖고 금영을 달래기 시작했다.“짐이 언제 너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하였느냐?”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손복안은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금영은 겉보기에는 나이도 어리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듯했지만, 정말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았다.손복안은 금영이 새삼 대단하게 보였다.분명 먼저 황제의 화를 돋운 사람은 금영이었다. 그런데 몇 마디 지나지도 않아, 어느새 황제가 도리어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앞으로 황실에서 제법 볼 만한 일들이 많이 벌어질 듯했다.‘황후마마께서 과연 어디까지 인내심을 발휘하실 수 있으실까?’거기까지 생각하자, 손복안의 얼굴에 희미한 조소가 스쳤다. 솔직히 말해,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제법 기대가 되었다.“됐다. 그만 울거라.”금영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난감하던 찰나에 황제의 눈에 멀지 않은 곳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는 젊은 남녀 한 쌍이 보였다.“말 타 보고 싶지 않느냐?”그 말을 들은 금영의 눈이 순간 반짝였지만, 곧 시선을 내리깔며 자신의 아랫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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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태자가 다가왔을 때였다.마침 고개를 살짝 돌린 금영에게 황제가 고개를 숙여 가볍게 뺨에 입을 맞추는 모습이 태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태자의 얼굴은 여전히 온화했지만, 그가 속으로 얼마나 아파하고 후회하고 있는지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았다.태자와 이황자가 동시에 말에서 내리며 입을 열었다.“부황을 뵙습니다. 그리고...”이황자의 준수한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영비마마도 뵙습니다.”말을 마친 이황자는 잊지 않고 태자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어려 있었다.태자도 공손히 예를 올렸다.“영비마마를 뵙습니다.”금영은 태자를 힐끗 바라보았다.‘아주 한가하네?’서 황후는 거처에 갇혀 무릎을 꿇고 있는데, 정작 아들인 그는 사냥터에 나와 기마와 활쏘기를 즐기고 있었다.그동안 서 황후가 태자를 위해 손을 더럽히며 온갖 짓을 서슴없이 저질러 온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스운 꼴이었다.하지만 그건 금영이 그의 사정을 미처 몰랐기에 든 생각이었다. 태자가 이곳에 나온 것은 서 황후의 뜻이었다. 이황자가 이 기회를 빌려 이곳저곳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있는데, 태자만 뒤처지게 될까 염려했던 것이다.둘의 속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금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황제와 태자 사이를 벌릴 수 있는 기회라면 어떤 것도 놓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참으로 오랜만에 태자 전하를 뵙는 듯합니다. 오늘은 어쩐 일로 기마와 활쏘기에 나서신 겁니까?”태자는 금영이 먼저 말을 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고, 눈빛에 아주 희미한 기쁨이 스쳤다.“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냥터까지 왔는데, 기마와 활쏘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그녀의 반응에 태자는 멋대로 속으로 짐작했다.금영이 지난번에 그를 아주 단호하게 끊어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역시 마음속에는 자신을 향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 하긴, 황제는 거의 금영의 부친뻘이었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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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황제가 던진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 황후를 염려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태자까지 함께 벌에 처하는 것이었다.어쨌든 지금 서 황후는 문을 닫고 반성 중이었다.황제가 직접 근신을 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태자는 매일 서 황후의 처소에 들러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며 모양새를 갖추어야 했다. 자연히 밖에 나와 돌아다닐 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태자는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부황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소자가 잘못했습니다.”황제는 고삐를 조금 느슨하게 잡고는, 금영을 태운 채 태자와 이황자의 앞을 지나갔다.태자는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점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돌려 이황자를 차갑게 노려본 뒤, 다시 말에 올라탔다.하지만 이황자는 그런 태자의 모습에 오히려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황제는 원래 금영의 마음을 풀어 주려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맹운산과 마주친 것도 모자라 태자와도 얽히게 되었다. 거기에 지난날의 일까지 언급되자, 상당히 기분이 가라앉았다.황제는 이미 지난 일 때문에 누군가에게 화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원래 뜻대로 되지 않는 법,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더구나 얼마 전 태자가 금영이 영안후부에 들렀을 때 일부러 찾아왔었다는 얘기까지 떠올랐다. 