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201 - Chapter 210

212 Chapters

제201화

소방 통로 문을 밀어 열고, 지은영은 허서령을 계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손을 놓자마자 지은영은 화가 나 두 손을 허리에 얹고 그녀의 앞을 왔다 갔다 하더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며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바닥을 향해 숨을 내쉬었다. 표정은 아주 좋지 않았다.허서령은 마음이 불안했다.“은영아, 너 대체 왜 그래?”지은영은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제가 왜 그러냐고요? 서령 언니, 언니가 우리한테 6년도 넘게 숨겼다는 생각만 하면 저 지금 너무 화가 나요.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난다고요...”허서령은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기대선 채 고개를 숙였다.지은영이 말했다.“우리 둘째 오빠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왜 속였어요? 왜 숨겼어요? 오빠가 알면 분명 화가 나서 미칠 거예요. 진짜예요, 언니 때문에 속이 뒤집힐 거라고요.”“뭐가 그렇게 화날 일인데.”허서령은 씁쓸하게 웃으며 태연한 척했다.“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진 거야. 우리 아빠가 감옥에 갔는지 아닌지와는 눈곱만큼도 상관없어.”지은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서령 언니, 제가 바보로 보여요?”허서령은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지은영은 고개를 들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한참 뒤에야 그녀는 마음을 진정한 후 다시 허서령을 보며 말했다.“6년 전, 언니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갑자기 우리 둘째 오빠를 사랑하지 않게 됐다고요? 그렇게 우연하게요?”“그냥 그렇게 우연이었어.”“끝까지 고집부려 봐요.”지은영은 단호하게 말했다.“어쨌든 저는 반드시 우리 둘째 오빠한테 말할 거에요.”“그 사람한테 말한다고 뭐가 달라져?”허서령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오래된 상처가 다시 들춰져 소금이 뿌려진 것처럼 찢어질 듯 아팠다.“그 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나랑 함께하길 바라는 거야? 아니면 네 큰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우리 아빠를 구해 달라고 하라는 거야?”지은영은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허서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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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허서령은 눈물을 머금고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은영은 그녀의 슬픈 미소를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다시 돌아와 허서령을 끌어안았다.갑작스러운 포옹에 허서령의 힘없이 무너져 있던 몸에도 조금의 온기와 힘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얼굴을 지은영의 어깨에 묻은 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지은영은 그녀를 끌어안고 두 손으로 등을 가볍게 쓸어 주며, 마음 아픈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뭐든 혼자서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말아요. 제가 본 건 언니가 우리 둘째 오빠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 아니에요. 너무 사랑해서, 오빠의 앞날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오빠가 법을 어기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선택 때문에 고통에 빠지게 하는 것도 차마 못 해서 죄책감까지 떠안고 헤어진 거예요.”지은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나쁜 사람 역할은 다 언니가 하고, 좋은 평판은 우리 둘째 오빠한테 남겨 준 거네요.”허서령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며 흐느끼다가, 지은영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목이 멘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은영아, 도은정도 꽤 좋은 사람이야. 두 사람은 행복할 거야.”“도은정은 행복하겠지만, 우리 둘째 오빠가 행복할지는 모르죠.”지은영은 천천히 그녀를 밀어냈다.“서령 언니, 전 우리 둘째 오빠가 네 번째 방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더 믿고 싶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허서령은 지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도 함께 깊이 가라앉았다.‘뒤집을 수 없는 사건에, 무슨 네 번째 방법이 있을까...’허서령은 힘없이 계단에 주저앉았다.