황제는 태자를 벌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그는 금영을 처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는 별다른 말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금영과 더 오래 함께 있다가는, 정말로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금영은 조금 후회가 되었다.오늘 맹운산 일로 겨우 황제를 달래 놓았는데, 태자와 마주치는 바람에 괜히 안 해도 될 말까지 언급되어 황제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려 놓은 것 같았다.그가 떠나자, 해수가 안으로 들어와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마마, 폐하께서 어찌...”금영의 얼굴빛은 제법 차분했다.황제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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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하지만 그가 이미 화난 적 없다고 말한 이상, 오늘 일을 더 따지고 싶지 않다는 뜻일 터였다. 그러니 금영도 굳이 이 일을 더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황제에게 다가가 그의 옷을 벗겨 주려 했다.금영은 후궁이었지만, 입궁한 뒤 그와 함께 있을 때 직접 옷시중을 든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은 황제가 그녀를 챙겨 주는 쪽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그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다소 찔리는 마음에 한 번쯤 살갑게 굴어 보려 노력 중이었다.그러나 황제가 금영의 손을 눌러 잡으며 말했다.“짐이 하겠다.”금영이 제게 손을 대는 것은 옷시중이 아니라, 불을 붙이는 일이나 다름없었다.오후에 무엇을 하고 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겉옷을 벗은 뒤 곧장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다.금영도 그의 곁에 누웠다. 하지만 너무 많이 잔 탓인지, 이번에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게 되었다.사실 그녀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평소의 금영은 잠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낮잠 자는 일도 드물었다. 다만 배 속 아이의 개월 수가 점점 차오르면서, 졸음이 문득문득 밀려와 어쩔 수 없었다.금영이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는지 모를 무렵, 곁에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금영아, 잠이 오지 않는다면 짐 곁에 조금 더 있어 다오.”금영은 그 말을 듣고 나직하게 답했다.“신첩은 지금도 폐하 곁에 있지 않사옵니까?”이미 한 침상에 누워 있는데, 금영은 황제가 무엇을 바라는 건지 몰랐다.그런데 그때, 황제의 손이 그녀의 옷깃에 닿았다. 이내 손짓 몇 번만으로 앞섶이 풀렸고, 거칠고 뜨거운 손이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황제의 품에 안겨 그의 몸 위로 끌려 올라가고 나서야, 금영은 그가 말한 곁에 있어 달라는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금영의 몸은 그로 인해 곳곳이 뜨겁게 불타올랐다.황제가 낮고도 어둡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금영아...”한참이 지나서야 황제는 가까스로 움직임을 멈추었고, 밖에 대야를 들이라 명했다.문밖을 지키고 있는 이는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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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위명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해수는 재빨리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잊지 않고 한마디 던졌다.“파렴치한!”위명은 할 말을 잃었다.해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야를 안으로 들였다. 금영이 있는 쪽으로는 감히 고개도 돌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옷매무새까지 모두 정리하고 나자, 금영은 다시 졸음이 밀려왔다.황제는 그녀를 제 품 안으로 끌어안고는 낮게 말했다.“이제는 잘 수 있겠구나.”이번에는 금영이 먼저 잠들었다.황제는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의 이마에 흘러내린 잔머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사실 그도 이토록 욕망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금영과 한자리에 눕기만 하면 좀처럼 자신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다.‘만약 금영이 회임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황제의 눈빛이 다시 어둡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욕정이 치밀어도 금영은 회임 중이었고, 결코 손을 대서는 안 될 몸이었다. 그러니 이런 방식으로 해소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건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더 심해지는, 목마른 상태에서 독한 술을 들이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그 뒤로 금영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늦은 밤에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아직 꽤 이른 시각이었다.황제는 아직 대신들을 만나러 가지 않은 상태였다.사냥터에 있는 동안에는 조정 회의가 없었지만, 황제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대신들을 만나야 했다.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했다.황제가 떠나기 전,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답답하면 밖에 나가 좀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호위는 넉넉히 데려가거라.”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사옵니다.”그녀는 문가에 서서 황제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배웅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실없는 생각이 스쳤다. 이 모습만 보면 마치 여염집의 평범한 여인이 일터로 나가는 지아비를 배웅하는 것만 같았다. 다만 서글픈 것은, 황제는 영원히 평범한 가장이 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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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유진설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안으로 들어왔다.“신녀, 마마를...”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영이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회귀 전, 금영은 미래의 태자비라는 신분 때문에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생에서 유진설과 친해진 것은 무척 기쁜 일이었다.“어쩐 일이야?”금영이 묻자, 유진설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폐하께서 자주 찾아와 너의 말동무가 되어 주라고 하셨잖아. 폐하의 어명이신데 당연히 따라야지, 안 그래?”유진설은 금영보다 성정이 훨씬 활달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함께 있으면 금영의 기분도 덩달아 밝아지곤 했다.유진설이 신나서 말을 이었다.“이렇게 날이 좋은데 방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 같이 나가자!”금영이 유진설에게 이끌려 나가며 물었다.“어디로 가려고?”뒤따르던 해수가 얼른 한마디 거들었다.“유진설 아가씨, 조심해 주십시오. 저희 마마께서는 한창 몸이 무거우실 때입니다.”그리고는 혹시라도 금영이 넘어질까 염려하며 언제든 부축할 수 있도록 옆에 바짝 붙었다.그제야 유진설도 걸음을 조금 늦추며 안심하라는 듯 씩 웃었다.“걱정 말거라. 절대로 넘어지게 두지 않을 테니까.”그녀는 무장 집안의 여식답게 어느 정도 무예를 익히고 있었다. 금영처럼 가벼운 여인 하나쯤은 얼마든지 다치지 않게 지켜 줄 수 있었다.“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한참을 걸어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금영이 결국 물었다.그러자 유진설이 앞쪽을 가리켰다.“다 왔어!”금영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넓은 터가 울타리로 크게 둘러싸여 있었고, 문 위에는 현판 하나가 걸려 있었다.금영이 나지막이 현판을 읽었다.“수원?”“맞아, 여기야. 듣기로는 어제 폐하께서 근처 산에서 검은 표범 한 마리를 잡아 오셨대.”금영은 조금 놀랐다. 산에 표범이 사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게 없었다. 이곳은 본래 사냥을 위해 조성된 곳이었고, 사냥의 묘미를 더하기 위해 야생 짐승을 일부러 풀어 놓는 것도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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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금영은 그 자리에 서서 표범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폐하께서는 갑자기 왜 표범을 사냥하러 가신 걸까? 사냥터에 해로운 맹수가 있는 것이 걱정되신 것이라면,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되었을 텐데... 설마 오늘 이황자가 한 말에 자극을 받으신 걸까? 자신이 아직 녹슬지 않았고, 여전히 젊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고? 태자가 여우를 잡았으니, 자신은 맹수를 잡을 수 있다는 뜻으로?’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금영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황제가 이런 일로 은근히 질투를 부릴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온몸이 새하얀 작은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방향을 잃고 검은 표범이 있는 우리 안으로 뛰어들어갈 기세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그 순간, 여비의 곁에 있던 궁녀 자운이 재빨리 다가가 토끼를 붙잡았다. 그리고 여비의 앞으로 안고 와서는 말했다.“마마, 보십시오. 토끼입니다!”여비는 토끼를 힐끗 보더니 몹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멀리 던져 버려라.”자운이 막 토끼를 던지려는 시늉을 하던 그때, 한 어린 내관이 뒤쫓아오며 다급하게 외쳤다.“그 토끼, 던지시면 안 됩니다!”자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던지면 안 된다는 것이냐?”“그게... 그게 폐하께서 어제 사냥터에서 데려오신 토끼라서, 그러니까...”자운이 짜증스럽게 다그쳤다.“그러니까 뭐? 똑바로 말하거라.”어린 내관이 난처한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영비마마께 선물로 드리려 하신 것이라 들었사옵니다.”토끼는 금영에게 보내질 물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비 쪽 사람의 손에 들려 있으니 상황이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예부터 윗사람들이 싸우면 애꿎은 아랫사람만 피를 보는 법이었다. 어린 내관 역시 자칫 자신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말을 더듬은 것이었다.자운은 여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처분을 기다리는 눈치였다.“마마, 어찌할까요?”