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얼굴을 팔 사이에 묻은 채 아주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혔다.병실로 돌아오자 오정화가 물었다.“네 친구는?”“돌아갔어요.”허서령은 병상 옆으로 가 앉았다.“엄마, 은영이한테 제가 아픈 거 말했어요?”“안 했어.”오정화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네가 이런 병에 걸린 걸 알면 우울하고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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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지은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았다. 소유하의 큰오빠, 소준혁은 막 가업을 이어받은 터라 책임이 막중했다.“주말엔 제대로 쉬어야지. 이렇게 모이기 힘든데 일은 그만해.”이승제가 말했다.소준혁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그래, 주말엔 제대로 놀아야지. 강산아, 와서 카드 치자.”지강산은 술잔을 들고 몸을 비스듬히 창가에 기댄 채 창밖으로 점점 사라지는 저녁 빛을 바라보며 담담히 대답했다.“큰형 불러서 해.”구석에서는 지태일이 바른 자세로 앉아, 뜻이 맞는 또 다른 친구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강직하고 차가운 얼굴은 생각에 잠겨 한층 깊어 보였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바둑 두고 있어.”지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강산 곁으로 가더니 그의 팔을 붙잡고 큰 찻상 옆으로 끌고 가 눌러 앉히며 말했다.“둘째 오빠, 우리랑 좀 놀아 줘.”지강산은 술잔을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숙여 패를 집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패를 섞으며 말했다.“그래, 너랑 놀아 줄게.”저쪽에서는 강직하기로 소문난 나이 많은 두 형이 바둑을 두고 있었고, 이쪽에서는 지강산, 지은영, 소준혁, 이승제가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그 자리의 유일한 여자였던 지은영은 유난히 사랑을 받았다. 모두가 그녀에게 맞춰 주었고, 지강산 역시 당연히 그녀 뜻을 따라 주었다.소유하는 원래 소준혁을 따라오려 했지만, 지강산이 한마디 했다.“걔가 오면 난 안 갈 거야.”그래서 소유하는 데려오지 않았다.지강산과 지태일은 평소 명원에 살지 않았다. 가끔 집에 와 부모님을 뵙고 친구들과 모일 뿐이었다.사람들은 패를 주고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며칠 동안 고민하던 일을 지은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떠보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들, 내 친구 하나가 정말 골치 아픈 일을 겪었는데, 의견 좀 물어보고 싶어.”소준혁이 바닥에 나온 초피 한 장을 집어 자신의 패와 맞추며 말했다.“말해 봐. 무슨 일인데.”지은영은 자신의 패에서 비 피 한 장을 내려놓으며,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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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정말 속 터져 죽겠네. 역시 서령 언니가 오빠를 잘 알고 있어. 둘째 오빠는 사랑에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군. 일에 대한 욕심은 조금도 없는 건가?’지강산은 바닥에 내던져진 카드를 보며 눈썹을 치켜들고 가볍게 웃었다.“허! 우리 공주님, 나더러 와서 고스톱 치자고 한 것도 너고, 네 마음에 안 드는 말 했다고 화내는 것도 너야. 대체 어쩌라는 거야?”지은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노려보았다.“만약 그 사람이 평범한 공무원이 아니라면? 우주 추진 엔지니어라면? 어릴 때부터 꿈이 행성을 탐사하고 우주를 정복하는 거였다면? 그래도 직장을 바꿔야 해?”지강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목소리도 몇도 차갑게 내려앉았다.“무슨 뜻이야?”지은영은 허리를 곧게 펴고 진지하게 말했다.“먼저 이 질문에 대답해.”이승제와 소준혁은 멍해졌다. 두 사람은 긴장한 얼굴로 이 남매를 바라보았다.‘분위기가 조금 이상해.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날이 선 거지?’지강산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바로 그때, 지은영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곧장 받아 귀에 가져가며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서령 언니, 무슨 일이에요?”지강산은 테이블 옆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뜰 밖에는 따뜻한 노란 조명이 켜져 있었다.“나 집에 있어.”지은영은 놀란 듯 물었다.“우리 집 문 앞이라고요? 알았어요... 지금 나갈게요.”지은영은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준혁도 따라 일어났다.“허서령이야?”“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지은영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소준혁도 예전에 허서령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허서령은 지강산을 선택했었다.“내 동생이 말해 줬어. 허서령이 어머니 모시고 제산시에 병 보러 왔다고.”소준혁은 휴대폰을 집어 들며 꽤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오랫동안 못 봤잖아. 나도 같이 나갈게.”“안 돼.”지은영은 매섭게 거절하고, 못난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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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지씨 가문 저택은 정원 저택이었다. 웅장하지만 절제되어 있었고, 몹시 기품 있었다. 밤빛이 내려앉자 긴 회랑에는 따뜻한 노란 조명이 켜져 있어 분위기가 그윽했다.지은영은 허서령을 끌고 안으로 걸어갔다.허서령은 걸으면서도 고집스럽게 말했다.“은영아, 나 오늘은 그냥 돈 돌려주러 온 거야. 선물도 안 가져왔는데, 어르신들 뵙는 건 예의가 아니야.”“선물 안 가져와도 돼요.”지은영은 그녀의 팔을 꼭 끌어안은 채 놓지 않았다.“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외출하셨어요. 젊은 사람들끼리 노는 거예요.”“무슨 젊은 사람들?”허서령은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지강산과 그의 큰형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설마 지강산도 마침 여기 있는 건 아니겠지?’기품 있는 고풍 회랑을 지나, 넓고 여유로운 오락실 안으로 들어섰다.지강산의 뒷모습을 본 순간, 허서령은 온몸이 굳어 버렸다.“내 친구, 허서령이야.”지은영은 당당하게 소개했다.방 안에서 지강산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일제히 허서령을 바라보았다.소준혁은 허서령을 응시하다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좋은 패 한 장을 쥐고 있었고,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서령아, 오랜만이야.”허서령은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6년 만에 보는 소준혁을 보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그때 지태일이 장기판을 내려놓고 허서령 앞으로 걸어와 미소로 맞이했다.“서령?”허서령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태일 오빠, 안녕하세요.”“들어와서 앉아.”지태일은 정중하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 곁에 얹고 안쪽으로 데려갔다.그는 허서령을 찻상 쪽 휴식 공간으로 데려왔다.소준혁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곧장 옆으로 자리를 옮겨 가운데 자리를 비웠다.“서령아, 여기 앉아.”사람이 너무 많았고 모두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이라, 허서령은 이 순간 몹시 어색하고 불편했다.그녀가 자리에 앉은 뒤, 늘 그녀를 여동생처럼 아껴 주던 지태일은 차분하고 엄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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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지은영이 곧 받아쳤다.“서령 언니는 타고난 미인이거든. 오빠랑 다르게. 오빠는 6년밖에 안 지났는데, 멋있던 대학생에서 느끼한 중년 아저씨가 됐잖아.”“은영아, 인신공격은 하지 말자!”이승제가 못마땅하게 미간을 찌푸렸다.지은영은 거리낌 없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소준혁의 시선은 줄곧 허서령의 아름다운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몸을 기울여 가까이 다가가 손에 쥔 패를 건넸다.“서령아, 네가 쳐.”허서령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다들 계속해요.”소준혁은 자기 앞에 몇 개 남지 않은 패를 가리키며 불평했다.“지은영이 잠깐 나간 사이에 우리가 몇 판 고스톱을 쳤는데, 판마다 강산이가 이겼어. 잃은 대가가 너무 커. 네가 몇 판만 대신 쳐 줘.”허서령은 지강산 앞에 쌓여 있는 칩을 힐끗 보았다. 매우 많았다.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것보다 차라리 고스톱이라도 하는 편이 조금은 편할 것 같았다.“해 볼게요.”허서령은 소준혁의 패를 받아 바르게 앉은 뒤 천천히 펼쳤다.왼쪽에는 소준혁, 오른쪽에는 지은영, 두 사람은 좌우 호법처럼 허서령 곁으로 다가와 목을 빼 들고 그녀가 펼친 패를 들여다보았다.지강산은 낮게 숨을 내쉬고 시선을 거두었다. 카드를 섞고 상대방이 자른 자리에서 패를 나눠 받았다.또다시 선이 된 그는 먼저 카드를 냈다. 바닥에 벚꽃 피 한 장이 던져졌다.허서령은 곧장 손에 쥔 비광과 1월 광, 그리고 열 끗 두 장을 바닥에 나란히 펼쳐 보였다.“광 두 장에 열 끗 두 장이면... 4점이네.”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멍해졌다. 지은영과 소준혁조차 그녀의 손에 있던 패를 보고 얼이 빠졌다.‘지강산은 제일 작은 피 카드 한 장을 냈을 뿐인데, 허서령은 무려 광과 열 끗을 동시에 쥐고 있다니?’지강산의 잘생긴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고, 입가에는 차가운 웃음기가 스쳤다. 그는 허서령을 바라보며 물었다.“너 고스톱 할 줄 알아?”