여비는 금영을 힐끗 보더니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본궁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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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자운은 결국 손을 놓지 못했다. 금영이 아직 회임 중인 몸이기도 했고, 제 주인의 명도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금영이 말했다.“여비마마, 이 토끼가 폐하께서 신첩에게 주려 하신 그 토끼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더라도, 이렇게 작은 토끼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아마 회임한 탓일지도 몰랐다. 손바닥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작은 토끼를 보자 금영의 마음에도 저절로 안쓰러움이 일었다.물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다.여비가 금영이 보는 앞에서 이 토끼를 표범의 먹이로 던지려 하는 이유는 하나, 금영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뿐일 터였다. 만약 금영이 지켜보는 눈도 많은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만만하게 여기게 될 것이었다.금영은 여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가 이렇게 몇 번이고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다면,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그녀가 다시 말했다.“여비마마께서 끝내 이리하시겠다면, 저도 폐하께 가서 시비를 가려 달라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여비가 가볍게 웃었다. 원래도 화려하게 아름다웠는데, 이렇게 웃으니 한층 더 눈부셨다.그러나 여비는 금영의 말을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 듯 웃으며 말했다.“참으로 마음씨가 곱군, 영비. 하지만 그대가 토끼를 불쌍히 여기듯이, 본궁은 저 표범이 불쌍하네. 야생 토끼는 본래 표범의 먹이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것 또한 제 운명에 따르는 것이라 볼 수 있겠지.”여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약육강식은 본래 하늘의 이치이지 않은가? 그러니... 자운, 계속하거라.”여비가 명을 내렸다.“그리고 폐하의 앞에 가서 시비를 가리겠다 하였는가? 얼마든지 해 보게. 본궁은 두렵지 않으니. 자운!”여비가 다시 재촉하자, 자운이 손을 놓았다.여비의 눈빛은 차가웠다. 연민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아찔한 광경에 배명월조차 차마 고개를 들어 볼 수 없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이때, 옆에 있던 배경천이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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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여비 탓에 분위기는 이미 엉망이었고, 금영도 더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금영은 토끼를 안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마침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좀 전의 어린 내관을 발견하고는 말했다.“이 토끼, 폐하께서 나에게 주려고 잡으신 토끼라 하였지? 그렇다면 내가 가져가도 문제없지?”어린 내관이 얼른 답했다.“없... 없사옵니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유진설과 함께 밖으로 향했다.그런데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배명월이 옆에서 따라붙었다.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저는 언니가 폐하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어 아주 위풍당당하게 지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아하니...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에요.”배명월은 거기까지 말하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더니 시선이 금영의 배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하긴, 회임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결국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금영은 배명월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살짝 멈추었다.“회임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 그래, 대단할 거 없지. 그런데 명월아, 너도 태자 전하와 혼인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 않느냐?”금영이 옅게 웃었다.“언니로서 마땅히 동생을 염려해야 하고, 폐하의 비빈으로서 황실의 자손이 이어지는 일에도 마음을 써야 하니, 묻지 않을 수가 없구나. 혼인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어찌 아직도 회임 소식이 없는 것이냐?”그 한마디에 배명월의 두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독기 어린 눈으로 금영을 노려보았다.금영만 아니었다면 배명월은 유산하는 일 없이, 무사히 태자의 장자를 낳았을 것이다.게다가 요새 태자의 총애가 온통 서완에게 쏠려 있었다. 배명월은 서완이 태자의 첫아이를 낳게 될까 봐 진심으로 두려웠다.‘아니, 절대로 그렇게 둘 수는 없지!’배명월은 다짐했다.그 사이, 금영은 어느새 수원 지역에서 거의 벗어나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검은 표범을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고, 곧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표범이 우리를 들이받았다!”“우리의 나무 빗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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