허서령이 들어온 뒤, 지강산이 그녀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그 말에는 희미한 의심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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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지강산은 그녀가 패를 섞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빛이 갑자기 가라앉았다.소준혁이 또 말했다.“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중에 우리 카톡도 추가하자.”허서령은 말했다.“그래요, 고마워요.”소준혁이 물었다.“제산시에 남아서 자리 잡을 생각은 없어?”허서령은 천천히 카드를 나눠 주며 말했다.“없어요.”지강산은 테이블 위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티 나지 않게 입을 살짝 벌려 숨을 내쉬었다.이승제도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허서령, 싱글이야?”허서령은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그래서 예의상 고개만 끄덕였다.소준혁이 곧장 말을 받았다.“나도 싱글이야.”이승제가 눈썹을 치켜들었다.“아무도 너한테 안 물었거든.”허서령은 화제를 돌렸다.“칩을 다 잃으면 벌칙이 뭐예요?”이승제는 패를 집으며 대답했다.“점수 제일 높은 사람한테 아빠라고 부르기.”허서령은 패를 나눠 주던 손을 멈췄다.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이승제와. 소준혁을 보다가, 마지막으로 시선이 지강산에게 멈췄다.그녀는 완전히 어리둥절했다.‘거의 서른이 넘은 남자들이, 학력도 높고 젊잖고 직업도 번듯한데, 노는 건 이렇게 유치하다고? 이런 건 고등학생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장난으로 친구 자존심을 건드릴 때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설마 남자는 죽을 때까지 유치하다더니, 아무리 성숙해도 친구가 자신을 아빠라고 불러 주길 바라는 걸까?’이건 돈을 잃는 것보다 자존심에 더 큰 상처였다.허서령은 계속 패를 나눠 주며 말했다.“그 벌칙은 제가 받는 거로 할게요. 제가 이기면 저한테 누나라고 불러요.”이승제는 곧장 동의했다.“그거 좋네! 너한테 지는 게 저 둘한테 지는 것보다 훨씬 낫지.”고스톱을 치는 세 사람 중 허서령이 나이가 가장 어렸다.지강산은 팔꿈치를 두 무릎 위에 얹고 몸을 내밀어 카드를 집으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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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이승제가 어깨를 으쓱했다.“없어.”“열 끗은?”“그것도 없어.”지강산은 카드를 덮으며 또다시 패배를 인정했다. 허서령은 홍단, 청단, 피 1장, 총 7점으로 승리한 것이다.허서령의 마지막 한 장은 여전히 벚꽃 피었다.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더욱 환해졌다. 지강산과 이승제가 던져 준 칩을 거두고 다시 패를 섞었다.이승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감탄했다.“보아하니 나도 누나라고 불러야겠네.”지강산은 평정심을 잃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 쪽으로 술을 따르러 갔다.이후 전황은 점점 더 치열해졌다. 과격파인 허서령은 좋은 패든 나쁜 패든 모두 대담하게 쳤다.이승제는 보수파였다. 지강산은 이미 마음이 흐트러진 것처럼 계속 지기만 했다.바둑을 두던 두 형도 이쪽 카드 판에 끌려 다가왔다.분위기는 점점 좋아졌다. 카드 판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허서령이 칩을 거의 다 따 가려는 순간, 지은영은 휴대폰을 꺼내 지강산을 향해 도발했다.“둘째 오빠, 이따 표정 좀 부드럽게 하고, 목소리도 다정하게, 태도도 진심을 담아 누나라고 불러야 해. 내가 영상 찍어서 저장해 둘 거야.”지강산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미간을 찌푸린 채 손안의 카드를 바라보았다. 지은영의 도발에도 차갑게 코웃음 칠 수밖에 없었다.소준혁은 두 손을 펼치고 허서령 쪽으로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팔은 그녀가 앉은 소파 등받이 뒤에 걸친 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확실히 기대되네.”허서령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지강산은 눈을 들어, 소준혁의 선을 넘는 행동에 차갑고 무거운 시선을 꽂았다.그때, 온화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긴 참 시끌벅적하네.”목소리를 듣고 모두가 문가를 바라보았다.들어온 사람은 큰어머니 도미란이었다.오십 대의 그녀는 살구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고 우아했다. 세월의 운치가 가득한 그녀 곁에는 역시나 단정한 도은정이 함께 있었다.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큰어머니.”지태일도 인사했다.“엄마.”“다들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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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지강산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지은영이 먼저 대답했다.“우리 오빠가 지면 서령 언니한테 누나라고 부르고, 승제 오빠한테는 아빠라고 불러야 해요. 반대로 서령 언니가 지면 우리 오빠한테 조상님이라고 불러야 하고요. 혹시 의견 있어요?”도은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녀는 지강산의 앞에 놓인 칩을 힐끗 보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이대로라면 허서령을 누나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물론 게임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다.하지만 도은정은 결혼 전에 위신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오늘 지강산의 전 여자친구도 이 자리에 있으니, 지강산의 인품과 마음을 시험해 볼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더 신경 쓰는지, 아니면 이 전 여자친구를 더 신경 쓰는지 알고 싶었다.그녀는 미소를 짜내며 지강산에게 물었다.“제가 싫다고 하면 이 게임 안 할 수 있어요?”지강산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깊은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남편을 잡으려는 건가? 친구들의 모임에서 약혼자에게 편을 들라고 압박하고, 게임 규칙을 지키지 않은 채 말을 바꾸게 하려는 건가?’이건 지강산에게 친구를 택하든지, 약혼녀를 택하든지 선택을 강요하는 것으로, 제대로 된 복종 테스트였다.그 행동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지강산은 몇 초간 멈췄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물론이지. 네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안 하면 돼.”도은정은 만족스럽게 입술을 감빨며 웃었다. 마음이 달콤했고, 몹시 뿌듯했다.그녀의 이 약혼자는 역시 그녀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다고, 평생을 맡겨도 될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화가 난 지은영은 주먹을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둘째 오빠, 너무한 거 아니야? 거의 다 져 놓고 인제 와서 못 하겠다는 거야?”도은정은 급히 달랬다.“은영 씨, 화내지 말아요. 전 그냥 은영 씨의 둘째 오빠랑 농담한 거예요. 계속해도 돼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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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전 먼저 갈게요. 다들 즐겁게 놀아요.”허서령은 태연한 척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누구도 감히 허서령에게 벌칙을 지키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모두가 그녀가 일부러 카드 판에서 져서 지강산의 체면을 세워 줬다는 걸 알았다. 또 그녀가 분수를 알고 예의를 지켜, 도은정의 앞에서 전 남자친구와 어떤 교류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도 알았다.하지만 도은정은 이득을 보고도 모른 척했다.“허서령 씨, 내기에서 졌으면 약속을 지켜야죠. 조상님이라는 말은 그래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분위기는 한순간 난감해졌다.모두가 말문이 막힌 가운데, 지강산은 허서령이 자기 앞에 내려놓은 칩을 내려다보았다.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았고, 턱선은 팽팽하게 굳었으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허서령은 농담 같은 말투로 어색함을 풀었다.“죄송해요. 도은정 씨, 제가 원래 인성이 별로라서 떼쓰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부르고 싶지 않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작별 인사를 하고 밖으로 걸어갔다.지은영은 달려가 허서령의 손을 덥석 잡았다.“서령 언니, 이렇게 늦었는데 우리 둘째 오빠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요.”“괜찮아.”허서령은 급히 거절했다.지은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외쳤다.“둘째 오빠, 차로 서령 언니 데려다줘.”“정말 괜찮아...”허서령은 마음이 긴장됐다.이건 너무 부적절했다. 지강산에게 약혼녀가 없었다 해도, 그녀는 다시 미련이 남은 듯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그의 약혼녀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지강산은 나른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담담한 어조로 되물었다.“나더러 데려다주라고? 정말 내 약혼녀는 안중에도 없어?”지은영은 곧장 말문이 막혔다.허서령은 마음이 쓰렸지만, 동시에 안도하듯 웃었다. 이것이 그녀가 알던 지강산이었다. 그의 가치관은 얼굴보다도 더 반듯했다. 지질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지강산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 그녀에게 차였을 때는 아쉬움도, 미련도 있었고, 오랫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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